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스마트 폰을 허리 벨트에 차고 다닌다. 대표적인 ‘할배 스타일’이라며 힐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방식이 가장 편하다. 필자 같은 사람이 별로 없는지 벨트 형 스마트폰 케이스는 취급하는 곳이 드물어 사기도 어렵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주머니가 불룩해서 보기 안 좋다.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디 앉았다 하면 스마트 폰을 꺼내 테이블이 놓고 나와서 분실하기도 한다. 시함 사람은 스마트폰을 벌써 10여 차례 분실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트에 차고 다니는 짓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사람이다.
스마트 폰을 허리 벨트에 찼을 때 진동으로 전화나 문자가 온 것을 알게 된다. 영화관이나 회의, 교육장 등에 참석할 때 진동으로 해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진동이 울린 것으로 알고 스마트폰을 열어 봤는데 전화가 온 것도 아니고 아무 문자도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을 ‘유령 진동 증후군’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필자가 카톡 등을 소리 나지 않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급한 연락 때 금방 답을 못한다. 민폐라는 것이다. 전철 타고 가다가 우리 집 근처에 다가 오니 잠시 만날 수 있느냐는 등의 연락 등이다. 답이없으니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다. 이처럼 긴급 번개 모임 등을 하려고 연락했는데 답이 없어 취소하거나 카톡에 대한 아무 대꾸가 없어 카톡도 안 보고 다니느냐는 원망을 자주 들었다. 그러다 보니 불안감과 강박관념 때문에 부지런히 스마트폰을 자주 열어 봐야 한다. 진동이 울리지도 않았는데도 신경이 반응하는 것이다. 하긴 원래 유령진동 증후군은 팔다리가 절단 된 사람도 발가락이나 손등이 가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환영사지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필자는 동전을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꼭 필요한 동전으로는 500원, 100원, 10원짜리 동전 하나씩만 있으면 가장 좋다. 커피 빼 먹을 때 500원 동전을 쓰고 마트에서 상품을 사고 거스름돈으로 100원이나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없어서 거스름돈으로 동전 900원, 90원을 받을 때 이런 동전 하나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전을 계속 왼쪽 주머니에 쓸어 담다 보면 주머니가 불룩해지고 동전이 피부에 닿는 허벅다리 근처가 간지러워진다. 동전을 그래서 빨리 처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식점에 1000원짜리 지폐 대신 동전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껏해야 생수 한 병 사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동전은 따로 모아 둔다. 언젠가는 은행에 가서 지폐로 교환을 할 작정이다. 그런데 동전을 주머니에서 빼고 난 후에도 동전이 그득하게 들어 있다는 착각이 생긴다. 동전과 닿았던 피부가 아직 동전이 그득하던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유령 진동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자율신경이 다소 과민한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자율신경이 민감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순발력이 좋다는 얘기도 된다.
지난 1월 17일 서울시 교통정책과 담당주무관과 함께 전철과 버스를 동행탑승하고 어르신의 전철무임 실태를 확인하였다. 세계 최고수준의 대중교통은 어르신 등에게 전철무임을 도입하여 국민복지의 꽃을 피웠다. 하지만 ‘전철·버스요금 환승할인’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어르신교통카드’에는 무임인 전철과 유료인 버스 사이에 ‘전철·버스요금 거리비례계산’ 연계기능이 없다. 이 때문에 어르신은 전철무임커녕 오히려 일반인보다 교통요금을 더 많이 부담하고 있다. 어르신 교통요금 환승할인을 일반인과 같게 해야 할 이유다.
동행확인은 버스,전철,버스 순으로 하였다. 버스승차요금 1200원, 전철 승하차 무임이었다. 다음 버스 환승 때는 버스끼리 환승할인이 되어 추가부담이 없었다. 일반인이 총요금 1250으로 이용하는 거리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교통요금은 카드에 표시된 1200원이 아니다. 어르신교통카드는 전철·버스요금 거리비례계산이 되지 않아 전철과 버스요금 각각 계산하여 전철무임 1250원을 국가에서 전철사업자에게 ‘무임보상’을 하기 때문이다. 버스요금을 합산하면 총요금은 2450원이 된다.
아르신이 일반인보다 96.0%가 많은 1200원을 더 부담하는 상황이다. 어르신교통카드에 찍히는 ‘0’의 착시로 그 속에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전철무임보상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어르신도 교통정책 당국자도 이를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같은 조건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어르신이 일반인보다 교통요금을 더 부담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어르신이 일반인보다 초과부담하는 요금은 오롯이 교통사업자의 수입만 늘릴 뿐이다.
전철 기본요금 1250원과 버스 기본요금 1200원은 환승할인제 이전에는 교통이용 때와 결제 시의 요금이 같은 꼭 부담하여야할 ‘최저요금’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기본요금 범위 내에서 ‘정산’하여 받을 수 있는 변동하는 ‘최고요금’이다. 일반인은 총요금 2450원을 거리비례계산 후 51.0%인 1250원만 부담한다. 같은 비율로 교통요금을 비례계산하면 어르신의 전철요금은 638원, 버스요금은 612원이어야 한다. 현실은 어르신 버스기본요금 1200원을 먼저 부과한다. 결과적으로 달랑 50원만 ‘전철무임’이 된다.
환승할인제 시행 후에는 대중교통 기본요금은 이용할 때의 고정요금이 아니고, 기본요금 범위 안에서 정산하는 ‘변동’제라는 인식을 하여야 풀리는 문제다. 버스 기본요금 1200원을 고정요금으로 꼭 먼저 징수하여야 한다면, 대국민약속인 ‘전철무임’은 기본요금 1250원이 되어야 한다. 총요금에서 먼저 공제하여야 한다. 시민이 바라는 전철무임이다. 하지만 현실은 버스요금 1200원을 먼저 징수한다. 달랑 50원이 실질적 무임이다. 어느 누가 ‘전철무임’ 시대에 산다고 하겠는가. 일반 시민들은 속도 모르고 ‘퍼주기 복지’라고 한다. 언제까지 시민의 눈총을 받고 살아야겠는가.
어르신교통카드는 전철과 전철, 버스와 버스끼리는 환승할인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임전철과 유료버스 사이에는 ‘교통요금 거리비례계산’ 기능이 없다. 교통요금 환승할인제 도입 때부터 개선하였어야 할 사안이다. 어르신은 일반인보다 더 좋은 전철무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반인과 차별 없는 ‘동일한 교통요금 제도’를 원한다. 어르신에게 ‘교통요금 거리비례계산’ 기능이 부여된 카드를 사용하도록 하면 모든 문제점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 진정한 국민복지를 실현하는 길이다.
당구 방송을 즐겨 본다. 일부 의학정보 외에 24시간 거의 당구에 관한 방송을 한다. 세계 유일의 당구 전문 TV방송이라고 한다. 당구 계 뉴스는 물론 레슨도 해주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녹화 중계 한다. 덕분에 배우는 것이 많다.
그런데 개국 4주년을 맞아 ‘노 코멘터리’ 방송을 한다고 해서 봤다. ‘노 코멘터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캐스터와 해설자 없이 하는 방송이다. 이 방송국은 캐스터 2명, 해설자 2명이 거의 전 방송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도 질력이 날 만 하다. 늘 같은 사람이 나오고 말투도 같다. 특히 캐스터라는 사람은 늘 말을 해야 하는데 많은 말을 하다 보니 실수도 나오고 시청자에 따라 듣기 싫은 얘기도 들어야 한다. 그러니 차라리 볼륨은 아예 안 들리게 하고 경기 화면이나 보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캐스터나 해설자 모두 중계 방송하는 프로 선수들보다 기량이 아래인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그들과 겨루는 우리나라 정상급 프로 선수들의 기량에 비해 아래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캐스터는 동호인 수준의 당구 실력으로 보인다. 그 수준에서 보는 시각은 물론 시청자들의 눈높이와는 맞겠지만, 안 해도 되는 말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점수 차가 10점 이상이 되면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는데 역전이 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해설자도 캐스터보다는 고수이지만, 그 수준에서 그 이상의 선수들 경기를 중계 해설하다 보니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레슨 시간에는 레슨 마스터라는 프로 선수가 등장하고 개그맨 출신의 보조 진행자가 나온다. 보조 출연자가 어느 날 시청자들이 말은 줄이고 곧바로 레슨에 들어가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전했다. 개그맨 출신이다 보니 재미있으라고 레슨 마스터와 주고받는 말이 일부 시청자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당구장이나 음식점에서 보여주는 방송은 볼륨을 완전히 낮춰 안 들리게 해 놓은 곳이 많다. 프로 야구 방송이나 뉴스도 자막으로 다 알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소음을 발생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피곤하게 생각한다. 들어야할 정보가 넘치고 이미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더 이상 미처 입력이 안 되고 있는데 끊임없이 정보가 날아드니까 폭발 직전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자주 가는 막걸리 집이 있다. 그 집 주인은 늘 미소와 함께 별 말이 없다. 그래서 편안하다는 사람이 많다. 반면에 갈 때마다 반색을 하며 끊임없이 말을 하는 주인이 경영하는 막걸리 집이 있다. 그러나 같이 간 사람들과의 대화 분위기를 해친다.
마누라 잔소리 듣기 싫어서 밖에서 맴돈다는 시니어들도 많다. 자기를 위해서 하는 잔소리이고 다 맞는 말인데 너무 반복되니까 듣기 싫다는 것이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밖으로 도니까 자주 볼 시간이 없어서 얼굴만 마주치면 잔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요즘의 시니어 남자들은 조용히 있고 싶어 한다. 전철 안에서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여자들 수다가 들리면 아예 딴 칸으로 이동하거나 시끄럽다며 분풀이를 하기도 한다.
안부라도 물으려고 선배에게 전화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잠시 있다가 다시 해봤다. 여전히 안 받는다. 요사이 나이 든 티를 좀 내시는 것 같다. 만나면 긴 얘기를 두세 번 되풀이한다. 그럴 때 고민한다. 이걸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닌 척하고 끝까지 다 들어야 하나.
전화가 왔다. 어제 미장원에 갔다가 전화기를 두고 와서 오늘 가서 찾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고 했다. 흔한 일이다. 어떤 이는 외출하려면 집에 서너 번씩 들락거려야 한다고 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는 돋보기를 놓고 나와서, 두 번째는 안약을 놓고 나와서, 세 번째는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도로 놓고 나와서 들어갔단다. 그럴 때 마누라가 쳐다보지도 않는다 했다.
특히 가방을 바꾸면 실수하기 쉽다. 무기를 다루듯 다 챙겨 넣어야 한다. 교통카드와 지갑, 볼펜과 돋보기, 손수건과 휴지, 화장품과 핸드로션, 전화기와 보조배터리 등. 그래도 안경집은 있는데 돋보기가 없다든지 하면서 사고를 꼭 친다. 뭔가 잊어버리고 외출하면 종일 불편하고 힘이 없다.
며칠 전 연탄배달 봉사 후 보람찬 일을 했다는 기쁨으로 기분 좋은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 후 차를 마시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는데 그중 몇 사람은 집이 멀다 하면서 먼저 가겠다고 했다. 차를 주문할 때 어떤 분이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식당에 가보겠다며 일어섰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왔는데 테이블에 전화기 두 개를 내려놓았다. 식당에 갔더니 주인이 하나 더 주더라는 것이다.
마침 전화기에 카드가 꽂혀 있어 이름을 보니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전화기가 잠겨 있어 집 전화도 알 수 없고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 식당 주인에게 우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식당에 전화하니 주인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핸드폰을 찾으러 왔다가 허탕치고 돌아가려는 사람을 불러 세웠던 것이다.
그가 찻집으로 와서 하는 말은 이랬다. 전철역에 도착해서 교통카드를 찾으니 전화기가 없어 식당으로 다시 갔다가 핸드폰을 다른 사람이 찾아갔다고 해서 걱정하며 돌아서던 차에 마침 전화를 받게 된 것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깜빡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도 그때마다 그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거나 자존심 상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주변 사람이 재미있어하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는 실수이기 때문이지 자신이 자유롭기 때문이 아니다. 늘 주의해야겠지만 실수를 너무 수치스러워하면 자연스럽게 늙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어서야 공부도 때가 있구나 실감했다. 나이가 들면 공감 능력도 떨어진다. 공감은 훈련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타고나야지.
손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할머니! 크리스마스 날 할아버지가 산타크로스할아버지 옷을 입고 선물을 갖고 온다고 하는데 진짜야?’ 손녀는 이제 7살이다. 누구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서 하는 말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대답해야 올바른 대답일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고 한다. 손녀는 산타할아버지가 실제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다. 그런데 해마다 선물을 받으니 할아버지가 산타 옷을 입고 밤에 몰래 와서 주고 가는 모양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응 할아버지가 산타 옷을 입고 선물을 갖고 오실거야 예원(손녀의 이름)이가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종이에 적어서 책상위에 붙여두면 꼭 그 선물을 받게 될 꺼야!’
‘예 알았어요, 엄마랑 생각해보고 적어 놓을 께요.’ 하고 말하더란다.
손녀와 같이 살지 않으니 며느리에게 미리 돈 봉투를 주고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서 잘 포장하여 전해 주라고 말했다. 손녀는 선물 받기 전에 엄마랑 받고 싶은 선물을 상의 할 테니 귀신같이 할아버지가 손녀의 마음을 알아서 보내왔다고 만족하고 기뻐할 것이다.
예전에 필자의 어린 시절에도 산타크로스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타크로스할아버지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사람이여서 우리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 사람으로 알았다. 산타크로스할아버지는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믿었다. 굴뚝타고 들어와서 선물을 나눠준다는 것은 아예 믿지도 않았고 실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기억도 없으니 산타크로스할아버지가 실제는 없다고 믿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크리스마스이브 때 교회에 가면 동방박사 연극도 보여주고 끝까지 앉아있으면 집에 갈 때 떡과 과자가든 종이봉지를 하나씩 손에 쥐어줬다. 연극구경이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구경보다 종이봉투의 과자와 떡이 탐나서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교회에 갔다. 평소에는 교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다가 그날만은 갔지만 아무도 우리를 탓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에 손녀가 전화를 해왔다. 할아버지가 썰매도 없고 눈도 오지 않았는데 우리 집에 어떻게 올 것이냐고 물어본다. 평소처럼 전철을 타고 간다고 말하기에는 아이들 환상을 깨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늘나라의 눈썰매를 빌러 타고 간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거짓말이다.
‘할아버지가 다 가는 방법이 있어 우리 예쁜 예원이 빨리 잠이 들어야 할아버지가 예원이네 집에 가지’
‘할아버지가 오시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오시지 ’하고 손녀는 궁금증을 품은 채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아이의 수준으로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썰매도 없고 눈도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올지 궁금했지만 아침에 눈을 떠보면 할아버지의 선물이 머리맡에 있을 것이고 확실히 할아버지가 선물을 갖다 준 것은 맞는다고 생각한다. 몇 년 지나면 손녀도 차츰 의문이 하나둘 풀릴 것이고 그렇게 자라면서 어른이 되게 마련이다.
이번 겨울 들어 롱 코트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일종의 유행이다. 백화점 한정 수량 판매로 밤을 새며 난리를 피웠던 평창 롱 패딩이 유행의 불씨가 된 것 같다. 평소 잘 보이지도 않던 흰색 롱 코트가 많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렇다. 롱 패딩이라고 하는데 사실 평창 롱 코트는 구즈 다운이 들어 있어 패딩 코트가 아니다. 패딩이란 인조 솜을 말한다. 보온력이 다운만큼 높지 않아 값이 그리 비싸지 않다. 그런데 내용물에 관계없이 패딩 코트라고 하는데 내용물에 따라 패딩 코트 또는 구즈다운 롱 코트라고 해야 맞다. 평창 구즈 다운 롱 코트를 15만원대에 팔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성비가 높아 인기가 좋았던 것이다. 물론 평창 동계 올림픽 홍보에 일조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필자가 대표이사로 해외 유명 스포츠 브랜드 사업을 전개할 때 롱 패딩 코트에 관한 일화가 있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 입고 있던 롱 패딩인데 그 당시 롱 패딩은 국내에 거의 보이지 않을 때였다. 카탈로그에 실린 퍼거슨 감독의 롱 코트를 보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긴 했다. 같이 갔던 회장은 이 롱패딩이 한국에 수입되어 들어오면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 것이라며 흥분했다. 그 브랜드가 아직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라서 필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문을 1000개를 했다. 그것도 신규 런칭 품목으로 도박이었다. 그런데 돈을 대는 회장은 주문을 늘려 3000장으로 했다. 들여오기만 하면 없어서 못 팔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 롱 패딩 코트의 원가는 출발지 가격으로 1만 5000원대였다. 거기에 운임, 관세, 기타 유통비용을 계산하니 9만 원 대가 나왔다. 회장은 가격이 싸다고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싸야 잘 팔린다며 판매가를 올리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자신 없다며 올릴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필자가 해외 출장을 다녀 오니 12만원으로 가격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여전히 판매는 부진했다. 필자가 한 번 더 출장을 다녀 오니 가격이 18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필자가 없는 사이에 회장이 지시하여 가격을 올린 것이다. 잘 팔렸다면 좋았겠지만, 판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판매 부진의 이유를 가격이 너무 높아서라고 설명했더니 그러면 가격을 다시 내려서 팔아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1월에 접어 들어 겨울 상품이 팔릴 시기가 지났다. IMF 금융위기를 겪고 재고 상품을 원가 처분할 때 이 롱 패딩 코트를 1만 5000원으로 가격을 매겨 놓았으나 역시 판매가 부진했다. 그 당시만 해도 유행 상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롱 코트가 잘 팔리는 이유를 분석해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신장이 상당히 커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년전 롱 패딩을 내놓았을 때는 키도 안 큰 사람이 롱 코트를 입으면 더 작아 보였기 때문에 안 팔렸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신장에 관한 한 콤플렉스가 없다. 웬만한 서양 외국인보다 작지 않다. 그 당시는 높은 굽의 구두가 유행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인가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뒷 굽 없는 플랫 슈즈가 유행이었다.
롱 패딩 코트는 사실 입으면 불편하다. 다리 쪽이 두툼해서 걸을 때마다 걸리적거린다. 전철 안에서 자리에 앉을 때 벗지 못하므로 깔고 앉아야 한다. 흰색 롱 코트는 깔고 앉으면서 때가 탈 수 있다. 롱 코트에 달려 있는 모자도 불편하다. 모자가 필요한 경우는 아주 추운 날 얼굴을 감싸는 경우인데 그런 정도의 추위는 많지 않다. 모자 앞 쪽에 털이 달린 경우는 더 불편하다. 모양은 좋을지 몰라도 사실 보온 효과는 별 차이 없다. 입고 있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 위주이다. 양 옆이 잘 안 보이므로 길을 건너거나 할 때 위험하기도 하다. 롱 코트의 용도는 추위에 많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나 맞는다. 주차장 요원, 지하철 봉사요원, 스키장 요원 등 한자리에 고정적으로 외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입는 옷이다. 그런 옷을 유행이라고 너도나도 입고 다닌다. 패션 면에서 볼 때에도 그리 모양이 좋은 편은 아니다. 바디라인이 다 감춰진다. 무릎 아래까지 오니 아무래도 다른 옷보다 보온 효과가 좋겠지만, 발목은 유행이라고 맨 살로 내놓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발목이 노출되면 더 춥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행이니까 입는 것 같다. 중고등학생들까지 롱 코트가 유행이니 부모들 주머니 사정이 더 팍팍할 것 같다.
12월의 첫 주말, 고향친구들 송년모임이 있어 이른 오후에 길을 나섰다.
고속터미널역에서 9호선 환승을 하려고 이동 중인데, 때가 때인지라 구세군 냄비가 딸랑딸랑 종을 울리고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 촘촘하게 얹혀 실려 가는 짐짝이 되어 마음만 재촉해 본다.
김포공항에서 여의도를 거쳐 강남 도심권으로 관통하는 9호선은 출, 퇴근 시간이면 늘 상습적으로 붐비는 노선이다. 더구나 12월의 첫 주말, 이미 년말분위기가 무르익은 듯, 많은 사람들이 전철 문 앞에 줄을 서있다. 전철이 도착하자 내 몸은 저절로 빈대떡이 되어 차량 안으로 빨려들어갔는데, 숨이 막힐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약속된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하여 정다운 고향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다가 당구장으로 가자는 유혹을, 길이 멀다는 이유로 뿌리치고 돌아오는 전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노량진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에 막 갈아탔는데, 저녁 8시를 넘긴 시간이라 올 때보다는 덜 붐볐으나 그래도 어지간히 복잡했다.
이 때, 전철 안에서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 무리 중에 한사람이 신나게 썰을 풀어내고 있었다.
“나가 말이여 50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내서…….하하하(호쾌한 웃음소리), 기분이 너~무 좋아부렀어. 나가 전주에서 올라왔는디 반백 년 만에 불x 친구들을 만나니 기분이 너~무 좋아 죽을뻔 했구마....하하하” 모처럼 오랜만에 노래방에 가서 김삿갓을 불러부렀어…….하하하” 한 잔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그 사람은 정말 유쾌하게 웃었다. 50년 만에 어린시절 친구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중충한 셔츠자락이 반쯤 바지에서 삐져나온 채 점퍼는 벗어 팔에 걸치고 서서 연신 큰소리로 얘기하며 웃어댔다. 평소 같으면 떠들어대는 소리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마치 상기된 아이처럼 진지하게 떠들어대는 그사람이 별로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그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시끄러운 소음정도로 들으면 한없이 불쾌하겠지만 특유의 유쾌함으로 전이가 되어 은근히 주위사람들도 슬며시 따라 웃어주었다. 더구나 연말을 앞두고 여기저기 송년모임 분위기가 벌써 무르익었으니 그 사람의 우직한 말투가 미워 보이지도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주위에 있는 초로의 장년 남녀가 그 사람의 초등학교 동기들인가보다. 재담이 계속 이어진다. “예전에 말이야”, 발동기 시동을 거는 모습을 흉내 낸다. 소매자락을 반쯤 걷어올린체, 돌리는 흉내를 내면서 푸쉬푸쉬 (고무공에 바람빠지는 소리)힘차게 발동기 시동을 거니 주위사람들이 소리죽여 배꼽빠지게 웃고있다. 나역시 바로 옆칸에서 은근히 그 쪽으로 귀를 집중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덩달아 유쾌하게 웃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고속터미널역에서 그 사람은 내렸다. 남부터미널역을 찾는 것을 보니 아마도 오늘 밤에 전주까지 내려갈 모양이다.
3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사람의 잔상(殘像)이 떠올라 기분이 유쾌했다. 초등학교 동창을 50여년 만에 만났다고 하니 분명 내 또래인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과 담을 쌓고 사는 각박한 도시 생활 속에서 이렇듯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유쾌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의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갈등하고 이리 저리 갈라져 보이지 않게 서로 반목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상대방에게 조금만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온기가 감도는 연말연시를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에 손이 시릴 때가 많다. 주머니에 손을 넣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다.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손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주머니에 들어가 있으니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때 얼굴이 먼저 땅에 닿을 경우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남자들은 손이 시리지 않아도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일종의 자기 멋이다. 좀 불량스러워 보이게 해 남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하자는 의도도 있다. 마찬가지로 넘어졌을 때 위험하다. 손 처리가 좀 멋 적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사람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손을 그냥 두자니 어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멋쩍음은 본인 생각일 뿐이다.
작년에 고인에 대한 회고록을 집필한 적이 있다. 고인은 어느 날 술을 좀 마셨고 날씨가 쌀쌀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다가 넘어졌다. 치아가 여러 개 손상되었고 그것이 고인의 사인 중 하나가 됐다고 한다. 치아가 한꺼번에 여러 개 손상되자 음식물 섭취가 어려워졌고 당연히 소화도 잘 안 되었다는 것이다. 치료 과정도 힘들었다고 한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약물과 통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몸이 허약해졌고 감기에 걸려 결국 폐렴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시니어의 동선을 보면 전철 등 계단을 많이 이용한다. 인도도 걸을 때는 불규칙한 보도블록 때문에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 이때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으면 빠른 대응을 할 수 없다. 손이 바깥에 나와 있으면 사고가 날 경우 손으로 땅을 먼저 짚을 수 있다
다리에 힘이 없으면 평지에서도 작은 돌출이나 불규칙한 바닥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시니어는 늘 넘어질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폐경 후 여성들은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넘어졌다 하면 바로 골절상을 당할 수 있다. 하체 운동을 위해 걷기를 한다면 불규칙한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보다는 아스팔트로 만들어진 평탄한 자전거 길이 낫다. 물론 자전거를 조심해야 하지만, 도심에서는 큰 위험이 없다.
손이 시리면 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 굳이 비싼 장갑을 낄 필요는 없다.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용도면 충분하다. 비싼 장갑을 꼈다가 잃어버리면 속만 쓰리다. 추운 날 등산이나 걷기를 해야 한다면 아예 두툼한 스키장갑을 끼는 것도 괜찮다. 얇은 장갑은 손을 주머니 속으로 쉽게 들어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움츠린 자세가 된다. 어깨에도 힘이 들어간다. 그런 자세로 하루 종일 다니다 귀가하면 온몸이 쑤시는 경우도 있다. 올바른 자세 유지 측면에서 볼 때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다니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전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목에 먹자골목이 있다. 크고 작은 업소들이 길 양옆에 포진해 있다. 경쟁이 심해져서인지 몇 달 못 가 문 닫는 업소들이 많다. 그러고는 새 업소가 간판 달고 인테리어 다시 해서 문을 연다. 그때 축하 화분들이 많이 들어온다. 부피가 큰 것으로는 고무나무, 관음죽 등 열대 관엽식물들이 많다. 그런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밖에 둔 열대 식물들이 그대로 얼어 죽은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업소 영업도 부진한데 입구의 얼어 죽은 열대 식물들이 더 처량하게 보인다.
이런 현상은 요즘 사람들이 무지해서 생기는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콘크리트 아파트에서만 살던 사람들이 식물을 길러봤을 리 없다. 열대 식물들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얼어 죽는다. 기온이 내려가면 실내에 들여놓아야 한다. 실내에 들여놓으면 공간을 차지한다며 밖에 두는 사람이 많다. 실내에 들여놓는 것도 식물에게는 환경이 바뀌는 것이므로 스트레스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더우면 웃자란다. 웃자란 식물은 그만큼 허약해서 어느 정도 자라면 감당을 못하고 시들어버린다.
사무실에서는 심지어 마시다 남은 커피나 녹차를 화분에 붓는 사람도 있다. 화장실까지 가서 버리기가 귀찮은 것이다. 커피가 식물에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믹스 커피는 설탕 같은 첨가물이 들어가 좋을 리 없다. 원두커피 찌꺼기도 일부러 화분에 주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식물에게는 깨끗한 물이 가장 좋다.
애견은 날씨가 추워지면 옷까지 사다 입힌다. 그러나 개에게는 안 좋단다. 애견에게는 그렇게 극성스러우면서 식물에게는 관심이 없다. 열대 식물을 파는 사람들에게는 얼어 죽는 나무가 많을수록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소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적 낭비다.
식물을 기르는 것은 정서적으로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다. 정성을 다해 식물을 키우다 보면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애정도 생긴다. 그런데 요즘은 공동주택에 살다 보니 실내에서 식물 기르기가 마땅치 않다. 햇볕 잘 드는 남향집이면 좀 낫지만, 북향집은 햇볕이 부족해 실내 식물들이 햇볕 드는 쪽으로 기를 쓰며 가지를 뻗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젊은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장기간 파견 근무를 할 때 식물이 주는 위로를 새삼 느꼈다. 주변은 온통 황토빛 사막이었다. 식물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있다 해도 잎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 누런 먼지를 뒤집어쓴 것들이었다. 그래서 국내에 휴가차 들어오면 잔디 씨를 사서 가져갔다. 방 안에 작은 용기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린 필드를 만들었다. 용기에 탈지면을 깔고 물을 붓고 잔디 씨를 뿌려놓으면 일주일 후 파란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종의 수경 재배였다. 초록색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때 알았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아파트를 팔아 치우고 넓은 마당에 잔디가 깔린 단독주택을 샀다. 마당에 온갖 과일나무를 심고 각종 꽃들을 키웠다. 그래서 당시 열풍이던 아파트 폭등의 호기를 잡지 못해 재테크에 실패했지만 후회는 없다.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다시 기회가 되면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서 넓은 마당에 온갖 식물들을 기르며 살고 싶다.
해외여행에 익숙지 않은 초보 배낭 여행객들에게 홍콩은 매우 적격한 나라다. 중국 광둥성 남쪽 해안지대에 있는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반환되어 국적은 중국이지만 특별행정구다. 다른 자본주의 체제가 적용되는 ‘딴 나라’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오래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병 고쳐 달라 기원하면 낫게 해줄까? 웡타이신 사원
홍콩의 주룽반도(九龍半島)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교 사원이 웡타이신(黃大仙)이다. 원래는 중국 광저우(廣州)의 황사에 있었는데 1912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56년부터다. ‘웡타이신’은 우리말로 황대선이라는 인물을 뜻한다. 그는 원래 저장성의 한 지방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 15세 때, 정제된 황화수은을 질병 치료 약으로 만들어 인술에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래서 이 사원은 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신앙처로 알려지게 된다. 모습은 여느 사원과 비슷하다. 각자의 소원과 병 치료를 기원하는 제수를 놓고 향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 안은 눈이 매울 정도로 향내가 진동한다. 특히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행운의 점(산통점)을 친다. 일을 그르칠 때 쓰는 ‘산통 깨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 ‘산통점’과 관련해서 생겨났다. ‘산통(算筒)’에 대나무를 잘게 잘라 100개 정도를 넣고 산통의 막대가 나올 때까지 흔들고 막대가 나오면, 막대와 같은 번호의 종이와 바꾼다. 점쟁이는 그 내용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점괘가 나와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또 이 사원에 들러 꼭 찾아야 할 곳은 뒤쪽의 정원. 황대선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정원은 연못과 함께 꾸며져 있어 주변 고층 아파트의 삭막함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정적이다.
홍콩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침사추이 거리 헤매보기
주룽 지구의 침사추이(尖沙咀)는 홍콩 최대 번화가다. 고층빌딩 숲, 옛 향기가 가득 배인 칙칙하고 좁은 골목들. 오래된 재래시장과 파도처럼 일렁대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의 물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 같은 매력이 폴폴 넘쳐나는 곳. 홍콩 누아르 영화 속에서 이미 친근해진 풍경이 반갑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모티브로 만든 ‘스타의 거리’다. 2003년에 시작해 1년 뒤인 2004년부터 공개되었다. 너비 4~5m, 길이 440m로, 9개의 붉은 기둥에 홍콩 영화 100년사가 기록되어 있다.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의 조형물, 이소령 동상 등이 눈요기를 시켜주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길바닥에 새겨진 영화인 명판들. 이연걸, 홍금보, 임청하, 양조위, 오우삼, 서극, 매염방 등 국제적으로 친숙한 홍콩 스타들의 손도장과 사인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이름만 새겨진 배우는 스타 거리가 조성되기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다. 이곳이 유난히 좋은 이유는 주변 바다 풍치가 덧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과 고깃배가 떠다니고 바다 너머로 홍콩섬 금융가의 건물들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는 주변 풍광이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우주박물관, 시계탑, 문화센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주룽반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높이 44m)은 1910~1978년 중국과 유럽을 오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었던 주룽역 앞에 서 있던 것. 조화롭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침사추이가 매력적이다.
홍콩의 부자 동네, 리펄스 베이
침사추이에서 리펄스 베이(Repulse Bay)로 가려면 일단 홍콩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페리호와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홍콩섬은 홍콩 개항 이후, 상업 및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산, 빅토리아 피크(554m) 고갯길을 넘어서면 차창 밖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빽빽한 건물 대신 초록색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띄엄띄엄 고층 아파트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건축 형태가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리펄스 베이다. 성룡 등 홍콩의 유명 인사들이 주로 사는 부촌이다. 길 끝나는 바닷가 끝에 틴하우(天后) 사원이 있다. 사원 앞에 틴하우 여신이 해탈의 미소를 건네고 있다. 산정이 아니라 바다와 눈높이가 같다. 1865년에 세워진 도교 사원은 독특한 중국 건축 양식을 전하는 지붕의 곡선이나 조각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원엔 바다의 수호신인 ‘쿤암(Kwun Yum)’과 틴하우를 모시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틴하우 여신은 뱃사람들이 복을 빌면 소원을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믿었다. 또 건너가면 젊어진다는 장수교와 손으로 문지르면 재물복을 준다는 정재신(正財神) 석상, 만지면 3일 안에 인연을 만들어준다는 인연신이 있다. 특히 인연신 앞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떨어질 줄 모른다.
유럽 거리 걷는 건가? 스탠리 마켓과 머레이 하우스
리펄스 베이 해변을 벗어나 찾아갈 곳은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이다.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150여 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장 거리다. 마치 서울의 이태원동과 같은 분위기다. 마켓 거리는 고급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반면 스탠리 베이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확연히 모습을 달리한다. 아기자기한 유럽식 바와 식당, 숍들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세계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어 이국적인 풍치가 연출된다. 아기자기한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한 잔, 파스타, 피자 한 조각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만(灣)’ 형태의 넓지 않은 바다를 따라가면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를 만난다. 옛 센트럴에 위치한 1844년대 식민지시대 건축물을 1991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40만 개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을 분해해서 옮긴 후 재조립했다고 한다. 아직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물은 딱히 멋은 없지만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시대 건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는 레스토랑과 홍콩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머레이 하우스 앞 바닷가 쪽의 정자와 옹기종기 매여 있는 조각배의 풍치에 반한 여행객은 그 순간 긴장을 스리슬쩍 내려놓는다.
홍콩 야경 보고 레이저 쇼 보니 기분 최고, 맥주 한잔 어때?
홍콩 여행에서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는 야경 보는 인기 뷰포인트. 홍콩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서울의 남산타워, 63빌딩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훌륭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야 완벽하게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피크 트램. 1888년부터 긴 세월 동안 가파른(373m)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어느 순간 건물이 거꾸로 서 있는 듯 몽롱해진다. 특히 피크 타워 바로 옆, 사자 정자는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또 승강기를 타고 타워 꼭대기 층인 스카이 테라스로 올라가면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야경을 보는 데에도 피크 타임이 있다. 오후 8시부터 약 20분간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영화 거리와 이어지는 시계탑 근처, 연인의 거리에 마련된 2층 뷰포인트가 명당자리. 바다 건너 홍콩섬의 금융가 건물에서 뿜어대는 광선에 취하는 홍콩의 밤이다. 이런 날, 침사추이 밤거리로 들어가 몽콕 야시장에서 야식을 사먹는 재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Travel Data
교통편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행한다. 2014년부터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30분~3시간 50분 소요.
현지 교통 정보 홍콩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고속전철을 타고 20~30분 만에 중심가인 주룽반도와 홍콩섬에 갈 수 있다. 시내를 여행할 때는 배(스타 페리)와 2층 버스, 전차(트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옥토퍼스 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지하철, 배, 전차, 버스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화폐 단위 홍콩 달러(HKD)를 이용해야 한다.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를 사용할 수 있으나 거스름돈은 현지 화폐인 파타카(Pataca)로 받을 수 있다. 화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음식과 숙박 정보 홍콩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완탕이 유명하고 시장통에만 가도 먹을 게 지천이다. 유명 호텔 숙박은 몇십만원대이지만 5만~8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주룽반도 쪽이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1928년 문을 연 페닌술라 호텔(香港半島酒店)은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로 꼽힌다. 또 4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mandarin oriental Hong Kong)은 미슐랭 스타(Michelin Star)를 받은 호텔로 10개의 레스토랑, 스파 및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70만~80만원대다.
물가 정보 홍콩은 면세가 되는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의류, 가방, 시계 등은 한국보다 다소 저렴하다. 그러나 주류, 담배 등의 품목 몇 가지는 한국보다 가격이 더 높고 세금을 부과한다. 전체를 합치면 홍콩 물가는 서울과 비슷하다.
날씨와 옷차림 정보 홍콩의 12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15.9℃, 평균 최고기온이 20.2℃로 우리나라 가을과 비슷하다. 일교차가 작아 낮이나 밤이나 서늘하고 쾌적하다. 가을 옷 위주로 챙기고 머플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홍콩과 마카오(澳門)는 빼놓을 수 없는 밀접한 여행지다. 홍콩 항에서 뱃길로 40여 분(약 60㎞) 달려가면 마카오다. 또 홍콩과 인접한 도시가 심천이다. 홍콩의 지하철(MTR)이 주룽의 홍함에서 중국 국경인 광둥까지 국철(KCR)로 연장되지만 통과하려면 비자가 필수다. 심천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새로 생긴 신흥도시. 건물들도 깨끗하고 홍콩보다 물가도 싸다. 매우 좁은 도시여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