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 새날이 밝았건만, 들뜨는 마음과 달리 몸은 온기를 찾아 문에서 멀어집니다. 창밖은 여전히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눈보라가 휘몰아칠 수 있는 겨울의 한복판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절에 ‘꽃 타령’이라니, 제정신이냐고 힐난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런 시기에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야생의 식물이 있습니다. 겨울 눈보라 속에서 야생화 동호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발길을 사로잡는 신비의 나무가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의 선물이 물론 꽃은 아닙니다. 꽃 못지않게, 아니 꽃보다 더 예쁜, ‘꽃의 결실’ 열매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가장 아름답게 불타는 단풍으로 물들여 아낌없이 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의 황금빛 열매가 찬란하게 빛나는 독야청청한 모습을 세상 밖으로 드러냅니다. 바로 꼬리겨우살이의 샛노란 열매입니다.
설악산과 소백산 등 심산유곡에서 드물게 자라는 희귀종 꼬리겨우살이가 강원도 영월의 산 정상부에 풍성하게 달렸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가지 끝에 치렁치렁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동물의 꼬리 같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꼬리겨우살이. 주렁주렁 늘어진 열매가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멋진 광경을 기대하며 산 초입에 당도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비포장 임도에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였습니다. 이왕 나선 길,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걸어서 올라가기로 합니다. 한 시간여쯤 오르니 이번엔 눈이 내립니다. 영하의 날씨에 사위는 적막한데, 바로 그런 겨울의 거친 날씨가 참으로 근사한 ‘설중화’(雪中花)를 선사합니다. 눈발이 거칠게 휘날리고 꼬리겨우살이의 열매가 파스텔 톤의 노란색 수를 놓는, 멋진 수묵담채화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겨울에도 잎이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해서 ‘겨울+살이>겨우살이’라 불린다지요? 다른 나무에 기생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국내에는 겨우살이 외에도 붉은겨우살이, 동백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등 다섯 형제가 자생합니다. 그런데 다른 종과 달리 꼬리겨우살이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잎이 있을 때는 자신도 광합성을 하는 반기생식물이지만 잎이 지는 겨울에는 전기생식물로 변합니다. 주로 밤나무나 참나무류의 가지에 기생하고요. 마주 나는 잎은 주걱 모양의 긴 타원형으로 길이 2~3.5cm, 너비 1~1.5cm. 꽃은 6월에 길이 3~4cm의 이삭 모양 꽃차례에 자잘한 녹색으로 드문드문 핍니다. 9월 옅은 노란색으로 맺는 열매는 겨우내 황금색으로 익어갑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설악산과 지리산, 제주도 등지에 분포한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최근 야생화 동호인들이 꼬리겨우살이를 보기 위해 찾는 곳은 조금 다르다. 꼬리겨우살이를 무단으로 채취해 약재 등으로 판매하면서, 알려진 자생지가 상당수 파괴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갈수록 희귀해지는 꼬리겨우살이를 아직도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는 홍천과 양양을 잇는 구룡령 옛길, 그리고 태백과 삼척을 오가는 문의재 터널 주변 등 강원도 내륙의 백두대간 줄기가 첫손에 꼽힌다. 그 바로 밑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소백산 일대에서도 한겨울 꼬리겨우살이를 관찰할 수 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이강선 교수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허리를 굽혀 요가 매트를 마는데 군데군데 흰점이 보였다. 낡았네. 하긴 오래됐지.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손톱만 한 혹은 그보다 더 큰 흰 조각들.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었다. 하얀 것이 떨어졌다. 실밥이 아닌데 집어 올렸다. 낮 열두 시의 햇살이 조각을 통과하지 못하고 비켜갔다. 비늘 같은데? 세로로 줄금이 간 불투명 비늘에 연한 노란색이 감돌았다. 시선이 발바닥으로 갔다. 노란 각질이 발바닥 전체를 덮고 있었고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특히 뒤꿈치에는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기억이 났다. 그때, 엄마의 허리를 누르고 있을 때, 손이 아프도록 힘주어 누르고 있을 때가 용인 아파트였다. 엄마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그 바람에 평생 감추고 있던 발바닥이 무방비 상태로 드러났다. 발바닥은 살빛이 아니었다. 노랗고 거뭇거뭇했다. 발바닥은 2mm 됨직한 각질로 뒤덮여 가뭄에 말라붙은 저수지 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발뒤꿈치는 마치 가시들이 톱니처럼 솟구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쓸어내리는 내 손을 찔렀다. 무좀, 몇 번 연고를 발라주면 될 것을… 1분도 걸리지 않는데….
엄마는 마지막 시간을 침대에 누워 계시다가 가셨다. 손과 발이 묶인 2년 2개월간, 매주 엄마를 보러 갔다. 횟수는 점점 늘어 이틀에 한 번, 이윽고 매일이 되었다. 팔을 내두르고 침대 난간을 두드리던 엄마는 마사지하는 동안은 얌전했다. 머리를 톡톡 두드려주면 시원한지 눈을 감으셨고 귀를 문지르면 얼굴을 찡그렸다. 콧줄 빼는 걸 막느라 끼워둔 장갑을 풀어 손을 마사지하고 손가락을 구부리면 “아파” 하고 소리를 쳤다.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언어중추 마비와 연하기능 마비로 엄마의 입은 말하고 먹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잃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움직일 수 없고, 대소변 처리도 못하고, 의사소통도 안 되고, 때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게 인간답냐고. 자식이 문안에 소홀했던 건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엄마가 낯설어서였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다워야 한다. 사랑을 줘야 하고 염려를 표현해야 한다. 엄마이니까, 엄마는 그저 줘야 하는 존재이니까.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면 인간다움을 잃는 것일까.
그러나 엄마는 인지능력이 분명히 있었다. 행복을 느끼는 전두엽도 활발히 작동했다. 아니라면 꽃을 보고 그리 기뻐하셨을까. 보여만 드리겠다고 허락을 받고 들여온 쑥부쟁이 꽃다발을 엄마는 빼앗듯 가져가셨다. 노란 감국과 흰 개망초, 오이꽃으로 만든 소박한 야생화 다발을 껴안고 도무지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비꽃, 백일홍, 코스모스, 나팔꽃도 좋아하셨다.
그러나 엄마가 가장 좋아한 꽃은 닭의장풀이었다. 아버지를 기억나게 하는 풀꽃이었다. 당뇨를 앓았던 아버지가 달여 드시던 꽃이었으므로.
그날도 엄마와 소풍을 갔다. 의사 허락을 받아 침대째 모시고 나가곤 했는데, 그날은 3층 정원이 아닌, 직원들이 구름다리라 부르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잠깐 엄마를 맡긴 다음, 비탈을 내려가 달맞이꽃과 닭의장풀을 꺾어왔다. 엄마는 더 크고 환한 달맞이꽃은 버려두고 닭의장풀을 받아 소중하게 가슴에 안았다. 병실을 떠날 때 보니 조그맣게 오그라든 풀꽃이 손안에 들어 있었다. 마치 기도하듯 가슴에 모은 손안에.
누가 엄마에게 인지 능력이 사라졌다고, 기억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돌봐주는 간호사에게, 간병인에게 “예뻐”라고 인사하는 이 노인이, 풀꽃을 보고 일곱 해 전 죽은 남편을 기억하며 딸이 준 꽃다발을 꼭 껴안고 있는 그 여인이, 인간답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발바닥은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매끈해졌다. 스타킹을 신으면 매번 올이 나갈 정도로 성이 나 있었는데 아기 발바닥처럼 말랑말랑해지고 부드러워졌다. 항생제와 영양제를 투여받으며 평생 함께했던 무좀에서 해방된 것이다.
발바닥의 흰 각질들은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던 엄마의 고달픔이었을 것이다. 주어진 무게를 감당하느라 힘겨웠던, 자신의 이름도 쓰기 어려워했던 엄마의 아픔이 쌓인 더께였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각질을 주워 모았다. 낮은 간편화밖에 신지 못했던 엄마는 자주색 실로 수놓은 노란 꽃신을 신고 가셨다.
이강선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번역가로 활동하다가 마흔 중반에 모교로 돌아가 번역학 석사학위,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현재 글을 쓰며 문학 치유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등에서 영문학과 번역을 가르쳤다.
‘따듯한 남쪽 나라’라고 하지만 겨울은 그 어느 곳에서나 역시 겨울입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몸은 자연스레 움츠러듭니다. 거센 바닷바람이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불더니, 어느 순간 다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종잡을 수 없게 춤을 춥니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라 불렸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검푸른 바다와 거무튀튀한 현무암 갯바위, 모래밭 뒤로 펼쳐진 풀밭이 깡마른 갈색으로 바뀐 지 오래. 모래밭에 촘촘히 뿌리를 내린 채 가늘고 긴 이파리를 무성하게 올렸던 통보리사초 더미도, 좌로 우로 비스듬히 줄기를 뻗은 순비기나무도 푸른빛을 잃었습니다. 푸르던 하늘에도 어느새 시커먼 구름이 들어와 반쯤 자리를 차지하니, 겨울 제주의 바닷가 풍경이 일순 을씨년스럽습니다.
황량한 바닷가 풍경에 모처럼 제주를 찾은 길손이 여수(旅愁)에 빠져들려는 순간 달덩이처럼 둥근 꽃송이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미국에 ‘상하(常夏)의 낙원’ 하와이가 있듯 한국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는 제주도가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주도 바닷가에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겨울에도 많지는 않지만 찾아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여전히 꽃잎을 활짝 열고 있는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황금색 국화인 갯국을 비롯해 철 지난 해국과 감국, 수선화,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갯쑥부쟁이 등등. 물론 각종 도감은 갯국 등의 개화 시기를 11월까지로 소개하고 있어,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듯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12월. 산방산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탁 트인 바닷가에서 갯쑥부쟁이의 환한 꽃 무더기를 만난 것은 각별했습니다. 모든 것이 사위어가는 한겨울 세찬 바닷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꽃 피운 모습이 ‘이 땅의 장한 여인’들을 똑 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진 시집살이와 가난, 굴곡진 근현대사의 풍파를 이겨낸 며느리와 아내, 어머니의 모습이 갯쑥부쟁이 둥근 꽃다발에 투영된 걸 보았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고 훗날을 기약하는 모습이 정말 비슷합니다. 흔히 들국화라 부르는 가을꽃 가운데 하나인 갯쑥부쟁이.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등과 마찬가지로 국화과 식물의 하나인데,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 쑥부쟁이라는 뜻에서 갯쑥부쟁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높이는 30~100㎝로 자라며, 8월부터 11월 사이 원줄기와 가지 끝에 지름 3~5㎝의 동그란 꽃이 하나씩 달립니다. 꽃은 가운데 노란색의 대롱꽃과 대롱꽃을 둘러싼 혀 모양의 자주색 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Where is it?
제주도는 물론 남해안과 동해안 등 전국 바닷가에서 자란다. 일본·대만·만주·중국 등에도 널리 분포한다. 제주도에서는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빙 둘러 바닷가에 자생하는데, 일부 도감은 키가 다소 작고 바닥에 기듯이 자라는 것을 섬갯쑥부쟁이로 구분한다. 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제주도 남부에서 자라며 붉은색을 띤, 줄기가 가지를 많이 치고 억세고 나무처럼 딱딱해지는 것을 왕갯쑥부쟁이로 분류한다. 여러해살이풀로 꽃도 지름 5~7㎝로 다소 크다. 제주도 바닷가에 자생하는 쑥부쟁이의 경우 갯쑥부쟁이로 부르고 있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제주도에서 많이 찾는 갯쑥부쟁이 자생지는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섭지코지와 광치기 해변, 산방산 앞 사계포구 해변, 그리고 마라도 등지다.
노란빛은 늦가을이고 산국은 향기였다
산을 오를 때면 한 송이 따 맡는 향기
세상은 바뀌어가도 변치 않는 진한 향기
이상범, ‘샛노란 향기 - 산국에게’
뒷동산을 지키는 건 등 굽은 소나무뿐만이 아닙니다. 무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초가을부터, 무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도, 그리고 눈이 부시게 하얀 첫눈이 오는 초겨울까지도 노란 꽃잎을 잔뜩 매달고 선 산국은 아마도 소나무 못지않게 고향 뒷산을 소리 없이 지키는, 또 하나의 파수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인적이 끊겨가는, 그리하여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가는 삭막한 뒷동산을 넉넉하고 사랑 가득한 어머니의 품처럼 가꿔주는 게 바로 산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에 피는 국화과 식물의 하나라는 정도의 뜻을 담은 산국(山菊). 가을에 피는 국화과의 야생화들을 통칭해 부르는 보통명사인 들국화와 달리, 산국은 키 1~1.5m의 숙근성(宿根性) 여러해살이풀을 일컫는 고유명사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시베리아에도 분포합니다. 봄에 피는 개나리, 진달래처럼 우리 산하 방방곡곡에서 노랗게 피건만, 놀랍게도 그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꽤 긴 기간 개체 수도 풍부하게 피지만, 많은 이가 눈앞에 펼쳐진 꽃밭을 보고도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식물학자나 야생화 동호인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들국화란 이름의 식물이 실제로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음에도, 산국이니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등을 구분해 낱낱이 불러주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냐는 고루한 주장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주목했듯, 산국의 진짜 매력은 우리의 눈을 선뜻 사로잡는 황금색 꽃잎보다는, 그 어떤 허브 향보다도 진한 향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온몸을 감싸는 자연의 향, 폐부를 찌를 듯 파고드는 알싸한 산국 향이 한 줄기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처럼 꽃의 향이 매우 진해 꽃잎은 국화차 원료로 쓰입니다. 물론 독성을 빼는 과정을 거치지요. ‘국화 베개’에 쓰이는 베갯속도 바로 산국의 꽃잎을 말린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피는 감국(甘菊)은 바로 산국과 쌍둥이 같은 야생화입니다. 노란색 꽃색도 같고 꽃 모양도, 전초도 비슷해 전문가들도 헷갈리곤 합니다. 손쉽게 꽃 크기가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하면 감국, 그보다 작은 100원·50원짜리이면 산국으로 구분합니다. 감국은 주로 바닷가 인근 산과 들에 피고, 전체적인 꽃 형태가 성글고 꽃잎이 깁니다. 물론 성질도 다릅니다. 쓴맛이 강한 산국보다 단맛 나는 감국이 차의 원료로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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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부터 서해 5도, 강원도 철원과 설악산 등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자생한다. 그중 한강과 임진강, 강화도를 거쳐 서해로 이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굽어보며 한가득 핀 김포 문수산 정상의 산국이 사진 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경주시 건천읍 오봉산 정상 주사암 주변에 뿌리 내린 산국도 오래된 절집의 분위기와 어울려 운치 있다. 내륙 북쪽 지장산 석대암, 남쪽 경남 합천군의 오도산 정상, 그리고 서쪽 안면도의 꽃지 해변, 철원 한탄강가 등 이름난 산과 바닷가, 강변 모두가 초가을에서 겨울까지 산국꽃 더미로 노랗게 물든다. 이름은 산에서 피는 국화[山菊]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산은 물론 야트막한 언덕이나 들녘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다.
10월 하늘은 맑고 높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짙푸릅니다. 하늘과 강 어느 편이 더 파란지 내기라도 하듯 날로 그 푸름이 짙어가는 가을날, 강변에는 연보랏빛 꽃들이 가득 피어나 단연 지나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일순 저 멀리서 모터보트 한 대가 정적을 깨고 달려와 하늘과 강, 연보랏빛 꽃 무더기 사이를 무심히 지나쳐갑니다. 작은 배에는 고기잡이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사내와 아낙이 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더없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강촌 마을의 전형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림 같은 풍경의 정점을 찍은 것은 다름 아닌 단양쑥부쟁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자생지가 파괴돼 자칫 ‘야생 절멸’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시끌벅적한 ‘뉴스의 꽃’이 되었던 단양쑥부쟁이. 그 단양쑥부쟁이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한가롭고 목가적인 강마을 풍경의 주인공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중장비 소리 사라진 강변에 이파리가 솔잎처럼 가느다란 단양쑥부쟁이가 가득 피어난 것을 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납니다. 물론 예전의 자생지는 당시의 지적과 우려대로 상당수 파괴되고 사라져, 지금 우리가 보고 만나는 단양쑥부쟁이는 대체지에 옮겨 심거나, 증식한 씨를 인위적으로 뿌려서 키워낸 것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전, 복원된 단양쑥부쟁이가 몇 년간의 ‘이사 몸살’을 이겨내고 다시 야생의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이니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단양쑥부쟁이. 충북 단양에서 처음 발견돼 ‘단양쑥부쟁이’란 이름을 얻었으나, 1980년대 충주댐이 건설될 때 단양과 충주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그곳의 자생지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2005년 남한강 여주 일대에서 자생지 몇 곳이 발견돼 큰 환영을 받았는데, 4대강 사업으로 최대 자생지가 또다시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됐다고 야단법석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래와 자갈이 적당히 섞인 강변에서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첫해는 줄기가 15cm까지 크고, 이듬해 꽃대가 계속 자라 높이 30~50cm까지 이릅니다. 키나 꽃은 다른 쑥부쟁이에 비해 큰 차이가 없지만, 잎은 한탄강 바위틈에서 자라는 포천구절초나 높은 산 바위 절벽에서 자라는 가는잎향유 등과 마찬가지로 솔잎처럼 가늘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9월에서 10월까지 지름 4cm 크기의 머리 모양 꽃이 꽃대마다 여러 개씩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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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한국(경기도 여주시, 충청북도 단양군과 제천시)에 분포한다고 돼 있다. 즉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데, 여주는 물론 단양과 제천에서도 자란다는 뜻이다. 일본인 우치야마가 1902년 수안보에서 처음 발견해 채집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안보, 단양, 제천에서 단양쑥부쟁이의 자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한강이 흐르는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일대가 단양쑥부쟁이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생육지다. 강천섬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연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가진 단양쑥부쟁이가 가을 인사를 한다.
촛불 하나
켜 놓고
바라본다
너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 용혜원의 ‘고독’
찬바람이 불어 마음이 허(虛)하거든 주저 없이 산에 들 일입니다. 그곳에 가면 당신만큼 고독한 꽃 한 송이 기도하듯 명상에 잠겨 있을 것입니다. 가을밤 호젓한 산사에 밝혀놓은 촛불인 양 저 홀로 핀 꽃 한 송이 당신을 반길 것입니다. 폭염이 한결 누그러진 9월 초, 여름내 깡말랐던 숲은 생기가 넘칩니다. 지난여름의 무더위와 장마쯤은 아랑곳 않는다는 듯 여기 불쑥 저기 불쑥 돋아나 가부좌 틀듯 앉은 애기앉은부채가 찾는 이를 반깁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눈이 밝고 기억력이 좋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애독자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야생화인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겁니다. 맞습니다. 2년 반 전인 2017년 3월 아주 흡사한 모습의 야생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접두어 ‘애기’란 두 글자만 뺀 앉은부채였습니다. 물론 생김새는 아주 비슷하지만, 크기나 개화 시기 등 생태는 크게 다릅니다. 우선 꽃대의 길이가 앉은부채는 10~20cm로 어른 주먹만 하지만, 애기앉은부채는 1cm로 10분의 1 정도로 작습니다. 특히 꽃 피는 때가 크게 달라 애기앉은부채는 7~9월 여름이지만, 앉은부채는 2~3월 초봄입니다. 또 봄에 나온 잎이 7월이면 녹아 사라지고 그 뒤 엄지손톱만 한 꽃을 피우는 애기앉은부채와는 정반대로, 앉은부채는 꽃이 핀 뒤 잎이 무성하게 납니다. 하지만 부처의 후광(後光)을 닮아 불염포(佛焰苞)라고 불리는 꽃 덮개가 타원형을 그리며, 그 정중앙에 도깨비방망이 같은 육수(肉穗)꽃차례가 가부좌를 튼 듯한 모습은 매한가지입니다.
둥근 광배(光背)까지 갖춘 게 불상의 머리 형태와 흡사하니, 누구나 ‘애기앉은부채’란 이름을 ‘애기앉은부처’로 잘못 알아듣기 십상입니다. 도깨비방망이가 바로 수십 개의 꽃이 빙 둘러 핀 꽃 덩어리인데,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 조각조각이 4장의 꽃잎과 4개의 수술, 1개의 암술을 갖춘 각각의 꽃입니다. 생김새만큼 꽃색도 독특합니다. 꽃 덮개인 불염포가 대개는 짙은 자갈색이지만, 경우에 따라 녹색부터 미색 또는 짙은 홍색, 선홍색, 심지어 연분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 그야말로 색색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영어 이름은 이스트 아시안 스컹크 캐비지(East Asian Skunk Cabbage)인데, 이는 잎이 배추처럼 무성하고 넓은 특징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또 ‘스컹크’란 단어가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 꽃에서 고기 썩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로 곤충이나 육식성 동물들을 불러 모아 꽃가루받이에 활용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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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강원도 이북의 높은 지대에서 자란다고만 돼 있는데, 설악산과 대관령, 점봉산, 오대산, 태백산 등 강원 지역뿐 아니라 최근 울산, 경남, 전북 등 중부 이남의 숲에서도 자생지가 확인되고 있다. 이 중 강원도 평창의 선자령과 전북 순창의 쌍치(雙峙), 울산의 울산하늘공원 등이 야생화 동호인이 많이 찾는 자생지로 유명하다.
도심을 벗어나 어느덧 국도를 달린다. 햇살 쏟아지는 시골 마을을 지나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로 들어서자 소음조차 숨죽인다. 숲길에서는 뒤엉킨 마음을 맡겨버린다. 구불거리는 좁다란 산길 위에서 너울거리는 계절을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땅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이다.
보탑사 삼층 목탑과 꽃 정원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했다. 사는 곳은 진천이 좋다 하더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진천에 닿는다. 친절한 사람들이 비켜주는 좁다란 숲길을 따라 산밑을 지나면 길 옆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려준다. 산 아래에는 정갈한 사찰 보탑사(寶塔寺)가 조용히 앉아 있다.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는 이곳에 대목수 신영훈 장인을 비롯해 문화재급 전문가들과 지광·묘순·능현 비구니 스님이 1996년 창건한 절이다. 그 후 지장전·영산전·산신각 등을 건립하고 2003년 불사를 마쳤다.
역사가 길진 않지만 보탑사가 많은 이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이 절 삼층 목탑은 상륜부를 제외한 높이가 42.7m. 못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끼워 맞추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다. 내부에는 삼층까지 오르는 계단도 있다. 108척 높이의 대웅전(1층), 법보전(2층), 미륵전(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모습이 웅장하다. 지나치지 말고 들여다봐야 한다.
또 사방에는 꽃들이 가득하다. 봄, 여름, 가을까지 쉬지 않고 꽃이 피어난다. 목탑 주변에는 경계석도, 담도 없다. 야생화가 가득 피어난 화분들이 풋풋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아담한 처소 앞에 피어 있는 올망졸망한 꽃들의 모습은 수채화 같다. 군데군데 예사롭지 않은 석탑과 반가사유상, 불족석, 영산전, 전각, 그리고 격조전 입구의 석불과 와불의 평온한 표정은 꽃과 자연 속에서 제 몫을 보여주니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사찰 계단을 오르면 탐스런 작약이 화들짝 얼굴을 들이민다. 작약을 시작으로 경내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든 꽃밭이다. 계단참에도, 돌무더기 위에도, 담장 허리춤에도 색색의 꽃들이 가득이다. 산속 정원이 바로 여기다. 보탑사는 여느 사찰들처럼 규모가 웅장하지도 않고 근엄한 분위기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평온하고 아늑할 뿐이다. 불자가 아니어도 머물다 가려는 여행자들이 조용히 오간다. 꽃과 나무들로 어우러진 경내를 걷다 보면 사찰이 아니라 어느 조용한 고택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자연생태공원에서 함께하는 휴식
보탑사 주차장에서 나와 5분 남짓 달리면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이 나온다. 11만8500여 ㎡의 넓은 공간을 자랑한다. 잔디광장, 생태교육장 등의 열린 마당과 생태습지, 수목원, 야생초화·허브원, 가족 피크닉장, 습생초지원, 열매나무원 등 체험 숲을 갖추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가볼 만하고, 특히 아이들 자연학습장으로 좋다. 연인들이 손잡고 산책로를 따라 걷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물소리길, 별따라가는길, 산내음길 등을 걸으며 생태공원의 신선한 공기를 맛볼 수 있다. 넓은 잔디밭에서는 축구를 하는 아이들, 텐트를 치고 휴식 중인 가족들 모습이 평화롭다. 인근에 위치한 연곡저수지와 백곡저수지는 살아 있는 시골 풍경이다. 종(鐘) 박물관과 참숯 테마공원도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
만뢰산 자연 생태관에서 다시 1~2분 정도 달려가면 ‘사적 제414호 진천 김유신(鎭川 金庾信) 태실(胎室)과 만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 유적이다. 태실 유적은 아기가 태어날 때 함께 나오는 태반과 탯줄을 묻어놓는 곳을 말한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은 이곳 진천(옛 지명은 만뢰)에서 태어났고 그의 태실은 진천읍 상계리 태령산 정상에 있다. 태실 유적 입구엔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역사를 지닌 장소라 그런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천년의 다리
진천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농다리(농교)’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정겨운 징검다리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진천의 농다리도 그중 하나다. 900여 년 전 임 장군이라는 사람이 만든 다리라 전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로 알려져 있다. 두툼하고 널찍한 돌을 포개어 쌓은 것뿐인데, 거의 천년의 세월을 지탱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무수한 풍상을 겪고 홍수에도 끄떡없었다니 첨단기술로 만든 다리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농다리는 이제 역사의 다리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5월 중하순경 ‘천년의 발자취! 농다리에 반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한바탕 축제의 장을 연다. 최근에는 수변산책로도 조성되어 조용한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진천에서 만난 수수한 음식점 두 집을 소개하고 싶다. 민물새우찌개, 수제비, 정갈한 더덕구이 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풍경소리’와 묵밥을 맛볼 수 있는 ‘하늘소’이다. 두 곳 다 제법 알려진 오래된 맛집으로, 당연히 파전과 동동주도 있다. 산속에 자리한 ‘하늘소’에 앉아 창밖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세속의 갈등과 번뇌가 어느새 사라진다. 매달 5일, 10일에 열리는 진천 장날에 맞춰 가면 더 좋다.
때론 조용한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고민하지 말고 훌쩍 서울을 떠나보자. 고속도로를 두 시간여 달리면, 일탈과 휴식과 피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진천에 도착한다. 시골길을 달리고 산속에 파묻혀볼 수 있는 하루 코스는 역시 생거진천(生居鎭川)의 마을이 제격이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장면, 그리고 말이 있습니다. 2015년 7월 31일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 야외무대에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오릅니다.
“제가 부를 곡은 저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곡일 수 있습니다. 통일이 빨리 되어서, 제가 부르는 이 ‘그리운 금강산’이 오늘 이 베를린에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그리운 금강산이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강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겠습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유라시아친선특급’ 폐막 음악회, 그리고 앙코르 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기에 앞서 조 씨가 한 말이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모스크바와 벨로루시, 폴란드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19박 20일 동안 대륙횡단열차를 탔던 학생, 시인, 소설가, 화가, 경찰, 소방관, 기자, 음악가, 교수, 관료, 정치인, 독립운동가 후손 등 각계각층에서 참여한 원정 대원 400여 명은 조 씨의 발언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진한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조 씨와 원정 대원, 그리고 국민 모두의 간절한 소망과 달리 달라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이 남과 북, 미국의 정상이 숨가쁘게 만나는 등 희망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금강산은 여전히 ‘그리운 금강산’입니다. 여전히 갈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그리운 금강산입니다. 그런 씻기지 않는 갈증과 그리움을 다소나마 해소해주는 ‘우리 꽃’이 있습니다. 특산 식물인 봉래꼬리풀이 그 주인공입니다.
봄 금강(金剛), 여름 봉래(蓬萊), 가을 풍악(楓嶽), 겨울 개골(皆骨). 계절마다 각기 다른 풍광을 자랑하기에 그 이름을 달리 불렀다는 금강산. 여름이면 1만2000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푸름을 뽐낸다고 해서 쑥과 명아주를 뜻하는 한자어 ‘봉래(蓬萊)’란 이름을 얻은 금강산. 그곳에서 여름철이면 꼬리 모양의 꽃을 피운다고 해서 봉래꼬리풀이란 국명을 얻었습니다. 학명 중 변종명 ‘디아만티아카(diamantiaca)’는 봉래꼬리풀이 처음 채집된 장소가 바로 ‘Diamond Mountain’이라는 영어명으로도 불린 금강산이며, 한국의 고유 식물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높이 20cm 안팎으로 자라며, 달걀 모양으로 마주나는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붉은빛이 돕니다. 7~8월 원줄기와 가지 끝에 연한 보라색 꽃이 원뿔 형태로 줄줄이 달립니다.
Where is it?
금강산에 자생하는 봉래꼬리풀이 남한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1990년대 초. ‘설악산의 꽃’을 찾아 나선 식물학자와 야생화 사진작가, 동호인 등이 설악산 마등령과 서북능선, 안산 등지에서 자라는 봉래꼬리풀을 잇따라 확인한 것. 이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봉래꼬리풀이 “금강산 비로봉의 사스래나무와 눈잣나무의 숲속에서 자라며,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에도 분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5분여 만에 오르는 권금성 바위 더미 사이사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울창한 숲이었으나 케이블카 운행으로 숱한 관광객이 오가면서 대머리 돌산처럼 변한 권금성 곳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놀랍고 반갑다. 미시령 옛길 주변에서도 울산바위를 바라보고 당당하게 선 봉래꼬리풀을 만날 수 있다.
남과 북으로 땅이 갈리고 길이 막힌 지 오래. ‘분단 50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0년을 넘어섰습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잊히고 사라지는 것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식물 분야에서도 각종 도감에 나오는 엄연한 ‘우리 꽃’들이 갈수록 이름조차 생소해지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집니다. 노랑만병초니 두메양귀비, 구름범의귀, 개감채, 홍월귤, 두메자운, 비로용담, 화살곰취, 구름꽃다지, 두메분취, 구름국화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에서 자라는 각종 북방계 식물들이 그들입니다. 이 중 노랑만병초와 홍월귤, 비로용담 등 몇몇은 설악산과 한라산 등 극히 제한된 곳에서 극소수의 개체를 근근이 보존하고 있지만, 대개는 남한 지역에서의 자생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백두산과 연변 지역은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꽃’들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물론 내 나라 내 길이 아닌, 남의 땅을 통해 ‘우리 꽃’을 만나러 가야 하는 현실이 불편하고 불만스럽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다시 만나 힘차게 끌어안아야 할 ‘우리 꽃’이 거기에 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카메라에 담아 널리 알립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 꽃’을 사랑하는 이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두산과 그 일대의 ‘우리 꽃’을 만날 수 있는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9월이면 눈이 내리고 이듬해 5월 말이 되어야 새싹이 움트면서 6~8월 3개월 동안 모든 꽃이 피었다 집니다. 그 짧은 기간 천지 주변은 희고 붉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천상의 화원으로 변모합니다. 그 많은 고산식물 가운데에서 오늘 소개하는 꽃은 남한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가솔송입니다. 그렇다고 북녘 맨 끝 백두산 일대에서만 자라 왠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그런 꽃이 아닙니다. 백두산의 대표 야생화 중 하나인 건 분명하지만, 그 아래 함남 검덕산과 차일봉 일대를 거쳐 평남 맹산·영원·대흥군에 이르기까지 해발 1000m 이상 북녘의 고산 초원 지대에 폭넓게 분포합니다.
6월 중순 백두산, 자작나무와 사스래나무 군락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수목 한계선 위로 들쭉나무, 월귤,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콩버들, 좀참꽃, 가솔송, 시로미, 백산차 등 풀처럼 키 작은 나무들이 나타납니다. 그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무수한 꽃송이를 레드 카펫 깔듯 눈앞에 펼쳐놓는 가솔송. 작은 항아리 모양의 꽃만으로도 깜찍하기 이를 데 없는데, 눈부신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은 채 이슬을 머금은 진홍색 가솔송 꽃들의 반짝거림이란….
가는 잎이 솔잎을 닮아 그 이름을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솔송은 매송(梅松) 또는 송모취(松毛翠)라고도 불리는데, 항아리 모양에 뾰족한 입까지 꽃을 가만 살펴보면 잘 구워진 매병(梅甁)의 미니어처와 똑 닮았습니다. 키 작은 나무여서 다 자라야 높이 10~25cm에 불과합니다. 줄기 밑 부분에서부터 옆으로 누우면서 많은 가지가 갈라집니다. 좁고 긴 잎은 빽빽이 나는데, 잎의 뒷면 가운데에 흰색의 털이 있습니다. 꽃은 6~8월 묵은 가지 끝에 2~6개씩 달려 땅을 보고 핍니다. 개개 꽃의 크기는 7~8mm에 불과하지만, 전초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 보입니다. 우리나라 외에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치솟는 6월. 여름을 향해 치닫는 계절의 변화에 현기증을 느끼며 뒷산을 오릅니다. 연두색이던 숲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고, 길섶은 허리까지 차오른 풀들로 한 걸음 내딛기가 주저될 만큼 무성합니다. 몇 걸음 더 오르자 그만그만한 잡초들을 제치고, 어깨높이 이상으로 껑충 솟아난 꽃이 보입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매혹적인 꽃, 바로 털중나리입니다. 겨우 한 송이 핀 것도 있지만, 대개는 서너 송이가 달려 있습니다. 많게는 열 송이 가까이 달리기도 하는데, 1m 넘게 솟아오른 원줄기 끝에 한 송이, 그 아래 사이사이 좌우로 뻗은 작은 가지마다에도 한 송이씩 다닥다닥 핍니다.
털중나리가 꽃을 피웠다는 것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털중나리를 비롯해 하늘나리, 중나리, 참나리, 땅나리, 솔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날개하늘나리, 섬말나리, 누른하늘말나리 등 백합과의 나리꽃들이 곧 우리 땅에서 여름 내내 피고 지는 ‘여름꽃의 대명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여 종 나리꽃들의 피고 짐이 털중나리로부터 비롯되기에, 털중나리의 개화는 곧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색은 여름꽃답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닮은 듯 한결같이 붉습니다. 하지만 얼핏 보면 붉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홍색(紅色) 일색은 아닙니다. 분홍색의 솔나리와 진한 홍색의 큰솔나리 사이에, 주홍색과 주황색 등 다른 색의 꽃을 피웁니다. 물론 솔나리의 경우 아예 꽃잎이 온통 하얀 흰솔나리, 검은빛이 도는 홍자색 검은솔나리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털중나리의 꽃은 노란빛이 감도는, 이른바 황적색(黃赤色)입니다. 간색(間色) 특유의 진한 색감이, 보면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6개로 갈라져 완전히 뒤로 젖혀진 꽃잎, 그 안쪽으로 황적색 바탕에 새겨진 진한 자주색 반점과 6개의 수술, 1개의 암술을 모두 드러낸 모습은 집시 여인보다도, 삼바 여인보다도 뇌쇄적입니다.
10종이 넘는 나리꽃들 이름의 유래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6개로 갈라진 꽃잎이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 땅을 보면 땅나리, 그 중간을 보면 중나리, 줄기 등 전초에 솜털 같은 털이 있으면 털중나리, 꽃잎이 하늘을 보되 잎이 빙 돌려나면 하늘말나리로 불리는 식입니다.
Where is it?
털중나리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조금만 품을 팔면 만날 수 있는 야생화란 점이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비롯한 전국의 해발 1000m 미만 지역에서 자란다”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설명처럼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 그렇다고 도심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동네 뒷동산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서울의 경우 광화문 한복판에서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종로구 수성동 계곡에서도 만났다. 다만 각종 공해(公害)에서 벗어날수록 꽃이 더 싱싱하고 탐스러우며 꽃색도 맑고 깨끗하기에, 멋진 털중나리를 만나려면 조금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해발 1000m 미만에서 자란다”는 건 해발 1000m 즈음까지 자란다는 뜻이기도 한데, 높은 곳의 털중나리는 탁 트인 전망과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경남 합천군 오도산 정상에서 일출과 함께 만나는 털중나리는 가히 환상적이다. 경기도 팔당 예봉산 자락과 김포 문수산도 털중나리와 주변 풍광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