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를 위한 ‘액티브시니어&수면케어박람회 2017(Active Senior & Sleep Care 2017)’이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력 있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액티브시니어박람회’는 제2 인생 설계를 위한 국내외 유망 관련 산업을 소개한다. 이는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시니어 전문 박람회로 레저/여가, 힐링, 리빙, 뷰티, 취미/토이, 금육, 교육, 의료서비스, 스마트가전 등 관련 산업 전반의 다양한 참가업체를 만날 수 있다. 함께 진행되는 ‘수면케어박람회’에서는 수면보조침구 및 용품, 보조기기, 수면의료, 수면식품/약품, 숙면테라피/케어 등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현대인의 수면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와 방안을 제시하는 전시품이 출품된다.
다양한 부대 행사도 진행된다. 시니어가 펼치는 패션쇼 ‘서울시니어컬렉션’에서는 3가지 주제를 가지고 3일간 화려한 쇼를 펼칠 예정이다. 건강하고 활기찬 시니어를 위한 행사로 사단법인 한국액티브시니어스포츠협회가 ‘협회장배 액티브 시니어 뉴스포츠 최강전’을 개최한다. 3일에 걸쳐 스포츠스태킹최강전, 셔플보드최강전, 한국최강전이 열리며 대한민국 50대 이상 남, 여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요가 전문 업체 나디아요가는 건강한 삶을 위한 요가강좌, 시연회, 요가 관련 용품을 선보인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50년에는 노령인구의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들 중 자산과 소득 수준이 높아 능동적인 소비 주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한 추세다. 이번 박람회에는 250여 개 국내외 기업이 참가 예정이며 관객참여 이벤트, 다양한 시현 행사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용필(67), 안성기(65), 전영록(64), 윤석화(61), 김창완(63), 하춘화(62), 김해숙(62), 배철수(64), 송승환(60), 손석희(61), 장사익(68), 임성훈(67), 강석우(60), 혜은이(61), 태진아(64), 최백호(67), 양희은(65), 윤여정(69), 이수만(65)….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행하는 코드와 아이콘이 급변하는 영화, 방송, 드라마, 대중음악, 공연, 연예기획사 등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연예인과 방송인, 사업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60대라는 공통점도 있다.
60대 관련한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뜨고 있다. 과거의 60대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 활동 양태를 보이는 뉴식스티(New Sixty)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나이를 잊고 사는 ‘논 에이지(Non Age)’ 대표적인 세대가 요즘 60대다. 뉴식스티로 불리는 60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1970~19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자 1990~2000년 아파트 호황기를 누리며 민주화의 정치적 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다. 이들은 패션에서부터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상품을 본격적으로 소비한 세대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요즘 60대는 가장 오랫동안 일했고 가장 많은 돈을 벌었으며 소비욕망이 강한 세대로 은퇴를 본격화하며 100세 수명시대에 인생 2막을 열고 있는 주역이다”라고 분석한다.
2013년 기준 우리의 기대수명은 81.8세로 요즘 60대는 평균 20년의 삶을 더 산다. 그동안 60대 하면 인생이 끝났다고 보고 퇴직 이후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았지만, 기대수명 82세 시대에선 60대가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다양한 취미와 문화생활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업이나 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세대별 가구당 평균 자산 규모는 50대가 4억2229만원으로 가장 많고 60대가 3억642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다음은 40대(3억3175만원), 30대(2억4007만원), 30세 미만(8998만원)의 순이었다. 이처럼 자산이 많은 60대는 이전과 다른 왕성한 소비 스타일을 보인다.
서울문화재단이 최근 발표한 ‘서울시민 문화향유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연평균 문화예술 관람 횟수가 38.6회로 30대(37.3회), 40대(30.1회), 50대(31.6회)를 압도했고 문화예술 동호회 참여(66.2%)와 창작적 취미활동(44.6%)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라이프 트렌드 2017’에서 “오늘날의 60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특별 지대인 셈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60대가 등장했다. 나이를 잊은 60대의 변신, 멋쟁이로 거듭나는 ‘뉴식스티’를 주목하라. 60대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소비 주체로 급부상한 새로운 60대의 실체가 보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60대는 인생을 즐기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며 노인이기를 당당하게 거부하고 왕성한 소비활동과 여가생활을 하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젊은 주인공과 식사하는 장면에만 모습을 보여 ‘식탁용 캐릭터’로 전락한 60대 조연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최근 들어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60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60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린 작품에서 새로운 60대의 변화된 생활과 심리를 소재로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60대 주인공 캐릭터를 내세운 다양한 내용과 소재의 영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연극, 뮤지컬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요즘 중년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소설 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과 연극, 자식 세대의 결혼 인턴제, 부모 세대의 졸혼 등 변화된 가족 풍속도를 담은 KBS2 주말극 , 60대 부부가 자식을 다 결혼시킨 후 황혼 이혼 대신 한집에 살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해혼(解婚) 생활을 다룬 SBS 주말극 , 60대인 윤여정이 요리사로 나오는 tvN 예능 프로그램 , 김윤진이 40대와 60대 엄마를 오가며 연기하는 영화 등 60대 주인공을 내세운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60대를 겨냥한 대중문화 작품이 붐을 이루면서 이전에는 ‘퇴물’ 취급을 받았던 60대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안성기, 윤여정, 김해숙, 강석우, 송승환 등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고 윤석화, 예수정은 젊은 연극배우들도 소화하기 힘든 모노드라마 등에서 주연으로 나서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배철수, 임성훈은 음악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 메인 MC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손석희는 JTBC 앵커로 나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조용필, 김창완, 하춘화, 장사익, 태진아, 전영록 등 60대 가수들은 신곡을 발표하며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갖는 등 전성기 못지않은 현재진행형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대중문화 산업의 선두주자인 SM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수장은 60대 이수만이다.
60대에도 주연을 맡으며 한국 영화계를 선도하는 안성기는 “나의 최고 작품은 언제나 다음 작품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60대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나 내용, 소재의 영화들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대중문화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60대와 전혀 다른 소비 스타일과 여가생활을 보여주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패션, 화장품, 여행, 통신 상품 등도 본격적으로 출시되며 성업 중이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초 정년퇴임한 정영재(65)씨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스킨스쿠버를 배우기 위한 여행상품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레저와 결합한 여행상품은 젊은 층만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나 같은 60대도 많이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뉴 식스티는 이제 새로운 대중문화와 산업의 트렌드의 진원지이자 새로운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 ,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통찰을 담아냈던 송호근(宋虎根·61)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자로 저명한 그가 이번에는 소설가로서 대중과 만났다. 논문이나 칼럼이 아닌 소설을 통해 송 교수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성과 지혜를 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
송호근 교수의 첫 소설 는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무렵부터 두 달여에 걸쳐 쓴 작품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무신이자 외교관이었던 신헌(申櫶, 1810~1884)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신헌은 봉건과 근대 사이에 선 경계인이자, 강화도조약을 협상하며 제국의 도래를 내다봤던 선각자로 그려진다. 신헌이 살던 19세기의 모습과 진영논리가 대치하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송 교수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오버랩됐다.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신헌이 쓴 가 바탕이 된 소설인데, 당시와 현재 우리의 처지가 많이 닮았더라고요. 미국과 중국의 함대가 맞붙고, 사드 배치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는데 내부 싸움에 여념이 없는 현실을 보며 느낀 답답함을 소설의 언어로 표현했어요. 소설이라는 새로운 작법이 낯설긴 했지만,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도전하게 됐죠.”
감성의 바다에서 건진 위로
그렇다면 왜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한 것일까? 평소 그가 쓰던 사회과학서나 논문 등으로 보여주는 게 더 편리하지 않았을까? 이에 그는 ‘감동’의 유무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일어난 사태들을 가지고 논리로만 표현하면 별 감동이 없어요. 140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할 거냐, 이 시대에 신헌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이렇게 규범적으로만 끝나버리죠. 논리만으로는 화해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거든요. 사회과학이 다루는 이성보다는, 소설의 언어와 감성이 사람들을 움직일 때가 있죠. 지식의 공유가 아닌 그런 지혜를 나누고 싶었어요.”
사실 그에게 소설은 낯선 장르가 아니다. 대학 시절 문학평론을 쓰며 가까이했고 여전히 소설을 통해 삶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학창 시절에는 줄곧 문학만 봤어요. 현실에 불만이 많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현실을 뛰어넘는 방법은 종교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젊을 때이니 종교에 빠지긴 어렵고, 사랑은 가능하긴 하고. 어쨌든 그 두 가지를 리허설해볼 수 있는 방법은 문학밖에 없었으니까요. 문학의 세계가 워낙 넓잖아요. 그 감성의 바다를 유영하면서 살아가는 원칙을 건지거나 신념과 조우하기도 하는 거죠. 소설에는 대개 영웅보다는 요즘 말로 루저(loser)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에게 나를 투영하면서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했고요. 문학은 내가 사회과학을 하는 힘이자 문제의식의 창고를 마련해주는 존재로 늘 함께했죠.”
감성의 바다에 흠뻑 젖어 지내던 시절을 지나, 사회학자로서 현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동안 그는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는 가뭄의 단비처럼 촉촉하게 송 교수의 마음을 적셔주었다.
“논리는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해요. 어떤 논리를 완결해놓아도 조그만 한 부분에 불과하니까. 그걸 학문이라고 말하죠. 학문은 곧 인식론인데, 그건 이미 루트나 패러다임이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 뭘 해도 배고프죠. 집을 지을 때 뼈대가 학문이라면, 그 집을 어린이집으로 지을지 귀신의 집으로 지을지 정체성을 부여하는 건 문학이에요. 산을 볼 때도 문학이나 예술은 색깔도 모양도 다르게 보는데, 사회과학은 그냥 ‘산’이거든요. 그게 리얼리티이고, 그것을 포착하고 분석하는 데 익숙해져 있죠. 말하자면 메마른 지식인 셈인데, 지식은 위로가 되질 않더라고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는 그런 허기를 달랠 수 있었어요.”
경계인의 고독, 공(共)으로 채워야
소설을 읽다 보면 이따금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에서 자신의 모습을 이입한 인물이 있냐고 묻자, 그는 단번에 “신헌 그 자체”라고 대답했다. 작가와 주인공,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경계인이라는 점이 같아요. 신헌은 문과 무를 겸한 유장인데, 중세와 근대가 마주치고, 유교와 천주교가 공존하는 경계에 서 있던 인물이죠. 나 역시 과거와 미래, 내부와 외부를 오가며 시세와 처지를 엿보고 있잖아요. 최근 일어난 사건들만 봐도 지식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학자는 선택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결정은 정치인이 하는 거죠. 그저 경계인으로서 담벼락만 걷고 있을 뿐이에요. 양쪽을 흘깃흘깃 쳐다보고 고민하고, 계속 가슴속에서 갈등하고. 그런 모습이 신헌에게 투사된 거죠.”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뻘인 그는 또 다른 경계에 서 있다. 바로 세대 간의 경계다. 아버지 세대를 봉양하고 아들 세대를 부양하는 끼인 세대로서 그는 불만과 설움보다는 자책과 인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베이비부머는 세대와 권력의 경계에서 밀려나고 있죠. 그 설움이 대단할 거예요. 물론 우리도 한때는 내 아버지 세대를 밀어냈죠.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가 유독 예민한 것은 그 짐이 증폭된 세대이기 때문이에요. 흔히 경제성장의 주역이라고들 하잖아요. GNP(국민총생산)만 해도 1970년대와 현재가 100배 이상 뛰었으니까요. 그만큼 경제적 부담, 양육의 부담, 효도의 부담 등이 증폭된 거예요. 또 부모 세대에게 받은 게 없으니 자식 세대에게 그 한을 많이 풀었죠. 지금의 혼수문화도 돌이켜보면 다 우리 세대가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 덫에 우리가 걸려들어버렸죠. 그러니 다 큰 자식 껴안고 살 수밖에요.”
송 교수가 베이비붐 세대의 삶을 그린 라는 책 제목처럼, 세대의 경계에 선 그들은 소리내 울 수조차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황일수록 나 자신만이 아닌 ‘공(共)’의 개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세대는 평생 사(私)를 위해 살았거든요. 나의 가족, 나의 직장 이게 세계관의 전부예요. 공적인 자산?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왔죠. 그러나 서양의 경우를 보면 ‘사’가 너무 힘들다 보니 ‘공’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거든요. 그게 바로 복지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좋아요. 아이들 등하굣길을 돕거나 동네 청소를 하거나 구청에 작은 사랑방을 얻어 주니어 멘토링을 한다거나. 그래야 세대 간 조화를 이루고, 일종의 소득 자원도 창출할 수 있다고 봐요.”
그 언젠가 어느 경계에서 또다시
로 시작한 대화는 자연스레 우리 사회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소설가로 마주했던 그는 어느 순간 다시 사회학자의 모습으로, 그렇게 학문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혹시 이번 기회에 소설가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슬쩍 질문을 던지자 역시 경계인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갑자기 소설가로 등단했다기보다는 예전부터 갖고 있던 것 중 하나를 드러낸 것에 불과해요. 앞으로는 뭘 할지 모르는 거죠.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고. 소재도 생각해놓은 것은 많아요. 다만 어느 순간에 절박한 무언가와 만나서 터져 나올 때, 그때 잠시 논리 밖으로 외출하게 되겠죠. 탄핵처럼… 아마 또 그런 계기가 있지 않겠어요? 암울하잖아요.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나. 또 그 속에서 생기는 딜레마. 논리로 풀 수 없는 세상과의 부딪침. 그런 게 터져 나오는 거죠. 뭐,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돼도 안 돼도 그만인 거고요.”
사람이 사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이라고 단정지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필요가 있다. 행복을 느끼는 형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얻는 행복감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이루어낸 성취감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주로 전자의 행복을 찾았고 현대의 젊은 세대들은 후자의 행복을 찾는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고 행복을 찾아 인생 여행을 떠난다. 유치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도 그런 셈이다. 피아노를 배우고 발레를 배우는 것도 먼 훗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부모들 또한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경험과 지혜를 모아 가르친다. 때로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게 함으로써 대리 만족을 얻으려고도 한다. 아이들을 이렇게 설득한다. “내가 좋다고 그러니? 너희들 잘되라고 하는 짓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자녀들의 장래를 위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자녀의 성공으로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찾기 위한 속내가 숨어 있기도 하다.
실버 세대나 베이비붐 세대들은 자녀 교육에 온갖 힘을 쏟으며 희생을 감수했다. 자녀를 통해 간접적인 행복을 느끼는 데 만족했다. 그게 부모 세대 삶의 전부였고 행복해지는 우선순위였다. 자기에게서 찾는 행복이 아닌 자녀나 가족들의 즐거움에서 얻는 행복이었다. 철학자 플라톤도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다. “행복이란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데서 생겨나는 즐거운 느낌이다.” 품안의 아이가 방긋거리며 웃는 모습을 바라볼 때 어머니는 더없이 행복을 느낀다. 정성껏 지은 밥을 맛있게 먹는 가족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행복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키워온 아들딸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던 직장에 입사하면 그간의 고생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행복해진다. 타인을 통해 얻게 되는 행복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행복에 자아실현으로 찾는 행복을 더하면 좋을 듯하다. 내 인생은 내가 산다고 항변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수명뿐 아니라 건강수명도 늘어가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수명이 5시간씩 늘어난다고 한다. 이 많은 시간을 보람되고 즐겁게 보낼 필요가 있다. 50세 전후에 은퇴를 하고 늘어난 수명으로 노후의 시간이 많아졌다. 무엇을 더 이루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95세 된 한 할아버지는 영어공부를 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버합창단 모집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도 자아실현으로 스스로 찾는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다. 탑골공원 주변을 배회하며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현실의 어려움이 삶을 짓누를 때도 많다. 그러나 그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이 어떻게 볼까 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욕심을 부리고 스스로 입은 무거운 갑옷을 벗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현실을 인정하자. 적게 가졌으면 적은 대로 살아가자.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가족들 뒷바라지에 시간이 없어 속으로만 감춰뒀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시작해보자. 사진도 좋고 그림 그리기도 좋고 노래 부르기도 좋다. 친구들을 만나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는 것도 하나의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미뤄왔던 여행도 무작정 떠나보자. 국내이든 해외이든 장소에 관계없이 말이다. 자기로부터 찾는 행복,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세계 일주 여행을 위해 긴 고민 끝에 32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 퇴직한 아버지 정준일(59)씨. 포병장교 전역 3개월 전, 갑작스런 아버지의 세계 일주 제안에 진행 중이던 취업 전형까지 중단하게 된 아들 정재인(29)씨. 가장으로서, 취업준비생으로서 장기 여행은 많은 것을 내려놓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무언가를 잃지는 않을까? 후회는 없을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떠난 200일의 세계 일주에서 돌아와 부자는 알게 됐다. 그때의 근심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 아버지 정준일
32년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문득,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회의감에 평소 꿈꿔왔던 세계 일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현재는 기타 연주, 맛집 탐방 등 건강한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다.
△ 아들 정재인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꼰대’ 아버지의 제안으로 얼떨결에 세계 일주를 시작한다.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며 언젠가 본인도 미래의 아들과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기획 중이다.
◇ 정준일·정재인, 우리 부자의 여행은?
준비 기간 2개월(이후에는 여행지에서 그때그때 준비)
여행 루트 서유럽-터키-동유럽-북유럽-북/중/남미-오세아니아-동남아시아-인도-아프리카
여행 콘셉트 친해지길 바라!
역할 분담 아버지) 경비 총무와 숙소정리, 아들) 아버지의 보좌관이자 안전책임자
여행 경비 약 6000만원 (아버지 퇴직금 + 아들 장교복무 봉급)
다음 여행 내년에는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가 함께하는 이집트 여행 계획
Intro>>우리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Q. 세계 일주 여행 파트너로 아내나 친구가 아닌 ‘아들’을 꼽은 이유
아버지: 친구나 아내, 딸과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지만 장기간 여행할 수 있는 체력과 외국어 실력을 겸비한 아들과 함께하는 게 가장 마음 편하리라 생각했죠. 주변 사람들을 보면 오랜 시간 함께 여행하면서 생긴 마찰로 평생 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아들과 함께라면 혹여나 그런 서운한 감정이 생기더라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사실 여행을 가기 전 아내는 명예 퇴직을 반대했지만, 결정을 내린 후에는 고생했다면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Q.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
아들: 처음 아버지의 제안을 받고 깊은 고민 끝에 거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가장 친한 후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와 소주 한잔을 하게 됐죠. 후배는 아버지에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많다며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다음 날 바로 아버지께 함께하겠다고 말씀드렸죠.
Q. 여행을 앞두고 기대했던 점과 우려스러웠던 점
아버지: 여행 전, 그동안 영상과 책으로만 접했던 전 세계의 자연환경과 건축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죠. 막상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난다 생각하니 건강이 우려스럽고,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쫄쫄 굶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더라고요. 여행 중 이탈리아에서 더위를 먹어 앓아눕고, 페루 쿠스코에서 고산병으로 고생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다행히 크게 몸이 아프거나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처음엔 현지 음식만 먹겠다 다짐했지만,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니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 음식점을 애용했죠.
아들: 모두가 한 번쯤은 꿈꾸는 세계 일주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들떴지만, 아버지와 여행을 해야 한다는 부담과 어색함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초기에는 아버지와 특별히 할 말도 없었고, 아버지의 잔소리에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터키 파묵칼레의 노천 온천탕에서 아버지와 오랜만에 목욕을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음을 열게 됐습니다.
Travelling>> 어리기만 했던 아들, 어느새 든든한 버팀목이 되다
Q. ‘역시 아들이랑 오길 정말 잘했다!’라고 느낀 순간
아버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외국인 포함) 대부분이 아들과 세계 일주를 하는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각종 예약, 교통 티켓, 경로를 알아서 잘 짜는 아들이 참 든든했어요. 그럴 때마다 ‘아들이랑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Q. 중년 여행복의 상징인 아웃도어가 아닌, 아들이 코디해준 옷을 입고 다녔다는데
아버지: 아들 덕분에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옷들을 마음껏 입고 다녔어요. 처음에는 그런 옷들이 너무나 어색하고 남사스러웠는데, 이왕 여행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워보기로 한 이상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아들이 권하는 옷들을 입어봤어요. 사람들이 멋지다며 엄지를 치켜 올려줬고, 사진으로 봐도 괜찮은 제 모습을 보며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지금도 그때의 패션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가벼운 여행을 할 때면 헌팅캡을 쓰곤 합니다.
Q.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이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들
아버지: 내게 아들은 늘 어리게만 보여서 이것저것 관심을 보인 것인데 오히려 그것을 잔소리로 여겼는지 참견하지 말라 해서 좀 서운했습니다. 결국 아들을 자기주도적인 결정 아래 책임을 질 줄 아는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하고 모든 걸 믿고 맡기기로 했죠.
아들: 예전의 권위적인 모습 속 말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와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의사소통 측면에서 문제들이 많았어요. 원체 깔끔한 성격의 아버지가 숙소에 들어올 때마다 어엿한 성인인 제게 잔소리(빨래, 양치질, 정리정돈 등)를 해대셔서 방을 따로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남들과 여행할 때보다 두 배 세 배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매일 밤을 새워가며 아버지에게 적합한 여행 일정을 짜드리곤 했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쳤지만, 좋든 싫든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 “아버지와 여행하려니 힘들지? 고생이 많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큰 힘이 됐죠.
Q. 아들이 아버지에게 의지했던 부분은?
아들: 저는 성격이 급하고 계획적이라 무언가 일정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곤 해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속인 배낭여행에서 제가 초조해하거나 힘들어할 때 아버지께서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라며 정신적으로 안정시켜주셨죠. 청결하신 아버지께서 늘 위생에 신경 쓰신 덕분에 깨끗한 숙소에서 묵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Outro>> 아들에게 아들이 생긴다면? 세계여행 강추!
Q. 만약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아버지: 여행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고정관념과 고집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히 ~해야지’, ‘무조건 ~다’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넘어가는 성격으로 변했죠.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겪는 우울감을 느꼈을 거예요. 여행을 다녀온 후 태어나 처음으로 책도 써보고, 인터뷰도 해보고, 방송도 출연하고, 그렇게 새로운 경험들과 연계해 제3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여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꿈만 같은 일들입니다.
아들: 우선 아버지가 굉장히 편해졌습니다. 예전의 수직적인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해서 어떤 대화도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편해지니 예전엔 ‘꼰대’라고 생각했던 아저씨들의 행동과 말들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됐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취업 빙하기인 요즘, 아버지와의 세계 일주를 좋게 봐주신 인사 담당자 덕분에 좋은 직장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부자간의 관계도 예전처럼 서먹했을 테고, 취업도 어찌 됐을지 모릅니다.
Q. 처음은 늘 아쉬운 법!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아버지: 너무 체면을 차리느라 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지 못했고, 액티비티도 참여하지 않았어요. 다시 여행을 간다면 나이와 체면 생각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외국인들과 소통하고 투어 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아들: 계획을 너무 타이트하게 짜서 여행 중 여유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휴식시간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요가체험, 템플스테이 등)을 갖고 싶습니다.
Q. ‘아들도 아들의 아들과 여행하길 바란다’고 말한 아버지, 그때의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아버지: 아들이 나중에 손자를 낳아서 여행을 하게 된다면 지금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아들에게 부족한 아버지였지만, 아들은 손자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멋진 아버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나는 가정을 위해서 나부터 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대가 변했기에 아들은 아이와 더 많이 소통하는 아버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이고 아들은 늘 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내 기준으로만 자식을 바라보지 말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아버지가 되길 바랍니다.
사회가 각박하고 어려울수록 우리는 토머스 모어가 제시한 ‘유토피아(이상 사회)’를 떠올려 본다. ‘어떻게 하면 유토피아로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누구도 그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주경철(朱京哲·57)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 문제를 내고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인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어디로 가며, 어느 방향으로 휘고 있는가를 의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역사의 큰 그림을 보고자 하는 그의 바람을 에 담았다.
는 주경철 교수가 문화·예술 분야의 인재 육성을 위한 기관인 ‘건명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이기에, 같은 내용을 중장년 독자가 읽었을 때는 조금 다른 시선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에 주 교수는 다른 시선이 아닌, 오히려 더 나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 책은 우리 인간사를 큰 차원에서 이해하자는 뜻에서 펴내게 됐어요.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사는 사회, 자연환경, 국제관계 등은 어때야 하는지 등을 성찰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당하는 이야기죠. 오히려 중장년이 본다면 훨씬 잘 이해하고, 나름의 경험을 통해 더 섬세하고 풍요롭게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가,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찾는 시간
주 교수는 책에서 1492년, 1820년, 1914년, 1945년 등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변곡점으로 작용한 네 해[年]를 언급한다. 그중에서도 유럽의 패권 장악과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820년의 상황이 현재 우리 중장년의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근면혁명은 산업혁명 직전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근면’이라는 말이 좋은 뜻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 중장년은 전후(戰後)에 굶주리지 않기 위해, 또 경제성장을 위해 노력했던 세대잖아요. 문제는 이미 그다음 단계로 넘어와 이젠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게 무의미해졌죠. 이런 상황에서 과거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일을 하더라도 과거처럼 단순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만 하다가 죽는 건 동물이나 노예처럼 사는 거잖아요. 노동도 중요하지만, 인간답게 사는 그 외의 것, 문화·예술·교양 또는 종교적인 사람이라면 신성함이라든가, 그런 소중한 가치를 누리면서 살아야죠. 그러려면 일로부터 해방돼야 하고요.”
‘일의 해방’ 그것은 곧 은퇴라 말할 수 있다. 언젠가는 오고야 말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자유에 막연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 교수는 늘어난 여가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장년들은 그동안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는데, 그러다 보니 정작 인간답게 사는 중요한 가치를 놓치게 된 것 같아요. 평생 일만 하다가 갑자기 시간이 주어지면, 돈이 좀 있는 분들도 괴로워하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사나? 매일 등산을 할 수도 없고. 그저 한가한 사치가 아닌, 이제야말로 제대로 인간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인 거죠. 저는 중요하게 고려해볼 만한 것으로 예술과 스포츠를 꼽아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육체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활동이죠.”
감정의 공유를 통해 얻는 고급 경험
그는 아무런 준비 없이 자유를 맞이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찾는 것이 ‘술’이라고 말했다. 단시간에 스트레스를 풀고, 여럿이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호하겠지만, 그보다는 문화적 측면으로 다가가길 바랐다. 그중 한 예로 ‘독서’를 꼽았다.
“책을 읽는 건 간접 경험이죠. 예를 들어 소설은 남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는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철학은 남다른 사유를 통해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어요. 그렇게 당장 얽매인 것 이상의 정신적 경험을 하는 거죠. 을 읽고 ‘아 인간이 이런 문제로 고통을 받는구나’ 하고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원이 다르죠. 그런 감성을 공유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도 천지 차이고요.”
이런 의미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겠지만, 무작정 강요하기는 어렵다. 주 교수는 독서 외에도 감정을 느끼고 사유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즐길 것을 권했다.
“은퇴 후 여유가 생겨서 그 전에는 못 봤던 대하소설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는 이들을 봤어요. 역사책도 젊을 때보다 오히려 나이 들어서 눈이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독서의 매력을 느끼는 분들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면 영화나 연극, 만화 등을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에게 짧게 연극을 만들어 직접 연기해보도록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감수성이 파워풀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고급 경험을 할 기회를 갖는 게 중요하죠.”
작품을 통한 간접 경험도 중요하지만, 자기 경험을 통한 사유도 필요하다. 우리 베이비붐 세대가 목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 자연환경의 변화는 이례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물’이다. ‘물 쓰듯 쓴다’는 말을 해오던 이들은 어느새 ‘물도 사 먹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변화를 몸소 느꼈기에, 그에 대한 의식도 남다르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게 주 교수의 설명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냇가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깨끗한 고드름도 따먹었잖아요. 그러다 1960~1970년대에 서울 주변에 직물·염색업 때문에 개천이 죽는 것도 봤고, 과학이 발전해 다시 그 물을 살려내는 과정도 봤죠. 한평생에 거의 태고의 자연, 산업화 시대의 자연, 회복하는 자연을 다 경험한 사례는 거의 없을 거예요. 그 덕분에 현재 처한 환경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죠. 그때의 자연이 얼마나 좋았고, 고귀한 가치였는지. 왜 되살려야 하는지 훨씬 잘 알 테니까요.”
스스로 人問하는 어른의 人文
주 교수는 기술의 발전과 환경 문제 등이 얽히고설킨 현대사회에서는 ‘과연 이 시대는 야만화되고 있는가, 문명화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질문은 개인의 삶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 거리를 두자는 겁니다. 거리라고 하는 게 무책임하고 손을 놓자는 게 아니라, 그 현상에 대해 한 걸음 뒤에서 크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곧바로 해결하려 드는 건 배고프면 밥 먹는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맨눈으로 보는 것, 지금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잖아요. 현재 문제가 어떤 큰 맥락 속에 위치해 있는가, 그것을 파악하려면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가 있죠.”
아울러 유토피아를 향한 자기 질문, 행복한 사회를 위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에 다가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인데, 누가 답을 가르쳐주면 좀 좋아요? 토머스 모어는 자기가 유토피아를 제시해놓고 여러 문제와 모순을 드러내요. 진짜 제시한 게 아니라, 나에게 속지 말라고 경계하는 거죠. 내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 거고, 어떻게 이상사회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라고 권유하는 겁니다. 그게 올바른 생각이라고 봐요. 섣부른 청사진을 제시했다면 벌써 잊혔을 거예요. 그게 답이 아닐 테니까요. 저는 바로 나오는 답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깊은 성찰 속에서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대조하면서 조금씩 찾아가는 거죠.”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 인문학이나 철학과 관련한 책들을 읽는 사람이 많다. 주 교수에게 그들이 성찰하고 사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생이라면 가르치겠지만, 중장년은 이미 살면서 자기 생각이 정립된 상태잖아요. 다양한 사회 경험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러면서 ‘아, 내가 이게 더 필요하구나’라고 느끼는 것, 그게 인문학이라 생각해요. 바쁘게 살다가 여유가 생겼을 때 느끼는 공복감이랄까? 일종의 배고픔이죠. 배고프면 무언가를 찾게 되잖아요. 돌연, ‘정말 잘사는 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자기 필요에 의해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즐거워지고, 그다음 단계로 옮겨가기도 하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죠. 그런 과정에 있는 중장년이라면 특별한 조언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스스로 찾을 수 있거든요. 말하자면, 그게 어른인 셈이죠.”
자연과의 조화가 아름다운 궁궐, 조선시대 정원 중 가장 아름다운 창덕궁을 4월 초순 둘러보았다.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건축미에 빠져들기도 했고 궁궐 대문 양쪽에 장식된 장석(裝錫, 사진 참조)을 보며 저출산율로 ‘인구절벽’에 빠진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장석의 문양이 대여섯 자녀에게 물린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장석을 다산(多産)의 의미를 담아 자손의 번성을 기원한 장식으로 사용했기에 더욱 그랬다. ‘인구절벽’은 베이비붐 세대가 일으킨 경제 규모를 이어갈 생산가능인구(15세~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든 사회 현상이다. 여기에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젊은 층의 미래도 걱정이지만, 한국 경제를 일으킨 주역들의 미래 복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조들은 이미 많은 자녀 출산의 필요성을 예견하고 기원의 뜻을 담아 궁궐 곳곳에 부적처럼 붙였다. 그래서인지 다산 의미를 담은 포도송이 문양의 장석은 궁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자손번영을 으뜸으로 꼽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105년 2.25명에서 최근엔 1.17명으로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궁궐의 주요한 곳에 다산 기원의 장석을 붙여 한마음으로 염원했듯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검찰은 내로라할 재벌 총수를 구속하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죄의 유무는 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모든 법의 판결 과정이 그러하듯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유죄가 되든 무죄로 풀려나든지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상상 이상이다. 따라서 신중히 처리하여 올바른 판결을 해야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구속의 적법성 여부나 판결 자체 여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든 측면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를 일으킨 베이비붐 세대와 그다음 세대가 정년퇴직을 맞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사상 최악의 실업난을 겪고 있다. 출산율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반면에 수명은 늘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서민경제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다.
4월 중순, 천안시 축구센터 세미나실에서 이른 아침부터 중장년 인턴취업자 사전 직무교육 프로그램 강의를 맡아 꼭두새벽에 출발해 전철로 2시간 넘게 걸려 천안시의 두정역에 내렸다. 강의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이용했는데 두정역은 등교하는 대학생들로 서울 지역 전철역 이상으로 붐볐다. 택시 기사는 13개 대학의 캠퍼스가 천안 지역으로 옮겨와 그렇다고 했다. 필자는 택시 영업이 어떠냐고 슬쩍 물었다. 근래 들어 손님이 줄었다며 걱정하면서 택시뿐만 아니라 천안시의 자영업자들이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삼성 반도체 천안 아산 공장 종업원의 외식이 크게 줄어 음식점들은 거의 울상이라고 했다. 기숙사에 입주한 종업원들은 엄청난 숫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인 회식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룹의 총수가 구속된 상황에서 어떻게 흥청거릴 수 있냐며 서로가 자중한다는 얘기였다. 택시 기사는 서민경제가 더 어려워질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택시 기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세상일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일들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나 업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소한 일이든 중차대한 일이든 구분 없이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세상은 정반합의 융합으로 굴러간다고 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기 마련이다. 불우 이웃에게 연탄을 무료배달하면 동네 연탄가게의 판매는 줄어든다. 세상일은 이처럼 복잡다단하다. 정보가 순간적으로 교류하고 공유되는 현실에서 공통 분모를 찾기가 힘들 수도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층에 좀 더 관심을 보이는 시각이 많아지면 좋겠다. 세상살이는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또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알아간다.
‘인구절벽’이 우리 경제를 조여오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저출산으로 한국전쟁 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베이비붐 세대를 이어 경제를 주도할 ‘생산인구’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출산율은 1.25명에서 1.17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듦으로써 정부의 세금 자원도 줄어 세금으로 이뤄지는 복지정책이 어렵게 되었다. 통계가 아니어도 저출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가,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결혼할 생각조차 않는 총각, 처녀들이 많다. 결혼 적령기가 지난 딸을 둔 친구가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집을 늦게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다. 딸의 논리 정연한 이유를 듣고 설득할 말을 잃었다고 실토한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큰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왜 시집가서 남편을 섬기고 아이 낳는 고통까지 짊어져야 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이 지난 필자의 아들 녀석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혼자 살기도 힘든데 벌어서 여자까지 먹여 살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또 지금의 이 고통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고차원적 변명도 한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까? 자식들 인생이니 알아서 살도록 나둬야 할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부모는 자식들이 새 가정을 만들어 오순도순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힘든 일도 생기고 일심동체라 일컫는 부부도 격한 싸움을 할 때가 있다. 부부싸움이 잦은 사람에게 “그렇게 싸울 바에야 아예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려고 하니 싸우지 헤어지려면 뭐하러 싸워요!” 이해가 가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난관도 견디어내기 마련이다. 그게 가족의 힘이고 그 힘은 결혼을 해야 생겨난다.
어느 철학자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라고 하면서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통계를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주변이나 친구들을 봐도 결혼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와 같은 세대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적었다. 다만, 형편이 어려워 결혼이 늦은 사람들은 있었다. 결혼을 후회하는 경우는 결혼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불만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혼을 해도 또 재혼을 하는 것 아닐까? 결혼 자체를 싫어한다면 재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배우자가 문제될 뿐인 것이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를 둔 자녀들은 결혼을 꺼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모의 결혼생활을 통해 미리 경험하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선뜻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의 책임도 크다.
우주의 법칙은 무엇인가? 한 마리의 작은 잠자리도 종족을 이어가기 위하여 가을 하늘을 날며 암수가 사랑을 나눈다. 한 그루의 꽃도 씨를 남긴다. 모든 동물도 새끼를 낳아 기른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고귀한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가 해야 할 대자연의 기본 법칙이 아닐까? 또한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한 부모에 대한 보답이다. 왜 자기를 낳아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냐고 반문하면 딱히 할 말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결혼해서 참기름이 쏟아지도록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노부부들을 보면 부럽다. 그들은 분명 결혼은 안 하면 후회한다고 말할 것 같다. 70대까지 독신으로 살아온 한 시니어가 KBS 1TV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코너에 출연해 혼자 사는 외로움을 실토하며 꼭 결혼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혼자’라는 용어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혼자 살겠다는 처녀, 총각들을 어찌하오리? 저출산율에서 벗어나는 고민을 함께해야 할 때다.
갈수록 설 명절에 그들을 볼 수 없다. 인터넷에는 그들끼리 ‘설 명절을 피하는 법’ 같은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돈다. 이제는 세뱃돈의 유혹도 그들을 붙잡지 못한다. 더는 결혼에 대한 추궁을 받기 싫어서일지 모른다. 그들이 빠진 안방에는 노인들만 모여 한숨을 쉰다. “도대체 걔들은 왜 결혼할 생각을 안 하는지 몰라. 앞으로 어떻게 살려는지 원….”
새해 벽두부터 ‘인구절벽’이라는 생소한 말이 떠돈다. 미래학자 해리 덴트가 최근 저서 에서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사용한 ‘인구절벽’이라는 용어는 젊은 층의 인구가 어느 순간부터 절벽 같이 떨어지는 현상을 표현한 말이다. 그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한국도 2018년을 기점으로 경제인구가 하락할 것을 예측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내년 이후 경제인구가 감소하며 일본이 겪었던 장기 침체를 경험할 것”이라며 출산율을 높이는 해법으로 보육비 지원을 언급했다. 사실 그들이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가 보육비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기를 키우며 직장 일을 병행할 수 없으니 이중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우리 세대의 기억 속에는 10남매 가족이 그리 놀랍지 않다. 우리도 보통 5, 6남매의 일원이지 않은가. 소위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오히려 오늘날의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함이다. 아이 낳는 것이 일상사였고 보조금 안 주어도 순풍순풍 아이를 낳곤 했는데 왜 그들은 아이는커녕 결혼마저 기피하는가.
하긴 인구 정책적 관점에서만 보면 인구를 늘리는데 왜 결혼을 장려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오늘날 미혼모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보호받지 못하고, 만약 알려질 경우 받아야 할 지탄이 두려워 몰래 버리거나 출산 기록이 남을까 겁나 이름 없이 베이비 박스에 놓고 가지 않는가. 결혼만이 인구 정책의 외곬 길은 아니라는 말이다.
주제로 다시 돌아오면 그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다산을 권장하는 전통은 당시 경제력의 바탕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력(人力)이었으므로 다산은 곧바로 미래를 보장하는 경제 행위였으나 지금은 과연 그런가? 우리만 해도 형제자매들이 취직하여 가정경제에 나름 보탬을 주었으나 이젠 노후에도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야 할 필요성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별로 필요도 느끼지 않는데 자꾸 결혼하여 국가 경제를 위해 자식을 낳으라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게다가 꼭 자식이 아니라도 자신의 정신적 DNA를 남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글로 혹은 SNS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굳이 인구가 걱정이라면 트럼프와 반대로 이민을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젊은이들이 아이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이루기 위해 결혼할 때까지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