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드림(Lucid Dream)’은 가끔 접하던 단어다. 카페 이름도 있고 음악하는 그룹 이름으로도 들어봤으나 정확하게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었다. ‘루시드 드림’은 ‘자각몽(自覺夢)’이라 해서 꿈을 꾼다는 의식 하에 스스로 꿈을 꾸는 것이다. 대부분의 꿈은 깨고 나면 어렴풋해서 기억하기 어렵다. 그런데 잠든 사이에 꿈속에 나타난 것들은 뇌 어딘가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을 거라는 추산 하에 저장된 것을 뒤져보면 자세히 기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루시드 드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한국 SF 스릴러 영화 이다. 김준성 감독 작품이며 대호 역으로 고수와 베테랑 형사 방섭 역으로 설경구가 출연했다. 대호는 대기업 비리 고발 전문 기자다. 3년 전 놀이동산에서 납치된 아들 민우를 백방으로 찾았으나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가 루시드 드림을 알게 되었다. 마침 친구인 정신과 의사 소현(강혜정 분)이 루시드 드림 전문가여서 도움을 받는다. 루시드 드림으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 당시 상황을 잘 살펴보면 대충 지나쳤던 사람들의 인상이나 행동거지, 심지어 자동차 번호판도 되살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호는 루시드 드림을 이용해 아들이 납치되던 상황을 되살려 용의자들을 추적한다. 형사 방섭이 여기에 적극 호응한다. 아들 민우는 우리나라에 20명밖에 없는 특이 혈액형을 갖고 있다. 그중 한 명이 혈액이 필요하면 헌혈할 사람은 그 사람들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 연루된 사람들이 모두 용의자들이다.
대호가 자각몽에서 본 용의자의 얼굴을 소현에게 보여주자 소현은 그 사람의 몽타주를 만들어 보여준다.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자각몽을 꾼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사람의 얼굴이란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디스맨’이라고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는 또 꿈을 꾸는 누군가와 뇌 주파수를 맞추면 그 사람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공유몽(共有夢)’을 통해 용의자를 찾는 설정이 독특하다. 그래서 식물인간이 된 용의자의 꿈속으로 이 사건에 연루된 여러 사람이 들어가 당시 상황을 알아내려고 한다. 이때 만약 식물인간이 된 사람이 죽으면 공유몽 상태에 있던 사람도 같이 죽게 되므로 스릴도 있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는 사리 판단을 잘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차임벨을 쓴다. 초침이 움직이지 않는 시계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고 꿈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손에 쥔 차임벨 버튼을 누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라고 부른다. 실제로도 여러 방법이 시도되고 있는 모양이다.
루시드 드림은 단순한 SF가 아니고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미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이론이라고 한다. 1913년 네덜란드의 정신과 의사 프레데릭 반 에덴이라는 사람이 주장한 이론으로 각국의 생리학자들도 연구를 진행 중이란다. 뇌과학이 더 발달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최면술처럼 수사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꿈꾸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가끔 가위눌림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습관적으로 즉시 잠에서 깨어나 털어버린다. 오래 살다 보니 꿈을 꾸면서도 꿈인지 아닌지 구별이 되는 것 같다. 루시드 드림까지 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exhibition
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독일 드레스덴을 18세기 유럽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로 이끌었던 폴란드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그가 수집한 예술품 중 130점을 총 3부로 구성해 전시한다. 제1부에선 아우구스투스의 군복과 태양 가면, 사냥 도구 등 그의 권력을 상징하는 유물들이 소개된다. 아우구스투스가 수집한 예술품을 공개하기 위해 만든 보물의 방 ‘그린볼트’를 소개하는 제2부에선 당대 최고의 장인을 동원해 제작한 공예품을 선보인다. 각종 보물이 사용된 작품을 통해 화려한 바로크 예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제3부에선 18세기 중국과 일본의 수출 도자기와 초기 마이센 자기를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다. 전시장 내부를 확대사진 기술을 사용해 드레스덴 궁전 내부와 비슷하게 연출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도그 in 강남
일정 11월 19일까지 장소 강남미술관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이해 동양화작가 곽수연, 사진작가 김현욱, 입체작가 빅터조, 업사이클링작가 엄아롱, 일러스트레이터 이연경, 도예작가 틸다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가 모였다.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회화, 설치, 사진, 조형 등으로 표현된 총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강남미술관이 무료로 제공하는 애견기저귀를 착용할 경우 반려동물도 입장이 가능하다. 반려동물이 있다면 함께 관람해도 좋다. 다양한 작품 외에도 유기견을 입양한 견주들이 보내준 사연을 읽어볼 수 있다. 또 반려동물 관련 서적을 비치하는 등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시장 건물 옥상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쉴 수 있는 ‘반려동물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book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민음사)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 작품 속의 ‘오늘’인 그의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하루를 담아낸 이야기다. 가족 간의 쉽지 않은 소통과 그럼에도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여정으로 그려내며 아스라한 동경과 영원한 그리움의 상대는 가족임을 들려준다.
향기 탐색 (셀리아 리틀런 저·뮤진트리)
고고학자인 어머니를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성장한 저자 셀리아 리틀턴의 향기 탐색서다. 냄새로 기억되는 곳들을 추억하며 향의 발자취를 답사하고 회고한다. 각 나라 특유의 향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향의 기초적인 원료와 재배법, 향수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movie
유리정원
칸,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신수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국내에선 보기 드문 소재와 독창적인 스토리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었다. 은 베스트셀러 소설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을 중심으로 그 속에 감춰진 슬픈 비밀을 그린 작품이다. 10월 22일에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몽환적이면서도 독특하다”, “신수원 감독의 남다른 상상력을 실감하게 만든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숲속의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며 초록 피가 흐르는 ‘재연’ 역을 맡은 문근영이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개봉 10월 25일 장르 미스터리, 드라마 감독 신수원 출연 문근영, 김태훈, 서태화, 임정운 등
리빙보이 인 뉴욕
이후 , 시리즈를 연출한 마크 웹 감독이 다시 한 번 로맨스 영화로 돌아왔다. 은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젊은 남녀 간의 로맨스를 통해 도시 뉴욕의 풍경을 스크린에 담았다. 마크 웹 감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도시인 뉴욕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뉴욕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드러냈다. 맨해튼의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을 배경으로 촬영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에선 로 얼굴을 알린 칼럼 터너가 남자 주인공 ‘토마스 웹’ 역을 맡았다.
개봉 11월 9일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 마크 웹 출연 칼럼 터너, 케이트 베킨세일 등
◇stage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항상 사랑받기를 꿈꾸며 살았던 여인 마츠코의 기구한 삶을 감성적인 연출과 음악으로 그려내며 진정 그녀의 인생이 혐오스러운 삶이었는지 되묻는다.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일정 10월 27일~2018년 1월 7일 연출 김민정 출연 박혜나, 아이비, 강정우 등
도둑맞은 책
인간의 행동은 의지인가 욕망인가. 영화대상 시상식 날 납치된 시나리오 작가 서동윤, 그리고 그를 납치한 보조작가 조영락. 두 사람을 통해 연극 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몰려 사람다움을 포기할 때 얼마만큼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일정 10월 13일~12월 3일 연출 변정주 출연 이현철, 이갑선 등
에어포트 베이비
미국으로 입양된 조쉬가 친부모를 찾아 한국을 방문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입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백하고 재치 있는 대사로 풀어내면서 감동을 선사한다. 8년 동안 수정과 보완작업을 거친 작품으로 현실적 소재를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일정 10월 17일~12월 31일 연출 박칼린 출연 최재림, 유제윤, 강윤석 등
오펀스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공연계의 독보적인 연출가로 불리는 김태형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 그리고 중년의 부유한 갱스터 해롤드. 아픔과 상처를 지닌 세 인물을 통해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전한다.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일정 9월 19일~11월 26일 연출 김태형 출연 박지일, 손병호, 장우진 등
올해 22번째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매스컴이나 TV를 통해서만 보았던 별들의 잔치에 직접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다.
항상 보았듯이 빨간 카펫이 길게 깔리고 멋진 남녀 배우가 그 위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한다.
부산은 매우 역동적이고 활발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
게다가 필자가 좋아하는 생선회에 대한 문화도 발달한 곳이어서 항상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이전에 몇 번 관광차 왔을 때도 자갈치시장 등 부산은 시끌벅적하고 사람 부대끼며 사는 맛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이곳은 떠나고 만나는 인생의 애틋함이 느껴지는 항구도시이며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정책기자단에서 20여 명의 기자가 함께 부산 국제영화제 취재차 여행을 시작했다.
하필 비가 내려서 걱정이었지만 하얀색 비닐 우비로 온몸을 칭칭 싸고는 내리는 빗방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막식장을 찾았다.
비 오는 날씨임에도 수많은 사람이 영화제를 보기 위해 모였다.
외국인도 많았고 바로 옆자리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축제인 듯 즐기는 모습이었다.
개막식 전 축하공연으로 김용걸 댄스팀이 웅장한 볼레로 음악에 맞춰 멋진 군무를 보여주었다.
드디어 조각 미남 장동건 씨와 소녀시대 윤아 양의 사회로 개막식의 닻이 올랐다.
집행위원인 강수연 씨는 오랜만에 보는 모습인데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미국의 올리버 스톤과 중국의 리샤오펑,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등 많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전했다.
특별한 시상식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창설부터 20여 년을 함께한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기리며 ‘지석 상’을 신설했는데 아시아영화의 발굴과 격려를 위함이라고 한다.
올해로 22년째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었다.새로운 작가를 발굴 지원함으로써 아시아 영화의 비전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1996년 시작되어 한국과 아시아 영화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부산 국제영화제이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을 상영한 이후 혼란을 이어오던 BIFF(부산국제영화제)가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역시 강수연 씨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니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래도 이날 개막식에 모인 영화애호가들을 보니 우리 영화계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큰 화면으로 무대 앞자리의 유명 영화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성기도 보이고 손예진, 문근영의 모습도 보였다.
개막식이 끝난 후 상영한 개막작은 오랜만에 영화계에 돌아온 문근영의 이라는 작품이다.
초록 식물의 화면이 아름답게 펼쳐진 신비하고 독특한 소재로 문근영의 촉촉하고 서늘한 눈 연기에 흠뻑 빠진 좋은 영화다.
먼 항구도시 부산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을 보았으니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기억은 필자 마음속에 영원히 저장될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행복한 추억으로의 여행을 마쳤다.
◇ exhibition
무민원화전:
Moomin Original Artworks
일정 9월 2일~11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핀란드 화가 토베 얀손(Tove Jansson, 1914~2001)의 손에서 탄생한 ‘무민(Moomin)’의 70여 년 연대기가 펼쳐진다. 무민은 1945년 얀손이 직접 글을 쓰고 삽화를 그린 라는 소설을 시작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전 세계 대중에게 알려졌다. 작가가 직접 그린 원화와 더불어 저작권자(얀손의 조카 소피아 얀손)가 소장한 미공개 작품과 오브제까지 총 3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무민캐릭터스, 핀란드 탐페레무민박물관, 헬싱키시립미술관, 헬싱키연극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던 주요 작품들이 이번 국내 첫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무민 라이브러리, 무민 상영관 등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체험해볼 수 있는 참여 공간도 함께 마련된다.
The Selby House:#즐거운 나의 집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대림미술관
세계적인 크리에이터들의 개성 넘치는 라이프스타일을 기록하는 아티스트 토드 셀비(Todd Selby, 1977~)의 작품 400여 점을 총망라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 사진들뿐만 아니라, 일상 소재에 위트를 더한 일러스트레이션, 영상, 그리고 새롭게 창작한 대형 설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 입구부터 시작해 전시장 내부, 정원, 카페까지 미술관 전체가 즐거움으로 가득한 ‘셀비의 집(Selby’s House)’으로 꾸며졌다. 유명인들의 사적 공간을 담은 사진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작가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거실, 침실, 작업실을 재구성한 ‘셀비의 방’과, 그의 유년기 시절 꿈과 기억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셀비의 정글’은 관객이 직접 체험하며 즐길 수 있다.
◇ book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하는 마지막 말들
재닛 웨어 저·인물과 사상사
간호사로서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는 데 헌신해온 저자가 임종 환자를 지켜보며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삶의 마지막 순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등을 기록했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은 탄생 못지않은 기적임을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서울편
유홍준 저·창비
1993년부터 시작한 답사기가 남도, 제주, 북한, 일본 등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의 문화유산과 역사, 인간사 등을 통찰력 있게 바라본다. 종묘와 더불어 창덕궁, 창경궁 구석구석을 살피며 조선시대 건축의 아름다움과 삶의 애환 등을 담았다.
◇ movie
안녕 히어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로, 오늘날의 노동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품을 연출한 한영희 감독은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이에 대한 다양한 화두가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은 나아지지 못한 실정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노동과 해고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그는 영화의 영문 제목을 ‘굿바이 마이 히어로(Goodbye My Hero)’라고 지으며 “세상의 영웅(노동자)들이 더는 짓밟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개봉 9월 7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한영희 출연 소년 현우, 아빠 정운
치어댄스
일본 최고의 고교 치어 댄스팀 ‘제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팀의 탄생부터 이후 3년간의 도전기를 담았다. 인생에서 가장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아름다웠던 고교 시절을 그린 성장 스토리로 중장년에게는 추억을, 청춘들에겐 용기를 북돋워준다. 한국에서는 로 잘 알려진 히로세 스즈가 몸치 소녀 ‘히카리’ 역을 맡았다. 또 로 익숙한 아마미 유키가 호랑이 선생님 ‘사오토메’ 분을 연기하며 훈훈한 사제지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출연 배우들이 완벽한 동작을 연출하기 위해 반년 동안 특훈과 합숙 기간을 거친 것으로 알려지며 영화 속 치어리딩 장면이 기대를 모은다.
개봉 9월 21일 장르 드라마 감독 가와이 하야토 출연 히로세 스즈, 토미타 미우, 아마미 유키 등
◇ stage
쿵짝
지난해 초연에서 전 회차 매진 기록을 달성했던 뮤지컬 이 1년 만에 재연을 확정지었다. 주요섭 작가의 단편소설 의 옥희를 주인공으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와 삶의 의미에 대해 재조명한다.
장소 동숭아트센터 일정 9월 30일까지 연출 우상욱 출연 윤여진, 권태진, 조현식 등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신념을 지키려는 선생님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학생들 사이의 대립을 그렸다. 반전을 거듭하는 탄탄한 구성과 빠른 전개, 잘 짜인 논리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일정 9월 8일~10월 15일 연출 이재준 출연 우미화, 박정복 등
틱틱붐
배우 이석준, 이건명, 배해선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이다. 성기윤을 비롯해 의 원년 멤버들이 뭉쳤다. 의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으로 작품을 향한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소 대학로 TOM 일정 8월 29일~10월 15일 연출 박지혜 출연 이석준, 이건명, 배해선 등
서편제
소리꾼의 길을 찾아나서는 아버지 유봉과 그의 딸 송화, 의붓 남동생 동호의 50년을 넘나드는 소리 인생을 그린다. 판소리 가락과 함께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이 제작한 서정적인 록, 발라드 등이 독특한 앙상블을 이룬다.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일정 8월 30일~11월 5일 연출 이지나 출연 이자람, 차지연 등
한 극장이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힘없는 연극인들은 도시 개발, 상권 확장에 쉽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진 극장만도 헤아릴 수 없는 요즘, 부산의 가마골소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소극장의 옛 추억을 간직한 시니어 세대와 무대를 지키고 싶은 젊은 연극인의 꿈이 담겨 있는 공간 가마골 소극장에 다녀왔다.
오늘도 내일도 극장문은 활짝 열린다
지난 7월 7일,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조용했던 마을에 풍악이 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낯익은 배우가 박자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고 모두의 얼굴은 상기돼 기쁜 모습이었다. 한산했던 시골 동네에 부산 연극의 중심이던 가마골소극장이 들어섰다. 6층짜리 화려한 건물 안에는 공연장을 비롯해 주점, 카페 등 연극인과 시민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워졌다. 1986년 부산 광장동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가마골소극장은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산실을 담당하던 곳이다. 연희단거리패의 활동 무대가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졌을 때도 꾸준히 실험연극을 비롯해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면서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중앙동과 광안리, 다시 광복동을 거쳐서 거제리로 무대를 옮겨 다니면서도 다수 공연의 매진 행렬과 최대 유료객석 점유율을 기록한 내실 있는 극장이었다. 그러나 시대 기류에 못 이겨 폐관이 기로에 서기도 했다. 결국 길고 길었던 셋방살이 30년에 종지부를 찍고 100년 길이 남을 극장으로 기장군에 세워졌다.
역사와 추억을 품다
“현재 부산 기장군에 신축 중인 6층짜리 가마골소극장의 건물 1층은 포장마차로, 2층은 카페 오아시스로 꾸밀 생각이라고 한다. 위층은 극장과 극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2017년 7월호 브라보가 만난 사람, 연극연출가 이윤택 인터뷰 中)
가마골소극장에 관한 계획은 작년 7월 연희단거리패의 꼭두쇠 이윤택 인터뷰를 통해 본지에 소개된 바 있다. 막연한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을 극장 건립을 통해 보여준 것. 1층에는 목로주점 양산박이 있다. 이윤택이 신문기자이던 시절 한 시인을 돕기 위해 부산일보 기자 네 명과 함께 출자해 부산시 광복동 입구에 차렸다던 ‘양산박’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2층은 부산 국제시장 근처에 있던 클래식 음악 카페 오아시스의 향수가 묻어나는 곳으로 꾸몄다. 이윤택이 20대이던 시절 당시 돈 80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악 듣고 시 쓰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곳이 바로 카페 오아시스였다고. 그때처럼 LP판은 아니지만 지금의 카페 오아시스도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천장에는 지금까지 연희단거리패가 공연했던 작품의 포스터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극단과 극장의 세월을 가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콘서트, 세미나, 북콘서트를 통해 시민과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로 이용할 계획이다.
2층에는 가마골소극장과 연희단거리패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연출가였던 故 이윤주의 기념관과 북카페 ‘책굽는 가마’가 함께 자리했다. 2015년 투병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꽃같이 사라진 배우이자 연출가 이윤주를 기리는 이윤주기념관에서는 그녀 연극생활의 시작과 끝을 만날 수 있다. 가마골소극장의 대표로서 서울보다는 부산 연극무대를 지켜왔던 이윤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비한 몸짓과 목소리를 가졌던 배우이자 연극쟁이였다. 아동극 연출과 연극 에서 배우를 마지막으로 영영 사라진 그녀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북카페 ‘책굽는 가마’에는 연희단거리패가 지금까지 출판했던 도서와 연희단거리패 연극 200선을 구비해놓고 판매도 한다. 조용히 책을 읽고 차를 마시기에 좋다.
3층과 4층이 바로 가마골소극장이다. 120석 규모의 극장은 작은 무대이지만 높이와 경사각이 깊어 무대가 답답해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5층과 6층은 배우들의 숙소와 연희단거리패의 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카이브도 마련돼 있다.
배우와 스태프가 직접 만들고 운영까지 하는 곳
가마골소극장에는 남다른 시스템이 있다. 바로 극단의 모든 구성원이 운영 주체다. 1층과 2층의 주점과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배우들과 스태프다. 분장을 하고 커피를 만들거나 서빙을 하고, 셔틀버스를 운행한 배우가 곧바로 무대에 올라가기도 한다. 극장의 무대, 조명, 음향, 객석 등 사람들이 오가는 곳곳에도 극단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서려 있다.
연희단거리패 조명감독 겸 가마골소극장 대표인 조인곤씨는 “가마골소극장은 연희단거리패와 극단가마골, 가마골소극장의 역사 저장창고라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기장에는 미역도 있고 멸치도 있고 해수욕장도 있다. 그리고 가마골소극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라디오코리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89년 2월 1일, LA의 한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라디오를 틀었는데 한국어가 나오고 한국 노래가 나왔던 거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한인들을 울렸던 목소리는 지금도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28년 동안, 그가 마이크를 놓았던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저 방송이 좋아 방송쟁이로 살아왔을 뿐인데, 어느덧 라디오코리아는 그의 인생이 되어 있었다.
최영호 라디오코리아 부회장(69). 그는 부인할 수 없는 LA의 라디오 스타다.
“죽을 때까지 하자던 장희는 울릉도로 가버리고, 글쎄 나만 이러고 있네요. 하하하.”
올해로 28주년을 맞은 라디오코리아와의 인연을 묻자 최영호 부회장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랬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라디오코리아는 ‘이장희’로 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장희가 홀연히 떠났고 라디오코리아는 위기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이후 10년, 라디오코리아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동안 광역주파수를 가진 자체 라디오방송국도 마련했고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지역과 하와이까지 지국을 넓혔다. 최근엔 한국의 종편채널 ‘TV조선’과 손잡고 TV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최영호 부회장의 공이 적지 않았다.
라디오코리아의 주인도 바뀌고, 건물도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그는 바뀌지 않았다. ‘부회장’이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여전히 그의 자리는 스튜디오 안 마이크 앞이다. 28년을 한결같이 들어온 목소리. 이제 사람들은 라디오코리아 하면 ‘최영호’를 떠올린다.
‘라디오코리아’ 너는 내 운명
“참 재미있는 것이 인생이에요. 미국에 오기 전 장희(가수 이장희)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동아방송 이라고. 장희랑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예요. 친구가 일하는 방송국에 가서 재미 삼아 원고도 써주고 음악도 고르며 놀곤 했어요. 그때 김병우 PD도 알게 됐고요. 나중에 세 사람이 모두 미국 LA에서 만난 거예요. 운명이었죠. 우리에게 라디오코리아는.”
1974년, 대학(연세대학교 물리학과)을 졸업하고 큰누이가 사는 LA에 와 있던 최 부회장은 김병우 PD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때가 1988년, 무역회사에 잘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한인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어보자는 말에 최 부회장은 짜릿함을 느꼈다. 곧 이장희까지 합세, 세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라디오 방송을 하려면 주파수(스테이션)를 사야 하는데 값이 어마어마합니다. 때문에 같은 주파수를 여러 다른 커뮤니티가 시간별로 렌트해서 나눠 쓰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아시안 라디오 Am1300에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방송을 하기로 계약을 했어요. 김병우 PD가 한국에 레코드판을 사러 간 사이 우리는 방송 인력을 뽑았어요. 프로를 원했기 때문에 필기시험, 실기시험 갖출 건 다 갖춰서 했습니다. 다섯 명을 뽑았는데 그들이 라디오코리아 공채 1기입니다. 그중엔 현재 라디오코리아 보도본부장을 맡고 있는 송봉후씨도 있었습니다. 그때 목소리가 상당히 좋았어요. 지금도 좋지만…(웃음).”
최 부회장은 1989년 2월 1일 12시를 잊을 수가 없다. 애국가가 울려 퍼진 후 송봉후 아나운서의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여기는 라디오코리아입니다!”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의 한인들은 감격에 겨워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은 “이 방송이 진짜냐, 내일도 하느냐?”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장희가 맡은 음악 프로그램 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방송이 나가는 시간이면 방송국 앞으로 찾아온 사람들로 한바탕 난리가 나곤 했다. 그야말로 미주 한인 이민사의 한 페이지였다.
잊을 수 없는 그날, 4월 29일
“라디오는 참 매력적인 매체입니다. 들으면서 뭐든 다 할 수 있으니까요. 한인들은 삶의 현장에서 라디오를 들었죠. 봉제공장에서, 미장원에서, 방앗간에서, 운전을 하면서 모두가 라디오를 들었던 겁니다. 한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던 수백 명의 한국인 여직원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려 미국인 감독이 깜짝 놀랐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힘들었지만 낭만이 있던 시절이죠.”
라디오코리아는 한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함께 울고 웃었다.
가장 떠오르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최 부회장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1992년 4월 29일의 LA폭동 이야기를 꺼냈다.
“퇴근을 하려는데 흑인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뭔가 일이 터지겠구나 싶더라고요. 직원들에게 퇴근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사우스 센트럴 일대는 순식간에 무법천지가 되었다. 폭도들은 북쪽으로 밀고 올라와 코리아타운을 습격했다. 불길이 치솟아도 소방대는 오지 않았고 떼를 지어 가게 물건들을 약탈해가도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한인들은 라디오코리아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리쿼스토어인데 폭도들이 쳐들어온다.”
“지금 창문을 깨고 불을 지르고 있다.”
“웨스턴 길로는 들어오지 않는 게 좋겠다.”
최 부회장은 재빨리 특별 생방송을 결정하고 시시각각 들어오는 소식을 그대로 전했다. 폭도들의 위치를 알려주면 상인들은 미리 대비를 했고, 운전자들은 자동차에서 방송을 들으며 안전한 길로 갈 수 있었다.
“상상해보세요. 스마트폰도 GPS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눈앞에서 폭도들이 날뛰고 건물이 불타는 전시 상황과 같은 곳에서 라디오코리아 방송은 한인들에게 목숨 줄이었습니다. 경찰이 한인타운을 지켜주지 않자 한인들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었죠.
1세들이 이민 와서 피땀으로 일궈낸 모든 것이 초토화될 상황이었습니다.”
폭동이 진압된 후에는 엄청난 피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급한 일이었다. 한인 공무원, 회계사, 변호사들을 불러 모아 함께 방송을 했다. 라디오코리아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가 똘똘 뭉치는 모습에 미국 주류 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루는 화이트하우스에서 전화가 왔어요. 백악관 말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라디오코리아를 방문하겠다고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현직 대통령이 로컬 언론사를 직접 찾는 일은 처음이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비서실장이 직접 한 말입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제 개인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어요.”
야구광, 다저스를 만나다
최영호 부회장은 유명한 야구광이다.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 다저스의 팬이 되었고 특히 ‘다저스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빈 스컬리 캐스터의 중계를 듣는 것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라디오코리아를 개국한 이듬해인 1990년, 최 부회장은 당시 LA 다저스의 구단주 피터 오말리를 찾아갔다. 거두절미하고 그가 던진 말은 “라디오 중계 좀 합시다!”였다고.
“한인들이 다저스 중계를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싶었습니다. 야구 중계를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재미있었던 것은 오말리 구단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예스’를 한 거였어요. 당시 메이저리그 중계는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렇게 세 가지 언어로만 했는데 한국어가 네 번째가 된 겁니다. 그해 9월 다저스와 신시내티와의 경기 중계를 하러 다저스구장에 갔지요. 그때의 감격이란… 그날 경기 녹음테이프는 뉴욕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도 있습니다.”
또 한 번의 역사적인 날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 중계를 한국어로 들을 수 있는 날이 올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최 부회장의 중계는 재미를 더했다. 경기 상황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뒷이야기 등 미국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담긴 그의 중계는 한인 다저스 팬들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를 했다. 다저스 구단으로서도 대만족이었다.
“다저스 구단 측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팀에 한국 선수가 하나 있으면 너무 좋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외국 선수를 기용하는 데 꽤 적극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도 쉬웠죠. 4년 뒤인 1994년, 마침내 박찬호 선수가 LA에 오게 되었죠.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2년 동안 라디오코리아는 전 경기를 중계방송했어요. 당신을 응원하는 한인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이후의 메이저리거 활약은 모두를 신바람 나게 했어요. 박찬호 선수와 지금 뛰고 있는 류현진 선수를 보고 있으면 저 혼자 느끼는 보람 같은 것이 있습니다.”
최 부회장은 지금도 다저스 경기에서 캐스터와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했던가. 야구 중계만이 주는 짜릿함이 있다. 방송 경력 28년에 다저스 경기 중계만 27년, 그는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며 무한애정을 드러낸다.
“간혹 나이도 있는데 언제까지 힘들게 일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얘기해줍니다. 빈 스컬리는 67년간 다저스 중계를 하다가 88세에 은퇴했다고(웃음).”
“인호 형의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어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최영호 부회장은 2013년 작고한 고 최인호 작가의 친동생이다. 세상없는 우애를 나누던 형이자 국민 작가를 떠나보낸 지 어느덧 4년.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최인호 작가는 유독 LA와 인연이 깊었다. 3남 3녀 중 누이들과 동생인 최 부회장이 1970년대에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을 와 있었던 까닭에 자주 찾아와 오래 머물다 가곤 했다. 참고로 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8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LA와 데스밸리 여행 중에 구상된 작품이다. 잡지 에 35년간 연재된 자전적 소설 을 비롯해 고인의 작품 곳곳에는 홀어머니와 그 밑에서 어렵게 자란 형제들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다.
“작가 아니랄까봐 까칠하고 예민한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인호 형과 나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형의 글 쓰는 모습만 떠올라요. 자고 일어나 문틈으로 보면 역시나 글을 쓰고 있었고… 이사할 때마다 형의 습작들이 한 짐이었지만 어머니는 단 한 장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셨습니다.”
형 최인호와 아우 최영호만이 아는 신춘문예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형이 군대를 가면서 자신이 공책에 끄적거려놓은 게 있으니 원고지에 정필해 신문사에 보내라고 했어요. 나름대로 정성껏 써서 신문사에 보냈죠. 그렇게 당선된 작품이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견습환자’예요. 원고지 첫 장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정성을 들여 한자(漢字)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어령씨가 글씨가 너무 유치해서 읽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형과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어요.”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나누던 친구 같은 형이었지만 장례를 치르는 동안 최 부회장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작가 최인호는 자신이 범접할 수 없었던 ‘거인’이었다는 것을.
“정치, 경제, 문화, 예술계 전체가 애도를 표해왔지요.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객들과 분향을 하고 흐느끼는 독자들을 보면서 형님이 얼마나 위대한 작가였는지, 한 시대를 품었던 예술가였는지 알게 됐어요. 아, 내 형님이 이런 분이었구나, 내가 더 존경해야 했던 분이었구나 회한이 밀려와 많이도 울었습니다.”
최 부회장은 형의 작품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 서고의 벽 하나를 다 차지하는 적지 않은 양이다. 형이 하늘로 간 후로 지금까지 그는 그 책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읽고 있다. 라디오코리아 그의 사무실 책상에도 작가 최인호의 주옥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늘 곁에 두는데도 볼 때마다 마음이 철렁한다. 첫 장에는 어김없이 ‘영호에게’로 시작되는 형의 짧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보물들이다.
“갈수록 무뎌져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갈수록 보고 싶어요. 큰누이를 잃고 많이 울던 나에게 형은 누이를 가슴에 묻으라 했어요. 인호 형도 그렇게 가슴에 묻어야겠죠. 그는 나에게 영웅입니다. 형에 대한 존경심은 점점 그 깊이가 더해져요. 형 없이 나 혼자 늙어가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또 많이 감사합니다. 형으로 인해, 형의 글들로 인해 깨닫는 것이 많아지니까요.”
지키고 싶은 이름, 방송인 최영호
세월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TV보다는 인터넷을, 라디오보다는 MP3가 더 편한 세대다. 최영호 부회장은 방송은 변하지만 방송을 하는 정신은 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라디오코리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로컬 방송의 생명은 바로 우리들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인 동포들이 라디오코리아에게 가지고 있는 믿음은 정말 소중한 겁니다. 라디오코리아는 미주 한인의 자본으로 만든 한인언론이에요. 진짜 우리의 생각을 전하고 이익을 대변하는 ‘우리 방송’인 거죠. 저는 한인 사회가 있는 한 라디오코리아도 존재할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마이크 앞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방송인이라고 칭한다.
“나는 마이크 앞에 방송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감투도 싫고 명예도 귀찮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목소리가 변하면 청취자가 싫어할까요? 그래도 같이 늙어가는 친구 같은 분들이 있지 않을까요? 그분들을 위한 좋은 음악방송을 하고 싶어요. 깊은 밤에 함께 음악도 듣고 지난 얘기도 나누고요. 와, 이런 얘기 방송에서 해도 되나 싶은 것도 막 이야기하면서 말입니다(웃음).”
어제 그제 쏟아진 폭우로 그리도 무덥던 여름이 막을 내린 듯 선선한 날씨가 되었다.
아침저녁 시원해도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곡식이 영글 수 있도록 한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쨍쨍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은 한낮에도 그리 덥지 않아 쾌적한 기분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좀 늦은 시간인 오후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공연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지만 걱정할 것이 없다.
저녁 시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앞 분수대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화려한 분수 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의 멋진 물의 향연을 감상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이번 공연은 서울 그랜드필하모닉과 함께 바리톤 김동규와 국악 소녀 송소희, 베이스 손태진의 멋진 콜라보레이션 무대이다.
서울 그랜드필하모닉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 서훈 씨는 연주 사이사이 알기 쉽게 음악 해설도 곁들여서 대중성 있는 프로그램 구성은 물론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날은 주말이 아닌데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일, 이 층 넓은 좌석이 꽉 찼다.
출연자들의 시원한 성량을 기대하며 한여름 밤을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인 것 같이 보인다.
시간이 되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먼저 서울 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서곡이 연주되었는데 이 오케스트라는 국내 최고 수준의 연주자로 구성된 창립 23주년의 역사와 실력을 겸비한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이라 한다.
첫 연주가 끝나자 성악가 김동규씨가 무대에 등장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많이 보아 온 분이라서인지 낮 설지 않고 우리 이웃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무대 매너도 매우 노련해서 관객과의 소통도 매끄럽게 잘 했다.
이런 저런 제스춰로 인사를 하는데 옷자락을 펄럭이는 게 투우사를 연상하게 했다.
역시 첫 노래는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였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자신이 옷자락을 펄럭일 때마다 “올레~”하고 외쳐달라고 주문했다.
시원하고 화통한 울림으로 노래가 시작되었고 옷자락을 펄럭일 때마다 관객들은 모두 “올레~”하고 외쳤다.
성악가와 관객이 한마음이 되어 즐기는 멋진 공연이 펼쳐졌다.
필자도 옷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올레~”소리치며 즐거웠다.
두 번째 들려준 노래는 필자마음을 울렸다. 에디뜨 피아프의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의 샹송으로 필자가 매우 좋아한 음악인데 김동규 씨의 성악 발성에 에디뜨 피아프의 애절한 음색이 오버랩으로 다가와 필자 마음을 흔들었다.
두 번째 출연자 송소희는 반짝반짝 눈부신 드레스로 무척 예뻤다.
등장하자마자 “배 띄워라~”청량하고 강한 울림이 귓전을 때렸다.
어린 나이에 어쩜 저렇게 성량이 풍부하고 우리 가락을 잘하는지 감동적이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아주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듯 인사를 해서 청중을 웃겼다. 좀 전의 노래할 때와 너무나 다른 목소리였다.
그저께가 광복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리랑’이 더욱 처연하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출연자는 베이스의 매력적인 보이스 손태진씨로 얼마 전 TV프로인 팬텀싱어에서 최종 우승을 해서 이름을 알린 분이다.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각자 노래도 좋았지만, 세분이 함께한 콜라보 무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볼라레’나 ‘싱싱싱’ 등 잘 알고 있는 노래를 관객과 함께 부르며 즐긴 공연이었다는 점이다.
이 곡에는 관객 모두 일어나서 손뼉 치며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러 열광의 무대를 함께 했다.
클래식과 국악이 어우러진 감미롭기도 하고 격정적이기도 했던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타이틀처럼 한여름 밤 ‘멋진 어느 날’이 된 이 날을 필자는 잊지 못할 것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가 흐른다. 목소리의 음파는 잔잔하고 웃음소리는 까르르 하늘로 밝고 높게 퍼진다. 유연하고 정직하고 때로는 강인한 느낌. 심상을 모아보니 여성이라는 글자에 다다른다. 신학자이며 여성학자인 현경 교수가 매년 개최하고 있는 ‘살림이스트 워크숍(주최 문화세상 이프토피아)’에 가면 누구든지 빛나는 눈빛과 밝은 에너지를 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낯선 이름의 행사가 올해로 벌써 13회째란다. 도대체 어떤 기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매년 꾸준하게 열리고 또 이렇게 뜨거운지 살림이스트 워크숍에 찾아가봤다.
뉴욕 유니온신학교(UTS)의 종신 교수이자 종교학자·환경운동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현경. 여름방학이 되면 매년 한국으로 돌아와 뭔가 큰일을 꾸미느라 바쁘다. 그게 바로 살림이스트 워크숍이다. 올해는 7월 7일에서 9일까지 3일간 서울시 종로구 (재)여해와 함께 평창동 대화의집에서 열렸다. 지금까지 살림이스트 워크숍은 국내외 명사를 초청해 명상하고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져 왔다. 이 행사의 중심은 여성이다. 여성의 온전함과 영성, 치유를 얻고 발전시키는 시간으로 해마다 꾸며지고 있다. 제주여성 평화기행, 여신 기행 등 이색적인 콘텐츠로 여성들과 함께 걸어온 ‘살림이스트 워크숍’이다.
지구 여성의 이야기, 영화가 되다
올해 ‘살림이스트1 워크숍’은 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 가장 도전적인 워크숍이었다. 영화제로 살림이스트 워크숍을 진행한 것. 외국 작품 5편과 한국 작품 1편을 선정해 상영했다. 외국 작품의 경우, 미국 뉴욕에서 2014년부터 매년 진행돼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 음악영화제2의 올해 출품작 중에서 골랐다. 영화는 세계여성의 지혜, 원주민의 영성, 지구를 살리는 생태적인 힘, 사회 정의를 기준으로 삼았다. 올해 첫선을 보인 영화제 형식의 살림이스트 워크숍은 쭉 고민해볼 계획이다. 3일이 아니더라도 2일 정도를 할 수 있게 추진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현경 교수는 말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계 여성을 비추다
첫째 날은 원주민의 전통 속에서 배워야 할 가치, 둘째 날은 여성의 지혜와 지구 생태 정의,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세계 원주민의 영성과 한국의 샤머니즘이 주제였다. 첫날 오프닝 영화로 선정된 (감독 클라우스 쉥크)은 히말라야 산맥 고지대에서 사는 2명의 티베트 여성이 문명사회인 런던을 여행하며 겪는 이야기다. 여행 내내 보이는 이들의 통찰력 있는 행동이 ‘살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둘째 날은 몽고 초원을 배경으로 독수리 사냥꾼을 꿈꾸는 소녀와 동물의 소통을 다룬 (감독 오또 벨)와 전통공예로 빈곤을 극복한 키르기스스탄 여성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감독 안드레아 오데진스카), 수천 명의 케냐 여성을 모아 나무를 심으며 환경·인권 보호 및 민주주의 운동을 펼친 왕가리 마타이(노벨평화상 수상·2004)의 일대기를 보여준 영화 (감독 리사 머튼·알란 데이터)을 상영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감독 안드레아 오데진스카의 영화 과 박찬영 감독의 영화 이 마지막 날을 장식했다. 은 영화감독인 안드레아 오데진스카가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영화 은 국민 만신 김금화 일대기를 옛 영상과 배우의 재연을 섞어 만든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주인공 김금화 만신이 초대돼 참석자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로 신을 모신 지 70년이 됐다는 김금화 만신은 참가자를 향한 고마움과 함께 가정의 평안과 소원성취를 기원했다.
1. 살림이스트는 현경 교수가 만들어낸 용어다. ‘모든 것을 살려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자연의 해방과 온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여성의 원천성을 찾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내 안의 신성, 내 이웃, 사회, 지구 전체 등 주변의 생명체들을 돌보고, 공격과 충돌이 아니라 상생과 대화를 믿는 것이다. 살림이스트는 한국의 에코페미니스트라고 현경 교수는 규정한다.
2. 패러다임 전환 음악영화제(PARADIGM SHIFTS, MUSIC & FILM FESTIVAL).
이 영화제는 지구, 바다, 야생 동물 및 성지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전 세계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제다. 올해도 뉴욕에서 지난 6월 13일에서 17일까지 개최됐으며 내년에는 아시아를 주제로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요즘 예서제서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신문이나 티브이 뉴스에서도 늘 그렇듯이 바다이야기가 연일 분분하다. 청춘들의 열정으로 뜨겁게 달구던 그 바다도, 높은 파도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서핑도, 그 옛날 친구들과 함께 남겨두었던 백사장의 발자국도 이젠 가만히 바라볼 느긋함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뉴스를 뒤적이다가 영화기사가 얼른 내 눈에 들어온다. -あの夏, いちばん靜かな海, A Scene At The Sea
필자가 십여 년 전에 보았던 일본 영화였는데 요즘 다시 상영한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하필 지방도시의 딱 한 군데서 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상영 관련 프로그램도 이미 있었다. 마침 내게 DVD가 있다.
그 바다에 우두커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던 청년이 있었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게루'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면서 버려진 서핑보드를 집어 든다. 그리고 손질한 그 보드를 매일 바다로 들고나가 혼자서 파도와 씨름을 한다. 그의 곁에는 늘 한결같은 여자 친구가 그림자처럼 따른다.
소란함이나 발랄함도 화려함도, 청춘들의 요란한 사랑타령도 찾아볼 수 없는 화면, 아니 그런 것들이라면 이 영화에서는 거추장스럽다. 시게루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해서, 그리고 여자 친구 역시 청각장애이기 때문에 굳이 조용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높아지고 같이 걷는 두 남녀의 침묵은 더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서정적인 그 풍경들이 아릿하고, 미더운 그들의 사랑이 마음을 뜨겁게 또 담담하게 감수성을 조절해 준다.
시종일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바다는 말하지 못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파도에 한껏 실어다 준다. 그들의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독했던 청년의 진지했던 파도타기를 보여준다. 무표정하고 조용하지만 이들이 바다와 교감하는 화면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혹시라도 조용해서 지루하고 따분할 수도 있다면 전 편에 흐르는 음악이 있다.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의 스토리가 읽히는 듯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보드를 타고 바다로 간 시게루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슬픔 속에서 담담히 회상하는 타차코는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시게루가 남긴 낡은 보드에 붙여 바다로 떠나보낸다.
코믹하거나 폭력적이고 이념적이고자 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조용한 정서가 키워드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히 흐르던 화면이었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남녀이건만 그 흔한 수화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바라보는 눈빛과 간단한 손짓과 몸짓이 그들의 애정 어림이다. 화면마다 긴 호흡의 움직임과 과장 없는 스토리로 영화를 이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가슴으로 밀려드는 먹먹함에 타차코처럼 그 바다의 모래밭에 나조차 우두커니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다. 소음 속의 세상을 잠깐 벗어나 수채화처럼 잔잔한 바다를 실컷 바라볼 수 있는 이 영화는 시처럼 여운이 길다.
문학작품을 고를 때 작가가 누군지 반드시 확인하면서 영화를 볼 때는 대부분 제목만 보고 선택해왔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영화를 봐왔으면서도 필자에게 영화는 감독의 메시지나 예술적 성취보다는 그저 한 시간 반 정도 즐기는 가벼운 문화적 소비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적어도 무더위가 절정에 오른 지난 주말까지는.
더위에 지친 날 영화를 보자는 제의는 반가웠다. 적어도 영화관은 시원한 곳이니. 게다가 모처럼 남편의 제의라 제목도 묻지 않고 따라나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 전쟁영화란다. 남편은 감독의 전작들을 언급하면서 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으나 생소한 이야기였고 더욱이 전쟁영화는 필자가 선호하는 장르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이 더위를 피할 수만 있다면.
상영시간이 임박해서인지 좌석이 첫 줄밖에 없었다. 아이맥스에서 보고 싶어 했던 남편은 오히려 앞줄이라 좋단다. 우리는 그렇게 그날의 현장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포위되어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 40만 명을 도버해협 건너 영국으로 철수시키는, 실제 있었던 기적 같은 작전을 영화로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스토리다운 스토리가 없었다. 영웅 같은 주인공도 없었다. 곳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아우성만 가득했다. 그렇다고 처절한 살육 장면도 없었다. 독일군에 포위되어 있다는 설정만 있을 뿐 독일군도 보이지 않았고 본격적인 접전도 없었다. 보통 전쟁영화에서 흔히 보여주는 익숙한 장면들이 보이지 않았다. 배경만 전쟁영화일 뿐 실제로는 재난영화라고 분류해야 할 지경이었다.
감독은 이 영화를 배에 오르는 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1일, 하늘에서의 1시간 등 세 가지 시퀀스로 나누어 각기 다른 서술자의 시각으로 교차해가면서 보여준다. 영화 전반부는 서로 소통되지 않는 각각의 상황에서 처절한 사투만이 이어진다. 잔교에서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다 적기의 사격으로 속절없이 죽어가는 병사들. 징발된 작은 배를 몰고 전장으로 가는 이름 없는 어선들. 연료가 떨어져가는데 적기로부터 아군을 지켜야 하는 조종사. 거대한 전장을 교직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
이런 아수라장 속에 감독은 세 개의 작은 이야기를 배치한다. 수많은 병사 중 카메라는 토미(핀 화이트헤드)와 남의 이름을 도용한 깁슨(아뉴린 바나드)의 동선을 따라간다. 그들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지만, 서로 돕는 인간애를 지니고 있다. 징발된 요트를 몰고 나가는 도슨 부자는 따라나선 소년 조지가 바다에서 구해준 병사의 우발적 폭력으로 죽게 되지만 임무를 완수한다.
이 모든 흐름이 하나로 합일되는 시점은 조종사 콜린스가 적기에 격추되어 바다에 추락하고 도슨 부자가 그를 구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또 이들은 서로 돕고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감독의 시선은 선악을 판정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살아남으려는 평범한 인간들일 뿐이다.
이 영화는 전쟁을 정의하려 하지도 않고 선악으로 재단하지도 않는다. 아마 감독의 보여주려고 한 메시지는 살아 돌아온 병사들을 환영하면서 한 시각장애인이 “살아서 돌아온 것으로 충분해”라고 한 말일 것이다. 우리를 한 시간 반 넘게 이 품격 있는 전쟁터에 몰입시킨 것은 단연코 음악이다. 시계 초침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을 변주하며 줄곧 내장을 울렸던 음악이 시간과 더위를 잊게 해준 공신이었다.
이 영화는 단언컨대 감독의 영화다. 마지막 파리어(톰 하디)의 비행기가 연료가 떨어져 무동력으로 하늘을 비행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순간 일주일, 하루, 한 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의 부조화가 하나로 합일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