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최고로 길었던 추석 연휴가 지났다. 긴 연휴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수많은 며느리들에게 육체적인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늘어난 휴일만큼 더 많은 가사에 시달리면서 허리와 손목, 어깨 등에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정형외과는 명절 연휴 직후가 성수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연세에이스정형외과에서 만난 이순옥(李純玉·64)씨도 명절이 고달픈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보통의 며느리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녀가 겪은 질환은 파스 몇 장으로 끝낼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처음엔 뒤늦게 시작한 취미가 문제라고 생각했죠.”
이순옥씨는 남편을 통해 알게 된 노래 모임을 통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6년 전 일이다. 처음 배우는 악기라 당연히 쉽지 않았고, 코드를 잡는 손부터 허리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래도 기타를 다루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통증은 점점 사라져갔다. 연주로 인한 즐거움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유독 왼쪽 어깨에 남아 있는 통증은 그대로였다.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명절이 지나면 통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 남편의 무릎 치료를 위해 들른 병원이 믿을 만해서 자신의 어깨도 검사해봤다. 진단 결과 석회성건염이었다.
원인 모를 석회화가 통증 불러와
석회성건염은 어깨에 돌덩이 같은 것이 생기는 병이다. 관절에 석회 물질이 저절로 발생한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치료를 담당한 정형외과 전문의 윤홍기(尹洪基·46) 원장은 석회성건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석회성건염은 말 그대로 어깨 힘줄 부위에 석회 침착물이 생기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에요. 이 염증이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사실 이 병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진 바가 없어요. 힘줄의 노화 과정에서 석회화가 일어난다는 가설과 힘줄 세포의 변성으로 석회가 생긴다는 이론이 지지를 받고 있지만 확인되진 않았어요.”
우리가 흔히 오십견으로 알고 있는 유착성관절낭염과는 완전히 다른 병이다. 어깨에 통증이 발생하는 병이기 때문에 비슷하다 여길 수 있지만, 오십견은 어깨 관절의 운동 범위가 직접적으로 감소되는 점이 가장 다른 부분이다. 석회성건염도 어깨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증상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치료를 받지 않아도 나을 수 있다는 오십견에 대한 속설이다. 어깨통증을 모두 오십견이라도 단정 짓고 병을 키울 경우 응급실 신세를 질 수도 있다.
“아팠을 텐데 지금까지 어떻게 참으셨어요?” 윤 원장이 이씨를 만나자마자 건넨 말이다. 윤 원장은 일반 환자보다 커다란 석회덩어리를 보고 걱정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다행히 덩어리 크기에 비해 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비교적 적었다. 석회성건염은 생성기, 휴지기, 흡수기의 3단계를 거치는데, 흡수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극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만약 어깨가 너무 아파 응급실을 찾을 정도라면 대부분 석회성건염일 가능성이 많다.
윤 원장은 환자의 통증이 심하지 않아 일단 보전적 치료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함부로 어깨에 칼을 대기보다는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한 통증이 없다면 비수술적 치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석회를 없애기 위해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쓰입니다. 석회물이 부드러운 상태라면 주사기로 빨아들여 크기를 줄이고, 딱딱하면 체외충격파 치료로 부순 다음 분산시켜요. 이순옥씨의 경우 체외충격파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어 결국 수술을 결정하게 됐죠.”
제사를 모셔야 하는 며느리의 숙명
올해로 결혼생활 28년째. 집안에선 둘째 며느리이지만 내 손으로 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 성격 탓에 시어머니로부터 모든 제사를 물려받았다. 제사만 1년에 4차례. 설과 추석의 차례상 준비도 그녀 몫이다. 단 한 번도 빼먹은 적도, 소홀히 넘긴 적도 없다.
이순옥씨가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은 설 명절 직후인 지난 2월이다. 집안의 연이은 행사 때문에 어깨 질환이 생긴 거라고 지목하지 않았어도,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중압감은 그때마다 어깨 위로 쌓이지 않았을까?
“워낙에 내 일로 남 일로 바빠요.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향이니까. 한때는 백화점에서 일도 했고, 부대찌개 식당도 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올해부터는 제사를 한 번에 지내기로 했어요. 부담이 좀 줄어들었죠.”
그녀의 활달한 성격은 여가생활에서도 나타난다. 남편을 통해 알게 된 노래 모임 ‘관악산 통사모(통기타 사랑 모임)’는 활동한 지 10년째다. 이제는 보컬을 담당하는 남편보다 그녀가 ‘핵심 멤버’로 꼽힐 정도다. 이 노래 모임은 ‘관악산 통사모 7080 음악회’라는 제목으로 매달 2, 4번째 일요일에 관악산 제2광장에서 정기공연을 갖는다.
관악산 통사모를 통해 알게 된 티뷰크사회복지재단을 통해 봉사활동도 해왔다. 민원으로 인해 중단될 때까지 신대방동 인근에서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빵 봉사’를 6년이나 했다. 많을 때는 1000명 이상의 사람이 몰렸다. 말 그대로 쉴 틈이 없는 나날들이었다.
어깨를 많이 쓰는 야구선수 사이에서는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속설이 떠돈다. 그러나 이씨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까? 윤 원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모든 관절은 과부하가 걸리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많이 쓸수록 좋아지고 건강해진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이 들면 어깨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배드민턴이나 탁구 같은 운동 역시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전기나 배관과 같은 팔을 올리고 작업하는 직업군 역시 어깨 질환이 자주 발생합니다.”
석회성건염의 불편한 특징 중 하나는 여성들의 발병이 남자에 비해 두 배가량 높다는 것. 연령을 기준으로 하면 30대에서 50대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발병 원인이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왜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지, 나이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통증보다 더 무서웠던 것
지난 7월 결국 이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사실 수술은 그녀에게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대장암 수술을 통해 투병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어깨 수술은 겁나지 않았다. 대장암은 이미 제거되었고 완치 직전에 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제가 폐쇄공포증이 좀 있어요. 아주 심한 편은 아니지만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있을 때가 있어요. TV 장식장 안처럼 좁은 공간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요. 그래서 찜질방도 못 가요. 수술 전 MRI 촬영을 위해 관처럼 좁은 공간에서 30분 정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다 때려치우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죠. 눈 질끈 감고 노래를 부르면서 버텼어요. 그때 아는 노래 모두 불러버린 것 같아요(웃음).”
수술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얇은 튜브 모양의 관절경이 들어갈 수 있도록 어깨의 앞, 뒤, 옆에 작은 구멍을 내 수술을 하는 방식이다. 관절경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석회물이 생성된 부위를 직접 들여다보면서 힘줄이 다치지 않도록 제거해낸다.
윤 원장은 “간혹 수술을 해도 석회물이 남는 경우가 있어요. 이순옥씨의 석회화 부위는 넓은 편이었지만 다행히 모두 제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수술 후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0일 입원 지시를 받았지만, 몸이 들썩거려 6일 만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퇴원했다. 어깨는 그래도 괜찮을 정도로 빠르게 좋아졌다.
“수술 후 첫날부터 어깨가 잘 움직여 물리치료사가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운동 치료도 잘되고 몸 상태도 빨리 좋아지자 병원에 계속 누워 있기가 싫더라고요. 일반 사람들보다 회복이 빨랐던 이유는 아마 요가 때문인 것 같아요. 10년 정도 요가를 꾸준히 해왔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부지런한 성격과 평소에 해왔던 운동이 몸이 회복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가장 말을 잘 듣는 환자는 자신일 거라며 웃었다. 병원 방문날짜를 어긴 적도 없고, 운동도 빼먹지 않고 했다. 시키는 동작은 통증이 느껴져도 모두 다 해냈다.
이씨는 부지런한 성격이지만, 석회성건염 환자들 대부분은 게으르다. 윤 원장은 석회성건염 환자들은 합병증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부 환자들은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고 치료를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치료가 지겹기 때문일 거예요. 운이 좋으면 석회물이 자연 흡수되는 경우도 있어 통증이 사라지고 힘줄이 회복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어 일상생활이 더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당장 좋아지지 않아도 성실하게 치료를 받으시라고 권합니다. 아무리 느려도 그것이 가장 빨리 낫게 하는 방법입니다.”
2개월 만에 거의 회복된 몸
수술 후 변화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재미있는 답변을 했다.
“이제 차 앞자리에서 뒷자리 물건을 집을 수 있어요. 수술 전에는 뒷자리에 있는 물건을 전혀 집을 수 없었거든요. 기타 연주를 마음놓고 할 만큼 회복되진 않았어요. 통기타는 쇠줄을 잡아야 해서 힘이 필요한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요가도 비슷해요. 그러나 정상일 때에 비하면 90% 정도는 회복됐다고 봐요. 더 건강해지기를 기대하지만, 수술 후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자상한 남편은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그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남편 얼굴만 보였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치료 후 어깨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최근 걷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많이 걸으면 두 시간도 너끈히 걷는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걸으려고 노력해요.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 걸 좋아해요. 지하철 계단도 열심히 걷고. 걷는 속도도 꽤 빨라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도 앞장서서 가요.”
수술 후 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 그녀에게 묻자 또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요즘 유행하는 플라잉 요가를 해보고 싶어요. 물론 어깨가 완전히 나은 후에 해야겠죠. TV에서 연예인들이 하는 것을 봤는데 멋져 보이더라고요.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제게는 일종의 도전 같은 것이에요. 나를 위한 도전을 계속 하고 싶어요. 플라잉 요가를 위해서라도 빨리 완치되고 싶어요.”
아침 6시 40분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덜컹 몸이 흔들린다. 바깥 풍경은 오랜만에 선명히 잘도 보인다. 세련되지 않지만 뭔가 여유롭고 따뜻한 느낌이랄까? 한국 예술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부산포 주모(酒母) 이행자(李幸子·71)씨를 만나러 가는 길. 옛 추억으로 젖어들기에 앞서 느릿느릿 기차 여행이 새삼 낭만적이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들어간 부산포. 작은 낙서, 그림 하나, 스치는 공기까지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부산의 마지막 주모를 만나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중앙역에서 용두산 공원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은 깨끗하고 단정하다. 신식으로 잘 닦인 거리. 오래된 주점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골목에 釜山浦(부산포)라고 쓰인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 우리나라 예술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주모 이행자씨가 있다. 깡마른 체구에 걸걸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이행자씨는 중앙동 바로 옆 동광동에서만 42년째 주모로 살고 있다. 혹자는 이행자씨를 부산의 마지막 주모라고 말한다. 남들 다 떠나갈 때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주막은 현재 부산포 하나다. 의미를 모르면 동네 흔하디흔한 주막, 조금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값진 역사와 예술가의 정이 흐르는 곳, 부산포다.
주막의 분위기는 주모가 잡는다
부산의 중앙동과 남포동 일대는 10여 년 전만 해도 부산의 굵직한 화랑들과 함께 인쇄 골목이 형성돼 있어 문인과 화가들이 넘쳐나는 이른바 예술의 거리였다. 지금은 해운대 일대로 예술 관련 사업이 옮겨가 작가들의 발길이 뜸해진 지 오래다. 외딴섬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부산포지만 그 안에는 옛 예술가들의 체취와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낙서 하나하나, 벽에 펜으로 휘갈긴 듯 그린 그림 속 인물은 한국 문단과 화단을 주름잡던 일류 작가군단이다. 매일 문지방이 닳도록 부산포를 오간 문화 예술인만 수백은 될 것 같다. 부산포 주모 이행자씨가 이토록 작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내 고집대로 한 거지 뭐. (화장) 진하게 하고 나와서 하하 호호 하는 꼴을 내가 못 봐. 그러니까 손님은 없어. 옛날이야 줄 섰지만. 내 성질이 개떡 같아. 손님들도 내쫓아요. 욕하는 사람, 슬리퍼 신고 오는 사람 다 쫓아내. 슬리퍼는 점심에 밥 먹을 때는 괜찮은데 저녁엔 옛날 어르신들 계시고 이라니까. 분위기도 내가 만들어주는 거지. 그냥 손님들이 만드는 게 아니야. 그래서 뺨때기도 때리고 젊을 때는 말 못해. 마대자루 들고 패지, 물바가지로 퍼붓지. 소문이 났어. 좋게 날 리가 없지.”
베테랑 주모의 애틋한 고객 관리(?)는 바로 어르신들을 제대로 알아보고 보살피는 게 전부였다. 이행자씨가 말하는 그 어르신들이란 1900~1920년생 한국 예술계 전설적 인물이 줄을 잇는다. 독립운동가이자 예술인 먼구름 한형석을 비롯해 오제봉, 김정한, 김종식, 오영재, 천재동, 공초 오상순, 하인두, 시인 구상까지 평생을 살아도 만나 뵙지 못할 귀한 인물들을 주모로서 극진히 맞이했고 술동무로 가시는 날까지 정성을 다해 모셨다. 손님을 가려서 받게 된 것도 문화계 원로 선생님을 모시는 일종의 방법이었다.
“손님들이 이상한 행동 하는 꼴을 내가 못 봐. 들어왔는데 뭔가 느낌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장사 안 한다고 하고, 소주 보여도 소주 없다고 하고. 보면 알지. 매너가 엉망인 사람이 보인다고. 술 먹고 변할 사람들도 보이고.”
그런데 이행자씨에게는 철칙 하나가 있다. 절대 욕은 안 한다.
“내는 고함은 지르는데 욕은 하지 않아. 근데 누가 나더러 욕쟁이 할머니래. 와? 내가 욕하는 거 봤나. 내가 욕하면 쫓아내는데. 욕하는 사람이 나는 제일로 혐오스럽다. 나도 욕할 줄 알거든. 그런데 안 할 뿐이야.”
누부야 누부야 그냥 갈 수 없잖아展
이행자씨는 서른 초반이던 1970년대 말 ‘대구집’으로 문을 열었다. ‘골목집’이란 이름을 지나 1994년 지금의 부산포로 주막 간판을 바꿨지만 주모도 그대로 추억도 그대로다. 그렇다고 마냥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믿고 지냈던 사람에게 보증을 서줬다가 건물이고 가게고 순식간에… 30여 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것을 한 번에 다 날렸으니 난 어땠겠어.”
며칠씩 잠도 안 자고 하루 종일 담배만 3갑씩 피웠다.
“1세대 선생님들은 동동주하고 맥주하고 타서 ‘동맥’이라고 하시면서 섞어 드셨다 아이가. 그게 맛이 괜찮아. 30~40대부터 그렇게 술을 먹었는데 일 터지고 한 달 내내 그렇게 마셨어. 돈이고 뭐고 다 귀찮고. 술도 안 받는데 계속 그렇게 먹었어. 결국 몸이 고장 난 기지.”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한 달도 안 돼 치아가 빠지기 시작했다. 위암 초기였다. 그때 이후로 술은 끊었지만 담배는 손에서 떼지 못했다. 그렇게 쓰러진 주모 이행자를 위해 부산 예술인들을 주축으로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판화가 주정이가 주축이 돼 주모 이행자씨를 돕는 특별전을 펼친 것. 그게 바로 ‘누부야 누부야 그냥 갈 수 없잖아展’(2009. 7. 14~8. 31)이었다.
“옛날 1세대 어른들을 내가 잘 모셨어. 부산포를 살려야 한다 그라셔서 살려주신 거지. 대학에 있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전업 작가들이시고. 정말 십시일반 해서 도와주셨어.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하시던 이두식 선생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작품을 내주셨고.”
이 전시회를 통해서 3000만원이 훨씬 넘는 자금이 모였다. 그래서 현재의 부산포 자리로 옮겨 명맥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전해 다시 활기차게 생활을 하지만 몸은 성한 곳이 없다. 예전에는 일하는 사람을 뒀지만 지금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주모 이행자씨의 손을 거친다. 이렇게 한 것이 6년째. 손가락에는 류마티스가 왔고 복숭아뼈 양쪽에 물이 차 추석쯤 병원에 가 치료를 받을 생각이다. 위암 정기검진을 받아야 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나는 지금 병원에 가면 눕혀서 못 나와. 병원 가면 문 닫아야 해. 그래서 안 간다 아이가. 한 1년 넘었어. 병원에서 전화 오면 ‘괜찮소. 나 아직 빨딱거리고 잘 돌아다니거든’ 이런다(웃음)! 약만 먹고 안 간다.”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산도 다리가 좋지 않아 갈 수 없다. 지리산이고 설악산이고 선생님들과 많이 오르고 종주도 했다.
“그 대신에 용두산 공원은 좀 걸어. 시간 있으면 올라가. 이제 아픈 것도 모르겠어. 이러다 병도 친구 삼아서 함께 같이 있다가 같이 죽자 한다(웃음).”
부산포 주모, 문화계 원로와 어깨를 나란히
“그림 작품 같은 거 잘 보시겠어요?”
이 질문에 피식 웃으면서 짧게 대답한다.
“살다 보면 눈에 보이지 뭐. 세월이 40년인데 좀 안 보이겠어?”
문화계 원로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니 주막 주모가 아니라 화랑 관장님과의 대화라 해도 믿을 것 같다. 이행자씨도 그런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주모가 아니라고.
“많이 배우지. 좋은 얘기를 많이 듣고 해서 가끔 보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들도 보여. 자기 스스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시인들한테도 이게 시냐? 편지 썼냐? 그런다(웃음).”
문화계 인사는 물론 방송국, 신문사 등 언론인, 대학 총장, 의사 등등이 주모 이행자씨의 고객이자 친구, 모시는 선생님들이었다.
“여행도 그런 분들이랑 많이 다녔어. 1993년도에 러시아에 갔었는데 그때만 해도 러시아 가는 게 쉽지 않을 때잖아. 근데도 갔었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레 을 봤는데 정말 너무 잘 봤어. 진짜 값진 인생 살았다. 돈 주고도 못 사는 삶을 살았어. 결혼? 안 해도 돼. 외로워? 뭣 때문에 외롭노?”
결국 이 특별한 주모는 선생님들의 사랑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고 일평생 결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안 갔어. 그때 당시만 해도 희귀동물 같은 사람이었어. 드레스를 입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 해본 적이 없어.”
행여나 프러포즈를 해오고 연애하자는 자가 있으면 이행자씨한테 걷어차이기 일쑤였다.
“내가 깡패가 됐잖아. 우리 집에 옛날에 왔던 손님들, 어르신들 빼고 내 발로 팔꿈치로 안 차여본 사람이 없다. 어른들 말고는 다 맞았을 거다. 하도 집적거리니까.”
이행자씨는 어떤 누구를 만나는 것보다 매일 찾아오는 어르신과 대화하고 이야기 듣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사랑했다.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대가라는 사람들이랑 대화라도 하려면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신경 써야겠어. 아닌데도 맞다고 해줘야 하고 달래줘야지. 문인들이 아주 잘 삐진다. 붙어 싸우다 술 먹으면 또 화해하고 그랬다.”
당시에는 거의 가족이었다. 옛날 1세대 어르신들이 한창 부산포에 드나들 때는 젊은 사람들은 들어와 앉을 자리도 없었다.
“그 시절에는 흥이 나서 놀다 누군가 지명하면 무조건 노래를 불러야 했어. 근데 절대로 젓가락 숟가락 못 두드리게 했다. 여기는 그냥 막걸리집 아니라고 절대 못하게 했다. 끝나면 박수치고 흥 나면 소리 안 나게 박수쳤지.”
이렇게 부산포 안을 가득 채우는 작가들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정확하게 돈을 받을 수 없을 때였다. 가난한 시절 라면값도 없던 분들이 많았다.
“대학교수도 있었지만 작품 활동만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래서 그때부터 감자 주고 우거지 주고 그럼 술 마시고 잡숫고 그냥 가셨다. 어른들이라 외상값 장부도 없었다.”
그냥 술만 팔면 될 텐데 스스로 예술가의 가치를 흠뻑 느꼈기에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르다고 했잖아. 요즘은 택도 없다(웃음). 주는 만큼 받아야지.”
주막이니까 주모로 불러야지
지금도 주모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모로 불리는 건 싫다. 누군가 무심코 그렇게 부르면 “내가 느그 이모도 아닌데 왜 그리 부르노!” 하며 부산 사투리가 강하게 터져 나온다.
주모라고 불리는 게 그럼 왜 좋을까?
“옛날에 동동주 팔고 그러던 곳을 주막이라고 했잖아? 어르신들이 있었던 곳. 그러니까 주모지. 원래 여기 세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거 하나 남았어. 강나루는 시인 마누라가 하는 곳이었는데 거기도 어려울 때 시인들이 시화전도 열어주고 했던 곳이야.”
그렇다고 모두가 주모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부산 사진의 역사라고 불리는 김탁돈(동아대 전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도는 돼야 부를 수 있단다.
“내가 올해 일흔두 살이니까 한 10년 더 살면 될까?”
갑작스러웠다. 아직도 젊고 생생한 주모의 입에서 그리움이 느껴졌다.
“어른들 참 많이 모셨지. 부산 세관장, TBC 사장, 대학 총장, 회장. 안 온 사람이 없어. 근데 이제 다 돌아가셨다. 나도 선생님들 따라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네. 지금도 선생님들 모여서 동맥 한잔씩들 하시겠지?”
부산포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아직 물색 중이라고 했다. 술 팔고 밥 팔면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이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정말 부산포를 다 접고 나면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옛날에 건물 있을 때는 시골 들어가 살려고 했는데 그건 안 되겠고. 슬슬 산책하고 살 수 있을까 몰라. 성질이 급해서 뭘 할는지. 뭐 일하면서 살겠지.”
칼럼: 우신향병원장 김연상 (정형외과 척추 전문의)
구부정한 어깨 좀 피라는 이야기를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자신은 분명 꼿꼿이 서 있다고 항변하는 환자가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그 청년은 자신감이 위축되어 그렇게 보일 수는 있었겠지만 사실은 척추디스크로 인한 문제가 더 큰 상황이었다. 인간의 척추는 경추(목), 흉추(등), 요추(허리)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흉추 부위의 추간판의 수핵 탈출해 있었다. 우리가 흔히 디스크라고 부르지만 정확히는 ‘수핵 탈출증’ 혹은 ‘척추 추간판 탈출증’이라고 한다.
간혹 외상이나 물리적인 충격으로도 발생할 수 있지만 대체로 척추 추간판 탈출증의 원인은 요추 추간판의 퇴행성 변화에 의해서 발생한다. 퇴행성 변화라고 하니 노년층에서 발생한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유병률을 살펴보면 20대에 발병률이 높고, 40대까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인간의 신체는 탄생과 함께 노화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20대에 발병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며, 10대에도 척추 디스크가 발병할 수 있다.
추간판 탈출증으로 추간판의 수핵이 탈출하면서 신경이 눌리고 통증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방치할 경우 손발 저림이나 마비까지 올 수 있고, 걷기가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빠른 치료가 완치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술 않는 보존적 치료로 완치율을 높여라
수술이 무조건 최후의 치료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질환에 따라서는 수술과 비수술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추디스크에 있어서는 가급적 수술적 치료는 마지막 선택으로 남겨두고, 수술이 필요치 않도록 보존적 치료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좋다. 디스크를 방치하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물리치료를 통해서 신경기능을 회복하도록 도와 통증을 줄이는 방법을 먼저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저하된 신체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환자 개인의 생활습관이나 직업 특성에 맞는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이때 무조건 좋다는 운동법 보다는 환자의 질환 상태와 통증 정도에 따른 동작을 처방받는 것이 중요하다.
탈출증으로 인해 비뚤어진 신체의 규형을 찾는 재활 치료와 함께 척추 근육을 강화하고 탈출한 수액을 원위치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견인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전문 치료사에게 받아야 하며, 마사지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어 순환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이 밖에 적외선 치료나 초음파, 전기 자극 치료 같은 비수술 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환자 대부분은 비수술 치료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되기 때문에 미리부터 수술을 염두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지고 완쾌하는 질환이 아닌 만큼 인내심을 갖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높이 치솟은 팜트리, 그리고 역동적인 태평양 바다까지. 캘리포니아만큼 여름과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비키니 차림으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미녀들과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 이 모든 것을 시니어가 함께 즐겨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곳. 그래서 캘리포니아는 액티비티 시니어들의 천국이다. 꼭 비키니에 서핑이 아니라도 좋다. 패들보드 위에서 우아한 요가는 어떤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는 플라이 피싱은? 와인과 치즈가 담긴 피크닉 바구니와 담요 한 장이면 되는 로맨틱한 음악회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색다른 것에 대한 도전은 늘 그렇듯 삶의 행복지수를 높여준다고. 캘리포니아 시니어들의 이색 여름나기를 소개한다.
◇ 플라이 피싱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이 담긴 영화 을 본 사람이라면 플라이 피싱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플라이 피싱은 곤충처럼 보이는 미끼(플라이 훅)를 날려 보내 물고기를 낚는 방법이다. 진짜 벌레인 것처럼 얼마나 자연스럽게 날리느냐가 중요한데 그래서 필요한 기술이 바로 캐스팅이다.
캐스팅은 플라이 피싱의 백미다. 허공을 가르며 부드럽게 S자 형태의 루프를 그리는 모습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주에서 몇 안 되는 한인 플라이 피싱 전문가인 캐시 김(55)씨는 플라이 피싱이야말로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플라이 피싱은 과격한 몸놀림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이킹이 동반되는 만큼 등산을 즐기는 시니어라면 금상첨화다. 또 물속을 걸어 다녀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몸의 밸런스를 길러주며 하체와 허리 근력을 강화시킨다. 무엇보다 집중력을 길러주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플라이 피싱은 단순한 레저 스포츠를 넘어선, 자연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것이 캐시 김씨의 설명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한 번 배우면 평생 즐길 수 있다는 점, 인조 미끼인 아티피셜 플라이(artificial fly)를 사용하는 친환경 스포츠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플라이 피싱은 1년 내내 가능하다. 강, 계곡, 호수, 바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지만 바다는 캐스팅 거리가 좀 더 길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골프에 입문하듯 플라이 피싱을 처음 배울 때는 전문 강사에게 받는 것이 좋다. 두세 시간 기본 매듭과 캐스팅만 익히면 바로 출조(出釣)가 가능하다. 입문 한 달이면 캐스팅을 통한 짜릿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필요한 장비로는 낚싯대인 플라이 로드(fly rod)와 손잡이의 감는 틀인 릴(reel), 낚싯줄 라인(line) 등이며, 물속에서 입는 옷과 신발 등도 구입해야 한다. 총비용은 1000달러 안팎. 부담 없는 가격은 아니지만 한 번 장비를 구입하고 나면 더 이상의 장비 구입 없이 평생 즐길 수 있다. 플라이 로드는 잡으려는 어종과 장소(호수, 바닷가, 강, 계곡, 시냇물 등)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로드와 릴, 라인과 훅 등이 서로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대부분 지역의 플라이 피싱 전문 매장에서 1회 기본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좌와 출조가 포함된 패키지도 선보이고 있다. 1회 레슨은 보통 50~100달러(약 5만~10만원)인데 장비 대여비가 포함된 가격이다. 또 미국에서 낚시를 하려면 면허가 필요한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1일 면허는 13달러,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면허는 55달러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플라이 피싱 출조를 오고 싶다면 캐시 김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플라이 피싱 전문 자격증인 FFF(Federation of Fly Fishers Certified Casting Instructor)와 캘리포니아 가이드 자격증(California Guide license)를 소유하고 있다.
◇ 한여름 밤의 야외 콘서트
오렌지카운티 풀러턴에 거주하는 한인 리처드 김(65)과 줄리 김(62) 부부는 여름이면 야외 콘서트를 즐겨 찾는다.
몇 해 전 LA 대표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 음악회에 갔다가 여름밤을 즐기는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부부의 특별한 취미생활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멀리 LA까지 가지 않아도, 큰돈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음악회를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30년 넘게 살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동네 공원의 야외 음악회도 찾아냈다. 인근 시티홀 잔디밭에서 매년 여름 주민들을 위한 ‘섬머 콘서트’가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이제 부부는 자동차 트렁크에 캠핑 의자와 담요를 늘 넣고 다닌다. 어떤 날은 커피 한 잔 들고, 또 어떤 날은 시원한 캔맥주를 사들고 간다. 그동안 몰랐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여유다. 김씨는 30년간 운영하던 자동차 정비소를 정리하고 은퇴하면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정식으로 야외 음악회 동호회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소란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부담스럽다면, 여름 한철 이보다 더 좋은 여가생활이 있을까? 소박한 바구니 안에 샌드위치와 치즈, 와인 한 병만 가져가면 된다. 단 분위기가 생명인 만큼 와인잔은 잊지 않는다(깨질 걱정은 없다. 미국에서는 유리잔처럼 생긴 야외 와인잔을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피크닉 바구니를 든 남편과 담요 한 장을 품에 안은 아내, 노부부가 손을 잡고 근처 공원으로 가는 모습은 미국에서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여름이 시작되는 5월부터 9월까지 캘리포니아에서는 낭만 가득한 야외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에서부터 동네의 작은 공원까지, 클래식 공연에서 무명의 밴드까지, 규모도 내용도 출연진도 다양하다.
LA의 대표적인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을 비롯해 ‘샌타바버라 볼(Santa Barbara Bowl)’, 인랜드 ‘레드랜즈 볼(Redlands Bowl)’ 등은 캘리포니아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야외 공연장이다. 이들 모두 공연을 감상하면서 음식과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피크닉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공연 전에 미리 찾으면 여유 있는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공연에 따라 티켓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할리우드 볼의 경우 출연진에 따라 1000달러(약 100만원)를 호가하기도 하지만 종종 5달러짜리 티켓이 나오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무료 관람의 기회도 제공된다. 뒤편 언덕이든 잔디밭이든 음악이 들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즐기면 된다. 담요 한 장과 치즈 한쪽, 와인이 곁들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밖에 또 다른 캘리포니아 관광명소인 데스칸소 가든(Descanso Gardens), 게티센터(The Getty Center), LA카운티 박물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CMA)은 여름철 무료 공연으로 유명하다. 평소 콘서트 일정을 살펴두면 수준 높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샌디에이고 발보아 공원(Balboa Park),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 시티홀의 섬머 콘서트, 롱비치 엘도라도 공원 등도 매년 여름 무료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 패들보드
하와이 원주민들이 섬을 건널 때 통나무에 올라서서 노를 젓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패들보드. 공식 명칭은 SUP(Stand up Paddle)다. 미국에서는 대중적인 여름 레포츠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인 패들보딩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액티브 시니어들 때문이다. 패들보딩이 주는 놀라운 운동 효과와 적당한 스릴이 시니어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다.
뉴포트 비치의 시니어 패들보드 클럽은 보딩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운동이라고 소개한다. 기본자세가 관절염 예방과 척추교정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보딩을 하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 어깨와 허리 등 전신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관절과 근육이 튼튼해진다.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 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서는 것이 관건인데 보통 한두 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일어선 후에는 패들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는 스킬만 익히면 된다. 패들링에 익숙해지면 이때부터는 이리저리 물살을 가르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구명조끼를 착용할 수 있어 수영이 익숙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패들보드는 바다뿐만 아니라 강, 호수, 연못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다. 사실 보드가 익숙해지면 타는 방법도 ‘내 맘’이다. 앉거나 무릎을 꿇고도 가능하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패들보드와 요가, 헬스트레이닝을 접목시킨 신종 레포츠도 등장했다. 특히 패들보드 위에서 요가를 하는 ‘SUP 요가’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하는 운동으로 알려지면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핫’한 레포츠로 떠오르고 있다.
패들보드도 진화하고 있다. 하드보드가 아닌 공기주입식 보드를 개발해 부피를 줄여 휴대가 가능해졌고 밑바닥에 LED 조명을 장착한 나이트서프도 등장했다. 밤바다를 훤히 들여다보며 보딩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캘리포니아에서 패들보드는 바닷가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다. 해변마다 패들보드 대여소가 있어 시간당 10달러(약 1만원) 선에서 대여할 수 있고, 패들보드 요가나 헬스트레이닝은 클래스당 30~40달러 (약 3만~4만원) 선에서 즐길 수 있다.
◇ 펫시터
취미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미국의 직업 안내 포털사이트 트레이드 스쿨(Trade School)에서는 애완견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시니어들에게 ‘펫시터’에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동물과의 교감으로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여자와 개의 천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정도로 개 사랑이 유별나고, 관련된 이색 직업도 많다. 뷰티밴(출장미용트럭), 도그위스퍼러(심리치료사), 펫시터(Pet Sitter), 도그 워커(Dog Walker) 등이 있는데 뷰티밴, 도그위스퍼러, 도그워커 등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요하지만 펫시터는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 휴가기간 중 반려동물을 돌봐줄 펫시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도 넓다.
미국에서는 로버닷컴(Rover.com)이나 도그베케이(DogVacay) 같은 펫시터 중개 사이트가 활성화되어 있다. 도그베케이에는 3만 명에 달하는 펫시터가 활동하고 있다고. 실제로 이들 사이트에서는 은퇴 후 무료했던 삶이 펫시터를 시작하면서 즐거워졌다는 시니어들의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펫시터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소개서와 사진, 기르고 있는 반려동물 사진을 넣어 프로필을 작성한 뒤 운영진에게 보내 승인이 나면 펫시터로 등록된다. 이용자들은 등록된 펫시터들의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최고 시설의 도그 호텔보다 자신의 반려견을 손주처럼 돌봐줄 펫시터를 찾는 반려인이라면, 시니어 펫시터는 선택 1순위가 될 것이다.
펫시팅 가격은 경력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시간당 10~20달러(약 1만~2만원), 1일 맡길 경우는 50~100달러(약 5만~10만원) 선이다.
아입는다. 이때 딱 고민되는 몇 가지! 관리 안 된 ‘발’, 흐르는 ‘땀’ 그리고 냄새, 겨우내 쪄버린 ‘살’까지. 껴입으면 그만이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솔직히 골치, 아프다. 그렇다고 길고 긴 여름을 피할 수 없는 법! 귀찮아 잠시 방심했던 내 몸에 관심을 좀 가져보자. 여름철 고민되는 우리 몸의 한 글자 ‘발’, ‘땀’, ‘살’! 당신은 지금 어떤 게 가장 고민되십니까?
강동성심병원 피부과 김상석 교수 각 브랜드 제공
여름옷이 안 맞는다. 지나온 가을, 겨울, 봄이 야속하기만 하다. 뜨거워진 자외선도 신경 안 쓸 수 없다. 다이어트도 자외선 차단도 시급한 시니어라면 꼭 알아둘 것이 있다. 기온 높은 여름철, 많은 양의 땀을 흘리기 때문에 체내 수분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야외 운동을 할 경우 강한 자외선으로 인해 기미, 주근깨, 검버섯, 잔주름이 늘어나는 등 다이어트 하려다 오히려 피부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기온이 높은 날과 자외선지수가 높은 오전 11시~오후 2시 사이 야외 운동은 가급적 피하고,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자주 수분을 섭취해줘야 한다.
STEP 01- ‘살’ 뺄 때 바르자
몇 년 전만 해도 다이어트와 관련한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해 발품 팔아 다니며 시장조사하고 TV홈쇼핑 채널을 돌려본 결과 역시나 바르는 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지 않았다. 코스노리 ‘올웨이즈 핏 바디톡스’은 유명 로드숍을 뒤지고 뒤져 겨우 찾은 제품. 묽은 로션 제형으로 자극이 강하지 않고 끈적임 없이 살 속에 스며든다. 시원함으로 시작해 꽤 긴 시간 따뜻함이 몸에 남아 있어 땀을 흘려야 하는 운동 전후 바르면 좋다. 주성분인 카페인과 고추추출물, 자몽추출물, 고삼추출물 등이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STEP 02 -‘살’ 뺄 때 먹자
바르고 붙이는 다이어트 제품은 많이 사라졌지만 먹는 다이어트 제품은 꾸준히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운동이나 활동 전후 가볍게 물과 타먹는 CJ제일제당 ‘팻다운톡’ 은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것을 억제하는 HCA(가르시니아감보지아추출물)에 비타민B2와 비타민C가 하루 권장 섭취량 기준 100% 함유돼 있다. 다이어트는 물론 건강까지 생각했다. 자몽맛, 깔라만씨맛, 사과맛 3가지가 있다.
STEP 03- ‘살’ 빼기 어렵다면 입자!
다이어트에 자신이 없다면 보정속옷도 있다. 잘 맞는 보정속옷은 젊은 사람 못지않은 멋진 자태를 뽐낼 수 있다. 비비안 보정속옷 ‘BBM’ 상품개발팀 김현주 대리는 시니어 여성에게 맞는 보정속옷을 고르는 방법은 따로 있다고 설명한다. 상체 군살을 보정하고 싶다면, 상·하체가 붙어 있는 형태인 바디슈트보다는 하체 부분이 없는 바디쉐이퍼가 시니어에게 좀 더 편안하다. 어깨끈 부분은 피부에 자극이 덜 되는, 폭이 넓고 원단으로 처리된 런닝 스타일을 선택한다.
STEP 04-태양을 피하다
자외선차단제는 SPF(자외선차단지수)와 PA(자외선A차단등급)를 표시한다. SPF 수치 및 PA 등급이 클수록 자외선 차단 효과가 크지만 피부에는 자극을 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SPF가 15 이상 되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야외활동이나 피서지 등을 방문할 경우에는 SPF가 30 이상이면 자외선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기존 크림타입은 물론 제형도 다양해 상황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다. 야외 운동 시에 백탁 현상 없는 스틱을, 덧바를 때는 쿠션 제품이 편리하다. 외출 15분 전 일광에 노출되는 피부에 충분히 골고루 발라주고, 2시간 간격으로 덧발라주는 것이 좋다. 외출 후에는 깨끗이 씻어준다.
Dr. said 여름철 태닝 좋을까? 나쁠까?
결론부터 말하면, 태닝은 구릿빛의 건강한 외형을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피부의 측면에서는 결코 안전한 방법은 아니다. 피부는 햇빛에 노출되면서 체내에 비타민D를 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비타민D는 뼈의 성장을 돕고 체내 대사과정을 원활하게 해준다. 반면 자외선은 세포의 DNA를 파괴시켜 피부노화를 촉진시키고 각종 색소 문제를 일으키며 피부암을 발생시킨다. 태닝은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을 줄이기 위한 방어적 변화다. 강한 자외선에 노출될 경우 일광화상이 생길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 손상이 유발된다.
“팬티까지 벗어야 합니까?”
20년 전 5월, 여의도 백화점 4층에 있는 헬스클럽 탈의실에서 필자가 윤 사장에게 한 말이다. 당시 필자는 몸무게가 90Kg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필자의 사업 파트너였던 윤 사장이 갑자기 어디 좀 가자고 하더니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 대표님, 몸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운동 좀 하셔야겠네요, 제가 6개월 끊어드릴 테니까 운동 열심히 하세요”
IMF 이후 사회, 경제에 혼란이 왔듯이 필자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거친 광야에 홀로 서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양어깨를 눌렀다. 이런 것들로 인해 필자는 방황의 길로 들어섰다. 불규칙한 생활, 폭음과 폭식 그리고 엄청난 흡연으로 몸이 갈수록 망가져갔다. 허벅지 양쪽이 쓸리면서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었고 낮은 층수를 걸어서 올라가는데도 헉헉거렸다. 이에 보다 못한 윤 사장이 운동을 권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운동이냐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온 것이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하고 뛰어논 것 외에는 운동이라고는 전혀 한 적이 없는 필자에게 운동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처음 헬스장에 온 사람들이 가장 당황하는 것은 시설에 대한 불편함이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 사용법을 몰랐다. 모든 것이 익숙해지기까지는 불편함의 연속이다. 탈의실에 들어갔을 때 팬티까지 벗고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지, 팬티는 입고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필자는 운동 마니아가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러닝머신에서 30분 아니 15분 걷기도 힘들었는데 모 일간지에서 40분을 쉬지 않고 꾸준히 뛰면 몸이 제2의 탄생을 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읽고 목표를 세웠다.
‘나도 4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몸을 만들겠어.’
일단 주별 계획을 세웠다. 1주일은 9분 걷고 1분 뛰고, 다음 주는 8분 걷고 2분 뛰고 하는 식으로 자신과 약속하고 결국에는 1분 걷고 9분을 뛰게 되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4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의 감동과 환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어매이징 스토리였다.
인간은 끝없이 욕심을 내는 동물이라고 한다. 40분을 뛰고 나니 이제 1시간을 뛰고 싶어졌다. 열심히 노력해 그것도 이루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필자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방법을 찾았다.
‘그래,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필자는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마라톤대회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극한의 날씨만 빼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고 있었다. 주말이면 온 가족과 함께 여행 겸 대회 참가를 위해 전국을 누볐다. 가족들에게도 필자에게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갈수록 탄력을 받아 하프마라톤까지 뛰었다. 처음 도전했던 조일 마라톤 코스는 예술 그 자체였다. 가을의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의 사연을 갖고 목표를 향해 뛰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이 대표님, 더 이상 몸무게 줄지 않죠? 운동만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식단을 조절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웨이트도 병행해야 합니다.”
트레이너가 그해 12월 필자에게 한 말이다. 이제 몸무게는 70kg 위에서 놀고 있다. 60kg대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7개월 사이에 약 20kg을 감량한 것이다. 솔직히 먹을 것 다 먹고 할 것 다해가면서 말이다. 필자의 욕심은 또 60kg을 꿈꾸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 목표도 다음 해 2월에 이루었다.
“이 회장님 운동가시죠.”
2017년 7월 현재 필자의 모습이다.
나방을 고운 시선으로 본 적 있던가? 여름밤, 밝은 조명 주위로 크고 작은 나방이 몰려들면 무서웠다. 누군가는 살충제를 들고 나와 연신 뿌려대기도 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의 사오정 입에서 나오는 나방은 그저 웃음거리. 더럽고 지저분하고 방해되는 날개 달린 벌레. 인간사 속 ‘나방’이란 정체의 위치가 그러했다. 허운홍(許沄弘·64)씨가 나방의 생활사에 대해 관찰하고 알리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차갑던 시선에 조금씩 꽃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부 허운홍, 나방에 빠지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만 ‘나비’가 아닌 ‘나방’을 연구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있다니! 대학 교수라면 이해가 갈 것 같다. 자연계열과는 거리가 멀던 주부가 ‘나방생활사 전문가’로 불린다. 바로 허운홍씨 얘기다. 우선 허운홍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0여 년 동안 직접 채집해 길러낸 나방이 2000여 마리 900여 종에 이른다. 이렇게 채집한 나방은 손수 표본으로 만들었고 올해 초 광릉수목원에 기증했다. 나방뿐만 아니라 파리와 벌들의 표본도 함께 기증해 시민에게 내줬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출신, 곤충과는 멀던 삶. 나이 오십 넘어 그 작고 날라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돌볼 것 많은 주부생활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자식도 남편도 아닌 나방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녀는 왜! 수많은 곤충들 중 나방에 빠지게 된 걸까?
“전업주부로만 살아왔어요. 대학 졸업하고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과 곧바로 결혼했거든요. 뭐든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잘 안 풀렸어요. 그런데 뭘 하고 살 것인가는 늘 고민했죠. 그러다 1997년에 남편이 교환교수 자격으로 영국에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생태학과 만났어요.”
영국에서 생태학에 눈뜨다
가족과 함께 간 영국 케임브리지. 그곳이 나방 연구에 힘을 실어주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케임브리지는 지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도시의 한가운데는 대학교와 도서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배울 것이 널려 있었다. 학업에 대한 갈증과 궁금증이 많았던 허운홍씨는 케임브리지 개방대학에서 관심 있는 것이 있으면 뭐든 찾아서 수강신청을 했다. 천문학에 미술사, 영국사 강의도 들었다. 그중에 생태학도 있었다.
“생소했어요. 식물에 관한 걸 배울 수 있다기에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어요. 그때까지 에콜로지(Ecology·생태학)란 단어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학교였지만 수준은 남달랐다. 생물학, 곤충학, 천문학 전문가가 한 학기 동안 전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숙제도 내주었다. 무엇보다 허운홍씨가 놀란 것은 학문을 대하는 영국인의 자세였다.
“천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은하계를 볼 수 있는 필름과 슬라이드 장비를 가지고 있었어요. 옷은 정말 허름하고 냄새가 날 정도였는데 슬라이드는 다들 가지고 있더군요(웃음). 생태학 수업을 같이 듣는 분과 영국의 유명한 습지에 간 적이 있는데 차 트렁크에 장화며 쌍안경, 돋보기 등 없는 게 없더라고요. 저는 운동화 신고 뒤따라갔거든요. 문화수준인 거 같았어요. 그게 제가 느낀 차이였어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다들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셨어요.”
지식이 넘쳐나는 영국에서 소녀처럼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은 잠시였다. 1998년 한국에 IMF 위기가 와서 1년도 채 못 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조금 더 영국에 빨리 가서 공부를 시작했거나 더 오래 있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늘 아쉬움이 남는다.
벌 대신 나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는데 1999년에 길동생태공원이 문을 열었어요. 2008년까지 생태안내 자원봉사를 하면서 곤충 생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영국에 있을 때 교수님이 소개해준 책도 해석해서 보고 말이죠. 사실 벌을 더 연구하고 싶었어요. 벌이 선구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이 배워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자은행의 시초였을 것 같은 여왕벌의 저정낭, 말벌의 독특한 아파트 생활 등 벌들의 사회생활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꿀벌과 말벌을 제외한 대부분의 벌이 나무줄기 속, 집 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생활을 해 포기했다.
“그래서 나방으로 돌아섰습니다. 처음에는 이쪽 분야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다 연구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구가 전혀 안 돼 있었어요. 도감 대부분이 일본 책을 베낀 거였어요. 영국에 있을 때도 생태학 교수가 일본 책만 소개시켜줬죠. 그때까지 한국 책은 없다고 했어요.”
2007년부터 중부지방을 기점으로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나방 애벌레를 채집하고 인공으로 키워냈다. 수백 회 반복한 끝에 2012년과 2016년에 1권과 2권을 발표했다. 나방의 탄생과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도감이다.
새로운 나방 찾아 순천으로 남하(南下)하다
현재 허운홍씨는 남편과 순천에서 살고 있다. 서울 생활을 접은 이유는 나방 때문이다.
“중부지역 쪽에서만 주로 채집했어요. 친정이 밀양이라 그곳에서도 좀 했고요. 그렇게 900종을 채집했으니 새로운 곳에서 채집을 해보려고 순천에 왔어요. 이곳에 친척 한 명 없는데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웃음). 남쪽은 사는 식물이 달라요. 그래서 나방도 다른 종이 나와요. 예덕나무, 푸조나무 이런 것들은 서울에 없어요. 제주도에서도 살아볼까 생각했는데 여기랑 식물이 비슷하고 섬이라 한계가 좀 있죠. 이곳에 훨씬 생물이 더 다양하게 있어요. 지리산도 가깝고. 내려와서 70~80여 종을 찾았습니다. 백운산, 제석산, 조계산, 봉화산 등 순천 쪽 산은 거의 다 다니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 주위 산을 오르고 반가운 마음에 애벌레를 채집하고 관찰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대학 박사, 교수 같은 명함은 없지만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수 몇 분이 와서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면 어떻겠느냐고 한 적이 있어요. 공부를 하면 채집을 못하지 않냐 물으니까 채집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채집하러 나가면 새벽 6시에 나가서 왕복 6시간, 6시간 채집해서 한두 종 추가해요. 어떻게 공부하면서 할 수 있겠어요? 안 해본 사람들 생각이죠. 벌레들이 생각처럼 쉽게 찾아지지 않아요.”
허운홍씨는 78세까지 2000종의 애벌레를 채집해 나방 성충으로 키워낼 꿈을 가지고 있다.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모아둔 자료를 가지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
“채집 생활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나방을 생활사별로 정리하고 싶어요. DNA 검사를 비롯해서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싶은데 눈이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시력이 너무 떨어져서 의사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원시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만 하는 일들을 멈출 수 없단다.
“제가 78세까지 2000종을 채집하겠다고 허풍을 쳐놔서요(웃음).”
경조사는 못 다녀요
나방 애벌레 채집에 집중하는 기간은 4월 말부터 9월 말까지. 10월에도 밖을 나선다. 비가 오는 날은 사진을 정리하고 그 외 모든 시간은 산 이곳저곳을 다닌다. 나방 엄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특히 표본작업을 할 때는 강의나 다른 일들은 하지 않아요. 6월에도 성남에서 토크쇼에 와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일단 채집이 시작되면 사람도 안 만나요. 친인척 결혼식도 안 가요. 장례식에는 꼭 가죠. 그 외에는 아무 곳도 안 가요.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집중이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은 올해 채집을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묻는다. 애벌레를 집으로 들여와 길러보니 매년 나는 종들이 다른 것을 알게 됐다. 한 해 거르면 영원히 못 보는 개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여름 여행도 포기했다. 이런 허운홍씨. 가족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가족은 서로 관여 안 해요. 예전에 아들들은 ‘엄마 나방이 날라 다녀요,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봐요’ 그러기도 했어요. 손자들은 벌레들에게 너무 관심이 많죠. 친구들은, 제가 경기여고를 나와서 수준이 있거든요(웃음). 동기 모임도 미술관, 박물관 이런 곳에서 하니까 제 생활을 이해해요. 가끔은 제 남편 대단하다고 해요. 벌레 키우는 여자랑 이혼 안 해주고 산다고요.”
그래도 주부로서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새벽에 나갔다 저녁이 돼서 집에 오면 남편 먹을 반찬은 꼭 만들어놓는단다. 남편이 반찬투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자연을 만나다
채집할 때 가방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열어봤다.
“물, 카메라, 우산, 비닐, 샬레(실험도구인 납작한 원통형 용기), 가위는 3개 정도 꼭 넣고 다녀요. 작업하다 가위를 떨어뜨려서 찾으려고 보면 뱀이 있다거나 보이지 않은 곳에 떨어져 못찾을 때가 있거든요.”
가위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식물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잎사귀나 가지를 깨끗하게 잘라주지 않으면 병이 들 수도 있고 끝이 갈라져 보기에도 좋지 않다.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은 가위를 이용해 가지를 잘라주는 것이란다.
“사람 좋을 대로 하면 안 됩니다. 식물 입장도 생각해봐야죠.”
올해 허운홍씨의 나이는 64세. 적지 않은 나이에 매일 새벽 나방이 될 애벌레 채집을 위해 길을 나선다. 집안일하다 생긴 손가락 관절염에 점점 나빠지는 눈, 매일 걸어 다녀 굳은살 박인 발은 물론이고 어깨 통증도 달고 산 지 오래다. ‘가지에 손만 닿으면 되지’ 싶어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 사명감일까.
“여섯 시간을 찾아 헤매야 한두 종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10년을 이렇게 찾은 것입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나방생활사 연구를 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잖아요. 누가 하겠어요. 제가 할 수밖에 없죠. 결과물에 비해 시간이 너무 많이 요구됩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다면 가르쳐주고 싶지만 돈도 안 되는 것을 누가 하겠어요.”
보물찾기, 퍼즐게임 그리고 컬렉션(?)
요즘도 매일 나방 애벌레를 찾아 곳곳을 돌아다니는 허운홍씨는 이를 두고 ‘보물찾기’라고 표현한다. 숲속을 헤매다 눈앞에 새로운 종의 애벌레가 보이면 날아갈 듯 좋단다. 그 시기가 지나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재미, ‘퍼즐게임’에 돌입한다.
“겨울에는 동정(생물의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을 해요. 표본한 것을 쫙 펼쳐놓고 종류를 구분해요. 애벌레 사진 찍어놓은 것과 성충 표본을 보면서 일본 책을 가지고 이름을 찾아요. 밖에 나가는 건 보물찾기, 동정은 퍼즐게임 그리고 모으면 컬렉션이에요. 재밌는 일이 아주 많은 저만의 취미입니다.”
78세가 되면 소속된 학교도 단체도 없지만 나방 아줌마의 멋진 퇴임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에 “2000종 채우면요!” 한마디 외치며 산속으로 걸어갔다.
이른바 ‘홈트’라 불리는 ‘홈 트레이닝(home training)’이 대세다. 피트니스센터 등을 찾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 동영상이나 스마트폰으로 운동 방법을 익히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노출의 계절 여름, 군살 없고 탄력적인 몸매로 옷맵시를 더하고 싶다면 홈트 앱 ‘패션근육운동’을 활용해보자.
SNS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1. 앱 다운로드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패션근육운동’ 또는 ‘홈 웨이트 트레이닝’을 검색해 무료로 내려받는다.
2. 집에서 패션근육 만들기
회원가입이나 로그인을 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앱을 켜면 전반적인 가이드와 트레이닝 스케줄, 가슴·어깨·팔·복근·등·하체 운동 메뉴가 나온다.
3. 홈트 가이드
‘가이드’ 메뉴에는 앱을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간단한 정보가 담겨 있다. 운동시간이나 횟수, 휴식 방법, 주의사항 등을 살펴볼 수 있다.
4. 신체별 운동 선택
앱에서 추천하는 스케줄이나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춘 운동을 고른다. 신체 부위가 적힌 메뉴를 누르면 그에 따른 운동법과 난이도 등을 알 수 있다.
5. 운동 따라 하기
사진과 글 설명을 보고 따라 하거나 동영상을 활용해 동작을 익힌다. 메뉴 왼쪽 상단의 시계 모양을 누르면 언제든 1분 타이머가 가능하다.
6. 레이디 홈 웨이트 트레이닝
울퉁불퉁한 근육보다 적당히 균형 잡힌 몸매를 선호하는 꽃중년이라면 여성 버전을 활용해보자. ‘레이디 홈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검색하면 된다.
300g 남짓의 근육 덩어리가 하루에 10만 번 쉬지 않고 뛴다. 그렇게 퍼내는 양은 8000ℓ가량. 기계라고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고성능이다. 우리 몸 구석구석 혈액을 보내는 심장 이야기다. 이런 심장에도 피가 통하지 않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게다가 정작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기도 힘들다. 바로 심장 관상동맥질환이라는 병이다. 노화 과정에 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이 이 병을 앓고 있다.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심장내과 전기현(全基賢·36) 과장의 도움을 받아 심장 관상동맥질환에 대해 알아봤다.
“심장도 힘차게 움직이려면 연료가 필요해요.” 전기현 과장은 심장 관상동맥질환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면서 심장을 엔진에 비유했다.
“심장이라는 엔진이 열심히 작동하는 것은 혈액을 온몸 구석구석 순환시키기 위해서죠. 생명과 직결되는 이 일을 원활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엔진의 연료가 필요하겠죠. 이 연료를 공급해주는 것이 바로 심장 관상동맥이에요. 의사들이 관상동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생김새 때문이죠. 심장을 감싸고 있는 관상동맥은 마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술과 같은 모양새라서 그렇게 불러요.”
거대한 근육 덩어리인 심장 역시 다른 근육과 마찬가지로 운동을 위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혈액이다. 혈액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고 노폐물 역시 혈액을 통해 내보낸다. 그런데 혈관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병 환자 규모 파악조차 안 돼
“관상동맥을 통해 혈액 공급이 충분치 않으면 심장은 조금씩 죽어갑니다.”
전 과장의 설명이 잘 이해되질 않는다. 심장은 뛰거나 혹은 멈추거나 하는 기관이라 오해하기 쉽다. 그는 여러 가닥의 혈관이 심장을 감싸고 있는데, 특정 혈관이 좁아지다가 막히면 그 혈관과 맞닿아 있는 근육 부분만 괴사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마치 커다란 배의 아래 부분이 여러 구획으로 나눠져 있어, 한쪽에서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도 전체가 침수되는 일이 많지 않은 구조와 비슷하다.
“심장 근육의 일부 세포가 죽는다고 해서 심장 전체가 죽지는 않아요. 그래서 정작 본인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심장 기능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실제로 심장 관상동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각하지 않은 경우 모르는 채 지나가거나,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하더라도 부검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병은 아니다.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해 심장 근육의 일부가 움직이지 않기도 하는데 이를 심근경색이라고 한다. 또 심근경색 중 갑자기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을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한다. 중년 남성의 돌연사 중 80% 정도는 급성 심근경색이 원인이다.
심장 노화의 대표적 질환
전 과장은 심장 관상동맥질환을 심장 노화의 대표적 질환으로 꼽았다. 이 질환은 결국 관상동맥의 동맥경화가 주요 원인인데, 이는 혈관의 노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혈관 벽은 우리가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피부 조직과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어요. 어릴 땐 부드럽고 탄력 있지만, 나이들수록 이 혈관은 점점 딱딱해지죠. 그러다 혈관 안쪽에 동맥경화반이 생기면서 혈관이 좁아지고, 여기에 혈전까지 쌓이면 혈관은 완전히 막히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심장 관상동맥에서 벌어지면 심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이 과정은 일반적인 동맥경화와 마찬가지인데 결국 예방법도 비슷해요. 고혈압과 당뇨병, 고지혈증 등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에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혹시나 나에게 관상동맥질환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좀 더 전문적인 검사를 해봐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 하는 심전도 검사로는 심장 관상동맥질환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심전도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될 때는 이미 중증으로 확대된 경우가 많다.
관상동맥질환을 정확히 검사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에는 운동부하검사가 있다. 시속 6km 정도로 빨리 달리면서 심전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밖에 관상동맥 CT검사나 혈관에 조영제를 투입해 방사선 사진을 찍는 관상동맥 조영술이 있다.
운동할 때 가슴 아프면 의심해봐야
물론 자각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가슴통증이다. 전 과장은 심장 관상동맥질환이 생기면 운동할 때 가끔 심한 통증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를 협심증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은 곳을 오르거나 뛸 때 가슴에 심한 통증이 발생하면 반드시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히 아픈 부위가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이 아니어도 방심하면 안 돼요. 이 병으로 인해 통증이 생기면 일종의 방사통이 나타기도 하는데 왼쪽 어깨에서 왼쪽 팔로 혹은 목으로 타고 내려가는 증상이 일어나기도 해요. 이 역시 관절이 아닌 심장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때의 통증은 휴식을 취하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안정이 된 것일 뿐 병이 완화된 것은 아니어서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이 병으로 인한 합병증도 심각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협심증과 심근경색뿐만 아니라 심부전이나 부정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나같이 심각하지 않은 질환이 없다.
심부전은 심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전신의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숨이 차거나 호흡곤란이 오기도 하고, 쉽게 피로해지면서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는 발이 붓는 등 부종이 오는 것. 심할 경우 전신 부종이 일어나기도 한다.
혈관 관리는 장수를 위한 적금
선택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은 다양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관상동맥이 막히면 두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하는데 하나는 혈관 내에 금속 그물망을 넣고 풍선으로 부풀려 막힌 곳을 뚫는 관상동맥 스텐트 삽입술이다. 다른 하나는 체내의 다른 혈관을 가져다 문제가 생긴 부위에 혈액순환이 되도록 이식하는 관상동맥 우회술이다. 각 치료 방법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스텐트 삽입술의 경우 전신마취도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하죠.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불러요. 한두 시간이면 수술이 끝나고 다음 날 퇴원도 가능합니다. 다만 혈관 내에 이물질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보니 오래되면 막히는 경우가 생겨요. 우회술은 가슴의 내유동맥이나 다리, 팔에 있는 혈관을 가져다 이식하는 수술인데, 회복에 1~2주 정도가 걸릴 정도로 큰 수술입니다. 심장외과 전문의들은 내유동맥이 ‘관상동맥 우회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할 정도인데, 수술에 적당한 조건을 갖춘 데다 이식에 사용해도 인체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이 두 가지 방법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심장내과, 심장외과 전문의가 혈관이 막힌 위치나 환자의 건강상태, 나이 등을 고려해 함께 결정합니다.”
간혹 고령의 환자도 수술을 하기도 한다. 심장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은 환자 중 국내 최고령 기록은 세종병원에서 수술한, 당시 91세의 남성 환자로 스텐트 시술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이 수술을 진행했다.
혹시 특별한 예방법이 있을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일반적인 건강관리법뿐이었다. 결국 이미 잘 알려진 건강관리법이 그만큼 지키기도 어렵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금연과 비만·혈압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고혈압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짜지 않게 먹고, 야채를 많이 먹고, 열량이나 지방이 많은 음식은 삼가야 합니다. 자주 운동하는 것은 기본이고, 탄수화물 섭취도 줄여야 해요. 혈압약 같은, 평소 드시는 약들은 꼭 챙겨 먹어야 합니다. 이 노력들을 저는 일종의 적금으로 표현하는데, 장수라는 ‘만기’를 위해서는 평소의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어쩔 수 없이 지나야 하는 많은 관문들이 존재한다. 학교생활이나 입시, 첫사랑 등 사회적, 감정적 과정들을 거친다. 사람의 몸도 비슷하다. 성장에 따른 성장통도 있고, 연령별로 예방을 필요로 하는 질병도 있다. 사춘기도 마찬가지. 갱년기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관문이다. 노화를 비켜갈 수 없는 누구나 이 갱년기를 경험한다.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에서 만난 김진분(金珍粉·56)씨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이 과정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이어 찾아온 당황스러움은 평범한 중년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건강한 남편과 별 탈 없이 잘 자라준 아들 녀석, 곧 취업을 앞둔 딸아이. 김진분씨의 가정은 전형적인 화목한 가정이었다. 마치 행복을 대표하는 광고 속 모델의 미소와 같은 그런 흠잡을 것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차 싶었다. 이미 어둡고 긴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갱년기였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병, 갱년기증후군
김씨는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언젠가부터 목과 어깨가 뭉쳐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저 피로가 좀 덜 풀렸거나 무리한 부분이 있어 그런가 싶었죠.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도통 사라지질 않았어요. 몸이 불편하니 잠도 잘 안 오고,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피로는 점점 더 쌓여가고, 악순환이었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네에서 마사지도 받아보고, 혹시나 해서 정형외과도 가봤다. 당연히 별 문제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용하다는 한의원도 가봤는데 역시 허탕이었다. 하지만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냥 찌뿌둥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운동량을 늘려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래서 많이 걷고 할 만한 운동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 발바닥이 찌릿찌릿해지면서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졌어요. 몸이 무거워서 좀 움직여보고 싶은데 발이 받쳐주질 않으니 여러모로 곤란했죠.”
그러고 나서 그녀는 갱년기 증상을 겪는 중년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증상과 마주친다. 바로 울화였다. 누군가에게 화를 잘 내지 못하는 김씨의 성격이 더해져 중년의 홍역은 그대로 독이 됐다. 가족이나 누군가에게 윽박지를 법도 한데 모두 다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품은 화는 다시 열이 됐다.
“밤에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몸이 덥고 뜨거우니 겨우 잠이 들어도 얼마 안 돼 깨버리는 과정이 반복됐죠. 이런 좋지 않은 과정이 반복되니까 혹시 큰 병은 아닐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기로 마음먹었어요.”
다행히 다시 물색한 병원은 효과가 있었다. 비슷한 증상들로 고생한 지인의 추천 덕분이었다. 그렇게 지난 4월 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여성건강클리닉 이창훈(李昌勳·53) 교수를 만났다.
이창훈 교수는 김씨를 갱년기증후군 증상을 겪는 중년 여성의 전형이라고 정의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4명 중 1명은 이런 증상을 겪기 마련이에요. 특히 여성의 경우 폐경을 겪으면서 신체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데요, 사람에 따라 적응을 하기도 하고,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지요. 가장 대표적인 증상인 열이나 안면홍조 등도 이 때문이에요. 나이가 많아지면서 마르는 것 역시 열 때문입니다.”
남성보다 여성의 증상이 더 다양
이 교수는 누구나 갱년기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데 김씨처럼 신체적 질환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갱년기 장애라고 설명했다.
“갱년기는 대개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 사이를 말하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10여 년 정도 일찍 맞는 경향이 있어요. 남자도 갱년기 증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는 남자보다 생리적인 면에서 변화가 많고, 정서적인 면에서도 민감한 편이어서 심신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최근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경향과 달리 갱년기는 심하면 30대 초반에도 증상이 나타나는 조기화를 보이고 있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잘못된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 스트레스, 환경적 요인 등이 여성호르몬의 감퇴를 촉진한다는 것. 또한 난소낭종 등으로 난소를 일찍 절제했거나, 자궁근종 등으로 자궁을 적출한 경우에도 수년 내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그렇다면 갱년기 증상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교수가 설명하는 갱년기 증상은 흔히 알려진 것 이상으로 다양했다.
“갱년기 과정에서 겪는 증상들은 셀 수 없이 많아요. 안면홍조에서부터 식은땀, 불안, 가슴 두근거림, 불면증, 잦은 소변, 요실금 등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갱년기 증상입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두통, 목의 통증, 어깨 결림, 손발 저림, 냉증, 요통, 발 통증, 질 건조로 인한 질염 등이 나타나기도 하고, 빈혈이나 갑상선 이상, 우울증, 유방암, 관상동맥질환, 소화기질환, 담석증, 담낭염, 방광염증, 자궁암, 골다공증, 각종 관절염과 관절 부상 등도 갱년기증후군과 무관하지 않아요.”
또 폐경 후 시간이 지나면서 골다공증이 급속도로 진행되기도 하고, 고지혈증이 증가하면서 고혈압, 심장병, 중풍과 같은 심혈관 질환이 발생한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김씨는 첫날 이 교수를 만나 치료했던 날을 기억했다.
“교수님을 처음 찾은 날 굉장히 힘들었어요. 병명도 모르겠고 게다가 큰 병일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있었으니까. 처음엔 몰랐었는데, 온갖 걱정을 하고 있었나봐요. 교수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제 이야기는 하소연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교수님께서 너무 공감을 잘 해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부끄럽게 눈물까지 들켰으니까요(웃음).”
김씨는 이 교수가 증상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해준 덕분에 온갖 걱정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는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했단다. 특히 “병은 마음에 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두고 다니는 것”이라는 이 교수의 조언이 가장 와 닿았다고 말했다.
‘몸의 적응’에 초점 맞추는 한의학
이 교수가 선택한 치료는 초기에 선택하는 치료법 중 하나인 수기치료. 병원에 따라 추나요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치료법은 굳어져 있는 근육을 풀어 긴장도를 완화하고 몸의 순환을 도와준다.
“양의학이 갱년기로 인한 호르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데 집중한다면, 한의학의 관점은 다소 다릅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몸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씁니다. 노화로 인해 부족함이 계속되더라도 불편함이 생기지 않게 만드는 것이 치료의 지향점입니다.”
좀 더 자세히 풀이하면, 갱년기증후군의 한방치료는 크게 노화로 인한 생식력·생명력 저하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개선하는 방법과, 스트레스 등 정서적인 변화로 나타나는 현상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구분한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한약치료는 초기 또는 갑자기 나타나는 증상과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구분해서 처방하는데 가미소요산, 시호가용골모려탕, 육미지황탕, 사육탕, 귀비탕 등의 한약이 쓰인다. 이외에 침이나 뜸치료, 수기치료 등 환자에 따라 다양한 치료 방법이 있고, 환자에게 맞는 운동법을 추천해 집에서 하도록 만드는 자율훈련법도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좋아 자주 쓰인다.
주치의처럼 새로운 동반자로
김씨는 모든 증상이 완치됐지만 계속 병원에 다닐 것이라고 선언했다. 의외였다.
“이번 경험은 제게 건강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도 병이 더 심해지기 전에 맘 맞는 의사를 만나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님 조언대로 식생활에도 변화를 주고, 운동도 시작했어요. 아쿠아로빅 수업도 시작했고, 수업이 없는 날을 대비해 헬스클럽도 끊어놨어요. 또 아파트 주변 산책로가 잘되어 있어서 걷기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겠다고 다짐한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새롭게 주치의가 생겼다 생각하고 교수님도 뵙고 가족의 건강도 부탁드릴 계획이에요.”
이창훈 교수도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면 무조건 참지 말고 병원을 찾아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자신의 갱년기 증상이 어떤지는 갱년기지수(Kupperman’s index) 설문지를 통해 어느 정도 체크해볼 수 있어요. 만약 심상치 않다 싶으면 바로 병원을 찾아 조기치료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한방병원에서는 적외선 체열촬영법을 통해 상열감은 물론 전신에 나타날 수 있는 통증, 수족냉증, 손발 저림 등을 시각적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수양명경경락기능검사로 스트레스 상태나 민감도, 자율신경 균형 상태 등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시는 경우가 많은데 무모한 일이에요.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나을 수 있으니 꼭 조기에 찾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