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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친화우수제품' 지정 받는 방법
- “양질의 고령친화용품 생산업체들 ‘고령친화우수제품’ 지정 받으세요” 보건산업진흥원 고령친화산업지원센터에서는 2020년 1분기 ‘고령친화우수제품’ 지정 신청을 3월 말까지 받는다. 고령친화우수제품 신청은 고령친화산업지원센터 홈페이지 ‘고령친화우수제품∙우수사업자’ 메뉴에서 ‘고령친화우수제품신청’을 통해 관련 서류를 첨부해 제출하면 된다. 심사기간은 5월6일에서 13일까지다. 특히 올해 1분기부터 고령친화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령친화우수제품 심사에 사용성 평가 결과가 반영된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은 성남고령친화종합체험관 , 계명대학교 미래산업사용성평가센터 , (재)부산테크노파크 3곳을 ‘고령친화제품 사용성평가 지원센터’로 지정해 운영한다. 신청기업은 위 3곳에서 사용성 평가를 진행하면 보건산업진흥원 지원예산 한도 내에서 평가 비용의 80%를 지원받을 수 있다. 고령친화우수제품 지정업체에게는 ‘우수제품 지정’ 표시 사용과 함께 건강보험공단 복지용구 급여결정 심사 면제, 급여결정시 제품 안전성∙기능성∙편의성에 대한 심사를 면제해 준다. 또 고령친화우수제품 시험비 지원, 수출상담회 및 해외박람회 참가 지원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권덕철 보건산업진흥원장은 “올해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함에 따라 고령친화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며 "진흥원은 국내 고령친화산업의 역량이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끊임없는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2020-03-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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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시니어로 산다는 것이
- 제가 사는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 가는 길목의 인구 20만 명이 사는 도시입니다. 온타리오의 많은 주택지처럼 계속 인구가 팽창해 집값이 많이 오른 타운입니다만 제 주거지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큰길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콘도를 구입했던 게 6년 전인데 한적하고 운치 있는 동네를 떠나 큰길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것은 결코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쾌적한 동네가 아니어서 망설이기는 했지만 수년 전 과감하게 결론을 내렸던 이유는, 제 연령대의 여성들에 비해 건강이 빨리 나빠지고 있어 시니어(senior, 65세 이상의 노인을 칭함)가 될 때를 위한 필수 준비를 서둘렀던 것입니다. 모든 편리한 시설들이 가까이 있습니다. 가정의 병원과 치과, 약국, 우체국, 급할 때 필요한 일용품과 간단한 식품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 버거킹 햄버거 숍까지 근처 500m 거리에 있어서 차를 더 이상 몰 수 없게 되었을 때 걸어서 가거나 휠체어를 밀고도 갈 수 있습니다. 1km 떨어진 곳엔 백화점이 있는 쇼핑센터와 거래 은행도 있습니다. 큰길 건너편에는 예술대학교가 있어 학교 입구에 여러 곳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들이 있고, 그 버스들은 대개가 버스로 5분 거리인 GO(Government of Ontario) train 기차역으로 연결되어 있어 근처 도시와 토론토까지 한두 시간 정도면 승용차 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 캐나다 노인복지혜택은? 시니어가 된 후 처음으로 캐나다에 사는 시니어들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시에서 받는 일반 혜택은 전혀 없고 한국처럼 노인정 같은 편리시설은 인구 20만 명인 이 도시에 오직 두 곳인데 거리가 멀어 자동차 없이는 불편합니다.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수업료는 무료가 아니며 치매 환자들을 도와주는 데이케어센터(Daycare Center)도 없습니다. 집에서 오갈 수 있는 시니어 데이케어센터가 아니라 아예 치매 환자만 모여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연방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OAS)과 시니어이지만 저축성 국민연금(CPP)을 적립하지 않았거나 다른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 시니어에 대한 보조금 액수도 알아봤습니다. 현재 캐나다 국적자이거나 영주권자 시니어가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은 최고 한도액이 한 달에 613.53달러(약 55만 원)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자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으로 40년 이상 캐나다 거주자만이 최고 한도액을 수령할 수 있으며 거주기간에 따라 수령액수가 달라집니다. 25년을 거주한 저는 현재 242.98 달러(약 21만 원)를 받고 있으며 정부 보조금은 일절 없습니다. 저소득층 시니어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GIS)은 노인기본연금과 보조금을 합해 최고 한도액이 1529.95달러(약 136만 원)입니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생활 어려워 노인기본연금 수령액이 적든 많든 소득이 전혀 없을 경우의 총합계이며 별도의 소득이 있다면 보조금 액수는 적어집니다. 정부 보조금 최고 한도액은 916.38달러(약 81만3000원)입니다. 그리고 저축성 국민연금의 최고 한도 수령액은 한 달에 1200달러 정도이지만 그것도 얼마나 오래 적립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연금은 소득으로 계산되어 정부 보조금 수령액이 적어집니다.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매월 정부 보조금과 노인기본연금을 합한 최고 한도 수령액 1529.91달러(약 136만 원)의 연금과 저축성 국민연금 최고 한도 수령액 1200달러로 캐나다에서, 특히 GTA(Great Toronto Area) 토론토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이 경우는 보조금이 줄어듭니다. 제 경우는 저축성 국민연금 수령액이 약 600달러여서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과 국민연금 합계는 842.98달러입니다. 그래서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산이나 저축이 없는 시니어들은 연금으로 살 수 없어 집을 담보로 역대출을 받아 살아가든지 집을 팔고 정부 보조 임대 아파트로 옮겨가야 하는데 신청에서 입주까지 10년이 걸립니다. 이런 경우에도 무료가 아닌 연금 액수와 소득에 비례한 임차료를 정부에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주택 소유자가 아니거나 수입원이 없거나, 저축한 돈이 없는 시니어들은 홈리스가 되거나 빈민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서민층의 오래된 아파트 임대료가 한 달에 1800달러(방1, 거실1, 부엌, 욕실), 2000달러(방2, 거실1, 부엌, 욕실)인데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니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 식품비도 30%나 올랐습니다(온타리오 한국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한국산 식품비는 2년 전에 비해 40~50% 상승). 지하철과 버스 이용료도 무료가 아닙니다. 캐나다의 IT 통신요금은 비싸기로 악명 높습니다. 제 경우 핸드폰 수수료는 8기가 사용료로 매월 82~100달러, 가정용 인터넷은 제한된 TV 채널 사용료와 전화비를 포함해 125달러를 지불합니다. 제가 받는 노인기본연금이 통신 시스템 사용료로 모두 쓰이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콘도 관리비는 매월 1000달러, 주택세는 1년에 3000달러 정도 됩니다. 여기에 식품비, 약값, 보험료, 유류, 차량 유지비 등까지 더하면 아무리 절약해도 정부에서 받는 연금으로는 매월 수천 달러 적자입니다. 그러니 임대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든 자가 소유의 콘도가 있든 상관없이 정부가 저소득층 노인에게 주는 최고 한도액 보조금으로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물론 직장연금(소방서원이거나 공무원, 은행 같은 대기업의 경우)을 많이 받는 시니어는 형편이 좋겠지만요. 의료 서비스는 무료이지만 시니어들도 예외 없이 MRI·CT 촬영, 암 검사 등을 하려면 6개월~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전문의와의 상담은 최소 3~6개월 정도 걸리며 수술은 1~2년씩 차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약값도 개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1년에 한 번 시력검사, 폐렴·대상포진·독감 예방주사, 건강검진이 정부에서 무료로 주는 혜택이지요. 긍정적인 일은 슈퍼나 백화점이 일주일에 하루 시니어를 위한 날을 정해 5~10%의 할인 판매를 한다는 것입니다. 맥도널드는 시니어에게 커피를 1달러에 판매합니다. 복지국가로 소문난 캐나다이지만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캐나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시니어의 실상은 녹록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시니어들이 모여 놀 곳도 없는지 특히 남성들이 맥도널드 숍이나 백화점 입구 소파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한국에 사는 시니어들만 힘든 게 아니고 한국에만 빈곤층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세계 어느 국가를 가도 복지국가 캐나다처럼 빈민도 있고 거지도 있고, 힘없고 돈 없는 퇴직한 노인들이 길거리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래도 한국에는 지하철 연결이 잘되어 있어 시니어들이 무료 지하철을 이용해 갈 곳도 많아 보였습니다. 또 빠른 의료 시스템,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 보조금과 간병 도우미를 쓸 수 있는 혜택이 있고, 노인 무료 데이케어센터도 있으니 여기 캐나다보다 훨씬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고생만 많이 하고 이젠 젊은 세대들에게 부양은커녕 존경도 받지 못하는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저 역시도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삶을 다 바친 후 이 시대까지 숨차게 달려온 코캐네디언(Ko-Canadian) 시니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씁쓸하지만 이제 그 슬픔을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 디자이너로 종사.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구름 따라 떠돌며 구름 사진 찍는 나그네로 활동 중.
- 2020-03-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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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인생은 아내와 함께”
- 1982년,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 리그가 출범했다. 그 후 38년, 야구와 함께 살며 모든 행적이 한국 야구의 역사 그 자체가 된 선수가 있다. 바로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얼마 전 경찰 야구단 해체와 함께 감독직을 마지막으로 야구 최전선에서의 50년 인생을 마무리 짓게 된 그는 이제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1956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배트와 공으로 돌파한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듣기 위해 그가 계룡산 자락에 마련한 휴양공간 유쓰카페로 찾아갔다. 프로야구 리그 출범 전 한일은행 야구단에서 포수로서의 생활까지 포함하면 19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의 가장 최근 직업은 사업가다. 계룡산 자락 입암저수지 앞에 자리한 유쓰카페의 사장이 된 것이다. “작년 연말에 오픈했어요. 이 땅을 매입한 지는 오래됐죠.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지낼 때였어요. 경기에서 이기면 머리가 맑았지만 지면 아주 피곤했어요. 옆에서 술 마시자는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 술도 끊고 어디 힐링할 데 없나 찾아다니다가 이곳을 알게 됐죠.”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어 지인들과 자주 와서 놀다 보니 땅 주인이 살살 꼬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사게 됐다. 그러나 매입한 후 임대만 하고 땅을 놀렸다. “이곳은 제 희로애락이 다 깃든 곳이에요. 시합에서 지면 찾아와 무상무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러다 땅을 팔 건지 재건축을 할 건지 고민하다 저도 이제 은퇴할 시기가 됐고 직업을 또 가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무리해서 짓게 된 거죠.(웃음)” 이제 아내에게 의지할 나이 유쓰카페는 그 이름처럼 1~2층은 카페, 3~4층은 펜션으로 운영된다. 펜션은 룸이 4개밖에 없는 소규모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간이 아닌, 가족들이 와서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유쓰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자리에 아내 장은진 씨도 함께했다. 우리가 아는 선수이자 감독인 유승안은 카리스마 넘치는 강직한 원칙주의자다. 그렇다면 아내에게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들에겐 너무 좋은 아빠예요. 집에서는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본 적 없고 스트레스를 표시한 적도 없어요. 아이들에게는 늘 져주는 아빠죠. 그런데 제 입장에선(웃음), 한 15년 정도는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기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일은 남편이 아닌 기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러나 60세에 가까워지면서 순화가 되더라고요. 요즘은 저와 상의도 많이 하고 말투도 엄청 부드러워졌어요.” 그렇다면 그가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앞에서 타박 아닌 타박을 당한 그가 슬쩍 끼어들며 한마디했다. “우선 2~3년 전부터 여성호르몬이 증가했고(웃음) 이제 살길을 찾는 거죠. 앞으로 제가 의지해야 할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마누라니까, 안 까불려고.(웃음)” 프러포즈도 제대로 안 한 남편과 미국에 같이 간 이유 두 사람의 주거니 받거니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내와의 만남을 “홈런을 쳤다”라고 표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두 아들을 안겨준 첫 아내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내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난 귀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혼한 후 18년을 함께 살았다. 이제 와 다소 늦은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아내에게 남편이 이상형이었는지 짓궂게 물어봤다. “하나도 아녔죠.(웃음) 저는 구단 직원이어서 친분은 없지만 어쩌다 가끔 보는, 알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몹시 남자다웠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 프러포즈도 없었어요. 비슷하게 한 말이, ‘네가 있어야 내가 미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고, 네가 없으면 일본을 가야 하는데 난 미국에 가고 싶다’였어요.(웃음) 미사여구로 꾸민 말도 아니고 그저 담백했죠. 그런데 그때는 남편도 믿음직스러웠지만 두 아이들도 좋았어요. 애들과 코드가 잘 맞았거든요. 사실 지금도 남편보다는 애들과 친해요.(웃음) 그래서 결혼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죠.” 두 사람은 결혼 후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아내는 거의 두 아들하고만 지냈다. 남편은 연수를 해야 해서 늘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랬기 때문에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남편이 일과를 끝내고 들어오면 밤 열두 시였어요. 그러니 저희는 저희끼리 살아남아야 했죠. 애들은 저를 의지했고 저도 애들만 바라보며 지냈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였지만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서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야구 집안의 두 아들과 막내딸 그가 한화 이글스 감독이 되어 귀국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원래 살던 서울을 떠나 대전에서 지내야 했기에 가족끼리 똘똘 뭉쳤다. 여러모로 이러한 환경이 그들 가족을 의기투합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게 새롭게 연을 맺은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그토록 원하던 딸이 한 명 태어났다. 너무 감격스러워 이름을 은혜라고 지었을 정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딸은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런 딸에 대해 얘기하는 엄마의 모습에는 믿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걸 하면 좋겠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이상과 현실이 워낙 뚜렷한 아이라.(웃음) 어렸을 때도 스스로 잘 자랐으니, 진로도 알아서 곧 찾아낼 거라고 믿어요.” “저희 딸이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할 도리는 다할 테니까.” 두 아들은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다. 다름 아닌 야구다. 일찌감치 야구선수로 활동해온 첫째 아들 유민상은 KT 위즈, 둘째 아들 유원상은 기아 타이거스 소속 선수로 뛰고 있다. 유승안 집안은 야구 패밀리로 유명하다. 자식농사 끝내 홀가분 지금까지 젊은이들과 함께 부딪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젊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사실 유승안은 다섯 살짜리 손주를 둔 할아버지다. 두 아들이 벌써 결혼해 손주까지 안겨줬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자식농사 끝난 거죠. 홀가분해요.” 아내는 남편과 살면서 의견이 심하게 부딪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소리 내어 싸워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고. 아이들과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조화가 잘되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게 아내의 설명이다. “우리 가족을 겉으로만 보고 ‘힘들었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린 정말 잘 맞아요. 애들도 잘 커서 나름의 자부심도 있고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안 그랬으면 일 년 정도 살다 말았겠죠.(웃음)” 그런 아내를 유승안은 고마움 가득한 시선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악조건인 상황에서 여태까지 잘해왔고… 그래서 너무 고맙죠. 앞으로는 이쪽에 예속돼 살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내가 동의를 해야지!(웃음)” 평생 야구만 한 유승안의 새로운 도전들 유승안은 타고난 스포츠인이다. 스포츠는 일단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야구를 ‘토털 인생’이라고 칭하는 그는 미션이 주어지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노력 안 하고 무리 안 하면 좋은 걸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제2인생에 야구가 여전히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매니지먼트, 에이전트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하는 걸 검토 중이에요. 스포츠 아카데미, 재활 프로그램 등을 아우르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긴 지 30년이 넘었는데 아직 육성, 재활 쪽으로는 체계가 안 잡혀 있어요. 현재는 영리 목적으로 야구인이 아닌 사람들이 맡고 있는데 이제 우리 1세대가 해볼 만하다 싶어요. 미국이나 일본은 그런 시스템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교육 리그(시즌이 끝난 뒤 훈련이나 신인선수 발굴을 목적으로 펼치는 단기(短期) 리그)다. 경찰 야구단 2대 감독을 10년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육성 전문가로 거듭난 그는 교육 리그 창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 야구가 대만, 중국에 다 졌어요. 올림픽 예선도 멕시코를 이겨 겨우 올라갔죠. 동양권에서 꼴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원인은 육성에 있다고 봐요. 미국, 일본, 대만에는 교육 리그가 있어요. 한국만 없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교육 리그를 만들어볼까 해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거죠. 그러려면 앞으로 나서는 사람과 기업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진행이 되니까요.” 둘이서만 함께 살고 싶은 마음 유승안이 일단 저질러놓고 결과를 보는 스타일이라면 아내는 한 번 더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남편이 막 나가려 하면 그녀가 제어를 한다. 부부가 그처럼 잘 어울리는 이유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남편은 꿈이 커요. 반면 저는 작지만 계획을 세우면 완벽히 하는 쪽이고. 제 꿈은 뭔가 큰 게 아니라… 우리 둘만 지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요. 그래서 둘이 살면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제주도에 가는 것도 좋고, 펜션 사업도 좋아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목적에서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소소하게 남편과 함께하고 싶은 거예요.” 인터뷰 내내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즐거운 농담 속에서 피어나는 시간 속에서 이들 가족이 행복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느껴졌다. 눈이 온 창 밖 겨울 호수에 비치는 빛이 새롭게 시작된 미래를 향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될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 2020-03-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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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대한 진지함이 배인 서정적인 시어들…
- 50~60대 중장년층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집 ‘사랑하는 것들은 흔들림의 건너편에 있었다’가 출간됐다. 강원도 산마을로 귀촌해 사는 김경래 시인이 산속 생활을 하며 느끼는 감성들을 담아 쓴 시와 손글씨로 엮은 시집이다. 베이비붐세대로 전원생활하며 사는 중년의 시인이 바라본 세상은 매우 감성적이고 서정적이다. 삶과 자연을 바라본 시선들은 깊고 진득하여 짧은 한마디에도 인생과 우주와 자연이 담겨있다. “요즘 시들이 너무 어려워 잘 읽히지 않습니다. 공감할 수 없는 감정과 이해할 수 없는 시어들 때문에 혼란스럽습니다. 시 짓는 방식이나 기교가 많이 발전했기 때문이겠지만 시 읽는 독자들이 다가가기는 너무 난해합니다. 특히 중장년층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담아낸 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노래로 치면 락이나 랩만 있고 트로트는 없습니다. 어릴 적 트랜지스터에서, 전축에서 들었던 트로트 같은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추억 있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심금을 울렸으면 합니다.” 도시 생활을 접고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의 산마을로 귀촌해 문화공간 카페와 1인독립출판사 ‘시골편지’를 운영하며 사는 김 시인은 전원생활과 시골생활, 전원주택 등에 관한 취재를 해 신문 잡지 등에 많은 글을 썼고 다수의 책을 냈다. 오래 전 등단은 했지만 시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20-02-2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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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VIP '오팔세대'를 위하여!!
- 영롱한 광채를 뽐내는 ‘오팔’은 밝은 에너지를 가졌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욕망을 풀어놓는 오팔의 의미를 보면 기운이 솟구친다. 기성세대보다 더 스스로를 가꾸고 자기계발과 취미활동에 적극적인 50~60대 시니어들과 닮았다. 그래서 이들을 ‘오팔세대’라 부르나보다. 사실 오팔세대의 오팔(OPAL)은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앞 글자를 딴 조어다. 동시에 베이비붐세대의 상징 ‘58년 개띠’의 오팔을 의미한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오팔세대는 이제 은퇴의 길을 걸으며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시장은 오팔세대인 50~60대 시니어 고객 모시기에 집중한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니어 비중이 커지는 만큼 기업들은 그들을 위한 서비스와 문화행사를 강화하며 고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저금리시대에 예대마진이 줄어들자 시니어에게 적합한 상품을 개발하며 이들의 자산관리와 똑똑한 소비를 도와 수익창출을 도모한다. 자연스레 최우수고객(VIP) 대열에 합류한 시니어들은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며 화려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백화점: 할인 혜택과 문화행사 강화 50~60대 시니어가 백화점 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신세계백화점의 최근 3년 실적을 분석해보면 50~60대의 매출 비중은 30~40대보다 낮지만 고객단가는 가장 높다. 비싼 상품에도 지갑을 잘 여는 우수고객이란 의미다. 이들 중 연간 2000만 원 이상 소비하는 VIP 비중이 일반고객보다 8배가량 높아 백화점으로선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고객이다. 이렇다 보니 백화점이 시니어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풍성하다. VIP의 경우 등급별로 차등 적용된 할인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에선 각각 5~10%, 현대백화점은 5% 할인된 가격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아카데미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문화센터 정규강좌 50% 할인, 신세계백화점은 학기별 강좌 1개 30% 할인~무료 수강, 롯데백화점은 1개 강좌 20% 할인~2개 강좌 50% 할인, 현대백화점은 5% 할인 혜택을 준다. 뿐만 아니라 기념일 축하선물과 항공권 할인, 발레파킹, 무료주차 등이 VIP 등급별로 차등 제공된다. 시니어를 위한 문화행사와 이벤트 초청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신세계백화점은 2011년부터 예술의전당과 제휴를 맺고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VIP 전용 문화공연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을 연다. 그동안 서울시립교향악단,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피아니스트 조성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 세계 유수의 클래식 대가가 이 무대에 올랐다. 현대백화점도 매년 VIP를 위한 문화강좌인 ‘더 스튜디오 클래스’를 열고 있다. 연 4000만 원 이상 구매한 ‘쟈스민 클럽’ 회원만 참여할 수 있다. 요리,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강사로 나온다. 정치·사회·문화 등 각 분야 명사가 직접 추천한 책, 공기정화식물, 난, 꽃 등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은행: 알짜 금융상품과 은퇴설계 지원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고객을 위한 금융상품도 시니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올해 1955년생이 65세로 고령자가 되고 1960년생 은퇴자도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은행들이 시니어 특화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어 꼼꼼히 들여다볼 만하다. KB국민은행은 KB골든라이프 ‘열두번의 행복’ 시리즈를 추천했다. 이 상품은 매월 찾아오는 월급날의 행복을 은퇴 후에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분할지급식 투자상품으로 ‘낮은 위험,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현재 펀드와 신탁상품이 있다. KEB하나은행은 ‘행복 노하우 연금예금’을 소개했다.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확보하고 매달 수령하는 원리금을 생활자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돈이 많이 필요할 때는 많게, 그렇지 않을 때는 적게, 이자만 필요할 때는 이자만 수령할 수 있다. 노후설계에 대한 실질적인 어드바이스가 필요하면 각 은행의 시니어 혜택 플랫폼을 이용해보자. 신한은행은 ‘신한 미래설계’로 고객의 은퇴를 지원한다. 금융 서비스와 함께 비금융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은퇴설계전문가(ARPS) 등 금융 관련 전문자격을 보유한 645명의 미래설계 컨설턴트를 전국 영업점에 배치해 고객의 은퇴 이후 현금흐름을 분석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미래설계센터에서는 부부은퇴교실, 미래설계캠프 등 다양한 은퇴교육 프로그램이 열린다. 우리은행은 서울 신촌점과 명동점에 ‘우리 시니어 플러스 센터’를 열고 공간 대여와 맞춤형 금융정보 공유강좌, 은퇴설계교육 등을 진행한다. 자산관리와 연금 관련 세미나도 열린다. 이와 함께 시니어 맞춤 온라인 금융과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어고객 전용 ‘시니어 플러스 홈페이지’도 운영 중이다. 카드: 똑똑한 소비 돕는 풍성한 혜택 시니어를 위한 똑똑한 카드 상품도 챙겨보자. KB국민카드는 ‘KB골든대로 체크카드’를 추천했다. KB골든대로 체크카드는 50~60대 고객의 생애주기에 특화된 업종 이용 시 결제금액의 5%가 포인트로 적립되는 중장년층 맞춤형 상품이다. 이 카드는 전월 이용 실적이 30만 원 이상이면 △병원, 약국 등 건강 관련 업종 △대형마트, 주유소 등 생활밀착 업종 △골프, 사우나 등 여가 업종 △생명·손해보험 등 보험료 결제 시 월 최대 2만 점까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신한카드의 시니어 계층을 위한 ‘신한미래설계카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카드의 주력 서비스는 의료비 할인 혜택이다. 병원·약국은 물론 동물병원에서 월 최대 1만 원까지 결제액의 5%를 할인해준다. 생활비 할인 혜택도 돋보인다. 4대 주유소에서 ℓ당 60원(월 최대 30만 원), 3대 대형마트에서 5%(월 최대 1만 원), 대중교통과 택시 이용 시 5%를 할인해준다. VIP를 위한 프리미엄급 카드도 시니어의 현명한 소비를 돕는다. 롯데카드는 최근 프리미엄 라인업을 확장하며 ‘엘클래스 L60’을 선보였다. ‘프리미엄의 깊이를 경험하다’라는 콘셉트를 가진 엘클래스 L60은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의 VIP 멤버십 혜택을 제공한다. KB국민카드의 탠텀은 해외여행을 할 때 사용하기 좋다. 페닌슐라 등 해외 유명호텔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객실 등급도 올려준다.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항공 마일리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신한카드도 ‘더 베스트’, ‘더 클래식’ 시리즈를 내놓았다. 여행과 레저,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른 프리미엄 카드보다 쉽게 바우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호텔·문화: 포인트 적립과 클래식 향연 호텔 회원으로 등록한 시니어라면 할인된 가격이나 포인트를 적립하며 객실을 이용할 수 있다. 신라호텔은 객실 이용금액의 1~3%, 식음료 이용금액의 최대 1%가 적립된다. 또한 객실 업그레이드 서비스(연간 최대 5회)와 무료 세탁 서비스도 회원등급별로 적용해 지원한다. 롯데호텔은 객실 이용금액에 따라 3~6%의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이 포인트는 롯데호텔앤리조트 객실, 식음업장을 비롯해 롯데면세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세탁 서비스 10~20% 할인, 식음료 5~10% 할인, 객실 업그레이드, 1박 무료숙박권 등의 혜택도 회원등급별로 제공한다. 풍요로운 문화생활도 시니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예술의전당의 노블회원(70세 이상·무료가입)이라면 공연 40% 이상 할인, 무대리허설 관람, 음악감상강좌 30% 할인, 월간 ‘노블N’ 발송 등의 혜택이 따라온다. 유료회원일 경우에는 공연·전시 5~40% 할인(최대 5매), 선예매 서비스, 음악회 초청, 아카데미 수강료 5% 할인, 제휴매장 및 우대 서비스 등이 제공된다. 세종문화회관의 회원은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무대 위의 몸짓, 오래된 명화의 감동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연회비는 5만~10만 원으로 공연당 4~6매를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세종예술아카데미 할인과 공연 프로그램북 등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유료회원가입이 제한된 상태. 향후 개선된 서비스를 다시 제공할 예정이다.
- 2020-01-2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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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생한방병원, 어르신 의료봉사로 새해 첫 사회공헌활동
- 자생한방병원은 8일 서울시 강남구 논현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 대상 한방 의료봉사를 펼쳤다. 자생한방병원 최성률 한의사를 비롯한 의료진 및 임직원들은 노인성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 어르신 30여명을 대상으로 한방 의료 서비스를 실시했다. 침 치료와 함께 개인별 맞춤 건강 상담을 통해 겨울철 건강 관리법 등을 제공했다. 더불어 간편하게 근골격계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한방파스를 지급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2020년부터 우리나라 베이비붐세대가 노인 인구로 진입하는 등 고령화 속도가 급증하며, 이에 노인성 근골격계 질환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자생한방병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노인을 위한 한방 의료봉사를 꾸준히 실시해 지역민들의 척추∙관절 건강을 돌볼 계획이다. 자생한방병원 이진호 병원장은 “2020년을 시작으로 노인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새해 첫 사회공헌활동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한방 의료봉사를 선택한 이유”라며 “병원밖에서 척추∙관절질환으로 고생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 올해도 어르신들이 활기찬 일상을 즐길 수 있도록 자주 찾아뵙고 건강을 살피겠다”고 말했다. 자생한방병원은 지난해 12월 한방 의료봉사로 지역민의 건강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논현노인종합복지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바 있다.
- 2020-01-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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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 1955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1978년에 데뷔해 올해로 예순다섯 살. 그러나 이치현의 모습에서 그 세월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1980년대를 휘어잡던 순간의 ‘이치현과 벗님들’ 리더 이치현이 세월을 뛰어넘어 그대로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여전한 젊음과 변치 않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더 성숙하고 테크니컬해진 그의 라이브를 보면 시간을 거꾸로 먹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심지어 신곡을 준비하면서 내년부터는 ‘전투를 치르듯’ 전국 라이브 투어를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그를 만나 그의 음악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올해로 벌써 41년째 롱런 중인 이치현과 벗님들은 흔히 ‘한국의 비지스’라 불린다. ‘당신만이’, ‘사랑의 슬픔’, ‘다 가기 전에’, ‘집시여인’ 등의 히트곡들은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밴드 사운드의 진가를 보여주는 곡들이며 여전히 애청되고 애창되는,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이다. 이치현과 벗님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치현에게는 여전한 젊음과 특유의 우수가 있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수에 젖었다기보다 ‘이 일이 내가 맞는 건가,(웃음)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며 생각이 많아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거죠.” 반쯤은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는 사실 가수가 될 꿈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명곡들과 그의 감미로운 음색을 생각하면 의외의 얘기였다. 어쩌다 가수가 된 기타리스트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산타나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연주자가 활동하기가 어렵잖아요? 더구나 유명하지도 않았으니 누구에게 곡을 줄 수도 없었고.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불러야지.(웃음)” 산타나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라틴 록 기타리스트의 전설이다. 사실 잘 살펴보면 이치현이 그에게 영향을 받은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탁월한 기타리스트로서 여전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 대표 히트곡 ‘집시여인’, 그리고 그의 최근 라이브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라틴 스타일로 더욱 세련되게 편곡됐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라틴 록과 밴드 사운드에 기반을 뒀지만 그가 한 가지 장르만 했던 것은 아니다. 팝 발라드에서부터 신스 팝, 로큰롤까지 다양한 음악적 접근을 해왔다. 그룹사운드를 하면 한 장르를 계속 파야 하지만, 그보다는 음악적 변화를 시대에 따라 맞춰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음악 그만둘까’ 싶었던 순간들 그렇게 대중가요 가수이지만 밴드 사운드에 기반하고 있는 그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밴드를 뚝심 있게 이끌어간다는 것은 외국처럼 장수하는 밴드가 없다는 점을 봐서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위기는 자기 자신과의 갈등에서 와요. 경제적인 위기는 능숙해요. 워낙 바닥을 치며 올라갔고 무명생활도 오래해서.(웃음) 가장 힘든 게 ‘내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둘까?’ 하면서 내 음악에 한계를 느낄 때죠.” 그가 자신의 음악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시대적인 문제와도 결부된다. 라이브 밴드를 추구하는 음악인들이 설 자리가 많이 사라졌고 가요계의 주류도 밴드 사운드를 유지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얼마 전 7080세대에게 논란이 됐던 KBS의 ‘콘서트 7080’ 폐지 건이 그렇다.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콘서트 7080’이 폐지된 데는 물론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죠. 7080시절 음악했던 사람들을 막상 찾아보면 지금 음악을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 새 앨범을 내지 않고 ‘추억팔기’만을 하는 가수들이 출연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시청률이 떨어지게 됐고요. 음악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어야 하고 뮤지션은 신곡 활동도 꾸준히 병행해야 하잖아요.” 지나친 쏠림 현상 안타까워 요즘 사회나 기업체들을 보면 7080세대가 주류가 됐다. 이치현과 같은 시대의 가수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트로트가 7080세대의 음악적 대세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 물결이 너무 거세다 보니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라이브 밴드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현실에 그는 더욱 힘들어하고 있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차원, 음악적 현실에 대한 고통이었다. “시대의 변화이겠지만, 요즘 가수들은 거의 탤런트가 돼야 해요.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하고. 난 그러고 싶진 않거든요. 내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꾸준히 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래서 억지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다 보니 이 모양이지.(웃음)” 변화된 음악 현실에 방황도 깊어졌다. 그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계속 방황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 미국을 네 번 왔다 갔다 했어요. 한국에 있기 싫어서 미국에서 공연하려고요. 환경이 안 변하면 내가 못 살겠기에. 곡은 안 써지니 밤마다 괴롭고…. 내가 해야 할 음악의 장르를 못 잡는 거예요. 안 그랬거든요.” 소극장 투어로 팬 저변을 넓히다 그래도 그는 마침내 결론을 냈다. ‘좋은 경치를 봤다고 좋은 곡이 나오는 건 아니다’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2016년에 내놓은 정규 앨범 14집 이후 오랜만에 싱글 앨범을 제대로 준비해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바로 소극장 공연 투어다. “한 해가 끝날 때 되면 ‘올해 잘 보냈나?’ 싶죠. 나이가 드니 비보도 많이 듣게 되고, 시간도 확 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버킷리스트는 아니더라도 머릿속에 있는 걸 실행하자고 결심했어요. 그게 내년 3월부터 시작할 전국 소극장 공연이죠. 깨질 때도 있고 힘든 상황도 있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부딪쳐볼 거예요.” 그는 이미 1984년부터 5~6년간 무려 10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즉, 소극장 무대의 맛과 즐거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사실 그래서 작년에는 그런 소극장 무대를 다시 한 번 부활시킨 적도 있다. “관객들이 예전에는 학생들이었는데 이젠 다들 어른이 되어 주차장이 없어서 힘들어했는데(웃음) 공연은 꽉 차서 끝났어요. 그분들이 말하길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소극장에서 얼굴 표정을 다 읽고 땀 흘리고 그러는 걸 보면서 함께 공연하는 거니까요.”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본 그의 성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능하겠지만, 그는 앞으로 나와서 ‘나대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자신의 성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너무 싫어하는 쪽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성향이 남아 있기에, 그의 젊은 시절은 지금보다 더했을 수밖에 없다.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제게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어요. 원래 남 앞에 못 서는 성격인데도 한 거니까요. 그래서 1984년에 4집 앨범 녹음하며 방송을 접고 대학로에 들어갔죠.” 그의 소극장 공연은 대박이 났다. 그리고 가수로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인간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였다. “물론 여대생들 앞에서 1000회를 공연한다는 게,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때 성격이 변했어요. 대화하는 법을 억지로 힘들게 익힌 거예요. 지금도 저는 제가 봐도 어색해요. 그래서 방송 녹화한 게 있으면 가족들하고 안 보죠. 나 혼자만 보면서 반성할 게 뭐 있나, 왜 저랬을까 합니다. 그게 본 성격인 거 같아요.” 무대와 객석은 구분되는 게 품격 그는 프로답게 자신이 대중음악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인터뷰 내내 계속해서 ‘음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한 것과도 관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느리긴 해도 끊임없이 자신을 대중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노정이 어쩌면 이치현이 지속적으로 발전한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좀 까다로워서 무대 같지 않으면 안 올라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후배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라이브 카페 같은 데서 공연하기도 했죠. 당연히 환경이 열악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좋아하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잘되는 걸 보니 거기서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대중과 마주하되 자신의 격만 안 떨어뜨리면 되겠다 생각한 거죠. 물론 무대와 객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게 품격이니까요.” 칠순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역시 팬들이다. 그의 팬클럽은 회원 수 1500여 명이 가입한 ‘늘벗회’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그를 지지해준, 역사가 깊은 탄탄한 팬들로 그의 공연에 항상 힘이 되어주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자 위안 아닐까.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될 것 음악이 운명이라는 말처럼, 그의 딸 둘도 음악과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딸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지 목소리가 바뀌었다. “첫째 딸은 플루트를 해요.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와서 올해 동창하고 결혼했죠. 결혼 안 시키려 했어요. 들어간 돈이 얼만데.(웃음) 사실 재밌게 살고 있어요. 둘째도 원래는 음악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해서 음악심리학으로 바꿨어요. 작은애는 지 편한 대로 자유롭게 살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과 가족들 모두가 음악과 관련이 있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음악은 본인과의 싸움이 너무 심해요.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건축가라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그는 중학교에서 미술 관련 상을 휩쓴 기대주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예고에 진학하지 못해 미술인으로서의 꿈은 접혔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건물의 건축 재료를 살펴보고 두들겨본다고 한다. “음악은 사람을 너무 좁게 만들어요. 물론 음악의 세계는 굉장히 넓죠. 그러나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좁아요. 음악 대신 빌딩 하나 지어보고 싶고 그렇죠.(웃음)”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치현의 가족들 중 음악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그의 아내다. 교육학과를 나온 아내는 도서관에서 살며 자녀들 교육에 평생 매달렸다. 요즘 그는 부쩍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아내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요. 젊었을 때는 같이 못 놀아줬고 ‘여보, 여보’ 하며 살갑게 다가가는 성격도 못 되고…. 우리나라 부부들이 나이를 먹으면 각자 놀잖아요? 그런데 유럽에 가보면 서로 목도리를 해주며 손잡고 다니면서 카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흰머리의 노부부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칠십부터는 같이 손잡고 다니면서 외롭지 않게 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은 같은 감성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그는 감성과 추억으로 버무리고 채워질 소극장 라이브를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신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거듭 아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그리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우선 그가 도달해야 할 음악적 성공의 지지자로 응원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가 아내와 함께 만들게 될 아름다운 황혼을 기대한다. 그 희망이 오늘 이치현을 또 설레게 할 것이다.
- 2019-12-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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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윷판에 두 번째 인생을 던졌습니다”
- 평범한 세일즈맨의 일생이었다. 그저 그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무난한 삶을 원하는 이 시대의 가장.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또 하루를 지내다 보니 어느덧 베이비붐 세대라는 꼬리표와 함께 인생 후반전에 대한 적잖은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지금까지 숨죽이고 조용히 살았으면 됐다 싶어 너른 멍석 위에 윷가락 시원하게 던지듯 직장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 전반전 인생이 무채색이었다면 후반전은 돌고 도는 윷판 속에 수만 가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윷놀이연구소의 조광휘(趙光彙·56) 소장을 만났다. 용산구 효창원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주택가 한 모퉁이에 윷놀이 연구소가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벽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긴 윷판이 부착돼 있고 박스와 작은 선반마다 윷놀이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집이랑 가까워서 이곳에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월세도 싸고요.” 한복을 입고 반갑게 많이 하는 조광휘 소장은 찾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시원한 물과 커피를 내놓았다. 그저 명절이 되면 누군가 어디선가 꺼내 달력 뒤를 펴서 도, 개, 걸, 윷, 모 윷판을 매직펜으로 그려놓고는 동전 혹은 바둑알 색으로 편을 나누어 윳놀이를 한다. 언제부터 윷판 그리는 것을 기억해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들 잘도 그린다. 윷판 위에 말을 올리고 놓는 것도 수준급. 다들 알고 있는 이 윷놀이에 무슨 매력이 어떤 새로운 점이 있어 윷놀이 연구소까지 열었는지 궁금했다. “저는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인 1963년생입니다. 부산 출신으로 KB국민은행에서 27년 6개월 동안 일하다가 2017년 희망퇴직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을 윷과 함께 맞이했습니다.” 그가 회자될 때 불리는 직함은 바로 우리나라 1호 윷놀이전문강사(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 전문강사 양성과정 인증). 30년 가까이 고객 응대하던 친절한 행원이 한판 흥겨운 윷놀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알리는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뭘 좀 준비하고 회사 밖을 나왔어야 하는데 사실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입행할 때 130명이 들어갔는데 현재 29명이 남아 일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좀 많으면 빨리 퇴직하더군요. 그리고 지점장까지 오른 사람들도 회사생활을 마감하고요. 지점장이 안 된 사람들은 오래 근무를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받아오던 임금의 반을 받으며 정년까지 일하는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든가 아니면 퇴직을 하는 거죠. 팀원 내에 계속 남아 있는 동기들은 여러 가지 사연 때문에 근무를 선택한 거죠. 저는 지점장은 아니고 팀원으로 퇴직했습니다. 굳이 진급 못한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상급자에게 잘하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웃음)” 은행의 지점에서 일한다는 것은 영업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가 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로 정년까지 근무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은 아련하기만 했다. 어제까지 선배 대우 잘해주던 후배도 임금피크제로 보직이 변경된 선배에게 색안경 끼고 행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저렇게까지 이곳에서 일해야 할까?’ 하는 의문과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희망퇴직도 기간에 대한 보상이 있거든요. 특별 퇴직금이 있었어요. 제 인생을 생각해보니까 60세에 은퇴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못할 거 같았어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하고 은행을 나왔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별생각 없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한 우물과도 같은 직장을 박차고 나왔으니 솔직한 마음으로 앞이 캄캄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땄던 자격증은 금융기관이 아니면 써먹을 곳이 없었다. 새 삶을 살려면 옛것을 버려야 했다. 지금까지 했던 것 말고 무엇을 하고 싶었고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었다. “구직활동을 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잖아요.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보고 시험도 보러 다녔습니다. 백세시대이다 보니 제가 노노(老老)케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쪽 일을 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요하더라고요. 자격증의 필요함을 느꼈다면 현직에 있을 때 땄겠지만 그때는 조직에 충성하기도 바빴습니다. 주5일 근무제가 되어 시간이 많아졌다지만 자기계발하는 친구가 주변에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스트레스 많은 직종이기도 하죠. 돈을 다루고 고객을 대하는 일이요. 지금은 비대면이 많지만 저는 온전하게 대면하는 은행원의 삶이었죠. 아무 대책 없이 인생 2막을 생각한 것이 후회스럽긴 합니다.” 은행 생활에서 윷놀이를 발견하다 윷놀이에 대한 관심은 은행원 시절부터 있었다고 했다. 조직에 있을 때 서무파트 담당을 많이 하다 보니 야유회나 체육 행사 계획을 도맡게 됐다. “1박 2일 혹은 당일 코스로 계획을 짤 때마다 윷놀이를 포함했습니다. 소통 놀이로요. 은행에 팀이 4개였는데 토너먼트로 윷놀이를 하면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놓았는데 사람들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퇴직 후 보통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하는 활동 중 하나는 실질적인 구직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부에서 인가한 단체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공덕동에 있는 노사발전재단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금융전문강사 양성과정이 있었어요. 처음 1주 과정을 마치고 나니 저더러 5분 스피치를 준비하라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스피치를 준비할 때 재무관리, 은퇴설계, 노후관리 등을 대부분 고르더라고요. 저는 금융강사가 되어보겠다는 절박함이 없었고 실업 급여를 받으려고 간 거였어요. 그래서 그냥 자유롭게 윷놀이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은행에 다닐 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마이크 잡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50세 넘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남들 앞에서 뭔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바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금융전문강사 강습을 받고 스피치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신경써보지 않았던 것을 배웠어요. 윷놀이로 5분 스피치를 했더니 잘했대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 뒤 심화과정 있다고 해서 들었는데 이번에는 15분 스피치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윷놀이가 주제였다. 반응이 또 좋았다. “15분 스피치 마치고 나서 며칠 후에 노사발전재단 강원센터에서 2시간 강의를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2017년 1월에 퇴직했는데 그해 8월 윷놀이로 첫 강의를 했습니다. 정말 짧은 기간에 강사로 서게 됐습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제가 강사로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윷판에 우리 역사와 삶을 담다 처음에는 어떻게 두 시간 동안 강의할까 걱정했는데 나중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말을 놓는 윷판에는 29개의 밭이 있습니다. 꺾어지는 곳은 모퉁이 밭이라고 해요. 윷판은 하늘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북두칠성이기도 하고, 땅위의 밭이기도 합니다. 윷판을 골똘히 보면서 그 안에 스토리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인터넷 검색으로 동서남북을 잡아 배치해서 윷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근대사와도 접목했는데 그게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였어요. 그분들 일대기의 키워드를 윷판에 담았어요.” 윷판은 세상의 이치와 역사, 지도, 절기를 적절히 담아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보드였다. “첫 강의에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강의를 하니까 두 시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습니다. 스토리를 담은 윷판을 제작해 윷놀이 세트로 17개나 출시했죠.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데 교육기관에서 관심을 가지고 구매하시더라고요. 오늘도 주문받아서 납품해야 해요. 기자님 가시면요.(웃음)” 윷놀이연구소의 든든한 조력자는 바로 노사발전재단에서 함께 금융전문강사 과정을 들었던 동기들이라고 했다. 과정을 모두 이수한 13명 중 10명이 윷놀이연구소 연구원으로 들어와 같이 의견을 나눈다고 했다. “노인대학처럼 인원이 많은 곳에 가면 200에서 300명 정도 되니까 혼자 가서는 감당을 못해요. 연구원 분들이 같이 가서 윷놀이 심판도 하고, 진행도 하십니다.” 물론 강사비가 발생하면 함께 나눈다. 앞으로 윷놀이 관련 강사 자격증도 만들 생각이다. “SNS에 윷놀이 전문 강사라고 띄워놓았는데 딴지거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 보니 제가 1호가 맞나봐요.(웃음) 인터넷을 쭉 훑어봤는데 예전에도 윷놀이가 너무 좋은 전통놀이니까 판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분이 좀 있었나봐요.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니 중도에 그만두셨더라고요.” 윷놀이판을 벌여놓았으니 할 일이 많기도 많다. 우리 전통놀이라고는 하지만 윷놀이에 관련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다. “구한말이던 1895년 미국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 교수가 한국, 중국, 일본의 놀이를 정리해서 쓴 ‘한국의 놀이(Korean Game)’에 보면 ‘한국의 윷놀이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수많은 놀이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아직까지도 이를 반박하는 논문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윷놀이가 인도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인도에도 윷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동물 뼈로도 많이 하고요. 윷놀이는 원래 조개로 했는데 고동으로도 할 수 있어요. 제대로만 정리하면 윷으로 대단한 발견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윷을 제대로 만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하는 조광휘 소장. “몰라요. 윷에 미쳤습니다. 하루가 정말 즐겁게 갑니다. 일단 윷놀이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옛날에도 우리와 함께했고 먼 미래에도 남아 있을 거예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합니다. 며칠 전에 윷 문화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민속박물관에 갔다가 천문도에 대해 강연하는 80대 강사를 봤습니다. 솔직히 내용보다도 나이 들어서 강의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나도 저렇게 가야겠다. 그때 딱 영감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것을 안 본다. 윷놀이만 보자. 은퇴하고 오십 훌쩍 넘어 발견한 제 인생 최고의 아이템이 바로 윷입니다.”
- 2019-09-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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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란 자신을 찾아가는 천직 여행”
- 인생을 2모작도 아닌 5모작까지 치르고 지금은 6모작을 준비 중이라는 사람, ‘N잡러’ 장필규 행복 제1연구소 소장은 1955년생으로 정확히 베이비붐 시대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100% 베이비부머다. 그는 요즘 프리워커로서 고용노동부 내공강사, 노사발전재단 전문강사, 경기도 6차산업 현장 코칭 컨설턴트, 인천농촌융복합 현장코칭 전문위원 등 다섯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년이라는 단어가 의미 없는 삶을 영위하는 셈. 장차 6모작을 넘어 9모작까지 완성하는 게 꿈이라는 그가 말하는 인생 후반기의 삶과 잡(job)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제 인생의 4모작은 50플러스재단 컨설턴트였고, 5모작은 N잡러로 활동하는 지금이죠. 이제 6모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시니어에게 일은 새로움과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여행하듯이 즐거움을 찾는 거지요.” ‘N잡러’ 장필규 씨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일하고 있다. 현재 그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 노사발전재단, 지방자치단체의 컨설턴트와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9모작을 최종 목표를 두고 6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직업상담사,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 “환갑을 넘어 케어를 받아야 할 사람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다고 집사람이 잔소리를 하네요.(웃음) 그런데 저와 같은 나이대에도 취약 계층이 있을 거예요. 제 연배의 장애인이나 소외 계층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은 거죠. 예전에 거창에서 일할 때 요양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나도 머지않아 그분들과 같은 입장이 될 텐데 이야기 들어주고 도와주니 즐겁더라고요.” 퇴직 없는 삶 위한 평생현역 꿈꿨으나… 그의 이름에는 베풀 장(張), 도울 필(弼)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줄 때 베풀고 도와주라는 의미로 새긴 게 아닐까. 현재 그의 모습은 이미 숙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건국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81년 두산그룹 계열사인 배합사료 회사 두산곡산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이 펼쳐지던 시기였고 그의 삶 또한 대기업 직장인으로서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그도 사회적 환경에 따른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그에게 던져진 자리는 두산종합식품 식품사업 부문의 김치공장 관리부장. 고민을 했지만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치공장으로 간 그는 관리부장, 공장장을 거치며 10여 년간 김치 제조의 일선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회사 주인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두산이 식품사업 부문 전체가 대상에 매각될 때 그는 6년 후배가 상사로 승진하는 것을 보게 된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그는 대상 소속으로 2년 정도를 더 지내다 2008년 4월에 퇴직한다. 끊임없는 도전, N잡러로 거듭나다 54세의 나이, 인생 1막이었던 대기업 직장인으로서의 27년은 끝이 났다. 삶에 대한 허무감과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고통이 동시에 밀려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치주염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아야 했던 그는 수술 후 재취업을 도와주는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찾아가는 것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이력서 작성법, 면접 스킬 등을 교육받은 그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농업 최고경영자 경영대학원 과정에 합격한 뒤 몇 번의 테스트까지 통과하며 마침내 울진농수산물유통농업회사법인 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토록 고생하며 올라간 자리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결국 대표 자리를 그만둔 그는 마침 일본 회사와 울진군의 합작 회사인 울진로하스코리아에서 대표 제안을 해와 CEO로서 3년을 지냈다. “인생 2막의 과정은 지방에서 CEO로 일을 하며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면서 재무 문제도 해결되고 가족관계는 물론 건강도 좋아졌죠.” 울진로하스코리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2012년 말부터 일자리희망센터를 찾고 취업박람회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농촌진흥청에서 마케팅 전문위원으로 인생 3막을 펼쳤다. 이곳에서 5년간 근무하며 농가 500곳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이어 서울시 50플러스재단, 노사발전재단, 고용노동부 등지에서 강사 및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4막의 장을 펼쳤고 진정한 N잡러가 되었다. 수입 적더라도 즐거움 주는 천직 찾아야 “이제 베이비부머들은 잡(job)이 아니라 워크(work)를 해야 해요. 워크는 천직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천직을 찾아야 오래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에게 시니어 구직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묻자 제2인생에서는 일이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일이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지난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수입은 적더라도 길게 오래할 수 있는 천직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그가 N잡러로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나이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의 직업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적어도 세 개 내지 다섯 개는 가지고 있어야 과거 연봉의 절반 정도가 되죠. 특히 시니어는 공부를 위한 비용이나 손주들 용돈, 네트워크 유지비 등 지출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가 또 강조하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 관계의 유연성이다. “적을 만들면 안 됩니다. 제 주위를 보면 어떤 사람과는 케미가 맞지 않다고 안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그건 취향이기에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릴 순 없죠. 다만 기왕이면 유연성을 갖고 적을 만들지 말아야 평화롭고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 유연함으로 세상 대하기 그런데 삶의 부침들을 겪으면서도 마음의 유연성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걸까? “어느 접점에 있든 열린 마음을 실천하는 겁니다. 역지사지라고 하죠.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불편한 일이 많아져요.”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 그는 도전적이라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 성품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쟁취해온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결과도 그의 열린 마음 덕분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 “박사학위를 가진 시니어도 일에 대한 욕망이 뜨거워요. 그런데 한국인은 디테일에 약해요. 그래서 매뉴얼이 있어도 막상 긴박한 상황이 되면 제대로 써먹지 못합니다. 습관화가 안 된 게 문제입니다. 그걸 극복하려면 계속 반복하고 고치고 훈련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는 구직을 하려면 ‘어떻게’에 관한 디테일한 액션 플랜을 짜서 지속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테스트에 통과하며 자신의 자리를 잡은 그이기에 신뢰가 갔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천직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는 그도 구직자 입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구직자들을 상담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게 삶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양쪽을 다 경험해본 그에게 두 입장에 대해 물어봤다. “구직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들은 고객 니즈에 맞게 세분화, 효율화되고 향상되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시도가 진행되다가도 중간중간 끊기더라고요. 그게 아쉽죠. 그리고 구직자들의 입장을 보면, 그래도 구직을 위해 오는 사람들은 열정이 있는 거예요. 흔히 퇴직하면 ‘또 직장생활을 해야 해?’, ‘날 찾아주는 데는 없어’ 하며 의욕이 없는 경우가 많죠. 목표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퇴직하는 순간 놔버리는 거예요. 물론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건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무책임한 거죠. 그런 심리를 어떻게 끌어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그는 은퇴자 혹은 퇴직자들이 자기진단을 해보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적합한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렇게 자신을 파악하고 일을 찾다 보면 현실의 갭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그걸 인내하는 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인 중에 20년 동안 독일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말하길 ‘결론은 나를 찾게 되더라’ 하더군요. 나를 찾는 노력을 하고 준비하면 일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 주위의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욕심의 분모 줄이면 행복이 찾아온다 자신이 이 사회에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때 더욱 의욕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그는 100세 김형석 교수가 자신의 건강 비결로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은 것’이라고 한 말을 다시 전한다. “사람은 일이 있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어요. ‘60~65세가 자신의 황금기였다’는 김형석 교수님 말에 공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N잡러 장필규 소장은 자신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복론을 소욕지족(少欲知足)에 비유했다. 행복해지려면 욕심의 분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욕심의 분모를 자꾸 키우면 내려놓기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100분의 60과 60분의 60을 비교해보세요. 후자는 60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죠. 이렇듯 분모를 줄이면 60분의 60이 1이 되듯 가벼워집니다. ‘1’과 ‘일’처럼 디테일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 때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결국 ‘1’과 ‘일’처럼 은퇴 후 행복하게 살게 해줄 수 있는 놀이와도 같은 것이죠.” 노후에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면 많고 적음을 떠나 돈과 건강, 관계, 여가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강조하는 그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의식하지 않고 여행하듯 사는 게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담대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 2019-08-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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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연령,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법일까
- 은퇴한 시니어들의 화두는 뭐라해도 ‘일’이다. 300만 원 이상의 연금 수급자들도 돈을 떠나 ‘일’하고 싶어 한다. 재취업, 인생 2모작 등 현역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시니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니어들 사이에서는 노후 불안과 함께 65세 정년연장에 대한 얘기들이 뜨겁게 오가고 있다. 일하는 시니어가 많은 상황에서, 현재의 정년이 60세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는 일은 일견 단순해 보여도 쉬이 풀기 힘든 무수한 문제들이 따른다. 대체 정년연장으로 어떤 변화들이 발생할 것인지 짚어봤다. 정년연장 논의 가속화에 팔 걷어붙인 정부 정년은 누구에게나 오게 된다. 현재 시니어의 생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소위 ‘불이 붙은’ 이슈는 바로 ‘정년연장’일 것이다. 기존의 60세를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정년연장 화두는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본격적인 포문이 열렸다. 육체 노동자의 가동 연한을 60세로 산정한 원심을 깨고 65세로 늘려야 한다며 판례를 바꾼 것이다. 이어서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정년연장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23일에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정년연장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을 밝히고 6월 초에는 TV에 출연해 정부에서 현재 해당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음을 알리는 등 거듭해서 정년연장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6월 말에 발표된 60세 이상 고령자의 재고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정부 시책은 이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 정년 60세,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나라의 고령자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남성은 72세, 여성은 72.2세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2016년 기준이기에 2019년인 현재에는 더 높아졌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OECD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이대다. 그런데 한국고용정보원 추산에 따르면,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은 49.1세에 불과하다. 이는 첫 퇴직을 하는 평균 나이가 49.1세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완전히 일에서 물러나는 72세까지 22년이라는 긴 시간을 재취업 혹은 계약직, 자영업의 세계에서 일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다 지난 5월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5.2%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60세 정년이라는 현재의 기준은 은퇴 시점을 앞당기는 주요한 원인이면서 현실성 없는 기준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실에 맞게 정년도 5년 늘려서 65세로 간단하게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 간단한 해법 뒤에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역학 작용들로 인한 갈등들이 시한폭탄처럼 숨겨져 있다. 올해 769만 명으로 집계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20년 813만 명, 2024년 995만 명 등으로 늘어 2025년이면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청년 일자리와의 상충 100세 시대라는 명칭에 맞게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막대한 수의 베이비부머가 매년 80만 명이 은퇴하기 시작하는 근간에, 60세 정년이라는 기준은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보다 현실적인 나이인 65세로 올리는 일의 발목을 잡는 문제는 바로 청년실업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국내외의 문제들이 중첩되어 경제 침체와 함께 높은 청년실업률이 이어지며 사회적 갈등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다. 정년연장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청년 일자리를 시니어들이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있다. 정년연장의 실현을 통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로자 등 소위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일자리’이며 수년간의 고시 공부를 해서라도 들어가려는 곳이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러나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OECD는 일찍이 1990년대에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조기퇴직의 활성화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세대 간 비교우위에 따른 고용분리로 인해 기존의 일자리 전쟁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채택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양 세대 고용을 늘리는 정책 방향을 권고하고 있다. 이제 정부 입장을 보자. 현행 60세 정년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 예산 정책을 위협하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현행 60세 정년 기준은 대부분의 복지 우대 대상 나이를 65세로 묶어두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즉 60세 정년을 유지하면 복지혜택을 받는 ‘노인’의 기준 연령을 낮추게 돼서 대상자 수가 늘어나게 되고 복지 부문의 지출을 늘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복지혜택을 받지 않아도 되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시니어가 늘어나는 현재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까지 겹치면 복지 지출의 단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년연장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정년연장 정책은 연령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얽혀 있는 문제들이 서로의 급소를 죄고 있는 듯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 다음은 기업의 입장을 살펴보자. 국내 기업들 다수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임금 체계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정년연장이 이뤄지면, 65세까지 늘어난 시간에 따라 연공급에 맞추는 기업의 인건비 지출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60~65세 인구 내에서 정년연장을 보장받으며 일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의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무조건적인 정년연장이 임금 지출 상승 및 전체 국민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반발부터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정년연장과 함께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 60세 이상 직장인의 업무량을 점차적으로 줄여 65세에 은퇴 준비를 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비용절감과 함께 청년층의 고용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이다. 임금피크제가 정착되기 위해선 시니어 당사자들 전반의 이해와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관련된 갈등들이 이곳저곳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도 함께 검토해봐야 정년연장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국민연금이다. 현행 60세 정년을 계속 유지하면 소위 ‘소득 크레바스’라고 불리는 소득 단절시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기존 60세였던 국민연금 수급시점이 2013년부터 5년마다 한 살씩 상향조정돼 2033년에는 65세로 늘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 60세 정년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33년에는 최대 5년 동안 국민연금을 받지 못해 금전적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인구가 상당수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65세로 정년연장을 할 경우 국민연금 차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지금까지 본 사례들처럼,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일을 하면서도 연금을 받는 사람들로 인해 소득격차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연금공단 입장에서도 연금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성격의 지출이 발생함으로써 재정 부담과 함께 제도의 본질이 훼손되는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물론 2033년이 되면 65세로 수급 시점이 올라가니 65세 정년과 맞춰지겠지만, 그때까지 10여 년가량은 누수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즉 정년연장은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도 검토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선진국들의 대처 정년연장 문제는 전형적인 선진국형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제도가 갖춰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동인구 감소를 겪는 선진국의 사회 변화 추이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은 1980년대에 이미 정년 개념을 없앴다.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나이에 따라 차별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은 이보다 늦은 2011년에 대부분의 직업에서 정년제를 없앴다. 단 영국은 고령자가 직무 역량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부분적인 일자리들에서는 아직 정년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65세 정년을 적용하고 있는데 곧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대표적 장수 국가인 일본은 70세까지 정년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렇듯 선진국들은 정년연장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순서로 보고 발생할 문제를 해소하는 쪽에 집중해 대처하고 있다. 불가피한 득과 실,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지금까지 열거된 것들만으로도 정년연장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개인과 국가, 기관, 조직의 사정들이 얽히고설킨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정년연장의 적용이 이뤄지면 각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잃고 얻는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결과를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로써 정년연장 이슈를 공론화해, 철저히 사회통합적인 가치 기준에서 조정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 2019-08-14 0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