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타투 후뚜맞’. 이게 무슨 의미일까? ‘허락 전에 문신을 하고 그 후에 부모님께 뚜들겨 맞겠다’는 뜻이다. 문신을 반대하는 기성세대와 문신을 개성 표현 방법의 하나로 여기는 신세대 간의 첨예한 대립을 제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사람들 몸에 문신을 새겨주는 타투이스트 ‘난도’를 만나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신(tattoo)’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는 온몸을 휘감은 용, 잉어, 도깨비 등 부정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조폭, 야쿠자 등으로 연결되면서 ‘문신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결론 난다. 가끔 뉴스에서 보이는 불량 청소년이나 조폭의 몸에 새겨진 휘황찬란한 문신들은 여전히 우리를 문신에 대한 부정적 생각의 틀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라는 옛말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문신은 결코 이해될 수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오늘날 문신은 더는 낯설지 않은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요즘에는 길거리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문신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배우, 스포츠 선수, 가수 등 예체능 종사자를 중심으로 성행했던 문신이 이제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문신, 그 편견을 넘어서
한남동에서 타투숍을 운영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난도. 담배 연기로 자욱하고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숍을 예상했지만 이 또한 편견이었다. 처음 방문한 타투숍이 신기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난도가 인사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숍이 밝죠?”
그렇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여기저기 놓인 독특한 소품들은 애초에 생각했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밝은 조명과 쾌적한 환경, 거기에 난도가 직접 그린 작품들은 타투숍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경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스페인 유학 시절 문신을 접하면서 시술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유럽 사람들은 개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문신을 하곤 해요. 스페인에선 워낙 많은 사람이하니까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죠. 아무래도 제 전공이 미술이다 보니 눈길이 많이 갔고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유럽에선 20세기를 거치면서 문신이 이미 자연스러운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에는 영국 해군들 사이에서 일종의 ‘무사 귀환’을 상징하는 부적으로 여겨졌고 이후 미국으로까지 퍼졌다. 그렇게 전 세계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문신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패션의 일부이자 개성 표현의 한 문화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을 보면 가수 이효리와 남편 이상순 몸에 새겨진 다양한 문신이 눈에 띈다. 예전이라면 모자이크로 처리했겠지만 지금은 별다른 제재 없이 노출하고 있다. 그만큼 문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타투숍을 방문하는 걸까?
“문신은 조폭이나 나쁜 사람들만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십니다. 문신이 조폭 영화에서 필수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커요. 하지만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패션이나 개성 표현 방법으로 문신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최근 유행하는 문신은 눈에 잘 띄지 않다 보니 인식도 바뀌는 등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하는 작업은 선이 얇고 비교적 작은 크기이다 보니 남성분들보단 여성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난도의 SNS 계정은 국내외에서 18만 명이 팔로우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을 문신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그의 지향점이 바로 인기 비결. 피부에 수채화를 그려넣은 듯한 그의 섬세한 문신은 우리가 흔히 아는 ‘혐오스러운’ 문신과는 거리가 멀다.
문신은 피부에 상처를 내서 물감을 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하면 지우기 어렵다. 레이저 시술로 없애는 방법이 있지만 완벽한 제거는 아직 불가능하다. 마치 우리 기억 속의 추억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추억을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들도 있단다.
“아무 의미 없이 하는 손님도 있지만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어요. 흉터를 가리기 위해 찾아오는 분,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이별하고 찾아오시는 분, 가족 얼굴을 새기고 가는 분 등 매우 다양하죠. 탄생화나 별자리를 새기는 분들도 있고요.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아기가 태어난 날짜를 시계 도안과 함께 팔에 새기고 간 분이에요. 지워지지 않는 문신은 잊지 못할 순간을 평생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난도에게 물었다. “혹시 시니어분들도 문신을 하기 위해 찾아오나요?”
“3년 전부터 급격하게 우리나라도 문신에 대한 인식이 관대해졌지만 아직 시니어에겐 쉽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딱 한 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한 적은 있지만 거의 드물다고 해야겠죠.”
문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남아 있다. 대중목욕탕엔 ‘혐오감을 주는 문신을 한 사람은 입장 불가’라는 안내판이 존재한다. 공무원 응시 자격 요건에도 ‘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문신이 없어야 함’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실제로 야구선수 이대은은 2016년 경찰야구단 입대를 위해 지원서를 냈다가 문신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 난도는 문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조폭 하면 쉽게 떠올리는 알록달록한 문신인 ‘이레즈미’, 글자만 새기는 ‘레터링’, 명암으로만 표현한 ‘블랙 앤 그래이’ 등 문신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어요. 또 도안마다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죠. 타투이스트들 또한 손님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도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아직까진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시고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예술 활동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에는 ‘평범함’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문신을 한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에 포함된다. 위아래로 훑어보곤 ‘분명 엇나갔을 거야’, ‘몸이 도화지야?’, ‘철이 없네’ 하면서 부정적으로 그들을 평가한다. 문신을 찬양하자는 말은 아니다. 한 번쯤은 편견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려 노력해보자. 어쩌면 그들의 문신에는 위협이 목적이 아닌, 끝까지 잊지 않고 싶은 추억과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5070세대 대부분은 보릿고개가 있을 정도로 먹고살기 힘들던 지난날이 있었다. 청년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을 들려주면 마치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현재의 청년들이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개개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어른들이 굶주리며 일할 때 지금의 시니어들은 가사를 도와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달려왔다. 책도 부족하고 TV나 라디오도 흔치 않았던 시대, 아이들의 정서 함양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친구와 싸웠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부모님께 꾸중 들으면 화가 나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 때 아이들 옆에는 만화가 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세상을 알려준 만화에 대한 기억들을 꺼내보자.
최초의 단행본 만화 작가 ‘코주부’ 김용환
코가 뭉뚝하고 키는 작달막하지만 다부진 모습의 ‘코주부’는 김용환 작가의 대표 캐릭터다. 때론 모자를 쓰고 점잖은 어른으로 나와 신문에서 당대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사만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코주부’가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 잡지에 연재된 를 통해서였다. 청소년 교양지였던 은 10만 부 가깝게 판매되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잡지였다. 책이 부족했던 시절, 읽을거리가 풍부했던 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곳에 빼어난 이야깃거리인 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었으니 당시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에 연재된 ‘코주부 삼국지’는 1955년 만화책 로 발행되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용환의 만화는 세련된 그림,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그는 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이미 아동만화를 많이 발표한 작가였다. 최초의 단행본 만화를 발표한 작가도 김용환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발표된 만화는 1909년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만평이라고 소개하지만, 어린이에게 친숙한 만화책이 처음 나온 것은 해방 후였다. 바로 동화작가 마해송의 작품인 를 김용환이 만화로 각색해 1946년에 발표한 다. 이 작품은 해방 후 아동문화를 만들기 위해 을유문화사에서 만든 아협만화문고 시리즈 중 하나다. 한국 최초의 단행본 만화로 기록되었고 2013년, 등록문화재 제537호로 등록되었다.
김용환은 만화 발표 외에도 만화신문과 만화잡지를 직접 발행하고 기획하기도 했다. 1948년, 최초의 만화신문인 의 기획자, 작가로서 참여했고 도 직접 발행했다. 또 한국전쟁 후인 1956년엔 성인시사만화잡지인 를 통해 시사만화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물론 각종 신문에도 시사만화를 발표했다. 이렇듯 김용환은 한국 만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방송인 만화가 신동우
가정에 TV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한 만화가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슥슥슥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충격적이었다. 바로 신동우 작가였다. 그가 유명 방송인이 된 것은 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1967년 1월 7일 서울 대한극장을 비롯해 많은 극장에서 상영된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만화영화)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 작품의 탄생은 신동우 작품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은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인데, 이 연재만화를 대본으로 신동우 작가의 형인 신동헌 감독이 우리나라 최초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 것이다. 홍길동에 관한 만화는 이전에도 많았고 이후에도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신동우 작가의 은 홍길동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정도였다. 이 작품은 허균의 에 대한 가슴 벅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홍길동’ 외의 주변 인물인 ‘호피’와 ‘차돌바위’, ‘곱단이’ 등의 캐릭터도 개성 있게 묘사되어 있어 매력적이다.
신동우는 1970년대에 유행했던 잡지의 만화 광고로도 유명하다. 오랫동안 진주햄소시지 제품을 일상 만화로 풀어냈는데,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었다.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 웹툰의 시조격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의 미학으로 전쟁의 상흔을 위로한 김종래
휘영청 밝은 달은 금준의 마음을 알듯 구름을 머금고 내려다본다. 나쁜 사또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일하러 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를 찾아 나선 금준은 괴나리봇짐을 지고 풍천노숙을 하며 전국을 떠돌다 지쳐 장승에 기대어 엄마를 불러본다. 김종래의 중 한 장면이다. 김종래는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이 파괴된 삶과 가족과의 이별로 고통스러워할 때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감동 만화로 인기를 누린 작가다.
1956년에 발표한 은 한국전쟁 당시 충남 예산의 한 가족사를 다룬 만화다. 주인공 김일, 최도천, 향순이가 전쟁을 겪으면서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게 되는 내용으로, 전쟁 후유증을 겪던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김종래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알렸다. 특히 1958년 에 연재했던 는 당시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 금준이 전국을 떠돌며 온갖 위기에 맞서 나가는 사이, 두만강 건너로 팔려간 엄마는 모진 수모를 겪으며 아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이렇게 아들과 엄마가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이야기 구조는 독자들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버렸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까지 그의 만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1962년에 발표된 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피란을 가던 한 가족이 엄마와 헤어져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며 겪는 이야기다. 엄마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영진이네 가족 이야기이지만 전쟁 이후 사람들의 사나운 인심, 영진이 선생님 같은 선량한 사람들의 모습을 감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김종래의 만화는 치밀한 구성과 감성적인 문장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애잔하게 보여주며 사람들의 힘든 마음을 위로했다. 또한 길가의 돌부리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섬세한 필체가 특징이다. 25년간 4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그중 시리즈는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소녀들의 판타지를 보여준 엄희자
1960년대 초반에는 예쁜 공주들이 만화책 속에 등장했다. 이전에도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가 다수 있었지만 엄희자 작가의 등장으로 순정만화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큰 눈 속에 들어가 있는 빛나는 별, 머리를 장식한 예쁜 리본,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주인공은 순식간에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로 영화나 영미소설의 스토리를 각색한 작품이 많았는데, 현대적인 패션들을 한껏 뽐내며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최고 인기였다.
소설 을 만화로 만든 , 소설 을 각색한 등 서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화려한 패션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만화방에서 빌려온 엄희자의 만화책을 보면 찢긴 페이지가 많았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친 주인공의 모습이 소녀들의 소유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만화 주제는 권선징악이었고 순정만화는 그러한 교훈이 더 강했다.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은 착한 주인공을 질투, 음해하고 모함하지만 결국은 주인공의 선행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엄희자의 작품에 그려진 아름답고 순수하고 맑은 감성도 이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소년·소녀들의 명랑사회를 보여준 길창덕
1970년대는 ‘꺼벙이’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범생이나 천재나 능력자가 많았다.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어린이상이 그러했던 것이다. 비록 아이일지라도 어른들의 몫을 나눠서 해냈어야 했다. 그러나 조금씩 먹고사는 것이 안정이 되던 1970년대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어른의 몫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광고카피가 등장할 정도로 아이들의 철부지 같은 모습이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런 시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길창덕의 다. 1970년에 에서 연재를 시작해 으로 옮겨 1977년에 완결된 작품으로 잡지뿐 아니라 단행본으로도 만들어져 1970년대를 풍미했다.
머리의 기계충 자국과 졸린 눈에 약간 모자란 듯하지만 착하고 여린 심성의 꺼벙이는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해서 항상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드는 명랑 어린이다.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살다 상경한 여동생 꺼실이가 후에 등장하면서 그 재미는 한층 더 배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 , , 등 그의 작품 속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말썽을 부리고 엉뚱했다. 그러나 그 모든 사건 속에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가족들과 친구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잘 살자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가족의 희로애락 그려낸 이상무
가난하지만 명랑한 아이인 독고탁은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대문에서 주저한다. 대문을 열면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직 어린아이인 독고탁의 키만큼 달려들기 때문이다. 개는 독고탁이 좋다고 달려들지만 그는 자기 몸집만큼 큰 개에 겁을 먹는다. 무서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항상 머리를 굴리며 대문을 들어서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이상무의 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귀여운 모습과는 달리 희귀 성인 ‘독고’와 강한 이름인 ‘탁’이라 불리는 이 아이는 6남매의 막내로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서 슬프다. 아버지의 실직과 교통사고, 일찍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권투 유망주였던 형은 돈을 받고 경기를 하게 된다. 독고탁의 가족에게 벌어진 시련은 1970년대 여느 가정에서 겪었을 법한 일들이다. 독고탁은 누나들의 살뜰한 보살핌이 필요할 정도로 어렸지만 집 안의 어두운 분위기를 재빨리 눈치 채는 섬세한 아이였다. 또, 그런 독고탁을 통해 가족 드라마의 희로애락을 만화 속에 진하게 담아낸 작가가 이상무였다.
그의 작품에는 가족과 스포츠가 등장한다. 특히 같이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는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 스포츠 세계의 현실을 만화 속에서 시련을 극복하는 자기훈련과 노력들로 보여준다. 좌절의 순간에는 가족들의 응원이 있었고 무한 경쟁이 아닌 사람 간의 교류가 있었다. 이상무 작품의 인물들은 악인이라도 사람 냄새가 난다.
여름을 청춘의 계절이라 부른다. 그러나 시니어들에게 여름이란 때때로 가을 혹은 겨울보다 더 가혹하게 춥고 쓸쓸하다. 나이에 대한 실감이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세상의 조연으로 내몰린 듯한 기분까지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여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섹시한 패션 팁이 있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섹시함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시청자분들이 선생님 다리가 섹시하다고 해요.”
얼마 전 종영한 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이서진이 윤여정에게 한 말이다. 70세를 넘긴 여자(배우)에게 ‘섹시하다’는 표현은 ‘곱다, 아름답다’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의 의미다. 육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여전히 여자로서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이니 이보다 더한 칭찬이 있을까. 은 휴양지 발리를 배경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꿀처럼 윤기가 흐르는 젊은 여인들이 10초가 멀다 하고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 속에서 바닷가가 오랜만이라는 70대 여인은 어떤 모습으로 섹시하다는 평을 받았을까. 무작정 헐벗은 것은 아니다. 블랙 속옷이 살짝 비치는 화이트 티셔츠, 허벅지를 드러내는 쇼츠, 쇄골이 보이는 보트넥 블라우스 등 우린 이 여배우를 통해 여름을 나는 섹시한 팁을 얻을 수 있다.
20대는 온몸에서 산도 높은 섹시함이 뿜어져 나온다. 때론 너무 과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30~40대가 되면 뭘 좀 아는 것 같은 능글능글한 섹시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재미가 덜하다. 하지만 시니어는 적당한 농도의 섹시함을 발휘할 수 있다. 너무 시큰하지도, 과하게 느끼하지도 않은 섹시함. 물론 20대나 30대보다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여름이면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속옷이다. 좋지 않은 예이지만, 엄마의 옷장을 열어보면(엄마는 평균적인 60대의 여자다) 모든 속옷이 ‘살색’이다. 여름에는 꼭 러닝을 입어 속이 비치지 않게 하는 게 여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서 윤여정은 블랙 속옷이 자연스럽게 비치도록 거즈처럼 얇은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 있다. 만일 이 티셔츠가 깊은 브이넥에 가슴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직접적인’ 노출로 이어졌다면 섹시함보다는 천박하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시니어 노출의 핵심은 ‘직접’이 아닌 ‘간접’ 노출에 있다! 여전히 ‘나는 속옷까지 신경 쓰는 여자예요’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노출 말이다. 면 100%의 기능성 속옷이 아니라 레이스로 범벅된 블랙 속옷이 그런 표현이다.
이 공식은 하의에서도 적용된다. 윤여정처럼 태생적으로 얇고 예쁜 다리를 가졌다면 허벅지가 드러나는 쇼츠를 입어도 괜찮다. 중성적인 스타일의 면 팬츠라면 고상하면서도 섹시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샌들 대신 테니스화처럼 클래식한 슈즈를 선택한다면 더더욱 멋질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니어는 발목은 가늘고, 종아리는 굵고, 허벅지는 절인 오이처럼 힘없이 말라 있다.
이럴 때는 간접 노출이 절실하다. 즉 슬릿이 들어간 와이드 팬츠로 착시 효과를 주는 것! 하늘거리는 린넨이나 실키한 소재에 무릎 위까지 슬릿이 과감하게 들어간 바지는 우리가 원하는 ‘고상한 섹시함’이라는 아이러니컬한 과제를 잘해낼 수 있게 해준다. 아!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발목을 살짝 드러내는 길이의 묘미다. 가느다란 발목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섹시함이 농축된 부위라는 걸 잊지 말자.
슬릿 팬츠와 궁합이 잘 맞는 상의는 가슴보다는 등을 드러내는 블라우스나, 쇄골이 슬쩍 드러나는 보트넥 티셔츠다. 노화의 기운이 천천히 드리우는 등과 쇄골은 젊은이의 가슴이나 엉덩이만큼 시니어들의 핵심 노출 부위다.
수영복을 선택할 때도 이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등이 깊게 파인 원피스형 수영복을 고르고, 여기에 긴 스카프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살짝 가려주자(더불어 자신 없는 뱃살도). 스카프의 매듭이 앞이 아니라 허리 옆쪽으로 오게 해 슬릿 같은 효과를 주는 것도 잊지 말자.
얼마 전 영화 전문지 가 선정한 섹시한 배우 100인에 이름을 올린 샬롯 램플링. 그녀는 윤여정보다 한 살 많은 1946년생이다. 샬롯 램플링은 여전히 젊은 여배우의 독무대 같은 뷰티 광고에 등장하고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으로도 활동한다. 나이가 들면 여자가 아니라는 공식이 그녀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녀를 보면 맘이 설레는 남자들이 지금도 많다.
샬롯 램플링의 이름 앞에는 ‘섹시한’이라는 형용사가 20대부터 줄곧 따라다녔다. 20대에는 몸매가 섹시했다면 70대의 그녀는 눈빛과 에티튜드가 섹시하다. 블랙 셔츠를 입어도 20대의 그녀가 그랬듯 단추를 자연스럽게 풀어헤친다. 나이가 들어 바짝 말라붙은 가슴을 부끄러워하며 ‘뽕브라’ 같은 억지스러운 것을 더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가르마, 고개를 까딱거리는 모습, 입가로 번지는 우아한 미소, 주름마저도 당당하게 느껴지는 자연스럽게 노화한 얼굴. 이 모든 것이 섹시하다.
억지로 노출을 하고, 빵빵한 젊음을 탐하지도 않는다. 느슨하지만 여유롭게, 그 수많은 틈들 사이에서 시니어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하는 20대의 섹시함과는 다른 농후한 섹시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20여 년 전 일본에서는 현대인의 나이에 0.7을 곱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보다 더 기준이 낮아져(?) ‘0.6 곱하기 세대’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즉 요즘 20세는 옛날 기준으로 보면 12세, 30세는 18세, 35세는 21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60세는 과거의 36세 정도의 나이가 된다. 60세가 과거의 36세처럼 젊게 살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 아닌가. 더구나 섹시함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번 여름, 해변에서든 휴양지에서든 당신은 여전히 섹시함을 보여줄 수 있는 여인이라는 사실만 기억하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온 당신. 그 훈장 같은 세월을 굳이 감추려 하지 말라.
“2008년인가 새해 결의 중 하나로 정한 게 염색 안 하기였어요.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일하고 있는 제네바는 워낙 다양한 인종에 머리 색깔이 천차만별이라 제 반백 머리에 아무도 개의치 않아요.”
하얀 단발머리에 무테안경을 끼고, 작은 진주 귀고리로 멋을 부린 여자는 의외로 핸드백이 아니라 백팩을 메고 있었다.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는 그녀의 패션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외교부장관 강경화다. 모든 장단점을 차치하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모습의 강경화는 단연 멋있다. 유리천장을 뚫은 그녀는 넥타이를 맨 보수적인 남자들을 따라 과하게 남성화가 되는 것을 택하거나, 아름다움을 위해 억지로 세월을 흐름에 역류하는 짓도 하지 않았다. 워딩 그대로 본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파뿌리처럼 센 흰머리마저도 강경화에겐 세월의 훈장이고 자신의 역사였다.
요즘 염색이라는 인위적인 방법 대신 자연스럽게 늙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강경화를 비롯해 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재닛 옐런 같은 다국적 롤 모델들이 거울 앞에 서서 나이 든 모습을 한탄하는 대신 하얗게 센 머리마저 사랑하라고, 당당해지라고 외치고 있다. 묘하게 예로 든 여인들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하나같이 ‘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성공한 여성들이다. 또 그녀들은 머리를 염색하지 않는다고 패션에 관심 없는 이들이 아니며, 마크 저커버그처럼 큰일을 하느라 자신을 꾸미는 것에 소홀한 사람들도 아니다. 오히려 능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취향과 감각을 갖추고 있다. 회색 집업(zip-up)만 주구장창 입는 젊은 청년이 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두 부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쪽은 나를 사랑하지만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고, 다른 한쪽은 포장된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우린 전자의 모습을 백발의 시니어들에게서 발견한다. 백발에 대한 인식이 변한 건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얼마 전만 해도 흰머리를 그대로 두는 건 게으름이나 자기 방치와 같은 상징으로 읽혔다. 부모의 센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는 자녀의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가족 광고의 클리셰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자녀라면, 부모의 흰머리를 가리는 대신 훈장과도 같은 흰머리를 부러워할 것이다.
흰머리는 단순히 머리의 컬러가 아니다. 그건 때때로 당당함의 상징이고, 연륜의 기록이며, 노년의 철학까지 내포하고 있다. 머리에서 이어지는 패션, 액세서리, 에티튜드에도 그 모든 것이 묻어난다. 흰머리 여인들의 공통점은 패션 스타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그 흔한 ‘아줌마 펌’을 하지 않는다. 강경화나 크리스틴 리가르드처럼 짧게 자른 단발은 누군가처럼 올림머리를 하느라 몇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효리보다 앞서 자연주의를 추구해온 여배우 문숙 역시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란 머리는 인위적인 올림머리를 하기보다는 툭툭 말아 묶는다. 그리고 정갈한 주얼리를 더한다. 손톱만 한 진주 귀고리가 적당하겠다. 자연스러운 멋과, 그냥 자연스럽기만 한 건 다르다. 앞서 예를 든 여인들 역시 주얼리나 스카프, 브로치 등으로 멋을 부린다. 흰머리의 담백함이 오히려 주얼리의 힘을 살려준다.
이 흐름은 옷에서도 드러난다. 과한 프린트보다는 심플한 컬러 위주의 옷을 택한다. 흰머리와 대조되는 화려한 옷차림은 당신을 삐에로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백발의 여인뿐 아니라 백발의 신사 역시 과거에 비해 늘고 있다. 백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배철수다. 20대의 배철수도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었고, 60대 중반의 지금도 여전히 그 차림이다. 자신의 ‘본모습’이 뭔지 20대부터 알았고, 주름이 늘고 엉덩이 살이 빠진 지금의 배철수 역시 자신의 노화된 ‘본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일 누가 나에게 백발에 어울리는 패션이 뭐냐고 묻는다면 길게 얘기할 생각이 없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스타일, 그걸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백발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사는 삶, 그 자체이므로.
‘글을 잘 쓰는 패션 디자이너’
필자의 후반생 꿈이다.
2012년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다. 패션 디자인, 패션 모델, 발레와 왈츠 그리고 탱고 배우기, 영어회화, 서유럽 여행하기, 좋은 수필 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하기, 인문학 공부하기 등 많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무엇이 중요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필자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선생님이 되어 30여 년을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퇴직을 했어도 공무원 연금이 나와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은 정말 심각하단다. 절반이 빈곤층이라고 한다. 그래도 필자는 평생 원하던 일을 하고 퇴직 후에는 최소한의 생활까지 보장이 되니 이처럼 다행스런 일이 없다. 지금부터는 필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 공부는 주로 집에서 한국방송 통신대 강의를 통해 충족한다. 요일별로 국문학과 철학, 역사와 서유럽 문화기행,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창 자랄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의지만 있다면 TV와 인터넷 그리고 서울 각 구의 문화원에서 무료로 혹은 가성비 높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TV를 바보상자라면서 멀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자는 제자들에게 ‘정보의 바다’라고 표현했다. 인터넷에서 전복을 구하느냐 미역을 건져 올리느냐는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엔 방송대 강의도 그렇고 교양 프로그램과 양질의 다큐멘터리 등 좋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방송대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외출을 못할 때도 있을 정도다.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의욕에는 세월도 못 당한다. 필자는 퇴직 후 제일 먼저 강남 라사라 학원에 등록했다.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선생님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패션디자인이었다. 이곳에서 패션디자인 과정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을 마치고 서울시 창업스쿨에서 2개월간의 패션디자인 과정을 수료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아마 평생 가지고 가게 될 것 같다. 발레는 어려서부터 필자의 로망이었기에 패션디자인 과정을 마친 후 바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발레를 할 때마다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는지 모른다. 발레가 어린 시절의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취미 정도라면 왈츠와 탱고는 능숙하게 아주 멋들어지게 추고 싶다. 운동할 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왈츠와 탱고를 출 때는 어느새 끝나는 시간이 되곤 한다. 건강을 위해, 바른 자세를 위해, 힐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춤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는 팔십이 넘은 노인들도 발레를 한다. 노인분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수필을 잘 쓰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으며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쓴 글이 96편이 될 정도로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틈틈이 압구정역에 있는 무지크 바움에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몇 해 전에는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모델워킹반에도 등록했다. 주 1회 모델워킹을 연습하고 있다. 2년 동안 패션쇼도 다섯 번 했다. 개성 강한 동료들의 기상천외한 옷차림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옷차림은 전략이고,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 행위’다. 기왕이면 예쁘게 입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액세서리는 젊음이다. 젊은이들을 값싼 옷을 입어도 예쁘지만 나이 들면 옷차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물기 빠진 피부에 옷차림까지 추레하면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녹화가 있는 토요일은 될 수 있으면 여의도로 간다. 서포터즈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5포세대, 혼밥, 실업문제, 4차 산업혁명 등 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며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메인 브로드캐스터가 강연한 후 미래참여단 서포터즈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 녹화에 참여하면 더 생생한 공부가 된다. 20대 젊은이에서 70대 시니어까지 다양한 세대와의 만남도 즐거움 중 하나다. 주 2회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울 둘레길 걷기에 참여한다. 둘레길 걷기는 주 3회 30분 이상 운동을 해야 하는 시니어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배움이 이어지면 기회가 이어진다’고들 한다. 지금 같아서는 지구촌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을 것 같지 않다.
이래도 되는 거야?
삶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냐고요!
어제는 너무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올해 4월부터 활동하게 된 온․오프라인 잡지 에 필자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온라인에만 꾸준히 실렸는데 잡지사에서 정해준 주제 ‘으이구! 주책이야!’에 맞춰 쓴 글 ‘교재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가 7월호에 실린 것이다. 제시한 주제에 맞춰 처음 써낸 글이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다. 에서 주관한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필자와 함께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필자 스타일을 좋아하는 여성과 남성들이다. 모두들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분들이다. 하는 일도 인터넷 기자, 사회복지사, 공예가, 모델, 시인, 수필가, 교수 등 다양하다. 서초문화원 문화기행 프로그램에서 만난 분도 있고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구두매장에서 필자 스타일에 필이 꽂혀 인연을 맺게 된 분도 있다.
평택여고에 재직할 때 필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정성껏 대하라. 그 사람이 나와 어떤 인연으로 맺어질지 모른다.” 서둔야학 단톡방, 서민동 단톡방, 서울시 낭송회 시음 단톡방, 왈츠 단톡방, 명견만리 서포터즈 단톡방, 꿈방송 단톡방, 뉴시니어 리더스포럼21 단톡방, 강남시니어프라자 해피미디어단 단톡방, 모델워킹 단톡방, 서리풀 문학회 단톡방, 오페라 동호회 모임,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친구들 등 단체회원 단톡방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인적 네트워크다. 살아보니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2년 전 메르스 사태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에서 녹화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느라 고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필자가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모델워킹하는 동료들과 해피미디어단 회원들을 왕창 모시고 갔다. 담당 PD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필자는 바람잡이 역할을 즐긴다.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행사를 할 때는 담당 PD를 초대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필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참석한 분들도 너무 재밌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필자에게 말했다. 다음 행사에도 초대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아자아자! 이런 것이 바로 윈윈이다.
날개를 달아준 에 감사해하며 오늘도 필자는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지금 필자의 삶은 글자 그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이런 삶이 수어지교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기쁨!
따봉, 원더풀!
어느 날, 배우자가 나의 괴팍한 면까지 닮아버린 걸 보고 심장이 덜컥할 때가 있다. 하물며 옷 입는 스타일까지 비슷해지는 건 부부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여기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 커플들이 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벌의 패션으로 부부애를 과시하는 커플룩의 선구자들.
글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사진 instagram.com/bonpon511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에서 중년 부부로 분한 고두심과 장용의 대화가 떠오른다. 사기를 당할 뻔한 이 시대의 대표 중년남 장용이(극에서의 이름도 ‘신중년’이다) 고두심에게 용서를 구하자, 고두심이 눈물을 흘리며 친 대사다. “욕해달라고? 뭐라고 욕해줄까? 부모님은 당신을 낳았지만, 40년 넘게 살아온 건 나야. 내 거울이 당신이야. 당신 거울이 나고. 끼리끼리 산다는 게 맞아. 나 당신한테 돌 못 던져”라며 그를 용서했다. ‘당신은 나의 거울’. 이 말처럼 입맛이 같아지고, 취향이 비슷해지고, 심지어 외모나 패션까지 자연스레 닮아가는 것이 부부의 숙명이다. 애정이 깊은 부부는 자연스레 서로를 공유한다. 20대의 불타오르는 커플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광고하고 증명하기 위해 커플룩을 입는다면, 중년은 다르다.
한창 젊은 시절에는 똑같은 옷을 입는 게 ‘커플룩’의 정석이라 여겼지만, 나이가 지긋해지면 같은 ‘옷’이 아니라 같은 ‘느낌’으로 입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예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60대 일본인 부부다. ‘bonpon511’이라는 아이디로 활동 중인 이 부부는 1980년에 결혼해 올해로 37년째 부부로 살고 있다. 백발의 부부는 작년 12월부터 100여 벌의 커플룩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는데 그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팔로워 수만 이미 43만여 명! 웬만한 연예인도 울고 갈 숫자다. 그들이 업로드한 사진에는 보통 4만 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린다. “저흰 완벽한 커플룩보다는 색상과 무늬, 패턴 면에서 통일성이 있는 패션을 즐겨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부부는 커플룩의 노하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유니클로나 GU 같은 SPA 브랜드에서 주로 쇼핑을 하며 쇼핑 취향이 비슷해 자연스레 커플룩을 입게 되었다는 부부. 부인이 굵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으면, 남편은 그보다 얇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부인이 빨간 원피스를 입으면 남편은 빨간 니트로 분위기를 맞춰준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컷의 사진으로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패션의 힘 아니겠는가.
커플룩의 또 다른 사례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를 들 수 있다. 앞서 만난 일본인 부부와는 또 다른 리듬감으로 커플룩을 완성한다. 70세를 넘긴 이 노년의 커플은 연출이 1%도 섞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커플룩을 선보인다. 부인의 머리를 남편 백건우가 직접 잘라줄 정도로 애정이 깊은 부부는 공식석상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비슷한 분위기의 옷을 입는다. 한때 화려한 여배우의 길을 걸었던 윤정희는 남편 백건우를 만나 소박하게 변했다. 머리 손질은 남편이 해주고, 어떤 자리에 가든 메이크업 역시 자신이 직접 한다. 미니스커트와 베레모를 즐기던 패셔니스타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백건우, 윤정희 부부로서는 완벽한 패션을 보여준다. 백건우가 하얀 터틀넥에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 서면(이 또한 얼마나 백건우스러운가), 윤정희는 검정색 롱 드레스에 그레이 스카프를 하고 옆을 지킨다. 어깨선을 한참 벗어난 오버사이즈의 코트를 입고 파리 거리를 걷는 부부의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지다. 앞에서 고두심이 말한 ‘당신은 나의 거울’이라는 표현이 이 사진의 캡션으로 딱 어울린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하는 커플룩의 또 다른 사례는, 영화 의 주인공들. 76년째 함께한 부부는 주로 고운 한복을 같은 컬러로 맞춰 입는다. 꽃분홍에서 쪽빛 한복까지, 그들은 눈부신 컬러들로 부부임을 강조한다. 둘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 몸이 된 부부의 모습이 옷에서도 읽힌다.
젊은 커플들에게는 커플룩은 어떻게 연출해야 멋지며, 어떤 아이템이 제일 낫다는 식의 스타일링 팁이 어울릴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 년, 서로를 비춰온 시니어 부부들에게는 그런 팁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커플룩을 만들지 모른다. 이미 많은 것들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는 부부들은 옷장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 다만 나의 남편과 함께, 나의 부인과 함께라는 생각을 지우지 않고 옷을 고르는 시간마저 함께한다면 커플룩은 자연스레 완성될 것이다. 이보다 더 크고 매력적인 팁은 없다.
시니어기자 2기 발대식 불참으로 아쉬워하던 차에 배달된 박스를 열어보니 서약서, 잡지, 선물과 함께 겉표지가 하늘색 구름인 책이 한 권 들어 있다.
책을 볼 때마다 제목, 작가 프로필, 머리말, 맺음말, 차례, 추천사순으로 꼼꼼히 파보는 습관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나이-사랑-부모-있을까?’ 순전히 필자 방식으로 제목을 재배치해본다. 필자에게 의미 있는 순서로 제목을 뜯어보며 ‘글쎄에~’ 하며 애매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봤다. 일독을 하고 아들러 심리학자 겸 철학자인 작가는 분명 명상이나 불교의 마음공부를 접해본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머리글을 다시 읽어보니 어릴 적 가정교사와의 인연이 그제야 보인다. 뇌경색 엄마와 치매 아버지를 간병한 저자의 진솔한 경험 이야기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필자의 지인들에게 유익한 지침서로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필자에게는 몇 가지 강박이 있다. 요즘은 시계가 패션이라지만 필자에게는 필수품이다. 달력 역시 눈 닿는 곳마다 둬야만 안심이 된다. 늘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중 하나다. 한 번 온 이생을 시간에 쫒기면서 늘 불안과 두려움으로 살아야 하는 고통의 원인은 뭘까? 행복이란? 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고심 중에 만난 것이 명상이다. 명상을 하다 보니 불교의 마음공부로 이어졌고 이제 그곳에서 답을 찾고자 애쓴다. 지루해지고 지쳐가던 이즈음, 오늘 문득 답을 엿본 듯하다. 경계에 걸리지 않으면 자유다.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기 등등이 자유의 전제라는 사실을 저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부모 모시기’가 진정한 수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쭈뼛해진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롭다, 현실의 부모를 받아들이자. 괴롭더라도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함께 있는 이 삶 자체가 소중하다, 인생은 효율이 아니다 등등 간병의 고된 일상에서 나온 저자의 이야기는 구순 노모와 생활하는 필자를 되돌아보게 한다.
당장 리스트를 작성하여 체크하고, 실천 강령을 세워본다.
‘얼마나 깊은 인연이기에 부모 자식으로 엮였을까?’
그동안 필자는 부모와 자식과 무엇을 주고받았는가? 돌이켜본다. 누구나 나이 들어감을 인정해야 한다. 늙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이제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연의 인간으로 마주해야겠다. 희미한 기억을 벗고 추억으로 함께하는 순간에 기뻐하며, 현재의 삶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매일 필자가 구순 노모에게 드리는 하루 용돈은 만원이다. 그 돈으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시는 재미가 쏠쏠하시단다. 역할을 드리고, 존재를 인정하고, 모시기보다는 함께 즐기기를 권하는 저자의 말에 필자는 어느새 동참하고 있었다는! 무엇보다 ‘가장 큰 효도는 불효하는 것’이라는 말에 힘입어 오늘도 현관문을 나서며 ‘만원의 행복’을 당당하게 부탁드린다.
“고 여사님! 오늘 저녁은 두부김치가 땡기네요~”
5월 6일 가정의 달을 맞아 ‘미즈실버코리아 2017 러브 패션쇼’가 개최된다.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서 열리는 ‘미즈실버코리아 2017 러브 패션쇼(이하 러브 패션쇼)’는 ‘나눔·봉사·배려’를 주제로 세대 간 소통과 나눔의 장으로 꾸며진다. 이번 행사는 상업적인 패션쇼의 개념에서 벗어나 시니어와 주니어가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화합의 무대를 지향한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를 맞이하는 러브 패션쇼에서는 전문 모델을 비롯해 미즈실버코리아 수상자, 시니어모델 등 40여 명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일반 모델 및 아마추어 모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특별 이벤트도 진행된다. 무대에서 선보이는 의상과 물품들은 불우이웃을 위한 바자회와 소외된 계층을 위해 쓰일 계획이다.
미즈실버코리아는 50세 이상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미(美)의 제전으로 경쟁의 차원을 넘어선 종합문화예술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러브 패션쇼 관련 자세한 일정은 미즈실버코리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시골의 봄은 담장 너머에서 오고, 도시의 봄은 처녀의 옷차림에서부터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 이젠 바꿔야겠다. 도시의 봄을 알리는 중년의 패션 그리고 컬러.
요즘 속속 론칭되는 브랜드들을 보면 유난히 강조하는 단어가 있다. 뷰티는 물론이고, 패션, 주얼리 업계에도 ‘에이지리스(Ageless)’라는 단어가 브랜드 소개에 꼭 들어간다. 전통적으로 패션을 구분하던 ‘나이’라는 것을 없애고, 20대이든 60대이든 공히 즐길 수 있는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시니어들이 트렌디해졌다! 몇 해 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윤여정에게 패션의 비결을 묻자 그녀는 “김민희와 같은 옷을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에이지리스 브랜드들은 20대가 입어도 전혀 촌스럽거나 고리타분해 보이지 않고, 60대가 입어도 딸 옷을 입고 나온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을 원한다. 이 둘 사이의 교집합에는 ‘컬러’가 있다.
중년의 패션 그리고 컬러
“젊은 사람들이 메이크업으로 피부 혈색을 돋운다면, 시니어들은 옷으로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어요.”
대표적인 에이지리스 브랜드, 모에(MOE)의 패션 정보팀 김록현 팀장의 말이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립스틱 컬러를 꼽으라면 단연 ‘말린 장미빛’이다. 전지현이나 송혜교 같은 톱스타들이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립스틱 컬러는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는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레드보다는 우아하고, 핑크보다는 성숙한 이 컬러가 이번엔 패션으로 왔다.
“꽃을 좋아하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여자들의 공통된 코드인 것 같아요. 소녀적인 감성을 즐길 기회가 제대로 없는 시니어들에게 이번 봄에는 말린 장밋빛 컬러를 립스틱이 아닌 옷으로 추천해요.”
김록현 팀장의 말처럼 이 미묘한 핑크 컬러는 마치 핑크빛 브러셔를 바른 것처럼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중학생에게나 어울릴 법한 치기 어린 핑크가 아니다. 마치 세라믹에 도색을 한 듯 우아하게 스며들어 있는 말린 장밋빛의 옷들은 기존의 옷들과도 여유롭게 매치된다(옷장을 열어봐라. 대부분의 옷이 그레이, 베이지, 화이트 같은 뉴트럴 계열이라면 이 말린 장밋빛이 스며들기에 어색하지 않다).
“사실 시니어층은 트렌드에 맞춰 많은 양의 옷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옷을 수년간 입는 쪽이죠. 이럴 때는 시즌 컬러를 잘 골라서 스카프나 아우터, 카디건 정도로 추가하면서 변화를 주는 것이 합리적인 쇼핑의 팁이에요.”
이번 봄 외투 쇼핑에 나서기 전 뷰티숍에 가서 ‘말린 장밋빛’의 정체를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고 가길. 그 옷이 매장 포스터 속 어여쁜 모델보다 당신을 더 싱그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의 컬러는 무엇일까. 패션 매거진 의 임건 에디터는 ‘올리빈(olivine) 그린’이라는 낯선 컬러를 추천했다. 감람석이라 불리는 올리빈은 쉽게 설명하면 물 빠진 카키 컬러와 유사하다.
“한국 남자들이 제일 편하게 생각하는 컬러가 네이비와 그레이죠. 그 컬러들에서 한발 나아가려면 올리빈은 탁월한 선택이에요.”
얼핏 군복을 연상시키는 컬러이지만 그보다는 덜 ‘야생적’이다. 종종 날것과 같은 컬러는 사람 몸에 붙질 않아 옷과 사람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 그린은 누가 입든 수년간 같이 살아온 옷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다.
“이번 봄 아웃 포켓이 달린 셔츠나 블루종 재킷, 치노 팬츠에 이 올리빈 컬러가 많이 활용됐어요.”
매해 가장 유행할 만한 컬러를 꼽는 팬톤(미국 색채 전문 기업) 역시 2017년의 컬러로 그리너리(greenery)를 선정한 바 있다. 식상한 네이비와 그레이의 조합에 이 발음도 우아한 올리빈 컬러를 스포이트처럼 떨어트려보자. 분명 화사한 봄을 처녀들보다 빨리 뽐낼 수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조금씩 다름’의 멋을 알게 된다. 느리지만 약간씩 방향을 틀어가며 도전해나가는 것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이번 봄 당신의 컬러 팔레트에 이 미묘한 컬러가 더해지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일단, 해봐야 알 수 있다!
당연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가령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든가, 잠을 푹 자면 피곤함을 덜 수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변화를 줘도 아재에서 오빠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데 실행하기 쉽지 않다. ‘패션 감각’ 하면 자부심 가득한 의 동년기자단 강신영(65) 단장. 그와 함께 남성복 전문매장을 찾았다. 아재와 오빠의 한 끗 차이는 이런 것이다.
모델 강신영 브라보 시니어기자(동년기자) 의상협찬 라르디니
#0 아재 룩 강신영 자연인의 모습
올해로 싱글 17년차 강신영 동년기자단 단장은 쇼핑을 꽤 좋아한다. 직접 옷을 사 입는데 젊었을 때보다는 캐주얼을 많이 입는다. 평범한 것보다는 개성 있는 옷을 찾아다닌다.
“일단 젊은이가 입는 바지는 많이 불편해요. 사실 별 차이가 없어요. 내가 옷을 잘 입었다고 해서 여자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사실 이 나이 되면 남 신경 쓰지 않아요. 다 내 만족이죠. 내가 불만인 것은 왜 남자 코트는 밝은 색이 많이 없냐는 겁니다. 예전에는 밝은 색이 오염되고 때 탈까봐 안 입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1 비즈니스 캐주얼 룩 니트와 재킷
셔츠 대신 밝은 색 니트를 입었다. 재킷을 입어 최소한의 격식을 유지했다. 바지는 허릿단 좌우에 두 개의 플리치(주름)를 주어 허벅지와 엉덩이 부분에 편안함을 강조했다. 편한 대신 옷맵시가 좋지 않은 것이 단점이라 강신영씨가 입은 바지의 경우 통을 살짝 줄이고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만들어 활동성을 더했다. 데님 슈즈가 포인트다. (재킷 137만원 / 바지 33만원 / 니트 33만원 / 구두 48만원 / 행거치프 13만원)
#2 비즈니스 캐주얼 룩 셔츠와 재킷
재킷이나 베스트(조끼)를 보면 단추가 두 개 혹은 세 개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기본은 맨 위의 단추는 채우지 않는 것. 그냥 장식으로 달아놨다고 생각하면 된다. 라펠(코트나 재킷 등의 접은 옷깃)의 굴림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가짜로 달아놓은 것도 있다. 베스트는 단추를 가운데만 채우면 된다. 다 채우면 V존이 너무 올라가서 답답해 보인다. 복부 가운데에서 V존을 만들어주면 훨씬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재킷을 포인트로 한 옷이고 나이에 맞는 멋스러움을 연출했다. 조끼와 재킷에 착용한 꽃무늬 부토니에가 인상적이다. (재킷 147만원 / 베스트 49만원 / 셔츠 29만원 / 바지 33만원 / 벨트 19만원)
아재와 오빠를 정의하다
오빠와 아저씨의 한 끗 차이는 자기의 몸을 잘 알고, 맞는 사이즈를 골라 입는 것이다. 몸해 비해 옷이 크지 않은지, 바지와 소매가 길지는 않은지 인식하고 입는다면 쉽게 아재로 불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슷한 스타일은 많지만 간단한 원칙이 오빠와 아재를 판가름내는 잣대다. 좋은 옷감, 비싼 옷이 다가 아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옷맵시는 달라질 수 있다.
라르디니(LARDINI) 신세계 강남점 안현태 점장은 중년의 멋스러움은 기본에서 시작한다고 정의한다. “중년 남성의 패션 스타일은 두 부류입니다. 너무 과하게 입는 부류와 기본은 지키되 약간의 개성을 살리며 입는 부류죠. 본인이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 중년 남성들 중에 과한 경우가 꽤 많아요. 멋의 본질은 소재나 아이템을 착용할 때 포인트를 어디에다 둘 건지를 먼저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모두가 주연이 되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