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1925년 간행된 김소월 시인의 시집 ‘진달래꽃’에 실린 시이지요. 봄가을 없이 돋는 달이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나무를 하나하나 알아가기 전에는 그토록 많은 꽃이 산과 들에서 피고 지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특히 야생 난초의 존재는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난초는 으레 ‘잘 빠진’ 화분에 담겨 집 안이나 사무실 등 실내에서 감상하는 원예종이라고 생각해온 탓이지요.
그런데 서울, 경기, 강원 등 겨울이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서도 봄이 되면 감자난초, 은대난초, 나도제비란 등이 돋아나 희거나 노랗거나 붉은 꽃을 저마다 피워낸다는 사실을 알고는 1차로 크게 놀랐습니다. 이어 많은 사람이 보고 싶은 1순위 야생화로 꼽는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복주머니란, 보춘화 등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친숙한 이름의 난초들과 으름난초, 흑난초, 무엽란처럼 다소 생소한 이름의 난초 등 무려 90여 종의 야생 난초가 이 땅에서 저절로 자란다는 걸 알고는 두 번째로 놀랐습니다.
자주색, 즉 ‘짙은 남색을 띠는 붉은 색’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 자(紫)와 난초 난(蘭)의 의미가 더해진 자란(紫蘭). 군더더기 없이 단출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의 야생 난초는 이에 더해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하고 진한 홍자색 꽃 색으로 인해 열대 지역이나, 고온의 온실에서 자라는 이국적인 난초일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자란이 우리 땅에서 저절로 나고 자라는 야생 난초라는 걸 알고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나아가 한 야생화 애호가가 썼듯 “발에 밟힌다고 할 정도로 흔하게 자생”하는 걸 보는 순간 더 큰 기쁨과 놀라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2018년 5월 5일 차마 건너기를 주저했던 진도대교를 지나 진도(珍島)의 남쪽 바닷가에 도착해 갯바위를 밟았습니다. 그새 무성해진 산기슭을 살피니 군데군데 불쑥불쑥 돋아난 홍자색 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록의 숲에 홍자색 꽃이 피니 눈에 확 뜨입니다. 자란이란 단순명료한 이름의 연유를 알 것 같습니다. 자생 난의 화려한 개화 현장을 확인한 것만도 감격스러운데, 조금 뒤 더 놀라운 장면을 만났습니다. 수백 촉의 자란이 바다와 섬이 한눈에 보이는 해안 평지에 한데 뭉쳐서 홍자색 꽃잎을 일제히 벌리고 선 장관을 본 것이지요. ‘어린이날 교통 체증’을 무릅쓰고 서울에서부터 500km 가까이 달려온 보람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Where is it?
전라남도 무안, 신안, 진도, 해남, 완도, 고흥, 그리고 제주도가 자생지다. 남쪽 바닷가와 제주에서 자란다는 것은 자란이 열대식물까지는 아니지만 추위에 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남쪽에서 자라다 보니, 다른 야생 난초들에 비해 키도 크고 꽃도 큰 편이다. 50cm 안팎의 꽃대를 포함해 키가 60cm 정도까지 자란다. 길이 20~30cm, 너비 2~5cm의 길쭉한 타원형 잎이 5~6장이나 나와 줄기를 감싸며 위로 뻗는다. 5~6월 잎 사이에서 나와 50cm까지 자라는 꽃대 끝에 3cm 크기의 홍자색 꽃이 6~7개까지 달린다. 남서해안 10여 곳 미만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생하지만, 개체 수는 지천이어서 진도나 해남 등 자생지 야산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봄비[雨]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 무렵. 음력으로 3월 중순, 양력으로는 4월 20일 즈음 백화(百花)가 만발(滿發)하며 봄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 시기 특히 제주도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돋아나 숱한 이들이 들판을 누비고 다닙니다. 바로 그즈음 한라산 기슭 중산간 지역에, 누구나 한 번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에 빠져들기 마련인 야생화가 피어납니다. 이름하여 남바람꽃. 2월 중순 제주도와 여수, 울산, 변산 등지에서 피기 시작한 변산바람꽃을 필두로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들바람꽃, 태백바람꽃, 홀아비바람꽃, 세바람꽃, 나도바람꽃, 회리바람꽃, 숲바람꽃 등 남한에 자생하는 10여 종의 ‘바람꽃’ 가운데서 가장 예쁘다는 평을 받는 그 남바람꽃이 바람꽃 향연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려는 듯 연분홍 꽃잎을 펼치는 것이지요.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바람꽃 종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남바람꽃. 4~5월 20~30cm까지 자라는 꽃줄기 하나에 꽃 1~3개가 달리는데, 여타 바람꽃들과 마찬가지로 실제 꽃잎은 없고 1cm 정도의 꽃받침잎 5~7개가 퇴화한 꽃잎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꽃받침잎이 진한 연분홍빛을 띠기 일쑤여서 야생화 애호가들로부터 남다른 사랑을 받는 것이지요. 그것도 앞면은 흰색이지만 뒷면이 핑크빛으로 물들기에, 젊은이건 나이 지긋한 노인이건 체면 따위는 던져버리고 땅바닥에 털썩 엎드려 남바람꽃의 환상적인 뒤태 매력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바람꽃으로 거의 통일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도감에는 남방바람꽃으로 올라 있는 등 이름을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연유인즉슨 1942년 전남 구례에서 처음 발견돼 남바람꽃이란 이름을 얻었으나 이후 잊혔다가, 60여 년 만인 2006년 제주도 한라산 자락 해발 550m 숲에서 다시 발견되면서 일부 언론에 미기록종 ‘한라바람꽃’으로 보도되고 이듬해 ‘제주미기록종: 남방바람꽃’이란 논문으로 정식 보고되는 등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후 경남 함안과 전북 순창, 그리고 1942년 식물학자 박만규(1906~1977) 선생이 ‘조선의 남바람꽃’을 처음 발견했다는 구례군 등 세 곳에서 자생지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처음의 남바람꽃으로 원위치했습니다.
Where is it?
“분포: 일본/전남 구례군과 전북 순창군, 제주도”.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에 나오는 남바람꽃에 대한 간략한 정보다. “최근에 자생지가 알려졌으며, 지속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위의 설명처럼 자생지는 몇 군데에 불과하다. 그중 64년 만에 남바람꽃의 존재를 다시 알린 제주도의 자생지는 제주시 애월읍의 한 공동목장 인근 숲. 문제는 이 중산간 공동목장이 팔리거나 개발되면 제주도 내 단 한 곳뿐인 자생지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근원적인 자생지 보전 대책이 요구된다. 전북 순창군의 자생지는 회문산자연휴양림 안에 있으며 울타리를 치고 관리하고 있다. 몇 해 전 야생화 동호인들이 찾아낸 구례군 내 자생지는 박만규 선생이 60여 년 전 구례군에서 처음 발견했다는 장소와는 다른 지역으로 추정됐다. 이는 더 많은 자생지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밖에 국생종에 언급되지 않은 제4의 자생지가 경남에 있다. 함안군 대산면 낙동강변 숲속에 있는데, 현재 인근 주민이 군의 위임을 받아 울타리를 치고 보호하고 있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민태원(1894~19 35)이 남긴 저 유명한 수필 ‘청춘예찬(靑春禮讚)’의 첫머리입니다. 1929년 6월 월간 잡지 ‘별건곤(別乾坤)’ 21호에 발표된 지 만 9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하는 이 명문장을 흉내 낸 한 구절로 2019년 3월 야생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3월, 가만 읊조리기만 하여도 봄이 온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그렇습니다. 3월의 시작과 함께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봄의 한복판에 파란 싹이 돋고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꽃이 핍니다. 그리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여러 야생화 중 하나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산자고입니다. 한자로는 뫼 산(山)에 자애로운 자(慈), 시어머니 고(姑)자를 쓰니, ‘자비롭고 자애로운 시어머니’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산에 들에 자라는 풀포기 하나, 나무 하나 그 모두가 꽃이 피면 야생화요, 열매이든 뿌리이든 잎이든 줄기이든 적정하게 처리해 활용하면 하나같이 효험이 큰 약재이니 그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건만, 유독 이름 안에 자애롭다는 뜻을 새겨 넣었으니 그 연유가 자못 궁금할 것입니다.
먼 옛날, 어느 산골에 마음씨 고운 노모가 외아들과 살고 있었다. 늙은 어머니를 부양하는 가난한 산골 총각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처녀가 없어 어머니는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시름이 깊어만 가던 어느 봄날, 밭일하던 늙은 어머니 앞에 짐보따리를 든 처녀가 나타났다. 그 처녀는 산너머에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죽으면 산너머 외딴집에 시집을 가라”는 유언을 남겼단다. 이렇게 짝지어진 아들과 며느리를 볼 때마다 노모는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고 아들과 며느리도 효성을 다했다. 그러던 이듬해 초봄, 며느리의 등에 아주 고약한 등창이 생겨 여간 고생이 큰 게 아니었다. 가까이 의원도 없어 애태우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등창을 치료할 약재를 찾아 산속을 헤매었는데, 어느 날 양지바른 산등성이에서 별처럼 생긴 작은 꽃을 발견했다. 이른 계절에 핀 흰색의 꽃이 신기해 살펴보던 중 며느리의 등창이 생각나 그 뿌리를 캐다가 으깨어 상처에 붙여주니, 고약한 등창이 며칠 만에 감쪽같이 치료됐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산자고(山慈姑)라고 불렀다.
산림청에서 지난해 가을 우리나라 식물명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소개한 이야기의 하나입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산자고가 한의원에서 종기나 부스럼, 임파선염 등을 치료하는 데 매우 유용한 약재로 쓰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Where is it?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 애틋한 사랑과 자비의 전설을 지닌 산자고는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남한 전역에서 두루 자란다. 다만 제주도를 비롯해 남서부 섬·해안 지역의 경우 ‘봄의 전령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이르면 2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반면 경기·강원 등 중부지방에서는 4월 이후에나 개화한다. 남·서해안의 거의 모든 섬이 산자고가 풍성하게 그리고 일찍 피는 자생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통영 미륵산과 서해 신시도의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언덕에 핀 산자고가 인기가 높다. ‘야생 백합’이라고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다른 봄꽃에 비해 꽃의 크기가 커서 활짝 꽃잎을 열어젖힐 경우 꼿꼿이 서지 못하고 풀밭에 비스듬히 누운 듯한 자세를 취한다. 꽃의 형태는 다르지만, 잎이 비슷해 까치무릇이라고도 불린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독기 탓에 추위에도 옷을 벗게 되나 (衣緣地瘴冬還減)
근심이 많으니 한밤 술은 되레 느네 (酒爲愁多夜更加)
그나마 나그네 시름 덜어주는 한 가지 (一事纔能消客慮)
동백이 설도 되기 전에 활짝 피었네 (山茶已吐臘前花)
1801년 겨울, ‘조선 최고의 지식인’ 다산 정약용이 중년에 막 접어든 39세 나이에 ‘하늘에 날리는 눈처럼 북풍에 떠밀려(北風吹我如飛雪)’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27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수찬, 좌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지내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정조 급사 후 천주교도로 몰려 저 멀리 남녘땅까지 쫓겨난 것이지요.
죄인 신세가 된 다산을 그 누구도 반기지 않았으나, 다행히 강진에서 한 노파가 안쓰럽게 여겨 집을 내주고 밥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다산은 당시 ‘강진에 내려와 밥집에 기거하던 시절(南抵康津賣飯家)’의 심경을 ‘객중서회(客中書懷)’란 글로 남겼는데, 한겨울 붉게 핀 동백꽃이 곤궁했던 유배생활에서 마음의 큰 위안이 되었나봅니다. 지금도 겨울이면 매서운 강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경기도 남한강가에서 나고 자란 다산에게는 그야말로 설 명절도 지나지 않은 동지섣달에 붉게 핀 동백꽃이 생소하면서도 각별한 볼거리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로부터 39년 뒤인 1840년 겨울, 제주도로 유배된 ‘조선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정월 그믐께부터 3월 사이 제주도 마을마다 동네마다 핀 수선화를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고 격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말처럼 ‘조선 최고의 지성’ 다산과 추사 선생에게는 ‘겨울꽃’ 동백과 수선화가 바로 피안의 창이 아니었을까요? 이렇듯 동백은 겨울철에 꽃이 피는 것으로 유명한데, 시인 박홍점은 ‘동백꽃’이란 시에서 “봄부터 맺었던 동백이/ 하필 설날 아침에 터졌다/… 따순 동백꽃 두 송이/ 아직 천방지축인 아이들과 둘러앉아/ 왁자지껄 세배를 한다”며 다산과 마찬가지로 동백이 설을 전후한 시기에 꽃망울을 활짝 연다고 꼬집어 이야기합니다.
동백(冬柏)이란 한자 이름은 한겨울에도 잣나무나 측백(側柏)나무처럼 잎이 푸르다고 해서 생겨났는데,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니 잣나무보다 낫다(亦能開雪裏 細思勝於栢)”면서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다(冬栢名非是)”고 일찍이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다산이 말한 산다(山茶)가 곧 동백인데, ‘본초강목’에는 산다와 산다화(山茶花)로 기록돼 있습니다. 학명의 종명에 일본을 뜻하는 ‘자포니카(japonica)’가 쓰일 만큼 일본 전역이 주요 원산지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타이완에서도 폭넓게 자생하는, 동아시아의 대표 식물이라는 게 식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동백나무는 대표적인 조매화(鳥媒花)입니다. 벌·나비가 거의 없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 꽃이 피기에, 곤충보다는 새에 의지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지요. 특히 새는 사람의 눈처럼 붉은색을 붉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백꽃은 이런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붉게 더 붉게 타오른다고 합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농밀한 꿀을 빨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 새인데, 그 이름도 동백나무에서 따왔습니다.
Where is it?
제주도를 비롯해 오동도와 거문도 등 남해 섬과, 동으로는 울릉도, 서로는 대청도와 백령도 등 섬 지역에서 특히 많이 자란다. 내륙에서는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서천의 마량 동백나무숲, 부산의 동백섬 등이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하다. 이름난 군락지는 아니어도 충청 이남의 웬만한 산사(山寺) 주변에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걸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방화림(防火林)으로 활용되어온 결과로 추정된다. 제주의 올레길은 한겨울 동백꽃을 완상하는 최고의 길 중 하나다. 제주의 숲과 골짜기, 마을과 골목을 찬찬히 걷다 보면 키가 10m 넘는 자생 동백나무는 물론, 수십에서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룬 군락지, 나지막한 현무암 담장 위에 올라앉은 동백나무 등 다양한 형태의 나무와 붉은 꽃송이를 만날 수 있다. 강진의 다산초당 옆 작은 연못가에서도 고목은 아니어도, 수십 년 된 동백나무에 핀 꽃 몇 송이를 만날 수 있다.
기해년(己亥年) 새날이 밝았습니다. 오행(五行)에서 ‘기(己)’ 자는 흙의 기운을 표현하며 색으로는 노란색이기에, 기해년은 곧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라고 합니다. 각별하고 신명 나는 일만 벌어질 것 같은 황금돼지해를 맞아, 노란색 야생화가 황금색 술잔을 높이 들고 원숙미(圓熟美)를 더해가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애독자들에게 경배하며 새해 인사를 건넵니다.
“만복을 받으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지만 엄동설한의 추위는 여전한데 무슨 꽃 타령이냐고 타박하실 애독자들께는 선조들의 옛 말씀을 전합니다.
“동짓날 밤 자시부터 새봄, 새해가 시작된다.”
즉 매년 12월 22일이나 23일, 가장 짧았던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 밤 자시(밤 11시~새벽 1시)에 이미 새봄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봄의 전령사’ 한두 송이쯤은 새해와 함께 핌 직하다고 말입니다. 북풍한설 중에 잉태되어 겨울의 한복판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야생화가 알고 보면 하나둘이 아닙니다. 동백꽃이 그중 하나이고, 매화가 또 다른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런가 하면 수선화·갯국도 뒤질세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복수초도 노란색 꽃술을 반짝이며 귀티 가득한 금잔을 하얀 눈밭 위에 살짝 올려놓습니다.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하는 복수초란 이름 외에 원단화(元旦花)나 원일초(元日草)라고도 불리는데, 원단·원일이란 곧 새해 첫날을 의미하니 새해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인식되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강원도 동해시 냉천공원 산비탈에는 제주도보다도 이른 1월 초부터 복수초가 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석회암 동굴지대의 따뜻한 지형이 그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와 냉천공원을 빼고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곳은 완도수목원. 1월 중순이면 복수초가 황금색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1보가 전해집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500여 km 떨어진 경기도 연천 지장산에서는 일러야 2월 말에나 복수초가 피니, 결국 봄은 하루 15~20km의 속도로 아장아장 북상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른 곳에선 1월 초 피기 시작하는 복수초가 경기·강원의 깊은 산에선 5월 초까지도 피니, 개화 기간이 5개월 가까이 됩니다. 참으로 긴 기간 피고 지는 봄 야생화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얼음과 눈 속에서 핀다는 뜻의 얼음새꽃이나 눈색이꽃이란 예쁜 우리말로도 불리는 복수초는 마치 형광 물질을 뿜어내는 듯 강렬합니다.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 해서 설련(雪蓮)이라고도 부릅니다. 실제 활짝 핀 복수초 꽃 속의 온도는 바로 옆 50cm 떨어진 곳보다 7℃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Where is it?
학명 중 종명 아무렌시스(amurensis)는 헤이룽강(黑龍江)이라 부르는 러시아 아무르 강변에서 처음 채집되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시베리아와 중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남단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폭넓게 자생한다. 다만 꽃과 잎, 가지 등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서너 종으로 나뉘는데, 제주도에 자생하는 꽃은 잎이 가늘게 갈라진다고 해서 세(細)복수초로 불린다. 남부와 서해 도서지역의 복수초는 가지복수초라 부르는데, 경기·강원 등지에서 만나는 복수초에 비해 꽃의 크기가 갑절 이상 크고 화려하다. 꽃이 필 때 잎도 무성하게 자란다. 꽃 크기가 아주 작은 애기복수초도 있다. 중·북부지역의 높고 깊은 산에서 난다. 복수초, 애기복수초는 잎이 나기 전 꽃이 먼저 핀다.
켜켜이 쌓인 해안 절벽이 오후 햇살이 들어오자 보랏빛으로 반짝입니다. 늘 서쪽 바다를 향해 있는 탓에 제아무리 찬란한 일출이라도 남의 떡 보듯 아예 거들떠보지 않지만, 해가 중천을 지나 뉘엿뉘엿 서편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누구보다 활짝 가슴을 열고 해바라기에 열중하는 변산반도 바닷가의 층층(層層) 단애(斷崖). 깎아지른 절벽에 보랏빛이 번지는 걸 보고 처음엔 석양빛에 붉은 물이 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곰곰 살펴보니 오랜 세월 강한 바람과 바닷물에 깎이고 깎여 형성된 퇴적암에 번지는 색이 석양빛과는 다릅니다. 노루 꼬리만큼 짧은 오후 햇살이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을 붉게 달구는 건 맞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수직 절벽 곳곳에 촘촘히 박힌 자주색 꽃송이가 눈부신 석양빛을 온몸으로 받아 찬란한 빛을 발하며 해안 전체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느 해 못지않게 다사다난했던 2018년 한 해도 이제 저물어갑니다. 12월이면 많은 사람이 장엄하게 지는 해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겠다면서 서녘 바다를 찾습니다. 서해 3대 낙조 명소의 하나라는 솔섬 등이 있는 변산반도도 제법 찾는 이가 많습니다.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로 시작하는 안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이란 시가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문득 변산반도를 찾는 발걸음도 생겨났습니다. 시인은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지 밥 먹다가 석삼년 만에 제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라며 꼬드깁니다. 그러면서 변산해수욕장이나 모두가 꼽는 변산반도의 최고 비경인 채석강에는 잠시만 머무르라고 짐짓 어깃장을 놓습니다.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그런데 수직 단애가 수천 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것 같다는 채석강(彩石江)과 붉은색 암반 및 절벽으로 유명한 적벽강(赤壁江) 등의 변산반도 해안 절벽은 지질학적 명승지일 뿐 아니라, 특산식물인 변산향유의 유일한 자생지여서 ‘한 해 야생화 탐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꽃쟁이’들도 불러 모읍니다. 변산향유는 2012년 꽃향유와 가는잎향유, 애기향유, 좀향유 등 기존의 향유속 유사종과는 구별되는 신종으로 발표되었으나, 아직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오르지 않은 종입니다.
꽃향유(香油)는 줄기는 물론 가지 끝에 칫솔처럼 한쪽으로 뭉쳐서 피는 꽃이 아름답고 식물체 전체에 향기로운 정유(精油)가 함유되어 있다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는데, 변산향유는 꽃향유를 닮았지만 분자생물학적 분석 결과 몇몇 차이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먼저 몸집이 꽃향유에 비해 작을 뿐 아니라, 줄기가 녹색의 꽃향유와 달리 자주색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넓은 달걀형 또는 타원형으로 마주나는 잎도 가죽처럼 두껍고 윤기가 나는 혁질(革質)이어서 초질(草質)인 꽃향유와 비교가 됩니다. 높이 30cm 안팎의 줄기나 잎자루 등에 털이 전혀 없이 밋밋한 것도 큰 차이입니다. 자생지도 크게 다릅니다. 꽃향유는 전국 어디서나 숲 가장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변산향유는 변산반도 해안 절벽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향유속 다른 유사종들과 마찬가지로 가을에 꽃이 피지만, 늦가을인 11월까지도 꽃을 볼 수 있어 앞서 언급했듯 ‘한해 마지막 꽃 탐사 대상’으로 꽃쟁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Where is it?
변산에서 처음 발견된 꽃향유의 일종이라는 이름답게, 변산반도가 자생지다. 학명 중 종소명 byeonsanensis는 자생지가 바로 전북 변산임을 말해준다. 신종 발표 이후 추가 연구 조사 결과가 없어 변산반도 이외 자생지는 알려진 바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큰 자생지는 변산반도 안에서도 격포항 인근 해안 절벽이다. 10~11월 격포항 방파제 내 수직 절벽에 자생하는 변산향유는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그 외 지역은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시각에 맞춰 찾아가야 한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밖에서 노닐기보다는 따뜻한 집 안에서 즐길 만한 것을 찾게 된다. 뜨개질로 목도리나 장갑을 만들거나, 책을 읽으며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프랑스 자수, 보태니컬 자수, 꽃 자수 등 다양한 형태의 자수가 주부들의 취미로 사랑받고 있다. 아기자기한 야생화 자수와 더불어 풀꽃 시인 나태주의 아름다운 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야생화 자수, 시가 되다’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야생화 자수, 시가 되다’ 글·자수 김주영, 시 나태주 자료 제공 웅진리빙하우스
한 땀: 야생화 자수, 시와 만나다
책의 첫 장인 ‘한 땀’에서는 ‘개망초’, ‘수수꽃다리’ 등 나태주 시인의 대표 시 30여 편과 김주영 작가의 야생화 자수 작품을 나란히 보여준다. 수록된 시 중
9편은 시인이 책을 위해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어는 알록달록한 색실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야생화와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중간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제 꽃 사진도 엿볼 수 있다. 촘촘한 실의 짜임과 섬유의 질감을 살린 이미지가 자수의 매력을 더욱 잘 드러낸다.
두 땀: 야생화 자수, 일상이 되다
한복이나 보자기 외에도 다양한 소품에 야생화 자수를 응용해볼 수 있다. 책의 두 번째 장에서는 일상에서 적용해볼 만한 자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손주를 위한 배냇저고리를 짓거나 셔츠를 리폼할 때 올망졸망한 자수를 놓아 포인트를 줄 수도 있고, 리넨으로 집 안에서 쓸 룸슈즈나 앞치마 등을 만들며 좋아하는 패턴을 넣어도 좋다. 평범한 소품에 야생화 자수를 더한 꽃송이 티매트나 매화다포, 장미파우치 등은 선물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세 땀: 처음, 자수를 시작하다
야생화 자수는 손재주가 좋거나 세심한 성향인 이들에게 적합하리라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작품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수정 작업도 가능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즐길 만한 취미다. 마지막 장에서는 자수에 도전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준비 과정을 정리했다. 재료와 원단을 고르는 방법부터 자수가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을 다룬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직접 마음에 드는 야생화 도안을 그리고 수를 놓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 plus 1
나태주 시인의 시와 함께 나온 자수 작품들의 도안과 그에 대한 설명이 부록으로 담겼다. 먼저 색감을 알 수 있도록 컬러 일러스트로 크게 작품을 보여준다. 그 아래 실선만 따로 그려 러닝 스티치, 롱앤드쇼트 스티치, 체인 스티치 등 스티치 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달았다. 완성 작품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실제 자수 이미지를 작게 첨부하는 등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 plus 2
자연에서 만난 야생화를 보고 자수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겠지만, 책에서 보여주듯 시 한 편이 영감을 주기도 한다. 풀꽃시인 나태주의 신작 ‘나태주 육필시화집’에는 그가 직접 쓰고 그린 시와 그림이 어우러져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손끝에서 자수가 피어날 준비를 하는 듯 하다. 꼭 자수 아이템을 찾지 않더라도 찬찬히 시집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plus 3
책에 꼼꼼하게 설명이 잘 나왔지만 손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간혹 이해가 덜 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럴 땐 동영상의 힘을 빌려보자. 구독자 4만2000여 명의 선택을 받은 유튜브 채널 ‘뭐든지 바느질 프랑스 자수’에는 2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자수 관련 동영상이 있다. 자수의 기초 매뉴얼부터 다양한 소품 활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가을의 끝 11월입니다. 이제 올해 달력도 마지막 한 장이 남았을 뿐입니다. 20대는 시속 20km로, 50대는 그 두 배가 넘는 50km로 세월이 간다더니, 나이 탓일까? 숨 가쁘게 달려온 2018년 한 해도 어느덧 역사의 저편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화사하게 물들었던 단풍이 흩어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즈음이면, 격동의 한 시기가 끝나고 그다음이 시작될 즈음이면 유난히 생각나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의 초입이라는 9월까지 고산 풀밭을 지키는 닻꽃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파란 하늘에 뜬 낮달을 향해 항해하는 듯 닻 모양의 꽃을 하늘 높이 매단 닻꽃. 닻을 올렸으니 분명 말달리듯 진군(進軍)하는 분망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 반대인 차분함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왜일까. 아마도 하늘에 뜬 그 닻이 먼 길 나서려 막 올려진 게 아니라, 긴 여정 뒤에 찾은 쉼터에 내려질 닻으로 여긴 탓이겠지요.
꽃 모양이 배를 멈춰 세울 때 사용하는 닻을 닮았다 해서 닻꽃이란 이름을 얻었다는데, 실제로 꽃을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떡일 만큼 실감이 납니다. 식물체의 높이는 10~60cm. 연한 황록색으로 피는 꽃은 화관이 4갈래로 갈라져 아래쪽으로 길이 5~7mm의 원통형 뿔처럼 사방으로 뻗는데, 그게 배를 정박(碇泊)시킬 때 쓰는 갈고리 모양의 닻을 쏙 닮은 것이지요. 학명 중 종소명 ‘코르니쿨라타(corniculata)’도 바로 ‘작은 뿔 모양의’라는 뜻으로 외형을 잘 표현했습니다. 이런 생김새를 반영한 듯 ‘어부의 꽃’이란 꽃말을 갖고 있습니다. 봄철 피는 삼지구엽초도 꽃 모양이 매우 비슷해 닻풀이란 별칭으로 불립니다.
닻꽃은 그러나 2012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돼 쭉 보호·관리 대상에 포함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보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화는 아닙니다. 7~9월 햇볕이 잘 드는 몇몇 높은 산의 풀밭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꽃을 피우는데, 이는 닻꽃이 북쪽에 고향을 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임을 말해줍니다. 실제 2015년 7월 중순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하는 안가라 강변에서, 그리고 올해 8월 백두산 인근 습지에서 누구의 각별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저 홀로 피어 있는 닻꽃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동토(凍土)의 시베리아와 백두산이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본향이라는 말을 실감한 셈이지요. 한두해살이인 만큼, 한두 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뿌리까지 말라 사라집니다.
어쨌든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누구든 처음 보는 순간 ‘아하!’ 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꽃 닻꽃. 높은 산 탁 트인 풀밭에 뿌리를 내린 닻꽃이 ‘천지간 바람 잘 날 없는 땅에서’ 수십 년간 치열하게 살아온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에게 깊어가는 가을에 일갈합니다. ‘바쁘게 경쟁하며 앞만 보고 달리던 삶에서 벗어나, 진정 자신을 위한 쉼터를 찾아 정주(定住)하라’고….
Where is it?
남한의 대표적인 고산인 설악산과 지리산에서도 자란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화악산(사진)에 비교적 많은 개체가 자생해 수도권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외 강원도 대암산과 한라산에도 자생하는데, 최근 한라산에서는 그 수가 크게 줄어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바다에 빨간 단풍이 들었네요.
바다에 빨갛게 불이 났군요.
그러나
119 소방차 부르면 절대 안 돼요.
우리 그냥
한없이 불구경하기로 해요.
꽃 찾아 산을 오르고, 계곡을 헤매고, 들로 나가고, 강에도 가도, 물속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바닷가에도 갔습니다. 가서 바닷가 벼랑 위에 핀 둥근바위솔도 만나고 해국도 보았습니다. 석호(潟湖) 가장자리 모래톱에 핀 갯봄맞이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다에 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 한가운데 핀 꽃들은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가을날 단풍보다 더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물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야말로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외마디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꼭 1년 전인 지난해 10월호에 고창 선운사와 함평 용천사, 영광 불갑사에서 열린 진홍의 꽃무릇 축제를 소개하면서 가을이 가기 전 그 장관을 놓치지 말라고 했는데, 서·남해안 갯벌을 커다랗게 수놓는 해홍나물의 붉은 단풍 역시 놓쳐서는 안 될 가을의 축복이라 말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습니다.
갯벌은 오랫동안 간척과 매립 등 개발의 대상이었으나, 최근 들어 다양한 생물의 보물창고요 자연재해를 막는 스펀지, 바다와 지구를 지키는 허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서·남해안에는 작지 않은 규모와 양질의 갯벌이 남아, 바닷물의 소금기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염생식물(鹽生植物)들이 강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바다의 붉은 나물이라는 뜻의 해홍(海紅)나물, 그리고 해홍나물의 사촌이라 일컬을 만큼 잎이나 줄기 등 전초가 매우 유사한 칠면초와 나문재, 방석나물, 퉁퉁마디, 수송나물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연두색 싹이 자라서 짙은 자주색으로 변하는 가을까지 이파리 등 전초의 색이 일곱 차례나 변한다고 해서, 아니 꼭 일곱 차례는 아니어도 칠면조(七面鳥)처럼 여러 번 바뀐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은 칠면초나 해홍나물은 가을이 되면 거대한 군락이 끝없이 펼쳐져, 드나드는 바닷물마저 물들일 듯 붉게붉게 타오릅니다. 물론 우리 눈에 들어오는 붉은색은 식별도 되지 않을 만큼 자잘하게 피는 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줄기와 잎 등 식물체 전체가 단풍이 들듯 변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참, 지난해 가을 필자의 블로그에 해홍나물과 칠면초가 뒤섞인 군락이 붉게 물들어가는 서해 작은 섬의 정경을 올리자 ‘내사랑’이란 아이디를 가진 이가 사진보다 멋진 댓글을 달았기에 글 앞머리에 인용, 소개했습니다.
Where is it?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에서 전남 순천만에 이르기까지 서·남해 바닷가에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갯벌(또는 개펄)이 모두 해홍나물과 칠면초 등 염생식물의 자생지다. 명아주과 나문재속 한해살이풀인 해홍나물과 칠면초는 같은 갯벌에 섞여 자라기도 하는데, 해홍나물이 칠면초보다 키도 크고 잎도 긴 편이다. 해홍나물 군락지는 2017년 6월 석모대교 개통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서울에서도 닿을 수 있는 석모도 해안(사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강화도 선두리 포구나 영종도 공항 가는 길에 있는 운염도에서도 나문재, 칠면초와 함께 볼 수 있다. 전남 순천만은 대규모 칠면초 군락을 만날 수 있는 갯벌로 이름이 높다. 전남 신안 증도의 소금 생산지인 태평염전도 칠면초 사진 촬영지로 인기다.
꽃에서, 어떤 이는 생명의 환희를 본다. 어떤 이는 상처 어린 역정을 느낀다. 원주 백운산 자락 용수골로 귀농한 김용길(67) 씨의 눈은 다른 걸 본다. 꽃을 ‘자연의 문지방’이라 읽는다. 꽃을 애호하는 감수성이 자연과 어울리는 삶 또는 자연스러운 시골살이의 가장 믿을 만한 밑천이란다. 꽃을, 자연을, 마치 형제처럼 사랑하는 정서부터 기르시오! 귀촌·귀농 희망자들에게 전하는 김 씨의 메시지란 대략 그렇다.
김용길 씨는 산수경관 기차게 삼삼한 곳에 산다. 도시의 ‘난리 블루스’를 뒤로 하고 이곳에 들어온 건 10여 년 전. 비유컨대, 그간 적응하고 생존하느라 코피를 닷 말쯤 쏟은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악물어 견디고 버티고 솟구쳐 씽씽한 활로를 찾았다. 성취한 게 많다. ‘성공한 귀농인’이라 소문났다. 처음 이 산중에 입장할 때 김 씨 내외는 빈손이었다. 아니, 빈손 정도가 아니라 서럽게도 빚 얻어 귀농했다. 이 얘기는 좀 있다 하기로 하고, 흠, 그가 자주 입길에 올리는 꽃 얘기부터 들어볼까?
“가령, 어젯밤 제 농장에 강도란 놈이 숨어들었다 칩시다. 숨고 보니 꽃들이 지천이지 않겠어요? 문득 놀랍지 않겠어요? 그 순간 강도의 가슴엔 천사 같은 생각이 밀려들 겁니다. 꽃의 위력이 이와 같아요. 제가 여길 와 마당에 꽃양귀비를 잔뜩 심었어요. 그걸 싹눈으로 해 ‘용수골 꽃양귀비 축제’라는 마을 제전으로 발전시켰어요. 축제 땐 인파가 넘칩니다. 마을의 농산물 판매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어요. 꽃으로 거둘 수 있는 홍보 효과, 경제 효과가 이처럼 커요. 그 무엇에 앞서 꽃으로 대변되는 자연에 관한 사랑, 자연이 몸에 붙은 체질, 이런 게 있어야 시골생활을 진정으로 영위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꽃을, 자연을, 그것들의 본받을 만한 힘과 미덕을 얘기하는 이 사람은 군인 출신이다. 육사를 나온 그는 군에서 말처럼 내달렸다. 보안사(현 기무사)에서 군대 말년을 보내다 2006년에 대령으로 전역했다. 요즘 요상한 ‘기무사 계엄령 문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김 씨가 보는 군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군의 정치화가 문제입니다. 그 무엇에건 진력하는 기질로, 군대에서도 저는 죽기 살기로 열심히 뛰었어요. 정치군인 비슷하게 흐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더라고. 기본적으로 정치 성향과 멀고, 게다가 비판적이기도 해 결국은 발언권 센 놈들에게 튕겨났죠. 그 늑대 소굴에서 벗어나고 싶어 중령 시절부터 전역을 신중하게 숙고했어요.”
“그 옛날, 제가 입대하던 첫날, 단상에 오른 정훈 장교에게 들은 발칙한 연설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너희들은 이 시간 이후 인간이 아니다!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언제라도 잡아먹을 수 있는 돼지일 뿐이다!’ 군이 비민주적이고 시대에 뒤처지는 집단이라는 인상은 지금도 여전해요.”
“한마디로 영혼 없는 집단입니다. 탈인간화, 몰인간화한 조직이죠.”
“군대에 식상했다는 것, 그게 귀농의 직접적인 계기?”
“귀농 동기가 단순하진 않아요. 제가 야생화도감에 나오는 400여 종의 식물을 모조리 외울 정도로 자연을 좋아합니다. 시골살이에 적당한 성향의 소유자죠. 늑대처럼 오염된 인간들을 피해,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에 살며 어려서부터 좋아한 그림이나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자면 일단 시골에 내려가 사는 게 답이었어요.”
원주민에게 멱살 잡히기도
김 씨는 군에 있을 때부터 그림 습작을 땀 흘려 했다. 마치 감옥을 사는 자가 창살 너머로 들어오는 밤하늘의 영롱한 별을 바라보듯 절박한 심정으로. 전역과 동시에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 시골에 들어와 미술관부터 지었어요. 작지만 소중한 꿈의 공간이죠. 그런데 말이죠, 귀농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시골생활을 작정했으나 갈 곳이 없더라고. 제가 원래 가난한 농가 출신입니다. 부모님께서 고생고생하며 농사에 전념하셨지만 가난을 면치 못했어요. 제가 육사를 간 것도 배가 고파서였어요. 그 궁색했던 고향으로 낙향하고 싶었으나 이미 도시화가 진행돼 가당치 않은 현실이었죠.”
“흔히 터 잡기부터 애환의 드라마가 펼쳐지죠.”
“터를 마련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가계 상황이 엉망이었어요. 전역하고 보니 빚이 산더미 같더라고. 군인 남편의 진급을 위해, 아이들은 물론 시어머니와 시동생까지 돌보느라 그간 아내가 나 몰래 이리저리 자금을 융통해 썼던 겁니다.”
“괴롭고도 헌신적인 내조였군요.”
“돈 문제로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아 군 생활에 차질이 오면 어쩌나, 그런 우려를 한 아내 나름의 궁여지책이었지만, 하마터면 이혼할 뻔했죠. 연금 타서 이자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더라고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시골에 내려가되 일단 재테크로 조속히 돈부터 벌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용케 성공했어요.”
“어떻게? 무엇으로?”
“우선 은행과 친척을 통해 7000만 원을 빌렸어요. 그러곤 시장경제의 약점인 부동산, 그걸 뚫고 들어가 보자는 작정을 하고 부동산 재테크 관련 책들을 독파했죠. 그런 뒤 여기저기 땅들을 알아보다 이곳 땅 1400평(4400m²)을 사들였는데 이 땅이 원래는 값싼 맹지였어요. 귀농 금기사항 제1칙은, 맹지는 절대 피하라! 그러나 저는 이판사판 한순간에 질렀어요. 이후 온갖 험한 고생을 감수해 기어이 길을 냈죠. 그러자 땅값이 벼락처럼 뛰기 시작합디다.”
인생이란 기묘한 서커스. 요령과 용기에 인자한 천사의 협찬까지 겹치면 후루룩 팔자가 바뀐다. 김 씨가 맹지에 길을 내자 인근에 고속도로 IC가 생기고, 혁신도시니 기업도시니, 요란한 개발바람이 불더란다. 햐, 현재 20배 가까이 지가가 상승한 상황. 그렇다면 맹지 투자란 은근히 매력적인 종목인가? 독자님들께선 유념하시라. 아니란다. 절대 금물이라는 거다. 김 씨 자신의 케이스는 워낙 기묘하고도 특별한 성공적 일탈일 뿐이라는 거다.
빠른 두뇌 회전, 상류로 거침없이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생동하는 촉, 과감한 깡, 집요한 근면성, 아마도 이런 것들이 김 씨의 밑재산일 게다. 그는 군 복무를 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녔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논문도 썼다. 생판 객지인 시골에 살면서는 숱한 파란을 겪었다. 마을 원주민에게 멱살 잡히는 식의 드잡이도 흔했으나 다 이겨냈다. 덮쳐오는 난관마다 용을 쓴 엎어치기와 돌려차기와 허리치기로 끝내 돌파한 걸로 보인다.
‘낭만을 가져라!’
김 씨는 늘 바쁘다. 일테면, 수시로 귀농·귀촌 교육장에 강사로 불려 다닌다. 강의료 수입만 연 1000만 원에 이르기도 했다지. 귀농 선수 다 됐다. 작물은 내내 블루베리를 기른다. 이미 한물간 걸로 소문난 블루베리를 여전히 끌어안고 있다. 후다닥 작물전환을 왜 안 하지?
“블루베리 시장성은 아직도 무궁무진해요. 전성기는 지났다지만 기술력을 발휘한다면 지금도 평당 6만 원은 나옵니다. 시골 농부들이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기술력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농사를 잘 짓는 게 아닙니다. 판로 개척에도 둔하죠. 귀농인들이 똘똘한 기술력을 보유할 경우 기존 농민들보다 승산이 큽니다. 주변 농가들의 블루베리 85%가 죽었을 때에도 제 농장의 블루베리는 싱싱하게 살았어요.”
“머리와 몸을 악착같이 써도 타산 맞추기 어려운 사업이 농업 아녜요?”
“농사꾼들은 이미 하층으로 몰렸어요. 시장경제의 딜레마죠. 난처한 우리 농촌의 현실을 고려할 경우, 사실 제가 교육장에서 양심적인 소리를 하기가 힘듭니다. 부동산 재테크로 성공한 입장에서 농사나 귀농을 권장한다는 건 사치스러운 얘기일 수 있어요. 축산이나 시설하우스 등 공장형 농업을 하는 사람들은 연간 1억 원 이상을 벌기도 하지만 일부에 불과해요. 근본적으로는 농업혁명이 필요합니다. 현 상황에서 우선은 기술 영농과 작물 브랜딩이 필요해요.”
“열악한 농업 구조에도 불구하고, 농업이란 가장 창의적이고 인간적인 사업일 수 있죠. 때로 저는, 고달플망정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농부를 만나 감동을 받곤 했어요.”
“농사란 자연과 더불어 자급자족하는 일입니다. 떳떳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살 수 있죠. 제가 귀농 이후 사람이 됐어요. 농사짓는 사람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요.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용서가 없는 자연에 순응해야 하기에. 겉으로는 겸손하지 않을망정 속으로는 겸손이 차오르는 걸 느낍니다.”
대체로 기억은 망각에 진다. 끝내 묻히지 않는 기억, 그중 아픈 기억은 한(恨)으로 응어리진다. 김 씨의 기억 속 앨범에도 한이라 할 만한 게 꽂혀 있으니, 성장기에 바라봤던 부모님의 가난과 고난의 참경이 바로 그것. 그의 귀농 배경이기도 하다.
“제 부모님은 평생 농부로 살며 평생 가난에 허덕였어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몸을 망쳐가며 일을 하고서도 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단 말인가, 내가 출세를 해서 농업 구조를, 제도를, 현실을 바꿔보자, 그런 생각이 많았어요. 그게 귀농 원동력인데요, 이 마을에 와서 보니 역시나 비참했어요. 농업 자체가 구조적으로 피폐한 현실이지만, 일단 우리 마을이라도 좀 방향을 틀어보자, 어떻게 해서든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힘을 보태보자, 그런 생각으로 꽃양귀비 축제를 비롯해 많은 마을사업을 주도해왔습니다.”
“어라,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 한다, 그런 반발이 없진 않았겠죠?”
“그간 멱살도 잡히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 욕도 먹고, 당신 때문에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누가 잘살게 해 달라 했냐, 별별 곤욕을 다 치렀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말도 안 되는 타협까지 해가며 마을을 바꾸기 위해, 주민들이 인정할 때까지, 그야말로 필사의 노력을 했어요. 부글부글 속에서 끓는 게 많았지만, 그 와중에 정이 들었어요.”
뜨겁거나 차갑거나, 그게 아닌 미지근한 건 난 싫어! 아마도 김 씨는 스스로에게 그리 외치며 사는 사람. 군문에서건 귀농한 시골에서건, 삶의 야생과 야전(野戰)의 스릴을 도발하거나 도전하는 인물. 이런 그가 ‘낭만을 가져라!’ 귀띔한다. 귀촌·귀농을 준비하는 시니어에게 말이다.
“돈 벌 계산보다는, 시골생활에 관한 총천연색 꿈을 꾸는 게 중요합니다. 얄팍한 꿈이 아닌, 간절한 꿈에서 강렬한 힘이 나오니까 말이죠. 그리고 시골에 가려면 시골 지향적 가치, 자연 지향적 가치부터 생각하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제 꿈은 자그만 목장 하나라도 만들고,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아직은 제대로 이루질 못했지만, 여전히 절실한 꿈이라 매너리즘 같은 것에 빠지진 않고 삽니다.”
나이 든 사람의 가슴엔 은연중 ‘자연’이 깃든다. 서러운 날들의 기억이 헹구어지며 시(詩)랄까, 그림이랄까, 발효한 감성의 문양이 서린다. 시골의 자연 속에선 한결 더 눅진하게.
김용길 씨가 주는 귀촌 준비 tip
❶ 노후 시골생활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분명하다. 중요한 건 충분한 준비. 돈과 땅과 집 문제에 치중하기 전에 인생을 보는 가치관부터 수정하는 게 필요하다. 시골 지향적, 자연 지향적 가치관을 가슴에 채워야 한다. 사람도 원래 자연의 하나이지 않는가.
❷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멘토를 만들자. 시골 목사, 공무원, 귀농인, 현지 농민 중에서 도움 받을 만한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자.
❸ 나 혼자만 잘살려는 생각을 버리고 원주민과 적극 어울려야 한다. 매사 조금만 양보하면 된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