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패션에 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가슴 가득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사실 시니어의 스타일은 비단 입는 것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멋있게 늙어가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시니어 인생을 사는 모습이 아닐까. 과거의 영광은 버리고 품격을 입어야 한다. 거기에는 물론 옷을 입는 패션 스타일도 있을 것이고, 봉사활동도 하며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시간만 보낼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개척하고 젊게 살아야 그것이 외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우선 시니어의 패션을 말해보자. 한국 시니어를 대표하는 시니어룩이 과연 있을까? 딱 잘라 말해 없다. 시니어들 또한 어떻게 하면 나이에 맞게 품격 있는 옷을 입을 수 있는지 모른다. 앞으로 시니어 의식을 깨고 바꿀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시니어 세대에게 묻고 싶다. 젊은 사람들의 옷을 입으면 젊어진다고 생각하는가? 착각이다. 젊게 산다고 그들의 브랜드를 좇고 입고 다니는데 그런 게 잘 입는 것이 아니다. 나이 먹은 사람일수록 나이에 걸맞은 품격을 입어야 한다.
‘패션’은 본래 변화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물질적 혹은 비물질적인 문화 전역에 걸쳐 적용되는 용어로 의복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한다. 이미지를 어떻게 창출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이나 자신에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결정된다.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가 바로 본인 자신인 셈이다.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는 말과 같이 인간은 각자 개성에 기반을 둔 본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시니어, 이미지 메이킹은 필요하다
시니어 세대에도 첫인상은 특히 중요하다. 표정이나 복장, 말투와 같은 외향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진실함과 겸손함, 상대방을 배려하는 내면적인 모습들이 동반되어야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의상을 통한 이미지 연출은 무언의 언어로서 기능을 가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 개인의 메시지를 타인에게 전달하거나 나타낼 수 있으며 자아 형성에도 도움된다.
좋은 이미지는 개인의 가치를 높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특정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만 생각됐던 ‘이미지 메이킹’은 현시대를 사는 시니어에도 필요하다. 자신의 개성과 신분에 맞는 이미지를 구축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고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한층 더 살려야 한다. ‘좋은 이미지’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미의식을 반영하되 무엇보다 나만의 개성을 찾아 만들어야 한다.
시니어의 색 ‘Grey(회색)’
날 표현하고 자신의 존재를 쉽게 남에게 보여줄 수가 없을 때 옷이 제일 먼저 그 역할을 한다. 옷을 보면 상대의 위치, 성격 등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옷은 예민하고 민감한 자기표현의 일부분이다. 젊은 사람처럼 입는 것이 아닌 제 본분과 나이에 맞게 입는 것이 시니어가 옷을 잘 입는 방법의 하나다. 유행에 대해 시니어의 패션을 말하지는 않겠다. 단, 기본적으로 시니어에 어울리는 색은 따로 있다. 시니어에게는 품위가 생명이다. 그 품위를 살려주는 색이 바로 회색이다. 회색도 색이 다양하다. 소재에 따라서도 느낌과 색이 다르다. 같은 색상도 원단에 따라 다르다. 스웨터나 양복 등을 살 때 진짜 멋쟁이는 회색으로 고른다. 회색은 얼굴이 검은 사람이나 흰 사람이나 누구한테나 잘 어울려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회색과 짙은 빨간색인 버건디와의 매칭도 아주 멋지다. 거기다 요즘 유행하는 브라운색 구두를 신으면 아주 멋진 시니어룩이 된다.
패션 업그레이드와 함께 자존감도 높이자
우선 남들에게 보이는 외모는 자기 자신의 태도나 감정,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더욱 나은 자신의 모습을 위해서는 내적인 변화와 함께 외적인 면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과 더불어 자신감과 긍정의 힘을 기르자. 이미지 메이킹을 통한 자아상의 확립은 자존감을 높여주기 마련이다.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이란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앞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 비롯된다. 좋은 이미지는 개개인 간의 관계 증진은 물론 대인관계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와 함께 패션을 통해 자기만의 개성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면 이것은 자기만족은 물론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감을 주고 개인의 잠재적인 능력과 장점을 최대화하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패키지 여행’에서 ‘자유 여행’으로 변화해 왔다면 앞으로는 자유 여행에서 ‘가치 여행’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새로운 트렌드를 쫓는 여행가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링켄리브(Link&Leave)의 조은철 대표는 여행이 보편화된 문화로 자리 잡은 지금, 여행 트렌드가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ISG PARIS 그랑제꼴에서 경영을 전공하면서 비즈니스의 꿈을 키운 그는 10여 년 동안의 파리 생활, 뉴욕 교환 학생, 유럽과 중국 주재원을 하며 경험한 4개국 5개 도시에서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행전문가로 거듭나면서 바뀌는 시대를 체험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해외여행의 트렌드를 짚어본다.
대한민국 여가와 문화의 핵심에 ‘여행’ 키워드가 자리 잡은 지는 오래됐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세계 각국에서의 여행 경험이 담긴 블로그들이 넘쳐난다. TV를 켜면 여행을 테마로 삼은 수많은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서점가에서 여행을 다루는 콘텐츠는 기본 이상의 세일즈를 보장해주는 아이템으로 공인받고 있다. 또한 몇 년 전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있었던 항공업계에는 수많은 저가 항공사들이 나타나 폭발적인 성장세를 바탕으로 저마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여행이 일상이 되다
이렇듯 여행 트렌드의 수요는 약해지지 않고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지금까지가 양적 팽창이었다면 이제는 질적 팽창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미국과 일본, 조금 멀리 가면 영국이나 프랑스를 위시한 서유럽 정도가 주로 찾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중동의 두바이, 낯설기만 했던 동유럽, 심지어 공산국가였던 중국까지도 친숙한 여행지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의 시야와 경험의 기회가 짧은 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넓어진 것이다.
변화는 여행의 형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흔히 여행 경험은 여행사에서 일정한 프로그램으로 짜서 진행하는 소위 패키지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미 해외여행에 ‘익숙해진’ 신중년들에게는 이러한 기존의 패키지 여행에서 느꼈던 것 이상의 경험을 원하고 있다.
테마와 이야기가 있는 여행을 만드는 ‘여행 디자이너’
“중년들은 여행에 국한되지 않고 원하는 바가 다양합니다. 힐링, 체험, 문화, 예술, 미식 등 일상에서 충족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여행을 통해 좀 더 원하는 욕구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보는 여행에서 니즈를 자각할 정도가 되었다는 점은 그만큼 주체적으로 다양한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조은철 링켄리브 대표는 개인에 따라, 여행 목적에 따라 그들의 니즈는 천차만별이 됐다고 말한다. 사실 링켄리브 자체가 바로 그러한 다양화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여행 플랫폼이다. 링켄리브는 잇다(link)와 떠나다(leave)를 합쳐서 만든 이름으로,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테마와 이야기를 원하는 여행자들을 위한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링켄리브에는 테마에 따른 여행의 스토리와 스케줄을 기획하는 ‘여행 디자이너’가 있다.
“‘여행 디자이너’는 전에 없던 직업입니다. 창작이죠.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여행 기획에 녹이고 싶은 우리의 니즈와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를 점점 자각해서 뚜렷해지는 고객의 니즈를 보았습니다. 이건 제가 4년 전 프랑스 컨설팅 회사에서 하이엔드를 겨냥한 와이너리 투어를 기획하면서부터, 그리고 리서치, 금융과 보험회사에서 BtoBtoC 영업을 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확신은 트렌드를 계속 읽으면서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소수를 위한 특별한 여행을 만들다
조은철 대표가 4년 전에 근무했던 프랑스 컨설팅 회사에서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샤또를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서 샤또란 우리가 알고 있는 와이너리가 아닌 18세기~19세기 귀족들이 별장 용도로 지었던 곳이다. 그는 샤또를 호텔 시설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에서 아키텐 지역의 와인과 힐링 여행을 기획하게 되었고, 기획 후 협회, 동호회, 금융회사에 판매까지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최초의 여행 디자이너로서 링켄리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링켄리브 여행 플랫폼은 각 분야의 전문가인 여행 디자이너가 콘셉트가 있는 여행을 기획하고 이 콘셉트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각 여행 디자이너는 성별, 연령, 전문 분야, 경험, 성향 등에 따라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기획된 여행은 디자이너가 여행에 있어 가치를 두는 부문에 중점을 두기에, 상품의 타깃 어디언스는 여행 디자이너와 연령, 성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일반 여행 기획보다 매니아적이고 소수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여행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피렌체를 여행할 때, 한 디자이너는 ‘피티워모’라는 패션 박람회와 멋쟁이 남성들의 사진에 관심을 갖고 그를 중심으로 기획을 짭니다. 그리고 또 다른 디자이너는 ‘메디치 가문의 자취’를 따라 그 시대의 문화와 예술에 포인트를 두고 여행의 세계를 펼치는 겁니다. 봄과 가을에는 나오시마 건축 여행과 도자기 기행, 여름에는 라벤더 로드와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시간 여행, 그 밖에 시기마다 가는 패션 여행과 캠퍼밴 여행, 디톡스 리트릿 등 모든 여행이 특색과 매력 포인트가 다릅니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듯, 매력을 느끼는 요인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링켄리브와 연결되어 있는 여행 디자이너는 27명. 음악가, 와인플래너, 셰프, 건축가, 작가, PD, 배우, 기자, CEO 등등 다채로운 경력의 여행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여행지들은 도쿄, 발리, 터키에서부터 포르투갈, 아이슬란드에까지 이른다. 그 다양한 직업군을 봤을 때, ‘맞춤형의 특별한 여행’이라는 말에 수긍이 갈 수밖에 없었다.
시니어의 여행은 행복 그 자체가 되어야
시니어들에게 여행은 그동안 힘들었던 자신의 삶에 주는 선물이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조직과 지인을 위해 버텨야 했던 삶에서 그나마 여유가 생긴 시니어는 여행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혹독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길 원한다. 링켄리브가 시니어 여행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시니어들의 욕구가 여행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50대 이후 시니어들에게 여행은 하나의 큰 행복 요소입니다. 가격적인 면보다는 좀 더 잘 쉬고, 잘 먹고 케어받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여행의 중심이 가격에서 가치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원하는 가족여행, 친구들과의 여행에 있어서 전문가의 컨설팅 도움이 자신들이 원하는 여행에 더 잘 부합하고 고생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은철 대표가 분석한 시니어들이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니어들이 선호하는 네 가지 여행인 혼자 가는 여행/부부 여행/중년 여성들끼리의 여행/손주와 가는 여행으로 분류하여 각각의 재미를 물어봤다.
“혼자 가는 여행은 여행 속에서 현지인과 한국인을 불문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설렘이 있습니다. 혼자이기에 여정도 내 느낌에 따라 변화가 가능하고 한곳에 머물며 현지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도 있죠.”
부부 여행은 함께했던 일상과는 다른 곳에서 서로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여행의 콘셉트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갖겠지만, 성격의 차이가 강할수록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멋진 풍광이 바라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함께 대화의 꽃을 피운다면 그 동안 잊고 지낸 사랑의 싹이 더욱 피워진다는 것.
“중년 여성들끼리의 여행은 정말 재밌습니다. 그동안 자식들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온 날들을 여행으로 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위로도 받고 순수했던 젊은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싱그러운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손주와 함께하는 여행은 정말 특별합니다. 손주와 함께 즐거운 여행을 하며 애정도 싹 틔우고 시간의 제약으로 못했던 인생의 소중한 조언을 ‘새끼 강아지’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삶에서 손주와 함께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한국인 여행자는 변하고 있다
조은철 대표는 우리나라의 여행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로 여행자들의 마음과 태도의 변화를 들었다.
“우리는 외국을 여행할 때, ‘미안합니다’, 또는 ‘실례지만’이란 말을 쓰는 걸 종종 듣습니다. 해외에서는 눈을 마주치고 웃는 모습도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모든 곳이 그렇진 않으나, 특히 유럽에서는 배려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힌 듯합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범죄의 증거로도 채택되는 한국에선 그런 이타심을 갖기란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 당연히, 나와 내 식구 이외의 사람에 대한 배려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선 여행 에티켓이 좋으신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임에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해맑은 웃음으로 테이블 매너와 공공장소에서 포토 매너 또한 좋아졌습니다.”
그는 한국인들의 여행 에티켓이 점점 나아져 감을 느꼈으며 그들이 국내의 에티켓 문화를 새롭게 바꿔놓는 중심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 또한 들었다고 한다. 그 말에는 축적되는 경험을 통해 보다 성숙한 여행자가 되어가는 한국인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그러한 변화야말로 기존 여행 패러다임의 대안으로서 가치 여행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많이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작년부터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많이 힘들지만 됐다, 더 다른 꿈을 꿀 수 있겠다 싶어요.” 행복하다는 구하주(具河周·69) 뉴시니어라이프 회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얼굴에서부터 그런 기쁨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니어 교육과 함께 패션과 관광을 잇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구 회장의 남다른 보람과 성취를 만나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사회적기업인 뉴시니어라이프는 시니어들을 위하여 패션과 교육, 공연, 매니지먼트 등 종합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시니어 모델 교실, 시니어 패션쇼와 같은 프로그램과 함께 시니어 패션 제품, 시니어 교육 등등의 사업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시니어와 패션이라니? 일견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는 것을 구하주 회장과 뉴시니어라이프는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제가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금까지를 생각해 보면, 저도 사람들과 함께 똑같이 배우면서 해왔어요. 바른 자세, 바른 마음가짐을 제대로 지키면 인생이 잘 풀리게 된다는 것은 후반기 인생에서 더 중요한 철칙이에요. 바로 그걸 제가 회원들에게 가르쳤다기보다는 회원들과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서 경험을 쌓고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구 회장은 서울 명동과 압구정동에서 꽤 잘 나가는 패션디자이너였다. 30년 동안 부티크를 운영하며 틈틈이 패션쇼 디렉터와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1999년에 실버산업과 노인심리를 공부하게 됐다. 졸업 후 ‘실버산업전문가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06년 킨텍스 국제실버박람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시니어패션쇼를 공연한 후 참가했던 모델들에게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뉴시니어라이프를 설립하게 됐다.
60세 넘어서는 자신이 한 살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구 회장은 스스로 잘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자신이 갖고 있는 열정, 희망, 도전이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 원동력이 없었으면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시니어 대상 교육이에요. 왜냐하면 본인이 50~60년 동안 자신의 인생을 살아왔고 경험했기에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바꿔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게 쉽게 바뀌기가 어렵죠. 그래서 저는 60세가 넘었다면, 그때부터 한 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기분으로 시작해야지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습관, 지식, 문화를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고 하나하나 쌓는다고 생각하면 100% 성공해요. 과거에서 벗어나야 하죠.”
“걸음걸이만 봐도 그 삶과 인격이 보이는 걸요”
200여 명 정도 되는 뉴시니어라이프 회원 대부분은 60대 이상이다. 구 회장은 강의 형식이든 면담 형식이든 일주일 동안 이 모든 회원을 다 만난다고 말했다. 모든 회원들이 공부하는 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한 분 한 분을 마음속에 넣고자 한다. 어디를 조정하고 교육하고 도와줘야 하나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구 회장은 워킹에서부터 사람의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워킹 교육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발견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걸음걸이가 정신과 육체를 컨트롤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키가 많이 크신 분들은 키가 큰 게 콤플렉스예요. 그래서 자꾸 웅크리게 되고, 어디 가서도 다리를 쭉 못 펴게 되죠. 그러다 보니 걸을 때 이분들은 몸이 먼저 나가요. 몸이 먼저 나가니, 걸음이 균형을 잡아주려고 하면 O자 걸음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면 우울해지죠.”
신체가 불균형하게 됐을 때,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그 불균형함을 따라가게 되다 보면 불균형한 모양으로 걷게 될 수밖에 없다. 구 회장은 그렇게 잘못된 걸음걸이에서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디스크, 어깨 통증 등 질병이 파생된다고 보았다.
“우리 대부분은 살면서 내가 제대로 걷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시간도 없어요.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굳어지고 아픔이 시작돼요. 그러면 병원에 다니면서 검사하고 엑스레이 찍고 찜질방 가고…. 그런데 원인을 잘 모르죠. 나이가 들어 아프다는 건 체형 조건에 끌려 다녀서 나온 결과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병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병을 찾아간다고 표현할 수 있죠.”
나의 노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라, 그래서 50~60세 사이에 자신을 변화시켜라. 그를 위해서 구 회장은 균형 잡힌 몸매와 걸음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호하게 목표를 향하는 시니어들은 너무나 많다
구 회장은 시니어가 대접받으려면 스스로가 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조급함과 바쁨을 만들지 않는 생활 태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떤 분을 보면 하루에 열 가지 이상의 일을 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하느냐, 시니어는 불안하기 때문이에요. 안 해도 불안, 해도 불안. 내가 아프지 않나? 아파서 죽는 거 아니려나? 그래서 병원 가서 이상 없다고 하면 그게 또 이상한 거예요. 나는 분명히 아파야 하는데. 그러면 다른 데 가서 또 검사하고. 나쁜 것에 집착해요. 그리고 남이 뭘 한다고 하면 따라 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나의 것이 없어요.”
확실히 상당수의 시니어들은 자신의 몸이 주는 신호, 주변의 변화에 의해 정서적 혼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그런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말 내가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별을 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그래서 저희 교육에서는 내가 어떻게 새 인생을 건강하게 다시 살 수 있을 것인지에 집중합니다. 교육을 할 때는 회원들이 거울을 반드시 보게 해요. 안 보고 싶어도 자신을 보게 하는 거죠.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잘못된 부분을 알게 되면, 스스로 젊어지고 예뻐지고 싶게 돼요. 그리고 노력하죠. 저는 그 순간이 너무 기뻐요.”
구 회장은 어렵고 낯설어하던 회원의 변화야말로 자신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밝혔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시니어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뉴시니어라이프는 분명한 목표를 제공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패션쇼라는 행사, 그리고 더 나은 모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회원들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패션쇼를 할 때, 회원들을 무대에 세워놓으면 저는 굉장히 색다른 감정을 느껴요. 잘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많이 참여할 때는 80명을 쇼에 세울 때가 있거든요. 너무 기특한 거예요. 저분이 팔자로 걸었는데, 턴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 무대 위에서 그렇게 훌륭하게 변화하거나 잘하려고 애쓰는 걸 보면 안쓰럽고 너무 예쁜 거예요.”
광고시장에서 시니어 모델이 인적 자원으로 어필되는 이유
최근 광고 시장에서는 시니어 모델을 많이 기용하는 추세다. 구 회장은 우리나라 광고 시장에서 소비되는 시니어 모델들에게 너무 꾸밈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구 회장은 모델들에게 욕심을 버려라, 예쁘게 멋있게 잘하려고 하다 보면 어색해진다고 교육한다.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든 만큼 표정과 모습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저는 우리나라 광고 시장에 불만이 많아요. 특히 보험회사 광고가 그렇죠. 거기 나오는 할머니들을 눈여겨보세요. 너무 불쌍하거나, 너무 인상이 안 좋거나. 정말 순수하고 인자하며 자연스러운 모델들이 많은데 왜 저런 사람들을 쓰는 걸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수준이 그 정도에 있는 걸까. 외국 광고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델들이 나오거든요.”
수백 억 원으로도 못 받을 선물을 받으며 산다”
구 회장은 패션쇼를 1년에 20회가량 열고 있다. 너무 많지 않으냐고? 되레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게 구 회장의 지론이다.
“대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쇼를 하고 싶어요. 시니어들에게 숨골을 틔워주는 일이니까요. 저는 사람이 죽을 때, 들이쉬는 숨을 못 쉬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쉬는 숨을 못 쉬어서 죽는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가슴에 쌓여 있는 숨을 살면서 몇 번이나 내쉰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위축되고 참고 억압하며 살면서 숨이 계속 쌓이고 쌓여요. 그래서 마침내 그 쌓인 숨을 못 쉬어서 죽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쇼에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기가 생겨요. 메이크업, 예쁜 옷, 기가 막힌 음악, 나를 봐주는 관중…. 엔도르핀이 올라옵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 있는 숨을 토해내고, 한이 풀리게 되죠.”
시니어의 우울, 치매, 자살과 같은 어두운 미래를 없애는 풀이로서의 패션쇼. 그것은 구 회장 자신을 위한 힐링의 장이기도 하다. 그 순간이야말로 사회적기업이라는 열악한 상황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 땀과 열정과 시간, 그 모든 것이 보상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구 회장은 그 순간을 수백 억 원을 준다 해도 얻을 수 없는 감정이라고 표현했다.
“쇼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잘 안 오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꼴 보기 싫어서 안 오는 거예요. 옛날에는 나보다 못났던 친구가 모델을 한다고 하니 심술이 나고. 와서 구경만 하는 것만으로도, 숨을 같이 쉬는 것만으로 달라질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가 건강해지는구나’라는 느낌을 반드시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1990년대 중반 CF 스타였던 CEO가 있었다. 바로 신홍순 컬처마케팅그룹(CMG) 고문이 그 사람이다. 당시 LG패션 사장이었던 신 고문은 멜빵에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20여 년 동안 패션 업계에 몸담았던 경력, 재즈와 클래식 마니아이자 전문 공연 기획자, 미술 컬렉터, 패션 경영 교육자, 전 예술의전당 사장 등등 신 고문의 삶은 문화와 예술로 채워진 드문 경영인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신홍순(申弘淳) CMG 고문은 1941년생, 올해로 74세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 그 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직업인 동시에 유희의 영역에서 살아 왔기 때문일까. 그는 음악과 미술은 기업에 있으면서도 항상 같이 가고자 했던 분야라고 말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을 이끄셨던 고(故) 임원식의 친구였던 선친께서 미술과 음악을 좋아해서 컬렉션도 갖고 계셨지. 선친께서 나이 6~7세부터 연주회나 전시회 등을 자주 데리고 다니셨고, 이후 대학에 와 재즈와 팝 등으로 영역을 넓혔어요. 아내를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 얻게 된 것도 그렇고. 그림은 내가 그리는 것보다 보는 게 좋아서 전시회를 많이 다녀요.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경험이 많은 도움이 돼요.”
신 고문의 선친은 동일방직의 중역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을 기업에서 구매하여 청와대로 보내곤 했다. 그의 선친도 그런 일을 했었고, 그 덕분에 화단에서도 그의 선친이 꽤 알려진 이름이어서 화가들과 친분이 있었다. 그런 환경이 신 고문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LG패션 대표이사 시절 갤러리 운영, 미술작품 전시, 재즈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기업이미지를 높이는 ‘패션마케팅’을 펼쳐왔다. “패션 자체가 색상과 디자인 등 예술적인 감각과 마인드가 필요한 분야인 데다 크게 보면 같은 문화산업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패션과 예술은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감성’을 바탕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이죠.”
재즈파크, 한국 재즈 역사에 한 획을 긋다
재즈마니아인 신 고문은 제 162회를 맞은 ‘재즈파크’ 콘서트를 1세대 정통재즈에서부터 라틴, 퓨전 재즈 등 2, 3세대에 이르기까지 신구를 아우르며 매회 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유명공연으로 만들어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는 2002년 3월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입장료 1000원의 재즈파크 콘서트를 꾸준히 열어온 ‘공연기획자’다. 또한 ‘재즈파크빅밴드’라는 18인조 재즈 빅밴드를 구성, 활동하고 있는 예술단체 매니저이기도 하다. 유열의 재즈파크빅밴드 활동으로 재즈파크빅밴드가 국내 최고의 재즈빅밴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재즈공연을 후원해준 신 고문의 감회는 남다르다.
“재즈 불모지였던 한국에 재즈의 토대를 마련한 재즈계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재즈 1세대들이 설 변변찮은 무대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무대다운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듣고 재즈 1세대들에게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생각했어요.”
척박한 한국 재즈 환경 속에서 재즈의 대중화와 저변확대를 이끌어온 ‘재즈파크’가 13살이 됐다. 이는 재즈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재즈 공연을 진행해온 신 고문의 재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결실이다.
“수익을 남기는 공연이 아니라 재즈파크를 통해 재즈인들은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생겼고, 대중에게는 재즈와 소통할 수 있는 가교가 마련됐다는 것이 의미였죠. 또한 재즈파크를 통해 선·후배 재즈 아티스트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팀이 결성되기도 하는 등 침체된 재즈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즐거움이었어요.”
조상의 역사를 정리하며 얻은 삶의 즐거움
신 고문이 최근에 공들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그의 조상, 그의 가계에 대한 연구였다.
“선친이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셔서, 그 나머지 일의 뒷정리를 하는 게 있어요. 아마 한국처럼 족벌이라는 걸 각 성씨들이 갖고 있는 나라가 없을 거예요. 바로 그 조상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죠.”
신 고문은 자신의 가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라는 문인을 꼽았다. 영·정조 시절을 살았던 신광수(1712~1775)는 ‘동방의 백낙천’이라는 평을 받았던 분이다. 신 고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을 쓴 춘원 이광수의 본명은 이보경으로, 그가 필명을 이광수로 쓰게 된 계기가 바로 신광수의 작품들을 알게 되면서라고 할 정도로 대가의 경지에 도달했던 문인이었다.
“얼마 전에 평양에서 온 극단이 하는 악극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여자 주인공 역할을 하는 사람이 석북 선생의 한시 창을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조상을 연구하며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다
신광수라는 걸출한 조상의 발견은 조상의 활동을 시대별로 자료를 취합하여 평전을 만들고 번역을 싣는 작업의 결과였다. 신 고문은 조상의 업적을 정리하는 그 과정에서 조상에 대한 애착을 굉장히 많이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 작품 하나하나가 남들과는 다르게 다가오죠. 그리고 자기 조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그들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모여서 일 년에 세 번 정도 서로 집안 행사 때 가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또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고. 어느 집에서 자료를 가져 와서 ‘1450년대 자료를 보라. 너희 조상하고 우리 조상하고 모여서 회의하고 시도 읊고 쌀도 나누고 했다. 1500년대 이후의 교류는 이미 나왔는데 그 이전 건 처음이다’ 하는 내용이 나오면 그쪽과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는 셈이죠. 새로운 게 창조되는 기분을 느끼니 자꾸 빠지게 되더군요.”
그런 인연과 인연들이 모여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이벤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석북 신광수 선생의 시로 공연을 열다
“조상의 역사를 되짚어 가면서, 한문을 배우긴 배웠지만 깊이 있게 배운 적은 없어 한학자들이 부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한학자가 250여 명 되는데 그들과 교류를 하면서 학술대회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요. 신광수 선생의 작품들로 음악회를 하자고.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공연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알거든? 어? 그거 얘기가 되네. 돈만 있으면 그 다음 방법은 내가 갈 길을 아니까.”
신광수는 정치적으로 남인이었다. 고향에서 한양에 오긴 했지만 집이 없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그에게 집을 마련해줬는데 그게 하필 노론이 주로 거주하던 계동이었다.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에서 살다 보니 심심하기도 했던 그는 청계천을 넘어서 명동, 당시에는 저동이라고 불렸던 곳을 다니곤 했다. 지금의 평화방송 빌딩에서부터 한옥마을 쪽으로 하여 회현동을 누비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했던 조상의 기록들을 신 고문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누비고 다녔던 동네가 그쪽이니, 공연 장소는 한국의 집 전통예술극장에서 하자고 했죠. 거기가 국악 공연을 하는 곳인데 200여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인 가곡 예능보유자 김영기 선생을 만났어요. 이런 것 좀 하려는데, 당신이 제일 적임자니 해주십사 부탁을 했죠. ‘당연히 해야죠’라며 얘기가 척척 돌아가더라고. 그래서 하게 됐지.”
자신의 조상의 업적을 발굴하여 그걸 현대에 살아 있는 현상으로 만들어낸다. 신 고문이 말한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는 말을 납득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야말로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일, 그가 젊었을 시절이라면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 아니던가.
“나도 젊었을 때는 조상을 알아보는 일에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니 그 윗대에서 알아봐야 할 분들이 새로 생기고, 다른 집안과의 연관도 많이 나왔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집안의 기록들도 연구하게 됐어요.”
고향을 바라보며 울컥했던 시간
신 고문은 조상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에 활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고향과 가까워지더라는 것이다. 그의 고향은 모시와 소곡주로 유명한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이다.
“우리 자식들은 고향에 관하여 기억하는 게 없어요. 가서는 수세식 변소가 없다고 난리를 치고 서울로 올라와선 다신 안 가더군(웃음). 조상을 연구하다 보니 고향 현지의 문화원과 교류하게 되고, 마침 문화원장 중에서 우리 집안에 굉장히 관심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문화원에서 책을 발간하는 데 도움도 주시고 날 초청도 하고. 그렇게 가까워지니 군수도 알게 됐어요. 2013년이 서천군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였죠. 그래서 600주년 기념행사를 하려는데 제게 총 준비위원장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회의 진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넣고 그랬죠. 그중 금난새씨와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게 있었는데, 오케스트라가 전국에서 300명의 청소년이 모이다 보니 행사하던 날 그 300명의 부모들이 모두 서천에 오더군요.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신 고문은 사람들이 두루 도우며 더불어 사는 그런 모습을 좀 보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점점 심해지는 개인주의에 대한 경계를 그 또한 자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고향과 더욱 가까워진 신 고문의 마음이 향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하는 사업 중에서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이라고, 발레나 연극 같은 공연을 영상화하여 보여주는 게 있어요. 그걸 보면 클로스업해서 테크닉까지 보여주고 아주 기가 막히더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걸 문화적 소외계층에 제공하는 거죠. 알아보니까 큰돈이 안 들어도 되겠더라고. 그래서 고향 문화원장에게 가서 내가 후원할 테니 해보고자 했어요. 회관 사용 허가가 떨어졌고 ‘호두까기 인형’을 가져갔죠. 군부대 사병들, 학생, 일반인들이 일과 끝나고 구경하도록 했습니다. 문화원장이 사람이 올까 해서 걱정했는데. 그 영상이 한 시간 반 동안 하는데 소리가 하나도 안 나더군요. 다들 집중해서 보는 거지. 그걸 보면서 울컥하더라고. 보람이 깊었고.”
인생 후반전의 밝은 본보기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멋지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신 고문이 보여주는 모습에는 자신이 꾸준히 쌓아왔던 커리어에서부터 비롯된 것 외의 다른 이유에서 시작되는 부분도 있어 보였다.
“우선 호기심이 많아야 해요. 자신이 일을 좀 만들려고 할 때 일을 찾는 기본은 호기심입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그리고 열정이죠. 그런데 혼자서는 다 할 수 없으니까 그 열정을 원하는 대로 행사하려면 같이 일할 사람을 찾아서 유도해야 해요. 제 친구 중에 대학을 안 다녔는데 한문을 배운 친구가 있어요. 자신의 아버지도 서예를 잘했고. 그 친구가 한문학에 자질이 있다는 걸 알았죠. 성격도 괜찮아서, 나하고 같이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가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 없었는데 하나씩 목표가 주어지면서 달라지더군요. 요즘은 그리 말해요. ‘형 아니었으면 내가 요즘 뭔 보람으로 살았을까.’”
신 고문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바로 인재를 알아보는 눈. 세상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능력과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신 고문은 그들을 알아보고 모아서 도화선으로서, 불을 붙여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있을 때 득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람을 느껴야 일이 돼요. 나이를 먹으니 그런 쪽으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게 좋더라고요(웃음).”
호기심, 열정 그리고 친구 많은 것이 그가 웰에이징 하며 사는 비결이었다.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아무리 기분 좋은 쇼핑이라도 여름에는 지치고 버겁다. 이럴 땐 시원한 거실 소파에 앉아 쇼핑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몸도 편하고, 가격도 저렴한 데다 마음에도 쏙 드는 온라인 홈쇼핑을 찾아보자.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 ‘오아후(oahu)’
오아후는 ‘오십 대부터 시작하는 아름답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50대 이상 중·장년 고객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로, 기존 GS홈쇼핑의 시니어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GS홈쇼핑 사이트와 비교했을 때 14폰트 이상의 큰 글씨와 약 1.8배 더 큰 제품 이미지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장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고객들을 배려해 TV홈쇼핑처럼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화로 상품 상담부터 주문 및 결제까지 가능하게 했다.
이외에도 온라인 쇼핑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처와 시간을 남기면 상담원이 전화하는 콜백(call back)서비스와 컴퓨터 조작을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원격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회원 가입을 하면 ‘오하우 쇼핑 카탈로그’를 1년간 무료로 받아볼 수 있고, 스마트폰을 이용할 경우 ‘오하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면 더욱 편리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도메인 www.oahu.gsshop.com
문의 080-890-4545(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센스 넘치는 여인의 선택 ‘마담4060(madam4060)’
마담4060은 쇼핑몰 메인 페이지부터 ‘40~60대 고품격 부인복 쇼핑몰 1위’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다. 그만큼 중년 여성고객들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패션 아이템들이 가득하다. ‘젊은 마담(도시적인 시크 스타일)’, ‘러블리 마담(여성스러워지고 싶은 엄마들의 로망)’, ‘내추럴 마담(편안하면서도 어디에도 매치하기 좋은 옷)’ 세 가지 콘셉트로 나눠 저렴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의상들을 선보이고 있다.
모임이나 결혼식 등에 알맞은 원피스나 블라우스, 정장 등이 있는 ‘모임 의상’과 넉넉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모아놓은 ‘빅 사이즈’ 카테고리도 선호도가 높다. 특히, ‘코디 세트’ 카테고리에서는 상의와 하의를 조화롭게 매치한 한 벌의 의상을 따로 구매할 때보다 10% 정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중년 고객들의 편리한 쇼핑을 위해 전화주문 서비스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운영한다.
도메인 www.madam4060.com
문의 1544-3617(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점심시간 정오~오후 1시)
믿고 살 수 있는 멋스러운 빈티지 가구 ‘호메오(homeo)’
라틴어로 ‘항상 같은’, ‘변치 않는’이라는 뜻을 지닌 호메오는 그 의미처럼 오랫동안 두고 쓸 수 있는 빈티지 수입 가구를 판매한다. 단순히 가구를 취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추억을 담아둘 수 있는 공간 창조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호메오는 개성 넘치는 독특한 빈티지 가구의 대중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인더스트리얼 가구의 수입이 시작된 곳이면서 국내 유일의 영국 전통브랜드 티모시 울튼(Timothy Oulton)의 수입업체로도 가구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호메오는 디자이너와 전문 MD들이 현지에서 제품을 직접 선정하거나 디자인하고 있다. 선정한 제품이 국내에 수입되면 전용 공방에서 1차 검수를 통해 파손 여부나 불량 여부를 꼼꼼하게 검사한다. 판매된 모든 가구의 AS가 가능하다. 다양한 가구를 직접 보면서 신선한 원두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퍼니처’ 콘셉트의 오프라인 멀티숍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본사 전시장 겸 카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9)
도메인 www.homeo.kr
문의 031-946-1727
요리가 어려운 싱글 시니어의 레시피 박스 ‘푸드마스(foodmas)’
푸드마스는 매주 2~3가지의 레시피와 그에 맞는 신선한 식재료를 보내 주는 온라인 글로서리 마켓(Grocery Market)이다. 실제 요리를 하려고 장을 보다 보면 필요한 재료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고,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더라도 일일이 따로 주문해야 돼 번거롭다. 특히, 싱글족이나 부부가 단 둘이 사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의 식재료를 사야 할 때가 있어 처치가 곤란하기 일쑤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푸드마스는 인원수에 따라 레시피에 알맞은 양의 식재료를 제공한다. 배달 음식이나 반 조리 식품이 아닌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해 직접 요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요리 순서와 방법이 담겨 있는 종이도 함께 배달한다. 이 밖에도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하면 다양한 레시피 자료와 조리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푸드마스 레시피 박스는 매주 메뉴가 업데이트 되며, 2인분, 4인분, 6인분 단위로 주문할 수 있다.
도메인 www.foodmas.co.kr
문의 070-8244-4787(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
인생2막, 시니어들의 모델 진출이 활성화되고 있다. 광고에서 런웨이까지 시니어 모델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고 그 수요도 늘어나는 시점이다.
꽃중년들이 일어날 시기가 찾아왔다. 물론 늦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교육과정과 선발대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시니어모델의 시작 ‘뉴시니어 라이프’
2007년에 시니어 모델사업을 시작해 교육과정이나 인프라가 상당한 곳이다. 서울시설공단과 함께하는 청계천 패션쇼를 비롯해 독일, 연변 등 해외무대에서도 나름 지명도가 높다. 강남캠프, 일산캠프, 성북캠프 총 3개의 교육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3~4년차 수강생들이 많이 포진된 것이 특징이다.
‘행복한 패션기업’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구하주 디자이너가 설립한 이곳은 교육, 공연, 모델, 제품 사업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시니어 관련사업의 연령대를 낮추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60대 기준에서 50대로, 베이비부머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잡은 것.
뉴시니어라이프 구다원 국장은 “통상 시니어나 실버의 구분이 없이 관련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신중년세대들이 완벽히 적응할 만한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편하고 하기 쉬운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교
육을 만들어 가는 데 주력할 시기”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관련 교육기관 중에 가장 역사가 오래된 만큼 모델 인프라나 활동 영역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시니어 모델 전문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뉴시니어라이프에는 경력 3년차 3인방 모델이 유명하다. 이들은 50대, 60대, 70대로 구성됐으며 나이차와 관계없이 친구처럼 편한 모습을 보였다.
맏언니 이오영(70)씨는 지난 세월 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외교관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퇴직으로 한국에 다시 정착하게 되면서 느낀 외로움을 모델 워킹을 통해 극복했다고 한다.
“손주들이 좋아해서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모델 워킹을 교육받으며 새로운 삶을 얻는 것 같다”는 그녀의 미소에서 넉넉함이 느껴졌다.
특히 “그동안 관절염으로 고생했는데 자세 교정을 통해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온 권혜영(62)씨는 모델수업을 통해 성격이 달라졌다. “그동안 자녀들 뒷바라지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선천적으로 내성적인 성향을 가졌었다”는 그녀는 “모델 워킹을 통해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어 놀랍다”고 언급했다.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무대의 긴장감이 있다”며 “이런 긴장감을 통해 에너지와 용기를 잃지 않아 신난다”라고 말했다.
김경순(54)씨는 3년 전 수강생으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보조강사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체형관리와 건강 관리, 순식간에 찾아오는 갱년기 우울증에 이만한 프로그램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보조강사로 도움을 줄 수 있어 그 행복은 배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큰언니와는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같은 관심사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녀는 지난 30여 년간 골프용품 사업에 매진하며 꾸준한 마라톤으로 몸매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뉴시니어라이프 패션쇼 교육은 기초, 전문, 워킹클래스 총 3개 파트로 나눠진다.
기초과정은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4개월(주1회 3시간)간 진행되는데 기본교육, 패션쇼 준비, 패션쇼 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수료 후에는 시니어패션쇼 공연활동에 참가 할 수 있다. 전문과정은 기초과정을 이수한 수료자를 대상으로 6주(주1회 5시간)동안 전문모델교육을 받게 된다. 전문과정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시니어모델 활동(광고/사진/패션/미디어/이벤트) 및 시니어모델 워킹강사로 활동할 기회가 주어진다.
워킹클래스 역시 기초과정을 이수한 자를 대상으로 매주(주1회 3시간) 수업이 진행되며 준비훈련을 통해 시니어패션쇼에 올라서게 된다.
재충전의 다크호스 ‘강남시니어플라자(시니어모델워킹)’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모델 워킹반이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나고 있다” 이 한마디를 듣고 찾아가봤다.
교육은 올해 시작돼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열정 가득한 수업이 매력적인 곳이다. 강남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시니어들도 주목하고 있어 분기별로 진행되는 수강신청을 빠르게 해야 한다.
수강생들에게 무대의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강사 채용에 신경을 쓴 흔적도 보인다.
지난 10년간 패션모델로 일했던 모델 워킹반 이나영 강사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모델 워킹수업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여러 측면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현재 대학 강단에 서고 차밍스쿨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니어 모델 교육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그녀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 시니어들의 건강, 자신감 그리고 열정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우선적으로 소통을 통해 새로움 아름다움을 찾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강생들의 만족도는 어떠할까.
우선 모델 워킹반 수강생 대표를 맡고 있는 홍의정(66)씨는 “나이가 들면 걸음걸이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여기서 배운 올바른 자세 교정으로 뒷모습은 아직도 아가씨 같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모델워킹을 하면서 10년은 젊어 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워킹이나 모델 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잠시 꿈을 포기하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인으로부터 모델 워킹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수강신청을 한 후 본격적으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김쏙니(64)씨는 “40년간 강남에 거주하며 강남시니어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모델워킹반의
시작과 함께해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모델 워킹반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돼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자세로 나이도 몸도 늙지 않는 건강관리에 매진하겠다”며 건강과 미모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강윤순(64)씨는 “처음에는 습관이 되지 않아 어색했지만, 수업을 통해 건강한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외부 시니어패션쇼에도 용기내서 참여하니 보람차
고 톱 모델 못지않게 나도 멋진 여성이 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시니어 모델 워킹 클래스는 기초와 프로 2단계로 나눠지는데 각각 6개월씩 주1회 수업이 진행된다.
기초과정의 경우 초반 3개월은 자세교정과 기본 워킹을 중심으로 모델로서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교육받고 후반3개월은T자형무대,원형무대등모델워킹실습을받게된다. 프로과정은기초과정 수강한 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본격적으로 패션쇼에 참가하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으로 구성된 상태다.
미즈실버코리아 2014
올해 시니어모델을 위한 유일한 선발대회는 미즈실버코리아뿐이다. 시장이 좁기 때문에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참가대상은 50세 이상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능하지만 태생적인 아름다움이나 시간을 거스르는 안티에이징이 관건은 아니다.
주최측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속에서 묻어나오는 경험과 연륜이 몸에서 절로 발현되는 아름다움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심사 역시 수상자의 삶의 역사, 건강,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 사회봉사에 가장 큰 방점을 두고 있다.
지난 2002년 전주의 한 복지가가 소외된 노년층의 꿈과 미소를 되찾아주기 위해 만든 순수한 목적의 이벤트성 대회로 시작했지만 사단법인 세종문화원과 서울공연 예술센터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와 문화예술계의 후원을 받는 큰 규모의 행사로 변모하게 됐다. 대회수상자들에게는 다양한 대외활동 기회가 주어진다.
우선적으로 수상자들은 한류 ‘뷰티 퀸’으로 데뷔하며 방송 MC와 쇼호스트, 연기 등의 분야로 나갈 수 있다. 시니어 뷰티 리더로서 사회봉사활동과 주부 모델, 미즈 모델, 실버 모델로 활동하며 각 단체 및 업체들과 연관된 평생 교육프로그램에도 지도자로서 발돋움할 수도 있다.
“시니어 모델이 된다는 생각으로 무대에서 연습을 해보니 가슴이 벅찰 정도로 희열이 느껴진다. 이제는 프로 모델로 거듭나고 싶다.”
미즈실버코리아 참가자 김지영 (61)씨는 이 같은 포부를 갖고 있었다.
지난 세월동안 육아용품과 화장품 사업에 인생을 바쳤던 그녀는 이번 선발대회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고자 마음먹은 것.
그간 사업적인 영역에서 힘써왔다면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모델로서 성장하고 싶다는 말이다.
“탄탄한 몸매를 가꾸기 위해 틈틈이 피트니스센터를 다녔고 화장품 관련업계에 종사했던 만큼 미를 가꾸는데 남다른 소질이 있죠.”
당당한 그녀의 말투에는 내달 진행될 선발대회의 승패와 관계없이 뚜렷한 목표가 보였다.
김지영 씨는 “우선적으로 시니어 모델로서 TV광고나 지면광고, 또 패션쇼 등에 참여하고 싶다”며 “저를 써주신다면 그에 합당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녀는 “모델 활동과 함께 제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는 우리 시니어들을 위해 운동이나 화장법, 패션 등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중년 세대를 위해 패션쇼 사업을 진행해 온 뉴시니어라이프가 1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뉴시니어라이프(대표 구하주)는 오는 24일 오후 4시와 7시에 50~88세의 시니어모델 60명이 출연하는 ‘Passion of Senior 2005-2014’ 행사를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패션쇼는 모델 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지는 팔순의 시니어모델이 무대에 함께 오른다. 특히 올해 미수를 맞은 박양자씨(88)의 기념비적 모델활동을 기리는 헌정무대도 있을 예정이다.
뉴시니어라이프는 50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시니어모델교실을 운영해 10년 동안 1300여명을 교육했고, 교육받은 모델들과 함께 국내외에서 91회째 패션쇼를 공연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이며 사회적기업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비영리단체가 10년 동안 시니어패션쇼 공연활동을 한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관련 구다원 국장은 “처음 공연을 시작할 때는 여유 있는 노인들의 취미생활 정도로 치부해 어려움이 컸으나, 고령사회 시니어의 삶을 밝고 건강하게 만들며 시니어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시니어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 행사는 줄기세포 및 차세대 의약품을 개발하는 ‘강스템바이오텍’과 경복대학교 산학협력 요양기관 ‘꿈사랑그린요양원’이 후원한다.
오선영 미래미술관 관장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감탄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나이를 지워버리는 젊은 아우라에. 전업주부였지만 자기계발을 거듭하여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는 예술을 즐기고 배우면서도 내조를 잘하는 한국적 마담의 이상적인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처음 나온 질문이 ‘브라보 라이프 스타일이 무엇이냐’는 건 그러한 모습에 대한 의문이 그대로 나온 결과였다. 스타의식과 끼 넘치는 그녀에게 삶을 즐기는 법에 대해 물어봤다.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을 통해 시간을 보내면 보람을 느끼는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뭔가 결여된 것이다. 결여는 대개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온다. 그러나 오선영 미래갤러리 관장은 주변 사람들이 부러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부러워 한 적 한 번도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해도 인컴(수입)이 없는 생활을 계속 했기 때문에, 어느 날 나도 인컴(수입)이 있는 일을 해봤으면? 하는 걸 느낌 적은 있어요. 그래서 강남시니어플라자의 CF 모델을 신청하려고요. 10월에 오디션이 있다고 해서 도전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워킹연습도 하고 있고, 워킹은 그 순간도 행복하고 건강에도 좋아요. 나이가 들면 건강해야 해요.”
예술은 인생을 살찌우게 하는 것
그녀가 하고 싶은 분야 또한 지금까지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지만, 미술 저변 확대를 위해 그림 자체를 감상을 못하거나 시간이 안되서 못하는 시니어들, 관심 없는 사람들을 위해 홍보해주고 티켓을 지원해주는 활동들을 하고 싶다는 것. 시니어들이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그 안에서 봉사도 가능하게끔 하고 싶다는 게 오 관장의 생각이었다.
“생각이 들게끔 하려면 기회를 통해 두루 두루 감상과 경험을 해야 하는 거죠. 문화적 감성과 식견을 키워주고 싶은 욕심에 시니어들에게 미술관 활동을 접하게 해주고 싶어요.”
자랑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오 관장은 수줍게 말했다.
아울러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등 예술 저변의 확대를 추구하고 싶다는 게 그녀의 포부였다고.
혹시 남편이 그녀의 삶에 간섭한 적은 있을까? 배우자의 삶에 관여하는 배우자는 종종 자기계발의 동인이 되기도 하지만 부부 갈등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궁금해서 남편이 권하는 취미가 있는지를 물어봤다.
“권유가 전혀 없어요.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제게 뭐를 했으면 하고 말한 적 없어요. 그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스타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이해 못하죠. 그런데 우리 가족은 알아요.”
처음부터 금슬 좋은 부부였을까?
“제가 사랑할 만한 조건을 갖춘 게 아니라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짝이 되면 누구나, 누구든지 남편의 옆 자리에 있으면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거죠. 내가 사랑받을 조건을 갖춘 아내여서가 아니라 아, 이 남자는 내가 아니라도 다름 사람에게 동반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인생 후반전이 돼서 알았어요.”(웃음)
그녀는 남편과 맞선을 통해 결혼해서, 결혼 전에 남편에 대해 아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해보니 남편이 예술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파트와 일치하는 거야, 그게 제게 너무 행운이었어요. 남편은 형편이 안 되지만 능력이 있는 작가들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요. 돈이 될 거다 싶어서 그림을 사는 게 아니에요. 마땅히 도와줘야 할 작가라면 거리낌 없이 구입하죠. 남편은 그러한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문화와 철학이 있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에요.”
오 관장의 말 속에서는 남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며 그 자체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점을 가장 존경스러운 점으로 꼽았다.
이쯤에서 티격 태격하는 중년부부들에게 도움 줄 만한 말을 꺼냈다.
“당신은 왜 그래?” 같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중년 부부는 상처받기 쉽잖아요. 따라서 역지사지 자세로 배우자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배우자의 말을 경청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 것 같아요.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감에 상처를 주는 일은 금물이죠. 이러다 말겠지, 좀 있으면 괜찮아지겠지하며 배우자의 감정들을 무관심할 게 아니라, 상대가 겪는 증상을 서로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스스럼없이 그녀는 “부부를 강하게 이어주는 방법 가운데 대화만큼 효과적이고 간단한 것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긍정심이야말로 젊음을 유지시키는 비결
오 관장의 말 속에서는 끊임없는 긍정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답지 않은 외모의 비결로도 긍정심을 들었다.
“제가 편안하게 사니까 긍정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긍정적이에요. 제 친정 오빠도 그렇게 얘기해요. ‘너는 지게꾼 아내가 되었어도 행복하고 흥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당연한 거 같아요. 저는 지금 현실에 만족하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해본 적 없으니까요. 그리고 아름다움과 칭찬하는 말을 원체 좋아하고, 남을 흉 보는 말은 듣는 것조차도 지루하고 괴로워요. 혹시 친구가 대화를 하면서 누군가에 대한 나쁜 말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릴 거 같다면 다른 상대를 찾는 게 낫겠다고 말하곤 해요.”
주위에 친구들은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자랑하러 그녀에게 온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답고 품위를 좋아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는 그녀는 블랙톤으로 옷을 입고 나왔다. 혹시 그러한 패션 감각 또한 그녀의 캐릭터일까?
“비가 온다, 그러면 밝은 기분으로 코디를 해요. 장화를 신는다던지. 되도록 밝게, 하지만 때와 장소와 목적에 맞게끔 입는 편이에요. 봄이면 봄과 함께 걷고 가을이면 가을과 함께 걷는 듯한 옷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시니어들이 옷을 입는 것에 있어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조언했다.
“나이가 들면 체형이 바뀌게 되어 있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몸체를 그대로 드러나게 입는 것은 시니어가 환영받지 못하는 매너라고 보죠. 저는 옷을 제2의 인격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몸이 안 되는데 억지로 입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몸에 맞지 않는 그런 옷차림은 추하고 천해 보여서 격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리거든요. 예쁘다는 옷을 젊게 입는다고만 해서 젊어지진 않습니다.”
그녀는 옷을 입을 때 컬러가 최소 세 가지를 넘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세 가지도 많고 두 가지 선에서 끝내라는 게 패션에 대한 그녀의 철칙. 색을 절제함으로써 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란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마음의 넉넉함입니다. 우리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그랬지만(웃음). 내면의 멋이 있어야 해요. 그 사람이 고스톱을 치는데 혈안이 된 사람이라면 내면이 모두 고스톱일 텐데 멋있을 수가 있나요. 그런데 문화를 겸하지 않으면 지성미는 불가능해요. 중년의 멋은 과거가 만드는 거니까요. 체득화되어야 해요.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렇게 못했으면, 지금이라도 문화와 예술을 접하려고 많이 노력해야 지성미 있는 얼굴에 남게 됩니다. 지성미 있는 시간을 할애해야 가치가 내재화된다는 말이 있어요.”
만남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진다
오 관장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남’을 선택했다.
“만남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음악과의 만남, 그림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을 보면, 가족과의 만남이 있고 인생을 살찌게 만드는 사람과의 만남이 있기 마련이죠. 문화와 예술과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문화와 예술을 접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아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종교의 중요성도 말했다.
“살면서 종교가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종교가 있으면 쉽게 해결 안 되는 고민도 해결되요. 큰일이 닥쳤을 때 작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버킷리스트에 대해 물었다. 지금까지 시원시원하게 단도직입적이었던 그녀의 대답은 마지막까지도 분명했다.
“난 성악가가 되고 싶어(웃음).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어렸을 때만 해도 ‘평범하게 살려면 너가 평범해야 한다’는 아버님 말씀이 있어서 그렇게 못했거든요.”
엔터테인먼트 끼가 가득하다. 오 관장의 인상, 그리고 시, 도자기, 꽃꽂이 등 다재다능한 재능에는 그러한 예상을 짐작케 하는 강한 힘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무반주로 부른 그녀의 노래 실력은 깐소네, 샹송을 넘나들고 있었다. 대한민국 중년여성이 멋지게 산다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었다.
쌈지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하여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적 기질을 가진 독자적 토종 패션 브랜드 쌈지. 10년 동안 운영됐던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 쌈지 스페이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뮤지션들의 축제의 장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인사동의 쌈지길 등은 쌈지라는 브랜드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감각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결과들이었다. 그러나 기업으로서의 쌈지는 2010년에 부도가 났다. 쌈지의 주인장이었던 천호균 대표는 ‘장사’를 버리고 ‘농사’로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을 드라이빙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쌈지의 정신을 농업과 연결시킨 (주)쌈지농부를 통해서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bravo-mylife.co.kr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저는 남들 신경 엄청 쓰는데 남들은 제가 신경 안 쓰는 줄 알아요.”
1949년 생 소띠, 올해로 예순여섯 살인 천호균 대표의 첫 모습은 ‘쌈지’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혁신적 브랜드의 수장다운(?) 수더분한 외모와 소년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10여 년 전, 예술인마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지인의 소개로 헤이리 파주에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주)쌈지농부를 세우고,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농사와 예술의 결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쌈지에서의 ‘예술’을 농업으로 이어가다
천 대표는 쌈지농부를 시작하면서 특히 느림의 미학을 조명하는 슬로우 아트(slow art)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어떤 작가는 농사를 짓는데, 밭 이름이 ‘반만 먹자’다. 농사를 지어서 사람은 딱 반만 먹고 반은 동물들과 나눈다. 원래 농사는 같이 먹으라고 하는 것, 그 철학에서 출발한다. 갤러리에서 병아리를 부화시켜 2주 정도 키워 독거노인들에게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하는 작가도 있다.
“쌈지를 할 때, 장사를 하면서도 마케팅을 예술로 했죠. 그 아트 마케팅을 농사에서도 융합시키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쌈지에서 시도했던 ‘예술’을 계속 이어간다는 의미가 되겠죠.”
그는 예전 인터뷰에서 과거에 패션디자인상 심사위원장을 하면서 ‘아름다움에는 순위가 없다’는 문제적 심사평을 낸 바 있다고 자평한 바 있다. 교육과 사회는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아름다움을 고정시키려 하는데, 그는 모든 생명이 ‘생긴대로’ 저마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편견 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굴해서 보여주는 이가 예술가라는 게 그의 지론. 생각해보면 농업은 그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실현시키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익숙한 기술 아니던가.
천 대표는 과거 쌈지 시절의 예술과 지금의 예술이 어떤 점에서 다르냐는 질문에 지금 농업을 통해 하는 예술은 거대담론으로 세상을, 환경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농업의 생산성과 예술의 가치를 합치니 지속가능, 정의, 나눔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히는 천 대표의 지론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었다.
“농업을 시작하니 가능한 한 농사하는 마음으로 장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형보다는 내용이나 가치에 충실하게 말이죠. 그 절실함을 담다보면 지속가능한 예술로 이어집니다,”
농부할아버지, 손녀와의 소통 비결… 측은지심을 알게 되다
농업을 하면서 천 대표는 세 명의 손녀들과 더욱 친근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식물이라는 돌보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약자를 돌봐서 길러내야 하는 농업의 특성이 소통의 비결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배경이나 교육이 아이들의 착한 속성을 계속 유지시켜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약자를 측은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 마음을 유지시켜주는 교육 말이죠. 농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약한 것들에 대해 측은하게 생각하게 되니까, 그게 아이들의 속성하고 일치하는 거 같아요. 농업이 만들어 준 제 속성이 손녀들의 속성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죠.”
인생이모작을 진행하는 시기의 동반자와의 관계도 궁금했다. 사실 많은 시니어들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동반자와의 관계에 관해 고민한다. 취미나 여가를 찾으려고 애쓰게 되는 건 동반자와의 관계가 불성실해진 것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닐까. 그런데 이 부분에서 천 대표는 거의 ‘완성형’이었다.
“자랄 때 아버지가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 분이었어요. 그러면서도 가정일을 챙기셨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내를 위하는 문화를 알게 됐어요. 그리고 살다 보니 여자들이 아는 게 참 많더라구요. 그렇게 자라고, 살고 배워 오면서 아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 말 잘 안 듣잖아요? 그런데 저는 습관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웃음).”
천 대표는 부인을 ‘감사야’라고 부른다. 늘 배울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 감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결혼할 때부터 ‘배우자’는 생각으로 부인을 배우자로 택했는데, 실은 ‘마누라말 잘 듣자’는 습관이 되다보니 얻게 된 것.
생각의 밭, 마음의 논을 가꿉니다
천 대표는 자신이 아직 초보 농부라고 고백한다. 말하자면 이제 막 인생 2막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중이라는 것. 그래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시대의 일가를 이뤘던 사람으로서 인생이모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말해 줄 수 있을지가 궁금하여 물어봤다.
“농부를 하다 보니 생명의 가치를 알게 됐습니다. 그 가치를 소비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돈을 많이 벌 때와 비교하여 행복하냐구요?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버는대로 만족스럽죠. 하지만 지금은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행복을 느끼게 되요. 만족보다는 행복을 찾아라,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생긴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에 가장 멋스러워 보이는 천 대표는 수익이 좀처럼 나지 않을 것 같은 ‘달동네’(천대표가 표현하는 절실하게 살기 위한 공간)에서 그만의 노련한 솜씨로 예술과 농사를 엮어 농부와 소비자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가벼운 발놀림. 경쾌한 스트로크.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유니폼에 까만 선글라스를 낀 한 신사의 테니스 라켓 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모자 끝으로 살짝 삐져나온 백발과 선글라스 주위에 움푹 패인 주름을 보고 나서야 이 테니스 신사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얼굴에 퍼진 나이테는 족히 70~80대라고 써 있다. 테니스 코트를 쉬지 않고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 판단에 더욱 확신이 든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테니스 신사’ 한상원 씨는 무려 97세.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해도 저렇게 활동할 수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야말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청춘이다. 곧게 펴진 허리, 더위에 아랑곳 하지 않는 패션 센스,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얼굴에서 전혀 90대의 흔적이라고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대외 단체 활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그다. 테니스와 대외 단체 활동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다.
테니스 인생 80년. 사실 그는 테니스계의 대부다. 테니스 동호회 청우회의 동료 김영근(84)씨는 그를 ‘테니스계의 보배’라고 치켜세웠다. 대한테니스협회 회장 2회 역임, 테니스 단장으로 국가대표팀 선수를 이끌고 아시안게임에도 3회나 나갔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하다.
◇“건강의 비결? 적극적인 단체 생활 그리고 테니스죠.”
조금의 헐떡임도 없다. 약 20분간의 테니스 시합 후 인터뷰가 진행 됐지만 힘들어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인터뷰 내내 귓속에 끼워진 금색 보청기만이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 수 있는 나이에 그는 코트에 당당하게 서 있다. 10~20세 이상 차이나는 후배들과의 테니스 시합에서는 이제 관록이 묻어난다.
“건강의 비결이요? 물론 테니스지. 그리고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대외활동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 몸 담았던 회사동료들 모임에 가거나 국제 키와니스 클럽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또 다른 제 건강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씨의 현재 삶에서 테니스 비중은 60%, 대외 단체 활동이 40%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운동하고, 웃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는 생활. 그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이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는 그의 활동량을 보면 정정하다는 말보다 활기가 넘쳐흐른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80년을 테니스와 함께 동고동락했기 때문인지 한씨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할 정도의 테니스 예찬론자다. 그의 몸이 말해주듯 시니어 건강에 있어 테니스가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테니스로 단련한 체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단체 활동도 못했을 것이라는 그다.
“나를 봐요. 어디 아픈 데가 없잖아. 상하전후좌우 모든 곳을 움직이니 이만한 전신 운동이 없죠. 아마 테니스를 안했으면 좋아하는 사람들도 못 만나고 침대에만 누워 있었을지도 모르지.”
건강의 비결은 습관에서도 나온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고, 적게 먹기. 이것은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그리고 또 하나. 틈만 나면 걷기다. 이것은 아직까지 그에게 철칙이다. 테니스와 걷기운동, 건설적인 친교활동. 그의 건강 비결은 특별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삶의 의지를 놓을 수 없는 이유
한씨는 10~20년 전까지만 해도 테니스를 치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지금은 다르다. 테니스 한게임을 하고 나면 몸에 피곤하다는 반응이 금세 온다. 그러나 한씨는 라켓을 놓을 수 없다. 테니스와 사회 활동이 삶의 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항상 밝은 웃음을 머금고 대답을 이어 나가던 그의 입에서 무서운 말이 흘러나왔다. 얼마 전 라켓을 놓고 삶의 의지를 놓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활동하는 단체의 일부 사람에게서 회의감을 느낄 만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늙었으면 이제 쉬는 게 좋지 않냐’는 말을 어린 후배들에게 들었어요. 그 때 정말 삶의 의지를 놓고 싶더라고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실망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힘이 돼 주는 후배들이 더 많기에 쉽게 삶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나에게 힘을 주는 후배들이 더욱 많은 덕이다.
“‘선생님이 목표에요. 그러니 120세까지 건강하셔야 돼요.’ 이렇게 예쁘게 말하는 후배를 두고 어떻게 삶을 내려놓겠어요. 이 친구들을 봐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오래 살아야지 뭐.”
고인 물은 썩는다. 액티브(Active) 청춘 한상원은 97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은 흐르는 물이다. 그가 행복한 청춘을 유지하는 비결. 그것은 흐르는 물과 같이 멈추지 않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