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어가는 이들을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입니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이채로운 새로움이 있습니다. 험한 한세상 곱디곱게 살아온 이들은 늙어도 낡지 않습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남북의 극지(極地)만큼이나 서로 멉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의 절망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늙음이 곧 낡음뿐이라면, 삶은 곧 죽어감에 다름 아닙니다. 낡은 것 꼭 거머쥔 주먹을 종내 펴지 못해 너저분한 구멍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는 노추(老醜), 세차게 불어오는 시대의 새 바람을 눈 질끈 감고 애써 거스르는 어리석음… ‘수구(守舊) 먹통’이라 조롱당해도 쌉니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습니다. 옛것과 새것을 한품에 아우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은은한 지혜입니다. 보수이니 진보이니 하는 어설픈 잣대를 들고 함부로 폄훼의 혀끝을 놀릴 수 없습니다. 연면히 흘러온 역사의 가치, 애환(哀歡)의 삶 속에 켜켜이 박힌 연륜의 무게를 ‘참을 수 없는 젊음의 가벼움’으로 감히 비웃지 못합니다. 젊은 나이에도 낡은 마음이 있습니다. 도그마에 사로잡힌 젊음, 현란한 이벤트에 넋이 빠져 우상의 상징 조작에 스스로를 묶어버린 젊음, 오래 묵혀진 삶의 지혜에 두 귀 꽉 막아버린 젊음이라면, 나이는 젊었어도 낡은 인격입니다.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한갓 정신적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직된 분별의 이념에 묶이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막히고 닫힌 젊음이나 낡고 닳아빠진 늙음에게는 진보도 보수도, 개혁도 전통도 모두 허위의 우상일 뿐입니다. 우상이 약속하는 자유 속에는 흐려진 노안(老眼)이나 철없이 젊은 눈이 쉬 알아채지 못하는 새로운 억압 장치의 속임수가 감춰져 있습니다.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은 나날이 신선합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날마다 경이롭습니다. 껍데기 진보보다 더 앞선 깨우침, 입술의 개혁보다 더 싱그러운 에너지가 삶의 물길에 풍성하게 출렁입니다. 겉은 낡아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다운 늙음이요, 겉이 늙어갈수록 속은 더욱 낡아가는 것이 추한 늙음입니다.
“해 아래 새것이란 없다. 이미 있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지금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니, 신은 지나간 것을 다시 찾는다.”(구약 전도서) 지혜로운 연륜의 가르침입니다. 기껏해야 시대의 한 단면을 서로 찢어 피 터지게 영역 다툼하는 보수와 진보의 칼날들을 유장(悠長)한 역사의 물줄기는 한낱 웃음거리로 휩쓸어갈 따름입니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로 쇠락하고, 오늘의 보수가 내일엔 개혁의 새 날갯짓을 하다가 어느새 다시금 끝 모를 수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역사의 눈길은 숱하게 지켜봐 왔습니다. 아니, 지금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역사를 들먹이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서로의 덧없는 삿대질을….
“가장 낡은 것 속에 가장 새로운 것이 있다.” 장장 16년에 걸쳐 티베트 고원 라다크 마을의 원시적 삶을 몸소 체험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 여사가 쓴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의 주제입니다. 머나먼 과거(ancient)를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future)와 합쳐놓은 이 책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과거와 미래의 두 시간적 영역을 하나의 장(場)으로 엮어낸 우주적 통찰입니다.
나이 먹는 일 겁내지 않는다
“라다크 사람들은 나이 먹는 일을 겁내지 않는다. 삶의 각 단계는 그 나름대로 각기 좋은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늙어도 낡지 않는 지혜를 라다크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동양의 옛 지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만나는 것마다 옛것이 아니니, 어찌 빨리 늙지 않을 수 있겠는가(所遇無故物 焉得不速老).” 송나라 때의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실린 왕효백(王孝伯)의 글입니다. ‘사람을 늙게 만드는 것은 옛것이 아니라 새것’이라는 말이니, 이런 당착(撞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래 묵혀진 옛것들 속에 오롯이 녹아 있는 근원적인 삶의 바탕자리를 되찾는 일이야말로 ‘오래된 새로움’(The ancient newness), 그 역설의 비의(秘義)일 수 있습니다.
현대의 새로운 철학들이 수천 년 전의 노장(老莊)사상에서 신선한 깨달음을 얻고, 까마득한 천지창조의 옛일을 기록한 성서가 세계의 종말(終末)을 넘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는 이유입니다.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뜻한다.”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이 노래하는 청춘(youth)입니다. 옛것이 늘 옛것 아니고 새것이 언제나 새것 아니니, 서로 다툰들 무슨 보람 있으랴. 사랑으로 서로 감싸 안느니만 못한 것을….
해가 바뀌어 나이 한 살 또 먹으면 더 늙었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네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낡아가는 것입니다. 새해를 보지 못한 채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이가 많습니다. 저들이 그토록 바라다가 끝내 만나지 못한 새해를 우리가 어찌 탄식하며 어영부영 맞을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삶을 탄식으로 맞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낡아가는 일일 터…. 늙음은 은총입니다. 늙는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그 감사가 늙어도 낡지 않는 비결입니다. 늙음과 낡음… 글자 한 획의 차이가 삶의 미추(美醜)를, 지혜와 어리석음을 가릅니다. 글자 한 획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삶이 다르고, 인격이 다릅니다.
일본어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는 ‘집에 틀어박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사회 문제 관련 기관에서는 이미 국제 학술어로 정착된 ‘히키코모리’와 우리말로 풀어쓴 ‘은둔형 외톨이’라는 두 용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히키코모리’에 관한 우려가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해 이에 대한 정부와 학계의 관심도 큽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입니다. 일본 총무청은 1990년에 ‘청소년백서’를 발표해 청소년의 장기 등교거부와 ‘히키코모리’ 문제를 보고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히키코모리’를 청소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3월에 일본 내각부(內閣府)가 발표한 보고는 40~64세의 중고년(中高年) ‘히키코모리’가 추정치로 약 61만 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2016년에 발표한 15~39세의 청소년 ‘히키코모리’ 추정수 약 54만 명을 합치면 115만 명이나 돼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문제인 나라들
‘히키코모리’ 문제를 20여 년 연구해온 일본 쓰쿠바(筑波)대학교 사이토 타마키(齊藤環) 교수는 정부 당국의 추정수의 약 2배인 200만 명 이상이 ‘히키코모리’ 해당자이며 이 중 반 이상이 중고년일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에 관한 여러 권의 책도 낸 사이토 교수에 의하면, 일본 다음으로 ‘히키코모리’가 인구비례로 한국에 많고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유교문화국으로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달성한 국가들에 ‘히키코모리’ 문제가 크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가족과 동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에 이 문제가 많다고 말한 사이토 교수는, 서구문화의 나라에서 이 문제가 비교적 적은 것은 성인이 되면 독립해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히키코모리’가 비교적 많은데 일본, 한국, 스페인, 이탈리아 네 나라의 공통점은 청년이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인구의 70%를 넘는다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또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히키코모리’ 수가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반면 홈리스(homeless) 수는 가장 적어 정부 통계에서도 5000명 미만이고, 개인주의가 우선하는 영국에는 26만 명, 미국에는 100만 명 이상의 홈리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히키코모리’ 문제는 가족주의 대 개인주의 구도에서 관찰해야 하며 젊은이의 거처가 ‘집 안이냐 노상(路上)이냐’의 차이에서 문제 해결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홈리스는 생활환경이 나빠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인 데 비해 ‘히키코모리’는 주거환경이 좋아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을 것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특히 화제에 오른 것은 지난봄에 나흘 간격으로 ‘히키코모리’와 관련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76세의 전직 농수산성 차관이 44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평화스럽던 가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매스컴의 대대적인 취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교양 있는 아버지가 ‘히키코모리’ 아들이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흘 전 ‘히키코모리’의 ‘묻지마’ 살인사건을 연상해 타인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동정을 샀습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 아이도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강박감에서 자기 아들을 죽였다는 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전직 정부 고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전 오사카(大阪) 시장이며 인권변호사인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씨도 트위터에 “나도 같은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 나흘 전에 일어난 일은 51세의 ‘히키코모리’가 등교하는 초등학생이 탄 스쿨버스를 습격해 두 사람을 죽이고 10여 명의 다른 아이와 보호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히키코모리’ 반 이상이 중고년
이처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이제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중고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8050’이라는 유행어도 생겼습니다. 즉 “80대의 노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키코모리’의 일반적 정의는 ‘집에만 틀어박혀 외부와의 연락을 6개월 이상 단절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텔레비전 등이 발달한 오늘날, 이 낡은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사이토 교수는 말합니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 씨는 잡지 ‘분게이 주(文藝春秋)’에 쓴 글에서 일부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매년 3500명 이상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히키코모리’는 결코 범죄예비군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히키코모리’ 중 인터넷을 통해 언론활동을 하거나, 소설이나 음악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에 있으면서도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8050’ 문제에 약간의 희망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지금 사이토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범죄사건이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들의 대량 고독사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2030년쯤 일본이 ‘히키코모리’ 장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 50대 중반의 ‘히키코모리’ 수만 명이 연금 수급자가 될 것인데, 수많은 사람이 연금 수급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히키코모리’ 지원 대책이 더 확충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통계청 추산이라면서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 인구수가 약 31만 명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심각한 ‘히키코모리’ 실상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의 대응을 ‘타산의석(他山의石)’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황경춘 칼럼니스트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A(77) 씨는 2000년경 계열사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이후 협력업체를 세워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회사생활이나 사업은 큰 어려움 없이 잘해왔지만 가정사는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고 아내가 2000년 초 일찍 세상을 떠났다. 큰아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그곳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큰딸은 사업가와 결혼 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큰아들에게는 유학 자금과 함께 사업 관련 명목으로 100억 원 가까운 거금을 주었지만, 한국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A 씨 부인)가 사망했을 때, 그리고 사업이 잘 안 돼 시가 50억 원가량의 청담동 빌딩을 증여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을 때뿐이었다. 사업 자금을 더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A 씨가 거절한 이후에는 소식조차 없다. 큰딸도 부모가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크게 싸우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버렸다. 20년 가까이 왕래는 물론 전화 한 통 온 적 없고, 심지어 어머니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A 씨 곁에 남아 있는 가족이라고는 아직 미혼인 작은딸밖에 없다. 작은딸을 결혼시키려 A 씨와 지인들이 여러 번 남자를 소개해줬지만 소용없었다. A 씨가 보기에 요즘 들어 부쩍 기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외로움을 타는 자신을 돌보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A 씨는 자신의 전 재산과 기업을 작은딸에게 모두 물려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먼저 A 씨는 생전에 모든 재산을 작은딸 명의로 이전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작은딸이 다른 형제들로부터 유류분 반환청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유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언은 그 내용이 불법이 아닌 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유언의 효력이 발생하는 사망 시까지 언제든 유언을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있고, 그 재산을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유언에는 중대한 제한이 있다. 자필증서, 비밀증서, 공정증서, 구수증서, 녹음 등 민법이 정한 5가지 방식을 엄격히 준수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법에 의해 보장되는 최소한의 상속 재산인 유류분도 제한으로 작용한다. 유류분제도는 개인의 유산 처분에 대한 자유와 재산의 공평한 분배라는 대립되는 요청을 법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역사적으로는 남녀차별 해소와 가족의 생활보호, 상속인 간의 불공평 해소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 인정되는 유류분은, 직계비속(사망자의 자녀와 손자녀)과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고, 직계존속(사망자의 부모 등)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이다. 법정상속분이란 민법에서 정해둔 상속분으로서 상속재산분할의 기준이 되는 비율을 말한다. 법정상속분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서는 균등한데,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 법정상속분은 사망한 사람의 자식이나 부모의 상속분에 50%를 가산한다. 예를 들어 사망한 사람에게 딸 2명과 아들 1명, 그리고 아내와 부모가 있으면 직계비속인 딸들과 아들(1순위 상속인)과 아내(배우자)만 상속인이 되고 그 비율은 1:1:1:1.5가 되기 때문에, 법정상속분은 딸들과 아들은 9분의 2씩, 아내는 9분의 3이 된다. 따라서 유류분은 딸들과 아들의 경우 18분의 2, 아내는 18분의 3이 된다. 이런 유류분제도에 대해, 유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할 뿐 아니라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외국의 입법례에 비해 그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도 있다.
유류분제도 때문에 A 씨가 자신의 전 재산을 작은딸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두더라도, 큰아들과 큰딸은 A 씨의 유언이 없었을 경우 자신의 받을 수 있는 법정상속분의 반씩을 작은딸에게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유류분제도 역시 상속인들 간의 유산 분할의 공평을 꾀하기 위한 제도라서, 유류분 부족액을 계산할 때 상속인들 중에 이미 피상속인(사망자)으로부터 생전에 증여받은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그 금액(이를 특별수익이라고 한다)만큼 반환받을 금액에서 공제한다. 따라서 생전에 특별수익액이 많은 큰아들은 특별수익액이 거의 없는 큰딸에 비해 유류분으로 받을 금액이 훨씬 적거나 없을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신탁계약을 체결해두는 것이다. 두 번째 칼럼에서 필자가 소개한 것처럼, A 씨는 생전에 신탁회사 등에 전 재산의 명의(소유권)를 이전하고, 생전에는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임대료, 이자, 배당소득 등)을 갖되, 사후에는 A 씨가 상속인으로 지정한 작은딸만이 그 수익권을 갖도록 정해둘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유언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신탁계약을 할 때 수익권 발생 또는 분배, 지급 방법, 신탁 재산의 처분 조건 등에 관해 자세히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사후에도 재산이 신탁자의 뜻대로 사용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다만 신탁제도를 이용해도, 현행법상 상속세와 증여세 감면 혜택이 없고, 수익권을 받지 못한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청구를 막을 수 없다는 면에서는 장점이 제한적이다.
사람들은 유산 상속, 분배와 관련한 법률과 제도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말들을 하지만 가족법, 세법 같은 법률이나 제도가 아무리 잘 마련돼 있고 현실에 맞게 개정된다 해도 가족끼리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 자신이 노력해서 벌지 않은 것에 대해 ‘공평’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는 이상, 유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진흙탕 싸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재산 때문에 자손들이 서로 원수가 되어 지내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생전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아낌없이 쓰다가 깨끗이 기부를 하고 떠나는 ‘웰다잉’을 계획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호를 끝으로 김성우 변호사의 ‘상속과 증여 톺아보기’ 연재를 마칩니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A(89·남) 씨는 1970년대에 회사를 설립해 연평균 매출액이 2000억 원가량 되는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A 씨는 형식적으로 아직 회사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지만, 건강 문제로 6여 년 전부터 실질적인 경영은 사내이사인 장남 B 씨가 담당하고 있다. A 씨는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고, 평생을 바친 회사가 자신이 은퇴한 뒤에도 잘 운영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했던 지인들로부터, 높은 증여세와 상속세 때문에 가업승계를 포기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A씨는
가업을 승계한다면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걱정이 많다.
상속세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높다. 상속세 최고세율인 50%에 더해, 대기업의 경우는 최대주주 할증까지 적용돼 65%까지 세율이 치솟는다. 성공적인 가업승계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세법 지식을 지닌 회계사 또는 세무사라 해도, 상속세와 증여세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결코 쉽지 않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주된 타깃인 고액 자산가들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왔지만, 과세관청이 그에 맞춰 세법을 개정하거나 제도를 보완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가업승계를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면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있기 때문에 미리 포기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IBK경제연구소의 ‘우리나라 가업승계 현황분석(2019)’에 따르면, 창업자가 CEO인 중견·중소기업 5만1256개사 중 CEO가 60세 이상인 잠재적 가업승계 기업은 1만7021개사로 약 33.2%에 달한다. 만약 구체적인 가업승계 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 이전이 어려워져 후계자가 회사를 물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또 가업승계가 이루어질 때 부과되는 막대한 세금 때문에 회사의 주요 재산을 헐값에 팔아버리거나 승계를 포기하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
가업승계의 첫걸음은 기업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종업원 수와 현금흐름, 리스크와 전망, 보유 주식, 개인 명의의 부동산과 부채, 후계자의 경영 소질, 소유 주식과 경제적 능력, 예상 상속세와 증여세 액수 및 이를 부담할 수 있는 현금 등의 자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계자 외 가족들과의 분쟁 가능성 등을 살펴봐야 한다.
현황을 살펴본 다음에는, 아들딸 등 친족에게 회사를 물려줄 것인지, 전문 경영인 등 외부 후계자에게 승계할 것인지, 기업인수 또는 합병 등을 통해 제3자에게 매각할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장남에게 물려주고 싶은 A 씨의 사례처럼 친족에게 회사를 승계하기로 결정했다면, 다른 후계자 후보들, 회사 임직원들, 거래처 등 기업 경영과 관련된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들에게 경영자의 결단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족 간 갈등이 생기면 상속 분쟁, 유류분 분쟁 등으로 이어져 가업승계가 복잡해지고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그다음으로 들여다봐야 할 부분은 소유권과 경영권 이전 절차다. 이 시점에서는 절세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 후계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세금이 부과된다면 기업 유지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업승계를 위한 절세 방안에는 중·장기적 전략과 단기적 전략이 있다. 중·장기적 절세 방안의 가장 일반적인 예는, 1세대가 오랜 기간을 두고 2세대에게 부동산이나 주식, 현금 등을 증여하는 것이다. 사전에 주식 등을 증여하지 않고 회사가 크게 성장한 뒤에 증여하면 증여세 부담 역시 커지기 때문이다.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가업의 주식 또는 출자지분(100억 원 한도)을 증여받을 때는, 일정한 조건과 범위에서 증여세를 10%(과세표준 30억 원 초과금액에 대해서는 20%)로 낮춰주는 과세특례가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중·장기적 절세 방안도 있다. 기업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마친 후 향후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분리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를 후계자에게 증여하는 방법이다. 이밖에 후계자가 세운 별도 법인과 기존 회사를 합병하는 방법,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법, 신설회사를 세우고 기업공개를 기대하는 제3자 투자를 받는 방법, 현물출자와 유상증자 등을 거쳐 국내외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한편 가업승계와 관련한 단기적인 절세 방안으로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른 가업상속공제가 있다. 예컨대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의 중견기업으로서 오랜 기간 피상속인이 경영한 기업은, 그 기간에 따라 최대 500억 원 상당의 가업상속재산에 대해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오늘날 가업승계는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다. 기업의 존속, 장인정신 계승, 고용시장 안정과 같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사안이다. 가업승계를 잘 연구하고 미리부터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양승국 변호사가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옥봉! 450여 년 전의 선조를 이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냥 부르고 싶네요. 시대를 격하여 삶을 살았기에 서로의 인연이 닿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슴 아픈 시인, 그대의 삶을 알고부터 그리 부르고 싶군요.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옥봉을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일컫기도 하고 또 허난설헌과 함께 중국에도 시가 알려질 정도였기에, 어찌 보면 옥봉, 그대는 조선의 여인으로서는 누릴 수 있는 영예를 다 누렸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선시대 같은 편협한 세상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면 떨칠 수 있는 시재(詩才)가 어찌 거기에 그쳤겠습니까. 그래도 허균은 그대의 시 ‘비(雨)’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고, 화장품 냄새를 단번에 씻었다고 탄복하며, 그대를 시인으로 예우했더군요.
구름 조각되어 흩어지는 가장자리에선 햇살 새나오고
너른 하늘에선 은빛 소나기 강을 가로지르네
구름 가장자리에서 새어나오는 햇살에 소나기는 은빛으로 반짝이는데, 그 소나기가 강을 건너 이동하는 모습을 ‘은죽이 횡으로 강을 건넌다(銀竹過江橫)’라고 표현한 그대! 가만히 눈을 감고 그대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한 폭의 수채화가 떠올라요.
수채화 시인 옥봉! 그대는 이봉의 서녀(庶女)로 태어났기에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에는 조원의 소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조원은 그대에게 함부로 시를 짓지 못하도록 했어요. 그 시로 인해 자기만의 여인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한 것일까요? 그러나 결국 그대가 조원에게 내쳐질 운명이었다면 차라리 자유로운 새로 남아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시의 노래를 불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옥봉! 그대는 시 ‘옥봉가소지(玉峰家小池)’에서 한 쌍의 원앙인 그대와 조원이 거울 같은 하늘 아래로 날고 있다고(鴛鴦一雙鳥 飛下鏡中天) 묘사했지요. 그대의 시를 보면 당신의 고지식한 낭군이지만 그 낭군을 참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조원이 그대를 내치다니요! 조원은 그대가 쓴 시 ‘위인송원(爲人訟寃)’을 읽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대를 내쫓았지요.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맹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어요
신첩이 직녀가 아닐진대
내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될까요
이 시가 어떻다고 조원은 그대를 내쳤단 말인가요? 옆집 사는 아낙네가 자기 남편이 소를 훔쳤다는 혐의로 구속이 되자, 그대를 찾아와 선처 편지 한 장 써 달랬다면서요? 그때 딱한 사정을 모른 체할 수 없었던 그대가 편지에 덧붙여 써준 시가 바로 이 시이고요.
촌부(村婦)가 직녀가 아니면 그 남편도 견우가 아닌 것, 그리고 견우(牽牛)라는 단어에는 소를 끈다는 의미가 있어, 견우가 아닌 남편이 소를 훔쳐서 끌고 갈 리가 없다는 그대의 재치가 번뜩이는 시. 사건을 처리하던 관원은 이 멋진 시에 촌부와 촌부 남편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보고 죄가 없다고 풀어줬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대의 남편 조원을 찾아와 당신의 멋진 시가 억울한 한 백성을 풀어줬다고, 당신의 재치가 번뜩이는 시에 대해 탄복하는 얘기를 했을 거고요. 그런데 조원은 그 관원으로부터 이 얘기를 들은 후 당신을 쫓아냈어요. 이 속 좁은 남자 조원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란 말입니까? 아마 조원은 당쟁 속에서 억울하게 지방관으로 돌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기에,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관원이 옥봉을 찬양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아녀자가 남의 형사(刑事) 문제에 관여해 이러쿵저러쿵했다는 말을 들을까봐 그게 더 걱정이 되었던 것이겠지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당신을 내친 조원에 대해 원망의 마음이 크련만, 그대는 이런 마음을 속으로 삼키며 조원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써 애절하게 풀어냈더군요.
근래 안부를 묻사옵니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달빛이 창가에 비치니 첩의 한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꿈속에서 다니는 혼에게도 발자취가 남는다면
당신 집 앞 돌길의 반은 모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대는 얼마나 조원에게 돌아가고 싶었으면, 꿈속에서 돌길의 반이 모래로 변할 정도로 그렇게 조원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는지요? 당신을 매몰차게 버린 조원에게 그렇게도 돌아가고 싶었나요?
아! 어리석은 자, 조원이여! 당신은 그 하잘것없는 명예욕 때문에 이런 여인을 내쳤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은 옥봉에게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놓쳐버렸소. 당신이 옥봉을 내치고 몇 년 안 돼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놈들이 온 국토를 유린할 때 당신은 홀로 남은 옥봉을 돌봐줬어야 할 것 아니오. 난리통에 혼자 남은 여인의 신세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았을 것 아니오. 에이! 이 몹쓸 사람!
옥봉! 당신에게 편지를 띄운다는 것이 잠시 흥분해 조원에게 화살을 돌렸소. 옥봉! 당신은 과연 그 난리통에 어느 하늘 밑을 걷다가 죽었소? 절개를 지키다가 죽었다던데, 어느 흉악한 왜놈의 손길을 끝내 거부하다가 왜놈의 칼에 숨진 것이오?
아아! 불쌍한 옥봉! 그대의 마지막을 상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게 되는구려. 부디 그곳 하늘나라에서는 헛된 명예욕에 눈이 멀었던 조원이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길 바랍니다. 옥봉! 당신은 그렇게 갔지만, 당신이 남긴 시로 인해 이 후생은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당신에 대한 연민 속에서도 편지 쓰는 행복을 느끼오. 안녕! 그리운 옥봉.
양승국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81년 사법시험 제23회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판사,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로고스의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KBS 자문변호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양승국 변호사의 산 이야기’가 있다.
은퇴 후 가장 먼저 생각해보는 직업 중 공인중개사를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재테크의 대명사인 부동산에 관한 관심은 시니어의 일상 속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정부 규제의 변수로 예측도 전망도 어려워져 믿을 만한 부동산 정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맨손으로 시작해 부동산 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전문가이자 여러 부동산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출연까지 하며 부동산 업계 트렌드를 꿰뚫고 있는 장용석 ㈜장대장 부동산그룹 대표. 그를 만나 현시점 우리나라의 진짜 부동산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용석 ㈜장대장 부동산그룹 대표는 부동산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빈손으로 출발해 10여 년 만에 이름만 대면 아는 부동산 전문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가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다기보다는 부동산 시장에 큰돈이 흐른다기에 혹시나 하고 시작했어요. 2004년 무렵이었어요. 저희 집 형편이 안 좋은 상황이어서 고시원에서 지내던 시절이었죠. 부동산 일을 한번 제대로 해보자 하고 뛰어들었어요.”
2007년, 장 대표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국내 경제도 좋았고, 지방에서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등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부동산 시장에도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현지 부동산에 가서 제가 관리하는 고객이 꽤 있는 척했죠.(웃음) 한 지역을 가면 매물을 구하기 위해 열 군데 이상의 부동산을 돌았어요. 그렇게 10여 군데 돌아야 겨우 하나 얻을까 말까 했어요.”
땅은 책으로 경험하는 게 아니다
부동산은 발로 뛰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장 대표 또한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더러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동산그룹의 대표가 된 데에는 확실한 성공 사례들이 있었다.
“평택 부동산 가격이 엄청 뛰었잖아요. 평당 20만 원, 30만 원 하던 시절에 많이 소개했어요. 지금은 200만 원, 300만 원 하죠. 세종시는 제가 그렇게 투자를 권했는데도 사람들이 안 하더라고요. 평당 몇십만 원 하던 땅값이 지금은 몇백만 원가량 합니다. 부동산 투자자들 중에 싼 매물만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평당 몇십만 원도 부담스러웠겠죠.”
발로 뛰는 타입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았다. 부동산과 얽힌 사람들의 천태만상은 그를 씁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번은 새만금을 끼고 있는 부안 땅을 산 장모와 사위가 왔어요. 돈은 장모가 내기로 했고요. 예를 들어 그 땅이 901평이라고 가정하면 장모가 451평, 사위가 450평 반반씩 나누기로 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장모가 더 갖게 된 한 평을 가지고 식사를 하다가 싸움이 난 거예요. 장모가 땅을 사주는데 사위가 한 평 더 가져가려고 어떻게 저러나 싶었죠.”
가짜 정보와 분양가 상한제의 속내
장용석 대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SBSCNBC ‘시선집중 부동산 길라잡이’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며 화제에 올랐다. 더불어 TV조선 ‘부동산 로드 이사야사’에서도 최고 전문가로서의 진면목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부동산 삼국지’에 복귀해 가수 방미와 함께 부동산 강의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줬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부동산 강사로 명성이 높다. 부동산 전문 방송에서 패널로 참여하고 싶어 직접 찾아가 면접을 보고 방송을 한 게 방송인 경력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동산 관련 유튜브 채널이 늘어나면서 온갖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방송 전문 패널로서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방송에서는 강한 얘기를 못해요. 그런데 유튜브에서는 가능하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회 수와 구독자 수가 많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지 유튜브에 나오는 정보들이 진짜라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
최근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분양가 상한제다. 장 대표는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막겠다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는 재건축을 앞둔 강남권의 오래된 아파트가 투자 대상 1등이었죠. 1등이 어느 정도 오르고 나면 그다음은 5년에서 10년 이내에 지어진 신규 아파트로 투자자들이 몰렸고요. 그리고 이들 매물이 좀 올랐다 싶으면 강남 외 지역 재건축 아파트 구매로 이어졌죠. 정부에서는 관련된 규제를 계속 해왔는데 정책 효과가 없자 이제 분양가 상한제까지 적용하게 된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부적으로는 이견이 있는 듯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예를 들어 관리 처분을 신청했던 단지들이 분양에 들어가야 하는데 분양가 상한제 기준을 입주자 모집 공고 전까지로 하면 다 해당되거든요. 그러자 조합은 헌법소원까지 가겠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어요. 규제가 많아지고 적용기간이 길어지면 또다시 부동산 시장은 왜곡될 겁니다.”
부동산 부자들이 요즘 움직이는 곳
장 대표는 “부동산은 심리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최근 언론에서, 서울의 경우 양질의 주거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기사를 싣자 가격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판매자들은 안 팔려고 하고, 구매자들은 급매물을 노리고 있다는 게 요즘 분위기란다. 그래서 당분간은 보합세에서 약간 올라가는 추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강남 부자들이 요즘 부동산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일까? 최근 SNS를 타고 떠도는 소문에 대해 물어봤다.
“사람마다 달라요. 작은 규모로 여러 채 가진 분들이 있는데, 작은 건 강남 지역 외에 있는 거죠. 그런 곳은 사실상 입주 단계에서 값이 많이 내려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파는 분들이 많아졌지요. 강남권에서도 일부 비슷한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해요. 우리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판매로 돌아섰다면 강남 매물이 많아야 하잖아요? 말만 무성할 뿐이지 실물 거래는 없다는 얘깁니다.”
장대장 대표는 유튜브 채널 ‘장대장TV’ 등 다양한 SNS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2019년 개정 부동산 세법, 부동산 통계 해석, 조정대상지역 내 각종 규제 적용 시기 등 업로드되는 부동산 관련 최신 정보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
전국에 있는 개업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부동산 프랜차이즈 전국 지점도 모집 중이다. ㈜장대장 부동산그룹은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컨설팅에 그치지 않고 선진국형 프랜차이즈 지점을 통해 전국의 알짜배기 분양 매물을 고객들에게 투명하게 소개하고 그로 인한 수익은 본사와 지점이 모두 상생하는 방향으로 공유할 계획이다.
그래서 최근 경기 침체, 가짜 부동산 정보, 비관론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자신이 이끄는 장대장 부동산그룹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지점 확대를 통한 본격적인 종합 부동산그룹으로의 확장이다. 부동산 회사의 기본은 좋은 매물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그가 지점을 늘리려는 이유도 지점이 많아지면 안 팔리는 매물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소비 심리가 죽으면 안 팔리겠지요. 그럴 바에는 싸게 파는 게 낫잖아요. 예를 들어 5억 원짜리를 4억5000만 원에 팔아주고, 대신 2주 안에 해결해주겠다고 하면 건설 사업자도 돈을 벌고 부동산 업체도 이익을 나눌 수 있고, 고객도 좋은 거죠. 사장될지도 모르는 매물을 가져다 모두가 윈윈하게 만드는 게 제 계획이에요.”
새로워져야 할 부동산 투자전략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좀 더 투명하게 만들자, 이를 기반으로 부동산 산업을 다양하게 확장하자’는 게 그의 사업 목적이다.
또한 현장과 본사와의 소통을 통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저희는 유료로 상담을 하는데 무료로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게, 변호사 상담은 당연히 돈을 내는 걸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부동산 상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부동산 중개소에서 해주는 공짜 상담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정보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서 살아왔기에 계속 실수하고 실패했던 게 아닐까?
“미국은 변호사 위에 부동산 전문가가 있어요. 수수료도 굉장히 비싸서 3%나 돼요. 그걸 양쪽에서 받으니 6%죠. 우리나라는 최고가 0.9%예요. 그것도 비싸다고 내리자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사기를 당하죠. 적게 받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으려면 그만한 비용을 치러야 하고 그럴 때 신뢰도 생긴다고 말한다. 또 부동산 업계에서 사고를 친 사람은 다시는 업계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모종의 인증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에게도, 믿었던 사람에게 속아 무려 1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날려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부동산 시장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싶은 그의 사업 목표와 이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동산 시장 투명하게 만들고파
스포츠를 전공한 그답게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일하는 일면도 볼 수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장 대표는 사업을 안 하고 ‘선수’로만 뛰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고백했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맞지 않다기보다는, 그의 삶의 궤적이 보여주는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 업계의 부조리함을 개선하고 싶었고, 하던 일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노력해서 어쩌다 보니’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머리 아픈 일을 너무 겪어서… 이제 좀 편하게 살고도 싶기도 하고,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그렇지만 부동산 연구소를 만들어 최고의 평가도 받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게 지금 하는 사업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시장 분석과 통찰력으로 사업을 하면 할수록 고객 사례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적확한 빅데이터가 구축되고 그걸 제 연구에 활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함께 일하는 업계 베테랑들이 한 말을 들려줬다.
“부동산 사업이 경기를 가장 많이 타요. 함께 일하는 이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너무 욕심 부리지 마라, 욕심 부리지 않고 오래 일해야 무슨 일이 벌어져도 대응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말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욕심에만 급급한 부동산 분야에 마땅히 필요한 금언 아닐까. 그가 만들 새로운 한국 부동산 비즈니스 모델의 비전이 궁금해졌다.
A(72) 씨는 크지는 않지만 젊은 시절 맨손으로 일으켜 탄탄하게 키운 사업체를 지금도 잘 운영하고 있다. 아들은 A 씨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다. 남부러울 것도 걱정할 일도 그다지 없는 A 씨이지만 아내가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병원 신세를 자주 져 신경이 쓰인다. A 씨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지만, 요즘 들어와 부쩍 기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업체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하다.
우리나라의 현 법령과 제도는 부(富)의 대물림에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어 그 문턱이 상당히 높다. 대가 없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를 법률적으로 분석하면 결국에는 ‘증여’ 아니면 ‘상속’이 된다. 세법(稅法) 측면에서 보는 ‘증여’는 그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 형식, 목적 등에 상관없이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무상으로 재산을 이전하는 것(현저히 낮은 대가를 받고 이전하는 경우 포함)을 의미한다. ‘상속’은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의 권리와 의무를 일정한 사람(상속인)에게 포괄적으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 이름으로 취득한 재산이라 해도 취득에 들어간 자금의 출처를 입증하지 못하면 부모가 증여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사망한 사람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는 사유로는 앞서 설명한 ‘상속’이 대표적이지만, 유언으로 유산을 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는 ‘유증’도 있고, 증여자가 생전에 증여 계약을 체결한 뒤 사망했을 때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하는 ‘사인증여(死因贈與)’도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증여세’와 ‘상속세’는 다른 세금에 비해 세율이 높다. 증여 또는 상속되는 재산 가액이 커질수록 세율도 높아지기 때문에(이를 ‘누진세율’이라 하는데 증여, 상속되는 재산이 30억 원이 넘으면 세율이 50%에 이른다), 합리적이고 치밀한 절세 전략이 필요하다.
증여세를 줄이려면 먼저 증여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부분, 즉 공제(控除)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 10년 이내에 증여한 금액의 합계액이, 배우자는 6억 원, 부모 또는 성년 자녀는 5000만 원, 미성년 자녀는 2000만 원까지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증여를 할 경우 반드시 증여세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세 신고를 하지 않으면 증여한 돈 또는 그 돈으로 얻은 재산 가치가 불어났을 때 늘어난 재산까지 증여 금액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액 공제가 되는 범위 내에서 증여하더라도 증여세를 0원으로 해 신고를 하거나, 소액의 증여세만 낼 정도의 금액을 증여해, 언제 누구로부터 증여를 받아 얼마를 증여세로 냈다는 근거를 남겨두는 게 좋다.
고령자가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처분해 현금을 수령하거나 재산이 수용되어 보상금을 받으면, 국세청에서는 일정 기간 당사자와 가족의 재산 변동 상황을 지켜보다가, 배우자 또는 자녀가 재산을 취득했을 때 취득자금 소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처분대금 사용처나 취득자금 출처에 대한 입증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이밖에 부동산을 증여할 때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예상되지 않는 한 공시지가나 기준시가 고시일 이전에 증여하면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부채를 상환할 때, 미성년자 명의로 재산을 취득할 때는 그 상환자금이나 구입자금 출처 조사에 대비해 증빙 자료를 잘 준비해둬야 한다. 또 손자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경우처럼 세대를 건너뛰는 증여는 할증된 세액이 적용된다는 사실도 기억해두면 좋다.
상속세를 절약하려면 먼저 공제 항목을 잘 알아둬야 한다.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이고 사망자에게 배우자가 있다면 상속공제를 받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상속재산이 많아 상속세가 과세될 경우에는 배우자 상속 공제(최대 30억 원까지 공제 가능)를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세 부담의 차이가 클 수 있다. 가업상속공제, 금융재산상속공제, 동거주택상속공제 등의 상속공제 항목도 잘 살펴야 한다.
한편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이 있으면 그 재산 가액이 상속세를 계산할 때 과세가액에 포함된다(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증여한 경우는 5년 이내 기준). 10년이 지난 증여는 합산되지 않는다. 10년 이내 증여라 해도 그 가액은 과세 시점이 아닌 증여 당시의 가액으로 평가되므로, 증여 시점을 잘 선택해야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이외에 사망일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피상속인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점, 상속세를 계산할 때 공제되는 피상속인의 채무를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 건물을 상속할 때는 월세보다 전세가 많은 상황이 유리하다는 점, 사망하기 전 재산을 처분하거나 예금을 인출할 경우 사용처에 대한 증거자료를 잘 준비해둬야 한다는 점, 상속인이 상속 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상속세를 자진신고하면 세금의 3%를 공제해준다는 점(증여세의 경우는 3개월 이내) 등을 알아두면 절세에 도움이 된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이른바 황혼이혼 또는 고령이혼이 매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결혼기간이 늘어난 데서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남편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태도, 경제권 독점, 반복된 폭언과 무시를 오랫동안 겪어오던 아내가 자녀 뒷바라지를 끝내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 제2의 인생을 찾는 방편으로 이해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많아지고 연금 분할제도 등이 생기면서, 은퇴 후 경제적·육체적으로 내리막길에 선 남편들이 구박과 냉대를 견디다 못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으로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전처소생들과의 상속 갈등 때문에 이혼하는 고령의 재혼 부부들도 있다. 법률적인 면에서 볼 때 황혼이혼도 일반적인 이혼과 다를 게 없다. 다만 혼인 지속 기간, 이혼 시기, 부부 연령을 기준으로 해서 이해하는 개념이므로, 보통의 이혼보다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황혼이혼과 재산분할
이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어렵게 판단을 내렸어도 이혼을 할 것인지, 이혼을 한다면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관해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가정법원까지 갈 수밖에 없다. ‘재판상 이혼’은 쉽지 않다. 이혼은 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배우자가 외도를 했거나, 배우자로부터 심한 폭행이나 학대 또는 모욕을 받았거나, 배우자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는 등 명백한 잘못이 있어야 한다. 성격 차이, 상대방의 권위적인 태도, 경제권 독점, 반복된 폭언과 무시 등과 같은 사유는 그 하나하나만으로는 독립적인 이혼 사유가 되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 물론 어느 한쪽이 외도, 폭력과 같은 결정적인 잘못이 없다 해도,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탄에 이른 경우에는 이혼이 허용되기도 한다. 다만 우리나라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쪽의 이혼 청구는 허용하지 않는다.
황혼이혼을 할 때 가장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재산분할이다. 이혼 후 각자 경제적·사회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있는지, 결혼 전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는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산분할은 ①부부의 재산 중 어떤 재산이 분할 대상이 되는지, ②그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정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분할 대상 재산은 혼인생활을 한 기간에 부부가 힘을 합쳐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혼인 전 한쪽 배우자가 개인 명의로 가지고 있었던 재산, 혼인 중 각자의 부모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재산 등은 포함되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그러한 재산이라 해도 부부 중 한 사람이 그 재산의 감소를 방지했거나 가치를 높이는 데 협력했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분할 비율에는 공동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각자의 기여도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다. 혼인생활의 과정과 기간, 각자의 나이와 직업, 경력, 경제력과 소득, 혼인파탄의 경위,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 분할 대상 재산에 명시적으로 포함할 수 없는 유무형의 재산 등이 있는지, 한쪽 배우자가 재산을 낭비하거나 손실을 입혔는지, 한쪽 배우자의 부모나 형제자매가 재산 형성에 큰 도움을 줬는지 등을 종합해 결정한다. 분할 비율을 정하는 건 판사의 재량이다. 한쪽 배우자가 혼인 전 갖고 있던 재산이나 부모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재산이 특별히 많지 않다면, 맞벌이부부인지 아내가 전업주부인지와 상관없이 혼인기간이 길수록 50대 50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황혼이혼에서 특히 챙겨야 할 부분은 공무원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국민연금 등이다. 은퇴 이후를 보장하는 이 연금들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이혼을 한 뒤에도 상대 배우자가 일부를 받을 수 있다. 혼인기간은 부부마다 다르고, 연금 개시 연령 등 각 법에서 정한 요건들도 조금씩 차이가 나므로, 이혼을 고려할 때는 분할연금 수령 조건, 방법, 시기, 액수, 비율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황혼이혼 후 삶, 고통스러울 수도
황혼이혼이 자유롭고 행복한 제2인생의 출발이 될 수도 있지만, 외롭고 고통스런 삶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이혼으로 재산이 분할되고 주거, 식비 등 생활비가 늘어나 경제적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잃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요즘 유행한다는 ‘졸혼(卒婚)’은 법률적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결혼의 책임에서 벗어나 각자 자유로운 삶을 누리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관계가 더 악화되는 걸 막고, 현재의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적인 합의를 하더라도 혼인에 따른 법률적인 의무, 상속, 재산분할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부부가 상대를 애정 있게 바라봐주고,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 없이는 노후의 불신과 갈등의 산을 넘기 어렵다. ‘황혼이혼’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쉽지 않은 길의 출발일 수 있음에 유념하자.
이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어렵게 판단을 내렸어도 이혼을 할 것인지, 이혼을 한다면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관해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가정법원까지 갈 수밖에 없다
>>김성우(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A(85세) 씨는 경기도 양평에서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22세 때 직업군인과 결혼했고, 배우자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모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자녀는 없고 배우자가 2000년에 사망한 후 홀로 생활해왔다. 노년이 외롭기는 했지만, 배우자가 남긴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고혈압과 당뇨를 앓아오던 A 씨에게 2009년 가벼운 뇌출혈이 발생했고 이때부터 인지장애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평소 왕래도 자주 없었던 형제와 조카들이 서로 A 씨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결국 A 씨의 큰 남동생 아들인 B(63세) 씨가 자신의 집으로 A 씨를 데려갔다. 문제는 그 후 A 씨의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다른 가족들, 특히 A 씨의 막내 여동생 C(78세) 씨는 2015년에 대표로 성년후견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씨의 부동산 대부분이 B 씨와 그의 아내, 자녀들 명의로 증여가 이루어졌고, 50여억 원에 달하던 정기예금 등 금융자산도 20여억 원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가사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그 당시 A 씨는 전라남도에 위치한 요양원 8인실에서 홀로 지냈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A 씨의 가족들이 후견개시 여부와 후견인 선정에 관해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중에 C 씨가 돌연 재판 신청을 취하한 것이다. 알고 보니 C 씨는 남은 금융자산 20여억 원을 자신 앞으로 빼돌리는 조건으로 B씨와 타협을 했다. 또 근거 자료를 남기기 위해 A 씨 명의의 증여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으며,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똑같은 내용의, 즉 유산을 물려준다는 A 씨 명의의 유언장까지 작성했다.
C 씨와 B 씨의 이 같은 밀약을 알게 된 나머지 가족들은 A 씨의 증여계약서와 유언이 무효임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한 뒤 다시 성년후견신청을 했다. 이후 2년여 동안의 공방 끝에 A 씨에 대한 성년후견이 개시된다는 재판은 확정되었지만, 증여계약서와 유언 무효 소송이 진행되던 중 A 씨가 사망했다.
재산을 두고 가족과 친척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재산을 독식하기 위해 조카 중 한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양자로 만든 경우도 있다. 상속 순서로 따지면, 직계비속(자녀, 손자 등),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 배우자가 없을 경우 방계혈족(형제자매)이 순위가 된다. 만일 형제자매까지 모두 사망했다면 그 자녀, 즉 A 씨의 조카들에게 상속권이 생긴다. 법정상속분으로 보면, 조카가 15명일 경우 15분의 1씩 상속받는다. 그런데 양자가 되거나 생전증여 또는 유증 방법으로 A 씨의 재산을 독차지(유류분은 별론)할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안하게 노년을 살려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한다. A 씨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를 반드시 고려하자.
첫째, 임의후견계약 체결이다.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믿을 만한 사람을 후견인으로 정해두고, 그 후견인에게 어떤 권한을 줄지에 대해 미리 계약을 해두는 것이다. 이 계약은 공정증서로 체결되어 법원의 후견등기부에 등기해둔다. 시간이 흘러 실제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후견인의 업무는 시작되고, 법원에서는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해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신변과 재산을 잘 돌보고 있는지 살핀다.
둘째, 유언장 작성이다. 사후에 재산을 어떻게 분배하고 처분할지 자신의 의사에 따라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다. 유언은 유언자의 사망 시점에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망 전까지는 미리 준비해둔 유언을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유언은 법에서 정한 형식을 따라야 한다. 민법은 자필증서, 공정증서, 비밀증서, 녹음, 구수증서(유언자가 말로 하고 증인이 받아 적어 작성한 증서)와 같은 5가지 형태의 유언을 인정한다. 사전에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거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셋째, 신탁계약 체결이다. 신탁은 신탁자(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가 수탁자(재산의 소유권을 넘겨받는 사람, 보통은 신탁회사)에게 소유권을 넘기되, 넘긴 재산을 신탁자가 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처분되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하면, 재산의 명의는 넘기되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산을 사용하도록 하는 체결이다. 재산(부동산이나 예금, 주식 등)을 신탁회사에 맡기면서, 신탁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재산으로부터 나오는 이익(임대료, 이자, 배당소득 등)은 가져가되 사후에는 신탁자가 지정한 사람이 수익자가 되도록 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유언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자녀(수익자)가 특정 학교에 입학할 것, 결혼이나 출산을 할 것, 일정 기간 직장을 가질 것 등을 수익 분배 조건으로 해둘 수도 있다.
임의후견, 유언, 신탁의 장점은 노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다는 데 있다. 이들 제도를 활용하면 혹여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될 때에도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법률적·경제적으로 격리되거나 보호 또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에 있어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마, 잡상인은 저리 가이소!” 아무리 농이 섞였다 해도 지인의 한마디는 그를 슬프게 했다. 23년간 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경상도 사내로서는 분을 삭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빙긋이 웃는다. 사소한 냉대쯤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거절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보람상조에서 장례지도사 겸 상조상품 세일즈맨으로 활동 중인 김길후(金佶喣·48) 씨 이야기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칸 영화제를 휩쓴 영화 ‘기생충’의 대사 한 구절처럼 김길후 씨 역시 계획이 다 있었다. 23년간 근무하던 해운대구청을 떠날 때, 그는 당당했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때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버티려고 했다면 정년퇴직 때까지 버틸 수도 있었죠. 퇴직 후 나름의 계획도 있었고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와 보니 예상과는 달라 당황했습니다. 그 후 제가 세운 원칙 중 하나는 ‘직접 눈으로 보고 결정하자’였습니다. 지금 입사한 회사도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해운대구청에서 23년 근무
그가 해운대구청에 입사한 것은 1996년 8월. 오랜 기간 구청에 근무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주로 담당했던 업무는 재개발로 인한 토지수용 업무나 토지이동, 환경개선부담금 관련 일이었다. 당시 해운대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등으로 인한 재개발 수요가 많아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제가 입사할 때는 해운대에 수영비행장 자리가 남아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죠. 재개발과 관련한 업무가 쉽지 않았던 건 다른 사람의 재산을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업무를 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닥치는 대로 공부를 했죠.”
장례지도사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김 씨는 동부산대학교 장례지도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관련 업종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웃는다. 그 후로도 그는 영산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법무사와 공인중개사 공부도 병행했다.
“법에 대해 잘 알게 되니 많은 분을 도울 수 있게 되더라고요. 재개발로 집을 잃은 분들에게 임대주택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거나, 전세금을 날리게 된 가설건축물 임차인들이 최소한의 금액이라도 회수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죠. 그래서 구청 내에서도 절 찾는 사람이 많았죠. 공무원들이 업무상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가 간혹 있거든요.”
한때는 공무원 노조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조직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노조 지부 중 회계 내역을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한 곳은 그가 총무국장으로 있었던 해운대구청이 최초였다.
명퇴 후 삶, 계획대로 안 돼
그가 명예퇴직을 결심한 것은 2017년이다. 한때는 진급도 꿈꿨지만 공직사회에서의 한계를 느끼면서 두 번째 인생을 살아보고자 도전을 선택한 것.
“워낙 재개발 관련 업무 경험도 많고, 인맥도 넓어 일단은 그쪽 일을 시작했죠. 변호사 사무소의 사무장 역할이었어요. 처음엔 재미있었죠. 공직에서 나온 만큼 좀 더 자유롭게 일을 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문제는 시장의 변화였어요. 로스쿨 제도 도입 등 이런저런 요인들로 인해 시장이 혼탁해져갔어요. 의뢰인에게 자세히 상황을 설명해주고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수임을 하기 위해 무조건 이긴다고 유혹하는 변호사 사무소가 늘기 시작한 거죠. 결국 1년을 못 버티고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김 씨의 방황은 다시 시작됐다. 경매학원에 등록해 부동산 경매에 대해 알아보고, 개인회생 분야도 조사했다. 한국폴리텍대학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방황이 끝난 것은 지난해 7월. 지인 소개로 보람상조개발을 소개받으면서부터다. 공무원에서 세일즈맨, 즉 영업직으로의 변신이었다.
“처음엔 나를 내려놓고 세일즈맨이 된다는 게 쉽지 않았죠. 이 제복을 입는 데 한 달이 걸렸어요. 공직자에 사무장 출신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인생을 턴할 수 있는 기회이고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문해서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고심 끝에 내린 결심입니다.”
세일즈, 나를 내려놓는 일
세일즈맨이 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지인들에게 핀잔을 듣는 건 기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리하지 않고 고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상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노력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초창기에는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나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실감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해요. 일부러 제복도 입고 가죠. 약속 장소로 정해둔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고요, 고객이 있을 만한 교육 과정에도 참여해 인맥을 넓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공직자 때는 상상도 못했던 정치 단체에서도 활동해요. 또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다양한 교육들이 큰 도움이 되죠.”
김 씨는 중장년에게 자신의 직종과 같은 세일즈 분야는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고 이야기한다. 의지만 있다면 정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고, 노력에 따른 경제적 보상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실 중장년들은 자신이 한창 잘나갈 때의 추억에 젖어 있잖아요. 그러니 나를 내려놓기 쉽지 않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중장년의 이력서를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아요. 저도 면접관이 되어 중장년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자존심 버리는 것을 가장 어려워해요. 면접에 통과해도1년 이상 롱런하는 분들은 20%가 안 돼요.”
그는 지금 일하는 직장의 장점으로 ‘수평이동이 가능한 문화’를 꼽았다. 조직 내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내면 영업직이 아닌 관리직 등 다른 부서로의 이동도 가능하다는 것. 김 씨는 “최종 꿈은 직영 장례식장에서 일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정보를 직접 확인하고 판단할 것을 당부했다.
“많은 분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불확실한 정보만 가지고 판단해요. 그 정보들 중 상당수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꼭 눈으로 확인하고 결정하면 좋겠어요. 중장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게 세일즈라 해도요. 직접 부딪쳐보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