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산에 가자.”
“그래, 관악산 입구 詩도서관 앞에서 만나자.”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관악산詩도서관으로 들어가 ‘항아리속의 5월의 시’를 잡은 순간 제목과 내용에 깜짝 놀랐다.
김영교의 ‘쉬어가는 의자’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다.
맑은 바람이 앉고 햇살이 퍼질러 앉고 마음을 지나가는 고마운 생각들......
중년의 무거운 어깨를 아는 양 마음의 휴식을 가르쳐 준다.
싱그러움을 만끽하러 일찌감치 등산화와 마음을 재촉했던 부지런한 등산객들과 주민들이 벌써 많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린 복잡한 아스팔트보다는 자연의 흙을 밟자며 많은 시화를 감상하며 오른쪽 등산로인 ‘도란도란 걷는 길’로 올라갔다.
그동안 아파트주변만 몇 번 돌았던 나는 100m도 못 가서 숨을 헐떡인다.
나보다 10살 정도 많으신 언니는 “벌써부터 헐떡이면 어쩌니?” 하시는 말씀에 나의 체면은 계곡 아래 바위틈 사이로 숨어 버렸다.
푸르름과 연두색의 새싹들이 관악산을 채색하고 마지막 남아 숨 쉬는 철쭉꽃이 자연의 싱그러움을 과시하듯 아직도 예쁘게 인사를 한다.
천천히 올라가노라니 알록달록 화려한 차림새의 연세가 있으신 언니들 세분이 과일과 음료수 등 간식을 꺼내 놓고는 아카시아 꽃이 휘날리도록 함박웃음을 쏟아낸다.
“언니~ 좀 쉬었다 가면 안 될까?” 하며 언니를 졸라서 우리도 커피와 떡 등을 꺼내어 솔가지위에 앉아서 인생의 향연을 지지배배 지저귄다.
산속을 싱그럽게 노래하는 새들의 합창 속에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의지한 채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 부부, “아빠~ 힘들어요. 쉬었다가자”며 조르던 초등생은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하얀 아카시아꽃이 향긋함을 전하고 새싹들의 녹음이 신록의 푸르름을 전해 주는 관악산은 바람조차도 싱그러움을 전해주고 있었다.
피톤치드를 진하게 느낄 즈음, 우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호수공원으로 발길을 돌려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운동을 꾸준히 해야지 안 되겠어. 힘들어 언니~” 나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맛있는 만둣국을 그리워하며 발길을 옮긴다.
경쾌하게 조잘대는 사람들이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모습은 등산객과 주민들이 자연 사랑, 환경사랑에 앞장서고 몸소 실천하고 있음을 실감하며 내려왔다.
중년부부가 화려한 등산복차림으로 관악산詩도서관에서 상큼한 등산과 詩의 향연에 빠지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까?
관악산詩도서관은 바쁜 일상생활로 평상시에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詩에 담아 전할 수 있는 ‘詩로 보내는 편지’코너를 마련하였다.
아날로그시대의 손 편지로 낭만을 느낄 수 있도록 우체통, 그리고 편지지와 편지봉투, 또 우표도 비치되어 있다.
관악산을 찾는 등산객과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시 한편을 통해 삶의 여유를 전하고 여운이 진한 향수를 가득 안겨주어 인생의 멋진 그림을 채색했으면 한다.
우리는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삶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희망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난 ‘장수시대(長壽時代)’가 되면서, 건강한 노년은 수명연장만큼이나 중요한 숙제가 됐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듯 지난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었다. 노년의 건강관리와 정신건강, 운동법으로 나눠 진행됐던 강연의 주요 내용을 에 소개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의 이은주 교수가 첫 번째 화두로 던진 질문이다. 이 교수는 아직 과학적으로 노화의 원인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라면서 몇 가지 가능성들을 소개했다.
“노화의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노화 이론은 ‘Wear and Tear’죠. 오래 쓰면 낡아서 닳고 망가진다는 이론이에요. 인체의 노화를 막기 위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생활습관을 건전하게 바꾸자는 것도 상당 부분 이 이론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밖에 몸의 주요 기능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이 원인이라는 신경내분비(Neuroendocrine) 이론도 있고, 활성산소를 노화 인자로 지목하는 산화 스트레스(Oxidative stress) 이론, 수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프로그램(Programmed) 이론도 있어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론은 텔로미어(Telomere) 이론이에요. 염색체의 일부인 텔로미어라는 것이 세포의 수명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이론입니다. 복제 양의 수명은 어미 양의 남은 수명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데, 이미 성체가 돼 수명이 짧아진 상태의 세포를 복제했기 때문에 복제 양들의 수명이나 어미 양이 비슷한 시기에 죽는 것 아니냐는 이론이에요. 그래서 이 텔로미어를 재생해 성장을 촉진하는 연구들이 진행 중입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도 이미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2014년 행정안전부의 통계에 따르면, 100세 이상 인구는 2012년 조사결과에 비해 15% 증가한 1만4592명에 달한다. 이 중 여성이 남성보다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세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는 100세 이상 인구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낮은 편으로 인구 10만명당 2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 65세인 1952년생이 100세까지 살 가능성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기대여명조사가 있었어요. 하지만 30년 후에 태어난 1982년생의 경우는 5명 중 1명이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30%를 차지하는 일본과 같은 상태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래 사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장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장수 노인들을 조사하는 방식을 노화종적연구라 부르는데, 이 교수는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북 장수군에서 한국의 백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보다 6배 정도 많았어요. 교육수준은 수명과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장수하는 사람들은 흡연율이 매우 낮았고 고지혈증, 당뇨, 중풍, 치매, 비만과 같은 만성질환의 빈도가 낮았어요. 간염보균자도 없었고요. 신선한 채소와 과일, 해조류, 버섯, 생선 등을 골고루 먹고, 짜고 자극적이며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멀리했어요.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평소에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생활 태도도 공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교수는 해외 백세인 조사결과 7가지도 소개했는데,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만이 없고 ▲금연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이고 ▲인지 능력이 높고 ▲여성의 경우 40세 이후에도 출산한 경험이 있고 ▲형제들도 함께 장수하며 ▲자녀 역시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오래 살려면 이것 지켜라
장수를 위한 생활습관은 단순하다. 이미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것들이다. 먼저 금연이다. 흡연은 활성산소를 통한 노화를 촉진시키고 동맥경화, 관상동맥질환, 암 발생 등의 원인이 된다. 흡연과 함께 따라다니는 술도 피해야 할 음식 중 하나다. 간질환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도 치명적이다.
흡연이나 음주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이들이 많은데, 쉽지 않겠지만 오래 살려면 담배와 술을 멀리하면서 스트레스에도 강해져야 한다. 이 교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명상이나 요가, 마사지, 그리고 등산이나 산책과 같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해소법을 추천했다.
비만과 수면 이상도 피해야 한다. 노화에 따라 기초대사가 감소하면 복부비만은 따라오기 마련인데, 식사량을 줄이는 등 식사습관을 바꿔나가야 한다. 숙면을 위해서는 음주와 밤 시간의 심한 운동을 삼가야 하고, 카페인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이 교수는 이야기했다. 이와 반대로 권할만한 대표적인 것으로 비타민D가 있다. 비타민D는 근력 향상과 암 예방, 항염증 등 여러 좋은 효과가 있다. 이 교수는 또 적게 먹는 것을 권했는데, 적게 먹으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이론은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연에 나선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김원 교수는 시니어의 운동 방법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강도’라고 강조했다.
운동은 살살 하면 효과 없다
“기본적으로 시니어의 운동 방법은 젊은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무리한 운동으로 다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지 않거나 너무 약하게 하면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만약 운동을 할 때나, 끝난 후에 통증이 지속된다면 본인에게 과도하거나 맞지 않는 운동일 수 있으니 강도를 줄이거나 종류를 바꿔야 합니다. 통증은 몸에서 피하라는 신호이지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해서 규칙적으로 하시는 것이 장수에 도움이 됩니다.”
김 교수는 특히 빠르게 걷기나 조깅과 같은 유산소 운동에서 강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대화’라고 조언했다.
“운동 때문에 숨이 차서 옆 사람과의 대화가 약간 힘든 정도를 중등도 운동 강도라고 이야기해요. 운동 효과를 위해서는 최소한 이정도 강도로 해야 합니다. 반면에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는 효과가 별로 없는 저강도 운동으로 규정해요.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겠죠.”
김 교수는 간혹 특정 운동을 오래해 누적 손상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운동의 종류와 강도를 변경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시니어의 다리운동, 삶의 질 바꾼다
그렇다면 근력운동은 어떨까? 헬스클럽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아령과 알통이다. 그러나 시니어의 근력운동은 하지운동, 즉 다리운동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김 교수는 조언한다.
“근력 운동하면 상체에 근육이 많이 생겨서 몸짱이 되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데, 노년에 너무 무리한 상체 운동을 하면 어깨 통증 등이 생길 수 있어요. 실제 하지의 근육량이 상지보다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하지 근력 운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또 일상생활에서 사고 위험을 줄이는 데도 다리 근력은 필수입니다.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에요.”
김 교수는 계단오르기가 시니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데,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하는 데 좋은 운동 방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다만 계단을 내려올 때는 무릎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간 후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
최근에는 육체적인 건강만큼이나 정신건강도 100세 장수를 위해 관리해야 하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장수의 조건 중 하나로 스트레스 관리가 지목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강의에 나선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는 노년기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우울증과 치매, 신경성 3가지를 꼽았다. 이 중 우울증에 대해 김 교수는 ‘흔한 병’이라고 정의했다.
“정신과 질환 중 가장 많은 질환입니다. 그런데 간혹 우울증과 우울감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기분이 가라앉고, 의욕이 없고, 짜증이 나죠. 그러다 다시 평상시로 돌아갑니다. 이런 경우는 우울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증세가 보름 이상 매일, 하루 종일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봐야 해요.”
우울증의 증상은 보통 기분이 침체되고 눈물이 자주 흐르고 마음이 약해지는 슬픔형,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은 의욕저하형, 갑자기 짜증이 나고 화를 버럭 내는 감정기복형, 뇌기능에 영향을 미쳐 기억력이 저하되고 집중이 안 되는 신체증상형 등 4가지로 구분된다.
김성윤 교수는 우울증 예방과 핵심 치료 방법 중 하나로 ‘햇볕’을 꼽았다.
“우울증 약은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3분의 1밖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나머지는 햇볕과 운동, 수면습관이 중요해요. 햇볕을 받으면서 하는 운동은 효과가 매우 큽니다. 실제로 빛을 쪼이는 광 치료 방법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치매는 시니어들에게는 말 그대로 공포다. 신체적으로 입는 피해만큼이나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끼치는 피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치매는 일반적으로 뇌의 신경세포가 죽는 신경퇴행성질환과 혈관 이상으로 뇌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 생기는 혈관성질환으로 나뉜다.
창조적 행동이 치매를 예방한다
김 교수는 치매 치료를 위해서는 약과 신체운동, 그리고 뇌운동 3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과 신체운동은 짐작할 수 있겠는데 ‘뇌운동’이라니 어떤 운동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뇌운동은 사회생활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뉴스를 보고, 신문을 읽고, 메모를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모임에 나가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이죠. 그저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뇌운동이 됩니다. 뇌운동에는 수동적인 운동과 적극적인 운동이 있는데요, 영화나 책, TV처럼 남이 만들어놓은 창조물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보는 적극적인 뇌운동을 더 권하고 있어요. 일기쓰기도 좋고 무엇을 배우는 것도 좋아요. 또 스스로 길을 찾고 낯선 이들과 만나는 여행도 좋은 뇌운동 중 하나입니다.”
신경성질환도 시니어들이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신경은 운동, 중추, 자율 3가지 신경계로 나뉘는데 시니어들이 겪는 대부분의 신경성질환은 자율신경성질환이다. 땀이 나고,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등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것들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느닷없이 숨이 가빠진다거나 남들은 더운데 혼자 춥고, 시원한 날에 땀을 흘리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심리 상태에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우울, 불안, 걱정, 화, 스트레스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자율신경계가 말썽을 부리면 강아지를 훈련하듯 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식사나 운동, 수면 등 일상생활을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죠. 이런 훈련을 3개월 정도 반복하면 몸이 완전히 적응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요.”
드디어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이던 헌혈 50회를 하고 적십자사 총재로부터 금장을 받는 일을 이루었다. 한마디로 기쁘다. 무엇보다 필자를 건강하게 낳아주시고 별 탈 없이 길러주신 부모님이 제일 고맙고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필자는 선천적(?)으로 적혈구인 헤모글로빈이 적게 생성되어 헌혈 50회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피를 만드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현대 의료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피는 인공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동물의 피를 사람의 몸에 대신 넣어다가는 큰일이 난다. 천년을 산다는 거북이나 학의 피도 사람에게는 소용없다. 오직 사람에게는 사람의 피만 필요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피라하여 다 같은 피도 아니다. A형도 있고 B형도 있다. 사람의 피는 사람에 의해 사람만을 위해 사람의 몸에서만 만들어야 한다. 인체에서 피의 제조는 드라마틱한 종합 예술이고 피를 만드는 것은 인체 창조의 영역이다. 결과적으로 헌혈은 사람에 의해 사람 만을 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람 사랑이다.
피는 인체정보의 보고이며 건강의 상징이다. 혈액형은 유전이 되므로 부모 자식을 알아본다. 피 속에는 50여 가지가 넘는 건강정보가 들어있다. 당뇨, 고지혈증은 물론 간 기능 상태나 각종 암의 생성 여부도 알아낸다. 건강을 평가하는데 깨끗하고 영양소 있는 건강한 피가 온몸을 구석구석까지 잘 순환하면 건강한 사람이다. 피가 몸을 돌지 않으면 살이 썩는다. 피는 혈관을 통해서만 이동해야 한다. 혈관이 터지면 죽거나 병신이 된다. 장수의 바탕은 건강한 피와 혈관이다.
헌혈하기 위해 헌혈의 집에 가면 헌혈자의 건강상태( 체중, 혈압은 물론 헌혈 주기를 적정하게 지키고 있는가? 위험지역(외국과 국내지역 모두 포함)을 방문(숙박)을 하였는가? 를 확인한다. 수 십 개 항목의 문진을 통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의 헌혈은 받아주지 않는다. 건강한 피 인지 전혈비중을 체크하는데 그 수치가 기준치인 1.052에 미달하면 또 불합격이다. 필자는 이 기준치에 미달되어 불합격을 많이 받았고 헌혈하러가서 못하고 돌아올 때의 그 씁쓸함은 송충이 씹은 맛이었다. 불합격된 날은 혈액속의 철분을 보충한다고 시장 통에 가서 동물의 피인 선지를 듬뿍 넣은 선지 순댓국이나 순대를 사먹기도 했다. 병원에 가서 빈혈 원인을 분석한다고 종합 진찰도 받고 철분제도 사먹어 봤지만 효과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체질문제로 생각한다. 다만 지나친 운동이 빈혈을 불러온다고 믿고 있다.
필자가 헌혈하는데 부적합한 몸이기 때문에 헌혈 금장을 받으려고 더 안달을 하였다. 남들처럼 쉽게 쑥쑥 피를 뽑아서 헌혈이 가능했다면 결코 헌혈을 버킷리스트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헌혈하기 적당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지나치면 헤모글로빈이 감소한다.)과 균형 잡힌 식사를 하여 건강한 혈액을 만들기 위해 늘 신경써왔다. 먹은 것이 피를 만든다. 남들에게 건강하고 신선한 피를 제공하기위해 좋은 것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헌혈 금장을 받고 집에 와서 부모님 산소 쪽으로 큰절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족 단체 카톡방에 기쁜 소식을 알렸다. 건강하게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함께 올렸다. 자식들이 내 본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옛 성인의 말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했다. 머리카락 하나라도 자신의 몸이지만 부모로부터 받았으므로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다.
카톡을 보고 눈치 빠른 자식들의 반응이 온다.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사진 모습을 보내왔다, 아이들도 아버지처럼 건강관리를 잘 하고 싶다는 부러움을 카톡에 올리면 영웅이 된 듯 어깨가 으쓱해진다. 세상을 살아보면 남을 도울 일도 너무 많고 어른으로서 모범을 보일 것도 많은데 그중 하나가 헌혈이다. 헌혈 금장을 받는 아비의 모습을 자식들이 본받길 희망한다.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주로 경남 중동부 해안에 밀집한 왜성 터들도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지워져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왜성이라는 이유로 사적지 지정이 해제된 탓이다. 근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그 중요성에 눈을 떠 옛 모습대로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 치욕의 역사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모습이라도 남겨둬야 한다. 더 사라지고 훼손되기 전에 역사 현장 보전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정유재란의 역사적 의미를 천착하기 위해서라도 그 흔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에 게재하기로 한다.
칠천교를 건너다가 소나기를 맞았다. 칠천량(漆川梁) 해전 기념관을 둘러볼 때는 청명한 봄날이었다. 버스 기다리기 지루해 걷기로 작정하고 나섰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한두 방울씩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다리 한가운데 이르러서는 소나기였다. 세찬 바람까지 몰아쳐 금세 신발과 바지 자락이 젖었다.
1597년 7월 16일 새벽 조선 수군 치욕의 날도 이런 날씨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년 난리 이래 적선이 얼씬도 못하던 부산 서쪽 바다에 150여 척 전선(戰船)이 모조리 수장된 참담한 패전의 날도 비바람이 거세었다는 기록을 읽은 탓이리라.
기념관에서 관람한 영상물에는 수군이 곤히 잠든 한밤중 왜군이 작은 배를 몰고 와 판옥선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모르고 자던 조선 수군이 미처 응전 태세를 갖추지 못해 속절없이 왜적의 창칼과 총탄에 쓰러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부산 앞바다에서부터 패주해온 군대가 적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자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있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장수 한 사람 잘못 쓰면 이런 일도 일어난다는 교훈을 칠천량 패전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주말에 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지 뜻밖이라는 표정들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정유년 7월 16일 자에 칠천량 전투 상황 개략이 나와 있다. 격군으로 출전했던 세남(世男)이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알몸으로 찾아와 전한 참상이었다. 7월 4일(음력) 한산도 통제영에서 출진해 칠천도와 옥포를 거쳐 7일 부산 다대포에 정박한 왜선 8척에게 싸움을 걸었는데, 왜군이 뭍으로 도망쳐 빈 배들을 불 지르고 절영도 바깥 바다로 나갔다. 때마침 대마도 쪽에서 적선 1000여 척이 건너오기에 싸우려 했더니 적이 회피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판옥선 6척은 서생포 앞바다로 표류하여 뭍으로 오르다 왜적에게 거의 다 살육당하고 자신은 숲으로 도망쳐 간신히 살아왔다는 내용이다.
늑장을 부리다가 도원수 권율 장군에게 곤장을 맞고 부산포에 출진한 통제사 원균은 제대로 싸워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군 함대가 1000척이나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였음에 틀림없다. 병력과 군량, 병참물자 등을 싣고 오는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수송선단이었다.
원균은 즉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조선 판옥선들은 적진을 향해 부지런히 노를 저어갔다. 그러나 왜선들은 흩어져 달아나기만 했다. 부산 앞바다는 섬이 없어 피해 숨을 곳이 없다. 좀 멀리 나가면 파도가 높은 물마루[水宗]다. 바람은 거칠고 물결은 높다. 왜선들은 접근하다가 달아나기를 반복하는 수법으로 조선 수군의 힘을 빼려는 것 같았다.
간신히 선단을 수습하여 후퇴 길에 들어선 원균은 가까스로 가덕도에 기항했다. 서애 유성룡(柳成龍)은 에 그때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섬에 닿자마자 병사들은 다투어 내려 물부터 찾았다. 군사들이 허둥지둥 물을 찾아다니는 순간 갑자기 섬에서 왜적들이 나타나 덮쳤다. 결국 400여 군사를 잃고 원균은 칠천도로 갔다.”
칠천도로 가는 중에 거제도 북단 영등포에 닿아 밤을 보내려 했으나 적선 500여 척이 추격해왔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피난지가 거제도 서북쪽 칠천도였다. 본섬과 어깨를 겯고 있는 이 섬에는 아늑한 포구가 많아 선단을 숨기기 좋았다. 칠천도 도착은 밤 9시 무렵이었다. 여러 포구에 전선을 분산 정박시키고 원균은 작전회의를 열었다.
경상우수사 배설(裵楔)이 후퇴를 제안했다. “용기백배할 때와 겁낼 때를 구분하는 것이 병가의 계책인데 지금은 싸움을 회피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었다. 원균은 이 말을 수용하지 않았다. 우선 쉬고만 싶었던 것일까.
그대로 주저앉아 뭉개자 권율이 다시 원균을 불러 곤장을 쳤다. 가덕도에 부하들을 버려두고 도망친 죄를 문책한 것이었다. 원균은 부대로 돌아와 술을 마시고 드러누었다. 이 모습을 본 장수들과 병졸들이 통제사를 어떻게 보았겠는가.
배설은 몰래 제 부하들을 이끌고 한산도로 튀어버렸다. 다른 부대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영화 에서 배설은 비겁한 도망자로 묘사되었지만, 그가 인솔해간 전선 12척은 뒷날 이순신의 수군재건에 밑천이 되었던 유명한 ‘상유십이척(尙有十二隻)’의 그 배들이다.
칠천량 해전의 수치
운명의 날은 16일 새벽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다지만 어떻게 번을 섰기에 소형 적선 5~6척이 밤중에 수군선단 정박지에 잠입하는 것을 몰랐을까. 추격을 당하는 패주 길이라면 평소보다 더욱 경계하는 게 마땅할진대, 적병이 판옥선 밑창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도록 모르고 자기만 한 것인가!
원균 함대 곳곳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놀라 일어난 수군들은 미처 전투 태세를 갖출 새도 없이 허둥거리다가 왜군의 총격과 창칼에 쓰러져갔다. 불붙은 판옥선들은 맥없이 침몰했다. 적은 3중 4중으로 조선 수군 함대를 둘러싸고 소총과 포화를 쏘아댔다. 적은 포구에 갇힌 조선 판옥선에 붙어 자기 배 돛대를 누이고 사다리처럼 타고 건너와 맹수처럼 날뛰었다.
단병접전에는 세계 최강이라는 사무라이들이었다. 일본 수군의 전법은 적선에 올라 칼과 창으로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일대일로 벌이는 단거리 접전에 대적할 상대는 없다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이었다.
“15일 밤 2경에 왜선 5~6척이 불의에 내습하여 불을 질러 우리 전선 4척이 전소하여 침몰되자 제장이 창졸간에 병선을 동원하여 어렵게 진을 쳤는데 닭이 울 무렵에는 헤일 수 없이 많은 왜선이 몰려와서 서너 겹으로 에워싸고 여러 섬에도 가득 깔렸습니다.”
에 기록된 선전관 김식(金軾)의 장계(보고서)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김식은 시종 통제사와 같이 행동했기 때문에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임진년 이순신 장군에게 당한 수많은 패전에 절치부심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군 전력을 크게 강화해 떼 지어 건너보냈다. 해전의 명장이라는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도도 다카도라 (藤堂高虎) 등이 거느린 정예 수군이었다.
원균은 가까스로 포위망을 벗어나 도망쳤다. 칠천도 남쪽으로 빠져나가 허겁지겁 서북쪽으로 노 저어 갔다. 가까스로 고성 춘원포에 당도해 대장선을 버리고 뭍에 올랐다.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와 충청수사 최호(崔湖)는 현장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수하 병사에게 업히다시피 뭍에 오른 원균은 산길을 따라 도망치다가 소나무 밑에서 쉬는 사이 추격해온 왜적에 의해 최후를 맞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선전관 김식의 장계에는 그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다.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 후퇴하였으나 도저히 대적할 수 없어 고성 추원포로 후퇴하여 주둔하였는데, 적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마침내 우리나라 전선은 모두 불에 타 침몰되었고, 제장과 군졸들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모두 죽었습니다. …원균은 늙어서 행보하지 못하고 맨몸으로 칼을 잡고 소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신이 달아나면서 돌아보니 왜노 6~7명이 칼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는데 생사를 자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보고서로 인해 원균은 그곳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 숨어 살았던 사실이 뒷날 조사로 밝혀졌다. 조선 수군 전 재산인 전함 150여 척과 1만 안팎의 장병 목숨을 수장시킨 장수가 천명을 다 살았다는 사실은 칠천량 해전의 또 다른 수치다.
원균의 무능이 패인
동아시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조선 수군이 왜 그런 치욕을 당했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추상같던 기율의 해이와 사기 저하라는 게 임진왜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상승 조선 수군이라는 자부심과 명예를 누렸던 수군 장졸들은 후임 통제사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해 옥에 갇히게 한 세력의 중심인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그를 좋게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 수군을 지휘해 전투를 수행할 실력도 지략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장수들과 군졸들이 그와 따로 놀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병사들 사이에는 “이런 군대로는 왜적을 이길 수 없어!”, “적을 만나면 36계 줄행랑이 상책이야” 하는 말들이 돌았을 정도다.
거기에다 원균이 권율에게 곤장을 맞는 사건이 일어나 더욱 영이 서지 않았다. 2년이 넘도록 수군을 떠나 있었던 원균은 전투가 두렵기도 했다. 도원수에게서 득달같이 부산포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날아오는데 따르지 않는 장졸을 이끌고 나가기가 무서웠다. 육군이 안골포와 가덕도를 공격하여 배후를 튼튼히 한 뒤에 수군이 부산을 치는 수륙(水陸) 병진론을 거듭 건의하면서 날짜를 끌다가 권율에게 불려가 곤장을 맞았다.
경상·전라·충청 삼도수군을 거느린 삼도수군통제사는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명령을 듣지 않은 죄가 크기는 하지만, 참모총장을 곤장으로 다스린 사례가 있을지 모르겠다. 육군 책임자인 도원수 권율이 수군 장수를 징치한 이상한 사건이었다.
얼마 후 권율은 또 원균에게 곤장을 쳤다. 6월 안골포 출동에 직접 앞장서지 않고 수하 장수들만 보냈다는 이유였다. 합천 초계에 진을 치고 있던 권율은 사천 곤양까지 내려가 원균을 불러올렸다. 매 맞는 통제사는 수하 장졸들 사이에 웃음거리일 뿐 존경과 신망의 대상은 아니었다. 수하 장졸의 사기가 어땠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조정의 전투 수행 능력 부족도 큰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전투 지휘자 원균의 무능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칠천도로 가지 말고 좀 더 항해하여 한산도 본영으로 갔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칠천도로 갔더라도 경계를 철저히 폈으면 그런 치욕은 면했을 것이다. 쫓기는 군대가 경계를 소홀히 해 적선이 접근하는 것도 몰랐다면 전투의 ABC도 몰랐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주둔지 주변뿐 아니라 물길 곳곳에 척후를 박아 적의 움직임을 손금 들여다보듯 한 이순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능이고 태만이고 무책임이었다.
패전의 결과는 수군에게만 참담한 것이 아니었다. 남해바다를 마음껏 휘젓게 된 왜적은 마음 놓고 전라도 땅을 유린할 수 있었다. 도망친 배설이 한산도 본영에 남은 군량과 병기들을 바다에 처넣고 불을 지르고 도망친 뒤 한산도와 전라우수영까지 적의 손에 넘어갔다.
남해와 순천을 차례로 손에 넣은 적은 전주를 목적으로 두 갈래 협공을 시작했다. 남원성을 지키던 군민이 모두 참살당하고, 전주성도 허무하게 떨어졌다. 두 성만의 불행이 아니었다. 삼남의 백성들은 조정의 청야(淸野)작전에 삶의 뿌리가 뽑혀나갔다. 청야란 왜적에게 이용되지 못하도록 집과 경작지를 태워 청소하듯 깨끗이 들판을 비우는 것이다. 도체찰사가 경상·전라·충청 삼도에 파견되어 제 손으로 제 집과 곡식을 태우지 않는다고 백성들 목을 쳤다. 왜적에게 당하고 제나라 조정에 당한 중첩된 비극이었다.
원균이 상륙한 장소는 고성 ‘추원포’로 기록되었지만, 사실은 ‘춘원포’의 오류로 인정되고 있다. 춘원포는 오늘날 통영시 광도면 황리 안정 국가산업단지가 자리 잡은 곳이다. 통영에서 택시를 타고 찾아간 그곳에 갯마을은 흔적도 없었다. 바닷가에 높다란 조선소 크레인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이런 데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앞섰다. 조선소와 협력 업체들이 타운을 이룬 산업단지가 춘원포일 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택시를 내려 나이 지긋한 현지 주민에게 물으니 “어릴 때 저 너머에 목 없는 장균 묘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며 포구 뒤편 야산을 가리켰다. 거기서 원균이 최후를 마쳤다는 기록에 근거한 설화일 것이다. “옛날부터 이 포구마을을 춘원개라 불렀다”는 주민들 말에서 춘원포 위치를 믿게 되었다.
왜적의 소굴이었던 안골포도 거기서 멀지 않다. 육지가 바다로 길게 뻗어 나온 곶이다. 그 끄트머리 야트막한 야산 꼭대기에 안골포 왜성이 있다. 길가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고 택시를 내렸더니 바로 성터 입구였다. 숨을 헐떡이며 한참 나무계단 길을 오르자, 무너진 성터 위에서 아낙네 둘이 봄나물을 캐고 있었다. 그 너머로 부산 신항 크레인들이 줄지어 서 있고, 성 아래에서는 아파트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성터에서는 가덕도와 거제도가 보인다 했지만 초행자 눈에는 구별이 안 갔다. 남쪽 오른편 어름에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거제도가 아닐까 짐작만 해보았다. 다만 거제도 가덕도 앞바다를 감제할 수 있는 작전 요충지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칠천도에 기항한 조선 수군을 공격한 왜군의 출진 기지가 바로 그곳이었다는 사실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칠천도도 이제는 자동차로 갈 수 있다. 2000년 거제도와 연결된 다리가 생겨 연륙이 되었다. 통영과 연결된 거제대교, 부산과 이어지는 거가대교를 건너 본섬 서북쪽으로 달려가면 바로 칠천도다.
본섬 서북단 칠전삼거리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잠시 벚꽃 길을 따라 걸으니 이내 칠천교였다. 다리 건너편에는 크루즈 관광선 터미널이 자리 잡았고, 주변에는 횟집 숙박업소들이 고객을 부르고 있다. 다리에서 20여 분 더 가면 2013년에 문을 연 칠천해전기념관이다.
거제도 본섬을 마주 보고 걷는 칠천도 바닷길에는 온갖 봄꽃이 다투어 피고, 호수 같은 바다는 에메랄드빛이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약연비(魚躍鳶飛)의 바다가 그런 참극의 현장이었다고 누가 짐작이나 하리오!
근래 경남도에서 거북선 찾기 운동을 벌였다. 칠천량 바다에 가라앉았을 잔해를 건져내 거북선의 실체를 마주해보자는 취지라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10억 가까운 비용과 3년이 넘게 걸린 그 사업의 결실이 보도된 일은 없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백인 경찰의 흑인 폭행으로 시작된 흑백 갈등이 엉뚱하게도 코리아타운으로 불똥이 튀었다. LA폭동이었다. 미국 매스컴들의 편파보도는 살림 잘하고 있던 한 한국 아줌마를 ‘욱’하게 만들었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그녀는 그 길로 정치판으로 뛰어든다.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미셸 박 스틸(62). 미주 한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여성 정치인이자, 현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위원장이다. 그녀를 미국 현지, 산타에나 오렌지카운티 청사에서 만났다.
카운티 슈퍼바이저(County Supervisor). 우리에겐 무척 생소하니 단어 정리부터 해보자. 카운티는 미국 주 정부의 하부 행정 구역으로 캘리포니아 주(州) 오렌지카운티 안에는 총 34개의 시(市)가 포함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세 번째, 미국 전체에서는 여섯 번째로 크다. 인구 320만 명에 한해 예산만 6조원에 이르는 오렌지카운티는 한국의 광역시와 비슷한 규모의 자치단체다.
카운티는 각 지역구에서 선출된 5명의 슈퍼바이저(슈퍼바이저 위원회)가 이끌어 가는데 박 위원장은 2014년 선거에서 한인 최초의 슈퍼바이저로 당선됐다. 지난 1월에는 만장일치로 위원장에 선출, 그녀는 명실상부 오렌지카운티의 행정 수장이다.
“한국뿐 아니라 이곳 한인분들도 낯설어했어요. 당선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슈퍼바이저가 뭐하는 자리냐는 거였으니까요. 그만큼 한인 정치인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죠. 저는 한마디로 오렌지카운티의 모든 살림을 맡아서 합니다. 법을 만들고 집행도 하지요. 소방국, 경찰국, 보건국 관리는 물론 교육, 사회복지, 심지어 쓰레기를 수거·처리하는 일까지 모두요.”
얼마나 바쁘냐는 질문에 다이어리를 살핀다. 존웨인공항의 리모델링과 국제선 비행기의 공항 사용료 문제, 야생 코요테의 사체 처리 법안, 등·하교시간 교통 체증에 대한 주민 항의, 노숙자 샤워와 숙박시설 허가…. 박 위원장의 수첩을 꽉 메우고 있는 현안들이다. 오늘 잡힌 미팅만 4개. 자잘한 방문 약속까지 소화하려면 오늘도 칼퇴근은 어렵겠다며 웃는다. 그녀의 기분 좋은 미소 뒤로 성조기가 아닌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정치인이 된 이유
한국 이름 박은주. 그녀의 고향은 서울 성북동이다. 어린 시절 뛰놀던 학교 운동장이며 창경원(現 창경궁)에 놀러갔던 일, 경복궁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추억이 그녀의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일본 한국교육문화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동경여자대학교 영문학과 1학년이던 197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페퍼다인대학(Pepper dine University)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때만 해도 박 위원장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예쁜 앞치마를 입고 쿠키를 구우며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고. 1981년 테니스 동호회에서 만난 전도유망한 청년 변호사 션 스틸과 결혼해 예쁜 두 딸도 얻었다. 그렇게 현모양처의 꿈을 이루는 듯했지만 그녀의 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LA에서 홀로 옷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국세청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어요. 세금을 속였다며 정말 어마어마한 벌금을 부과했더라고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어요. 어머니는 한국과 일본에서 교편을 잡았던 분이세요. 평생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사셨던 분이 탈세라니… 너무나 억울했지만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소수계가 당하는 부당함과 설움을 알게 됐어요. 거기에 불을 지핀 것이 4·29 폭동이었고요.”
LA 4·29 폭동은 박 위원장에게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자신이 ‘한국인’임을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 1992년 4월 29일 흑인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무죄 선고를 받자 흥분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공권력은 부유한 백인들이 살고 있는 비벌리힐스를 보호하기에 바빴고 결국 폭도들에게 한인 타운으로 가는 길을 내준 꼴이 되었다. 맨손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한인들은 직접 총을 들었고 미국 매스컴들은 앞다투어 한·흑 갈등으로 몰고 갔다.
닷새간 이어진 방화와 약탈로 2300여 한인 업소가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만 5억달러에 이르렀다. 돈 벌기 위해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는 각성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그 대가치고는 너무나 참혹했다. 한인 타운은 그야말로 잿더미로 변했다.
“한마디로 미디어의 횡포였어요. 뉴스, TV 쇼에서 잘못된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정정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뭔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어요. 정치인 친구들이 많았던 남편에게 부당함을 쏟아냈고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정말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어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던 제가 말이죠.”
1993년 LA시장에 출마한 리처든 리오든 선거캠프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그녀는 미국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다. 안 하면 안 했지 적당히 하는 꼴은 못 보는 한국 아줌마의 힘은 어디서나 단연 돋보였다.
시장에 당선된 리오든 시장은 그녀를 LA소방국 커미셔너로 전격 발탁했고 이후 LA공항, LA아동복지국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커미셔너는 해당 분야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면서 시의 전반적인 행정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직책이다.
박 위원장은 이어 1999년 한미공화당협회 회장,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자문위원을 거치며 차근차근 정치 이력을 쌓게 된다.
한인 커뮤니티가 사랑하는 선거의 여왕
사실 박 위원장이야말로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만한 전력의 소유자다. 24년 정치인생에서 세 번의 선거에 출마, 모두 승리했다. 특히 2006년 당시 ‘듣보잡’ 후보에 가까웠던 그녀가 도전한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위원’은 캘리포니아 조세 정책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그녀는 이 선거에서 정치 거목이었던 상대 후보를 꺾고 60.5%라는 득표율로 압승했다. 한국 커뮤니티는 물론 그녀가 속한 공화당 내부에서도 놀란 결과였다. 목소리까지 가냘퍼 보이는 그녀의 이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박 위원장은 서슴없이 ‘한국인의 DNA’ 덕분이라고 말한다.
“처음 출마선언을 하고 후보 인준을 받기 위해 연설을 한 날이었어요. 얼마나 무서웠던지 연설을 마치고 나와서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결국 울음이 터졌죠. 옆에 앉은 분이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아무 말이 없길래 남편이 뭐라고 하더냐 물었더니 그냥 놔두라고 했대요. 금방 다시 씩씩해질 거라고. 미셸은 한국 여자라고요(웃음)!”
박 위원장은 2010년 재선에서도 거뜬히 승리하면서 8년간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재직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그녀의 이름 앞에는 ‘가주 내 한인 최고위 선출직 공직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공화당원’ 등의 수식어가 붙게 된다.
미셸 박 스틸의 러닝메이트는 바로 한인 커뮤니티다. 그녀는 한인 커뮤니티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은 모두 한인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선거는 선거자금이 당락을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에게는 선거자금 캠페인, 모금행사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기부금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들에게는 이것이 낯설기만 하다. 또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유권자 등록이나 투표는 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아쉬운 이야기이지만 한인 유권자 등록률과 투표율은 아시안 커뮤니티에서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셸 박 스틸이 출마하는 선거는 유독 한인들의 투표율이 높다. 박 위원장이 슈퍼바이저로 당선된 지난 2014년 선거에서 오렌지카운티의 한인 유권자 투표율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미셸 박 스틸만큼은 밀어줘야 한다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미주 한인사회의 오랜 숙원인 연방하원에 입성할 인물로 박 위원장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시정에서는 한인 커뮤니티를 어떻게든 메인스트림으로 끌고 들어오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카운티에 공식적으로 미주 한인의 날을 만드는가 하면, 한인 단체가 벌이는 행사를 카운티가 공식 후원함으로써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세형평국 시절에는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한글로 된 안내문을 올리기도 했다. 부당한 세금이 청구된 납세자가 있다면 자신에게 연락하라, 혐의가 입증되기 전에는 무혐의로 믿고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녀 어머니가 당했던 억울함을 한인들에게 다시는 없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강철 벽처럼 느껴지는 주 정부 홈페이지에 한글로 된 안내물이라니… 어찌 한인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한 일이에요. 메인스트림 안에서 한인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으니까요. 임기 동안 하나라도 더 정착시켜놓으려 합니다. 제가 이 자리를 떠나더라도 카운티 차원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요. 그만큼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만 보람도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해요. 내가 왜 이 자리에 오려 했는가를 생각하죠. 정치인은 유권자의 선택으로 살아남는 사람들이에요. 유권자가 내려가라 하면 내려가야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저를 많이 사랑해주고 계세요(웃음).”
박 위원장은 내년 그녀의 네 번째 선거를 치러야 한다. 슈퍼바이저 재임에 도전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 선거자금을 모으는 일이다. 이제 곧 후보들 간의 모금 현황부터 비교하며 당락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들의 보도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다시 전쟁이다.
남편, 그리고 엄마
박 위원장의 정치인생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남편 션 스틸 변호사(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와 어머니 정옥희 여사(2011년 작고)다. 박 위원장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한 세 사람에게는 소소한 추억들이 많다. LA 문단에서 수필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정옥희 여사의 수필집 곳곳에는 딸과 사위 이야기가 있다. 특히 사위 스틸 변호사에 대한 묘사에는 애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람. 우리나라 함경도 사람처럼 일하며 처자 권속을 확실히 지키는 사람. 내가 여행이라도 가는 날이면 손에 돈과 정을 같이 쥐어줄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사위다. 집에 돌아오면 조용한 집 안을 장터같이 활기차게 만들고 장모의 김치볶음밥과 순두부찌개가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사위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생애 최고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정옥희 수필집 모음 중에서)
결혼 36년 차의 남편은 박 위원장에게 늘 휴식 같은 존재다. 캘리포니아 공화당협회 의장까지 지냈지만 정치적 조언보다는 시정에 지친 아내를 살피는 일이 우선이다.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박 위원장을 늘 웃게 만들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지난해 큰딸 채안(29)이 결혼하면서 박 위원장은 사위를 봤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엄마 생각’(박 위원장은 꼭 엄마라고 불렀다)이 더 잦아졌다고.
“참 강하고 현명하셨던 거 같아요. 그때는 엄마로서 이민자로서 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말이에요. 처음 일본에 가서 말도 못하고 친구가 없는 저를 보고 엄마는 늘 웃으라고 했어요. 내가 웃기만 하니 아이들이 ‘아호(바보)’라고 하더군요. 엄마는 그래도 계속 웃으라고 했어요. 정치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미셸은 잘 웃어서 좋다는 말이에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라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엄마가 딸을 위해 내어놓는 솔루션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박 위원장은 자신이 엄마를 추억하듯, 훗날 딸들이 자신을 그렇게 추억해주기를 원한다. 그녀의 뒤를 이어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할 차세대 정치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삶에 덕이 되고 싶고, 길을 먼저 가는 선배로서 그들이 올 길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정치적 야망이요? 그렇게 거창한 표현은 안 어울리고요. 정치인으로서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있어요. 민심과의 소통, 발로 뛰는 열정 그리고 정직이요. 어디까지 가든 소통과 열정, 정직 없이 가게 될까봐 겁이 납니다. 연방하원… 가야죠. 제가 아닌 누구라도 가야 합니다. 제가 갈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갈 것이고 혹 나보다 더 좋은 후보가 나타난다면 저는 미련 없이 그를 밀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 그녀가 고향 성북동의 안부를 묻는다. 두어 차례 한국 지자체의 초청을 받아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지만 정작 추억 어린 곳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 시내 곳곳이 너무 많이 바뀌었지만 성북동은 아직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니 아이처럼 반가워한다. 남편과 함께 꼭 가볼 거라고 코를 찡긋거리며 웃는 그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으며, 열정적이고, 그대로의 자신을 내어 보이는 미셸 박 스틸은 아름다웠다.
4월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니, 이 산 저 산에 상춘객들이 붐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산을 좋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몸이 안 좋으면 산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등산을 하면 우리 몸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복식호흡으로 바뀐다
평지에서 조깅을 하면 거친 숨을 내쉬게 된다. 즉 가슴으로 숨을 쉬는 흉식호흡을 빠르게 하게 된다. 그러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등산을 하면 아랫배와 전신을 움직이면서 거친 숨을 헉헉 몰아쉬게 된다. 즉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 오르막길에서는 평지보다 산소 소모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숨이 가빠지는 것이다.
쓰는 근육도 다르다. 우리 몸은 이러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횡격막을 더 아래로 끌어내려서 한 번에 더 많은 숨을 들이쉬게 된다. 숨을 더 많이 들이쉬기 위해서는 더 많이 내쉬는 것이 필수다. 단전호흡을 할 때도 내쉬는 호흡이 더 길어야 한다.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더 많은 숨을 내쉬기 위해 몸은 가슴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아랫배를 옥죈다. 그래서 단전과 허리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아랫배를 옥죄던 힘을 풀면 호흡이 아랫배까지 깊이 내려가면서 자동적으로 복식호흡이 된다. 이러한 복식호흡은 단전호흡 또는 단전에 뜸을 뜨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도시생활을 하면 머리만 쓰고 몸을 쓰지 않기 때문에, 머리는 뜨겁고 배는 차가운 상열하한증(上熱下寒證)이 생기기 쉽다. 머리가 뜨거워져서 열이 나면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눈도 충혈되고 건조해지며 어깨와 뒷목은 자주 뭉친다. 반면 아랫배가 차가우면 소화가 안 돼 아랫배가 나오고 전립선이 붓고 정력이 떨어지며 다리와 무릎 힘이 약해지고 손발이 시리며, 여자는 자궁 기능이 나빠진다. 그리고 발바닥을 지압하면 몹시 아프다. 머리와 가슴에 열이 몰리면 화병의 상태와 유사하다. 당연히 컨디션이 좋을 리 없어 학생들의 경우는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 등산을 하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 이때 인체 상부에 몰린 열은 복식호흡을 통해 아랫배까지 내려가 손발 끝까지 퍼져나간다. 그래서 등산을 하면 잠도 잘 오고 어깨 뭉침도 잘 풀리고 머리와 눈이 맑아지고 밥맛이 나며 정력이 강해지고 다리 힘이 강해지는 것이다. 손발 시림도 많이 완화된다. 머리와 가슴의 열이 내려가므로 화병과 스트레스도 개선된다.
등산을 하지 않던 사람이 등산을 하면 오르막길에서 굉장히 힘들어하며 숨을 가쁘게 쉰다. 하지만 참고 계속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호흡이 편안해진다. 이때가 바로 뭉쳐 있던 배가 풀리면서 흉식호흡이 복식호흡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특별한 질환, 심장 관련 질환이 없다면 복식호흡으로 바뀌는 순간까지 힘들어도 참고 등산하는 것이 좋다. 빈속에 등산하면 복식호흡으로의 전환이 더 빠르다.
밥맛이 좋아진다
등산을 하면 밥맛도 좋아진다. 한의학에서는 섭취한 음식물을 비위가 맷돌처럼 갈아서 소화를 시킨다고 표현한다. 이때 맷돌을 더 잘 돌리려면 팔다리를 많이 움직여야 한다. 등산은 팔다리를 적극적으로 쓰므로 소화에 좋은 운동이다. 동시에 복식호흡으로 횡격막이 내려가면서 배 운동까지 된다. 다시 말하면 더 많은 숨을 내쉬기 위해 아랫배를 옥죄면서 위장의 연동운동이 더 잘돼서 더부룩함이 사라지고 소화에 좋은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질병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럴 때 기를 돌려서 몸을 치료한다. 약재로는 박하, 귤껍질, 향부자 같은 향이 나는 약재를 많이 사용한다. 기(氣) 편에는 “한가로우면 기가 막힌다”는 내용이 있다. 또 “한가롭게 노는 사람은 몸을 움직여 기력을 쓰는 때가 많지 않고, 배불리 먹고 나서 앉아 있거나 눕는다. 이렇게 하면 경락이 통하지 않고 혈맥이 막혀 노권상이 생긴다. 그래서 귀한 사람은 겉모습이 즐거워 보여도 마음은 힘이 들고, 천한 사람은 마음이 한가해도 겉모습은 힘들어 보인다”면서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지도리는 좀을 먹지 않으니, 사람도 이처럼 적당히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등산하면서 내쉬는 숨과 땀을 통해 우리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고 몸을 단련할 수 있다. 특히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인공의 빛에 노출돼 있는데 이처럼 가까운 것만 보기 때문에 시력에 더 문제가 생기고 마음도 좁아진다. 등산을 하면서 자연의 빛을 받아들이면 눈도 마음도 밝아진다. 따라서 현대인들에게 등산은 매우 필요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뼈가 튼튼해진다
우주 비행사들에게는 골다공증이 직업병처럼 발생한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뼈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몸이 뼈를 발달시키지 않는 것이다. 중력이 없는 바다에서도 뼈가 필요하지 않아 문어, 오징어가 바다에서 살고 있다. 자연에는 사치가 없다. 자연은 필요 없는 것은 발달시키지 않는다. 어릴 때 많이 맞고 자라면 통뼈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뼈는 중력, 즉 압박을 받아야 골밀도가 높아진다.
골다공증 환자가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면 뼈에 강한 압력이 걸리면서 뼈가 단단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어느 산을 가 봐도 40~50대 주부들이 많다. 이것은 등산이 그분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만 뼈의 상태를 봐서 정도에 맞게 운동해야 한다.
하산하다가 무릎을 다쳐 한의원에 오는 환자들이 제법 있다. 대부분은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다친다. 등산할 때는 먼저 몸을 푼 뒤 올라가야 한다. 또 하산할 때는 정면으로 내려오지 말고 옆걸음이나 뒷걸음질 치듯 비스듬한 자세로 내려오는 게 좋다. 무릎 충격이 한결 덜하다.
계곡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갔다가,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불어오는 찬바람에 맞아 독감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 땀구멍이 열린 상태에서 능선의 강한 바람을 맞으면 바람이 몸속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감기가 심하게 걸리고 오래간다. 따라서 능선에 오르기 직전에 방풍이 되는 옷을 입어주는 것이 좋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온탕에서 온몸을 풀어준 다음, 쌍화탕이나 생강차를 마셔주면 좋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정년퇴직 이후의 삶, 제2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며 그 실마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의욕과 체력이 따라주는 젊은 시절부터 ‘취미의 씨’를 뿌려두는 게 중요하다. 취미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젊었을 때 했던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꽤 된다.
그러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걸 방해하는 건 의욕도 체력도 아니고 ‘오래 계속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기회이자 타이밍’이니 남은 삶에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재미’와 ‘보람’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자기 삶의 ‘애호가’일 것이다.
일본 시니어들의 취미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주식, 등산, 워킹, 낚시, 독서, 자수, 골프, 볼링, 시쓰기, 체스, 데생, 원예, 역사, 장기, 분재, 서예, 유화, 과자만들기, 수묵화, 시계수집, 게이트볼, 꽃꽂이 등을 꼽는다. 크게 몸을 움직이는 취미, 머리를 쓰는 취미, 손동작이 필요한 취미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러한 취미는 운동 부족을 해소해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 또한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넓혀주고 쓸쓸한 노후의 고독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60대 남녀의 인기 취미 순위
350개 이상의 취미를 소개하는 일본의 ‘취미찾기닷컴’이 조사한 인기 순위를 잠깐 살펴보자. 먼저 60대 남성은 혼자 하는 여행, 사이클링, 오토바이, 재택근무, 사진, 전자공작(PIC), 절과 신사 순례, 주식, 워킹 순으로 조사됐다. 60대 여성의 경우는 혼자 하는 여행, 재택근무, 온천 순례, 절과 신사 순례, 워킹, 자수, 양궁, 등산, 심리학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참고로 50대 남성의 취미로 사격, 50대 여성의 취미로 소설쓰기, 기타, 퍼즐 맞추기 등이 눈에 띄었다.
내 꿈을 찾아라~ 인생은 60부터
일본의 주쿄(中京) TV는 매주 일요일 아침 5시 45분부터 을 방송하고 있다. ‘아라칸’은 Around Kanreki의 줄임말로 칸레키는 우리말로 환갑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은 환갑 전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꿈에 도전해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힌트를 제안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 소개된 이색 취미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2015년 12월 6일 방송에서는 빙상 위의 컬링(curling)이 아닌 날씨와 관계없이 체육관에서 즐길 수 있는 ‘커롤링(curolling)’이 소개됐다. 20여 년 전 나고야에서 시작된 이래 경기 인구 40만 명을 자랑하는 인기 스포츠로 체력보다는 두뇌게임이라는 점에서 ‘마루 위의 체스’라고도 불린다.
2016년 1월 10일에는 미술 취미로 ‘어탁(魚拓)’이 소개됐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어탁’은 기존의 수묵(水墨) 중심이 아니라 색채와 구도 등을 바꿔가며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꼭 물고기가 아니어도 되며 모든 사물의 본을 떠서 작품으로 만드는 ‘탁화(拓畵)’라는 장르가 새롭게 소개됐다.
그다음 주인 1월 17일에는 카우보이 복장으로 차려입고 컨트리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컨트리 댄스가, 3월 13일에는 1960~1970년대에 붐이 일어나 일렉트릭 기타에 빠졌던 세대들이 밴드를 결성해 제2의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이, 4월 17일에는 실제 동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리얼 양털 퀼트 아트가, 8월 7일에는 다양한 무늬가 특징인 넥타이를 재활용해 가방과 인형 등을 만드는 리폼이 소개됐다. 이 밖에 9월 4일에는 경이로운 종이접기의 세계, 9월 11일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방불케 하는 미니어처의 세계, 10월 9일에는 종이를 오려내 그림을 만드는 ‘키리에(切り絵)’, 10월 23일에는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증기를 뿜으며 달리는 철도 모형 등이 소개됐다. 2017년에 들어와서는 우쿨렐레와 돌하우스(미니어처 장난감 집), 천사의 소리 핸드벨 음악, 볼펜 그림의 세계 등이 전파를 탔다.
이색(異色) 취미보다는 다양한 취미
인구가 많아지고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면서 취미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이색적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끌던 취미들은 최근 덕후(마니아, 광)들이 등장하며 주류와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다. 그만큼 취미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역시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 개척하는 자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들에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치매 예방 차원에서 손가락과 뇌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주산, 바둑, 장기, 손글씨, 그림, 색칠하기, 민요, 노래방, 꽃꽂이 등을 권한다. 간단한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것도 좋다.
몸 푸는 기분으로 이런 취미는 어떨까?
사단법인 일본 화살불기 레크레이션협회는 폐활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취미로 화살불기를 권한다. 실제로 전국의 화살불기 교실에는 60~70대 회원들이 많은데 90세가 넘은 고령자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은 모으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수집한 물건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취미활동을 확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예를 들어 도자기 수집을 하는 사람이 도예 교실을 다니며 직접 만들어보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어떨까? 또 인물과 동물, 자연 풍경 등 사진 찍기를 즐기는 사람은 독거노인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등 자신의 취미와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능기부 나눔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좀 더 관심을 갖고 주변을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들이 많다. 먼저 발품을 팔아 정보를 찾아보고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취미를 선택해보자.
슬슬 발동을 걸어보자
지난 2014년 5월에 구성된 댄스 그룹 ‘TGK48’은 일본 기후 현 다지미 시의 고령자들이 만든 그룹이다. 그룹명은 일본의 인기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다지미, 겐키(건강), 고레샤(고령자)’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를 기치로 내걸고 2016년 8월 60대 42명, 70대 21명, 80대 1명 등 총 64명(남성은 5명)으로 구성된 ‘TGK48’은 힙합도 소화하는 본격 댄스 그룹으로 공공시설을 빌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가량 연습을 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최근 춤을 잘 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크고 작은 행사와 스포츠 대회에 출연,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강사 레슨비 등 연간 100만엔가량의 운영비는 다지미 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고령자의 의료비와 개호비 등의 삭감과 관련해 길게 내다본 다지미 시의 획기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2016년 3월 16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TGK48’ 멤버 35명의 체력을 측정한 결과 전 항목에 걸쳐 동세대의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깜빡이는 빛을 보고 도약하는 데 걸리는 ‘전신 반응속도’는 무려 0.3초대로 2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5초간 빠르게 스텝을 밟는 ‘서서 스텝핑’의 평균 횟수도 60대 멤버가 40.1회, 70대 멤버가 37.7회를 기록해 젊은이 못지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이들의 체력을 측정한 기후대학교 교육학부의 가스가 히카루 교수는 “힙합은 빠른 템포의 음악에 몸의 움직임을 맞추는 춤으로 신경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사전 체크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던 1960년(남 51.1세, 여 53.7세)에 5070은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5070은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들이다. 반백년 만에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올해 김형석 교수의 나이는 98세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 정도(78.3%)는 70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70은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신중년’인 셈이다. 지금의 5070세대는 그 전까지 일과 가족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50세를 넘기면서 ‘신중년’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경제적 토대다. 5070 액티브 시니어가 2040일 때는 월급이라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아직 현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070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이미 은퇴한 5070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적 현금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답습하며 모아놓은 돈을 빼내 쓰는 행위로는 평안한 노후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역 시절 안정적인 생활이 노후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5070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지위를 노후에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재무설계는 재무 상황을 파악하여 관련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구체적인 자금 준비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070세대가 이전까지는 월급을 통해 재테크, 저축, 목돈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왔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 가치관의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를 특별히 ‘은퇴재무설계’라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5070세대에게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
첫째, 속성이 다르다. 재무설계 측면에서 5070세대와 2040세대는 그 속성이 다르다. 2040세대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우물이라면 5070세대는 더 이상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우물이다. 5070세대가 자신의 우물에서 죽을 때까지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막혀버린 샘물이 다시 나오도록 다른 길을 뚫거나, 우물의 물이 썩지 않은 상태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속성이 다른 2040세대 때 해오던 재무설계를 5070에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2040 시절에 고수익·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070 은퇴재무설계는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소비하고 지출할 것인가 하는 현금흐름 중심의 재무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현역 때인 2040 시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When the music change, So does the dance)”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을 노멀(normal) 시대, 그 후부터는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5070세대가 살아왔던 노멀 시대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그리고 저축만 열심히 해도 돈을 불릴 수 있는 시절이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무설계였다. 1980년에 시중은행의 평균금리는 24%였다. 5년 만기 재형저축상품의 금리는 무려 36%였던 적도 있다.
목돈을 만드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72법칙이 있다. 72법칙은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는 공식으로 ‘72÷금리=기간’으로 산출한다. 과거 금리가 24%였던 시절에 1억 원을 예금해두었다면 원금은 3년(72÷24=3) 만에 2배로 불어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떨까? 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하더라도 원금을 2배로 만드는 데 36년(72÷2=36)이나 걸린다. 예전처럼 예금으로 자산을 급속히 늘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모아놓은 한정된 자산으로 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은퇴 자금으로 제법 큰돈을 모아놓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노후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년 2400만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은 2%라 가정하자. 이 사람이 3억원에서 언제까지 노후생활비를 꺼내 쓸 수 있을까? 이는 3억원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3억원을 예금도 적금도 아닌 자신의 금고나 장롱에 넣어두고 사용할 경우(운용수익률 0%) 약 11년이면 소진된다. 운용수익률이 2%일 때는 12년, 4%일 때는 14년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7%일 때는 약 20년으로 노후자금 사용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즘은 노후생활비를 이자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금리생활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셋째, 수명 증가 속도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몇 명일까? 통계청(2016) 자료에 따르면 3159명이다. 90세 이상 인구는 이보다 약 50배 많은 15만 명 정도다. 10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에 비해 72%, 90세 이상 인구는 67%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82.1세로 2년마다 기대수명이 1년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 심지어는 14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퇴직 후 10~20년을 더 산다는 전제로 노후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5070세대 중 액티브 시니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의 기대수명은 더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3.7세로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77.6세)보다 6년이나 더 길다. 한마디로 부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상영된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돈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고,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넷째, 가계 재무상태가 적절치 못하다. 5070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 세대는 전쟁과 굶주림, 경제개발과 IMF 경제위기 등 롤러코스트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축적한 자산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2016)’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자산은 4억4302만원, 부채는 8385만원으로 순자산이 3억5917만원이다. 60대 이상은 자산 3억6648만원, 부채 4926만원, 순자산 3억1722만원이다. 5070세대는 평균적으로 3억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액수다.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50대는 전체 자산의 69%가 부동산이고, 60대의 부동산 비중은 79.1%나 된다. 60대 이상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1656만원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하우스 리치(house rich)’, ‘캐시 푸어(cash poor)’ 현상이다. 자산은 많으나 현금이 없는 것이다. 자산으로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그마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도 파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하면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까? 5070세대의 가장 큰 숙제다.
다섯째, ‘노후난민’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은 5070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충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80세 이후에도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후난민’은 은퇴 후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급기야는 의식주 같은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한 자금조차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이기는 바람에 노후파산이라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적잖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명과의 경쟁에서 돈이 지도록 만드는 원인은 뭘까? 자산관리 소홀, 의료비 부담, 자녀부양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산관리 소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안전심리가 노후난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일에서 은퇴했다고 투자활동까지 막을 내리면 곤란하다. 은퇴 이후에는 나를 대신해 돈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은퇴 및 투자전문가인 노지리 사토시는 노후난민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삶을 은퇴 전과 은퇴 후의 2단계로 구분하지 말고 3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즉 ①직장생활로 ‘돈 버는 시기’, ②은퇴 후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자산 투자기’, ③투자활동을 끝내고 불린 자산을 느긋하게 소진하는 ‘완전 은퇴기’로 구성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불려나가는 ‘자산 투자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지리 소장은 은퇴 후에도 20년 정도는 자산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75세쯤에야 투자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 의료비 부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관련 생활비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보지만 도적처럼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노후 질병’이다. 게다가 꽤 큰돈까지 삼켜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0만2904원으로 전체 인구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9만9315원)보다 3배 이상 많다. 70세 이후 보건의료비 지출은 소비지출의 15.5%나 차지한다. 노인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 부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했으나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문제로 노후에 파산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의료비 지출은 일정연령이 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과 오래 살수록 위험이 급증하고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자녀부양 문제: ‘73만7000원!’ 25세 자녀를 둔 부모가 한 달 자녀에게 쓰는 부양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4명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취업, 결혼한 자녀를 계속해서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해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면 부모의 자녀부양 의무는 끝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캥거루족, 부메랑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부모가 성인 자녀를 돌보는 역부양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란 ‘더블케어(double care)’ 현상에 직면해 있는 5070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김포시에 사는 오영자(52·가명)씨는 요즘 불만이 많다. 당뇨병 치료 중이어서 아침저녁으로 약을 챙겨먹는 것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얼마 전 의사가 인슐린 주사로 치료 방법을 바꿔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복부에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하다니… 인슐린 주사는 치유가 어렵다는 증거라는 주변의 이야기도 자신을 짓누른다. 그녀의 고민은 당연한 것일까? 건국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송기호(宋基壕·46) 교수에게 당뇨 환자들의 일반적인 고민에 대해 물어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당뇨병은 일명 ‘성인병 4종세트(당뇨, 고혈압, 고지혈, 통풍)’의 대표 주자로 꼽힐 만큼 흔한 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선천적으로 포도당을 연소하는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소아 당뇨병을 1형이라고 부르고, 서구화된 식생활이나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세포가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연소하지 못하는 것)이 떨어지는 상태를 2형이라고 부른다. 성인이 되어 발병하는 경우는 2형으로 보면 된다. 유전이나 감염 등도 2형 당뇨병의 원인으로 유추된다.
당뇨병은 혈관병이다
송기호 교수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당뇨병은 정말 완치가 안 되는 병인가?”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대답은 예스였다.
“대부분의 경우 당뇨병은 완치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젊을 때 비만으로 당뇨에 걸렸다가 체중 감량 후 완치한 사례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죠.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완치가 안 된다니 겁부터 날 법하다. 하지만 송 교수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한다. 당을 조절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치료만 잘하면 문제될 일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와 포도당 연소에 관한 병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당 수치’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진짜 주의해야 할 부분은 그다음부터라고 송 교수는 지적한다.
“당뇨병을 무서운 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합병증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당뇨병 환자는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잘 쌓입니다. 당연히 콜레스테롤이 쌓이면서 생기는 병이 문제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서운 것은 대혈관 합병증이에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것들이죠. 그래서 당 수치뿐만 아니라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조절도 함께 신경 써야 합니다.”
당뇨 합병증 중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 망막병증이나 통증, 저림 증세가 나타나는 신경병증 역시 미세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혈관병의 일종.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당뇨병에 의해 망막의 혈관이 손상된 상태를 의미한다. 망막병증은 당뇨 환자의 약 60%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당뇨의 가장 큰 복병은 합병증
안타깝게도 당뇨는 혈관성 질환 외에도 다양한 합병증이 따라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당뇨병성 족부병증(당뇨발)이다. 당뇨발이라 불리는 당뇨병성 족부병증은 여름철 당뇨 환자를 위협하는 당뇨 합병증 중 하나. 하지 절단, 족부궤양 등으로 대표되는 당뇨발은 당뇨병성 신경병증에 의해 상처 발생이 쉬워지는 동시에, 고혈당으로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 않아 발생한다. 따라서 당뇨 환자들은 상처가 발생하지 않도록 발을 잘 관리해야 한다.
폐렴을 당뇨 합병증으로 보기도 한다. 당뇨병 환자는 면역력 감소와 신체기관의 기능 저하로 인해 감염질환에 특히 취약해 감염질환의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지역사회 획득성 폐렴의 경우 건강한 성인에 비해 당뇨병 환자에서 발생 위험이 최대 3.1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깨가 굳는 오십견(유착성관절낭염)도 대표적인 당뇨 합병증 중 하나. 전체 인구 중 오십견 환자가 2~3% 정도인 반면 당뇨 환자는 36%로 5배 이상 발병 위험이 높다. 특히 당뇨 환자의 경우 일반 오십견 환자에 비해 더 통증이 심하고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먹는 약 vs 주사제 무엇이 다를까
당뇨를 치료하는 방법은 먹는 약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환자에 따라 인슐린을 직접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선천적인 1형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 주사가 필수다.
먹는 약과 주사제는 체내에서 작용하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 주사제는 인슐린을 몸속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지만, 먹는 약은 췌장 등 소화기관에서 인슐린 분비를 좀 더 활발히 하도록 자극하거나, 이뇨를 촉진해 당 배출이 잘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송 교수는 “당뇨병 초기 환자의 경우 인슐린 주사를 사용해 혈당을 잘 잡아주면 6개월 이내에 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간혹 주사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계시는데, 치료 효과가 크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특히 당뇨병을 오래 앓으신 분들은 약을 써도 당 조절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인슐린 주사가 효과적이죠”라고 설명한다.
일부 환자들은 ‘주사제=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송 교수의 설명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초기 환자에게 사용하기도 하고, 먹는 약의 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삶의 질이 나아질 수도 있다.
당뇨 약 오래 먹어도 될까
당뇨병은 평생의 친구라고 표현할 만큼 오래 함께해야 한다. 이는 당뇨 약 역시 평생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별 문제는 없을까? 송 교수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약을 많이 먹는다고 체내에 무언가가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24시간 동안 대사되면 사라져요. 오래 먹는다고 문제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간혹 약을 오래 먹으면 좋지 않다고 안 드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경우 혈당 조절이 안 돼서 더 심각한 병까지 얻게 됩니다. 당뇨 약은 무조건 드셔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당뇨 약이 췌장에 무리를 주거나 췌장암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오해하는데, 이 역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뇨 약과는 무관하게 당뇨병 환자의 췌장암 발병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1.5배 정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할 때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는 있다.
나이 들수록 더 위험한 병
시니어의 경우 당뇨병 발병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당을 소비하는 양도 줄어드는 데다 근육의 양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은 줄고 내장지방은 증가해요. 근육 감소는 당뇨뿐만 아니라 낙상 등 다른 질환의 발병 가능성도 높이기 때문에 운동은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관절이 좋지 않다면 아쿠아로빅이나 실내자전거를 이용한 운동이라도 하시는 것이 좋고, 가능하다면 걷기가 가장 좋은 운동이니 일주일에 150시간 이상 약간 땀이 날 정도로 걷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 당뇨병 발병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고혈압, 중풍, 만성신부전 같은 병들이다. 의료진은 환자의 나이와 여명에 따라 맞춤 치료를 진행한다. 여명이 많지 않은 암환자들이 무리하게 혈당 조절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콤한 음료수, 당뇨 환자에게는 독
당뇨 환자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역시 음식이다. 혈당 관리가 음식 섭취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당뇨병학회(www.diabetes.or.kr)를 방문해보면 식생활에 대한 안내가 매우 상세히 나와 있다. 얼마나 먹고 식사 계획은 어떻게 수립하면 좋은지, 외식은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에 관련한 내용들이다. 또 계절별 식단이나 요리법도 알 수 있다.
송 교수는 “식단을 짜서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기본적으로 빵이나 케이크와 같은 가공된 음식을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쌀 역시 백미보다는 가공이 덜 된 현미를 먹고, 고기보다는 생선을 드시고, 야채를 많이 드세요. 그리고 소식하는 습관도 아주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가 특별히 주의할 것을 강조한 것 중에는 음료수가 있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 오렌지주스와 같은 과즙 음료들이다. 당뇨병 환자들은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될 독이라고 송 교수는 말한다. 당뇨에 좋다고 소문난 음식들 역시 맹신해서는 안 된다.
“당뇨병 의사들에게 여주, 돼지감자, 누에가루, 달맞이꽃종자유, 해독주스와 같은 것들은 아주 익숙한 것들이에요. 환자들이 건강식품만 믿고 약을 끊는 경우가 있거든요. 환자에게는 치명적이죠. 당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들은 되레 간수치만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을 복용하시면서 적당히 드시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맹신은 절대 안 됩니다. 방송에 나오는 검증 안 된 일반인의 경험담들도 믿지 마세요.”
당뇨병 소모품비용지원제도를 아시나요?
당뇨병 환자들에게 약값 외에도 부담되는 것이 있다. 바로 혈당 검사지나 채혈침, 인슐린 주사기, 1회용 주삿바늘 등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2015년 11월 15일부터 모든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국민 소모품 구입비용을 지원한다. 본인 비용으로 구매하면 구매 비용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건강보험 당뇨병 환자 등록→처방전 발급→의료기기 판매업소에서 제품 구입→요양비 청구순이다. 언뜻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다니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관련 절차를 도와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지원 금액이 적지 않기 때문에 지금 병원을 다니고 있다면 반드시 챙기자.
는 시니어가 관절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운동을 추천하고 그 방법을 강동경희대학교병원과 공동으로 제작, 연재한다. 척추, 어깨, 팔꿈치, 무릎, 엉덩이 부위에 대한 건강 예방법, 수술 전후 관리, 스포츠 활동 시 주의사항으로 구분해 소개된다. 각 동작들은 시니어의 체력과 몸 상태를 고려해 누워서 혹은 기대어 하는 운동들로 구성됐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김동환 교수
모델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김은혜 물리치료사
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은 어깨와 팔꿈치뿐만 아니라 척추, 무릎까지 모든 관절이 최대 위기인 날이 명절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선 추운 겨울 외부활동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외부활동을 하게 되면 체온이 낮아져, 근육과 힘줄이 심하게 긴장하게 되고,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염증이 악화되기도 쉽다. 여기에 따라오는 장시간 운전도 관절을 해치기 쉬운 요소 중 하나. 가사활동도 문제다. 차례 준비를 위해 불편한 자세로 동일한 동작을 장시간 반복해야 한다.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김동환 교수는 “어깨는 우리 몸의 관절 중 가장 운동 범위가 넓은 부위이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하루 평균 3000~4000번 움직이는 과정에서 퇴행성 변화가 빨리 오게 됩니다. 다만 체중 부하가 되지 않는 관절이기 때문에 뼈와 연골보다는 근육과 힘줄의 퇴행성 변화가 더 흔하게 나타나지요. 그래서 기본적인 스트레칭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어깨·팔꿈치 질환 예방 운동
1 팔 앞, 뒤, 옆으로 흔들기
침대에 엎드려 팔을 위, 아래, 바깥쪽으로 움직이는 운동. 집에 침대가 없으면 책상 등에 한쪽 팔을 기대고 하는 방법도 있다. 이 운동의 명칭은 ‘흔들기’이지만 중력에 몸을 맡겨 흔들기보다는 천천히 움직이며 잠시 멈춰주는 것이 핵심이다. 팔을 뻗은 후에는 5~10초가량 멈춰준다. 엎드릴 때는 베개를 가슴에 받친다.
2 팔 펴서 당기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스트레칭 방법 중 하나다. 팔을 쭉 편 상태에서 팔꿈치 위쪽에 반대쪽 팔의 손등을 걸어 가슴 쪽으로 당긴다. 완전히 당긴 상태에서 5~10초 정도 멈춘다. 팔의 각도를 위로, 중간으로, 아래로 내리는 방향에 따라 뒤쪽의 날갯죽지 주변의 여러 근육들이 각각 스트레칭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 문틀 잡고 가슴 펴기
주변 환경을 이용하는 스트레칭 방법이다. 문의 양쪽 틀에 팔을 걸쳐 체중을 실은 후 상체를 앞으로 가볍게 밀어준다. 시작할 때 어깨는 수평을 유지하도록 하고, 팔꿈치의 각도는 90도 정도가 적당하다. 통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몸을 내민 상태에서 5~10초 정도 유지하고, 1회 운동할 때마다 20회 정도 반복한다. 팔의 각도를 올리거나 내리면서 변화를 주면 가슴 앞쪽의 여러 근육이 스트레칭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 수건 스트레칭
우선 팔을 뒤로 돌려 엄지손가락으로 등을 타고 올라가는 범위를 측정해본다. 잘 안 올라가는 쪽이 운동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쪽이다. 사진에서 왼쪽이 운동 제한이 있는 쪽이라고 가정할 때 몸 뒤에서 수건의 아래쪽을 왼손으로 잡고 위쪽을 오른손으로 잡아 수직으로 세운 상태가 스트레칭 시작 자세다. 왼손으로 가볍게 수건을 잡고 힘을 뺀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수건을 위로 당기는 연습을 한다. 오른손을 서서히 움직이면서 위아래로 수건을 이동시키면 자연스럽게 왼쪽 어깨 주변 근육이 스트레칭되면서 운동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5 막대 스트레칭
지팡이 또는 집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구둣주걱, 우산 등을 이용해도 된다. 막대의 양쪽 끝을 잡고 한쪽 팔을 쭉 펴 이완시켜주는 스트레칭 방법이며, 수건을 이용하는 방법의 반대로 생각하면 쉽다. 운동 제한이 있는 쪽 손을 이번에는 위쪽으로 잡고 아래쪽 손으로 막대를 미는 방법으로 스트레칭을 진행한다. 특정한 각도에 구애받지 말고 머리 위, 수평 방향 등 다양한 각도로 스트레칭한다. 마찬가지로 통증이 없는 범위 내에서 팔을 쭉 편 상태로 5~10초 정도 자세를 유지한다. 각 방향별로 10회 정도 반복한다.
수술 전후 시행할 수 있는 초기 재활운동어깨나 팔꿈치를 다치면 제때 치료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재활이다. 관절 수술은 힘줄을 묶거나 뼈에 고정시키고, 근육과 연골 등에 물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 정상의 운동 범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술 주변 부위에 구축이 오기 전에 재활 프로그램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근력을 키워야 한다.
강동경희대학교병원 김동환 교수는 “수술 전후 가장 중요한 사항은 수술을 담당한 전문의에게 수술방법 및 수술 후 주의사항을 잘 듣고 재활 프로그램을 수립해야 합니다. 수술 방법에 따라 관절가동 범위의 정도나 운동 프로그램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재활의학 전문의와 상담할 때에도 그 내용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조언한다.
1 팔을 서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벽에 대고 걷는 두 다리를 흉내 내듯 손가락을 위로 움직여 팔이 천천히 펴지도록 한다. 어깨나 팔꿈치가 통증을 느끼는 시작점까지 일단 올렸다가 절반 정도 다시 내려온다. 다시 올릴 때는 처음 올렸던 높이보다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도록 서서히 시도해 본다. 반복해서 목표를 정해 시도하면 하루하루 달라지는 높이를 확인할 수 있다.
2 팔을 몸 안쪽으로 밀기
어깨와 팔꿈치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기본 운동이며, 베개만 있다면 집 안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겨드랑이 사이에 베개를 끼운 상태에서 팔꿈치는 자연스럽게 90도 정도로 유지한다. 베개를 누른 후 5~10초 정도 그 자세를 유지한다. 통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시행하며, 너무 무리하게 힘을 주지 말고, 하루에 수회 반복한다.
3 팔을 몸 바깥쪽으로 밀기
팔꿈치를 자연스럽게 90도 정도로 위치한 상태에서 벽과 팔 사이에 베개를 대고, 다른 쪽 손으로는 베개를 받쳐준다. 팔 안쪽으로 밀기와 마찬가지로 베개를 누르면서 힘을 주어 버틴다. 체중을 싣지 않고 팔의 힘으로만 눌러야 제대로 근력을 키울 수 있다. 누른 후 5~10초 정도 자세를 유지한다. 동일하게 통증이 없는 정도로 너무 무리하게 힘을 주지 말고 하루에 수회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