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에 익숙지 않은 초보 배낭 여행객들에게 홍콩은 매우 적격한 나라다. 중국 광둥성 남쪽 해안지대에 있는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반환되어 국적은 중국이지만 특별행정구다. 다른 자본주의 체제가 적용되는 ‘딴 나라’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오래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병 고쳐 달라 기원하면 낫게 해줄까? 웡타이신 사원
홍콩의 주룽반도(九龍半島)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교 사원이 웡타이신(黃大仙)이다. 원래는 중국 광저우(廣州)의 황사에 있었는데 1912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56년부터다. ‘웡타이신’은 우리말로 황대선이라는 인물을 뜻한다. 그는 원래 저장성의 한 지방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 15세 때, 정제된 황화수은을 질병 치료 약으로 만들어 인술에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래서 이 사원은 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신앙처로 알려지게 된다. 모습은 여느 사원과 비슷하다. 각자의 소원과 병 치료를 기원하는 제수를 놓고 향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 안은 눈이 매울 정도로 향내가 진동한다. 특히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행운의 점(산통점)을 친다. 일을 그르칠 때 쓰는 ‘산통 깨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 ‘산통점’과 관련해서 생겨났다. ‘산통(算筒)’에 대나무를 잘게 잘라 100개 정도를 넣고 산통의 막대가 나올 때까지 흔들고 막대가 나오면, 막대와 같은 번호의 종이와 바꾼다. 점쟁이는 그 내용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점괘가 나와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또 이 사원에 들러 꼭 찾아야 할 곳은 뒤쪽의 정원. 황대선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정원은 연못과 함께 꾸며져 있어 주변 고층 아파트의 삭막함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정적이다.
홍콩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침사추이 거리 헤매보기
주룽 지구의 침사추이(尖沙咀)는 홍콩 최대 번화가다. 고층빌딩 숲, 옛 향기가 가득 배인 칙칙하고 좁은 골목들. 오래된 재래시장과 파도처럼 일렁대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의 물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 같은 매력이 폴폴 넘쳐나는 곳. 홍콩 누아르 영화 속에서 이미 친근해진 풍경이 반갑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모티브로 만든 ‘스타의 거리’다. 2003년에 시작해 1년 뒤인 2004년부터 공개되었다. 너비 4~5m, 길이 440m로, 9개의 붉은 기둥에 홍콩 영화 100년사가 기록되어 있다.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의 조형물, 이소령 동상 등이 눈요기를 시켜주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길바닥에 새겨진 영화인 명판들. 이연걸, 홍금보, 임청하, 양조위, 오우삼, 서극, 매염방 등 국제적으로 친숙한 홍콩 스타들의 손도장과 사인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이름만 새겨진 배우는 스타 거리가 조성되기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다. 이곳이 유난히 좋은 이유는 주변 바다 풍치가 덧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과 고깃배가 떠다니고 바다 너머로 홍콩섬 금융가의 건물들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는 주변 풍광이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우주박물관, 시계탑, 문화센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주룽반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높이 44m)은 1910~1978년 중국과 유럽을 오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었던 주룽역 앞에 서 있던 것. 조화롭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침사추이가 매력적이다.
홍콩의 부자 동네, 리펄스 베이
침사추이에서 리펄스 베이(Repulse Bay)로 가려면 일단 홍콩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페리호와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홍콩섬은 홍콩 개항 이후, 상업 및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산, 빅토리아 피크(554m) 고갯길을 넘어서면 차창 밖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빽빽한 건물 대신 초록색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띄엄띄엄 고층 아파트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건축 형태가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리펄스 베이다. 성룡 등 홍콩의 유명 인사들이 주로 사는 부촌이다. 길 끝나는 바닷가 끝에 틴하우(天后) 사원이 있다. 사원 앞에 틴하우 여신이 해탈의 미소를 건네고 있다. 산정이 아니라 바다와 눈높이가 같다. 1865년에 세워진 도교 사원은 독특한 중국 건축 양식을 전하는 지붕의 곡선이나 조각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원엔 바다의 수호신인 ‘쿤암(Kwun Yum)’과 틴하우를 모시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틴하우 여신은 뱃사람들이 복을 빌면 소원을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믿었다. 또 건너가면 젊어진다는 장수교와 손으로 문지르면 재물복을 준다는 정재신(正財神) 석상, 만지면 3일 안에 인연을 만들어준다는 인연신이 있다. 특히 인연신 앞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떨어질 줄 모른다.
유럽 거리 걷는 건가? 스탠리 마켓과 머레이 하우스
리펄스 베이 해변을 벗어나 찾아갈 곳은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이다.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150여 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장 거리다. 마치 서울의 이태원동과 같은 분위기다. 마켓 거리는 고급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반면 스탠리 베이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확연히 모습을 달리한다. 아기자기한 유럽식 바와 식당, 숍들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세계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어 이국적인 풍치가 연출된다. 아기자기한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한 잔, 파스타, 피자 한 조각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만(灣)’ 형태의 넓지 않은 바다를 따라가면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를 만난다. 옛 센트럴에 위치한 1844년대 식민지시대 건축물을 1991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40만 개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을 분해해서 옮긴 후 재조립했다고 한다. 아직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물은 딱히 멋은 없지만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시대 건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는 레스토랑과 홍콩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머레이 하우스 앞 바닷가 쪽의 정자와 옹기종기 매여 있는 조각배의 풍치에 반한 여행객은 그 순간 긴장을 스리슬쩍 내려놓는다.
홍콩 야경 보고 레이저 쇼 보니 기분 최고, 맥주 한잔 어때?
홍콩 여행에서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는 야경 보는 인기 뷰포인트. 홍콩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서울의 남산타워, 63빌딩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훌륭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야 완벽하게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피크 트램. 1888년부터 긴 세월 동안 가파른(373m)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어느 순간 건물이 거꾸로 서 있는 듯 몽롱해진다. 특히 피크 타워 바로 옆, 사자 정자는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또 승강기를 타고 타워 꼭대기 층인 스카이 테라스로 올라가면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야경을 보는 데에도 피크 타임이 있다. 오후 8시부터 약 20분간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영화 거리와 이어지는 시계탑 근처, 연인의 거리에 마련된 2층 뷰포인트가 명당자리. 바다 건너 홍콩섬의 금융가 건물에서 뿜어대는 광선에 취하는 홍콩의 밤이다. 이런 날, 침사추이 밤거리로 들어가 몽콕 야시장에서 야식을 사먹는 재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Travel Data
교통편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행한다. 2014년부터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30분~3시간 50분 소요.
현지 교통 정보 홍콩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고속전철을 타고 20~30분 만에 중심가인 주룽반도와 홍콩섬에 갈 수 있다. 시내를 여행할 때는 배(스타 페리)와 2층 버스, 전차(트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옥토퍼스 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지하철, 배, 전차, 버스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화폐 단위 홍콩 달러(HKD)를 이용해야 한다.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를 사용할 수 있으나 거스름돈은 현지 화폐인 파타카(Pataca)로 받을 수 있다. 화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음식과 숙박 정보 홍콩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완탕이 유명하고 시장통에만 가도 먹을 게 지천이다. 유명 호텔 숙박은 몇십만원대이지만 5만~8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주룽반도 쪽이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1928년 문을 연 페닌술라 호텔(香港半島酒店)은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로 꼽힌다. 또 4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mandarin oriental Hong Kong)은 미슐랭 스타(Michelin Star)를 받은 호텔로 10개의 레스토랑, 스파 및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70만~80만원대다.
물가 정보 홍콩은 면세가 되는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의류, 가방, 시계 등은 한국보다 다소 저렴하다. 그러나 주류, 담배 등의 품목 몇 가지는 한국보다 가격이 더 높고 세금을 부과한다. 전체를 합치면 홍콩 물가는 서울과 비슷하다.
날씨와 옷차림 정보 홍콩의 12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15.9℃, 평균 최고기온이 20.2℃로 우리나라 가을과 비슷하다. 일교차가 작아 낮이나 밤이나 서늘하고 쾌적하다. 가을 옷 위주로 챙기고 머플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홍콩과 마카오(澳門)는 빼놓을 수 없는 밀접한 여행지다. 홍콩 항에서 뱃길로 40여 분(약 60㎞) 달려가면 마카오다. 또 홍콩과 인접한 도시가 심천이다. 홍콩의 지하철(MTR)이 주룽의 홍함에서 중국 국경인 광둥까지 국철(KCR)로 연장되지만 통과하려면 비자가 필수다. 심천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새로 생긴 신흥도시. 건물들도 깨끗하고 홍콩보다 물가도 싸다. 매우 좁은 도시여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면 된다.
필자는 그저 구엘공원을 가는 이 생소한 골목길이 좋았다.
그리고 공원에 도착하도록 그 길고도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보는 것으로 끝내도 상관없다. 스페인의 한 도시에 내가 와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가능하면 한 점 디테일도 놓치지 않아야 하고 느껴야만 하는 생각은 발걸음을 가볍지 않게 할 수 있다. 그저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을 여유롭게 누리고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는 여행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일지. 함께하는 남편의 철저함은 가끔씩 불편하거나 고맙거나 한다. 하긴 동행자의 그런 치밀함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하는 것을 모르진 않다.
암튼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발카르카역에서 내렸다.
반가운 쌍용자동차 전시장을 지나고 스페인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골목을 한참 걸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구엘공원에 올랐다. 갈수록 오르막 길은 반갑지 않은데 그 길을 오르지 않으면 가우디의 구엘공원을 느낄 수 없으니 열심히 걸어야 했다.
그 언덕에 오르니 한눈에 바르셀로나가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거기 오른 뿌듯함과 즐거움을 표출하는 사람들의 환호에 찬 몸짓과 예술적 건축물을 향한 시선만으로도 숨차게 구엘공원에 오른 보람을 갖게 한다. 시내 한 복판으로는 아직도 공사 중인 파밀리에 성당이 눈에 들어오고 흐린 날이었지만 멀리 지중해가 아득하다.
구엘 백작의 믿음과 재력을 바탕으로 가우디의 독창성과 예술혼이 담긴 구엘공원이 만들어졌고 오늘날 전 세계인이 찾아가는 건축물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에게 축적된 재산이 일가족에게만 분배하기에 급급한 부자들의 모습을 문득 떠올리다가 이런 부질없는 비교를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에게 능력껏 재능 꺼 마음껏 만들어보라고 하는 멋진 후원자 구엘 남작(Eusebi Guel)이 있었기에 14년간의 작업이 이루어졌고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바르셀로나 시에서 사들여 구엘과 가우디의 뜻을 이어 멋진 행정으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예술혼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산 위에 올라 높은 전망대에서 바르셀로나의 파노라마를 즐겨본다.
그리고 그 언덕을 내려오면서 동화 속 보물섬처럼 만들어진 가우디의 건축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가우디의 기념관을 살피고 지나니 놀라운 디자인의 건축물이 눈앞에 이어진다. 가우디 건축은 자연을 모티브로 했기에 자연스러운 곡선미는 단연 압도적인 볼거리다. 순수를 추구하는 자연인다운 독창성이다.
모자이크 타일로 뒤덮인 특이한 외관의 독창성은 너무나 독특해서 얼핏 보기엔 이게 과연 칭송받아 마땅한 건축인가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만으로 만 그칠 수 있는 동화적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가우디의 천재성을 믿어준 구엘의 절대적인 신임과 무조건적인 투자가 부럽고 멋지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의 집을 도입하고 파도와 도마뱀 등의 자연을 그대로 끌어들인 가우디의 작품 속으로 수많은 여행객들이 빠져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곳엔 시민들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흐린 날의 저녁노을을 기다리며 걸터앉아 있고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탄성을 지르고 연인들이 입맞춤을 하고 있다. 가우디의 예술을 공유하는 이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의미 있다. 이 또한 가우디가 바라보던 자연의 일부가 아닐지.
"나는 꽃, 포도나무, 올리브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닭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곤충들의 날개소리를 들으며 프라데스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영원한 스승인 자연의 순수함을 통해 상쾌한 이미지를 얻는다." - Antoni Gaudi
드디어 2018년 1월 18일 인천공항 제2청사가 공식적으로 개통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제1터미널과 비슷한 규모로 만들어진 제2터미널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3주가량 앞둔 시점에 공식 개장하는데 동계올림픽 선수촌 오픈 1월 30일과 현지 적응을 위해 조기 입국하는 선수 및 대회 관계자에게 더욱 쾌적한 서비스 제공을 할 수 있도록 평창 동계올림픽 전에 개장하게 되었다.
공항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애틋한 이별과 반가운 만남을 동시에 떠오르게 해 준다.
특별히 내가 공항에서 슬픈 이별을 해 본 적이 없는데도 그런 느낌인 건 아마 사랑하는 어린 조카가 유학길에 오를 때 배웅 나가서 무사히 공부 마치기를 바라며 보낸 그 날이 생각나기 때문인 것 같다.
애틋한 이별만이 아니라 따뜻한 만남도 생각나는데 미국에 사는 시누이가 귀국했을 때나 지인의 한국방문에 마중 나가서 기뻤던 마음이다.
또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할 때 공항에 가면 즐거운 기대는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공항은 우리에게 축제처럼 들뜬 기분 좋은 설렘을 주는 곳이다.
필자는 지난달 아직 마무리 공사 중인 제2터미널에 미리 가보았다.
동북아의 허브로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은 꾸준히 성장해 12년 연속 세계 공항 평가에서 1위를 할 만큼 크게 성장했다.
많은 승객을 수용하고 주변 공항과의 허브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천공항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추어 200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제2터미널이 개장하게 된 것이다.
제2청사가 개장되면 연간 1800만 명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고 9만 명의 고용창출이 될 것이라 한다.
제2청사의 주제는 Green과 Eco로 자연과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자연채광과 지열 시스템, 태양광발전, 자연 환기 시스템 등을 이용하여 친환경 공항을 모토로 하고 있어 이를 통해 저에너지공항, 탄소 저감,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인천공항 3단계 건설 상황실의 홍보전시실을 방문했다.
90년대 초반 인천공항을 건설하면서 트럭 100만대 분량의 흙을 퍼부어 물막이 공사를 했다는 홍보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이제 제2청사까지 개장하게 되니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우리나라 국제공항이 자랑스러워 가슴이 절로 펴지는 듯했다.
이번에 완공되는 제2 여객터미널은 인천공항 3단계 건설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1, 2단계 사업으로 완공된 제1 여객터미널과 탑승동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터미널이고, 이번 3단계 사업으로 제2터미널이 완공된다. 곧이어 4단계 사업도 시작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인천공항은 연간 1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대형공항이 될 것이라 한다.제2 터미널에는 4개 항공사가 이용하게 된다는데 대한항공과 에어프랑스, 델타항공, KLM 항공사 등 스카이팀 항공사이다.
제1터미널은 아시아나와 저가항공사가 운항한다.
이제 우리는 해외여행을 떠날 때 어떤 항공기를 탈지에 따라 제1터미널, 제2터미널로 가야 한다.
제2터미널은 버스와 지하철, 철도 등의 대중교통을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해 놓아서 교통 센터 지하 1층에 버스와 철도대합실이 한곳에 있고 터미널이 실내에 있어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쾌적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또한, 제2터미널은 한국적인 디자인이라는 특징이 있다. 기존의 제1터미널은 외국회사가 디자인한 것을 바탕으로 했지만, 제2터미널은 우리나라 기술로 디자인했다는 점이 뿌듯하고 감동적이다.
아직 마무리가 안 된 전망대를 둘러보았는데 유리창 너머 광활한 활주로에 앞으로는 우리 국적기인 대한항공을 비롯해 여러 SKY팀 항공사의 비행기가 가득 찰 것이다.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공항이 명실상부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세계적인 대표 공항으로 도약하려 한다.
제2터미널 개장으로 전 세계인 누구나 만족하고 좋아하는 자랑스러운 인천 국제공항이 되기를 바란다.
경원선 백마고지역 개통 후 기차를 타고 철원평야에 처음 갔다. 경원선의 종착역이자 출발역인 백마고지역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철도역이며 2012년 개장되었다. 이 역은 한국전쟁 중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공방전을 기념하기 위해 역 이름으로 명명했다. 신탄리 고대산에서 멀리 내려다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철원군의 남부는 대체로 산지를 이루어 금학산ㆍ고대산 등이 있다.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이 군의 동부를 남북으로 흐르는데, 용암대지 위를 흐르면서 전형적인 유년기의 침식곡을 형성하였다. 하안에는 주상절리와 수직단애가 발달해 곳곳에 절경을 이루고, 역곡천이 군의 서부를 동서로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다. 철원평야는 200~500m 높이의 분지이다. 영서 북부지방에 있는 이 평야는 삼남지방의 평야지대에 비하면 작지만 평야가 좁은 강원도 내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다. 현무암이 풍화된 비옥한 토양은 농사에 적합하여 예로부터 철원 오대쌀이 유명하다.
철원평야에는 물이 부족하여 평지에 흙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다. 이곳은 날씨가 추워서 논농사 한 번으로 끝이다. 겨울철은 낱곡을 찾는 철새들의 천국이 된다. 이때쯤 월동작물 재배를 위하여 준비가 한창인 다른 들녘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밭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한가한 이국이었다.
차를 이용할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관광버스가 유일한 교통이동 수단이었다. 백마고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안보관광을 하였다. 제2땅굴을 살폈다. 뭣 때문에 두더지처럼 바위를 뚫었나. 다음에 철원평화전망대에 올랐다. 철책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와 철원평야가 확연히 갈렸다. 가을걷이 끝난 들판에는 아무 것도 없어 황량하였다.
민통선 너머로 푸르른 숲이 무성하다. 새들이 날고 짐승도 마음대로 뛰노는 우리의 강토다. 저 멀리 ‘피의능선’이 역사를 말하고 있다. 관광해설사의 날마다 남과 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의 혈투 설명에 가슴이 메었다. 수만 명 피를 흘리고 우리가 차지한 철원평야다.
철원군은 광복과 함께 38선 이북지역으로 들어갔다가 휴전이 성립되면서 철원읍 등은 수복되었으나 일부는 비무장지대로 또 다른 일부는 북한으로 나뉘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월정역을 둘러보았다. 통일대박을 꿈꾸던 곳이다. 하지만 월정역까지 복원공사가 중단되었다.
통일수도를 그려보았다. ‘한반도의 배꼽’ 이곳이 딱 좋은 장소다. 유라시아 철도를 개설하고 넓은 대륙으로 말을 달려보자. 갑갑한 가슴을 활짝 열어보자.
가산 이효석(可山 李孝石)의 단편소설 의 주 무대로 알려진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이효석의 고향이기도 한 봉평은 매년 가을이 찾아오면 메밀꽃이 활짝 펴 수만 평의 메밀밭을 하얗게 물들인다. 한때 수입산 메밀에 밀려 사라질 위기도 있었지만 2002년 ‘이효석 문학관’이 개관되면서 다시 한 번 더 흐드러지게 그 꽃을 피우게 됐다.
소설가 이효석은 1907년 출생해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의 나이로 단명했다.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경성농업학교에서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는 30세가 되던 해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거취를 평양으로 옮겼다. 이때 이 탄생했다. 이후 , , 등을 발표하며 ‘우리 문단에서 가장 참신한 언어 감각과 기교를 겸비한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이효석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문학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평창IC에서 빠져나와 약 10분간 달리다 보면 양옆으로 봉평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며 현수막을 내건 음식점이 줄지어 있다. 맛집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효석을 기념하는 가산공원과 이효석 생가가 위치한 남안동을 이어주는 남안교를 건너자 오른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효석 문학관이 어느 새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대표적 문학작품 제목이 새겨진 책 모양의 문학관 입구가 인상적이다.
들어서자마자 이효석의 연보가 펼쳐진다.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간략한 설명과 함께 놓인 사진 자료는 그의 생애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깔끔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이효석의 학창 시절 사진과 단란한 가족사진이 인상적이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1930년대 이효석의 집필 공간을 재현한 코너가 눈길을 끈다. 피아노와 축음기도 놓여 있고 그 뒤로 보이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이 이국적이다. 그 시절에 커피를 즐겨 마시고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고 하니 이효석이 서양문물에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생전 활약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육필 원고, 영화 의 대본 등 유족과 연구자들이 기증한 흥미로운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밖으로 나가면 산책길과 더불어 이효석의 좌상을 볼 수 있다. 비록 조각상이긴 하지만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여분의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안내를 원하는 방문객을 위해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이효석 문학관 해설’ 서비스도 제공한다. 문학관 홈페이지에 있는 이메일 주소로 신청서를 보내거나 전화로 예약 가능하다.
의 주인공이 되다
문학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봉평 읍내는 그야말로 의 배경 그 자체다. 봉평장터 주위로 큰 마트가 3개나 생겼지만, 아직도 2·7일이면 봉평장이 열린다. 문학관에서 장터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소설 속 주인공 허생원이 되어 메밀밭과 복원한 물레방앗간을 구경하며 장터까지 걸어가볼 것을 추천한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中)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밭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9월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7월 초에 심은 메밀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8월 하순쯤 꽃을 피우기 시작, 9월 중순까지 봉평 일대를 하얗게 수놓는다.
관람 정보
주소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학길 73-25
전화 033-330-2700
관람 시간 09:00~17:30 (비수기)
휴관일 매주 월요일, 명절
입장료 성인 2000원
얼마 전에도 우리는 ‘잠깐 다녀올까?’ 하면서 한 마디씩 나누고 강원도로 냅다 달려 북쪽의 끝머리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향해 치달았지요. 거진항에서 찝찔한 갯내음을 맡으며 싱싱한 생선회를 먹고 일상에서 묻힌 마음의 먼지를 바닷바람에 훌훌 날리고 새벽을 달려서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가보아도 동해의 푸른빛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네 삶은 왜 그리도 잘 변하는 빛깔을 가지고 있는지요.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쉽게 달려갈 수 있는 바다를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 땀냄새가 가득한 밤기차를 타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떠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피곤에 찌들어 겨우겨우 강원도에 도착해서도 털털거리는 버스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면서 도착한 어느 해변을 보면서 우리는 환호를 했었지요. 이십 대의 환호는 바다 위에서 너울거리고 한참의 세월을 더 보낸 지금의 바다는 차분하고 평화로움이었으며 일상의 갈등도 납죽 받아서 바닷속으로 침잠시키고 있더군요.
그 해 여름 바다에서 놀다 지쳐 해안가의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필자는 아주 낯익은 군부대의 표지판을 보았지요. 어딜 가도 강원도는 군부대의 방향표시를 지금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그 숫자의 부대는 필자가 자주 위문편지를 보냈던 울 오빠의 군부대 번호 숫자였답니다.
'가자, 가는 거야' 친구들과 즉석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고 겁 없이 나선 우리는 물어물어 산길을 돌아 걸었지요. 한여름의 쨍쨍한 뙤약볕을 받으며 가도 가도 끝없는 오빠 찾아 수 십리의 고행을 했답니다. '부모님들이 면회 갈 때는 인절미랑 통닭이랑 한 보따리씩 싸들고 가던데 이렇게 빈손으로 가면 인사가 아닐 텐데?" 하하호호 떠들면서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 하필 오빠는 부대 업무차 시내에 나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지요. 우리는 오빠의 방에 안내되어 쉬면서 기다리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면서 기다렸는데 제대를 앞둔 대위 계급의 군의관이어서인지 여러 권의 의학 관련 전공서적도 눈에 띕니다. 사실 필자는 내심 함께 갔던 한 친구를 소개해 줄 마음이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위문편지를 가장한 연애편지 비슷한 것도 있어서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했지요. 어쨌든 저녁 무렵 돌아온 오빠의 황당한 표정에 재미있어하며 우리는 그 날 저녁 박봉의 군인 아저씨 오빠의 환대를 톡톡히 받은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지요.
지금도 가끔 친구에게 '널 우리 오빠에게 소개하려고 했었어" 하면 그 친구는 '내가 그때 적극적이어야 했었는데...'하면서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하며 히히거립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서로를 존중하고 보고 싶어 하는 그런 친구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런 마음인 걸 생각하면서 친구가 오빠와 결혼하고 우리가 한 가족이 되었다면 그게 가능키나 했을까요. 때때로 나는 친구사이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흔히들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가족을 가두기 일쑤잖아요. 꼭 이래야 되는데...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하기 어려운 것이 가까워진 사이의 어려움이거늘 내 맘 같지 안 다해서 조급해하거나 너무 가까워지려고 애쓸 일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한 발짝 정도 사이가 떨어진 친구사이,
다양한 시선으로 사람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고 끊임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이, 이제는 그것이 더 좋은 사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병화님의 시처럼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만남’.
글쎄, 이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매달 첫 휴일 산행하는 고교동창 산악모임 서등회(박찬선 회장) 회원들은 4호선 대공원역에서 모였다. 더위를 피하여 숲이 우거진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을 탐방하기로 했다.
이곳에 산림욕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공원 산림욕장은 경기 과천시의 대공원 외곽을 빙 둘러서 조성되었다.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에서 정문까지는 걷거나 코끼리열차를 이용한다. 산림욕장 출입구는 동물원 안에 있기 때문에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므로 동식물원 관람과 산림욕을 함께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가뭄 끝에 밤새 쏟아진 단비 덕분에 산천초목이 깨끗하게 목욕하였다. 전철역에서 공원 정문까지 친구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 신분증을 들고 줄을 서서 무료입장권을 받았다. 꼼짝 없이 ‘어르신’이다. 이곳은 숲이 우거져 여름철에도 걷기 좋지만 붐비지 않고 시골길처럼 한적하다.
정문을 통과하여 삼림욕장 안내판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다. 대공원 산림욕장은 일반적인 산책보다는 등산에 가깝다. 오르막 내리막이 연달아 이어지기 때문에 간편한 옷차림과 등산화를 꼭 착용해야 한다. 출발점은 서울동물원 호주관 옆으로 나 있는 출입구를 이용하였다.
부채꼴 모양을 따라 산림욕장 전체를 여럿이 도는 데는 4시간 이상 소요된다. 흙산길 탐방로는 비에 젖어 먼지가 나지 않아서 좋았다. 이 산림욕장은 1994년 서울대공원 외곽 청계산 능선에 8km의 길을 정비해 조성됐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결되는 주길 6.92km,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샛길 1.08km 구간이다. 등산을 하다 지칠 만하면 벤치와 쉼터가 등장해 한숨 돌려가는 여유를 준다.
산림욕 코스가 동물원 안에 출입구가 있는 데다 청계산 등산로와는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용객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어느 때나 울창한 숲을 독점한 듯 여유롭게 산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의 매력 중 하나다.
산책로 중간 쯤 이르렀을 때, 한 줄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울창한 대숲이 바스락 소리를 내어 속삭인다. ‘소나기는 지나기를 기다리며 피하라’던가. 전망대에서 우산을 들고 빙 둘러서서 임시 뷔페식당을 차렸다. 오이ㆍ토마토ㆍ참외 과일전을 벌이고, 막걸리ㆍ과일주 한 잔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나기가 그쳤다. 지나는 사람조차 별로 없는 한적한 산림욕장! 최근 들어 몇 차례나 탐방한 '신대륙‘이다.
가끔 느닷없이 훌쩍 나서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오전이거나 오후 잠깐 시간이 생겼을 때, 서너 시간 반나절 정도 산책 삼아 다녀올만한 곳, 짧은 시간으로 탁 트인 풍경 속에서 머리도 식히며 사진도 담고 조금 더 기다려 멋진 일몰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정서진(正西津)은 경인 아라뱃길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있다. 한양(漢陽)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 정동진이라면 그 대칭으로 서쪽에 있는 지역이 바로 정서진이다.
서울에서 오후 3시쯤에 정서진을 향해 출발하면 도로 정체 없이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먼저 25층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본다. 아라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넓은 갯벌이 한눈에 들어오고, 돌아보면 풍력발전기가 눈 앞에서 거대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전망대 아래 인공호수 위로 청춘들이 노를 저으며 물 위를 미끄러져 간다. 5월~9월까지 운영하는 카약과 고무보트 체험장이 있으니 즐겨볼 만하다.
멀리 영종대교 위로 비행기가 홀연히 날아가고, 그 아래 펼쳐져 있는 갯벌은 노을을 맞이하느라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일몰이 뜨겁게 온 누리를 장악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정서진의 노을은 갯벌이나 저 편 산 능선과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노을 무렵 꼭 한 번 들여다볼 조형물이 있다. 노을 종이라고 했다. 온누리에 해넘이의 풍경이 번지면서 붉은 노을이 조형물과 맞닿을때 마음속으로 종소리를 내며 멈추는 순간을 놓치지 말일이다.
옛날 옛날에 저 아랫녘에서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하루 묵어가는 길목이 정서진이었다. 그리하여 전라도 양반댁 총각이 이곳에서 하루 묵으며 주인집 딸과 서로 눈이 맞아 사랑을 약속한 곳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정서진을 거니는 짝을 이룬 몇몇 연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사랑의 맹세도 노을 지는 정서진의 기운을 받아 아름다울 것임을 믿어본다.
드디어 붉은 노을은 뜨겁게 타올라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더니 차츰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하며 한참을 마젠타의 색감으로 차분히 머문다. 한층 운치 있는 온 세상이 하루의 마감을 알린다. 영종대교 위의 가로등이 길게 일열로 불 밝히고 갯벌엔 점점 물이 차오르고 어둠은 더욱더 짙어지고 있다.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검암역까지 공항철도, 검암역에서는 순환버스가 있다.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 역 기준
아라(인천) 여객터미널 방면➔버스 77-1(배차간격 30~40분) 승차➔아라(인천) 여객터미널 종점 도착(경인항통합운영센터).
*서울에서 자동차로는 출발지에 따라 30분~1시간 정도
평창동계올림픽대회를 일곱 달 남짓 남겨두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바이애슬론, 컬링, 아이스하키, 피겨스케이트 등 총 15개 종목의 경기가 펼쳐진다. 이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종목도 있지만 처음 들어보는 종목도 있다.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과 비교했을 때 비인기 종목이 많다. 그래도 동계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만큼 이를 계기로 대회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동계올림픽 경기종목을 살펴보고자 한다.
2009년 스키점프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 . 관객 수 803만5181명을 기록하며 영화가 흥행되면서 스키점프는 비인기 종목에서 단숨에 주목받는 종목으로 떠올랐다.
급경사면을 90km/h가 넘는 속도로 활강하며 내려오다 도약대로부터 직선으로 허공을 날아 착지한다. 마치 한 마리의 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종목은 스키 경기의 꽃이라 불리는 ‘스키점프’다.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훈련 중인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스키점프대는 노멀힐 K-98과 라지힐 K-125로 설계됐다. 숫자 앞의 K는 독일어 크리티슈 포인트(Kritisch Point)의 약자로 임계점을 뜻한다. 즉 K-98은 98m 이상, K-125는 125m 이상을 비행해야 가산점을 얻을 수 있는 점프대를 말한다. 단순하게 거리가 많이 나가는 선수가 우승하는 종목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스키점프는 거리점수뿐만 아니라 자세점수까지 포함된다. 총 5명의 심판이 비행과 착지 단계에서 자세를 20점 만점으로 채점한다. 이 중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제외한 3명의 점수와 거리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결정한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점프대 높이
현장에서 본 스키점프대의 높이는 인터넷에서 본 점프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옆에 3개의 보조 연습장이 있다. 15m, 30m, 60m의 연습장 중 가장 낮은 15m 연습장을 사진으로 보고 ‘저 정도면 직접 체험해봐도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는 순간 ‘정말 높다. 체험하는 순간 집에 무사히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 체험은 바로 접었다.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사용하는 점프대는 노멀힐 121m, 라지힐 143m의 아찔한 높이를 자랑한다. 과연 어떻게 저 높이에서 아무 안전장치 없이 내려올 수 있을까 싶지만, 스키점프 대표팀은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도약,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오른 후 착지에 성공한다.
장비의 역할이 크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를 찾은 이날은 운 좋게도 대표팀이 스키점프대에 올라 실전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선수들의 오전 훈련은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점프대에 오르기 전에는 조깅과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자세 교정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함께 진행한다. 이날 영화 속 실제 주인공인 최흥철 선수와 올해부터 스키점프 코치로 활동 중인 강칠구 코치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약 한 시간 정도 훈련한 후 장비를 챙겨 점프대에 올랐다. 스키점프 장비는 스키(플레이트, 바인딩), 부츠, 슈트, 헬멧, 고글, 장갑, 왁스로 나뉜다. 선수들은 이 중 가장 중요한 장비로 슈트를 꼽았다. 스키점프 슈트는 만드는 회사도 적을 뿐더러 기록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매년 규정이 바뀐다. 신체 부위마다 요구하는 정도가 다 다를 만큼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다. 심지어 슈트 안에 입는 옷도 규정한다.
최흥철 “올해부터는 배꼽보다 위로 올라오는 상의를 입어야 해요. 배꼽티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요!(웃음)”
스키점프는 양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스키와의 다르게 폭이 넓고 긴 스키를 사용한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때 몸무게가 가벼운 일본 선수들이 긴 스키로 메달을 휩쓴 후 스키의 길이는 선수 키의 146%를 넘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생겼다.
스키점프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선수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장소는 도약대 옆에 위치한 관중석이다. 이곳에서는 출발부터 착지하는 구간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더러, 구간마다 달라지는 소리를 실감 나게 들을 수 있다. 출발 후 하강하는 소리는 마치 로켓이 발사되는 듯한 큰 소리가 난다. 이후 도약대에서 발을 뗀 5초 정도의 시간에는 순간적으로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 고요함 속에 날아오르는 선수를 보면 스키점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엔 최흥철, 최서우, 김현기 선수와 대한민국 유일무이 여자 스키점프 국가대표인 박규림 선수가 출전한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힘든 연습을 이어간다.
김현기 “한계점이 없고 계속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 스키점프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날까지 노력할 거예요.”
최서우 “어렸을 때는 가장 낮은 점프대에서 연습하는 것도 무서웠지만 이제는 자면서도 날아가는 꿈을 꿔요. 맞바람을 잘 받는 날이면 ‘내가 정말 하늘을 날고 있구나’라는 기분이 들어요.”
박규림 “예전에는 ‘우와 날아간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제는 성적을 신경 써야 하다 보니 그런 느낌보다는 자세와 기록에 초점을 두고 연습하고 있어요.”
스키점프 전망대
스키점프 경기장에 있는 모노레일을 타면 평창 알펜시아의 전경과 대관령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스페셜 티켓 구매 시 가이드 설명과 함께 K-98 경기장 관람이 가능하다.
가격 성인 기준 2000원 (스페셜 6000원)
운행시간 오전 9시 25분을 시작으로 30분마다 운행
※모노레일 1대의 정원은 17명으로 정원 초과 시, 다음 시간을 이용해야 함.
여름에도 스키점프 가능할까?
스키점프는 동계스포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여름과 겨울 모두 대회가 열린다. 물이 흐르는 트랙과 플라스틱 풀밭으로 이루어진 인공 환경이 제공된다면 여름에도 스키점프를 즐길 수 있다.
관전 포인트
선수 번호가 대략 1번에서 65번까지 있는데 끝 번호 일수록 랭킹이 높은 선수다. 즉 처음이 아닌 마지막에 뛰는 선수일수록 가장 잘하는 선수다.
드디어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에 도착했다. 역시 국경을 넘는지도 모를 정도로 버스가 달리다보니 에스토니아였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인구도 가장 적지만, 이웃 나라 핀란드 덕분에 발트 3국 중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했다. 리투아니아가 폴란드, 벨라루스와 접경인 것을 감안하면 이웃나라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아침 기온이 6월 중순인데도 8도에, 비 오고 바람까지 불어 꽤 춥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벼운 패딩 옷을 준비하라고 했는데도 서울의 날씨만 생각하고 반팔 옷만 준비한 사람들은 곤욕을 치렀다. 온도도 초봄날씨지만, 체감온도가 더 춥게 느껴졌다.
첫 방문지는 여름 수도라는 타르투였다. 볼거리라고는 타르투 대학 캠퍼스를 돌아보는 일이었는데 일행 중 절반은 이미 커피숍에 앉아 담소를 즐기고 나머지 절반만 캠퍼스 구경을 했다. IQ가 높은 사람들은 공부하러 캠퍼스 구경에 나섰고, EQ가 높은 사람들은 커피숍의 담소가 더 좋았다고 하여 웃었다. 정복자 스웨덴이었지만, 스웨덴 사람이 세운 대학이라고 했다. 천사의 다리, 악마의 다리가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 하여 대성당, 시청사 광장 등 볼거리를 둘러 봤다.
다음 행선지는 국경도시 나르바였다. 러시아 민족이 주민의 87%라고 했다. 두고두고 골치가 될 소지가 있어 보였다. 온천도시라서 온천욕을 즐겼다. 남녀 혼탕이지만, 수영복을 입어야했다.
다음 행선지는 라헤마 국립공원이었다. 서울의 2배 정도인 습지라는데 과연 땅이 물기를 지니고 있어서 밟으면 물이 올라오는 땅이었다. 30분 정도 산책길을 걸어 들어갔다가 나오는 코스였다.
다음 코스는 합살루라는 도시였다. 옛 러시아 황족들이 타던 열차와 철도, 옛 정거장이 전시되고 있었다. 조금 이동하니 벽돌로 쌓은 고성이 있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135계단을 올라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가 전경을 구경했다. 호수 가에는 차이코프스키가 즐겨 찾았다는 벤치가 노래비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이었다. 도시 절반은 카페이고 나머지 절반은 기념품 상점일 정도로 관광도시였다. 중세의 신비한 분위기와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현대식 빌딩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웃 핀란드 사람들, 중국 관광객들이 와서 붐비는 도시였다. 구 도시가 하이라이트이다. 유럽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된다. 거리마다 악사가 길거리 연주를 하고 오픈 카페가 손님을 끌었다. 매력 있는 골목들과 고만고만한 상점들의 상품도 쇼핑객을 끈다. 러시아 상품들이 꽤 있다는 점이 다른 발트 3국과 다르다.
발트 3국은 도로가 옛 마찻길로 돌을 심어 놓아 매우 불규칙하다. 그래서 멋을 내려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심은 여성들은 발목을 삐는 사고가 속출했다. 멋도 좋지만, 발 편한 운동화가 제격이다.
올 때 갈 때 비행기에서 잤으므로 발트 3국 여행에 6박 8일을 보낸 셈이다. 여행 경비는 250만원이 들었다. 탈린에서 이스탄불까지 3시간 반 이동하고 다시 이스탄불에서 12시간 비행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장거리 비행이라 노인들은 힘이 드는 편이다. 더 늙기 전에 가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