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hibition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사진과 명화 이야기
일정 10월 7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창간 125주년을 맞은 잡지 의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이미지들로 패션 사진과 명화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로 불리는 파울로 로베르시, 피터 린드버그, 어빙 펜 등의 작품들을 통해 고흐, 달리, 클림트 등의 명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사진의 대상이나 구성, 기술은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에서 앤디 워홀의 팝 아트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른다. 특별 섹션으로 마련한 ‘보그 코리아’에서는 전통 수묵화의 절제미와 여백이 드러나는 패션 이미지들을 소개한다.
김영태의 편지들: 문인교신전
일정 7월 12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초개 김영태 시인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가 생전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았다. 아울러 시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들의 자료까지 대여받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문인들의 편지인 데다가, 두 사람 간 주고받은 편지가 모두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 의미와 특별함을 더한다. 특히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는 160통에 달한다. 안수길, 어효선, 김구용, 박재삼 등 작고한 문인들의 편지뿐만 아니라 초개 선생이 직접 그린 이병주, 최인훈, 최인호 등의 캐리커처까지 만날 수 있다.
◇ book
인생의 재발견(바버라 브래들리 해거티 저·스몰빅인사이트)
탐사 전문기자로 30년간 지낸 저자가 중년을 둘러싼 8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접 파헤친다. 심리학, 생물학, 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사례를 통해 중년 이후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전문가와 함께 준비하는 스마트 라이프 디자인(삼성생명 은퇴연구소·미래의창)
연금, 재테크, 상속 문제에서부터 건강, 여가, 관계,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노후 대비에 관련한 전반적인 정보를 담았다. 중장년은 물론 2030세대에게도 도움이 되는 전문가의 현실적인 조언이 실려 있다.
◇ movie
플립(Flipped)
를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이 2010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영화로,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국내 개봉을 확정지었다. 공식 개봉 전부터 네이버에서 영화 평점 10점 만점의 9.45점을 기록하는 등 호평을 얻었다. 포스터 속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을 만난단다’라는 문구는 영화 속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하는 대사로 애틋한 감성이 묻어난다.
개봉 7월 13일 장르 로맨스 감독 롭 라이너 출연 매들린 캐롤, 캘런 맥오리피, 존 마호니 등
프란츠(Frantz)
상실을 경험한 독일 여자와 비밀을 간직한 프랑스 남자 사이의 거짓과 진실, 용서와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 프랑스와 독일이 겪은 전쟁의 아픔을 실질적으로 담아내는 등 리얼리즘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한 여주인공 폴라 비어는 이 영화로 2016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흑백과 파스텔 톤으로 담아낸 영상은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봉 7월 20일 장르 드라마 감독 프랑수아 오종 출연 피에르 니네이, 폴라 비어 등
◇ stage
김씨네 편의점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미스터 김’의 인생 후반전과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자식을 통해 이어지길 바라는 부모 세대, 그리고 그런 부모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살고자 하는 자녀 세대의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일정 7월 13~23일 연출 오세혁 출연 장용철, 최현미, 이화정 등
나폴레옹
나폴레옹과 그의 연인 조제핀, 노련한 정치가 탈레랑, 세 사람을 주축으로 한 나폴레옹의 웅장한 여정이 펼쳐진다. 객석과 무대에 40문의 대포가 설치될 ‘워털루 전투’, 다비드의 명화 ‘나폴레옹의 대관식’ 등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장소 샤롯데씨어터 일정 7월 15일~10월 22일 연출 리처드 오조니언 출연 임태경, 한지상 등
캣츠
화려한 무대와 음악으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내한한다. 이번 공연은 더욱 역동적인 군무와 더불어 의상의 색깔이나 패턴, 헤어스타일 등이 업그레이드돼 이전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 일정 7월 11일~9월 10일 출연 맷 안토누치, 애덤 배일리, 로라 에밋 등
1945
동아연극상에 빛나는 작가 배삼식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위안소를 탈출한 명숙과 미즈코의 역경을 통해 요동치는 시대 속 민족의식과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장소 명동예술극장 일정 7월 5~30일 연출 류주연 출연 박윤희, 김정은, 성여진 등
지난번 책정리를 하면서 아주 오래된 DVD와 CD가 제법 많이 나와서 일부 챙겨 두었었다. 그러다가 엊그제 시간내어 몇 편 보게 되었는데 그 중 가볍고 부담없는 영화 한 편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요즘 필자는 영화든 음악이나 그림이든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거나 골치아프면 반갑지가 않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연일 들려오는 뉴스는 시원치가 않다. 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마음 다스리기도 만만찮은데다가 지구 저편에서는 잇단 테러소식이 들려오고 어딜가나 세상 살기 어려운 이야기가 난무한다. 영화까지 무겁고 꼰대스러운 잔소리는 도움이 될리 없다.
이럴 때 하늘에서 10억원이 든 돈가방이 뚝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영화 밀리언즈 ,
어느날 기찻길옆 들판에서 놀고 있던 어린 두 형제의 머리위로 돈가방이 떨어진 것이다. 언제나 성서 속의 성자들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는 7살짜리 동생은 하느님이 착한 일 하라고 내려 보내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엄청난 돈이 생겨버린 동생은 만나는 사람들 마다 ‘가난하세요?’ 라고 묻는다. 그러나 돈의 힘을 알고 있는 영리한 9살짜리 형은 어른 흉내를 내며 돈의 위력을 맛보기도 한다.
그런 천사표 동생과 형의 투자 마인드가 조금씩 엇갈리면서 가벼운 미소를 만들어 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돈은 영국의 화폐가 유로화로 통합되기 열흘전이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의 흐름이 또 하나 생긴다.
돈가방을 가지고 생기는 어린이 영화라면 그 돈을 노린 악당들과의 한바탕 숨가쁘고 빠른 전개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돈의 사용 때문에 골몰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가 일단은 우선이다. 물론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살짝 골치아픈 일이 일어나기에 갑작스러운 돈다발의 출현은 행복보다는 역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구나 싶긴 했다. 물욕에 치우쳐 사는 세상사람들의 돈타령을 놀려먹는 감독의 의도를 눈치챌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이는 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내세워서 영화 전면을 흐르는 환한 햇살과 음악, 그리고 동화적인 상상으로 유쾌한 한 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주근깨가 귀여운 두 아이의 활약 뒤에는 환하고 밝은 하늘과 들판이 있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고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밝은 기분을 이어간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가방이라는 기상천외한 소재랑, 열흘 후면 유로화로 통합되거나 아니면 휴지가 되어 버리는 이야기라니 이 무슨 장난질 같은 이야기인가 싶다. 황당해 하면서도 마지막 화면에 올라가는 자막을 보면서 가뿐한 영화보기가 될 것이다. 게다가 사는 일에 쫒기느라 때가 덜 묻었던 아득한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는 시간도 가져볼 수 있으니 또한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허무맹랑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수 있는 만화나 동화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나름대로 즐거워진다. 사실은 내 머리가 깨져도 좋으니 내 머리 위에도 왕창 돈벼락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잠깐이라도 괜히 더 즐거워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2017년 5년30일부터 8월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은 올해 열리는 전시 중 손꼽히는 주요 전시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하는 필자의 전시 도슨트를 원고로 옮겨, 현장감을 느끼며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글 옥선희 동년기자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프랑스의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소장전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끼르티에 현대미술 재단의 공동 기획전입니다. 즉 까르티에 재단 작품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게 아니라, 까르티에 측 제안을 받고 2015년부터 전 과정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참여하여 기획된 전시입니다.
카르티에 현대 미술재단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은 까르티에라는 명품 기업 후원으로 출발했지만, 100% 독립된 비영리 재단입니다. 프랑스에서 현대 미술을 지원하는 첫 기업 재단으로 출발했습니다. 설립자이자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는 알랭 도미니크 패랭이 프랑스 문화부 의뢰로 만든 기업의 미술 후원 보고서 초안 ‘레오타르법’이 현재 프랑스에서 공식적인 예술 후원법 기초가 되었습니다.
기업 메세나의 혁신적 모델인 재단은 1984년 베르사이유 궁 근처 조각공원에서 다양한 전시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10년 간 운영했다. 젊은 작가 발굴 - 지속적 지원 - 세계적 작가로 키우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페이 다웨이, 후 한루 같은 큐레이터와 비평가 배출/ 학제적(學際的) 접근, 즉 다양한 분야 학자와 예술가의 협업을 꾀했는데요. 전시 디자인을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식이 그것입니다. 이번 서울전은 이세영 -논 스탠다드 스튜디오가 전시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재단이 출범한 1984년은 백남준 작가가 3부작 위성 시리즈 첫 작품 을 선보인 기념비적 해입니다. 은 파리 퐁피두센터에서도 생방송 중계되어, 비서구권 미술, 타자가 서구에서 가시화되는 출발선이 되었습니다. 주목하지 않았던 비 유럽계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 전시를 갖지 못했던 젊은 작가가 방향을 설정하도록 도와온 재단 출범 년도가 1984년이란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천안문 사태 발생 등으로 젊은 작가의 분출은 가속됩니다.
재단 건물 1994년 몽빠르나스14구 라스파일 대로에 재단 건물을 지어 이전했는데,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이 설계한 재단 건물은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절제미와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나무가 무성한 중정을 품은 강화 유리와 메탈로 지어진 사각형 건물로, 1층은 정원으로 완전히 열려 있으며, 천정 높이가 7미터에 이르는 모듈 형식이라, 프로젝션이나 비디오 설치 작업을 위해서는 공간을 어둡게 조정할 수도 있고, 대작 전시도 가능합니다. 유리로 된 구역을 옆으로 밀어 시야를 트이게 만들면, 건물이 정원 쪽으로 열린 경사로에 놓인 거대한 구조물로 변형됩니다. 건물의 유리 표면을 통해 전시 중인 작품을 볼 수 있게 하였고, 반대로 구름이나 도시 공간을 반사시켜 시간대에 따라 건물이 변화하게 만들었습니다.
‹밤까지› 전시의 경우 건물 전체가 검게 덮였고, ‹자연으로 존재하기› 전시 기간에는 완벽하게 투명함을 유지했으며, 이세이 미야케는 건물을 거대한 디스플레이 윈도우로 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인공과 자연과 변환 가능한 건축미를 높이 사 1995년, 이탈리아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에 이어 독일 중견 빔 벤더스가 완성한 옴니버스영화 에서 장 르노의 저택으로 등장했습니다.
1994년 부임한 에르메 샹데스 Herve Chandes 관장이 현재까지 관장 직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긴 재임이 말해주듯 큐레이팅도 직접 하는 문화 권력이자, 외교관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작가나 주제를 선택해 작가에게 시각화해달라고해서 독창적인 커미션 작품을 탄생시키고 전시 기획, 최종 소장 결정까지 하는 것이지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시각화해달라고 주문하는 커미션(commission) 방식은 까르티에현대미술재단의 특징입니다. 작품 의뢰에서 완성품까지 3년 정도 기간을 주고 5억원정도를 지원하는 등, 기간과 제작비 구애를 받지 않도록 자유를 주며, 한 번 관계를 맺으면 가족 개념으로 관계를 유지합니다. 즉 경매를 통한 구입이 아닌, 직접 작가 발굴과 작품 의뢰를 통해 수집품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1년에 다섯 번 정도 큰 전시가 있는데요. 개인전과 기획전을 번갈아 여는 데 디자인, 사진, 회화, 비디오아트, 조각, 설치 , 미디어아트, 패션, 퍼포먼스 등 현대 예술의 창조적 분야와 장르를 아우릅니다.
인문과학, 환경, 생태학, 도시학, 경제, 생태, 이주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시 청각화하므로 미술가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대중음악가, 도시학자, 생태음향가, 디자이너, 과학자, 사상가, 철학자, 인류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등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유지합니다. 1층에서 보게 될 작품 처럼, 도시학자의 아이디어를 디자인 건축가 그룹이 시각화하는 식입니다.
30년 간 200회 전시를 열어 전 세계 350여명 작가의 1,500점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작품 소장 기준은 엄격함과 탁월함의 결합/ 풍부한 독창성과 위험 감수 성향 고려/ 평범하고 예견가능하며 상식적인 가치 대신 전 방위적 개방성을 추구합니다. ‘흥미로운 현대 예술 작품으로 전시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세계를 향해 질문 던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시 작품을 봐주었으면 한다’는 것이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디렉터 그라치아 콰로니 Grazia Quaroni의 전언입니다.
서울 전시작은 사라 지, 론 뮤익, 뫼비우스 등 재단을 대표하는 작품은 물론 국가, 인종, 젠더를 초월하는 공통 관심사를 반영한 사회 현상을 다룬 100점을 골랐습니다. 한국을 위한 특화된 선택 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장 미셀 알베롤라와 마크 쿠르티에 등이 내한하여 직접 벽면 작업을 했습니다. 아시아 투어 중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게 되었고, 내년 초 상하이, 홍콩을 거쳐 도쿄 올림픽에서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미국산 백색 샤도네이(Chardonnay) 와인의 대표 브랜드로 웬티가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에서 샤도네이 포도 묘목을 들여와 와인주조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팀과 협력해 미국 토양에 맞게 개량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미국 곳곳의 포도밭에 전수한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꾸준히 운영해온 웬티 빈야드의 4대째 주인 에릭 웬티(Eric Wente·67)를 수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일본을 들러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리버모어 계곡에 자리 잡은 지 134년째. 한 번도 주인 바뀐 적 없이 웬티 창업자 가족의 4대와 5대째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가족 경영 포도밭이다. 미국 서부 와이너리들이 몰려 있는 샌프란시스코 북동쪽 나파 밸리 지역의 파 니엔테(Far Niente) 와이너리가 아기자기한 맛의 아름다운 포도밭이라면, 웬티 빈야드는 영지 내 호주의 프로골퍼 그렉 노먼이 설계한 골프장도 갖고 있는 호방한 느낌의 포도밭이다.
작년 미국 와인 작황은 어떠했나.
2015년이 어려운 해였다면 작년 작황은 2013~ 2014년도 평균치로 회복되었다. 날씨 변화가 상대적으로 심했던 유럽에 비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와인 작황은 좋은 편이다.
웬티 와이너리의 해외 사업은 어떤가.
현재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와인을 판매하는 데 걸림돌이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략 미국인 20% 정도가 통상적으로 와인을 마신다고 보면 된다. 외국 가운데 웬티 와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캐나다이고 한국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와인시장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시도하던 TPP(환태평양파트너십 협정)나 유럽과 미국 간에 논의 중인 TTIP(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 협정) 등을 통해 해외 시장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TPP 파기 결정은 너무 안타깝다.
비행기 안에서도 웬티 와인을 만난 기억이 있는데.
마케팅 덕분인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분인지 많은 항공사에서 우리 와인을 찾고 있다. 캐세이퍼시픽, 유나이티드, 노스웨스트, 한국의 아시아나항공 등에 납품하고 있다.
4대째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좋은 점이 있나.
아들과 딸이 와인 만드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니 이미 5대째 경영인 셈이다. 손자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전공에 따라 머지않아 6대째 경영이 가능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가족들은 대부분 떨어져 살고 있는데 우리는 3대가 이래저래 사업으로 얽혀 있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감사할 따름이다.
포도 수확과 와인 제조에 새로운 기술을 많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도밭 한가운데에서 바로 포도압축 공정을 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포도를 수확해 처리공장까지 가는 데 걸리는 두 시간을 단축해 15분 만에 현장에서 처리한다. 신선도와 온도 유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공정이다. 다른 하나는 야간에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이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저녁에는 매우 선선해 밤 10시경 기온이 섭씨 15도 정도 되었을 때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지역에 따라 야간작업 시간을 조정한다.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포도의 품질관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포도 재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햇볕과 물인데, 물 관리에도 새로운 기술력을 동원했다고 들었다.
물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새크라멘토 강에서 수로를 따라 물을 공급하는데 마침 우리 포도밭에는 골프장도 있어 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 방안을 늘 강구하고 있다. 일례로 적외선 공중촬영을 통해 포도밭과 골프장의 모든 블록에 균등하게 물이 공급되도록 조절한다. 이를 위해 곳곳에 센서 장치를 설치하고 연중 온도와 수분공급량을 측정하여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 운용의 최적화를 도모한다.
웬티 빈야드의 샤도네이는 미국뿐 아니라 유렵 지역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데, 풍미는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 샤도네이는 미국식, 유럽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웬티식 고유한 맛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만큼 대대로 품질 관리에 신경 써왔다고 자부한다.
곧 여름이 오는데 포도밭에서 열리는 음악콘서트 자랑 좀 해보시라.
벌써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매년 7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10여 차례 콘서트가 열린다. 주로 재즈나 대중음악인데 야외에 무대를 만들고 저녁식사를 겸해서 개최한다. 제임스 테일러, 쉐릴 크로, 링고 스타, 윌리엄 넬슨 등 유명 연주가들이 참여한 바 있다. 얘기 나온 김에 ‘더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포도밭 안에 상주하는 전문가의 감독 아래 유기농 채소밭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한 야채들을 식탁에 바로 올리고 있다.
‘더 레스토랑’의 명성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 2016년 JTBC 예능 프로그램 샌프란시스코 원정 편에 소개된 바 있다. 에릭은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했다. 아들과 딸도 각각 스탠포드,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부모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와이너리 운영은 영락없이 농부의 일이다. 오랜만에 마주잡은 농부 에릭의 두툼한 손이 믿음직했다.
지난 4월의 첫 번째 금요일은 아내와 오랜만에 저녁 데이트 하는 날이었다.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창극 흥보씨( Mr. Heungbo)를 함께 보러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녹색의 푸름과 꽃들로 봄이 무르익어가는 아름다운 장충단 공원길을 걸었다. 장충단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민씨가 영면한지 5년 후 고종은 장충단을 꾸며 을미사변 때 순직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매년 봄 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단골식당이 된 ‘다담에뜰’에서 식사와 차를 한잔하고 손을 잡고 걸어서 달오름에 올랐다. 다담이란 불가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내어놓는 다과라는 뜻이다.
서양에 오페라가 있다면 우리에게 창극이 있다. 판소리가 한 명의 소리꾼이 북장단에 맞추어 노래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극음악이라면 창극은 여러 명의 소리꾼들이 역할을 나누어 노래하고 연기하면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극음악이다. 지난해 해오름에서 창극 향연을 처음 함께 본 후 아내와 나는 창극을 좋아하게 됐다.
창극 흥보씨는 한 마디로 우리의 전통 흥부전(흥부가)을 집으로 치면 대들보와 기둥만 남기고 완전히 현대판 흥부전으로 바꾼 새로운 창작이었다. 우리 내외가 창극에 대해서는 문외한 이었지만 아내도 아주 재미있게 잘 봤다고 만족할 정도로 좋았다. 흥보씨의 새로운 버전으로 창작 스토리를 소개하면 대략 아래와 같은 것들이 예상을 불허하는 것들이었다.
첫째 흥보와 놀보의 아버지 연생원은 아이를 갖지 못해 흥보는 길에서 주워와 길렀다. 가문이 흥하라고 흥보, 아내가 바람을 피워 뒤늦게 출산한 놀보는 귀한 자식이라 놀랍다는 의미로 놀보라 이름 지었다. 이런 출생의 비밀로 시작된 이야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시작 하였다. 흥보가 형, 놀보가 아우였으나 착한 흥보는 아우를 위해 계약서 작성을 통해 형과 아우를 바꾸어 생활하는 부분도 연출가의 기획이다.
둘째 강남의 제비는 오늘날 바람둥이 제비로 묘사하고 제비가 갖다 준 씨앗은 박 씨보다 찬란한 구슬 같은 씨앗이었다. 호랑이가 말을 하고, 우주인이 나타나고 흥보의 처로 등장하는 이소연의 가난타령, 제비 유태평양의 제비 노정기, 무대장치, 보리수 나무의 등장이 특이하였다. 그럼에도 무대장치의 핵심은 칼, 몽둥이, 톱의 기능을 한 부채였다. 그 씨앗이 물질적인 부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안정을 갖다 주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이 오늘날 물질보다 정신문명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 같았다.
셋째 창극을 관통하는 줄거리는 통상 전래 판소리와 같이 권선징악이다. 그래서 현대적인 노래와 춤을 삽입하여도 관객들에게 친근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극 전체를 흐르는 비움의 철학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가난하더라도 바른 생활을 하는 흥보가 원래 형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스토리다.
마지막으로 창극 흥보씨가 재미있는 창작극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점은 흥보와 놀보 역을 맡은 두 주인공의 뛰어난 연기, 예측을 불허하는 극본 과 연출, 캐릭터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연기해준 전 단원들, 그리고 우주의 신비스러움과 판소리의 맛을 살리면서도 젊음과 경쾌함을 선물한 음악 감독의 합작의 결과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서양음악과 춤을 차용하여 창극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극이었다.
이런 훌륭한 창극단이 있는 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창극이 서양의 오페라처럼 세계화로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았다.
(흥부를 흥보로 놀부를 놀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정확한 정설은 아직 없는 것 같아 기획자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 exhibition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
일정 8월 8일까지 장소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 , 등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로 사랑받아온 픽사(Pixar,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 특별 전시다. 제작 과정에 쓰인 스케치, 스토리보드, 컬러 스크립트, 캐릭터 모형 조각 등 약 500여 점을 각 영화별로 전시했다. 정지된 이미지들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토이 스토리 조이트로프(zoetrope)’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담은 ‘아트 스케이프(artscape)’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했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일정 7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이집트 문화부, 샤르자 미술재단의 협력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193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 166점을 초현실주의가 걸어온 흐름에 따라 다섯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출품작 중 상당수가 해외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미라’, ‘피라미드’로만 인식되어온 이집트의 새로운 문화와 마주하는 기회를 선사한다.
◇ book
남자 혼자 죽다(성유진 외 공저·생각의힘)
고독사 중에서도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상태, 이른바 무연사(無緣死)로 생의 마지막을 보낸 209명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한국의 무연사 현상을 현대 사회 남성의 어려움과 연관해 밝히고자 했다.
치매박사 박주홍의 뇌 건강법(박주홍 저·성안북스)
20여 년 동안 치매 전문가로 살아온 저자가 치매를 비롯한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 질병에 대한 기본 정보와 더불어 식생활, 운동, 명상치료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았다.
◇ movie
심야식당2
누적판매 240만 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만화 을 원작으로, 2015년 국내 개봉했던 영화 의 두 번째 시리즈다. 1편에서 함께한 마츠오카 조지 감독과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 오다기리 조가 다시 만났다. ‘오늘도 수고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늦은 밤 불을 밝히는 특별한 식당’이라는 콘셉트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식당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개봉 6월 8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마츠오카 조지 출연 코바야시 카오루, 오기다리 조 등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한국의 길고양이가 대만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의 로드무비다. 고양이 마을로 알려진 대만의 관광지 ‘허우통’과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는 ‘고양이 섬’ 일본 ‘아이노시마’ 등을 돌아다니며 길 위에서의 공생의 의미를 탐구한다. 영화계 대표 애묘인(愛猫人) 조은성 감독이 기획과 연출을 맡아 고양이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발자취를 담았다. 고양이의 마음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준다.
개봉 6월 8일 장르 로드무비 감독 조은성 내레이션 강민혁
◇ stage
로미오와 줄리엣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원로 연극인 오태석이 번안과 연출을 맡았다. 청사초롱 불빛 아래 한국무용과 풍물이 어우러져 한국판 이 탄생했다. 원작과는 또 다른 비극적 결말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일정 6월 18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오태석 출연 이신호, 정지영, 정진각 등
천덕구씨가 사는 법
극본을 맡은 김태수 작가는 삶은 끝나지 않은 여행이며,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긴 여행을 준비하는 시니어 세대에게 삶이란 견딜만하다고, 또 웃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런 그의 시선을 담아 누구나 겪는 노년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일정 6월 8~18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연출 김순영 출연 오영수, 차유경 등
복순이할배
‘사랑을 모른다’라는 이유로 짝사랑에게 거절당한 태수는 돈 많고 건강한 독거노인 ‘복순이할배’에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괴짜 노인과 연애 풋내기 청년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뤘다.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대학로 두레홀 4관 연출 박정우 출연 김시권, 정동진, 이재욱 등
시카고
미국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2년 만에 내한한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 클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즈 음악을 14인조 밴드의 연주로 즐길 수 있다. 강렬한 조명 아래 관능적인 안무가 돋보인다.
일정 5월 27일~7월 23일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출연 딜리스 크로만, 로즈 라이언 등
흑백 갈등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많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영화들을 보는 일은 불편하다. 마치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는 것처럼 백인들의 원죄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잔혹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서서히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오바마를 배출한 자부심 때문은 아닐까?
하긴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소재를 1960년대 그 시절에 다뤘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으리라. 는 그 시대의 흑백 문제를 21세기식 시각으로 바라보았기에 훨씬 관대하고 낙관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이 영화는 오히려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를 본 뒤에도 감정의 앙금이 없이 산뜻하다.
는 1960년대의 냉전시대에 벌어졌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을 배경으로 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을 기폭제로 불붙은 이 경쟁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었던 NASA 프로젝트에 숨겨진 천재들의 실화가 골격이다. 타고난 천재성으로 백인 남성들의 천국인 NASA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세 여성의 이야기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바로 수학 천재 캐서린 존슨(타라지 헨슨),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엔지니어 메리 잭슨(자넬 모네)이 그들이다.
흑백 문제를 다룬 영화가 늘 그렇듯이 이 영화에도 현실과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살아가는 세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첫 시퀀스부터 우리의 예상을 깨뜨린다. 세 여성이 출근길에 차가 고장 나 백인 경찰이 등장한다. 익숙한 장면을 예상하던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고 경찰은 그녀들을 에스코트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탓에 이야기는 지루하다. 극적인 장치 없이 자잘한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예컨대 당시 흑백분리 화장실 때문에 늘 800m나 뛰어가서 일을 봐야 했던 차별을 캐서린이 항의하자 잘생긴 상사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이 “NASA에서 모든 사람의 소변 색깔은 똑같아!” 같은 멋지고 속 시원한 대사로 상황을 수습한다. 화장실 가는 장면의 긴박감을 경쾌한 음악으로 승화(?)시킨 점은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재치다.
물론 극적인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 특히 흑인은 회의석상에 참석할 수 없다는 불문율을 깨고 천재를 알아본 알 해리슨은 캐서린을 회의에 참석시킨다. 그녀가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수학 공식을 사다리 타고 올라가 칠판 꼭대기부터 써내려가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전 퍼스트레디인 미셀 오바마의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믿어라.’ 이것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라는 평이 이 영화의 존재 가치를 높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진보적인 메시지가 이 영화를 아카데미까지 끌어올리고 결국 NASA 최초 흑인 여성 책임자이며 프로그래머 역을 연기한 옥타비아 스펜서에게 여우조연상이 돌아가는 성과를 가져다줬다. 그러나 분명 감동적인 실화임에도 여전히 미국 지상주의적 메시지가 마음에 걸린다. 또한 “이론이 아닌 숫자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수학은 항상 믿음직하죠”와 같은 대사는 아쉽다.
오히려 마지막 엔딩이 문득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치열했던 그들의 삶은 정작 컴퓨터의 등장으로 수학 천재라는 빛이 가려지고 만다. 마치 에서 칼을 휘두르며 덤비는 적에게 당황하는 척하며 총을 발사하는 해리슨 포드의 유머처럼, 시대가 바뀌면 모든 것이 허망해진다. 그래서 그들의 비극과 분투도 한바탕의 소극처럼 보인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실감 난다.
인생 황혼기에 맞은 손님
감독 토마스 맥카시
주연 리차드 젠킨스, 히암 압바스
제작연도 2007년
상영시간 104분
20년째 코네티컷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년의 교수 월터 베일(리차드 젠킨스). 단조롭고 열의 없는 나날을 무기력하게 이어가던 월터는 논문 발표를 위해 뉴욕 출장을 갔다가,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자신의 아파트에서 불법 체류자인 타렉 칼릴(하즈 슬레이만)과 자이납(다나이 거라이라) 커플과 마주친다. 월터가 갈 곳 없는 젊은 커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자, 타렉은 감사의 뜻으로 월터에게 자신의 생계 수단인 젬베(Djembe 혹은 jembe;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원추형 모양의 가죽 드럼) 연주를 가르쳐준다.
타렉과 함께 센트럴 파크에서 젬베를 연주하면서 이따금 미소를 짓게 된 월터는 타렉이 불법 이민자 단속에 걸려 수용소에 들어가자 타렉과 자이납, 그리고 소식 없는 아들을 찾아온 타렉의 어머니 모나 칼릴(히암 압바스 Hiam Abbass)의 운명과 얽히게 된다.
모든 좋은 영화가 그러하듯 의 초반부는 주인공 월터의 무뚝뚝한 캐릭터와 잿빛 삶을 이렇다 할 대사 없이 간결하게 전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밤거리를 걷는 월터의 처진 어깨, 귀가하여 홀로 와인을 마시는 월터의 쓸쓸한 표정. 얽은 얼굴에 안경을 걸친 반대머리 월터는 먼저 말을 걸어보고 싶을 만큼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다. 개인 사정으로 리포트가 늦었다고 사정하는 학생을 냉정하게 내쫓는 그의 유일한 관심은 피아니스트였던, 그러나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아내와 함께 듣던 클래식 음악 감상뿐. 아내의 피아노로 교습을 받아보기도 하지만 선생들 잔소리가 듣기 싫어 번번이 내쫓고, 마침내 네 번째 선생 바바라(마리안 셀데스)로부터 “당신은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사람이다. 그 좋은 피아노를 팔려거든 내게 팔아라”는 말을 듣기에 이른다.
월터가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마저 공동저자가 아닌, 단지 이름을 빌려준 것뿐이고 새 책을 거의 다 써가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 손도 대지 못했고, 한 과목뿐인 강의도 성의 없이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월터의 지루하고 무기력한 삶이 전제로 묘사되었기에, 자신의 집을 점거한 불법 체류 외국인 커플을 다시 불러들여 잠자리를 제공하는 설정은 설득력을 갖는다. 또 타렉과 자이납이 채 챙겨가지 못한, 그들의 다정한 한때를 담은 사진, 그리고 월터가 창밖으로 내려다본 밤거리에서 초조하게 잠자리 구걸 전화를 거는 커플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얻어내는 세심한 연출력을 발휘했다.
월터가 젬베 연주에 금방 빠져드는 장면 또한 월터가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던 음악 애호가라는 초반의 설정 덕분에 쉽게 이해가 된다. 월터를 경계하는 진중한 자이납과 달리 낙천적이고 영리한 타렉은 월터에게 차근차근 연주의 기쁨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똑똑한 사람이지만 젬베 연주 때는 생각하지 말고 두드려야 한다. 4박자 클래식에 익숙하겠지만 아프리카 리듬은 3박자다.”
시리아에서 왔다는 타렉이 아프리카 타악기인 젬베를 연주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건 자이납과 젬베뿐이다”라고 설명하는 대사에서 짐작되듯 타렉은 세네갈 출신인 자이납을 깊이 사랑한다. 이처럼 음악이 중동인 타렉과 아프리카인 자이납을 연결시켜주었듯, 백인 월터와 중동인 모나의 내적 교류에도 큰 몫을 한다.
학사 일정 때문에 코네티컷으로 돌아간 월터가 바바라에게 피아노를 주는 장면은 과거의 아내 혹은 그녀의 음악과 이제 거리를 두기로 했다는 결심으로 읽힌다. 반면 그가 뉴욕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나가 청소를 하며 월터 아내가 연주한 클래식 CD를 듣고 있는 장면은, 음악이 이들을 연결시켜주고 있다는 은유로 읽힌다. 월터는 CD를 하도 많이 들어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는 모나를 위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브로드웨이의 마제스틱 극장에서 장기공연 중인 을 예매한다. 타렉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 절박한 시점에 만난 낯선 장년 남녀가 뮤지컬 감상을 통해 웃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 수업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월터는 “책을 안 써본 사람과는 말이 쉽지 않다”며 모나의 관심을 일언지하에 끊어버리지만, 결국엔 자신이 “바쁜 척, 책을 쓰는 척했지만 일에서 손 놓은 지 오래다. 남의 논문만 읽고 똑같은 과목을 20년 강의했을 뿐이다”라고 고백한다. 모나는 진심을 말해줘 고맙다며 “교수가 아니면 뭐가 되고 싶었냐?”고 묻는다. 모르겠다는 월터에게 모나는 ”그래서 더 신나지 않나요?“라며 웃는다. 낙천적인 타렉의 어머니답게 모나 또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여성임을 드러내주는 대사다.
런던에 사는 아들이 있다는 대사만 있을 뿐, 월터 아들의 존재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아들과 살갑게 지내지 않는 듯해 보이는 그가 타렉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은 아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일 수 있고 이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기꺼이 포기하는 모나의 깊은 모성과도 연결된다.
는 아무런 사건도 인연도 없이 생의 끝점에 이를 것 같던 월터의 삶에서, 음악을 매개로 한 이국인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큰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9·11 사건 후의 미국 정부(는 2007년 작품이다) 태도가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정체성을 얼마나 훼손하고 있는지를 간접,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타렉이 지하철에서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고 끌려갈 때 월터가 경찰에게 진정하라며 신음하듯 내뱉던 외침, 퀸즈의 불법 체류자 수용소 외관을 창고처럼 보이게 의도했다는 월터와 모나의 대화, 모르겠다고만 하는 수용소 직원들에 대해 “시리아와 똑같다”(저널리스트였던 모나의 남편은 반정부 글 때문에 7년을 징역살이하다 죽었고, 그 때문에 모나는 아들 타렉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으며, 본국 귀환 명령서를 받고도 이를 무시한 채 타렉을 키웠다고, 시리아로 떠나기 전 날 밤 월터의 품에 안겨 고백한다)고 하는 모나의 탄식, 타렉이 강제 송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월터가 외치는 절규 등이 그러하다.
거리, 관공서, 공항에서 인물 뒤로 보이는 거대한 성조기. 수용소 벽에 쓰여 있던 구호 ‘미국의 힘은 이민자들로부터’도 그렇고, 자유의 여신상 그림도 마찬가지다. 모나는 “까매도 너무 까맣다”며 놀랐던 아들의 연인 자이납을 만나 아들이 좋아했던 장소로 데려가 달라고 한다. 자이납, 모나, 월터가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볼 수 있는 페리를 타게 된 연유다. 그때 모나는 월터에게 묻는다. 자유의 여신상에 올라가본 적 있냐고. 월터는 한 번도 꼭대기에 올라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주인공 월터는 이민자들이 미국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들, 즉 자유의 여신상이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전혀 관심 갖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그랬던 월터가 세 사람과 만나면서 국가를 대신해 사과까지 하게 된다. “저들이 나를 테러범 취급한다”며 불안해하는 타렉에게도, 추방된 타렉을 따라 시리아로 돌아가기로 한 모나에게도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월터(하필 그의 세미나 발표 주제는 ‘개발도상국 경제’란다). 국가를 대신한 월터의 사과는 통상적인 할리우드 영화처럼 해피엔딩에 이르지 못한다.
수용소로 면회 갔을 때 유리벽을 마주하고 탁자와 가슴을 두드리며 협연을 할 만큼 음악을 사랑하고 마음이 통했던 월터와 타렉. 타렉이 “손님이 많은 저기서 연주하고 싶다”던 지하철 바로 그 공간에서 월터는 홀로 젬베를 연주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여운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인정케 한다. “월터가 우리를 경찰에 고발할 거야”라며 두려워했던 자이납의 경계심은 우려로 그쳤지만, 그 불안의 정체는 월터 개인이 아닌 미국이라는 국가였음을 알게 해준다.
엄혹한 현실을 인정하며 절제된 감정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는 뉴욕대학의 케보키안 센터, 킴벨 센터, 헌드레드 에이커스 레스토랑, 그리고 타렉이 연주하는 이스트 빌리지의 뱀부 하우스와 줄스 비스트로, 자이납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파는 소호의 길거리 시장 등을 뉴욕의 명소가 아닌, 시민권자도 불법 체류자도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묘사한다.
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안정적인 카메라(올리버 보켈버그), 음악, 그리고 연기다. 클라식과 젬베 연주가 화답하는 영화답게 베토벤의 ‘Sonata No. 21 in C Major’가 흐르는가 하면, 타렉으로 분한 하즈 슬레이만이 직접 협연에 참여한 ‘Darius Blues’와 ‘In Memory of the Dead’와 같은 재즈풍 연주가 청각을 만족시킨다.
연기 앙상블이 빼어난 것은 감독 토마스 맥카시가 배우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2005), (2005), (2006) 등에 출연해온 조연 배우 토마스 맥카시는 2003년 직접 각본을 쓴 독립 영화 로 선댄스, 산세바스티안, 스톡홀름 등의 영화제에 초대되었다. 역시 직접 각본을 쓴 와 (2011)도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소외된 중장년층의 소통을 담백하게 그려내 잔잔한 감동을 안겨줬다. 세 작품 모두 톱스타가 아닌, 그러나 연기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아카펠라 화음을 이끌어냈는데 그 솜씨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 영화제에서 18개의 트로피와 17번의 후보 지명을 받은 는 로버트 젠킨스에게 2009년 아카데미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와 2008년 모스크바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주는 등 네 명의 주연 배우와 조연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각본과 연출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53년생 리차드 젠킨스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건 미국판 리메이크 실패작인 (2004) 촬영장에서, 젠킨스의 부드러운 음성과 눈빛을 확인한 후라고 한다. 리차드 젠킨스는 “나를 주연으로 하면 제작비 조달이 어려울 텐데”라고 우려했다고 한다. 토마스 멕카시 감독은 "의 아이디어는 베이루트를 여행했던 나의 경험에서 가져왔으며, 한 사람의 삶이 우연한 짧은 만남으로도 영향받을 수 있음을 그리고 싶었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21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레바논 출신의 하즈 슬레이만과 미국으로 이민 온 짐바브웨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다나이 거라이라 모두 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아직은 TV가 주 무대다.
이 두 젊은이보다 더 오래 시선을 사로잡는 기품 넘치는 여배우들이 있으니 히암 압바스와 마리안 셀데스다. 1960년, 이스라엘 나사렛 출신인 히암 압바스는 에란 리클리스의 (2004)와 (2008), 아모스 기타이의 (2005) 등에 출연해온 이스라엘 대표 여배우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5) 등에도 출연하며 반경을 넓히는 한편, 연기 지도까지 병행하고 있는 재원이다. 단 두 장면 출연으로 위엄을 보인 마리안 셀데스는 1928년생. 토니상 수상에 빛나는 ‘브로드웨이의 디바’로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나들며 멋있게 늙어가고 있다. 히암 압바스가 더 나이 들면 마리안 셀데스처럼 따뜻한 위엄이 더해지지 않을까 싶다.
할머니가 주재하신 식사 모임
감독; 조지 틸만 주니어
주연; 바네사 윌리엄스, 이르마 피 홀
제작연도; 1997년
상영시간; 115분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영화로 가 빠질 수 없다. 할머니가 구심점이 된 삼대에 걸친 대가족 이야기.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가정의 평안을 유지시킨다는 할머니의 교훈은 진부할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딸들은 직업과 사랑, 자아실현을 위해 고분군투하고 손자에 의해 가정의 전통이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성이 맡아왔던 화해, 안정의 역할을 손녀가 아닌 손자에게 맡겼음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성장해가는 아이들 모습을 담은 사진이 죽 나열된 후 소년 아마드(브랜드 하몬드)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할머니 조(이르마 P. 홀)는 미시시피에서 시카고로 이주해온 후 도박사였던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날리자 홀로 집안을 일으켜 세워 온 가족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할머니가 40년째 주재해온 일요일 저녁식사 모임은 세 딸과 그들의 남편, 아이들이 모두 참석해야 하는 가문의 전통이다. 할머니는 여자가 참고 개척해나가면 집안은 잘 유지되며 인스턴트 대신 손수 만든 음식이 인간의 영혼을 살찌운다고 설교한다.
장녀 테리(바네사 윌리암스)는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변호사이며 남편 마일즈(마이클 비치) 역시 변호사여서 이들 가정은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다. 테리는 성취욕과 자기주장이 강하며 변호사 일에 만족하고 있는 데 반해, 마일즈는 변호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미로 즐겨온 음악가로 전업하고 싶어 한다. 아기가 없는 이들 가정은 이래저래 충돌이 잦다.
차녀 맥신(비비카 A. 폭스)은 전업주부로 이해심 많고 자상하며 노동자 계층인 남편 케니(제프리 D. 샘스)도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가장이다. 맥신 부부는 아마드 외에 딸 하나를 더 두었고, 맥신이 또 임신한 상태. 이들 부부의 문제라면 케니가 테리의 연인이었다는 사실, 자신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테리는 맥신에게 시비를 걸어 가끔 다툰다.
미용사인 막내 딸 버드(니아 롱)는 램(메키 파이퍼)과 사랑에 빠져 임신부터 했는데, 램이 전과자여서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 속상해하고 있다. 버드는 옛 애인에게 도움을 청해 램을 취직시키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램이 자존심을 건드렸다며 행패를 부린다. 램의 꼬락서니를 보다 못한 장녀 테리는 깡패 삼촌에게 램을 두들겨 패달라고 부탁하고, 램은 총으로 맞서다 다시 감옥으로 끌려간다. 이 때문에 테리와 버드는 으르렁거리게 된다.
할머니의 가치관은 시대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당연한 것이고, 음식을 통한 영혼 고양에 대한 설교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 딸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차녀 맥신, 그리고 그녀의 아들 아마드로 이어지는 할머니의 가치관 잇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어서, 일견 시대착오적이며 안일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맥신의 생각이나 행동은 여성만의 인내 운운하는 선이라기보다 보편적 선, 중용 정신, 전통 존중 등이므로 편협하게 볼 것이 아니다. 각박한 현대사회, 가족 이기주의, 흑인 사회의 모순을 염두에 둔 인물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가장 끌리는 여성상은 장녀 테리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묘사는 성취욕 강한 여성에 대한 묘사가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그려지는 습성이 있어, 여성의 성취욕에 대한 몰이해와 한계를 드러냈다. 원만하고 너그러운 성격과 일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지닌 여성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여성들에 대해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작가의 인물 분석이나 구현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테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환 등 집안 대소사에 들어가는 돈 문제에 댛새서는 테리에게 의존하는 가족들이 테리의 이 같은 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테리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는 이들이 “돈이면 다냐”라는 식으로 대드는 것은 경제력 없는 사람들의 비틀린 심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늘 머리를 써야 하고 시간에 쫓기는 테리는 맥신처럼 집안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다. 대신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을 내놓는 것이다.
돈에 관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는 테리의 남편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테리의 남편은 성공과 돈을 위해 뛰는 테리를 인간미 없는 아내로 본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망을 잘 이해해주는 테리의 사촌 훼이스(지나 라베라)와 관계를 맺는다. 이모할머니의 딸인 훼이스는 성인 비디오 배우로 집안의 골칫덩어리인데, 갑자기 나타나 온 가족을 불안하게 한다. 음악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반대를 하는 테리의 현실적인 태도와 즉흥적으로 아무 일이나 저지르는 훼이스의 유혹.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와 인간관계, 그리고 흑인 문제까지 얹어 아기자기하게 묘사하는 는 마지막까지 돈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0년째 방구석에 들어앉아 TV만 보던 할머니의 남동생 피트로 인해 찾게 된 돈이 이 가정의 분열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혼을 살찌울 음식도 돈이 있어 가능한 것 아닌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영화 제목 는 ‘영혼의 음식’이라는 직역보다는 미국 남부지방의 아프로 아메리칸의 전통 음식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다. 1960년대 중반부터 ‘soul’은 아프로 아메리칸 문화를 수식하는 단어로 쓰였는데, ‘soul music’이 대표적이다. 에는 보이즈 투 맨의 ‘A Song for Mama’를 비롯해 ‘소울’ 가득 담긴 노래들, 재료의 풍미를 살린 푸짐한 흑인 가정 음식 등 들을 거리 볼거리가 풍성하다.
아름다운 동반자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주연; 조안 우드워드, 폴 뉴먼
제작연도; 1990년
상영시간; 126분
명망 있는 변호사 월터 브리지(폴 뉴먼)는 한여름에도 조끼와 넥타이를 갖춘 정장 차림을 고집하고, 행진곡풍 음악만 들으며, 극장에 가면 잠을 자고, 태풍이 시속 75마일로 불어와 모두 지하실로 대피하는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풀코스 정식을 마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젊은 여성과 재혼한, 자유분방한 정신과 의사 친구 알렉스 사우어(사이먼 캘로우)는 성적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브리지에게 “정열이라는 단어를 알아?”라고 다그친다. 20년을 근속한 노처녀 여비서는 무심하다고 원망한다.
브리지의 아내 인디아(조안 우드워드)는 남편 의견이 곧 내 의견이라 여기며 남편 그늘 아래서 곱게 살아왔다. 주변 친구들의 진보적 의견과 자식들의 자기주장에 소외감과 혼란을 느끼며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해보지만, 브리지는 “나한테 얘기하면 되오”라며 일축한다.
장녀 루스(카이라 세드윅)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배우가 되겠다며 뉴욕으로 떠난다. 차녀 캐롤린(마가렛 웰시)은 대학도 마치지 않고 배관공 아들과 결혼한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이제는 도저히 못 살겠다며 툭하면 친정을 찾는다. 아들 더글라스(로버트 숀 레오나드)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끔찍하게 싫어하며 남몰래 누드집을 본다.
전 세계 중·상류층 가정에서 누구나 겪을 것 같은 이야기 는 에반 S. 코넬l의 소설 (1959)와 (1969)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브리지 부인과 브리지의 입장에서 본 가정생활을 그린, 100여 편의 삽화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두 소설을 통합하여 1930년대 말 미국 캔자스 시의 상류 가정사를 안정적으로, 재치 있게 시나리오화한 이는 ‘인도의 찰스 디킨스’로 불리는 루스 프라워 자브발라다. 에피소드 중심의 산만하고 지루한 이야기로 전락시키지 않고, 유머 감각과 인물 성격을 잘 살려낸 점이 돋보인다.
는 브리지 부인의 세상 인식, 남편과 자식을 대하는 생각의 변화와 자각을 조심스럽게 그린 온건한 영화다. 일상과 감정 묘사가 섬세해서 쉽게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브리지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고지식하고 완고한 성격 탓에, 아내가 그토록 원하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심장에 이상을 느낀 그는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아내를 은행 금고로 데려가 보험증과 증권 서류를 설명해준다. 물질적 기반보다는 남편과의 정신적 교류를 원했던 인디아는, 결혼 전 시를 읊어주었던 남편을 상기시키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나요?”라고 묻는다. “사랑하니까 은행 금고까지 데려오지 않았소”라고 말하는 브리지. “그럼 가끔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세요”라고 아내가 말하자 그는 “나는 변호사지 시인이 아니요”라고 답한다. “보상받지 못하는 사랑은 싫어요”라고 말하며 이혼하겠다고 앙탈을 부리던 인디아는 남편의 뜨거운 키스에 그만 모처럼의 용기를 잃는다.
자식들은 엄격한 아버지보다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어머니가 의존적인 삶을 살아와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이든 참견하고 돌봐주려 하자 불편해한다.
남편과 다투고 친정으로 쫓겨온 둘째 딸에게 “여자가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인디아는 “어머니처럼 당하고 살지 않겠어요”라며 쏘아붙이는 딸의 말에 상처 입고는 기껏 “핫초콜릿 타줄게”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보이스카우트가 된 아들은 “어머니에게 감사 키스를 해드려라”는 단장의 말에 머뭇거리고, 아들로부터 키스를 받지 못한 인디아에게 브리지가 대신 키스를 해준다.
인디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끝내 자살을 택한 친구 그레이스 바론(블리드 대너)이다. 은행가 남편의 앞날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파격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레이스에게 인디아는 “나도 인생이 무언지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러나 잘 모르겠어. 그러나 우리는 많은 혜택을 받았으니 그걸 생각해봐”라고 말한다. 그레이스의 죽음에 오열하는 인디아를 브리지는 이렇게 달래준다. “그녀 남편은 무엇이든 해주려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소. 그녀가 남편이나 아이들을 생각이나 했는가?” 자아가 뚜렷한 아내를 둔 보통 남편 바론의 심경을 대변해준 셈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사랑, 존경, 인격은 바뀌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브리지. 뭔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혼자서는 남편 그늘과 자식들에게로 향한 맹목적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인디아. 부모의 품안에서 벗어나는 것을 그토록 갈망했지만 세상이 녹록지 않음을 알고 결국 부모 곁으로 돌아오는 자식들.
브리지 가족의 옛날 흑백 기록 필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가족사와 이후 이야기를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끝나는 는, 이상적인 혈연 공동체를 희구한다. 이상의 구심점은 결국 아내와 어머니라는 것. 거친 세상을 휘젓고 다녔어도 마음 내키면 언제나 돌아와 쉴 수 있는 아내와 어머니의 품. 그래서 그 아내와 어머니는 세상의 세파를 맞받지 않고 순결한 상태로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아내와 어머니를 지켜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속삭인다. 여권 운운하는 입장에서는 성에 안 차는 영화이겠지만, 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장수 프로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크게 비난할 거리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같은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눈이 몹시 내리던 날, 인디아는 외출을 위해 차고에서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시동이 걸리지 않아 밖으로 나오려 하지만 차고 문이 자동차 문을 꽉 막아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배기가스가 가득 차 호흡이 곤란해지자 도움을 청하는 그녀의 음성은 너무나 가냘프다. 차창 위로는 눈만 가득 쌓인다. 혼자서는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아내와 어머니를 상징하는 듯하다. 브리지가 시간 맞춰 와준 덕분에 인디아는 무사했지만 화가 난 브리지는 그 자동차를 폐기처분시킨다.
불안이 없지 않지만 남편과 아이들 속에서 행복한 노년을 맞이한, 세파를 모르는 귀여운 어머니상을 연기한 조안 우드워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폴 뉴먼의 아내인 조안 우드워드는 에서처럼 아까운 배우 인생을 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연기력이 나무랄 데 없는데,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영화 출연이 뜸했기 때문이다. 1958년에 결혼한 두 사람은 폴 뉴먼이 20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았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는 미국 출신이지만, 인도인 제작자 이스마일 머천트와 인도인과 결혼한 독일 출신 작가 루스 프라워 자발라와의 협업으로, 300만 달러 내외 제작비로 품격 높은 작품들을 내놓은 것으로 유명했다.
인도의 거장 사타야지트 레이와 프랑스 고전 영화계를 대표하는 장 르누아르의 영향을 받은 초창기 작품들은 영국과 인도를 배경으로 한 이질적 문화 충돌을 다뤘다. (1965), (1970), (1893)이 이에 속한다.
고전문학 작품을 우아한 시대극으로 재창조하는 데 남다른 열정과 재능도 발휘했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원작인 (1970)와 (1984)와 (2000),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 소설이 원작인 (1985)과 (1987)와 (1992), 일본계 영국인 이시구로의 소설을 각색한 (1993), 가 그러하다.
예술가를 꿈꾸는 현대 뉴욕 젊은이들 이야기인 (1989), 여성 편력을 중심으로 한 피카소 일대기 (1996),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파리 대사 시절을 그린 (1995), 다이앤 존슨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2003)도 삼인방의 필모그래피에서 처지지 않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