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리 창문’은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자기 발견 방법이다. 앞의 사진처럼 “타인이 아는 나와 타인이 모르는 나”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를 축으로 하여 4개의 창문으로 구분한다. 필자는 이 이론을 취미개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고 실제 경험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조물주는 인간을 창제할 때 평등을 주었다 한다. 잘할 수 있는 재능, 즉 끼도 마찬가지지 싶다. 어릴 때부터 그 끼를 발견하여 키워온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이 경우는 부모나 학교 선생이 그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준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성공 직업의 폭이 좁았다. 대통령이 되거나 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한때는 군인으로서 장성의 꿈을 꾸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스포츠맨이나 연예인을 꿈꾸고 그 외에도 자기 나름의 다양한 미래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준비에 매달려온 지난 날이었다. 그런 결과는 창의성이 가장 뒤처진 나라로 낙인이 찍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뿐만 아니라 은퇴를 한 베이비붐 세대들 또한 날로 늘어나는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어느 조사에서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없어서 집안에서 뒹굴뒹굴하게 되어 ‘삼식이’로 부인들의 잔소리를 듣는다 했다. 여가활동을 위한 준비를 못 해서다. 서구인의 경우는 은퇴를 무척이나 즐거워한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기 인생의 출발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과연 잘할 수 있는 끼가 없을까? 우리 세대는 전 반생의 삶에서 가족이나 직장을 위하여 매달렸다.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여가생활은 늘 뒷전이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꿈도 접어두기 예사였다. 그런 세월을 살다 보니 접어둔 꿈 자체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 시니어 세대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우선은 은퇴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수명도 늘어나 그 시간이 길다. 다시 말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직장인으로 살 때 늘 시간에 쫓기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날마다 일요일을 사는 셈이다. 하릴없이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은 고통이다. 장수시대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돈이 없이,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하릴없이 오래는 사는 것이라 한다. 1980년대 초에 인기리에 불렸던 팝송 ‘다니엘 분’의 'Beautiful Sunday' 가사처럼 아름다운 일요일, 기다려지는 그런 일요일이어야 한다.
취미활동이나 평생학습 또는 봉사활동 등의 여가활동이 필요하다. 그런 일 중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희망하는 분야가 취미활동이다. 그러나 실제는 텔레비전 시청이 1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할 수 있는 취미가 없어서라는 은퇴자도 많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취미개발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다행스럽게 꾸준히 해오고 있는 취미가 있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지 못하면 만들어야 한다.
간혹 “지금 배워서 뭐하려고?”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보내야 할 노후 시간이 너무 길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꼭 해야 할 의무적 시간을 제외한 순수 여가가 상상 이상이다.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또 나이가 들면 신체적 변화로 잠자는 시간도 줄어들어 여가는 더 늘어나는 꼴이어서 더욱 그렇다.
어떻게 취미를 개발할 것인가? 필자는 60살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진작가로 후반생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시작 시점에서 환경은 열악했다. 사진 솜씨는 초보자 그대로였고 장비 또한 똑딱이라 부르는 소형 카메라가 전부였다. 처음엔 단순한 취미로 그냥 한번 해보려고 했을 뿐이다.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만난 한 여인이 발견해준 필자의 사진 재능을 믿고 사진작가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계기를 통하여 삶의 새로운 방향이 열린 셈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로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조하리 창문’ 과 같이 ‘스스로는 모르고’ 있으나 다른 사람이 볼 때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재능을 다른 사람을 통하여 발견해 내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하여 그동안 자주 만나던 동창이나 직장인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필요해진다. 기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타성에 빠져있게 마련이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은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어서다. 자기는 모르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발견하는 ‘조하리 창문’도 이용해볼 만 하다
‘50년의 무뎌진 칼날을 다시 세우는 시간’, ‘꼰대를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던 수업’, ‘남편을 후배로 만들고 싶은 학교’. 서울50플러스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졸업생들의 반응이다. 겉치레로 끝나는 은퇴 수업이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교육의 현장, 그곳의 중심에 정광필(鄭光弼·60) 학장이 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닌 같이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정 학장의 인생 배움터를 찾아갔다.
2015년 SBS 다큐멘터리 에서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교육을 통해 새로운 길을 인도했던 그가 이번엔 베이비붐 세대의 인생 2모작을 위한 교육자로 나섰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르치는 학생들이 10대에서 50대 이상으로 바뀌었다는 것. 국내 최초의 도심형 대안학교인 ‘이우’의 초대·2대 교장으로도 지냈던 그는 여전히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참교육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 때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때 주안점을 둔 것이 ‘어떻게 아이들 스스로 깨어나게 할 수 있을까?’였어요. 고민하던 끝에 희곡 을 가지고 교육연극을 해보기로 했죠. 연극교육이 아닌, 연극을 매개로 한 교육연극이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운명을 거역하고 여러 고난에 직면하는 내용인데, 결국 그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게 목적이었죠. 다행히 결과가 좋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본 어른들이 ‘이거 우리도 한번 해보면 정말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사실 중·장년기야말로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내 운명이 뭔가를 고민하는 때잖아요. 그들에게도 이러한 교육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판단했죠. 그때의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 바로 50플러스인생학교입니다.”
지난 인생에서 뺄 것, 앞으로 인생에서 더할 것
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교육을 하지만 책상에 앉아 하는 수업은 극히 일부다. 그보다는 워크숍 형태의 활동이 주를 이룬다. 인생학교에 참여한 이들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느끼고 변화해나가길 바라는 의미에서다.
“이들에겐 강의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동안 살아온 삶 자체로도 이미 훌륭하죠. 새로운 걸 배우는 것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잘 끄집어내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동안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직장이나 가정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 와 보니 막연해져버렸잖아요. 그렇지만 이미 오십 넘게 살았으면 사람이 잘 안 바뀌거든요. 속에서는 고민이 많지만 드러내기 어렵고, 그런 미묘한 차이를 뛰어넘는 게 강의 하나 듣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죠. 길게 호흡하면서 깊이 있는 교육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단기적인 자극보다는 내재해 있는 열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교육은 총 10주 동안 이루어진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학장이라 하면 권위적인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는 이러한 인식부터 타파하고자 했다. 불필요한 구색 맞춤식 교육이나 의전을 없애고 알맹이 중심으로 가자는 게 그의 방침이다.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웠던 벽을 허물고 다가가니 학생들도 서서히 자신의 교육활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의를 들으러 온 수강생이 아니라 당사자 입장이 돼야 해요. 선생님의 가르침이나 이끌음보다 자신이 중심이 돼서 수업에 참여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수업이 내 것이 되고, 내 학교가 되고, 그러다 보면 정말 내가 뭔가를 풀어나간다는 느낌이 들죠. 그 느낌을 가져야 즐거운 변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중·장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대부분 강의 중심이잖아요. 명강사가 와서 멋진 이야기를 하고 가요. 그러면 일단 느낌이 좋죠. 느낌은 좋은데 그래 그럼 그다음엔? 이런 문제가 남잖아요. 느낌만 주고 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삶을 바꿔 갈 수 있는 과정이 뒤따라야죠.”
인생학교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제안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이를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성함으로써 아이디어와 힘을 얻고,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활동이 이어지게끔 지원하고 있다. 그의 바람대로 학생들이 스스로 자기 교육에 열정을 보일 수 있었던 건 입학 서류에 함께 제출했던 ‘마음 준비서’가 큰 역할을 했다.
“정원이 60명인데 선착순으로 뽑지 않아요. 그 대신 두 가지 질문을 하죠. 첫째, 지난 삶에서 뺄 것은 무엇인가. 둘째, 앞으로의 삶에서 더할 것은 무엇인가. 이것을 각각 A4용지 반 페이지씩 쓰게 하는데 이 과정에 부담을 느껴서 포기하는 사람도 꽤 있어요. 덜컥하는 거죠. 그러나 이 질문은 입학할 때뿐만 아니라 졸업하면서도, 그 이후에도 인생에서 다시 묻게 되는 질문이기도 해요. 이걸 ‘마음 준비서’라고 하는데 이 한 장을 쓰고 나면 교육에 참여하는 결의가 달라집니다. 내가 이곳을 통해서 뭘 얻고자 한다는 게 더 분명해지는 거죠. 어떤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마치 소비자처럼 짜인 프로그램을 듣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게 아니라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발견해나가는 게 중요해요.”
우리가 달라져야 우리 사회가 달라진다
마음 준비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인생학교에서의 수업은 결코 시간 때우기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만큼 밀도 높은 수업으로 차곡차곡 배움의 보람을 채우는 학생들이다. 혹여나 새로운 교육 방식에 불만을 품거나 힘들어하는 이는 없을지 궁금했다.
“이러한 교육시설과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한 분들은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된 분들이죠. 거기에 마음 준비서까지 쓴 덕에 의욕이 더 생겨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니 큰 어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이런 교육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분들이 염려스러운 거죠. 그런 분들에게 말로는 설득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보다는 이곳을 거쳐 간 졸업생들이 자신의 변화된 삶을 보여줄 때, 그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넘어서 한 발을 내딛게 되겠죠. 이런 현상이 널리 퍼지면 좋겠지만, 처음 가는 길인 만큼 늘리는 데 연연해하기보다는 제대로 확실히 다져나가야 그 의미가 분명해질 것 같아요. 그래야 진심이 전파되고 그렇게 스스로 변화하고자 인생학교에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겠죠.”
정 학장은 인생학교 졸업생들이 또래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의 에너지가 아직 여실히 남아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실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한 우리 중·장년층은 많은 걸 가진 세대예요. 능력적으로도 그렇고, 그동안 살아온 경험도 풍부하고, 경제력도 있는 편이고, 건강도 좋고. 게다가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를 여기까지 끌어왔고, 세상을 한번 바꿔본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있어요. 오히려 내 능력은 이만큼 있는데 세상은 날 알아주지 않는다는 울분을 느끼기도 하죠. 그런 분들이 뭔가를 다시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어느 세대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상으로부터 얻은 바가 많을 거 아녜요. 이제는 어깨에 힘을 좀 빼고 그동안 누린 혜택을 사회에 나누고 힘을 보태야죠.”
중·장년층의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형태의 활동으로 인생학교에서는 연극이나 독립영화를 만드는 청년을 돕는 커뮤니티가 생겨났다고 한다. 정 학장은 이러한 세대 간 교류를 통한 긍정적 영향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친구들은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네트워크나 능력이 부족하잖아요. 중·장년 세대는 그런 부분을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란 말예요. 여기서 도와준다는 개념은 전적으로 책임지는 게 아니라 정말로 도와주는 위치에 서는 것인데 그게 참 어렵죠. 그러나 시간은 충분하잖아요. 호흡을 길게 가다듬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젊은 친구들과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다 보면 점점 보람이 쌓일 거예요. 인생학교도 그런 점에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형성해내는 주체를 만들고, 그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도울수록 덜어지는 상처, 더해지는 온기
그는 중·장년 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철저히 돕는 입장에 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는 정 학장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충고다.
“인생학교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여러분이 이 학교의 중심이고 주인이다. 당사자가 돼야 한다, 나는 그저 도울 뿐이다’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런 관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도 여전히 늘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가르치려 드는 행동’이에요. 교육자로서 자꾸 뭔가 멋진 말을 하려고 하고, 당위를 내세우고…. 그걸 한마디로 꼰대라고 하죠. 나는 꼰대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그걸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늘 실천해왔지만 여전히 그런 행동이 남아 있어요. 그들이 그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잘해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손을 보려고 한다는 거죠. 철저히 돕는 위치에 서려고 늘 신경을 쓰는 데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가르치는 것이 아닌 돕는다는 말을 자주 강조하는 정 학장은 인생학교의 학생들을 ‘학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보다는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인생의 ‘동료’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앞으로 한 10년 정도는 동료들을 돕고, 동료들과 함께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에게 ‘도움’이라는 행위가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돕는다는 거는 내가 남을 돕는 건데 사실은 도움을 받는 상대보다 내가 더 큰 걸 얻어가는 것 같아요. 남을 도울 땐 뭐랄까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을 자극하는 듯해요. 우리 세대를 보면 세상이 불쾌하고 화가 치밀고 그러면서도 상처받고 자존감이 떨어져 있거든요. 그런 분들이 누군가를 돕다 보면 순수한 마음이 되살아나고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풀리면서 굉장히 여유로워져요. 그러면서 자존감도 올라가고 그윽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죠. 그런 변화를 느낄수록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사회도 점점 따뜻해져요. 그래야 좀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 50플러스인생학교 신청 및 문의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sb.50campus.or.kr 02-372-5050 서울시 은평구 통일로 684. 다가오는 3월 봄 학기를 개강한다(중부캠퍼스도 개강 예정). 신청하는 커리큘럼에 따라 수강료가 다르다.
어느 60대 여성들의 대화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어린이 놀이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벤치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할머니의 존재를 잊은 듯 신나게 노느라 여념이 없었고, 할머니 두 분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잠시 손주들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우연히 그 옆에서 할머니들과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필자는 어느 순간 벤치 쪽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고정했다. 남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직업병 탓으로 돌리며 그 내용을 여기에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할머니 한 분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곗돈을 탄 모양이었다. 그 곗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요즘은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얼마 붙지 않아 재미도 없는데, 곗돈을 어디에 쓸 거유?”
“연금에 가입해 매달 연금으로 받으려고 해요.”
“연금으로 받으면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 차라리 여행을 다녀오거나 며느리에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매달 받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그리고 이제 우리 노후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잖우.”
이 말을 들은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 게임
위의 대화는 오늘날 60대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돈이 좀 생기면 고민도 생긴다. 자식을 위해 써야 할지, 아니면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자신을 위해 써야 할지, 자신을 위해 쓴다면 어떻게 쓰는 게 과연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노후를 위해 연금에 가입하는 게 좋을까? 이성은 연금에 가입하라고 권하는데, 감정은 자식을 위해 쓰라고 부추긴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 나오는 여성처럼 꿋꿋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감정적으로 내린 판단보다는 이성적 판단이 지혜로운 판단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2001년, 미국의 저명한 두 교수가 2001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 중 2150년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을 두고 내기를 걸었다. 미국 앨라배마 버밍햄대학교 오스태드 교수는 메트포르민과 라파마이신 등이 인간의 수명을 상당히 늘려줄 것이라며 생존 쪽에 내기를 걸었고, 시카고대학교의 올생스키 교수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걸림돌로 작용해 아무리 오래 살아도 115세밖에 못 살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1년에 각각 150달러씩 내어 300달러를 펀드에 투자했다. 이 펀드는 2016년까지 연평균 9.5%의 높은 수익률을 보여 300달러가 1275달러로 늘어났다. 2016년 이들은 각각 300달러씩 또 내어 600달러를 이 펀드에 추가로 넣었다. 이 펀드가 2150년까지 연평균 9.5%의 수익률을 실현하면 2150년에는 약 2억 달러가 된다. 이 돈은 내기에서 이긴 사람의 유족이 다 가져가기로 했다. 지금의 60대가 150세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없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명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연금을 선택한 이성의 판단은 옳은 것이다.
60대 연금술의 핵심과 전략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어떤 연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가진 돈을 모두 연금으로 전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여기에 60대 연금술의 전략이 있다. 모든 자산을 연금화한 뒤 매달 받는 연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연금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나오겠지만, 당장의 큰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을 얻게 된다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쪼들린 생활을 해야 함을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의 저서 는 연금으로 일상적인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하더라도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 질병 등 추가로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곧바로 하류노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현금이 흘러넘치는데도 경제 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풀지 않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유동성 함정’이라 한다. 은퇴자의 경우도 연금이 쉼 없이 나오는데도 일시적 지출에 대응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이라고 하자. 은퇴자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결국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연금화와 유동성의 적절한 조화라 할 수 있다.
정상연금이냐? 연기연금이냐?
60대가 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국민연금의 수령시기를 법에서 정한 시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미룰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2017년에 만 60세가 되는 1957년생은 만 62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민연금은 정상 수령 연령부터 받는 것이 기본이지만 최대 5년간 앞당겨 받을 수도, 늦춰 받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당겨 받는 것을 조기연금, 늦춰 받는 것을 연기연금이라고 한다. 조기연금을 신청하면 정상연금보다 일찍 수령하므로 1년당 6%씩 수령액이 낮아지며, 연기연금을 신청하면 1년당 7.2%씩 수령액이 늘어난다.
1957년생이 62세에 연금을 신청할 경우 연간 1200만원(월 100만원)을 받는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연금 수령을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와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7.2%씩 급여액이 올라가므로 첫해 연금액은 36% 증가한다. 반면에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6%씩 급여액이 삭감되므로 첫해 연금액이 정상연금액보다 30% 줄어들게 된다. 첫해 받게 되는 월 연금액은 조기연금 70만원, 정상연금 100만원, 연기연금 136만원이다. 이렇게 보면 언뜻 연기연금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연기연금에 비해 조기연금은 10년 먼저, 정상연금은 5년 먼저 받기 때문이다.
어떤 수령 방법이 가장 유리한지는 누적연금액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적연금액 곡선의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것은 연기연금이고, 그다음이 정상연금이다.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초과하지만,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에게는 추월당함을 의미한다. 정상연금 월 100만원과 이 연금액이 매년 물가상승률(2% 가정)만큼 증가한다고 했을 때 76세가 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보다 많아지고, 80세가 되면 10년 늦게 시작한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추월하며, 84세가 되면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마저 넘어서게 된다( 참조). 이는 84세 말까지 생존해 있을 경우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가장 많음을 뜻한다.
2015년 완전생명표에 따르면, 62세 여성의 기대여명이 25.1세이므로 여성은 평균적으로 연기연금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며, 남성의 기대여명은 20.6세이므로 연기연금을 우선으로 생각하되 상황에 따라 정상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란 가족력이나 본인의 건강상태 등을 말한다. 이 상황을 감안해 기대여명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낮으면 정상적으로 62세에 연금을 신청해야 가장 많은 연금액을 받는다.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
이제 60대 연금술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에 대해 살펴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나오는 종신연금의 적정비율은 은퇴 자산의 규모, 국민연금 수령액, 주택연금 가입금액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은퇴파산 확률이 가장 낮은 종신연금의 비중은 24~42%라고 한다. 종신연금의 비율이 24% 이하로 떨어지면 장수리스크와 변동성리스크 때문에, 42%를 넘게 되면 구매력리스크와 이벤트리스크 때문에 은퇴파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조). 모든 자산을 종신연금으로 전환해버리면 은퇴파산 확률이 90%로 올라가는데, 이는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사적연금의 경우 연금액이 일정 금액으로 고정되어 있어 인플레이션에 취약하고, 이 상황에서 질병이나 사고 등 큰 금액의 지출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면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종신연금의 비중을 3분의 1 정도로 유지하고, 나머지 자산은 인플레이션 헤지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서는 투자형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저축 투자형 소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 자산을 운용하는 새로운 패턴을 말한다. 과거의 은퇴자들이 저축한 돈에서 매달 생활비를 빼 쓰는 방식을 취했다면, 단카이 세대는 저축한 돈의 일부를 투자로 운용하는 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투자를 위험한 행위로만 생각하지 않고, 돈에게 일을 시켜 새로운 돈을 벌어들이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일본의 50~60대 남성들의 일상 대화 속에 건강 이야기 못지않게 ‘돈이 되는 금융상품’이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어른 문화 연구소’의 소장인 사카모토 세쓰오는 저서 에서 아베노믹스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부 기관 투자가나 해외 펀드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참가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개인 투자가의 중심적 존재가 바로 단카이 세대였다”고 말한다.
투자를 통해 돈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면 괜찮은데,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투자의 세계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고 아울러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좋은 것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의 고령자가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매월 연금 방식으로 노후생활 자금을 지급받는 국가 보증의 금융상품(역모기지론)을 말한다.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우선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고, 이를 제휴 금융기관에 내면 그 금융기관에서 주택연금을 지급해준다.
주택연금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연금지급방식이다. 주택연금의 지급방식은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방식과 고객이 선택한 일정 기간 동안만 월 지급금을 지급받는 확정기간방식으로 나뉜다. 종신방식은 다시 인출한도 설정 없이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지급방식과 수시인출한도(대출한도의 50% 이내) 설정 후 나머지 부분을 월 지급금으로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혼합방식으로 구분된다. 수시인출한도를 잘 활용하면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주택연금을 신청할 때 무조건 종신지급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국민연금 수령액,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수령액을 먼저 계산한 뒤 부족한 월 생활비만큼을 종신연금으로 수령하고 나머지는 수시인출한도를 설정해 유동성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종신토록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조달받으면서 갑자기 도래할 수 있는 예상외 지출 건에도 대응할 수 있어 은퇴파산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저출산과 수명연장,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초고속 고령화가 진행 중인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과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9월 27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창조경제연구회(KCERN) 제29회 정기포럼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에 참여한 각계 분야 패널들의 조언을 담아봤다.
첫 주자로 나선 이남식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은 ‘고령화 위기 진단’이라는 주제를 발표하며 이번 포럼이 지니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 총장은 “디자인 분야에 있는 사람은 사용자(실제 고객)와의 공감을 중요시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니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며 “실질적이면서 훨씬 더 폼 나고 위엄 있게 노후를 디자인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토론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시니어 분야의 리더십을 발휘해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번 포럼의 주최 측인 창조경제연구회의 이민화 이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이사장은 “지구온난화보다 더 심각한 것이 고령화”라고 언급하며 “속도는 빠르게, 질은 나쁘게 늙어가는 게 한국의 문제”라고 화두를 던졌다. 그는 KSM(KCERN Silver Model)을 제시해 고령화 현상 및 정책을 분석하며, 고령화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선행돼야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공유경제와 긱(Gig) 이코노미의 등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긱은 일종의 소규모 밴드로 인력 매칭 직업의 종말과 프리에이전트의 등장을 의미한다”며 “미국의 긱 플랫폼, 일본의 클라우드웍스 등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시니어 프리랜서와 사내 기업가 양성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초고령화 국가가 되기까지 10년 남았다. 만약 고령화가 선행된다면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O2O(Online to Offline)제도와 기술혁신 등으로 4차산업 완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두 발표자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김일섭 aSSIT 총장의 진행으로 패널 토론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운을 뗀 강시우 창업진흥원 원장은 “현실적으로 재취업이 어려운 은퇴자들은 대개 치킨집이나 편의점 등의 창업에 도전한다. 창업 경쟁이 과열되면 성공할 확률이 낮은데, 그보다는 기술창업 쪽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이롭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전국에 시니어창업기술센터가 23곳, 여기에 투입된 기업만 430여 개다. 이곳에서 중·장년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예산은 정부 보조금과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 마련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시니어가 경제활동에 기여하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소기업의 창업지원을 돕고 있는 박광회 르호봇 대표는 “시니어 세대와 주니어 세대의 협력을 통해 청년과 고령자 취업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협업 모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멘토 모델이다. 은퇴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청년 세대와 공유하고,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배워나가는 등 세대 간 융합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민간의 지혜와 집단의 지성이 존중되는 형태로 그들을 돕기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 기획단 단장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은퇴자와 청년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단장은 “그동안 노인은 부양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지만, 고령화 사회에서는 경제의 주체가 돼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령자의 노동력을 저평가하는 연령 차별주의가 사라져야 하며, 시니어 스스로도 일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후의 경제력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유익한 삶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노호성 웰니스IT협회&협동조합 부회장은 ‘맞춤형 행복 플레이팅 서비스’ 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노 부회장은 “시니어 인력 활용에 대해 논의할 때 그들의 건강과 체력은 기본”이라며 “시니어의 체력을 측정하는 기준은 젊은 세대와 차별화해야 한다. 가령 윗몸일으키기나 달리기 등은 그들의 신체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자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시니어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제도와 서비스를 찾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노후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재 이투데이 대표 겸 한국SR전략연구소 소장은 고령화 문제를 바라보는 언론인의 관점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컨트롤타워가 분명하지 않아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오갈 뿐”이라며 “고령화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책임감 있게 해결해나갈 주체가 필요하다. 연구소나 언론 등 객체의 역할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람찬 노후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해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 사회의 큰 흐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김장철이 다가온다. 배추와 무가 싱그럽게 쑥쑥 키를 키운다. 아침저녁의 손이 시릴듯한 날씨에 서서히 깊은 맛이 들어간다. 이웃 할머니가 가꾸는 마을 입구에 있는 밭의 무도 땅 기운을 받고 어제와 눈에 띄게 다르다. 지난봄 야외 사진 촬영을 나갔다가 들녘 밭에서 발견했던 또 다른 모습의 무를 사진으로 담았던 기억이 난다. 서두의 사진이 그것이다. 필자는 그 형상에서 인생 2막을 맞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진의 제목을 “자화상”이라 정했다. 베이비붐 세대와 그 이전 세대들은 자신을 늘 뒷전에 두며 싫은 일도 마다 않고 가족이나 직장을 위하여 헌신함으로써 등골이 다 빠졌다. 그 모습을 빈틈없이 닮았다.
사진의 대중화 시대를 살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고 공유한다.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카메라 장치가 들어가면서 대중화는 급속히 앞당겨졌다. 사용자의 편리를 위하여 놀라울 정도로 기능도 좋아져 더 그렇다. SNS, 즉 소셜 미디어 시대의 삶에 사진은 예술의 한 분야에서 영상언어로 발전하고 있다. 셔터만 누르면 사진은 찍힌다. 침팬지도 사진을 찍는다고 말할 정도다. 대충 찍을 수 있어도 어떻게 찍어야 좋은 영상언어가 될까를 고민함도 바람직하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의도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흔히 말하는 메시지 담기다. 필자는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할 때 먼저 생각하는 일의 하나다. 어떻게 보면 머릿속에 써 내려 가는 촬영 노트인 셈이다. 야외 촬영을 준비하면서 기획한 내용의 하나가 베이비붐 세대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보자는 것이었고 그런 사진 한 장을 밭에 버려진 무에서 찾았다. 앞의 사진이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무엇으로 보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연근”이라 답한다. 사실 그렇게 보인다. 듬성듬성 비워진 모습이 연근을 잘라 놓은 것과 흡사해서다. 농부가 수지가 맞지 않아 밭에 그대로 버려두어 한겨울을 지내면서 바람이 든 무의 중간을 뚝 잘라본 단면이다. 마치 인생 1막을 마감하고 인생 2막을 맞으려는 세대들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젊음을 다 바쳐 열심히 일해 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사회와 국가, 가족에게 헌신하고 남은 내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아서다. 자식의 교육이나 결혼자금 또는 자녀 사업자금으로 다 쓰고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등골까지 다 빨린 세대의 모습을 빼닮았다.
필자는 이 한 장의 사진을 대중과 공감하는 영상언어로 활용한다. 인생 2막에서는 비워진 그곳에 생업에 밀려 하지 못하였던 꿈을 이루는 자아실현으로 채워가야 함을 은근 슬쩍 강요하는지 모른다.
영화감독 꿈꾸던 소녀 음악PD가 되다
인터뷰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작은 체구에 단단한 관록을 풍기면서 함박웃음으로 맞이해 준 ㈜콘코르디아(CONCORDIA)의 대표 겸 음악 프로듀서 곤도 유키코(近藤由紀子, 67)는 이시카와현(石川縣) 나나오시(七尾市) 출신.
육군비행학교를 나와 육군항공대 조종사로 태평양 전쟁 때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에서 전투를 치르고, 오키나와에서 특공대로 소집돼 죽음의 출격을 앞둔 상황에서 1945년 8월 15일 패전을 맞이한 부친, 그리고 평범한 주부였던 모친 사이에서 유키코는 1949년 1월에 태어났다. 바로 이른바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뜻하는 단카이(團塊) 세대인 셈이다.
“철들 무렵 늘 영화관에 있었다. 당시 나나오시에는 오락물 혹은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엄마 세대는 전쟁의 아픈 기억과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영화였는데, 엄마를 따라 서양 영화를 비롯해 일본 영화 등 모든 장르의 작품을 봤다. 그러다가 혼자서 ‘할머니를 찾으러 왔다’며 영화관에 들어가 작품에 푹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울러 영화와 관련된 음악도 열심히 들으면서 막연하게나마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키웠다.”
청운의 뜻을 품고 와세다 대학으로
영화감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더 큰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고자 유키코는 도쿄(東京)의 와세다(早稻田) 대학 제1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막 올라온 소녀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기만 했다. 이웃사촌처럼 터놓고 지냈던 나나오시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別世界)에 크고 작은 문화충격도 받았지만 영화 때문에 싹튼 꿈을 위해 뭐든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아는 친지도 없고 인맥도 없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로 처음부터 하나씩 쌓아 나가야 했다. 신기하게도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 주셨다.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소녀가 열심히 뭔가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예쁘게 봐 준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TV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학생 신분으로 일본 엔카(演歌)계의 최고봉인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거물급 여배우 나카무라 타마오(中村玉緖) 등의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직접 옆에서 지켜보면서 영화계에 대한 동경심도 더욱 강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남성 중심의 폐쇄적인 영화계 풍토에서는 여성의 입지가 정말 좁다는 현실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대학 나와 첫 직장은 ‘이와나미 홀’
유키코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에서 영화를 배운 다카노 에츠코(高野悅子, 1929년생. 영화운동가, 영화 프로듀서, 방송작가 및 연출가 등)가 운영하는 ‘이와나미(岩波) 홀’에 입사한다. 당시 이와나미 홀은 232석의 작은 극장이었지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을 비롯해 유명 사진가 등 당대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드나드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다카노는 ‘마음’과 ‘신념’으로 일했다. 진짜는 언젠가 반드시 세상의 빛을 받으며, 평가받을 것이라는 진지한 자세를 그때 배웠고, 이것이 나의 출발점이 됐다.”
이와나미 홀에서 2년간 근무 후 그녀는 일을 포기한다. 결혼으로 두 아이가 생겼으며, 무엇을 하든 하나에만 집중해 모든 힘을 기울이는 그녀는 망설임 없이 육아를 선택해 엄마의 길을 걷는다.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낌없는 사랑으로 육아를 마친 유키코는 49세 때 아티스트 프로듀서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물론 전업주부로서 살림을 꾸리는 틈틈이 시나리오 작가를 공부하고, 드라마 기획서도 쓰는 등 조금씩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가코 다카시(加古隆, 1947년생)가 음악을 담당했던 NHK 특별 다큐멘터리 에 감동하여 2000년 스페셜 콘서트를 기획해 도쿄, 오사카(大阪), 가나자와(金澤), 후쿠시마(福島) 등을 돌며 전석 매진의 흥행을 거두었다. 2003년에는 히비야(日比谷) 공원 야외음악당에서 개최한 에도(江戸) 400주년 기념 오프닝 이벤트 등도 꾸미는 등 늦깎이 프로듀서의 열정과 실력이 조금씩 평가받기 시작했다.
“20세기 전쟁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의 레퀴엠으로 콘서트를 열어 21세까지 이어지지 못한 그들의 넋을 제대로 위로하는 진혼곡(鎭魂曲)을 들려주고서 21세기 평화와 생명의 시대로 힘차게 나아가자는 뜻을 담으려고 했다. 기획서를 쓰고 2년 동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뜻을 함께하는 분들을 모았고 스폰서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 그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눈물과 박수로 다시 한번 음악의 힘을 느꼈으며, 큰 보람과 함께 정말 값진 보물을 얻은 기분이었다.”
한국과 인연도 깊어
2015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의 젊은 성악가 2명이 함께 기념 공연을 펼친 바 있다. ‘한국판 폴 포츠’로 불리는 팝페라 가수 휘진(권휘진)과 일본인 테너 가수 고하시 고헤이(古橋鄕平)가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区)의 기요이(紀尾井) 홀에서 ‘같이 울리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듀엣으로 화합과 희망의 선율을 선보이는 감동적인 무대를 꾸몄다.
물론 곤도 유키코가 기획한 공연이었다. 그녀는 가수 휘진에 앞서 2004년 9월부터 R&B 남성듀오 ‘소리(SoRi)’, 그리고 2007년 솔로로 전향한 가수 케니(홍기현) 등을 일본에 데뷔시키는 등 꾸준히 실력 있는 한국 아티스트를 찾아내 적극 소개해 왔다.
휘진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힘으로 미래를 믿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피해 지역을 수차례 찾아가 자선 콘서트를 펼쳤듯이 케니도 2007년 9월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다 총에 맞아 사망한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長井健司)에게 바치는 곡 ‘눈물-세계 어디선가 이 순간’을 발표해 수익금의 일부를 캄보디아 빈민을 돕고 있는 민간단체 등에 기부했다. 부제 ‘흐르는 눈물을 미래의 아이들 빛으로 바꾸기 위해’가 붙은 이 노래는 곤도 유키코가 직접 노랫말을 썼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즘 세계의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일본은 수많은 젊은이의 희생 위에 패전을 맞이했고, 그 뒤를 이어 태어난 우리 단카이 세대는 평화 속에 살아올 수 있었던 걸 감사하면서 계속 평화를 지켜가야 하는 사명이 있다.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 미래로 이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이 바로 내가 할 일이고,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로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 뜻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하는 자리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원점에서 소통을 다시 생각
2003년 54세의 나이로 자신의 뜻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음악·예술 기획사 콘코르디아(CONCORDIA)를 설립한 곤도 유키코는 평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음악·예술 문화는 평화의 사절이며, 사람들 마음을 비추는 밝은 빛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을 응시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음악과 예술을 통해 국경, 민족,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상호 소통과 연대감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길 바랄 뿐이다.”
2015년 5월 회사 창업 12주년을 맞이해 프로듀서 이름으로 결혼 전 이름인 후지하시 유키코(藤橋由紀子)를 내걸고 원점에서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을 선언한 그녀는 “신으로부터 목숨을 받아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인간의 도리이다. 또한 일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을 통해 교류를 넓혀가면서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국경을 넘어 서로 돕고 힘을 합치는 것, 바로 이것이 소통이고 문화의 시작이다”며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중년 여성이 겪는 갱년기 증상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제는 대체로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갱년기 극복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제약회사 등 여러 단체들은 관련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보면서 한 번쯤 묻게 된다. 그렇다면 남성은? 남성도 갱년기를 겪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들 쉬쉬할 뿐 해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성 갱년기는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는지 대한남성과학회 허정식 홍보이사(제주대학교병원 비뇨기과)를 통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대한남성과학회 허정식 홍보이사
남성 갱년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정력이다. 남성에게 있어 정력은 성기능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자존심과 같은 것이다. 정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남에게 밝혀서는 안 되는 비밀 중의 비밀 취급을 받는다. 술자리에서 성생활에 대한 허풍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이러한 인식 때문이고, 안타깝게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도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남성 갱년기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허정식 이사는 아직 원인이 완벽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남성 갱년기는 학계에서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논란이 남아 있는 상태죠. 지금까지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의 감소와 연관 있다는 정도만 밝혀진 상태입니다. 용어 역시 변화가 있어 그동안은 ‘후기발현 남성갱년기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였지만, 최근에는 ‘남성호르몬결핍증후군’으로 부르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불확실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허정식 이사에 따르면 여성 갱년기의 경우 여성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생리가 중단되는 경우를 말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노화과정이 급격한 생식능력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점진적인 감소세를 나타낸다고 한다.
남자의 고개 천천히 숙여져
대한남성과학회에서 2010년 전국의 40대 이상 남성 2000여 명을 대상으로 남성호르몬 검사를 한 결과 28.4%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 이하로 나타났다고 허 이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40대 이상 남성은 4명 중 1명꼴로 갱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드물죠. 남성 갱년기의 대표적인 증상은 생식능력의 감소입니다. 그 이외에 안면홍조,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 피로감과 수면 장애, 내장지방 증가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근육량과 근력 감소, 체모와 골밀도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남성 갱년기라는 것이 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하면 되는 것일까?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허 교수는 남성호르몬의 부족으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들에게는 남성호르몬을 생리적 상태와 가장 근접하게 보충해 주는 것이 매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성호르몬은 약효 작용 시간이 충분하고, 안전하면서 사용이 편리한 제품을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겔 타입의 테스토스테론 연고가 많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식이요법이나 유산소운동을 통한 근력운동도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남성 갱년기 증상 중 성기능과 관련해선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등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일반적이지만, 간혹 남성호르몬 부족 환자 중에서는 이러한 약제가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단독 요법이 실패한 경우에는 남성호르몬과 발기부전 치료제를 함께 투여해 치료한다고 허 교수는 말했다.
부족한 남성호르몬 보충가능
남성 갱년기 중 심각한 부분 중 하나는 단순한 성기능 저하로 생각해서 내버려뒀을 때 다양한 증상들이 함께 따라올 수 있다는 점이다.
“50~60대 베이비붐 세대는 무엇보다도 정년퇴직이나 은퇴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런 스트레스와 만성피로, 우울증 등이 남성 갱년기와 겹치게 되면,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져 가족관계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끼치게 되죠. 여기에 성욕 저하와 발기부전, 지적 활동이나 인지 기능의 저하 등에 시달립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남성호르몬 검사를 통해 수치가 정상범위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흡연과 음주는 줄여야 하고요.”
특히 허 이사는 남성 갱년기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인간은 누구나 젊음을 유지하고,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면서도, 중년이 되며 겪게 되는 몸의 변화에 순응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의 나이에는 그것이 정상일 것이라고 간주해 버리는 것이죠. 단지 남성호르몬이 부족해져서 여러 증상이 발생하는 것인데, 쉽게 오판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남성 갱년기는 치료 가능한 질환
일부에서는 자가진단표 등을 사용해 몸 상태를 점검하는데 변별력이 높지 않고, 오히려 치료시기만 늦추기도 해서 최근에는 권하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아무래도 정력과 관련해선 보신음식이 빠질 수 없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실험적으로 해마를 먹는 사례가 있었지만, 이 역시도 증명된 바 없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운동을 쉬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얻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남성 갱년기 증상을 너무 무시하거나,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러한 증상은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질환은 치료의 대상일 뿐이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남성호르몬을 이용한 치료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반드시 비뇨기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아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부분 시니어는 경제적으로 노후 준비가 돼 있지 않거나 불충분하다. 그렇다고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고, 공공 안전망도 매우 미흡해 이를 기댈 수도 없다. 따라서 본인의 생활비는 본인이나 배우자의 근로(사업) 소득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취업이나 창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이 어려운 한국의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준고령자(베이비붐 세대)나 고령자는 현재의 상태에서 어떻게 돈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가 관심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취약계층, 퇴직(예정)자들과의 재무상담 및 강의를 했던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벽하지는 않으나 알면 유용한 시니어의 가정 재무 설계와 관리의 팁(Tips)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재무 설계나 재테크에 대한 과거의 인식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 준고령자나 고령자는 어릴 때 경제교육을 못 받아 경제의식이 결여돼 있고 사회적 성장기에 살아와 잘못된 재테크 관념이 있다.
둘째로 현재의 자신의 순자산(자산-부채) 및 부채 구조, 현금 흐름을 알아봐야 한다. 한국 준고령자나 고령자는 외형적 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자산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셋째로 남은 생존 기간에 필요한 기본 생활비와 목돈 지출금액을 계산해야 한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구체적 계량화로 해결 방법 모색하자는 것이다.
넷째로 앞으로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간과 예상 금액 파악해 거기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한다. 잘못된 소비 습관을 재점검하고 개선해 새는 돈을 막는 방법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다섯째로 현재의 자산을 활용해 이익을 얻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특히 준고령자나 고령자에 적합한 금융 상품을 알아보고, 부동산 자산을 활용할 방법에 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다만 초저금리 시대에 고수익 낸다는 금융 상품이 많은데 엄밀히 검토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돈이 안 들어가는 활동에 의한 행복 찾기가 필요하다.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어린이처럼 처신하는 현상이 미국에서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캥거루족, 키덜트(Kidult), 어덜테슨트(Adultescent) 같은 신조어에도 익숙해졌다. 제 앞가림을 못하는 자녀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속앓이가 심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애지중지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런 현상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전문가들의 논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AARP(미국은퇴자협회)가 5월호에 게재한 ‘끔찍한 22세들(The Terrible 22s)’이란 제목의 특집 내용을 소개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시각 :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요즘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는 애지중지 키웠더니 제 구실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건 한쪽에 치우친 말이다. 정말 문제는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다. 원인을 제공했고 날개까지 달아줬다. 줄리 리스코트-하임스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그의 저서 에서 “많은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고 간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힘든 경험을 해보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는 온실의 난처럼 현실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20대일 때는 해외여행이나 연수를 가도 부모가 일정을 세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엽서나 편지 한 장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당시 부모는 자녀가 20세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첫 봉급을 받을 때까지 생필품과 방값을 지원해 주면 부모의 책임을 다했다고 여겼다.
이런 경험을 한 베이비붐 세대가 자신들의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딴판이다. 성인이 된 자녀를 여전히 품안에 끼고 있다. 자녀와 함께 지내면서 내밀한 생활까지 공유하려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와 같은 현대기술 덕분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이용해 자녀의 일상생활과 고민을 낱낱이 파악하고 간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녀의 연예나 결혼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청년과 몇 년째 교제를 하고 있는 딸에게 시간 낭비니 단교하라고 종용하는가 하면 중매 사이트에 자녀의 세세한 이력과 취향까지 올려 배필을 물색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녀의 직장 생활에까지 발 벗고 나서는 부모도 적지 않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자녀의 취업인터뷰 절차를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연봉 계약과 승진 문제로 직장 상사와 직접 상담을 하고, 자녀의 업무 성과까지 평가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자녀가 어린이일 때보다 부모의 역할이 더 커진 셈이다.
미국 부모의 과보호 현상은 지난 1979년, 당시 여섯 살이던 에단 파츠가 학교버스를 타러 가다가 행방불명되면서 미국 전체가 공포에 빠진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1980년대 초 미국 어린이의 학력이 세계 수준에 못 미쳐 국가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내용의 대통령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헬리콥터 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6명 중 1명이 불안증세로 진단을 받았거나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을 정도로 정신력이 약해졌다.
부모가 병원 예약에서부터 선물 구입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일을 대신해주니 자녀는 성인이 되어도 사소한 일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는 아들딸이 도움 없이도 잘 지내게 되면 자신은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네브래스카의 임상심리학자 제인 워렌은 “좋은 가정에서 곱게 자란 자녀들의 자립심이 더 낮은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니 독립할 이유가 없어진다. 부모들도 고분고분 잘 따라주는 자녀와 함께 살고 싶으니 독립이 반가울 리 없다. 맨해튼의 심리치료사 제리 애게이트는 “자녀가 독립하면 부모는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우선 들지만 자녀로부터 소외된 느낌도 들기 때문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리건주립대학 리처드 세터스턴 교수와 작가인 바바라 레이는 공동 저서 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조언과 자문을 받을 뿐 아니라 동료애와 위안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이 덕분에 세대 차이가 많이 좁혀지고 있다. 1970년대나 1980년대와는 달리 자녀의 생각이 부모와 닮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스스로 자유로운 생활을 접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면을 감안할 때 이제는 자녀들이 21세기에 직면할 문제를 스스로 해결토록 하는 공동 목표를 세우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음 세대가 번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 : 부모님은 몰라요
베이비붐 세대는 헌신적인 노력에도 자녀들이 무기력하고 생활을 꾸려갈 준비도 안 됐다고 낙담하고 있는 것 같다. 공포와 수치심이 뒤섞인 숨 막힐듯한 태도로 자녀를 대하는 느낌마저 준다. 밀레니얼 세대를 평가절하하는 근거없는 이야기도 많이 나돈다.
입사 면접에까지 부모와 함께 간다는 소문이 단적인 예다. 이 이야기는 2013년 9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면접장까지 부모와 함께 가야 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다. 인력관리회사인 아데코가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한 이 기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응답자의 8%가 입사 면접에 부모와 함께 갔고 3%는 자리를 같이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 보면 황당해진다. 차가 없는 자녀를 면접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 면접장 주위에 앉아 기다린 부모의 비율을 집계한 통계를 왜곡해 큰 제목으로 기사화한 것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미국에서는 부모가 어디든 차로 데려다 주는 것은 자연스런 일상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왜곡된 점이 없지 않다. 2013년, 25~34세인 남성의 수입은 1980년 그 또래의 남성에 비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18.5%나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기간 젊은 여성의 수입은 40.5%나 증가해 전체적으로 보면 그 전 세대와 수입 차이가 별로 없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하위 60%는 부모세대 때보다 재정상태가 훨씬 열악하다. 1989년, 18~34세의 젊은 성인들은 평균 3300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했으나 2013년의 그 또래는 77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학자금 융자가 빚 증가의 주요인이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과거 부모세대에 비해 더 많이 파산했냐 하면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학을 졸업한 경우 베이비붐 세대보다 형편이 더 낫고 고등학교 이하 학력의 경우는 부모세대 때보다 수입이 훨씬 떨어지는 상반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런 자녀를 위해 옹호자, 친구, 상담사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녀와 좀 더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의 생각은 좀 다르다. 부모가 자신만의 소셜미디어 영역에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부모 집에 같이 사는 것도 밀레니얼 세대만의 현상은 아니다. 1911~1924년에 태어난 가장 위대한 세대 때는 대공항의 여파로 직업을 구하지 못해 부모와 함께 지낸 캥거루족이 더 많았다. 고용여건이 악화되고 임대료 부담이 가중되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요즘 직장 상사들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문자를 주고받느라 근무를 태만히 하지만 일일이 나무랄 수 없어 포기하고 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무 태만은 밀레니얼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징계를 하거나 해고를 하면 될 일을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는 아직 젊다. 앞으로 수십 년을 살아가면서 미흡한 생활능력을 키우고 재산도 모으며 자녀도 낳아 기를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면 밀레니얼 세대도 다른 세대와 별 차이가 없다. 더 예민한 부모가 있을 뿐이다.
한해를 반으로 접는 유월을 ‘희망’의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과연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유월은 신록이 절정을 향해가는 시기다. 신록은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준다. 무엇보다도 신록은 희망을 준다.
한해를 시작한 1월은 시무식을 비롯한 이런저런 행사로 쏜살같이 지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2월이 지나면 3월은 입학식으로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달이다. 목련꽃이며 진달래꽃이 벚꽃의 화사함과 함께 추운 계절을 지낸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위로한다. 푸른 하늘 속에서 노란 물을 들이는 것 같은 산수유가 활짝 핀 오솔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추억 속의 시절로 돌아가고 만다. 이렇게 노란 꽃물이 가슴에 들어 서서히 깊어지면 가을에는 빨간 사랑이 솟아나는 것인가.
5월에는 어린이, 어버이 챙기느라 이런저런 행사며 식사자리가 넘쳐 난다. 이렇게 바쁜 상반기를 보내고 숨을 좀 돌리며 호흡을 가다듬을 때 푸른 신록이 몰고 온 6월이 마음에 위로를 전한다.
6월은 장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담장을 타고 오르며 경쟁하듯 빨간 얼굴을 뽐내는 장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욕이 솟구친다. 수줍은 듯 하얀 감꽃이 피고 청초하게 하얀 미소를 띤 개망초가 들녘을 순결하게 수놓는 유월에는 희망도 녹음처럼 우거지는 것 같다.
올해 6월 5일은 24절기에서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망종(芒種)이다. 이때가 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다. 보리를 추수하기 전까지 식량이 떨어져 어려웠던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한다. 유월이 되면 식량문제에서도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이런 6월이 우리 민족에는 역설적으로 가장 아픈 상처를 겪은 달이다. ‘6·25동란’이 일어났고 ‘6·10민주항쟁’도 있었던 달이다.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푸른 유월에 우리 민족에겐 뼈아픈 시련이 닥쳤던 것이다.
우리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여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유월 초 농촌 들녘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고 산등성이에서는 뻐꾸기 소리가 종일 심사를 흔들어 놓았다. 바쁜 시기였던 만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집안 일손을 도와야 했다.
학교에서 ‘반공 웅변대회’, ‘호국·보훈 글짓기’가 연례행사로 열렸던 것도 6월이다. 머리띠를 두르고 두 손을 치켜들어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토하던 그때 연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현충일이면 집집이 대문 앞에 태극기를 달았다. 성물처럼 고이 간직한 국기함을 열 때면 어떤 경건함을 느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때는 그랬다.
세계는 이념의 대결과 냉전의 시대를 뒤로하고 지구촌 시대의 물결 속에 꿈의 사회(Dream Society)를 열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6월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는 대한민국은 노령인구와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찾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자)가 700만 명 정도이고 ‘5575세대’(55세~75세)가 1천만 명에 이른다.
‘은퇴가 없는 나라’의 저자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김태유 교수는 “고령화는 고령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시니어들은 복지의 수혜대상자를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다.
시니어는 이 시대를 만들어낸 우리의 토대고 비빌 언덕이다. 시니어는 새로운 경제의 잠재력이고 보물이다. 시니어를 무기력하고 힘없는 노인들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시니어는 지혜의 샘이고 발전의 원천이다.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은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의 문제가 아니라 샘솟는 상상력과 넘치는 감수성과 의지력이다.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공급되는 신선함이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다. 늙음은 거꾸로 가는 신비한 새로움이다. 제대로 된 늙음에는 더욱더 원숙한 삶과 깊은 깨우침이 펼쳐진다. 늙음에는 심오한 맑음이 있다. 연륜에서 샘솟는 품격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늙음과 낡음을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삶의 질을 갈라놓는다. 원숙한 인격에서 풍기는 그윽한 삶의 향기는 늙음의 고상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정한 멋과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바로 거꾸로 나이 드는 신비로 빚어내는 진정한 청춘이다.
농촌에서는 보리 베기와 모내기가 겹치는 이 무렵이 가장 바쁘다.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라는 의미다. 본분에 충실한 생명체들의 활력이 우리의 마음에도 짙푸른 희망을 가득하게 한다.
인생에서의 유월은 인생 이모작 모내기를 하는 시기다. 시니어여! 이 유월, 우리야말로 인생의 유월을 맞이한 사람들임을 기억하자.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있었기에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던가.
역사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는 “모든 역사는 현재 역사다”라고 했다. 지금에서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5575세대’는 지금 이제까지 지내온 것보다 더 깊고 넓은 이모작 파종의 시점에 서 있다. 이런 이유로 유월을 ‘희망의 달’이라고 부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