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떨어지는 나이

기사입력 2017-12-28 15:31 기사수정 2017-12-28 15:31

안부라도 물으려고 선배에게 전화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잠시 있다가 다시 해봤다. 여전히 안 받는다. 요사이 나이 든 티를 좀 내시는 것 같다. 만나면 긴 얘기를 두세 번 되풀이한다. 그럴 때 고민한다. 이걸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닌 척하고 끝까지 다 들어야 하나.

전화가 왔다. 어제 미장원에 갔다가 전화기를 두고 와서 오늘 가서 찾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고 했다. 흔한 일이다. 어떤 이는 외출하려면 집에 서너 번씩 들락거려야 한다고 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는 돋보기를 놓고 나와서, 두 번째는 안약을 놓고 나와서, 세 번째는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도로 놓고 나와서 들어갔단다. 그럴 때 마누라가 쳐다보지도 않는다 했다.

특히 가방을 바꾸면 실수하기 쉽다. 무기를 다루듯 다 챙겨 넣어야 한다. 교통카드와 지갑, 볼펜과 돋보기, 손수건과 휴지, 화장품과 핸드로션, 전화기와 보조배터리 등. 그래도 안경집은 있는데 돋보기가 없다든지 하면서 사고를 꼭 친다. 뭔가 잊어버리고 외출하면 종일 불편하고 힘이 없다.

며칠 전 연탄배달 봉사 후 보람찬 일을 했다는 기쁨으로 기분 좋은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 후 차를 마시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는데 그중 몇 사람은 집이 멀다 하면서 먼저 가겠다고 했다. 차를 주문할 때 어떤 분이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식당에 가보겠다며 일어섰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왔는데 테이블에 전화기 두 개를 내려놓았다. 식당에 갔더니 주인이 하나 더 주더라는 것이다.

마침 전화기에 카드가 꽂혀 있어 이름을 보니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전화기가 잠겨 있어 집 전화도 알 수 없고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찾으러 올지도 모르니 식당 주인에게 우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식당에 전화하니 주인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핸드폰을 찾으러 왔다가 허탕치고 돌아가려는 사람을 불러 세웠던 것이다.

그가 찻집으로 와서 하는 말은 이랬다. 전철역에 도착해서 교통카드를 찾으니 전화기가 없어 식당으로 다시 갔다가 핸드폰을 다른 사람이 찾아갔다고 해서 걱정하며 돌아서던 차에 마침 전화를 받게 된 것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깜빡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도 그때마다 그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거나 자존심 상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주변 사람이 재미있어하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는 실수이기 때문이지 자신이 자유롭기 때문이 아니다. 늘 주의해야겠지만 실수를 너무 수치스러워하면 자연스럽게 늙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어서야 공부도 때가 있구나 실감했다. 나이가 들면 공감 능력도 떨어진다. 공감은 훈련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타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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