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가 밝고 환하다. 언뜻 알록달록 꽃들인 줄 알았는데, 예쁜 면 생리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리컵이라는 낯선 물건들도 함께 놓여 있었다.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포스터부터 대놓고 영화의 주제가 ‘생리’임을 드러내는 영화 ‘피의 연대기’.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의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에 대한 내용이다. 50플러스서부캠퍼스에서 영화 상영과 함께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덕분에 영화의 후일담을 들을 수 있어 매력적이라 느꼈다.
그렇다면 ‘피의 연대기’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영화의 출연과 연출을 맡은 김보람 감독은 “여자들이 생리를 처리해 온 역사뿐만 아니라 내 몸에서 일어난 개인이 겪은 생리의 역사, 그리고 생리를 하고 있는 여자들의 연대 모두를 의미한다”라며 야무진 답변을 들려줬다.
우리 사회 담론에서 밀려나 있던 여자들의 은밀한 이야기 ‘생리’. 저소득층 여학생의 깔창 생리대 문제가 사회에 툭 튀어나오고부터 정치권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며, 이제는 완경을 맞은 나의 생리 역사도 떠올랐다. 초경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엄마와 언니가 있었지만 딱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쑥스럽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생리 주기는 정확한 편이었고, 생리통도 심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나 더운 여름에 생리를 하면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생리통으로 하얗게 얼굴이 변하며 고생하던 친구들도 떠오른다.
영화는 이러한 내용을 무겁지 않게 톡톡 건드리며 쉽고 자연스레 몰입하게 만든다. 여자들 몸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이야기이지만, 세상에 환하게 드러내 놓고 보니 또 자연스럽다. 처음 사용법을 알게 된 생리컵이라는 이상한 물건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에 대해 남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남자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면 좋겠어요. 어떤가요?” 감독과의 시간에 내가 던진 질문이다. 이에 김보람 감독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게다가 주제는 생리, 남자들이 싫어할 만한 3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간혹 여자친구 손에 끌려오는 남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남성 관객이 별로 많지는 않습니다”라며 웃으며 답한다.
여자마다 다양한 생리 증후군이 있다. 나는 여자들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고통을 남자들이 좀 알았으면 한다. 여성은 그들의 친구, 동료, 애인, 아내, 이웃이 아니던가? 이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이해하고 함께 생활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첫걸음은 없으리라. 여성들도 남자들이 저절로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도움과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나는 생리 직전 우울감과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이런 호르몬의 장난을 알고 있던 남편은 긴 연애와 결혼 생활 동안 매달 유난히 까칠해지는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해주었다.
생리대는 필수품, 뉴욕시 공짜 생리대 법안 통과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영화에도 나오듯 2016년 뉴욕시는 공립학교·교도소·노숙자 보호소 등 공공화장실에 생리대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영화 제작진은 이 장면을 직접 촬영했다.
“모든 여성의 존엄과 보건을 위한 중대한 한 걸음”이라는 뉴욕시의 슬로건이 뭉클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건강이 좋지 않으면 몸의 주기성이 깨져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생리의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많아지리라. 우리나라도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지급하는 지자체가 많아지고 있어 반갑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생각의 변화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재직할 때 일이다. 보건 선생님은 생리대를 준비해오지 못해 쑥스러워하는 여자친구의 손을 끌고 보건실에 온 남학생들이 가끔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OO을 건드리지 마! 오늘이 그날이래~”하는 남학생도 있었다. 장난처럼 오가는 말에 친구를 위한 배려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자연스런 몸의 현상 중 하나로 이야기되는 일이 좋아 보였다.
‘피의 연대기’ 같은 여자의 몸, 생리에 대한 다큐 영화가 제작되고, 함께 토론해보는 것도 진전의 신호이다. 여혐, 남혐 사회를 뛰어넘어 남녀가 살아가는 동반자로 서로의 특징을 잘 이해하는 것이 평화로운 삶의 첫걸음일 것이다.
그나저나, 영화가 적자라 고민이 많다던 감독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완벽한 미모로 인해 연기력이나 지성이 과소평가되는 배우가 있다. 알랭 들롱과 마릴린 먼로가 대표적이다. 요즘에는 신도 질투할 미모와 아우라를 갖춘 완벽한, 배우다운 배우가 없어 스크린 앞에 앉을 때마다 불평하게 된다. “저 정도 용모와 연기력으로 감히 나의 귀한 시간과 체력을 소모케 하다니.” 정말 놀라운 건 요즘 젊은이, 심지어 영화 좀 본다는 이들도 알랭 들롱과 마릴린 먼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름도 모른다고 답한다는 것. 물론 세계 각국 고전을 챙겨보는 게 어렵지 않은 요즘. 지금 한국의 젊은이, 영화학도는 고전을 찾아볼 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여름이면 생각나는 배우 알랭 들롱. 아마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몰래 간 영등포 모 극장에서 ‘태양을 가득히’를 보고 온 다음 날, 1교시에 들어온 영어 선생님을 보고 경악했다. 넓적한 얼굴이 늘 술 마신 것처럼 불콰해서 ‘음주후’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생님. 그날따라 어찌나 못생겨 보이던지. 칠판 꼭대기 판서가 불가능한 작은 키, 어벙한 양복 차림에 오버랩 되던 알랭 들롱의 푸른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세련된 양복 차림. 선생님이 조금만 잘 생겼더라면 영어를 작파하기로 결심하진 않았을 텐데.
1988년 프랑스를 여행하며, 거리 청소부도 알랭 들롱처럼 잘 생겼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내 마음속 알랭 들롱은 여전해서, 그가 세상을 떠나면 ‘제라르 필립-장 가방-이브 몽탕- 알랭 들롱’으로 이어진 프랑스 남성 스타 계보는 사라질 테니, 무슨 재미로 프랑스 영화를 보나 싶다. 그런저런 사연으로 15년 전이던가, 한국영상자료원에 비디오테이프를 수백 점 기증할 때, 큰돈 주고 어렵게 구한 귀한 한국 영화는 기꺼이 내주었어도, 알랭 들롱 출연작은 단 한 편도 내주지 않았다.
알랭 들롱을 향한 시시콜콜 연모를 드러낸 것은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다시 본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영화 ‘한밤의 암살자’(Le Samourai, 1967) 때문이다. 알랭 들롱 주연의 범죄 영화는 과묵하고 대부분 그가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한밤의 암살자’는 그 절정, 궁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 제프(알랭 들롱)는 말이 없고 주도면밀한 암살 전문가다. 자신을 사랑하는 고급 매춘부 제인(나탈리 들롱)과 알리바이를 약속한 후, 나이트클럽 사장 살해 지령을 수행한다. 수많은 용의자 중 제프를 의심하는 수사반장(프랑소와즈 페리에르). 그러나 유일한 목격자인 나이트클럽 피아니스트(캐시 로지에르)의 거짓 증언으로 풀려난다. 불안한 암살 고용주는 또 다른 암살 전문가를 보내 제프를 죽이려 한다. 제프는 경찰과 킬러에게 쫓기며 고용주를 알아내려 한다.
정면에 창문이 보이긴 하지만, 어두운 방 벽을 배경으로 크레디트만 떠올라, 침대에 누운 제프가 내뿜는, 희미한 푸른색이 감도는 하얀 담배 연기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흑백영화인가 할 정도다. 도입부에서 마지막까지, 영화는 프렌치 누아르 고전 수작답게 흑백 분위기로 일관한다. 마침내 일어선 제프가 거울 앞에서 연갈색 더블 코트에 같은 색 모자를 쓰고 모자 끝을 매만져 단장을 끝낸 후 방을 나선다. 알랭 들롱 미모에 누를 끼쳐선 안 되니, 옷차림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 더블 코트, 혹은 양복과 모자, 구두 디자인과 색감까지 신경 쓴 완벽한 남성 패션을 자랑한다.
집 앞 골목에 세워진 자동차를 훔칠 때, 주머니에서 꺼내는 열쇠꾸러미는 마치 대갓집 마나님이 속곳에서 꺼내는 열쇠처럼 묵직하다. 철사로 꿴, 최소한 100개는 돼 보이는 열쇠를 하나하나 끌러 시동을 걸어본다. 아, 아날로그 범죄의 침착하고 여유 있는 행동이라니!
훔친 차를 몰고 사람도 집도 보이지 않는, 자잘한 돌로 포장된 좁은 골목을 달려, 셔터 올린 창고로 단번에 들어간다. 감독 멜빌은 제프가 훔친 차를 몰고 좁은 골목을 달려 곧바로 창고로 들어가는 장면을 “자르지 않고 어찌 찍을까?” 걱정했는데, 알랭 들롱은 이를 한 번에 해냈다고 한다. 자동차 정비공이 차 번호판을 바꾸어주고 총을 주고 서류와 돈을 주고받을 때까지, 정비공과 제프는 눈빛으로만 소통한다.
제인의 아파트 방 앞. 인기척도 없건만 직감적으로 일어난 제인이 “제프?”라고 묻기까지, 9분 58초. 음악도 없다. 경제적인, 절제된, 영화 본질은 말이 아닌 행동 심리라는 걸 웅변하는 잊을 수 없는 도입부요 스릴이다. 모름지기 ‘싸나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는, 필름 누아르는, 알랭 들롱 영화는 이래야 한다.
완벽한 미남 스타 알랭 들롱이 거처하기엔 누추하고 초라한 단칸방. 변변한 가구도 부엌 도구도 없는 방 한복판에 새장 속 새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유일한 생명체인 새가 얼마나 영리하게(새의 변화를 알아보는 예민한 관찰력의 제프, 암살자가 대단한 거지만) 정보를 주는지. 인간은 머리를 굴리며 배신하지만, 새는 스스로 기진해 죽어가면서 먹이를 준 고독한 암살자에게 충정을 바친다.
살림살이랄 것도 없는 집이라 식사는 어찌 해결하는지. 알랭 들롱은 특히 범죄 영화에서 밥 먹는 걸 보여준 기억이 없다. 잘 생겼으니, 식사 따위 일상은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담배 하나면 되니까.
멜빌 감독이 알랭 들롱에게 스크립트를 건네자, 알랭 들롱은 제목을 뭐로 할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멜빌은 ‘사무라이’라고 답했다. (국내에선 ‘한밤의 암살자’, ‘사무라이’, ‘고독’ 등으로 소개되었다) 알랭 들롱이 멜빌을 따라 그의 침실로 들어가자, 거기엔 오직 가죽 소파와 벽에 걸린 사무라이 칼이 있을 뿐이었다. 멜빌의 미니멀한 취향이 영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게 하는 일화다.
멜빌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왜 제프는 암살자가 되었을까?, 이런 물음 따위는 거두절미 성가실 따름이다. 불친절한 영화라 이야기에 구멍이 많다는 불평을 하고픈 관객이라면, 멜빌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 주인공의 설명 없는 행동, 목숨 건 결단에 빠져들면 된다. 제인 역시 제프에게 일방의 복종과 숭배에 가까운 사랑과 신뢰를 바치며, 왜냐고 토를 달지 않으며 명령에 다름 아닌 부탁을 수행한다.
멜빌 영화 주인공은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거나, 마치 죽음을 유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한밤의 암살자’의 마지막, 제프는 피아니스트를 겨누지만, 형사들이 들이닥쳐 그의 등에 총을 쏘아댄다. 제프의 총에는 총알이 없는데. 물론 제프는 자신을 쫓는 경찰이 들이닥칠 것을 알면서도 손님 많은 클럽에 당당히 들어왔다.
오프닝 시퀀스에 격언을 새겨 넣길 즐긴 멜빌은 ‘한밤의 사무라이’에서도 출처를 니토베 이나조의 명저 ‘무사도’라고 밝힌 글을 올렸다. ‘무사도’는 일본인에게 수치와 명예를 알린 책으로도 유명하다. “There is no solitude greater than a samurai's, unless perhaps it is that of a tiger in the jungle.”(정글의 호랑이가 아닌 이상, 사무라이보다 더 고독한 존재는 없다) 도입부 인용문은 멜빌의 창작이라 한다. 유명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런 작은 불만에도 에버트는 자신의 ‘Great Movies’ 목록에 ‘한밤의 암살자’를 올렸다. 평론가 스티븐 스나이더도 저서 ‘죽기 전에 봐야 할 1001편의 영화’에 영화 ‘한밤의 암살자’를 수록했다.
‘한밤의 암살자’는 장 피에르 멜빌 영화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5가지 특징이 다 적용된다. 범죄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알랭 들롱과 같은 프랑스 유명 스타를 캐스팅했다. 오랫동안 대사가 없는 장면이 많다. 주인공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매무새를 살핀다. 나가기 전 방을 둘러본다.
1930년대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와 하드보일드 영화를 좋아했던 멜빌이지만, 그의 프렌치 누아르는 역으로 많은 현대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다. 짐 자무쉬 감독은 ‘한밤의 암살자’를 리메이크한 ‘고스트독-사무라이의 길’을 발표했고, 쿠엔틴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이 ‘한밤의 암살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도 마찬가지다. 오우삼 감독도 편애하는 영화로 꼽았는데, 주윤발 주연 홍콩 누아르 중 ‘첩혈쌍웅’의 주인공 이름이 제프일 정도다.
우수와 비정 분위기로 프렌치 누아르에 한 획을 그은 멜빌 감독은 ‘Jean-Pierre Grumbach’가 본명이지만,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을 존경해 장 피에르 멜빌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1973년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14편을 연출했을 뿐이다.
무척 더운 날씨인 요즘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한 뮤지컬 ‘시카고’를 보고 왔다. 뮤지컬로만 3번째이고 영화로도 감상했기에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다. 여러 번 보았지만, 매번 개성이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흠뻑 빠져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좋아하는 배우 리처드 기어가 얍삽한 변호사 빌리 플린으로 출연해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강렬한 인상의 캐서린 제타 존스의 눈빛이 퍽 마음에 들었고 그녀를 능가하고 싶어 하는 르네 젤위거가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듯 영화도 재미있지만, 실제 눈앞에서 음악이 울리고 춤추는 무희를 가까이 볼 수 있는 뮤지컬을 선호한다. 캐스팅을 보니 주인공 벨마 역에 박칼린이다. 박칼린은 무대 연출가나 음악 감독으로만 알았는데 그녀가 직접 배우로 나온다니 참으로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검색해 보니 18년 동안 연출이나 감독으로만 이 작품을 만났는데 이번 공연의 연출자가 벨마 역에 어울린다며 오디션을 권했다고 한다.
‘시카고’는 여러 번 연출을 맡았기 때문에 박칼린은 이 작품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우로 무대에 서기는 두려웠다는데 남들과 똑같이 오디션을 보고 더블 캐스팅되어 당당하게 무대에 서게 되었다. 매스컴에서의 박칼린은 키도 크고 몸집도 큰 카리스마 있는 연출가로만 보였다. 그러나 벨마로 무대에 선 박칼린은 얼굴도 작고 날씬한 몸매에 눈웃음이 매력적이고 애교도 많았다.
또 다른 주연 록시 역의 아이비는 언제나처럼 몸에 꼭 맞는 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뮤지컬의 특성상 출연진의 의상이 매우 자극적이다. 모두가 까만 망사 스타킹이나 몸에 딱 붙는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예쁘고 젊은 아이비와 한 무대에 섰지만 50세가 넘었다는 박칼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독보적이고, 이국적인 용모만큼이나 관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안재욱까지 합세해 열연하니 이날의 공연은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컸다.
보통 무대 아래에서 연주하는 음악 팀이 이번 공연에선 독특하게 무대 정면에 층층이 자리 잡아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들려줬다. 무대는 저마다 사연으로 감옥에 들어오게 된 여자 수감자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쇼걸 출신의 벨마는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동생을 총으로 살해한 죄로 잡혀 왔다. 언론의 시선을 끌어 변호사와 말을 맞추어 무죄로 풀려나려고 계획한다. 두 명이나 죽였지만,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불륜남을 살해한 죄로 예쁘고 젊은 코러스 걸 록시가 수감되자 벨마의 이야기는 뒤로 묻히고 새로운 살해범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을 이용해 록시 역시 얄팍하고 돈만 아는 변호사 빌리와 공모해 무죄를 주장한다. 빌리는 벨마보다 록시의 인기가 높아지자 록시의 편이 되지만 더 큰 스캔들의 여죄수가 들어오며 록시 역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무조건 새로운 가십과 흥미만을 좇는 대중과 언론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던 1920년대 시카고, 환락과 마피아가 성행하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스타를 꿈꾸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당시엔 있을 법한 이야기를 뮤지컬 ‘시카고’는 위트 있게 표현했다. 1975년 처음 뮤지컬로 제작된 이 작품은 격동기 미국 시카고의 분위기, 농염한 재즈 선율, 몸에 딱 붙는 의상을 입은 배우들의 섹시한 춤 등이 결합하여 관객을 즐겁게 한다.공연이 끝났는데도 검은 망사 스타킹에 시스루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관능적인 춤을 추며 부르는 대표곡 '올 댓 재즈'(All That Jazz)가 선명하게 남았다.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부르는 군무와 귀에 익숙한 멋진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잊히지 않는 아주 멋진 장면이다.
볼만한 영화를 찾던 중 ‘B급 며느리’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가장 핫한 소재 중 하나인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다. 몇 해 전만 해도 며느리 입장에 걸쳐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 슬며시 시어머니 쪽으로 부등호가 입을 벌리려던 차라 구미가 당겼다.
마침 ‘인디서울 2018’ 독립영화공공상영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여러 곳에서 무료 상영 중이었다. 찾아간 곳은 서울 삼성동 강남시니어플라자. 지하에 마련된 상영관에 삼삼오오 모여든 30여 명의 관객이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느리인 것 같은 사람들, 시어머니 포스 폴폴 풍기는 사람들, 누군가의 시아버지들도 자리를 잡았다.
영화의 도입부 “나는 이상한 여자와 결혼했다”라는 감독의 저음 내레이션이 경쾌한 음악과 대비를 이뤘다. “명절에 시댁에 안 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밝고 찰진 며느리의 목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어 눈물을 찍어내는 시어머니의 등장. 뒤에 앉은 노신사의 “에이…” 하는 불평도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앞줄에 앉은 며느리 일행은 소리 없는 눈웃음을 교환했다.
“어머니는 내가 해준이 데리고 가면, ‘애 옷이 이게 뭐니?’ 하면서 내가 입혀놓은 옷을 바꿔 놓는다. 언제나 그래. 그래서 해준이가 할머니한테 갔다 오면 꼭 다른 옷 입고와. 내가 입혀준 옷 그대로 입고 오는 적이 없다고. 근데 이게 되게 신경전이 된 거야. 처음에는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나도 안 참겠다는 거지. 지기 싫다는 거야.” 외출하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고자질인지 험담인지를 하는 며느리의 기세가 등등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만나는 장면. 소위 잘해보자는 취지로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다. “너랑 나랑 안 섞여도 나는 해준이만 보면 돼.” “저는 그게 싫다고요. 제가 싫으면 제 아들도 못 본다고요.” “그래, 됐다. 너네 마음대로 해.” 시어머니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참으로 녹록지 않은 일상다반사다. 자신은 두 고래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불쌍하고 괴로운 새우일 뿐, 직접적인 관계자 또는 당사자라고 느끼지 않는 남편의 답변은 구경꾼마냥 무기력했다.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냥 그런 거라고. 이유 따윈 없어. 어른들은 다 그래. 바뀌지 않는다고.”
결국 시댁에 발길을 끊은 며느리의 마음은 무겁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나름의 정당성이 있고 남편도 강요하지 않으니 상쾌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남편은 혼자 본가에 간다. 틈틈이 촬영한 아이 영상을 어머니께 보여린다. 영상에 대고 손주와 인사하기 바쁜 어머니의 모습이 짠하기만 하다.
“진짜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며느리는 원통하다. 결혼 전까지 이름 부르던 남편 동생을 갑자기 ‘도련님’이라 부르라기에 “싫어요” 했을 뿐이고, “집안에 어른이 넷인데 밥 먹고 나면 왜 저만 설거지를 해야 해요?”라고 했을 뿐이다. 집안의 경조사를 챙겨야 한다는 강요된 책임감을 거부했고, 시부모님께 하는 형식적인 안부 전화를 안 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그러나 한편으론 이웃에게 자녀들이 외국 나가서 못 온다고 말하는 시어머니도 속이 쓰리다. 남편 뒷자리가 자식이고 저 끄트머리 구석진 곳이 며느리 자리인 줄 알고 산 시어머니다. 결혼하면 여자는 시댁의 하인이라는 말에 인정할 수 없었음에도 표현하지 못한 시절, 존중해달라는 주장이 별스러운 일인 세월을 사셨다. 그런 시어머니 시대의 가부장적인 통념을 껴안기도 하고 살살 달래기도 하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할 수 있을까? 영화는 한 줄로 정의되는 결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일 테다. 시어머니와도 보편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고 싶었다는, 아직은 매우 보편적이지 않은 며느리는 영화 말미에 스스로 시댁에 들어선다. 그것도 매우 경쾌하게 말이다.
다시 한번 타협점을 찾기 위한 며느리의 노력 어린 발걸음일까? 언젠가 그 집에서 또 고함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 “싫어요”라고 말하는 건, 더 나은 관계를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며느리. 그녀에게 연한 격려를 보내본다.
“그 사랑 참 염치없다야.”
영화 ‘소공녀’ 속 부잣집에 시집간 선배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미소를 여러 날 재워주고 결국 한 말이다. 미소는 집이 없다. 그러나 담배와 한 잔의 위스키를 무척 사랑한다. 자기만큼 가난한 남자친구 한솔은 물론이고.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영화 ‘소공녀(Microhabitat)’를 보았다. 좋은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서 반갑다.
동화책과 같은 영화 제목 옆에 있는 ‘Microhabitat’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봤다. 미소(微小, 즉 미생물, 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이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음(音)이 주인공 ‘미소’와 같았다. 화면 속 그녀의 웃는 얼굴(미소)과는 대조적으로 청년 주거문제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영화다.
주인공은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돈을 번다. 담뱃값도, 위스키 가격도 훌쩍 오르자 월세로 살던 집을 나와 큰 캐리어를 들고 대학 밴드 친구, 선후배 집 등을 찾아다닌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잘나가는 친구는 미소를 만나는 점심시간 틈을 타 스스로 수액을 꽂아 맞으며 피로를 풀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해 시부모와 좁은 공간에서 살면서도 미소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친구는 꿈을 잃은 채 지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 결혼 8개월 만에 아내가 떠나버린 울보 남자 후배는 월급 190만 원 중에 매달 아파트 대출금으로 100만 원씩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한다. 그것도 무려 20년간. 선배의 집도 찾아간다. 아주 늙은 총각인 아들에게 미소가 찾아오자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짠하다.
전고운 감독은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청년 주거문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과 거리가 먼 직장인의 과로, 자신의 꿈과 정체성은 접어둔 젊은 전업주부의 삶, 대출 때문에 짐이 되어버린 집, 신혼 이혼 문제, 노총각의 애환, 학자금대출을 갚느라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는 미소의 남자 친구까지.
분명 우리나라는 나름 경제대국인데, 배고파 굶는 사람보다 영양 과잉으로 다이어트 고민과 성인병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인데,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우울하다. 집이 있으나 없으나,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우울한 사람이 많을까?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50플러스서부캠퍼스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자유롭게 ‘의견 나누기’ 시간이 있다. “숙식이 제공되는 일자리도 많은걸요.” “미소의 처지에 술, 담배를 꼭 해야 하나요?” 관객의 대부분이 시니어들이라 미소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시험지 정답 같은 말들을 쏟아낸다. 나도 마이크를 잡아보았다. “사람의 결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도 주인공이 몸을 팔거나, 자살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에서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삶입니다.”
영화를 함께 본 몇 명의 젊은이에게 공개적으로 물어보았다.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세요.” 답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또 어렵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세대를 뛰어넘는 이러한 대화가 그 첫걸음이리라 믿는다.
음악과 자유를 사랑하고, 청소와 요리를 잘하는 여자,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마음 따뜻한 여자, 한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하얗게 세는 병을 가진 여자, 키가 커서 더 슬픈 여자,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달걀 한 판을 사들고 가는 여자. 그런 미소가 힘내기를 응원한다.
‘의미와 재미’ 모 방송 채널의 슬로건이기도 한데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이 둘의 균형을 잡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실험성이 강해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 흥행에 실패해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고, 진부한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올리는 일은 흔하다. 욕하면서 본다는 우스개처럼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진저리를 치지만, 그런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나름 일정한 역할이 있음에 틀림없다.
인간이 본디 그렇게 생겨먹은 것은 아닐지. 사실 진종일 의미만 찾다가는 피곤과 스트레스로 제명대로 살기 어려울 듯싶다. 재미는 그 반대편에 있으면서 긴장을 이완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테면 아줌마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며 실컷 욕을 하고 나면 응어리졌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이치이다. 두통이 오면 아스피린을 찾듯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지도 모른다.
영화 ‘미드나잇 선’(6월 21일 개봉, 스콧 스피어 감독)은 로맨틱멜로 장르에 속하나 사실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다. 내용과 장면들이 거의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이다. 주인공의 불치병은 ‘러브 스토리’를 닮았고 우리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해 뜨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 하는 것이나 노트를 두고 와 결국 다시 만나는 스토리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빼다 박지 않았나. 곳곳의 대사나 영화적 장치도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주인공 케이티(벨라 손)는 XP(색소성건피증)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이 병은 태양에 노출되면 급속히 악화되어 죽는 병이므로 햇빛을 피해야만 한다. 종일 방에 격리된 그에게는 엄마가 남겨준 기타와 창문 너머 10년째 짝사랑하고 있는 찰리(패트릭 스왈제네거)가 유일한 세상의 희망이다. 밤에만 외출이 허락된 케이티는 어느 날 기차역에서 심야의 버스킹을 하게 되고 현장에서 찰리를 만나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져 매일 밤 데이트에 나서고 함께 기차여행까지 가게 된다. 케이티는 길거리에서 버스킹도 하고 수영을 즐기기도 하는데 시계가 방수가 안 되어 고장 나는 바람에 집에 갈 시간을 놓치게 되고 결국 햇빛에 노출되고 만다. 그 사건으로 병이 악화되어 병상에 눕는다. 케이티는 찰리에게 상처를 주기 싫다며 만나지 않게 되고 둘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여기까지 들어봐도 매우 익숙하지 않은가. 극의 전개 또한 매우 손이 오글거릴 정도로 작위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이 뻔해 보이는 익숙함이 주는 감정적인 편안함이다. 마치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똑같은 음악을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듯이. 이 영화에도 갈등은 있지만, 모든 등장인물의 익숙한 진정성이 갈등을 녹이는 감동의 원동력이다.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음악에 불협화음이 없는 것처럼.
케이티는 아빠와 대화를 통해 부성애를 확인하고 아빠는 케이티와 찰리가 다시 만나게 도와준다. 케이티는 어깨를 다쳐 수영을 그만둔 찰리를 격려해 다시 재기하도록 하고 찰리는 죽기 전 케이티가 만든 찰리 송을 녹음하도록 돕는다. 케이티는 자신이 아끼던 수첩에 찰리를 향한 마음을 남긴다. 케이티의 노래는 유튜브에서 대박을 친다. 아, 모두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내용은 진부하고, 연출은 작위적이고, 연기는 서툴지만, 보고 난 뒤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는 감동이 있다. 어차피 세상에 비슷하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성경 전도서에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 그만하면 푯값은 충분히 했다.
액션, 공포, 애니메이션 등 몇 장르 영화는 극도의 피로감으로 보는 게 두려울 지경이다. 반면에 시대극, 서부극, 뮤지컬, 전기 영화는 시사회 초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관심 갖고 본 다큐멘터리 알렉산드라 딘의 ‘밤쉘(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 2017)’과 스티븐 노무라 쉬블의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RYUICHI SAKAMOTO: CODA, 2017)’는 추억을 떠올리며 공부하는 자세로 보았다.
국내 영화 팬들이 류이치 사카모토를 알게 된 작품은 ‘마지막 황제’(1987)일 것이다. 편협한 일본 장교로 출연해 무척 의아하게 여겼는데 이름난 작곡가, 영화음악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콧수염마저 얄밉게 보였던 그는 “왜 일본이 그토록 삭막한 만주 땅을 얻으려 했는지 모르겠다”라며 소신 인터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1983)에서도 장도를 휘두르는 일본 장교로 출연한 바 있는데, 군더더기 없는 몸매에 강파른 얼굴 덕분이 아닌가 싶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오시마 나기사가 영화 음악 작곡과 연기를 다 요구했다니, 영화적 얼굴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화 음악 덕분에 심취했던 작품을 열거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영화 팬이라면 기본적으로 본 영화들일 테니. 그중에서도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사카모토를 잘 정리해주고 있다. 특히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에서 주인공이 광막한 설원 저 너머로부터 한 발 한 발 힘겹게 걸어와 관객 앞에 설 때까지 흐르던 음악은 압권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 사막 아지랑이 속에 한 점이 나타나고 점점 커진 그 점이 알리 족장임을 알게 되는, 너무도 유명한 롱 테이크 장면에의 헌정이다. 이는 ‘평원의 무법자’(1973)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등장하는 장면만큼이나 근사하고 감동적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당시 암으로 투병 중이었지만, 너무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의 제안이라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작곡을 마다할 수 없었다고 밝힌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2012년, 인후암 판정을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던 류이치 사카모토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음악 작업으로 활동을 재개한 전후 5년여를 기록한다. 후쿠시마 지진과 쓰나미에 살아남은 망가진 피아노를 연주하고, 핵발전소 재가동 반대 시위에 참석해 발언하고, 암 판정 당시 심경을 고백하고, 숲과 남극 등을 다니며 소리를 채집하여 젊은 시절부터 함께 했던 컴퓨터와 피아노로 작곡하는 모습이 젊은 시절 활동 영상과 영화 출연 장면 등을 곁들여 소개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영화에 나오는 음악과 바흐의 코랄전주곡 같은 느낌의 음악, 약해지지 않고 울림이 오래가는 음을 찾고 있다는 등, 그가 현재 추구하는 음악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전한다.
9·11 테러 당시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그가 찍은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의 사진을 보면 사진작가로서의 재능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검버섯 가득한 얼굴과 백발에 표범 가죽 문양 안경을 쓴 그가 곱게 깎은 연필을 들고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또 오로지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지구 이 끝에서 저 끝을 방문하는 집념을 보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고매한 직업은 예술 창작뿐이구나, 눈물이 날 지경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물 다큐멘터리도 그 인물에 얼마나 매료되었는가, 존경하는가에 따라 감상 진폭이 달라진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감독 후샤오시엔, 오시마 나기사, 알프리드 히치콕, 데이비드 린치 등의 다큐멘터리와 더불어 영화 세상에 사는 행복을 만끽하게 해준다.
열다섯 살 소녀는 키가 멀대같이 컸다. 친구들이 꺽다리라고 놀려댔다. 선생님은 운동을 권했지만 소녀의 눈에는 모델과 영화배우의 화려한 옷들만 아른거렸다. 아버지가 가끔 사오는 잡지를 들춰보며 무대에 오르는 꿈도 꿨다. 패션계를 주름잡던 모델 루비나를 흠모하고 카르멘 델로피체처럼 되고 싶었던 소녀는 자주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그리고 어느새 75세가 되어버린 은발의 소녀는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았다.
발가락 다섯 개만 겨우 집어넣은 하이힐을 신고 그녀가 무대 위에 오르자 관객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숨이 막혀왔다. 등짝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조명 속에서 쾅쾅 울려대는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런웨이를 돌아 나오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캣워크를 무던히도 연습했건만 소용이 없었다. 등 뒤에서 누가 자꾸 쫓아오는 것만 같아 도망치듯 걸었다.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키미제이’ 메인 모델로 런웨이에 오른 최화자 씨는 아직도 설레는지 두 볼이 발그레했다.
“너무 떨렸어요. 높은 구두를 신고 걸어가다 잘못해서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죠.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요. 시니어 모델이 국내 최대 패션쇼 메인 모델로 발탁된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키미제이 대표 김희진 디자이너가 함께 모델 공부를 하는 김칠두 선생이랑 저를 부르시더니 무대에서 선보일 옷을 입혀보고 워킹도 해보라 하셨어요. 부족한 게 많았을 거예요. 그래도 우리를 과감히 메인 모델로 세우셨어요. 김칠두 선생은 오프닝, 저는 피날레 무대를 장식했죠.”
20대 젊은이들을 위한 패션쇼에 “웬 시니어 모델?” 하며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었을 터.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카메라 감독들도 이 낯설고 도발적(?)인 무대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셔터를 눌러댔다.
“런웨이에 오르기 전, 실수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걱정했던 것보다 무대 분위기가 괜찮았나봐요. ‘신선하다, 젊은 모델과 견줘도 손색없다, 멋지시다’ 하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주시는 카메라 감독도 있었어요. 꿈만 같았죠.”
은발의 소녀는 수줍게 웃었다.
칠십 넘어 시작한 모델 공부
최화자 씨가 본격적으로 모델 공부를 시작한 것은 71세 때인 2014년. 강남에 모델 교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장 달려가 등록을 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너무 늦은 출발이었다. 대부분은 허리가 굽고 다리가 휘어질 나이였다. 친구들은 봉사나 하러 다니면서 손주들이나 돌볼 일이지 그 나이에 유난스럽게 별 걸 다 배운다며 한마디씩 했다.
“우리 집 애들도 ‘운동 삼아 다니시겠지’ 했대요. 엄마 나이에 모델? 전혀 상상이 안 됐던 거죠. 지금은 ‘우리 엄마 점점 더 멋져지시네!’ 하면서 좋아해요. 손주들도 ‘우리 할머니 짱!’이라고 해주고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내 품에 손주들을 안겨줬을 때도 기뻤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말하라면 바로 지금이에요.”
그래도 칠십이 넘은 나이에 하는 공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허리를 똑바로 펴고 걷는 것부터 연습했어요. 기본 워킹에 표정 연기, 포즈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처음엔 일자로 걷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비뚤어진 체형 바로 잡는다 생각하고 틈날 때마다 거울 보며 연습했어요. 또 장 보러 갈 때도, 친구 만나러 갈 때도, 전철 타러 갈 때도 일자걸음으로 걸으려 애썼죠. 그러기를 벌써 5년이 됐네요. 그런데 왜 표정 연기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웃음)”
중학교 때 소녀의 키는 168cm나 됐다. 선생님은 키가 크니 운동선수를 해보라 권했다. 그러나 소녀는 운동이 싫었다. 온통 예쁜 옷에만 관심이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상상도 자주 했다.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잡지 속 여인들처럼 예쁜 얼굴이 아니라서 주눅이 들곤 했다.
“‘나는 못생겨서 모델을 할 수 없을 거야’ 하면서도 자꾸 그쪽을 돌아봤어요. 한동안은 패션계를 주름잡던 모델 ‘루비나’에 푹 빠져 지냈어요. 제 롤모델이었지요. 움푹 들어간 눈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던 그 여인, 카리스마가 대단했죠. 카르멘 델로피체는 또 어떻고요.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일으키게 하는 여인이잖아요. 올해 87세인데도 무대를 누비고 다닌답니다. 그녀의 표정과 몸매를 보셔요. 전율이 느껴지지 않나요?”
열다섯 살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꿈꾸는 소녀처럼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휴대폰에는 델로피체의 사진이 한가득이었다.
파도가 몰아치던 시절
한 됫박의 물음표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인생일까. 누구든 파도가 치는 시절을 겪는다. 40대 때 그녀의 삶도 물음투성이였다. 하루 종일 눈물이 흐르는 시간을 살던 어느 날 무작정 교회를 찾았다. 기도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에게서 받은 상처로 휘청일 때 종교는 위안이 됐다. 아직 먼 곳을 바라볼 힘은 없었지만 그날그날 이겨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조금씩 생겨났다.
“경제적으로 크게 무너지니까 회복이 잘 안 되더라고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그러나 주부로만 살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더군요. 하루는 막막한 심정으로 벼룩시장 광고지를 들여다보는데 간병인을 모집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서독으로 간호사를 파견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1970년대 무렵이었을 거예요. 결혼 전 저도 독일에나 가볼까 하고 간호 보조 교육을 받았어요. 결국은 못 갔지만 간호 업무를 배워둔 덕에 한전 부속병원 소아과에 취직도 할 수 있었죠.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병원일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이 일 저 일 가릴 형편이 아니어서 용기가 났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17년 동안 간병일을 했어요. 아직도 함께 일했던 몇몇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데 급한 상황이 생기면 가끔씩 도와 달라고 전화가 옵니다. 예전에는 돈 때문에 일했지만 지금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갑니다.”
간병일을 하면서 그녀는 인간의 모습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젊은 사람에게 병원은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곳이지만 노인에게 병원은 저 세상으로 가기 전 들르는 정거장 같은 곳이었다. 가진 게 많든 적든 떠나는 길은 다 똑같았다. 모두들 후회하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 건강을 챙기고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했다.
“모델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뒷방 노인네처럼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뒤늦게라도 시작한 공부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어요. 알게 모르게 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받는지 대사증후군도 없고 당뇨, 고혈압도 없어요. 뱃살 하나 없이 몸무게도 일정해요. 의사 선생님도 깜짝 놀란답니다.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재미있고요. 10년, 20년 아래 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감각도 생각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쇼호스트에도 도전
그녀는 현재 ‘더쇼프로젝트 모델컴퍼니’에서 공부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 워킹과 표정, 포즈를 연구하고 연습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정영주 대표는 청계천수상패션쇼, 광명동굴패션쇼 등 다양한 공연을 통해 시니어 모델 참여를 기획하고 도왔다. 정 대표 덕분에 그동안 10여 차례 패션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최근 메인 모델로 무대에 오르는 데도 큰 힘이 되어줬다. 소중한 인연이다.
그녀의 첫 무대는 무사했을까.
“당연히 진땀 흘렸죠. 무대에 오를 때는 대본을 먼저 짜요. 어디까지 걷고 어떤 포즈를 하고 어떻게 들어와라 하는 내용이죠. 첫 무대에 올랐을 때 얼마나 떨렸겠어요. 잔뜩 긴장해서 걷고 있는데 한 분이 ‘그쪽으로 가면 안 돼’ 하고 지적을 해서 순간 아찔했어요. 지금 같으면 표 나지 않게 수습했겠지만 그때는 무대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래서 ‘어머나! 어떡하지? 내가 실수했나봐’ 하고 뒤로 돌아선 거예요. 뒤따라오는 사람 얼굴과 떡 마주쳤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잘못 알고 지적을 했더라고요. 교수님은 누가 실수를 해도 지적하지 말라고 조언하셨어요. 당황해서 더 큰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우왕좌왕 허둥댔던 그날이 어느새 추억이 됐네요.(웃음)”
최근에 쇼호스트 공부도 시작했다는 그녀. 건강할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다. 시니어가 자신을 보며 ‘이 나이에 이런 사람도 있네’ 하면서 자극을 받아 자신의 삶을 한 번 더 불태우면 좋겠다는 바람도 슬쩍 귀띔한다.
영원히 박제될 뻔했던 꿈, 다시 꺼내어 펼쳤으니 그녀만의 무대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작곡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지담이 신곡인 ‘우리 다시 만나면(If We Ever Meet Again)’을 8일 공개했다.
지담의 이번 노래는 얼마 전 4주년을 지냈던 세월호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진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살아갈 힘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연주에는 피아니스트 박세윤이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지담은 “이별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을 노래에 담았다”고 밝혔다.
지담은 버클리 음대 영화음악 작곡과를 졸업하고 작사‧작곡과 함께 프로듀싱, 공연 연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적 재능을 과시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6월 보컬그룹 빅마마의 이지영이 참여한 첫 싱글 ‘기억한다’를 발표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건강 캠페인 ‘브라보 체조’의 음악감독을 맡은 바 있다.
어느새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파트 뒤편 개울에 꽁꽁 얼었던 얼음과 눈도 녹아서 조금 깊은 여울에는 콸콸 소리를 내며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되풀이되는 자연의 변화가 신비스러워 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날씨도 풀렸고 오랜만에 삼총사 친구가 만나 영화 한 편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동안 비싼 값 주고 영화를 보다가 시니어 할인을 받게 되어 신났었다.
그런데 지난번 영화표를 살 때만 해도 4000원이었는데 지난 2월부터 가격이 올라 오늘 5000원이라고 한다.
친구가 미리 검색해 온 대로 외국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를 티켓팅 했다.
이 작품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13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었고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을 받은 영화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 TV에 나오는 배우가 필자 나이 정도는 돼야 알 수 있을 만한 옛날 스타인데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셜리 템플과 제임스 캐그니, 베티 데이비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영화가 인기 있던 이유로는 옛 유명배우들과 옛 음악이 흘러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해 추억을 되살아나게 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작품으로 성인 동화라는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내용은 좀 기괴하고 잔혹하다. 1960년대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었던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과 극심한 인종차별이 있던 시대에 미국 항공우주센터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엘라이자가 주인공이다.
그의 곁에는 수다스럽지만 믿음직한 동료 젤다와 서로를 보살펴주는 가난한 이웃집 화가 자일스가 있다.
어느 날 실험실 청소를 하던 중 온몸에 비늘이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묶여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무서워하고 피하겠지만, 늘 혼자였던 엘라이자는 신비스러운 그의 모습에 점점 다가가 마음을 연다.
실은 너무나 외로웠던 엘라이자가 자신보다 더 외롭고 고통을 당하는 대상을 보고 위로해 줄 수 있음에 기뻤던 것 같다.
이 괴생명체는 물고기지만 사람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 우주선에 태울 수 있는지의 실험을 하려고 아마존에서 잡아 왔다.
실험실의 보안책임자는 이 생명체를 묶어놓고 강압적으로 대하며 해부와 실험을 통해 직위가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몰래 실험실에 숨어든 엘라이자는 그와 교감을 나누고 의사소통을 한다. 실험실의 박사는 둘의 행동에서 괴생명체가 지적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해부를 반대하지만, 어느 날 실험할 날이 정해지니 엘라이자와 친구들, 박사는 힘을 합쳐 그를 탈출시켜 집 목욕탕에 숨겨준다.
그러면서 더욱 가까워진 그들은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염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뿌리고 돌보지만 괴생명체는 비늘이 벗겨지는 등 상태가 나빠져 비가 오는 날 바다에 놓아주기로 한다.
신기하게도 그가 가난한 화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대머리였던 그의 머리카락이 자라게 되고 상처도 그가 만지면 사라지는 등의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비가 오는 날 강 수위가 높아져서 그를 보내기 위해 부두에 갔는데 나쁜 보안책임자가 따라와 총을 쏘아 괴생명체와 엘라이자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잠시 후 괴생명체는 총 맞은 상처가 없어지며 일어나 쓰러진 엘라이자를 안고 바다에 뛰어든다.
물속에서 그의 입맞춤에 엘라이자는 숨을 쉬게 되며 아름다운 바닷속 영상으로 이야기가 끝나니 전체적으로 동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신기한 능력으로 그들의 사랑을 키워 행복하게 살았을까? 보는 사람의 몫을 정해 준 영화이다. 외로운 엘라이자와 외로운 생명체가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어른 동화 한 편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