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근육의 양이 줄어든다고 한다. 근육의 양은 청장년 때 정점을 찍었다가 일 년에 1%씩 줄어 이론적으로 80세가 되면 근육이 제로가 되어 모두 없어진다는 것이다. 원래 남성보다 근육의 양이 적은 여성들의 경우는 그나마 근육이 남성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더 근육 운동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도 체중은 줄지 않는 것은 근육 대신 체지방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살을 대부분 근육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근육의 필요성은 사망률 감소 등 각종 질환의 예방과 삶의 질 향상 등 많다. 단순히 날씬해 보이거나 근육질을 자랑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건강에 필수라는 점이 중요하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헬스클럽에 당장 등록하고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지루해서 여간한 결심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 헬스클럽에 등록만 해놓고 안 나오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으나 작심삼일에 그치기 때문이다. 운동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인체 근육의 70%는 하체에 몰려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허벅지 근육이 가장 크고 효과도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체 운동을 많이 하면 된다. 하체 운동 중 가장 무난한 것이 걷기 운동이다.
걷기 운동은 주 2회 운동이 바람직하다. 보통 3시간 정도 걸어야 효과가 있다. 땀이 살짝 날 정도로 해야 그나마 근육 운동 뿐 아니라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다리 근육은 걷기만 해도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댄스 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하체 근육이 좋지만 산에 가보면 오르막에서 고전한다.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산에 갔을 때 잘 걸을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오르막 내리막에 약하다. 이것은 운동마다 쓰이는 근육이 다르기 때문이다. 댄스나 마라톤은 평지에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있는 등산에서는 고전하는 것이다.
근육은 적근(赤筋)과 백근(白筋)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있다. 적근은 일상생활 할 때 주로 사용되며, 백근은 달리기를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주로 사용된다. 우리가 보다 단련해야할 근육이 백근인 것이다.
필자는 댄스스포츠 스탠더드 5종목 선수로 하체 근육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마라톤을 처음 해본 결과 무릎 바로 위 다리 근육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마라톤을 뛰어보고는 사흘 간 걸음을 제대로 못 걸을 정도로 고생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계단 오르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등산도 등산화에 따라 근육의 쓰임새가 달랐다. 보통 걷기 수준은 목이 짧은 등산화로 무난하다. 그러나 경사도가 꽤 있는 산을 오리고 내리기에는 긴 발목의 등산화가 더 좋았다. 짧은 등산화는 발목을 주로 사용하여 종아리는 단단해지지만, 긴 발목 등산화는 무릎을 사용하다 보면 허벅지 근육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도 여러 가지 신발을 신어 본다. 요즘은 가벼운 신발을 선호하는 추세이지만, 가벼운 신발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발 마다 높이도 다르고 무게도 다른 것을 신어 보면 피로도가 다르다. 피로도는 곧 운동 효과로 보면 된다.
少小离家老大回,乡音无改鬓毛衰。(어릴 때 고향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고향의 내음은 변함없는 데 귀밑머리 희어졌구나.)
儿童相见不相识,笑问客从何处来。(어린아이를 만나니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면서 ‘어느 곳에서 오신 손님이냐’고 묻고 있네.)
이 시는 성당(盛唐) 전기의 시인이자 관리인 하지장(贺知章)(659~744)이 나이 86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50여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느낀 감회를 읊은 시(詩)다.
필자가 평소 아끼던 시(詩) 한 구절을 친구를 통하여 받게 되었다.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붓글씨 서체(書體)였다. 친구가 이민으로 고향을 떠난 지는 꽤 오래된다. 30년이 다 되는 것 같다. 한참 풋풋한 30대 젊은 시기에 만나 환갑이 넘었으니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필자가 친구를 기억하는 것은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우리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그는 좀 늦깎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그 결혼식 사회를 봐달라고 필자에게 부탁한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많을 텐데 굳이 필자에게 부탁을 해와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오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교통편이 불편해 경상도까지는 거의 한나절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꽤 큰 결혼식장에는 손님들로 가득했고 주례는 대학 총장님이 직접 맡아 주셨다. 친구의 인맥과 대학에서의 활동상을 한눈에 보게 되었다. 먼 길이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보니 그때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새까만 머리에 야무진 눈매, 고운 피부에 젊음이 넘쳐나는 당당한 청년은 없었다. 이제 외국 사람이 다 되었겠구나 싶었는데 그는 아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그곳에서 서예인 동호회를 만들어 붓글씨 연습도 하고 마라톤도 하면서 취미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붓글씨는 우리 생활에 밀접한 부분이었다. 필자도 어렸을 적 붓글씨 학원도 다니고 한문도 꽤 배웠다. 거리에는 붓글씨 학원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었다. 그런데 고국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달래주는 좋은 연결 매체가 될 듯하다.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필자도 잠시 고향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고향이지만 자주는 가보지 못하고 명절 때나 한 번씩 가보곤 한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그 시(詩)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향에 들어서면 어릴 때 내 모습이 골목마다 들판마다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잘 싸우고 화해하며 뛰놀던 사내들이며 계집아이들이 반가이 맞이하며 살아나올 것 같다. 이렇듯 반갑게 맞이해줄 것만 같은 고향인데 고향은 필자에게 늘 쓸쓸함만 안겨 주었었다.
언제나 필자는 그 마음으로 거기에 있었지만 고향 어린이들 모습은 친구들이 아니라 낯선 얼굴들이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누굴 찾으세요?’ 그들은 필자에게 항상 묻고 있었다. 기억을 잊어버린 유령들처럼 보였다. 아마 시인 하지장도 이 시를 쓰면서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시인도 뒤늦게 찾은 고향에서 그 쓸쓸함이 묻어난다. 친구의 검은 머리가 서리가 내린 것처럼 희끗희끗하게 변한 모습을 보니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
반겨줄 사람 없어도 고향은 늘 우리 마음속 그리움의 샘이다.
대중가요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다. 같은 4분의 4박자에서 댄스 곡이든 트로트 곡이든 발라드 곡이든 템포가 좀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끔 4분의 3박자의 왈츠 풍도 있기는 하다.
댄스를 해보면 초보자들은 3박자의 왈츠는 상당히 어려워한다. 좀 빠른 템포의 왈츠인 비에니즈 왈츠도 마찬가지이다. 3박자에 발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발을 모으고 나면 그 다음 스텝이 어느 발이 나가야 할지 헤맨다. 물론 체중을 3박자로 놓는 연습이 숙달되고 나면 잘 한다. 3박자로 발을 모으면서 체중 이동을 하는 것이 요령이다.
댄스도 대부분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자이브, 룸바, 차차차, 퀵스텝, 폭스트로트가 4분의 4박자이다. 삼바와 파소도블레, 탱고가 4분의 2박자이지만, 왈츠처럼 홀수 박자가 아니고 짝수 박자이다.
왜 노래에 4분의 4박자가 많은지 명확한 이론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람은 두발로 걷고 짝수 박자로 걸을 때 편안하다. 생각해 볼 것도 없는 것이다. 걸을 때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오른발 왼발이 저절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홀수 박자라면 머릿속으로 염두에 두지 않으면 스텝이 꼬인다.
군대시절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을 하거나 구보를 할 때 졸리거나 몸은 지쳐서 기진맥진해도 다리는 왼발 오른발이 교대로 자동적으로 나가는 것을 체험했을 것이다. 짝수 박자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해보면 왼발 오른발 교대로 짝수로 발이 나가고 짝수로 호흡을 해야 한다. 홀수로 호흡을 한다면 굉장히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하는 월드컵 응원구호는 ‘대~한민국’ 4박자에 박수 다섯 번‘짝짝~짝~짝짝’하며 엇박자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이 때문에 4박자에 익숙하던 서양 선수들이 홀수 엇박자가 나오는 이 구호에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느꼈다는 보도가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발라드 곡을 좋아한다. 대부분 느린 4분의 4박자이다. 그런데 박자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이은미의 ‘녹턴’이나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들어 보면 가사가 잔잔하게 많고 계속 이어지는 편인데 피아노 소리가 오히려 박자를 헷갈리게 한다. 발라드 곡은 한 마디 안에 첫 박자와 세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주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박자 맞추는 요령이다. 소리로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부르는 사람이 1, 3 박자에서 조금 더 힘을 주면 박자를 타기 좋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세 명이 여행을 기면 한 사람은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셋 중 둘은 가까운데 그러다 보면 한 사람은 처지는 것이다. 그러나 짝수로 여행을 가면 그런대로 둘 씩 보조를 맞춘다. 단 둘이 갈 때는 물론 잘 맞는다.
요즘,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시니어들이다 보니 특유의 냄새를 느낄 때가 많다. 가장 흔한 것이 구취이다. 노인들은 성장기보다 충치가 덜 생긴다고 한다. 충치가 있으면 치과에서 가만 놔두지 않으므로 충치 때문에 생기는 냄새는 아니다. 혹시 잇몸이 약해져서 생기는 치주질환일 수는 있다. 나이가 들면 침샘 분비가 적어져 구취가 되는 경우도 있다.
구강 내의 특정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구취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다고 한다. 육체적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생리적 변화 등으로 구취가 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심해진다는 것이다.
노인이 되면 의학적으로는 ‘노넨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쌓여서 냄새가 나게 된다고 한다. 자동차로 얘기하면 불완전 연소로 인한 검은 매연 같은 현상이다.
그밖에 노인 냄새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자주 씻지 않거나 입고 있는 옷도 세탁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리적으로도 요실금이나 변실금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은 체력이 떨어지면서 땀나는 힘든 일은 안 하려 한다.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노폐물 배출이 안 된다. 땀을 안 흘렸으니 샤워를 안 해도 되고 옷도 매일 세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선호하는 무채색의 옷들은 때가 안 보이니 그런 게으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냄새는 배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아직도 정장을 선호한다. 그런데 그 양복이라는 것이 새로 산 것이 아니고 평생을 입던 오래된 옷이다. 양복은 세탁비도 비싸니 자주 세탁하기 어렵다. 거기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노인들은 수입이 없으므로 집에서 눈치보고 사는 경우가 많다. 매일 빨래 감을 쏟아내기가 미안한 것이다. 어지간하면 그냥 또 입는다. 그래서 자주 보는 노인들은 매번 같은 옷을 입고 나오거나 몇 벌 안 되는 한정된 옷을 입고 나온다.
노인들의 침구에서도 냄새가 밴다는 것이다. 노인 방에 들어가면 나는 특유의 냄새도 체취와 침구에서 나는 냄새가 섞인 겻이다. 요즘처럼 공동 주택에 사는 경우는 구조상 햇빛에 침구를 말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냄새를 못 느낀다. 같이 사는 배우자도 으레 그 사람의 고유한 체취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따로 지적을 안 하는 것이다. 어쩌다 온 순진한 손주들이 ‘할아버지 냄새’난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운동을 일상화 하고 있다. 그리고 땀을 흘렸으니 저녁 샤워는 물론 아침 샤워를 중시한다. 밤새 밴 냄새도 씻어버리고 향긋한 비누 냄새를 좋아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격한 운동을 한다. 마라톤이나 댄스 연습을 격렬하게 하면 땀이 비 오듯 한다. 몸속의 노폐물들이 한꺼번에 다 나가는 듯한 쾌감이 있다.
여에스더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TV에도 많이 나오는 유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라서 까다롭고 위엄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전혀 위압감이 없고 소탈하고 발랄한 소녀 같다. 게다가 인품도 훌륭해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참 괜찮은 여성이다.
지금도 그런데 서울대 의대 시절에는 얼마나 인기가 많았을까? 그런 그녀를 목소리로 사로잡은 이가 바로 홍혜걸이다. 여에스더는 당시 응급실 주치의였고 두 살 연하 홍혜걸은 인턴이었다. 당시에는 선생님으로 깍듯하게 불렀지만 이제는 ‘임마’라고 부른다. 당시 응급실 근무 교대하기 전에 홍혜걸이 전화로 여에스더에게 보고할 때 저음의 차분하고 감성적인 목소리는 그만 여에스더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 후 홍혜걸이 여에스더가 자기에게 호감을 가진 것을 눈치 채고 하늘 같은 의대 선배에게 사귀자고 도발했다. 마침 여에스더는 7년간 사귀던 남자와 막 헤어졌던 터라 홍혜걸이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홍혜걸이 여에스더를 처음 유혹할 때의 말이 걸작이다. 세계 금연의 날 세미나에서였다. 여에스더는 “결혼할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면 어떻게 하시겠나?”라고 물었고, 이에 홍혜걸은 즉흥적으로 “어린 사람이랑 결혼하면 되죠!”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녀보다 두 살 연하인 본인이 남편감이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 머리 좋은 여에스더는 곧바로 알아듣고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사귀게 된 지 3주 만에 병원 뒤뜰에서 갑자기 홍혜걸이 여에스더의 손을 와락 움켜잡더니 “우리 결혼해요”라고 프러포즈를 했다. 그때 첫 포옹을 했는데 홍혜걸의 쿵쾅쿵쾅하는 심장 소리가 하도 커서 변태인 줄 알고 살짝 고민도 했다고 고백한다.
‘편지’와 ‘살색 팬티’가 결혼기념일 선물
가정의학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의한 생리적 반응에 대해서는 무지한 소녀였다. 올해로 결혼 24년 차라서 “내년이 은혼식인데 뭔가 큰 선물이 있지 않겠냐?”라고 물었더니 “이제껏 한 번도 이벤트를 해준 적이 없다”며 입이 튀어나온다.
며칠 전에 결혼기념일이어서 남편에게 “뭐 없냐?”고 슬쩍 물었더니 “매일매일 잘해주는데, 뭐가 필요해?”라며 뻔뻔스럽게 반문하더라는 것. 그녀는 가끔 돈 안 들인 선물은 받아왔다고 웃는다. 다름 아닌 편지. 홍혜걸이 뭔가 잘못했을 때 편지로 쓰는 “다시는 안 그럴게~ 술도 안 먹고…” 등등의 다짐이다.
결혼하고 첫 번째 생일 선물로 촌스런 살색 팬티와 ‘효도 신발’ 같은 것을 받았다. 그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돌이켜보니 남편의 그런 성격이 귀엽다. 홍혜걸은 평소에 쓰다듬고 주무르고 스킨십하는 걸 좋아한다. 여에스더는 당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면 등을 돌리고 자는 게 편해서 줄곧 그렇게 지내왔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갱년기라서 아예 트윈베드로 바꾸고 사이가 좋을 때는 침대를 가까이 붙이고 뭔가 틀어졌을 때는 멀리 떨어뜨려놓는단다. 남편도 갱년기라서 서로 고집도 피우고 투정도 부린다. 그래서 작년과 올해 초까지 힘들었는데 지금은 둘 다 의사이기에 생리적 현상을 서로 잘 이해하고 좋아졌다.
이제는 부부지간에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후라서 그럴까? 술자리 모임에서도 에스더와 홍혜걸은 서로 험담을 늘어놓으면서 재미있게 논다. 잘 삐지지도 않는다. 홍혜걸의 별명은 ‘홍수르(만수르에 빗댄 말)’란다. 남편이 경제관념이 없고 허술해서 그녀는 불만이다. “홍혜걸은 허당”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허술하냐?”고 묻자 “한번은 저 몰래 강의료를 모아두려고 은행에 새 구좌를 개설했다가 저한테 딱 걸렸잖아요. 인터넷뱅킹을 안 하니까 로그인하면 계좌 목록이 쫙 뜨는 걸 몰랐던 거예요”라고 폭로하며 깔깔 웃는다.
바가지를 그렇게 긁어도 고쳐지지 않아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이해한다는 것. 바둑의 단수를 올린다든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남편의 열정이 지금은 오히려 보기 좋을 정도로 너그러워졌다. 결혼 24년 차의 여유일 수도 있겠지만 에스더의 사업이 번창해서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같은 여유는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홍혜걸은 허당 ‘홍수르’
여에스더는 최근 한 방송에 나와 “예전에는 홍혜걸씨가 왜 저렇게 못생긴 여자랑 결혼했냐는 말이 많았다”고 운을 뗀 뒤, 그런데 요즘은 “아이유랑 닮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수지랑 닮았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며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케케묵어 익을 대로 익은 남편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도 과감하게 털어놓는다. “2년 만에 뉴욕으로 출장을 가게 됐을 때 원래는 밤 9시 비행기였는데 폭풍우로 밤 12시로 시간이 바뀌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어떻게 하니, 폭풍우가 와서 위험하겠다. 조심해라’ 이렇게 말을 해야 하는데 그날은 뭔가 말을 제대로 못하더라! 남편이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집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돌아와 우연히 영수증을 발견했는데 꽤 비싼 음식 값이더라. 그것도 추가 와인 두 잔에 코스요리 2인분. 이게 뭔가. 청담동에서 내가 없을 때 누구하고 먹었겠나?” 그녀는 남편을 다그치며 따졌다고 한다. 홍혜걸이 “회사 일로 알게 된 후배”라고 하자, 여에스더는 “아내가 외국출장가고 없을 때, 왜 하필이면 그 밤에 그것도 청담동에서 분위기를 내면서 와인까지 마시냐?”고 따져 물었다.
한량 이봉규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것도 같지만 굳이 이 대목에서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기로 했다. 홍혜걸도 한 방송에서 부인에 대한 불만인지 자랑인지 알쏭달쏭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를 잘 이용하는 여우 같은 생각이 든다”고 포문을 열었지만 결국 “박사로 만들어준 아내에게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든다”며 부인 자랑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신혼 시절 아내가 나에게 진지하게 박사 학위를 따라고 했다. 석사부터 박사까지 하려면 10년 정도가 걸리는데, 그 당시에는 ‘새삼스럽게 무슨 공부를 또 하나’ 했지만 지금은 아내에게 너무 고맙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MBN 에서 함익병 원장이 우스갯소리로 집사람 뜯어먹고 산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벌어온 돈으로 아내가 병원을 개업하고 사업도 시작한 거다”라며 정색했다.
아마 2009년 설립한 회사에서 만든 이른바 ‘여에스더 유산균’이 대히트를 치고 각종 홈쇼핑에서 판매실적 1위를 달성하는 등 사업가로서 대성공한 아내에 대한 위축감으로부터 나온 자기방어의 발현일 수도 있겠지만, 아내를 존경하기에 자랑삼아 자기비하를 고급지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 좋은 사람의 고급 유머. 이를 반증하듯, 남편 홍혜걸이 아내 여에스더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남자 중에 당신이 베스트다”라는 평가다. 여에스더가 결혼 전 7년 사귄 남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보다 빨리 두 배 이상 같이 살고 싶다”며 두 사람이 처음 맹세했었는데 어느새 세 배 이상 살고 있어서 행복에 겨운 부부다. 짓궂은 질문으로 반전을 노려봤다. “이혼할 생각 해봤나?” 에스더는 망설임 없이 “멋진 남자를 보면 눈이 돌아가지만, 남편을 사랑해서 이혼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홍혜걸과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부끄러움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 24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에스더의 가슴은 여전히 소녀같이 뛴다. 처음 포옹할 때 홍혜걸 심장의 쿵쾅거림이 100미터 달리기 후의 느낌이라면 지금 여에스더의 심장소리는 마라톤을 완주한 후 내뿜는 안도감같이 들린다. 의사와의 인터뷰인 만큼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한 팁을 주문했다. “하버드대학의 음식 피라미드에 따르면, 건강을 위해 매일 잡곡밥, 올리브유로 만든 샐러드, 탁구공 두세 개 정도 크기의 껍질 벗긴 닭고기, 과일과 채소 다섯 접시 등을 먹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먹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방법을 알려주는데 바로 자신이 일생을 걸고 매진하고 있는 여에스더 종합비타민과 유산균이라는 것. 이 대목에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눈이 빛난다. 천생 연구하는 의사 티는 어쩔 수가 없나보다.
월요일엔 아침부터 분주하다. 어딜 가냐는 아들의 물음에 브런치 하러 간다니 피식 웃는다. ‘그 나이에 브런치가 뭐야’ 하는 눈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방을 둘러매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내가 가는 모임은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의 오프라인 모임인 ‘월요브런치클럽’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지하철 역세권 카페에 모여서 블로그 포스팅을 중심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온라인에서만 교류하던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교제도 하고 브런치를 함께 먹으니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얼마 전에 팝핀현준 어머니와 소개팅을 해 방송을 탄 강신영 씨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방송 출연 배경과 방송 후 뒷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쏟아냈다. 말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신나는 경험이었다. 루마니아로 우리 춤 공연을 다녀온 박종남 씨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박종남 씨는 취미로 배운 춤 솜씨로 해외공연까지 다니게 된 이야기와 루마니아에서 경험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취미를 가꾸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서로의 관심사나 활동분야가 다양하니 각자에게서 많은 정보가 나왔다. 앞으로 있을 마라톤 대회나 사진작가로 등단하는 방법 등 서로가 가진 정보를 나누었다. 인천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했던 온새미 씨가 인천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놨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해박하고 재미있어 그 자리에서 인천투어를 계획하기도 했다. 브런치 모임이 아니면 만나보기 힘든 일들이었다.
‘월요브런치클럽’은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마을 커뮤니티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해 광화문역, 공덕역, 사당역, 군자역, 잠실새내역, 영등포역, 불광역, 노원역, 서초역 등에서 오프라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지만 블로그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환영 받는다. 친절한 1대1 강습을 통해 처음부터 하나씩 블로그 운영하는 방법을 배울 수가 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어딘가 갈 곳이 있고, 언제 만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웃으며 유용한 정보를 주고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이가 들어 외롭지 않으려면 함께할 이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월요브런치클럽은 참 좋은 이웃이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지금부터 의미를 만들어가는 삶, 월요브런치모임을 통해 소소하게 이뤄나가고 있다.
영화 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하얀 깃털이 인도하는 대로 평생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강주은도 최민수라는 깃털에 이끌려 전혀 예기치 못한 라이프가 되어버렸다. 처음 만난 강주은은 생각보다 날씬하고 예뻤다. TV에서의 모습은 미스코리아 출신에 상남자 최민수를 주눅 들게 하는 아줌마의 이미지도 있고 해서 크고 강해 보였는데 막상 마주한 그녀의 이미지는 부드럽고 우아했다.
강주은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집에서 나설 때 내 아내가 꽃단장을 하고 따라나섰다. 평소 TV를 보면서 강주은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아내가 나만 보낼 리 없었다. 강주은을 실제로 본 내 아내도 “생각보다 굉장히 말랐네! 내가 만약 TV에 나온다면 뚱뚱이로 비치겠어!”라면서 강주은의 몸매와 우아한 자태에 찬사를 보냈다. 참고로 강주은과 1970년 개띠 동갑인 내 아내도 아직 훌륭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만 강주은이 자기보다 통통하리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사실 강주은과 내 아내의 이미지는 상당히 닮았다.
아내와 인사를 나눈 강주은도 “이봉규씨 와이프와 내가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다”고 특유의 과도한 제스처를 했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MBN 프로그램 를 녹화하는 스튜디오에서 방송 전에 이루어졌는데 마침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함익병과 홍혜걸이 녹화를 위해 대기실에 있다가 내가 강주은과 인터뷰하는 것을 알고 쳐들어왔다.
그들 부부와 한 달에 한 번씩 댄스파티를 하고 있어서 강주은-최민수 부부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초대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동안 여러 번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갔지만 어색했다고 털어놓는다. 한국 문화에 어색했던 본인 탓도 있지만 독특한 성격의 연예인 남편과 부부 동반 파티는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부부에 관한 틈이 보이기 시작하기에 파고들었다. 결혼생활에 대한 평점을 매겨달라고 졸랐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레이드(평점)를 매길 수가 없다는 것.
불편한 결혼생활 덕분에 성장했다
“이 남자가 내 남편이라는 것이 상당한 영광이다. 남편을 통해서 내가 성장했다.” 즉 지금 방송을 하는 것, 한국말을 잘하게 된 것, 공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등 모두 최민수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불편한 결혼생활 덕분에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고 최민수가 남편이 아니면 오늘의 강주은의 성공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거라는 자기 진단이다.
터프하기로 소문난 최민수씨에게 얻어맞을 각오로 평가한다면? 마치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로 소문났기에 남편이 대철학자가 되었다는 해석이 떠올랐다. 부부 관계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뭔가 있다. 한량 이봉규는 최민수에 대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강주은의 눈과 심장으로 보면 최민수는 100점을 넘어서서 평점을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 최민수도 부인의 은공을 높이 평가한다.
언젠가 철학적인 고백을 강주은에게 했다고 한다. “23년을 살고 난 오늘의 최민수가 23년 전으로 돌아가 주은이를 만났어야 한다.” 이 말을 듣자마자 강주은은 “만약 그랬다면 오늘의 주은이는 아닐 것, 평범한 아내가 되었을 거다.” 철학적으로 치고받는 이 부부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삼라만상에는 항상 이면이 있기에 반전을 노리면서 파고들었다. “이혼 생각을 해본 적 있나?” “Of course!”라는 강주은의 대답이 1초도 안 쉬고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한술 더 뜬다. “결혼식장에서부터 이 결혼이 맞나? 잠깐만요! 다시 생각해봅시다!”라고 설득하면서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었다는 것. 심지어 결혼 후 한동안 캐나다행 비행기표를 지니고 다닐 정도로 매일매일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는 충격 고백을 쏟아 놓는다.
우리 부부의 사랑은 ‘다른 차원의 사랑’
한 방송에서 “최민수가 이상형이었냐?”는 질문에 “지금은 너무 감사하게 제 이상형의 이상, 그 이상이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는 상상도 못했다. 이런 인간이 세상에 있나? 싶었다. 상상 못했던 사람이다”라고 말해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다. 반전도 이 정도면 국가대표급이다. 그녀의 순수한 사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 만큼 사랑하지 않는 부부가 이혼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오히려 축하해주고 싶다고 덧붙인다. 이 같은 철학은 부부가 사랑하지 않으면 헤어지라고 평소 주장해서 ‘이혼 예찬론자’ 소리를 듣는 한량 이봉규와 맥을 같이한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사는 부부는 위선이다. 심지어 다른 파트너와 성적 관계를 지속하면서 부부 사이는 억지로 형식적으로 이어가는 것은 대단한 반칙이라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그런 관점에서 강주은은 지금도 최민수를 진정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 애잔함도 있는 듯. 항상 버림받아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남편에게서 늘 느끼고 있기에 그 마음이 더 끔찍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마 이 같은 감정은 동정심을 뛰어넘는 일종의 모성애 같은 것이라고 어렴풋이 판단된다.
그래도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서 또 물고 늘어졌다. “앞으로도 이혼하지 않고 늙어갈까?”라는 나의 도발에 그녀는 “이제 이 남자를 너무 완벽하게 잘 알아서 어떤 환경에도 잘 살 것 같다. 남편을 죽을 때까지 지켜주고 싶다”고 마음을 모아 대답한다. 자신들의 사랑은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다른 차원의 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나를 잡아줄 남자는 최민수밖에 없고 마찬가지로 남편을 잡아줄 여자도 강주은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We earned that!”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강주은의 큰 입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영화 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하얀 깃털이 인도하는 대로 평생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강주은도 최민수라는 깃털에 이끌려 전혀 예기치 못한 라이프가 되어버렸다는 것. 남편 따라 가다 보니 대통령도 만났고 평소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인생이 펼쳐졌는데, 앞으로도 포레스트 검프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배우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이 영화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톰 행크스의 아름답고 순수한 여정과 강주은의 인생이 너무 닮아 보인다. 그만큼 강주은은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한량의 어른스런 눈빛에 순수한 영혼이 들키기 싫었는지 터프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너무 순수하게만 보이면 왠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사춘기 때 가출한 적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량 이봉규가 듣기에 강주은의 가출사건은 가소로웠다. 사연인즉, 가출하고 몇 시간 차를 몰고 가다가 문득 어떤 시 구절이 떠올랐다는 것.
“Water water everywhere but not a drop to drink(물은 어디에나 있건만 내가 마실 물은 한 모금도 없구나).”
갑자기 그 시의 구절이 떠오르자 불문학을 전공한 어머니에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공중전화로 그 시를 낭송하면서 펑펑 울었다는 것. 오히려 어머니가 담담하게 웃으면서 “빨리 집으로 돌아와라!” 하고 다독였다고 한다.
“너는 이마가 제일 예쁜데 왜 가리니?”
고등학교 때 두 번이나 가출을 감행하는 등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이봉규에게 강주은의 가출담은 귀여울 따름이었다. 그만큼 천진난만한 영혼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다. 이봉규의 심야데이트에서 그동안 많은 여자 스타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들의 남편들 중에서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인물을 몇 명 봐왔지만, 최민수처럼 처복이 많은 남자도 드물 것이다. 관상학적으로 보면 강주은도 복이 많아 보인다.
그녀의 훤하고 톡 튀어나온 이마와 높은 턱의 선은 일품이다. 때문에 결혼 전 별명이 ‘걸어 다니는 이마’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전 자신의 이마가 못마땅해서 가리고 다니기 일쑤였단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너는 이마가 제일 예쁜데 왜 가리니?”라고 충고를 하곤 했다. 그런데 최민수도 연애 시절 부모님과 똑같은 말을 하더라는 것.
그때 처음 이 남자가 부모와 똑같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꼈고, 그게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고 털어놓았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참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 그녀가 요즘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비결도 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화면에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 살에 느꼈던 것을 여전히 그대로 느끼고 싶다”는 강주은의 삶은 성공했다. 그녀가 스타라서가 아니라 본인이 꿈꾸던 대로 여섯 살 어린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간한 책 를 읽으면 그녀의 순수함의 원천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돌아보니 남들과의 경쟁이 삶이었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놓고 학우들과 경쟁했다. 명문학교에 가려고 치르는 입학시험도 경쟁의 확대판이었다. 군대에서 선착순을 시키면 기합을 면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 탈락자 대열에서 빠져야 했다. 취업도 승진도 경쟁이었다. 예쁘고 착하고 스펙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일도 많다. 학교에서 성적을 위한 경쟁은 의미가 약하다. 그 나이 때는 전력투구를 잘 모른다. 경쟁은 전력을 다했을 때 비로소 경쟁의 의미를 안다. 필자는 권투를 배울 때 만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사각의 링에 올라가 둘이 시합을 할 때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전문 선수가 아니면 한 라운드 3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길다. 전력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숨도 쉬어야 하고 체력도 받쳐줘야 하고 기술도 상대보다 나아야 한다. 그러나 맞지 않기 위해 초긴장을 하고 공격하다 보니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양손을 다 쓰다 보면 어느새 숨이 가빠진다. 그러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남과 겨뤄 이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치열하게 치고받고 난 뒤 서로 포옹해주며 경기를 끝내는 것이다.
골프나 당구를 즐기면서도 내기를 하면 초긴장 상태로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과 돈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에 몸이 경직되기 때문에 끝나고 나면 탈진해서 뻗는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로 여겨야 한다. 승부에 너무 연연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기에 지면 돈으로 메우면 된다. 어떤 경우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한다.
마라톤 경기에서 일반인들이 무리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빨리 뛰어야 남보다 나은 기록이 나오겠지만 목표보다는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위권 성적이나 기록보다는 건강이라는 목적 때문에 참가한 것이라면 말이다. 댄스 경기 같은 단체전에서도 다른 선수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선수들이 있다. 경쟁 선수가 엔트리에 있으면 출전을 포기하거나 그 종목을 피해서 다른 종목으로 출전하는 것이다. 댄스가 직업인 프로선수가 아니라면 순위보다는 그냥 즐기면 된다. 댄스 경기에서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의 친분과 교감이다.
사회적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을 이겨야 내 존재가 부각되고 자존심을 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때 져주는 것이 오히려 이긴 것보다 나을 때가 많다. 이긴 사람은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겠지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갖지 않으니 적이 생긴다. 갈등이 생길 때 경쟁심을 풀고 상대를 동정적인 마음으로 대하니 얻는 것이 많다. 나이가 들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더더욱 경쟁을 멀리해야 한다.
친구와 그녀를 만나기로 한 7월 둘째 주 토요일, 새벽녘에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요란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오고 궂은날 설마 거리 캠페인을 나가겠어?” 약속을 취소할 요량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평택에 살고 있는 친구는 “우리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그냥 밥이나 먹고 오자”고 했다. 전에 두어 번 본 적 있는 그녀는 평택 친구와 여고 동창이다.
일산 정발산역에 도착할 즈음 다행히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2번 출구로 빠져나와 일산호수공원으로 가는 길목, 유동인구가 가장 많이 몰리는 문화공원의 한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사단법인 고양시 유기동물 거리입양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희(58) 대표.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정열적인 빨간색의 천막에 새겨진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독특한 내용의 글귀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정희 대표는 주인에게 고의로 버려졌거나 부주의로 잃어버려 가족과 이별한 애완동물들을 돌봐주고, 다시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에 나와 봉사를 하고 있다.
“비가 온다고 쉬면 되나요? 이 아이들을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이어주기 위해 태풍이 오든 폭설이 내리든 언제나 토요일엔 거리로 나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을 때 박 대표가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구수한 청국장찌개를 먹으며 그녀가 말했다.
“원래부터 고기를 안 먹었던 건 아니에요. 딸애가 사춘기일 때 저랑 갈등이 많았어요. 그때 모녀 사이를 풀어준 계기가 된 게 유기견 입양이었답니다. 그 후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을 했고 우울증이 몰려왔죠. 본격적으로 유기견 돌봄 봉사에 뛰어든 건 그 무렵이었어요. 6년째 유기견 봉사를 해오면서 식습관도 자연스레 채식으로 바뀌었죠.”
활달하고 적극인 성격의 박 대표는 처음엔 봉사할 방법을 몰라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다루는 방송국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알선을 받아 동물보호소에서 시작한 봉사활동이란 맨날 똥 치우는 일이었다고. 그 뒤 맘먹고 개털을 깎아주고 예쁘게 다듬어주기 위해 미용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미용 봉사에 푹 빠져 지내던 중, 2011년 8월쯤 80여 마리의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는 일산의 한 보호소로 미용 봉사를 갔다. “갈 데 없어 곧 안락사당할지도 모를 많은 유기견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우선 네 마리를 데리고 와 이태원에서 처음으로 거리입양 캠페인에 나섰죠. 참 신기하게도 그날 모두 입양이 됐어요. 용기를 얻어 용산에서 세 군데 더 확장했다가 지금은 맨 처음 네 마리를 데리고 온 인연을 생각해 아예 일산에다 자리를 잡았답니다.”
유기동물 거리입양은 일반 입양 절차에 비해 살짝 까다로운 편이라고 한다.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병원 검진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정된 동물병원에서 종합접종, 신종플루 예방접종, 외부 기생충, 마이크로칩, 심장사상충 검사,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 비용은 20만 원 정도이고 입양자가 결제를 하고 데려가면 된다.
“요즘 팻팸족(pet+family)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어느덧 반려동물 1천만 시대에 접어들어 관련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에선 인터넷이나 불법 경로를 통해 무분별하게 사고파는 등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어 안타까워요. 돈이 된다 해서 강아지 공장(puppy mill, 상업적 목적으로 강아지를 사육하는 농장)을 버젓이 운영하는 행위를 보면서 안타까웠죠. 그런 곳의 강아지를 사주지 않아야 그런 농장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 곳에서 ‘사지 말고’ 제대로 절차를 밟아 ‘입양하세요’라고 토요일마다 나와 외치는 겁니다.”
박 대표는 이어 ”유기견은 보통 보호소에 입소하면 약 10일 정도 머무른 후 데려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하죠. 그걸 보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동안 우리 ‘고유거(고양시 유기동물 거리입양 캠페인)’에 관심 갖고 도와준 좋은 분들이 많아 후원금도 상당히 모아졌어요. 그 후원금으로 ‘고유거 유기견 쉼터’도 오픈했답니다. 우리 쉼터에는 안락사 기간이 없어서 마음이 뿌듯해요.”
내후년이면 35년여의 국방부 근무를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는 박정희 대표. 어떻게 하면 노후를 더 보람 있고 멋지게 보낼 수 있을까 구상 중이라 했다. 평소 수영과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지고 늘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 박정희 대표의 멋진 노후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기대된다.
“팬티까지 벗어야 합니까?”
20년 전 5월, 여의도 백화점 4층에 있는 헬스클럽 탈의실에서 필자가 윤 사장에게 한 말이다. 당시 필자는 몸무게가 90Kg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필자의 사업 파트너였던 윤 사장이 갑자기 어디 좀 가자고 하더니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 대표님, 몸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운동 좀 하셔야겠네요, 제가 6개월 끊어드릴 테니까 운동 열심히 하세요”
IMF 이후 사회, 경제에 혼란이 왔듯이 필자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거친 광야에 홀로 서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양어깨를 눌렀다. 이런 것들로 인해 필자는 방황의 길로 들어섰다. 불규칙한 생활, 폭음과 폭식 그리고 엄청난 흡연으로 몸이 갈수록 망가져갔다. 허벅지 양쪽이 쓸리면서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었고 낮은 층수를 걸어서 올라가는데도 헉헉거렸다. 이에 보다 못한 윤 사장이 운동을 권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운동이냐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온 것이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하고 뛰어논 것 외에는 운동이라고는 전혀 한 적이 없는 필자에게 운동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처음 헬스장에 온 사람들이 가장 당황하는 것은 시설에 대한 불편함이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 사용법을 몰랐다. 모든 것이 익숙해지기까지는 불편함의 연속이다. 탈의실에 들어갔을 때 팬티까지 벗고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지, 팬티는 입고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필자는 운동 마니아가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러닝머신에서 30분 아니 15분 걷기도 힘들었는데 모 일간지에서 40분을 쉬지 않고 꾸준히 뛰면 몸이 제2의 탄생을 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읽고 목표를 세웠다.
‘나도 4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몸을 만들겠어.’
일단 주별 계획을 세웠다. 1주일은 9분 걷고 1분 뛰고, 다음 주는 8분 걷고 2분 뛰고 하는 식으로 자신과 약속하고 결국에는 1분 걷고 9분을 뛰게 되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4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의 감동과 환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어매이징 스토리였다.
인간은 끝없이 욕심을 내는 동물이라고 한다. 40분을 뛰고 나니 이제 1시간을 뛰고 싶어졌다. 열심히 노력해 그것도 이루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필자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방법을 찾았다.
‘그래,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필자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마라톤대회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극한의 날씨만 빼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고 있었다. 주말이면 온 가족과 함께 여행 겸 대회 참가를 위해 전국을 누볐다. 가족들에게도 필자에게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갈수록 탄력을 받아 하프마라톤까지 뛰었다. 처음 도전했던 조일 마라톤 코스는 예술 그 자체였다. 가을의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의 사연을 갖고 목표를 향해 뛰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이 대표님, 더 이상 몸무게 줄지 않죠? 운동만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식단을 조절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웨이트도 병행해야 합니다.”
트레이너가 그해 12월 필자에게 한 말이다. 이제 몸무게는 70kg 위에서 놀고 있다. 60kg대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7개월 사이에 약 20kg을 감량한 것이다. 솔직히 먹을 것 다 먹고 할 것 다해가면서 말이다. 필자의 욕심은 또 60kg을 꿈꾸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 목표도 다음 해 2월에 이루었다.
“이 회장님 운동가시죠.”
2017년 7월 현재 필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