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M.net ‘슈퍼스타K 시즌 5’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가 있었다. 김대성 스테파노(60)다. 당시 20년 전 아내와 사별한 그의 삶과 그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노랫말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아내와 사별하고 어느덧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 ‘슈퍼스타K 시즌5’ 출연 당시 털어놓지 못했던 그와 아내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사별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당초 무거운 분위기의 인터뷰가 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매우 담담한 어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Q. 첫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A. 군대 전역 후였어요. 당시 친구들과 조선 호텔 건너편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어요. 아마 술집이름이 4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가 81년이었죠. 친구들과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유난히 눈에 띄는 거예요. 첫눈에 반한거죠. 무작정 같은 버스에 올라타서 대뜸 말했죠. “만납시다”라고요. 그러더니 아내가 저를 “당신 미쳤어요?”라며 미친놈 취급을 하더라고요.
Q. 그러면 거기에서 만남이 끝난 거예요?
A. 아니요. 끈질기게 집 앞까지 쫒아갔어요.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으니 저희 집 전화번호를 주었죠. 왠지 전화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3월 1일 1시에 명동에 있는 서울 다방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나와 달라고 부탁했었어요.
Q. 결국 다방에서 만남이 성사 됐나요?
A. 아니요. 공교롭게도 2월 27일에 급성 맹장수술로 다방에 나가지 못하게 됐어요. 맹장 수술을 하고 나서도 계속 다방 생각만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친구를 보냈어요. 아내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확인하라고 말이죠. 조마조마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2시쯤 전화가 오더라고요. 떨리는 가슴 부여잡고 전화를 받았죠.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친구에게 왔다 갔다는 쪽지나 남겨놓고 돌아오라고 부탁했어요.
Q. 어떻게 보면 첫눈에 반해 강렬하게 대시했는데, 실패로 돌아간 거네요?
A. 그렇죠. 그런데 이상하게 잠깐 스쳤을 뿐인데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첫 만남 당시 ‘망원동에 사는 조씨’라는 정보를 알게 됐는데, 그 정보만 가지고 무작정 망원동으로 갔어요. 당시 망원동에서 모든 버스가 지나다니던 정류장이 ‘홀트아동복지회’였는데 그녀가 그곳에 올 것 같아서 열흘간 무작정 기다렸어요. 근데 보이지 않더라고요.
Q. 대단한 열정이네요. 그렇게 기다렸는데도 보이지 않았다면, 그냥 한번 보고 지나친 인연 아니었을까요?
A. 그렇죠. 그렇게 잊혀져갔죠. 오랜 기간 본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금방 잊혀져갔어요. 그런데 그해 가을 선배가 운영하던 명동 구둣가게에 갔는데 우연히 ‘망원동 조씨’와 비슷한 여자를 마주쳤어요. 구둣방에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던 거에요. 긴가민가해서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죠. 혹시 “‘조씨’냐”고 하니까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망원동’ 사느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하길래 확신이 들었죠. ‘아! 이게 인연인가보다’라고요. 그 이후 아내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었죠.
Q. 그러면 첫 만남 당시 왜 다방에 안 나왔다고 하던가요?
A. 당시에 불량해 보여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맹장 수술이후 망원동에서 기다렸던 열흘 있잖아요? 그 때 망원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하하
Q. 그 이후 연인 단계로 발전한 건가요?
A. 그렇게 만난 이후에 제가 엄청나게 대시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저를 믿지 못하더라고요. 저를 집안의 재력만 믿고 ‘놀고먹는 놈’처럼 생각돼서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던 거죠. 당시에는 정말 그랬어요. 음악에 미쳤었죠. 음악도 지금과는 달리 메탈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불량해 보였을 거예요. 아내는 포크음악을 좋아했거든요. 아내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놀기만 좋아하는 ‘베짱이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고. 그런데 이후 만남이 지속되면서 연인단계로 발전하는데 성공했어요.
Q. 연애를 하면서 데이트는 주로 어디서 했나요?
A. 사실 데이트는 별 것 없었어요. 당시 제가 하던 출판사에 아내가 많이 놀러 와서 출판사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어요. 아내의 고향이 경기도 여주인데 여주 남한강에서 데이트를 즐겼던 것도 많이 기억에 남네요.
Q. 그렇군요. 그렇다면 결혼까지 순조롭게 진행된 건가요?
A. 사귀면서까지 아내는 절 많이 믿지 못했어요. 음악이라는 것이 사실 소득이 불안정적이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부터 제 모습까지 믿기지가 않았나봐요.
Q. 그런데 결혼은 성공했잖아요. 결혼을 설득하는데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었나요?
A. 아내의 친구들을 포섭했어요. 아내의 친구들에게 최대한 괜찮은 남자로 보이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하니 아내의 친구들이 도와주더라고요. 아내를 설득도 해주고 말이죠. 괜찮은 남자인 것 같으니 결혼하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아내의 친구들이 도와준 결과 그 이듬해 결혼에 골인하게 됐어요.
Q. 결혼 생활은 어땠나요?
A. 결혼 후에 지적인 수준 차이를 많이 느꼈어요. 문학소녀였던 아내와 나 사이에 많은 갭(차이)가 존재했죠. 아내는 결혼을 할 때도 혼수대신 제가 생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책 1000권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문학적으로 많은 공부를 했던 집사람이었기 때문에 제가 작곡이나 작사하는 데에도 많은 영감을 줬어요.
Q. 음악적으로 어떤 영감을 받았나요?
A. 사실 젊은 시절에는 딥퍼플(Deep Purple)과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이 하는 하드락 장르를 좋아했어요. 록커의 길을 걸으려 했던 제 삶을 180도로 바꿔준거죠. 아내가 알려준 레오나르도 코헨(Leonard Cohen)의 ‘버드 온 더 와이어(Bird On The Wire)’를 듣고 충격에 빠졌어요. 정말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뜬 계기였습니다. 이후 포크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Q. 그런데 젊은 시절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입사했습니다. 아내가 음악하기를 반대한 것인가요?
A. 아니에요. 아내는 제가 음악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응원을 해줬지요. 그런데 아내가 항상 이야기한 것이 음악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으로서 집안은 먹여살려야한다고 말이죠. 당시 수입이 변변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입사하게 된 겁니다.
Q. 무난한 결혼생활을 하시다가 아내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때 심정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A. 아내가 30대 초반이던 그 당시 위암 선고를 받았었죠. 굉장히 두렵고 무서웠어요. 저도 함께 죽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정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아내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 말을 듣고 더 담담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곳에서 멋있게 죽을 준비를 하고, 당신은 이곳에서 아이들과 잘 살 준비를 합시다.”
Q. 아내를 떠나보내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외로움이 엄습할 때 새출발을 생각해 본 적도 있나요?
A. 사실 다른 여자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년에 서너번 저를 찾아와요. 꿈속에서 말이죠. 잊혀질만하면 찾아옵니다. 꿈에 한번 나타나면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서 그 여파가 남아있어요. 서너달에 한번씩 그러니 못 잊는거죠 뭐. 어느 날은 미니쿠퍼를 끌고 와서는 “드라이브 가자”고 하더라고요. 정말 생생했어요. 제 모습은 이제 60대 아저씨가 됐지만, 꿈속에 아내의 모습은 아직도 20년전 그대로에요. 그런데 그렇게 한번 나타나면 힘이 되더라고요. 꼭 어렵거나 힘든 시기에 나타나서 힘을 불어 넣어주고 가요.
Q. 하늘에 있는 아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A. 한마디로요? 한마디로는 안되죠. 할 수 있는 모든 미사여구를 다 붙여주고 싶어요. 글도 많이 쓰고 문학적 조예도 깊어 제 삶을 바꿔놓았으니 말이죠. 또 이제는 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신앙생활이라는 새로움을 알려주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여자입니다. 한마디로는 힘들어요.
Q.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할 말이 있다면?
A. 결혼기간동안 잘 못해준 것이 너무 후회돼요. 아내의 정신 세계를 못 따라 갔던 것 같아요. 사실 30대, 40대 때보다 요즘이 더 보고싶어요. 살아 생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제야 말해주고 싶어요. “사랑해 여보!”
생명보험계약 통계로 집계된 남녀 최다 사망원인은 남성은 간암, 여성은 폐암인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생명보험상품 전체 계약을 통해 집계된 남성의 사망원인은 간암이 2010년 2889건, 2011년 2925건, 2012년 2990건으로 매년 제일 많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암으로, 이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은 남녀 모두 폐암으로 알려져있다. 재작년 통계청의 발표를 봐도 남성은 폐암-간암-위암, 여성은 폐암-위암-대장암 순으로 사망률이 높았다.
여성의 사망원인은 지난 3년간 폐암이 1위였으며 2010년 1069건, 2011년 1123건, 2012년 1216건으로 나타났다. 폐암은 또 지난 3년간 남성 사망원인 2위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복강경 위암 수술이 조기 위암 뿐 아니라 모든 병기의 위암에서도 종양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위암 복강경 수술 환자를 대상으로 5년 이상 장기 추적 조사한 세계 최초의 연구 결과다.
분당서울대병원 김형호 교수, 아주대병원 한상욱 교수는 ‘복강경 위암 수술의 장기 결과’ 논문을 통해, 복강경 수술과 개복 수술을 받은 위암 환자 약 3천명을 장기간 분석한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1998년 4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위암 치료를 위해 근치적 수술을 받은 환자 2976명(복강경 위 절제술 1477명, 개복수술 1499명)을 대상으로 복강경 수술과 개복 수술의 장기성적을 위암 병기별(1A~3C)로 분석했다.
그 결과 병기에 관계없이 복강경 수술과 개복 수술이 동일한 생존율을 보임을 확인했다. 수술합병증 및 사망률 또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암 환자에게 복강경 수술이 흔히 시행되고 있지만 그동안 장기 생존을 분석한 연구는 없었다. 이 연구는 세계 복강경 위암 수술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에서 많은 기관이 참여해 모든 병기의 위암에서 복강경 수술이 종양학적으로 안전함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한복강경위장관연구회(KLASS)가 주관한 이번 연구에는 김형호, 한상욱 교수를 비롯해서 동아대병원(김민찬), 신촌세브란스병원(형우진), 여의도성모병원(김욱), 서울대병원(이혁준), 계명대병원(류승완), 부천순천향대병원(조규석), 서울성모병원(송교영), 전남대병원(류성엽) 등이 참여했다.
제 1저자인 김 교수는 “한국에서 복강경 위암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대규모 다기관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세계 의료계의 관심을 받았고, 장기 생존율에 차이가 없음을 입증함에 따라 복강경 위암 수술이 표준 수술법으로 자리 잡는데 중요한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가 임상 암연구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인 ‘임상종양학회지(Journal of Clinical Oncology)’를 통해 발표됐다.
끝이 보이질 않았다.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병원에서조차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참으로 암담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2011년 5월, 의례적으로 받았던 종합건강검진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수술불가라는 의사 소견. 이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보다 더 무서운 병이 세상에 또 있을까? 어릴 때 천연두, 뇌염, 장티푸스 같은 병명들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모두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 흔한 감기조차 거의 걸려보지 않고 살아왔던, 정말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였던 나였으니까.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그 어떤 단어도 이보다 더 무서울 수는 없었다. 끝이 보이질 않았다.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서툰 기대는 욕심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거부한 나는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가족들의 동고동락이 시작되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힘겨운 나날 속에 가족들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고향인 경주에 내려가 매일같이 절에 찾아가 참배를 해보기도 하고, 암에 좋다고 소문난 것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기적적으로 상태가 호전되어 모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다. 선망 증상이었다. 큰 수술을 한 뒤 나타나는 증상으로 수술 전후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오직 내 손을 잡아주던 가족들의 따스함이었다.
수술 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러던 중 2012년 2월, 사랑하는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긴 잠에서 깨어나 병상에서 불현듯 일어섰다. 그리고 나의 지갑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우리카드’를 집어들고 인근 백화점으로 아들 손을 잡고 달려갔다. 입학 축하 양복을 한 벌 사 입히기 위해서였다.
그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내몸에서 인지하였다. 작지만 요동치던 그것은 분명 생명이었다.
환생(還生). 나는 지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직 완치는 아니지만 95% 수준의 회복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부터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며 살고 싶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느꼈다.
암에 걸린 후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시간을 돌아보면 이는 ‘무절제하고 무계획적이었던 나의 삶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병상에 누워 있으며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해야 할 많은 분들, 고마워해야 할 수많은 일들, 보답하며 살아야 할 많은 인연들. 이 모든 것에 감사해하고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詩) 한 구절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이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가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다시 태어난 나의 인생. 정말이지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나 같은 사람도 도와주니 아주 고맙지. 이 늙은이를 찾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낡은 벽돌주택.
최민경(26·여) 사회복지사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방에서 박진순(77)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방에는 각종 약봉지가 흐트러져 있고 낡은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난방비가 벅차 전기장판에 의지하는데, 이마저도 남편인 김윤상(82) 할아버지가 없을 때는 꺼두는 바람에 방에는 한기만 가득하다.박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최씨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털어놓는다.
“할아버지가 위암 통증으로 밤잠을 못 이룰 정도여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몇 번이나 시도했어.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오이도로 가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명동역에서 쓰러져 있었다더라고.”
친딸처럼 할머니의 말을 경청한 최씨는 할아버지를 위한 상담 치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주민센터로 돌아와 상담 내용을 전산망에 빼곡히 입력했다. 그의 근무지인 용산구 청파동에 2만2400여명의 인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 517명,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1509명, 등록 장애인 911명 등을 포함해 5531명의 복지대상자가 거주하고 있다.
최씨를 포함해 4명의 복지담당 공무원이 주민센터에 근무하고 있으니 1명당 1400명 가까운 인원을 책임지는 셈이다.최씨는 이날 오전 8시50분에 주민센터에 출근했다. 새 학기를 맞아 무상보육비·임대아파트·문화누리카드 신청 등이 몰리면서 업무 시작 전임에도 주민센터에는 10여 명의 민원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키자 최씨의 컴퓨터 모니터에 10개 가까운 창이 띄워지고 전화기는 불이 났다. 마음 같아선 맡은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싶지만, 각종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도 허다하다.최씨는 “민원인이 몰려 가정방문은 오전 늦게, 혹은 오후에야 잠깐 할 수 있는 정도”라며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소외계층 어르신 100여명을 다 찾아뵙고 싶지만,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전 9시20분께 초등학생 자녀의 교육비를 신청하러 이모(48·여)씨가 왔다.최씨는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 금융정보제공동의서 등 구비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고 아직은 낯선 도로명 주소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문화누리카드 신청 첫날에는 100명 가까운 민원인이 몰리기도 했어요. 일이 많은 날은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날도 잦죠. 사회복지사들의 업무가 효율적으로 분배됐으면 좋겠어요.”
최근 문화누리카드 사업은 관리 사이트가 자주 먹통이 되는 바람에 접속자가 적은 새벽 시간에 주민센터로 출근해 입력하는 일도 있었다.주민센터는 각종 복지 서비스를 구석구석까지 제공하는 '모세혈관' 같은 역할을 한다. 일손은 모자란 데 주무부처에서 넘어온 일이 집중돼 업무 강도가 높다.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가 작년 4월 발표한 '공공복지전달체계 현황과 개편방안'에 따르면 지난 2012년 6월 기준 우리나라의 3474개 읍·면·동 가운데 사회복지직이 단 1명만 배치된 곳이 1417곳에 달했다.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은 곳이 31곳이나 됐으며, 5인 이상 배치된 곳은 94곳에 불과했다.최근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등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 ‘찾아가는 복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복지 행정 현장은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청파 주민센터의 사회복지를 총괄하는 김종복 팀장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상황에서 통장이 예전처럼 집집이 다니며 상황을 체크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찾아가는 복지’ 중요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주민센터 등에 연락하도록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다짜고짜 욕을 퍼붓거나 불만을 품고 ‘밤길 조심하라’며 협박까지 하는 악성 민원인도 이들을 움츠리게 한다.
대검찰청이 작년 6월 “복지 및 민원담당 공무원이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 같은 행위를 엄중 처벌하기로 발표했을 정도다. 이에 따르면 복지 담당 공무원은 우울증 유병률이 일반인의 3배, 일반 행정공무원의 2배 이상이었고 복지 담당 공무원의 51.9%가 소방·경찰관보다 훨씬 높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사회 소외계층을 책임지는 사회복지사들이 돌봄의 손길 바깥에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작년 2∼3월 경기도 성남·용인과 울산에서 사회복지공무원 3명이 업무 과다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최씨는 “사회복지사는 감정의 소비와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사회복지사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양성근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장은 “현재 인력 시스템에서는 ‘찾아가는 복지’에 한계가 있다”며 “극단적인 경우 한 읍·면·동에서 1500건 이상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경우까지 있다. 최소 6000∼7000명은 충원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 진료비 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어섰다. 노인 진료비는 9.3% 대폭 늘어난 17조 5천283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4.5%를 차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4일 공개한 ‘2013년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지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통계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건보 진료비 총액은 50조7천426억원으로 재작년보다 2조5천77억원(5.2%) 증가했으며 건강보험 가입자 1인당 진료비는 97만1천262원에서 101만5천61원으로 4.5% 늘어나 처음으로 100만원을 넘어섰다.
전체 건보 진료비 가운데 입원 진료비는 전년보다 7.8% 증가한 17조7천279억원이었고, 외래 진료비는 5.9% 증가한 21조1천459억원으로 집계됐다. 가입자 1인당 입원일수는 2.5일, 의료기관 방문일수는 16.8일이었다.
요양기관별 건보 진료비는 약국이 전년도 보다 0.4% 증가한 11조8천688억원으로전체 진료비의 23.4%를 차지했고 의원(10조6천742억원), 병원(8조2천22억원), 상급종합병원(8조624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의 경우 진료비가 3조1천659억원으로 전년보다 21.1% 대폭 증가했다.
성별로는 남성(23조3천965억원)보다 여성의 건보 진료비가 3조9천495억원 많은 27조 3천460억원으로 드러났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10대의 건보 진료비는 1조9천613억원으로 전체 연령대에서 진료비가 유일하게 감소(-1.01%)했고 70세 이상 진료비는 13조859억원으로 전년도 대비 11.99% 늘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진료비만을 따로 집계한 노인진료비는 2013년 17조5천283억원으로 재작년보다 9.3% 증가했으며 노인 1인당 건보 진료비는 305만원으로 전체 1인당 진료비의 3배를 기록했다.
노인들은 백내장(17만9천123명), 폐렴(7만1천624명), 뇌경색(6만8천767명) 등으로 입원한 환자가 많았으며 외래 진료는 고혈압(227만6천507명), 치은염 및 치주질환(152만2천586명), 급성기관지염(151만1천428명) 등의 병명이 가장 많았다.
한편 지난해 암으로 입원진료를 받은 환자는 37만9천724명으로 재작년보다 4.1%증가했으며 암으로 인한 건보 진료비도 2조6천582억원으로 5.2% 증가했다.
아울러 전체 건보 진료비 지출이 많은 암은 간·쓸개암(3천132억원), 기관지·폐암(3천73억원), 위암(2천740억원)이었으며 1인당 건보 진료비는 췌장암(855만7천원), 간·쓸개암(833만5천원)의 순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는 세월만큼이나 신체의 노화도 막을 방도는 없다. 다가올 질병이나 노화를 보다 일찍 예측하고 조기에 예방해서 자신의 신체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 정도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최선이다.
건강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이제 ‘종합건강검진’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어르신들에게 건강검진권은 언제부터인가 현금이나 상품권 못지 않은 꼭 필요한 선물이 됐다.
간혹 건강에 대한 지나친 걱정 때문에 ‘걱정을 사서 한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사실 건강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마음 자세다. 지나친 건강 염려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면 모를까,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적극적으로 알아가려는 자세는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흔히 종합건강검진하면 신체의 모든 병을 다 찾아 낼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한다. 종합건강검진이라는 명칭에서 혼돈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건강검진’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평소 생활습관이나 식습관 등은 아랑곳하지 않고 때마다 받는 건강검진만으로 건강을 지킬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백유진 교수는 “종합건강검진은 성인에게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질병 중에서 증상이 없어도 조기 발견으로 치료 효과가 높은 질병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들을 묶어 놓은 것”이라며 “따라서 현재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 성인으로서 혹시 어떤 질병이 조금씩 자라고 있지나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 검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새해가 되면 남성은 금연, 금주, 운동하기 등을, 여성은 다이어트를 목표로 많이 세운다. 하지만 신년이라고 해서 무작정 무리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먼저 건강검진을 통해 몸 상태를 점검한 후 전문의의 조언에 따라 적합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주요 사망 원인은 각종 암과 뇌혈관, 관상동맥질환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남자는 폐암, 간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전립선암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폐암, 위암, 대장암, 간암, 췌장암, 유방암 순으로 사망하는 빈도가 높다. 때문에 종합건강검진은 이들 질환을 조기예방해서 수검자들이 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종합건강검진이라고 할 때에는 이러한 질환들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검사들이 포함된다. 건강검진의 기본 프로그램은 보통 10여 가지. 신체측정, 안과검사, 청력검사, 폐기능검사, 심전도검사, 혈액검사, 소변 및 대변검사, 흉부X-선, 체지방측정, 상부위장검사, 복부초음파, 유방X-선(여), 자궁검사(여), 골다공증검사 등이다. 이는 건강을 위해 1년마다 받아야 하는 항목들이며, 연령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검진이 추가되거나 제외되기도 한다.
일반적 건강검진에서는 머리가 아프다거나 허리가 아프다, 어지럽다 같은 특정 증상이 있을 때 이러한 증상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어렵다. 때문에 특별히 불편한 곳이 있을 때에는 그 진단을 위한 진료를 반드시 추가로 받아야 한다.
30~50대 직장인들 못지 않게 건강한 노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60대 이상 노령자의 체계적인 건강검진도 중요하다. 이 시기에 질병은 자칫 환자 자신뿐 아니라 전체 가족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건강증진의학과 송호진 과장은 “가족-나이-평생이라는 3요소를 하나의 맥락으로 파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하나의 공동체(가족)에서 평생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나이에 따른 건강관리 역시 ’평생‘이라는 개념과 접목될 때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