◇ 전시
덴마크 디자인 전(DENMARK:DESIGN)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카레 클린트(Karre Klint), 한스 베그너(Hans J.Wegner) 등 11명의 거장 디자이너 작품을 만날 기회다.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뱅앤올룹슨(BANG&OLUFSEN)을 포함한 11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브릭아트의 대명사 레고(LEGO)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작품 20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근대 디자인의 황금기라 불리는 20세기 이후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전(The History of Korean Abstract Art)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발굴, 수집하여 제반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1957년 이후 연대별로 최근 추상미술 전시와 단색화에 대한 관심까지 아우르며, 미술에 대한 관념과 형식을 뛰어넘고자 한 한국 추상미술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추상미술 단행본, 도록, 팸플릿, 주요 전시 기사, 평론, 포스터, 사진, 작품 등 각종 실물자료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 도서
여행자의 하룻밤 (이안수 저·남해의봄날)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스테이 ‘모티프원’에서 일어난 10년간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여행자들이 풀어놓은 진심 어린 이야기가 책에 온기를 더한다. 전 세계 방문객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삶을 나누는 경험을 ‘글로벌 인생학교’라 부르며 인생의 공감과 영감을 자아낸다.
마르지 않는 붓 (자유칼럼그룹 저·두리반)
지난 10년간 자유칼럼그룹이 발표한 3000여 편의 글 중에서 24명의 필진이 추린 74편을 담은 칼럼집이다.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추천사를 썼다. ‘마르지 않는 붓’이라는 제목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붓, 평생 녹슬지 않는 펜을 들고 살아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이 이사장의 추천사에서 따왔다.
◇ 영화
박카스 아줌마의 인생 딜레마
개봉 10월 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등
종로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가난한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통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이 사는 게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고객’들을 도와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죄책감으로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 역에 배우 윤여정이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등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곳
개봉 9월 2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현 출연 박삼순, 이소현, 장춘옥 등
어린 시절 함께 살던 할머니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은 손녀가 다시 할머니 집에 들어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감독인 손녀가 담아낸 할머니와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 공연
국화꽃 향기처럼 아련한 첫사랑
일정 10월 1~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연출 이성모 출연 박형준, 장덕수, 서지유, 정서희, 황정윤 등
2000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고민이 극대화됐던 이전 무대와는 다르게 남주인공 ‘승우’의 시선과 심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비의 얼굴
일정 10월 11~2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김선영, 조풍래, 정원영, 박영수, 이창엽 등
명성황후라는 실존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작가무극이다. 사진 찍기를 즐겼던 고종과는 달리 명성황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와 가상의 인물이 주는 신비감을 더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일정 10월 26일~11월 6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장우재 출연 이호재, 오영수, 윤상화, 최광일, 이명행 등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기지’와 ‘경숙’이라는 두 대감이 왕의 질문을 갖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장우재 연출은 “제목처럼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다
일정 9월 30일~10월 1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김광보 출연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윤나무, 황성대 등
셰익스피어의 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여자 햄릿’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기본적인 가족 구도와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 햄릿의 고독과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했다.
몇 시간을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부모님을 따라 청량리역에 내린 시각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청량리역을 나서면서 필자 입에서 나온 일성은 ‘아부지! 하늘에 호롱불이 좍 걸려 삣네요’였다. 그때가 필자 나이 9세이던 1966년 가을이었다.
필자는 경주 인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초등학교는 논밭 사잇길을 지나 형산강 상류 얕은 곳을 건너고 긴 아카시아 터널과 무서운 보리밭을 지나야 갈 수 있는 먼 곳이었다. 농사철이나 눈보라가 심한 겨울날에는 학교에 오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작은 산골 마을에서 필자 집은 제일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방이 두 개고 방 사이에 작은 부엌이 있는 초가집. 아버지는 일하러 서울에 가시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들과 그 집에서 살았다.
그 시절 서울에서 철공소 일 하시던 아버지께서 다 망가져서 내다 버린 세발자전거를 주어다가 용접하고 색칠해서 보내주신 적이 있다. 그 신기한 물건은 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한번 태워달라고 내 자전거 뒤로 동네 아이들이 긴 줄을 지어 따라 다녔다.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신 적이 없는 어머니께서는 동네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니면서 한글을 깨치시고 셈법을 배우셨다. 배움에 한이 맺히신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ㄱㄴㄷㄹ’ ‘가나다라’가 빽빽하게 들어 있는 책받침을 사다 주셨다. 덕분에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깨우쳤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반장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해에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인 1966년 가을이었다. 검정고무신을 새로 사면 아까워서 신지 못하고 며칠 동안 들고 다녔고 반딧불이 여러 마리를 잡아넣은 호박꽃을 움켜쥐고 밤길을 뛰어다니던 천방지축 필자가 서울에 오게 된 것이다. 청량리역에서 태어나서 처음 본 가로등을 하늘에 좍 걸려 있는 호롱불로 알았던 것도 당연한 이치.
몸이 약하고 왜소했던 필자는 서울 아이들의 놀림감으로 충분했다. 심한 경상도 사투리는 심지어 선생님들도 놀림감으로 사용했다. 가난도 한몫했다. 솜틀집 귀퉁이 작은 방 하나에 우리 전 가족이 살았다. 시골학교에서 반장을 했던 필자는 자신감이 자꾸 사라졌다. 필자는 더 우울해지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외톨이가 돼갔다.
그러던 중 친구가 하나 생겼다. 그 친구와는 어떤 계기로 가까워졌는지 기억에 없으나 어린 시절 은인이었다. 그 친구네 집은 'ㅁ‘자 모양의 큰 기와집이었는데 마당 가운데에는 꽃이 피는 정원이 있는 대궐 같은 집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늘 필자를 자기네 집에 데리고 갔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해 주셨다. 반들반들 거리는 마루에 그 친구와 단 둘이 앉아서 텔레비전을 봤다. 그 친구는바둑도 실력급이어서 필자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친구네는 검은색 자가용이 있었는데 광나루에 물놀이 갈 때는 필자도 같이 데리고 가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단 일 년 동안의 시간을 보내고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어졌다. 4학년 때 필자 집이 멀리 이사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이름을 긴 세월 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성씨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그의 이름은 언제나 또렷하게 가슴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우울하고 힘들어하던 어린 시절에 필자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고 필자가 다시 용기를 갖도록 만들어 준 친구. 우여곡절 끝에 나는 2008년에 그를 찾아냈다. 만나서 얼굴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지나간 사십여 년의 긴 시간도 같이 지낸 듯 친근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그는 원불교 성직자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 필자에게 했던 그 나눔을 평생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건네준 시집에서 그 친구와 함께 꼭 뵙고 싶었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의 그림 솜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가 시골에 살 때 아버지는 서울에서 철공소 일을 하시면서 돈을 벌어 보내셨다. 그렇게 일하시면서 그림 공부를 하시고 그 시절 미대를 졸업하셨다. 본래부터 가지고 계시던 재능인 그림 공부를 하신 후 평생 나염 공장에서 도안 그림을 그려 가족을 부양하셨다. 블록으로 지은 쪽방 도안실에서 꽃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이 아직도 필자 기억에 남아 있다. 철공소의 험한 일은 그만하셨지만 나염공장도 열악하기는 별 차이가 없었다. 월급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고 다니시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는 경우도 있었으니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필자가 고3 때 미대를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중ㆍ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받은 상은 전부 그림 상이었다. 사생대회를 나가기만 하면 특선을 했다. 필자는 그림이 좋았고 평생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대신 그림과 관련이 있는 건축과로 가라고 하셨다. 건축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필자는 건축과를 가게 되었다. 그림에 빠져있던 내가 공대 건축과를 갈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하게도 수학을 잘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건축과 학생 중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선후배가 모여서 작품전을 준비하는 써클에 가입했다. 1년에 5개월 정도를 써클룸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설계 공부를 하며 작품전을 준비했다. 그 당시 써클룸은 학교의 제일 높은 산 위에 있는 건물의 지하 보일러실 옆 정화조 위에 있었다. 냄새 나는 좁은 공간에서 저학년들이 전체 인원이 먹을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먹는 그 밥으로 대부분 영양실조 상태였다. 잠은 제도판 위에서 쪼그리고 잤다. 낮에는 자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설계하는 습관 때문에 수업을 많이 빠졌다. 그러니 제때에 졸업 못 하는 선배들도 있었고 필자도 학점 미달로 한 학기를 더 다니고 졸업하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희로애락을 함께한 선후배들은 사회에서도 형제처럼 서로 도우면서 건축을 할 수 있었다. 남자 형제가 없는 필자는 그렇게 맺은 건축과 선후배들이 형과 아우 같은 관계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연결고리에서 도움을 받고 나누고 있다.
졸업 후 7년 동안 건축 설계사무실의 도제 생활을 거치고 나서 건축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나이 서른두 살에 건축설계사무실을 개업했다. 개업하기 한 해 전에는 결혼해서 첫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세 식구가 살 작은 원룸 아파트도 돈을 빌려서 전세로 들어갔고 사무실 개업비도 전부 선배들에게 빌려서 해결했다. 1989년이었다. 개업하자마자 일이 밀려 들어왔다. 그 시절 온 나라는 공사판이었고 설계일도 넘쳐났다. 삼십 대 초반에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만져보지 못한 큰돈이 들어왔다. 직원 수도 늘어났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많아졌다. 골프도 치러 다녔다. 둘째 아들이 태어난 후엔 작은 전셋집에서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필자의 삼십대는 건축이 가져다준 풍요에 방향타를 놓치고 흥청거렸다. 그러나 그 풍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늦가을 어느 날 세상은 천지개벽했다. 그날 필자는 선후배 골프모임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고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설계, 감리를 시행하고 있는 현장에서 인부 두 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경찰서에서 여러 날 공사현장 사고 조사를 받는 중에 IMF가 터졌다. 처음엔 IMF가 뭔지도 몰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필자가 거래하던 중소 건설회사는 전부 부도가 났고 예정된 모든 설계프로젝트가 사라졌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거품이 터지듯 사라졌다.
필자가 사십 대에 접어드는 시기에 일어난 악몽이었다. 삼십 대에 이룬 것을 전부 잃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간 일거리가 없었다. 빚이 눈덩이처럼 쌓여가고 독촉장들이 여기저기서 날아들었다. 급기야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공황장애와 폐쇄공포, 협심증과 감각마비라는 중증 질환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신경과 전문의인 둘째 처남이 약을 지어주면서 ““약은 상태호전에 큰 도움이 안 되니 가능하면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진단을 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는 가족의 단결도 가져왔다. 어머니께서는 늘 기도해 주셨고 아내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밤마다 뜸을 떠주고 필자 손바닥에 빽빽하게 수지침을 놓아 줬다. 몇 달 후 건강이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필자 사진 한 장이 지금도 남아 있다. 허공을 바라보는 초점 없는 눈과 창백한 피부. 그 당시 얼굴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이런 가족의 성원에 보답하려고 당시 건축설계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동안 건축을 하면서 예술가인 양 거드름을 피우고 살았으나 필자의 사십 대 건축은 단지 생계 수단일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빚을 정리하면서 사십 대를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의 키가 나보다 더 커져 있고 필자 머리카락이 반백이 된 것을 알았다. 필자의 불혹은 말 그대로 허무하게 지나갔다.
내 나이 오십이 되던 해, 그러니까 2007년부터 매년 한가지씩 이루어 나가기로 했고 지금까지 실행에 옮기고 있다. 담배 끊기, 목 조각 배우기, 책 내기, 상담사 자격증 따기, 강의하러 다니기, 새로운 사람 오십 명 사귀기 등이 그동안 내가 실행한 일들이다. 올해는 캘리그라피에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매년 성취 가능한 목표를 하나씩 세우고 꼭 이루어 나가려고 한다.
2007년도부터는 건축 분야 가운데서도 환경, 생태건축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있다. 어류를 포함한 동물 공부도 하고 수목원과 식물원을 찾아다니면서 식물도 공부하고 있다. 건축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필자가 연구하는 건축은 사람과 함께 지구 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위한 환경이다. 그와 더불어 지속가능한 소득이 있는 시니어타운을 연구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해 아파트 하나가 재산 전부인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에게 작지만 그림 같은 집을 갖게 하고 싶다.
필자가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인생 후반전을 능동적이며 긍정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에 필자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퇴직한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생애 재설계 강의도 하러 다니는데 이것도 같은 차원이다. 사실 한국의 시니어들은 퇴직 후의 인생 2막에 대해 대책을 세울 여유가 없었고 앞으로의 대안도 마련돼 있지 않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 대안의 하나로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계속하면서 관계를 넓혀가려고 한다.
최근에 필자는 ‘5070세대의 가슴 펄떡이는 기사를 쓰실 기자를 찾습니다’라는 이투데이의 시니어기자단 모집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필자 희망대로 필자의 경험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배울 수 있는 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야가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들과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 똑같은 삶이 흐르다 보면 사람들은 익숙했던 공간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거나 혹은 스트레스가 닥쳐오면 탈출 욕구는 더욱더 솟구친다. 최대한 먼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신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서울 인근 여유가 흐르는 집을 온라인 숙박 예약 사이트 에어비앤비(www.airbnb.co.kr)와 함께 다녀왔다. 지금 당신, 멀리 갈 수 없다면 바로 이곳으로 떠나보라.
대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모두 친구
파주시 헤이리 마을 모티프원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모티프원은 전직 기자이자 ‘철없이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이안수(李安洙, 59)씨가 손님들에게 내주는 공간이다. 백발수염 휘날리며 밝은 웃음으로 맞이하는 이씨를 보면 기분 안 좋던 사람들도 같이 웃을 수 있다. 집주인의 인도를 받아 서재로 들어가면 온 벽면을 가득 메운 책들과 방문객들이 그린 그림,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이 집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자유와 뭐든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다. 서재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책을 봐도 되고 위층 옥상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아도 된다. 단 바비큐는 할 수 없다. 그 시간에 사람들과 더 얘기하는 것이 낫다는 게 집주인 생각이다.
에어비앤비 숙소로도 이용되지만, 처음에는 전 세계 예술가들을 위한 아티스트 레지던스(예술인 숙소)로 문을 열었던 곳이다. 세계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묵으면서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드라마작가 송지나씨를 비롯해 여행작가 박준씨도 다녀갔다. 작년 말에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의 촬영 공간으로 서재를 내어 주었다.
1분 거리의 방이 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서재에 내려왔다가 말이 맞는 옆방 손님이나 아랫방 손님들이 만나 토론도 하고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만다. 특히 집주인을 만나게 되면 취조(?)당할 각오는 해야 한다. 그는 숙박업을 하면서 매일 살아가는 이유가 손님들로부터 문화충격을 받는 것이란다. 전직 기자라는 것을 잊지 마라. 모든 것을 얘기하게 될 것이다.
빌딩 사막 너머에서 찾아낸 조용한 낙원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레몬하우스
숙소 소개 하는 데 너무 거창한가? 진심이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화가 유영희(柳英熙·69)씨와 남편 한동욱(韓東郁·71)씨가 사는 ‘레몬하우스’는 말 그대로 놀랄 만한 반전을 숨기고 있는 집이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분당 신도시 아파트 골목을 지나다 문득 ‘한적하고 고즈넉한 집이 있기나 한 걸까?’란 생각이 들 때쯤 콘크리트 뚝뚝 잘라놓은 듯 투박한 레몬하우스가 정체를 드러낸다. 집주인 유씨가 대문을 열어 반겨줄 때도 ‘뭘 믿고 이렇게 여유롭게 반기나?’ 싶다. 신발을 벗고 집주인을 따라 나무계단 위를 오른다.
몸을 돌려 집안 풍경을 눈에 담는 순간! 머릿속에 똬리 틀었던 불만이 사라지는 데 단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단정하게 벽면을 채운 그림들, 따뜻한 표정의 조각상들, 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낙엽들, 실내를 따뜻하게 해주는 벽난로가 조금 전 일상과 완벽하게 분리해주는 묘한 작용을 한다. 조심스레 집안 구석구석 오르내리면서 둘러볼수록 아주 먼 곳을 이동해 여행 온 듯 마음 놓게 해준다.
이 집은 유씨의 오랜 친구이자 美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일본인 건축가 쿠도 쿠니오씨가 직접 디자인하고 집을 지었다. 전적으로 쿠도씨의 생각에 모든 것을 맡겼다. 이 집의 매력은 더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한 공간 안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 따뜻한 서비스를 요구한다면 이 집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 산이 보이는 곳에서 코끝 시린 느낌도 좋다. 벽난로 앞에 앉아 만화책을 읽거나 소설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이 집에서는 음식을 해 먹는 것은 할 수 없다. 쉬러 왔으니 음식도 해먹지 말라는 집주인의 깊은 생각이다. 대신 집주인이 추천하는 맛집에서 청국장과 코다리찜 혹은 오리고기를 사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990년대 중반 CF 스타였던 CEO가 있었다. 바로 신홍순 컬처마케팅그룹(CMG) 고문이 그 사람이다. 당시 LG패션 사장이었던 신 고문은 멜빵에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20여 년 동안 패션 업계에 몸담았던 경력, 재즈와 클래식 마니아이자 전문 공연 기획자, 미술 컬렉터, 패션 경영 교육자, 전 예술의전당 사장 등등 신 고문의 삶은 문화와 예술로 채워진 드문 경영인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신홍순(申弘淳) CMG 고문은 1941년생, 올해로 74세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 그 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직업인 동시에 유희의 영역에서 살아 왔기 때문일까. 그는 음악과 미술은 기업에 있으면서도 항상 같이 가고자 했던 분야라고 말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을 이끄셨던 고(故) 임원식의 친구였던 선친께서 미술과 음악을 좋아해서 컬렉션도 갖고 계셨지. 선친께서 나이 6~7세부터 연주회나 전시회 등을 자주 데리고 다니셨고, 이후 대학에 와 재즈와 팝 등으로 영역을 넓혔어요. 아내를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 얻게 된 것도 그렇고. 그림은 내가 그리는 것보다 보는 게 좋아서 전시회를 많이 다녀요.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경험이 많은 도움이 돼요.”
신 고문의 선친은 동일방직의 중역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을 기업에서 구매하여 청와대로 보내곤 했다. 그의 선친도 그런 일을 했었고, 그 덕분에 화단에서도 그의 선친이 꽤 알려진 이름이어서 화가들과 친분이 있었다. 그런 환경이 신 고문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LG패션 대표이사 시절 갤러리 운영, 미술작품 전시, 재즈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기업이미지를 높이는 ‘패션마케팅’을 펼쳐왔다. “패션 자체가 색상과 디자인 등 예술적인 감각과 마인드가 필요한 분야인 데다 크게 보면 같은 문화산업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패션과 예술은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감성’을 바탕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이죠.”
재즈파크, 한국 재즈 역사에 한 획을 긋다
재즈마니아인 신 고문은 제 162회를 맞은 ‘재즈파크’ 콘서트를 1세대 정통재즈에서부터 라틴, 퓨전 재즈 등 2, 3세대에 이르기까지 신구를 아우르며 매회 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유명공연으로 만들어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는 2002년 3월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입장료 1000원의 재즈파크 콘서트를 꾸준히 열어온 ‘공연기획자’다. 또한 ‘재즈파크빅밴드’라는 18인조 재즈 빅밴드를 구성, 활동하고 있는 예술단체 매니저이기도 하다. 유열의 재즈파크빅밴드 활동으로 재즈파크빅밴드가 국내 최고의 재즈빅밴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재즈공연을 후원해준 신 고문의 감회는 남다르다.
“재즈 불모지였던 한국에 재즈의 토대를 마련한 재즈계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재즈 1세대들이 설 변변찮은 무대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무대다운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듣고 재즈 1세대들에게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생각했어요.”
척박한 한국 재즈 환경 속에서 재즈의 대중화와 저변확대를 이끌어온 ‘재즈파크’가 13살이 됐다. 이는 재즈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재즈 공연을 진행해온 신 고문의 재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결실이다.
“수익을 남기는 공연이 아니라 재즈파크를 통해 재즈인들은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생겼고, 대중에게는 재즈와 소통할 수 있는 가교가 마련됐다는 것이 의미였죠. 또한 재즈파크를 통해 선·후배 재즈 아티스트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팀이 결성되기도 하는 등 침체된 재즈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즐거움이었어요.”
조상의 역사를 정리하며 얻은 삶의 즐거움
신 고문이 최근에 공들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그의 조상, 그의 가계에 대한 연구였다.
“선친이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셔서, 그 나머지 일의 뒷정리를 하는 게 있어요. 아마 한국처럼 족벌이라는 걸 각 성씨들이 갖고 있는 나라가 없을 거예요. 바로 그 조상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죠.”
신 고문은 자신의 가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라는 문인을 꼽았다. 영·정조 시절을 살았던 신광수(1712~1775)는 ‘동방의 백낙천’이라는 평을 받았던 분이다. 신 고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을 쓴 춘원 이광수의 본명은 이보경으로, 그가 필명을 이광수로 쓰게 된 계기가 바로 신광수의 작품들을 알게 되면서라고 할 정도로 대가의 경지에 도달했던 문인이었다.
“얼마 전에 평양에서 온 극단이 하는 악극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여자 주인공 역할을 하는 사람이 석북 선생의 한시 창을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조상을 연구하며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다
신광수라는 걸출한 조상의 발견은 조상의 활동을 시대별로 자료를 취합하여 평전을 만들고 번역을 싣는 작업의 결과였다. 신 고문은 조상의 업적을 정리하는 그 과정에서 조상에 대한 애착을 굉장히 많이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 작품 하나하나가 남들과는 다르게 다가오죠. 그리고 자기 조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그들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모여서 일 년에 세 번 정도 서로 집안 행사 때 가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또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고. 어느 집에서 자료를 가져 와서 ‘1450년대 자료를 보라. 너희 조상하고 우리 조상하고 모여서 회의하고 시도 읊고 쌀도 나누고 했다. 1500년대 이후의 교류는 이미 나왔는데 그 이전 건 처음이다’ 하는 내용이 나오면 그쪽과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는 셈이죠. 새로운 게 창조되는 기분을 느끼니 자꾸 빠지게 되더군요.”
그런 인연과 인연들이 모여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이벤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석북 신광수 선생의 시로 공연을 열다
“조상의 역사를 되짚어 가면서, 한문을 배우긴 배웠지만 깊이 있게 배운 적은 없어 한학자들이 부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한학자가 250여 명 되는데 그들과 교류를 하면서 학술대회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요. 신광수 선생의 작품들로 음악회를 하자고.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공연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알거든? 어? 그거 얘기가 되네. 돈만 있으면 그 다음 방법은 내가 갈 길을 아니까.”
신광수는 정치적으로 남인이었다. 고향에서 한양에 오긴 했지만 집이 없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그에게 집을 마련해줬는데 그게 하필 노론이 주로 거주하던 계동이었다.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에서 살다 보니 심심하기도 했던 그는 청계천을 넘어서 명동, 당시에는 저동이라고 불렸던 곳을 다니곤 했다. 지금의 평화방송 빌딩에서부터 한옥마을 쪽으로 하여 회현동을 누비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했던 조상의 기록들을 신 고문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누비고 다녔던 동네가 그쪽이니, 공연 장소는 한국의 집 전통예술극장에서 하자고 했죠. 거기가 국악 공연을 하는 곳인데 200여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인 가곡 예능보유자 김영기 선생을 만났어요. 이런 것 좀 하려는데, 당신이 제일 적임자니 해주십사 부탁을 했죠. ‘당연히 해야죠’라며 얘기가 척척 돌아가더라고. 그래서 하게 됐지.”
자신의 조상의 업적을 발굴하여 그걸 현대에 살아 있는 현상으로 만들어낸다. 신 고문이 말한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는 말을 납득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야말로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가 젊었을 시절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 아니던가.
“나도 젊었을 때는 조상을 알아보는 일에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니 그 윗대에서 알아봐야 할 분들이 새로 생기고, 다른 집안과의 연관도 많이 나왔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집안의 기록들도 연구하게 됐어요.”
고향을 바라보며 울컥했던 시간
신 고문은 조상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에 활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고향과 가까워지더라는 것이다. 그의 고향은 모시와 소곡주로 유명한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이다.
“우리 자식들은 고향에 관하여 기억하는 게 없어요. 가서는 수세식 변소가 없다고 난리를 치고 서울로 올라와선 다신 안 가더군(웃음). 조상을 연구하다 보니 고향 현지의 문화원과 교류하게 되고, 마침 문화원장 중에서 우리 집안에 굉장히 관심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문화원에서 책을 발간하는 데 도움도 주시고 날 초청도 하고. 그렇게 가까워지니 군수도 알게 됐어요. 2013년이 서천군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였죠. 그래서 600주년 기념행사를 하려는데 제게 총 준비위원장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회의 진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넣고 그랬죠. 그중 금난새씨와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게 있었는데, 오케스트라가 전국에서 300명의 청소년이 모이다 보니 행사하던 날 그 300명의 부모들이 모두 서천에 오더군요.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신 고문은 사람들이 두루 도우며 더불어 사는 그런 모습을 좀 보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점점 심해지는 개인주의에 대한 경계를 그 또한 자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고향과 더욱 가까워진 신 고문의 마음이 향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하는 사업 중에서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이라고, 발레나 연극 같은 공연을 영상화하여 보여주는 게 있어요. 그걸 보면 클로스업해서 테크닉까지 보여주고 아주 기가 막히더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걸 문화적 소외계층에 제공하는 거죠. 알아보니까 큰돈이 안 들어도 되겠더라고. 그래서 고향 문화원장에게 가서 내가 후원할 테니 해보고자 했어요. 회관 사용 허가가 떨어졌고 ‘호두까기 인형’을 가져갔죠. 군부대 사병들, 학생, 일반인들이 일과 끝나고 구경하도록 했습니다. 문화원장이 사람이 올까 해서 걱정했는데. 그 영상이 한 시간 반 동안 하는데 소리가 하나도 안 나더군요. 다들 집중해서 보는 거지. 그걸 보면서 울컥하더라고. 보람이 깊었고.”
인생 후반전의 밝은 본보기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멋지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신 고문이 보여주는 모습에는 자신이 꾸준히 쌓아왔던 커리어에서부터 비롯된 것 외의 다른 이유에서 시작되는 부분도 있어 보였다.
“우선 호기심이 많아야 해요. 자신이 일을 좀 만들려고 할 때 일을 찾는 기본은 호기심입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그리고 열정이죠. 그런데 혼자서는 다 할 수 없으니까 그 열정을 원하는 대로 행사하려면 같이 일할 사람을 찾아서 유도해야 해요. 제 친구 중에 대학을 안 다녔는데 한문을 배운 친구가 있어요. 자신의 아버지도 서예를 잘했고. 그 친구가 한문학에 자질이 있다는 걸 알았죠. 성격도 괜찮아서, 나하고 같이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가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 없었는데 하나씩 목표가 주어지면서 달라지더군요. 요즘은 그리 말해요. ‘형 아니었으면 내가 요즘 뭔 보람으로 살았을까.’”
신 고문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바로 인재를 알아보는 눈. 세상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능력과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신 고문은 그들을 알아보고 모아서 도화선으로서, 불을 붙여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있을 때 득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람을 느껴야 일이 돼요. 나이를 먹으니 그런 쪽으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게 좋더라고요(웃음).”
호기심, 열정 그리고 친구 많은 것이 그가 웰에이징 하며 사는 비결이었다.
글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교수
60세 나이에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여성이 있다. 그 데뷔작으로 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작곡상을 받았다. 1985년 ‘She's So Unusual’로 그래미상 5개 부문을 휩쓸었던 팝 아이콘 신디 로퍼가 30년 만에 뮤지컬 작곡가로 변신해 토니상 6개를 휩쓰는 흥행작 ‘킹키부츠’를 탄생시킨 것이다.
작품은 열일곱 살에 무작정 가출해 음악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녀의 역경 속 성공스토리와도 닮았다. 망해가는 신발 공장을 물려받은 아들이 가업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던 중 타고난 디자인 감각을 지닌 드랙퀸(여장남자)을 만나 남성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강철굽 킹키부츠를 개발해내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의 성장스토리와 더불어 희망의 메시지가 극 전체를 감싼다. 거기에 작사·작곡을 맡은 신디 로퍼의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음악은 자칫 교훈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완성한다.
1980년대 영국 스티브 팻맨이라는 한 사업가의 성공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킹키부츠’는 당시 의욕과 방황으로 20대를 풀가동했을 현재의 중장년층이 젊은 날을 회상하기에도 좋은 공연이다. 또한 신디 로퍼뿐만 아니라 극작에 하비 피어스타인, 연출에 제리 미첼 등 잘 나가는 브로드웨이 창작진이 뭉쳤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흥행하고 있는 뮤지컬 중 하나로, 한국 CJ E&M이 제작에 참여해 브로드웨이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빨리 라이선스 공연이 이루어진 뮤지컬이기도 하다. 이런 취지만으로도 볼 만한 화제작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보너스! 눈도 상당히 즐거운 뮤지컬이라는 것. 신발 공장을 상징하는 ‘컨베이어 벨트’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스릴 있는 안무, 드랙퀸의 표상인 6명의 사랑스러운 엔젤들이 선사하는 신선한 자극으로 극이 전개되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꿈과 희망을 지녔었는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을지 등 다시 한 번 요동치는 맥박을 확인하고픈 중장년들에게 뮤지컬 ‘킹키부츠’는 영혼의 타임머신이 되어 줄 것이다.
뮤지컬 라이선스
일시: 2014.12.02. ~ 2015.02.22.
장소: 충무아트홀 대극장
출연: 김무열, 지현우, 윤소호, 오만석, 강홍석, 정선아, 최유하 등
제작: CJ E&M(주), 충무아트홀
강화도 초지대교 지나 해안대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작은 섬 하나가 연결되어 있다. 5000만평의 세계 3대 갯벌이 신비롭게 펼쳐져 있는 ‘동검도’란 섬이다.
조용했던 동검도가 최근 ‘영화의 섬’으로 불리우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갯벌 앞 섬마을에서 희귀 영화를볼 수 있는 특별함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흔히 접하기 힘든 세계고전, 예술영화, 작가주의 영화를 365일 상영하는 예술극장이 오픈했다. 도시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예술극장을 섬에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그를 만나기 위해 동검도로 영화여행을 떠나보자.
글 김미숙 객원기자 mebranding@naver.com 사진 이형용 MeBranding 이사
얼굴을 들면 탁트인 갯벌과 하늘, 내려다 보면 구불구불 시골길… 섬 풍경 가운데 현대적인 건축물이 한 프레임에 담긴 조화가 인상적이다. ‘DRFA 365 예술극장 & 조나단의 커피’ 감각적인 하얀 입간판에 먼저 눈길이 간다. 건물에 들어서면 벽에 걸린 걸작영화 포스터, 세계 유명 감독들의 흑백사진들, 진한 커피향과 잔잔한 음악까지. 마치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간 기분이다.
서너명의 중년남성들이 편안한 웃음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도시의 일반극장에선 보기 힘든 스태프 구성이다. 그리고 한 남자가 친절하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덥수룩한 수염, 순수하고 털털한 인상이 섬 촌장님 같다. 그가 바로 DRFA 365 예술극장의 조나단 유(본명 유상욱, 51세) 대표다.
“누구신가요?” 첫 질문에, 0.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라이터이자 동검도 DRFA 365 예술극장 대표인 조나단 유입니다. ” 당당히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은 외모와 전혀 다른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극장 안 카페에서 동검도에 극장을 지은 이유부터 오직 영화 한 길을 걸어온 삶, 그리고 新청춘(중년)들과 나누고픈 영화 & 힐링문화에 대한 생각까지 그와의 담론이 시작됐다.
#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다
이 극장이 생긴 취지는 소중한 세계 고전영화, 제3세계, 예술영화의 복원과 상영을 위해서라 했다. 1999년 DRFA(Digital Remastering Film Archive)란 동호회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보여줄 좋은 작품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조나단 유 시나리오 스쿨과 DRFA 회원들은 영화 복원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공유할 극장 마련에 힘썼다 . 그리고 마침내 2년여 준비 끝에 접근성 좋고, 천혜자연의 동검도에 DRFA 365 예술극장을 설립하게 됐다.
유 감독은 시나리오 스쿨을 함께 운영 중이다. 젊은 작가들은 물론 작가를 꿈꿨던 시니어들에게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고, 작품과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계속해서 작가들을 발굴하고, 좋은 작품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해외 희귀 작품을 번역하고, 본인 스스로도 30년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뼛속까지 영화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다.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사장될 뻔한 훌륭한 고전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세상에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한다. 우리는 그로 인해 좋은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됐다. 영화 저작권을 15000편이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익이 생길 때마다 또다시 영화 번역과 디지털 복원, 저작권 구입 등 재투
자하는 그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 중년의 청춘 감성 일깨워
동검도 DRFA 365 예술극장의 주 관객층은 50~60대 중년여성층이다. 최근 들어 10대 학생들부터 70대 장년까지 남녀노소 관객층이 다양해졌다. 그래도 이곳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꽃누나 언니들’이다. 그 이유는 중년 감성을 깨워주는 유 감독만의 섬세함과 배려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영화 전문가로 영화와 시나리오 외에도 재주가 참 많다.
하루 두 번 영화가 시작되기 전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다. 영화 OST나 상영될 영화와 관련 음악을 선곡해 연주하고, 영화배경과 감독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가 시작 전부터 이미 중년 여성관객들로 하여금 젊은 날의 추억과 로맨스로 빠져들게 한다.
피아노 선율은 영화에 몰입도를 높여주고, 닫혔던 마음을 열어주는 사랑의 묘약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 감독은 영화와 음악 외에도 음식학-사상체질학 등에도 조예가 깊다. 관객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살피고, 각 개인에 체질에 맞는 차나 음식을 권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본 이후 영화 주제 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커피,영화, 소통을 즐기면 저절로 행복한 표정이 된다.
1. 김미숙 객원기자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나단 유 감독
2. 갯벌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극장 2층의 카페 공간 내부
3. 1층 벽면, ‘피아노 치는 조나단 유’ 감독의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4. 1층 ‘조나단의 커피’ 내부.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영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5. ‘DRFA 365 예술극장 &조나단의 커피’ 입간판 및 극장 건물 외관 밤 풍경
6. 1층 벽 한 켠에 걸려 있는 조나단 유 감독의 환영 인사말
7. 조나단 유 감독이 영화 상영 전에 작품 배경, 감독성향, 제작 배경 등 영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한편 “인간의 삶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성경을 51번 읽었는데 매번 새롭더라구요.”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다양한 삶의 모습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콘텐츠와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 서비스하는 모습 역시 그의 또 다른 삶의 모습이기도 했다. 관객들은 동검도에서 그의 섬세한 배려와 서비스 정신이 영화의 감동과 함께 깊은 인간적인 여운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동검도를 다시 찾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될 정도로 말이다.
# 영화와 공유로 새로운 문화 창조
오후 3시. 오후 6시 하루 두 번 영화가 상영된다. 해질녁 동검도 갯벌의 노을 빛에 젖어 있노라면, 피아노 연주가 들리고, 영화 시작을 알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70대 여성관객들이 많았던 날. 노년이지만 여전히 청춘인 두 자매의 로맨스를 그린 ‘라벤더의 여인들(영국,2004)’이 상영됐다. 누가봐도 관객들의 취향, 스타일을 고려한 영화다.
영화가 끝난 후,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하는 사람, 잃었던 감성을 다시 찾은 느낌이라며 유 감독에게 감사를 전하는 사람, 다섯 번 봐도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답다는 사람 등 어느 대형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 목격됐다. 모두가 영화 주인공들처럼 소녀 감성으로 돌아간 청춘들의 모습이었다.
유 감독은 DRFA 365 예술극장은 35개 좌석의 소극장이지만, 최고의 사운드 시설을 설치했다고 했다. 영화를 최상의 컨티션으로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프로그래밍한다며. ‘영화’를 매개체로 공감할 수 있는 소통공간이 영화인으로써 늘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제 이 공간은 더 이상 제가 주인이 아닙니다. 관객이 6000원을 내고 6000원의 가치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공유 공간이 됐습니다.”
개관 후 꾸준히 관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종교, 여성, 다문화가정 단체 등 관객층도 다양해졌다. 관객 다양화는 극장의 활용도 마저 바꿔놓았다고 한다. 심야영화제, 여성영화제, 이달의 감독전 등 유감독이 기획하는 프로그램 외에도 관객 스스로 영화를 매개로 하는 힐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한다. 극장 이상의 놀이터, 새로운 문화가 꽃피는 ‘아이디어 창조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도시의 기업형 예술극장도 경영상 어려움으로 사라지는 이때, 문화 소외지인 섬에 있는 예술극장 관객수와 프로그램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 꿈과 낭만이 흐르는 섬, 동검도
마지막으로, 그에게 꿈을 물었다. “동검도에 제2예술극장과 작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처럼 영화로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봉사하며 살고싶은 게 개인적인 비전입니다.”
이것은 유 감독만의 꿈은 아닐 게다. 요즘처럼 몇 백만이 들었는가가 우선시되는 시대. 극장을 나오면 제목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상업영화 홍수 속에서 우직하게 영화의 작품성과 순기능을 지키는 DRFA 365예술극장의 자원봉사자들, 후원자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순수 관객 모두의 꿈일 것이다.
동검도에는 꿈이 흐른다.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영화는 물론 5000만평의 갯벌, 억새풀밭, 하와이안 코나 커피, 백만불짜리 산소를 선물 받는다. 잊혀질 예술영화를 살리고, 잃었던 청춘의 낭만이 되살아나 더욱 행복하다.
아름다운 영화의 섬 동검도로 좋은 사람들과 시네마기행을 떠나보자. 동검도 영화 인생, 조나단 유 감독이 당신의 영화여행의 매력적인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영화감독·시나리오 작가 조나단 유
MBC 문학상 수상
,
가 2년 연속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 수상
대종상
시나리오상 수상
◆김미숙/브라보 마이 라이프 객원기자-퍼스널 브랜딩 큐레이터
-미브랜딩(MeBranding) 대표
-브랜딩 컨설턴트, 강사, 카피라이터, 커리어 코치
-www.misukkim.com
※ 데님(Denim)은 청바지·진(Jean)을 만드는 원단 즉, 청 원단을 뜻한다. 이러한 데님 원단으로 만든 바지를 데님팬츠라 일컫는다. 두꺼운 데님은 주로 작업복에 사용되지만, 얇은 것은 보다 부드러워 스포츠 데님이라 부르며 스포츠웨어 등에 쓰인다. 정통적인 블루데님은 시원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어 여름철 패션 아이템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중년들은 다운에이징 패션을 선호하고 있다. 젊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 시간과 비용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젊은 중년’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다운에이징 소비 패턴이 패션 시장으로까지 넓어졌다.
데님 바지나 원피스 등 주로 젊은층에게 인기를 끄는 아이템들을 찾는 중년 여성 고객들이 늘었고, 실제로 중년 이상의 남성 고객들이 20~30대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 옷을 구매해 사이즈를 수선해서 입는 경우도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의 경우 자신의 약점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보다는 컬러나 옷의 실루엣 등을 통해 보다 과감한 시도를 하면 나이보다 젊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중년층은 나이가 들면서 배가 나오는 등 체형이 달라지기 때문에 편하게 입기 위해 벙벙하게 남는 스타일의 옷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패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모두 오히려 몸에 피트되는 느낌의 옷을 입는 것이 훨씬 날씬해 보이고 키도 커보인다고 조언한다.
LF 마에스트로의 윤종현 디자인 실장은 “중년 남성은 얼굴 피부색이나 체형 등을 지나치게 의식해 옷으로 약점을 가리려고만 하는데, 이보다는 밝은 컬러의 옷이나 슬림해 보이는 실루엣의 옷을 입어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이 좋다”라고 설명하고, “몸에 다소 붙는 실루엣의 옷이 불편하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고, 오히려 적당히 타이트한 옷이 활동하기에 더 편하다”라고 덧붙였다.
닥스여성의 송지영 디자인 실장도 “이번 시즌에 유행하고 있는 컬러의 옷을 입거나, 몸에 적당히 피트되는 느낌의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젊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남성의 경우, 허리둘레가 두껍다고 해서 바지 앞단에 주름이 두개 잡힌 ‘투-턱(Two-Tuck)’ 바지를 입으면 오히려 더 뚱뚱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주름이 없는 바지를 선택해야 한다.
데님 바지의 경우에는 입다 보면 어느 정도 몸에 맞게 늘어나므로 처음 입을 때 약간 꼭 맞는 느낌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재킷도 벙벙하게 남는 느낌보다는 허리 라인이 안쪽으로 약간 들어가고 라인 위치를 위로 높인 재킷을 입으면 전체적으로 실루엣을 살려줘 날씬해 보일 뿐 아니라 키가 커 보이는 효과가 있다.
젊게 보이는 컬러는 ‘상농하담(上濃下淡)’ 또는 '상담하농(上淡下濃)'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며, 보색대비는 키가 작아 보이기 쉬우므로 피하고 같은 계열 컬러를 농도만 달리해 매치하는 것이 좋다.
여성의 경우에는 몸에 피트되면서도 신축성이 있는 스트레치성 소재를 사용해 몸의 움직임을 편하게 한 제품을 선택하거나, 겉옷의 컬러는 무채색으로, 이너웨어는 과감한 원색으로로 선택하면 경쾌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또, 다소 포멀한 느낌의 재킷에 피트되는 느낌의 데님 바지 또는 은은한 골 조직이 있는 바지를 매치하면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 닥스신사 코디
딱 떨어지는 깔끔한 화이트 팬츠와 강렬한 레드 컬러의 재킷을 매치해 상, 하의를 모두 강조하여 열정적인 꽃중년의 느낌을 연출했으며, 선글라스와 살짝 세운 재킷 깃으로 한 층 멋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 마에스트로 코디1
베이지 컬러의 팬츠와 코튼 소재를 가먼트 다잉해 빈티지한 스타일을 연출해주는 카키색 재킷을 매치해 분위기 있고 부드러운 꽃중년의 느낌을 연출했다. 팬츠 밑단을 롤업하여 발목을 살짝 드러내는 센스를 더했으며, 재킷 안에는 스트라이프 셔츠와 그레이 컬러의 가디건을 레이어드해 더욱 세련된 멋을 보여준다.
# 마에스트로 코디2
화이트 팬츠와 셔츠에 블랙 스트라이프 재킷을 코디하여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주었으며, 블랙 니트 소재의 넥타이와 재킷 포켓의 안경을 포인트로 주어 모던하면서도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시크함을 살렸다. 베이지 치노 팬츠에 스카이 블루 컬러의 스트라이프 셔츠와 네이비 투버튼 재킷으로 편안하면서도 댄디하게 연출했으며, 배색 컬러의 행커치프로 포인트를 주어 세련된 꽃중년의 느낌을 선보였다.
# 일꼬르소 코디
오렌지 컬러의 크롭 팬츠와 가벼운 느낌의 네이비 재킷을 코디하여 화사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젊은 꽃중년 코디를 연출했다. 이너에는 연청 셔츠와 베이지 멜란지 니트를 레이어드하여 디테일한 센스를 더했으며, 화이트 스니커즈로 경쾌하고 돋보이는 꽃중년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 헤지스 여성 데님 팬츠
네추럴한 워싱이 돋보이는 블루 빈티지 스키니 진으로, 배색의 세련된 스티치가 포인트인 제품이다. 적당한 밑위 길이에 신축성이 좋아 편안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으며 짙은 블루 컬러감으로 날씬해 보이는 효과도 줄 수 있다. 헤지스 데님 팬츠의 가격은 179,000원.
2008년 이후 부동산 침체로 한동안 시들했던 고급 아파트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분양시장의 회복과 함께 삶에 만족도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지면서 주거상품에도 고급화, 차별화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주택형으로 통하는 테라스하우스와 펜트하우스 열풍이 거세다.
1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분양한 현대산업개발 ‘인왕산2차 아이파크’의 테라스 평면인 84I㎡는 최고 9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 지난 4월 분양한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펜트하우스 청약경쟁률은 7.25대 1에 달했다.
그 동안 수요자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높은 분양가의 중대형 아파트 청약 성적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3.3㎡당 평균 분양가격이 2800만원대인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용산 푸르지오 써밋’과 3800만원대의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등은 높은 분양가에도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줄곧 하락세를 보여왔던 대형 아파트 가격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용 135m² 이상 대형 아파트 가격은 전년 말 대비 0.07% 상승했다.
고급 아파트의 입주율도 높아지고 있다. 분양 당시 지역내 최고급 아파트를 내세워 완판에 성공한 '대전 노은 한화 꿈에그린'은 다양한 커뮤니티시설과 자연친화적인 환경, 특화된 교육 시스템이 주목받으며 입주 3달만에 93%의 입주율을 기록했다. 1,2단지에 각각 들어선 커뮤니티시설에는 골프연습장, 피트니스센터와 3면 배드민턴 코트, 북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등이 조성돼 있다. 단지내 놀이터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인 iF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명문 학군과 학원 밀집지역이 형성된 노은지구의 특색에 맞춰 단지에는 대치동 학원 시스템의 '대치 에듀센터'가 운영중이다.
최근 개발호재로 주목받고 있는 영종하늘도시에서 중대형 고급 아파트로 구성된 ‘영종하늘도시 한라비발디’도 최근 한달여 기간동안 15%의 물량이 팔렸다. 지하 3층, 지상 26~36층 1365가구 규모로 전용면적 101~204㎡의 초고층 아파트로 조성됐다. 단지 내 조경면적이 3만7184㎡로 축구장 5개 크기로 옥상조경, 잔디광장과 수경시설, 비발디플라자, 원형수경광장 등이 있다. 중층에 필로티를 설계해 입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신규 분양도 잇따른다. 신안은 오는 7월 위례신도시 A3-6b블록에 ‘신안인스빌 아스트로’ 를 분양한다. 전용면적 96~101㎡의 총 964가구가 분양된다. 여성전용 커뮤니티공간인 퀸즈아틀리에와 휘트니스센터, 실내골프연습장, 사우나, GX룸, 키즈룸 등이 조성된다.
호반건설은 6월, 대구 테크노폴리스 최초로 중대형 아파트로 구성된 ‘호반베르디움 더 클래스’를 분양할 예정이다. 지하 1층 지상 10~20층, 13개동 전용면적 98~111㎡의 총 887가구 규모다. 단지내 수목과 수경시설인 달빛연못 가든과 바닥분수인 커뮤니티 가든이 조성된다.
신흥부촌으로 떠오른 부산 해운대구에서는 CSCEC이 7월 ‘엘시티(LCT)’ 분양할 예정이다. 단지 내 바다를 바라보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워터파크와 피트니스 센터, 헬스케어 시설이 들어선다. 엘시티는 101층 랜드마크타워 1개 동과 지상 7∼85층, 총 882가구 규모의 주거타워 2개 동으로 구성된다.
대림산업은 서울 마포구 용강동 91-1번지 일대의 용강3구역을 재개발한 ‘e편한세상 마포3차’ 일부 가구를 선착순 특별분양 중이다.
현재 계약 시 기존과 다르게 중도금 무이자 지원과 발코니 무상 확장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아파트는 지하 2층, 지상 11~21층 9개동, 전용면적 59㎡·84㎡·123㎡ 총 547가구로 구성됐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역까지 도보로 약 3분 거리인 초역세권 아파트로 한강시민공원의 프리미엄까지 누릴 수 있는 신흥 주거 중심지로 평가받고 있다.
마포구 용강동 일대는 e편한세상 마포3차와 인근에 위치한 용강2구역 재개발 사업이 함께 진행 중이다. 기존 용강동에 입주 단지를 포함해 앞으로 총 4600여 가구의 대규모 신흥 주거 중심지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특히 e편한세상 마포3차가 입주를 완료할 경우 기존에 마포구 용강동에 공급된 1차 123가구와 2차 141가구를 포함해 총 807가구로 구성된 e편한세상 브랜드 타운이 형성될 전망이다.
한강시민공원이 도보로 7분 이내에 닿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e편한세상 마포3차에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독일의 ‘레드닷 어워드 디자인 상’을 수상한 대림산업의 ‘Stylelec 디자인’이 적용된다.
교육환경 및 생활편의 시설도 풍부하다. 마포구 일대에서 선호도가 높은 염리초등학교가 단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 내 선호도가 높은 숭문중·고교, 광성중·고교 등 주요 학군이 1㎞ 이내에 있다. 문의 1899-3120
직장에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보다. 하지만 대부분 막연하게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좌절하기 십상이다. 이들의 문제는 은퇴를 앞두고 그 이후의 삶을 위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수도권의 55세 이상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는 은퇴 전까지 노후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은퇴 준비를 했더라도 40대 이전에 준비한 경우는 5%에 불과했고, 그나마 50대에 은퇴준비를 시작한 경우도 16%에 그쳤다. 응답자의 61%는 은퇴 준비를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은퇴에 대처하지 못한 이들의 경우 인근에 위치한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부서 및 센터를 찾으면 가장 손쉽게 재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에 대비해 재취업 프로그램 등을 준비·시행해 왔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은평구 녹번동에 베이비붐 세대의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한 ‘서울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개관했다. 지원센터는 경제활동을 희망하는 은퇴 세대들에게 재취업·창업 등을 지원하고 사회공헌을 원할 경우 재능기부를 할 수 있도록 연령별, 소득·지식 수준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센터는 △인생설계 △사회공헌·재능나눔 △창업 △재취업 등 4개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또 서울시는 ‘종로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서 55세 이상 서울시 거주자 및 이들을 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구직·구인 알선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구인처에서도 근무조건과 함께 인력을 요청하면 이와 매칭을 하고 있다.
아울러 각각 구청에서 다양한 취업 프로그램을 구성해 추진하고 있다. 서초구청은 지난 2일 베이비부머를 위한 은퇴 후 전직교육 특강을 진행했다. ‘서초구 베이비부머는 RESTART↗ 한다’ 주제의 특강은 취업비법, 자기소개서 작성법, 취업 지원기관 사업설명 및 상담 등 3부로 구성됐다.
서초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이 밖에 금융전문가 양성과정이라는 취업프로그램이 지난 4월부터 국비지원사업으로 진행 중”이라며 “또 ‘중장년층 전직스쿨’ 프로그램을 오는 9월 3일부터 11일까지 시행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중장년층 전직스쿨은 노사발전재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만 40세 이상을 대상으로 취업교육을 하고 컨설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 밖에 반포도서관에서 ‘현장속취업정보은행’을 통해 취업상담를 하고 있다”며 “둘째·넷째 목요일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다. 둘째 주는 노사발전재단에서 와서 상담, 컨설팅 등 중장년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천구청도 지난달 26일 지역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인 ‘Digital Contents Making’(웹개발자 및 웹디자인) 전문가 과정 수료식을 가졌다. 해당 교육 프로그램은 포토샵, 일러스트, 홈페이지 제작 등 쇼핑몰 창업에 필요한 내용으로 구성됐으며, 교육인원의 절반은 베이비붐 세대로 알려졌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사업은 베이비붐 세대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며 “오는 8월 5일부터 2기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며, 7월부터 접수한다. 교육생 중 반절이 베이비붐 세대”라고 설명했다.
동대문구청은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구청은 베이비부머 및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자전거 정비 기술’ 교육을 사회적기업인 ‘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에 위탁해 시행 중이다. 상반기 교육은 24명을 대상으로 상·하반기로 나눠서 총 410시간 동안 시행했으며, 19일 완료 예정으로 현재 하반기 교육생을 모집 중이다.
아울러 50여명의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인생설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은 6회에 걸쳐 시행되며 은퇴 후 사회공헌 활동이나 제2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의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전문적 시행기관을 찾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는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직업전환과 은퇴 후 재취업 희망자를 대상으로 ‘베이비부머를 위한 재취업 프로그램’ 2기를 운영했다.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같은 프로그램 3기 지원자를 15명 모집할 예정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베이비붐 세대의 재취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맞춤형 구직 스킬을 교육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교육기간은 다음달 19일부터 23일까지다.
파주시는 지난 2기 교육 종료 후 수료자를 대상으로 파주시청 일자리센터 전문상담사가 취업지원 개인상담을 통해 원하는 기업과의 알선을 비롯한 동행면접 등 적극적인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했다. 교육 신청자격은 접수일 기준 주소지가 파주시이며 1954년 1월 1일생부터 1962년 12월 31일 사이에 출생한 시민이다.
경상남도 역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후 노후 설계를 돕기 위해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경남 베이비부머 은퇴설계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아카데미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위한 노후설계, 재취업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창원권, 진주권, 김해·양산권 등 3개 권역에서 개최되는 아카데미는 은퇴 후 생애설계 전략, 재취업 전략, 자산·변화 관리 등을 주제로 한 강연과 전문 컨설턴트의 개인상담으로 구성됐다. 부대행사로는 무료 건강검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