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둔 86세대는 걱정이 많다. 우선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다는 점이 공포스럽다.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신체적 변화도 두렵다. 일만 열심히 했던지라 은퇴 후 닥쳐올 방대한 시간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막막하다. 이런 그들을 위해 일하는 은퇴자 컨설턴트가 있다. 같은 고민을 공유하기에 그의 자산관리뿐만 아니라 인생 2막 설계 서비스는 호응도가 높다. 동년배 친구와 강사, 컨설턴트를 넘나들며 고객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돕는 86세대 이관석 신한은행 은퇴솔루션 컨설턴트를 만났다.
이관석 컨설턴트는 명예퇴직한 회사에 재취직한 케이스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실제로 은퇴해본 자산관리 경력자가 필요하다는 은행장과 퇴직연금사업그룹장의 판단으로 이뤄진 일이다. 명퇴 전 자산 규모 50억 이상 초고액 자산가들의 자산관리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전에 비해 보수도 적고 업무량도 소일거리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일은 만족스럽다. 그간 해왔던 업무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일할 수 있어서 현재 맡고 있는 ‘은퇴 자산관리 컨설팅’은 앞으로 발전할 유망 분야를 개척한다는 자부심도 있다.
무엇보다 은퇴를 앞둔 동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차다. 일대일 은퇴 컨설팅을 진행할 때면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을 우선시한다. 솔루션 제공은 그 다음 일이다. “본인은 은퇴 후 일터를 떠나 여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데 백세 시대이니 무조건 일하라고 한다거나, 계속 일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준비가 잘 되어 있으니 일터를 떠나 여행하고 놀러 다니라고 조언한다면 듣는 사람 마음이 편할까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이미 은퇴를 경험해본 데다 숱한 컨설팅 경험으로 다져진 그다. 이관석 컨설턴트는 1년째 하고 있는 컨설팅과 강의가 마냥 즐겁다.
“86세대, 수혜자이자 낀 세대”
그가 평가하는 86세대는 고도성장의 수혜자이자 자식 부양을 받지 못하는 낀 세대다. 어릴 적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경제·사회적 신분 상승이 가능했고, 집도 한 채씩은 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누렸다는 것. 하지만 정호승 시인이 말했듯 누구나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는 비슷하다. 86세대는 부모를 부양해야 하지만 자식에게는 부양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그런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단연 건강이다. “나이 50이 넘어가면 몸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 자리의 대화 주제는 거의 대부분 건강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아졌는지, 그래서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무엇이 효과가 좋았는지 등을 얘기해요. 서로 가진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죠.”
건강 다음은 전혀 달라질 인생 2막에 대한 걱정이다. 장수는 축복이라는 것도 점차 옛말이 되어가는 시대, 요즘 86세대는 ‘오래 사는 위험’에 대해 고민이 많다. 은퇴 후 40~45년을 살아가야 할 이들의 고민거리를 한 가지씩 추려내니 무려 다섯 가지나 된다. 첫째 유병(有病)장수, 둘째 무전(無錢)장수, 셋째 무업(無業)장수, 넷째 독거(獨居)장수, 마지막으로 투쟁(鬪爭)장수다. “돈 걱정 없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오래 살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 걱정하는 것이지요.”
고객들의 고민 대부분은 그도 공감하는 바이나, 무전장수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건강만큼이나 노후생활비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과도한, 어찌 보면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매달 받던 월급은 끊기고, 다달이 지급되는 국민연금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우니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과도한 걱정이에요.”
2018년 통계청이 발표한 은퇴한 노부부 월 적정생활비는 283만 원, 최저생활비는 197만 원이다. 그간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는 국민연금에 더해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퇴직연금제도를 이용하면 충분한 노후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퇴직연금을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했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므로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은퇴자 자산관리 컨설팅에 나설 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찾지 말고 연금으로 수령하라는 것. 세금 절세는 물론 금융소득종합과세, 건강보험료 등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은퇴자가 빠지면 안 될 4대 크레바스
크레바스(Crevasse)란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고 깊은 틈이다. 한번 빠지면 구조되기 어려워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지형으로, ‘소득 크레바스’나 ‘연금 크레바스’ 등 경제·사회적 위험 요소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관석 컨설턴트는 컨설팅, 은퇴자 대상 강의에서 4대 크레바스에 대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배우자 크레바스’는 은퇴한 남성들에게 특히 위험한 크레바스다. 은퇴 후 집에서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칫하다 크레바스에 빠져 이혼하게 되면 앞으로의 노후가 암담해지는 것은 물론, 살아온 인생 자체가 허망해지기 쉽다.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를 보세요. 최근 배우자 크레바스에 빠져 그가 모은 재산이 반토막 나고, 그간의 명성에도 먹칠을 하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는 자식 크레바스다. 자신의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에도 자식의 유학, 결혼, 사업 자금을 대다 노후가 불행해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지원해주라고 말한다. 과도하게 지원하다 노후 자금이 축나서 훗날 부양 부담을 지우는 것보단,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두 아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법적으로 성인인 자녀에게 비과세로 증여할 수 있는 한도는 5000만 원입니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미리 말했지요, ‘너희 결혼할 때 5000만 원씩 주겠다. 단, 어떠한 부양도 받지 않겠다’고요.”
세 번째 크레바스는 사업이다. 은퇴하는 사람 중 다수가 재취업이나 창업을 꿈꾼다. 현금 흐름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건 재취업이지만, 퇴직금이라는 목돈을 갖고 있는 이들은 창업의 유혹에 곧잘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그는 창업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에 하던 일이 있는데 고작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느냐며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직원이나 은행원, 군인, 공무원, 교사처럼 세상사에 비교적 적게 노출된 이들이라면 더더욱 피해야 해요. 생각보다 손실이 나기 쉽고, 그 손실을 메우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크레바스는 투자다. 은퇴 자금으로 주식, 부동산 외에도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하며 우려를 표했다. 제대로 된 지식 없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큰 손실을 입고 그 충격에 건강까지 해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가 추천하는 보편적인 투자 방법은 ‘100-나이 투자법’이다. 숫자 100에서 현재 나이를 뺀 숫자의 비율만큼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예금이나 TDF를 활용해 안정적인 운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나이가 60세라면, 100에서 60을 뺀 40%만큼만 투자하고 나머지 60%는 예금에 넣어두는 식이다. 사람마다 투자 성향이 다르므로 각자에게 맞는 투자법이란 가지각색이기 마련이나, 그는 변동성이 커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을수록 소액만 투자할 것을 권한다.
자산관리 컨설팅 외에 비재무 은퇴 컨설팅도 맡고 있는 그는 고민하는 86세대에게 다양한 조언을 건넨다. 세 가지 이상의 취미를 만들어둬라, 동호회나 도서관 등 일정하게 외출할 장소를 만들어둬라 등등.
그럼에도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을 꼽으라면 역시나 건강이다. 여태껏 현업에 매진하느라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86세대가 인생 2막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돈이든 취미든,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시기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건강이 우선이고, 그 다음 노후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세요. 노후에 월급처럼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을 마련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많은 사람들이 건물주가 되어 월 임대수익으로 노후를 보내는 삶을 꿈꾼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건물주를 꿈꾸는 세상이다. 하지만 평생 월급을 모아도 건물 한 채 사기가 어렵다. 이에 최근에는 건물을 나누어 사는 방식인 ‘리츠(REITs)’가 주목받고 있다. 1000만 원 어치의 건물 지분을 사면 그만큼의 월세를 받아가는 개념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지난해 91조 원의 사상 최대 기금 운용 수익을 내면서 자산배분 방식에 관심이 모아졌는데, 그 중 글로벌 리츠 투자펀드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저금리시대, 노후자산관리의 수단 중 하나로 떠오르는 리츠에 대해 알아보자.
주식처럼 사고파는 부동산
은퇴 이후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시니어들은 보유자산을 가지고 추가 수익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재테크를 할 수밖에 없다. 은행 예적금은 저금리시대에 메리트가 없고, 채권투자 역시 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아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이야기하지만 변동성이 큰 주식은 원금보전이 어렵기 때문에 비중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이에 원금을 지키면서도 시중금리 이상의 수익을 내는 방법으로 ‘리츠’가 떠오르고 있다.
리츠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으로 부동산이나 부동산 관련 증권에 투자해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이다. 매년 배당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해야하고 실물자산인 부동산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예금이자보다 수익률이 높으면서도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기준 1500조 원에 달하는 미국 리츠 시장에는 아주 다양한 상품이 존재하고 마치 연금처럼 매월 수익을 받는 상품도 있지만, 국내에는 도입된 지 얼마 안 돼 연 두 번의 배당을 받는 리츠가 대부분이다. 국내 리츠 배당수익율은 연 5~6% 수준이며 2021년 기준 우리나라에는 316개의 리츠가 운용되고 있고 총 자산은 75조 원을 넘어섰다.
노후자산관리에 있어서 ‘현금성 확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부동산을 실물로 보유하고 있을 경우 매도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현금화가 쉽지 않지만, 리츠에 투자를 한다면 현금화가 쉬워진다. 또 수익률을 생각하면 은행 예금은 너무 적게 느껴지지만 주식, 채권 등의 투자가 부담스러운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이다.
리츠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주식처럼 사고 파는 상장 리츠다. 리츠는 담는 부동산에 따라서 오피스리츠, 리테일리츠, 물류리츠, 카지노리츠, 교도소리츠 등으로 불린다. 소수의 투자자들이 모여서 만든 리츠는 사모리츠라고 하는데, 아무나 살 수 없다. 사모펀드와 같은 개념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아 진행하는 리츠는 공모리츠이고, 이 리츠가 주식 시장에 상장되면 공모상장리츠라고 불린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공모상장리츠는 18개로, 올해에는 5개의 리츠가 상장 준비를 하고 있다. 2020년 7개에 불과했던 상장리츠는 1년 새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배당으로 월세 받기
리츠의 가장 큰 장점은 소액으로도 부동산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억짜리 건물을 사기 위해 20명이 모여 1000만 원씩을 투자하면 하나의 건물을 살 수 있다. 국내 공모상장리츠의 경우 1주 당 만 원 이하로 거래되는 것들이 많아 만 원으로도 건물 투자를 할 수 있다. 상장리츠의 경우 월세의 90% 이상을 주주에게 배당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각 리츠사는 매 월 받은 월세를 모아두었다가 일 년에 두 번을 배당금 형태로 지급한다.
리츠 상품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주식 시장에서 거래가 되기 때문에 변동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주가에 따라 배당률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모가 5000원의 리츠 배당률이 연 5%로 설정된 경우 주가가 7000원으로 오를 경우 연 배당 수익률은 3.5%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 경우에는 총 배당 가능 이익이 올라야 하기 때문에 해당 리츠가 다루는 건물들의 임대료 수준, 공실률, 대출 이자, 부동산 가격 등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건물주를 꿈꾸지만 사실 건물을 관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건물유지보수 관리도 해야 하고, 전기세나 수도세 같은 각종 공과금 관리, 건물에 관한 세금 관리, 날짜가 각기 다른 임차인들의 월세 수납까지 할 일이 꽤 많다. 리츠는 중간관리자의 형태로 이 모든 일을 대신 해주는 개념이다. 리츠사가 실질적인 관리를 하기 때문에, 리츠 상품을 고를 때는 각 리츠가 투자하고 있는 건물의 종류도 잘 살펴봐야 한다. 대부분 오피스, 물류, 주유소 등을 담기 때문에 평소 잘 몰랐던 건물들이 많아 충분한 공부가 필요하다. 또 리츠사의 건물 운용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새 건물을 사서 유상증자를 하거나 건물을 매각해 수익을 내기도 하고 대출 관리도 배당률에 영향을 주는데, 이 모든 과정을 리츠가 전담하는 만큼 투자자도 각 리츠의 특성을 따져봐야 한다.
물론 투자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은 결국 배당수익률인데, 배당을 받으면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절세 부분도 고려하면 좋다. 이를테면 ISA에서 리츠 상품을 담을 경우 배당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절세상품을 활용할지도 중요한 부분이다.
또 리츠의 경우 월세로 배당을 받는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일 년에 두 번 배당금을 받는 형태이기 때문에 정말 월세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는 리츠사마다 배당 시기가 다른 점을 활용해 여러 군데 리츠 상품을 담아두면 매 월 배당을 받아 마치 월세를 받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렇게 국내에 개별 상장된 리츠도 좋지만 국내 펀드나 국내 상장 ETF, 미국 상장ETF를 통해 글로벌 리츠 상품들을 간접 투자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리츠 보다는 해외 리츠 시장이 더 큰 만큼 해외 리츠에 간접투자 하는 방법들을 추천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리츠 투자의 경우 달러로 상품을 사고 달러로 배당을 받기 때문에 환헤지 여부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점도 고려사항이다.
노후자산관리의 핵심은 ‘자산을 어떻게 배분하는가’일 것이다. 여러 투자처 중 하나로 리츠를 일부 배정해두고 건물 간접투자를 통해 월세를 받아 보는 건 어떨까?
우리나라 인구의 평균 수명은 82.7세다. 더불어 오는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이에 은퇴 후 노후대비의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는데, 실버 재테크 방법 중 하나로 '퇴직연금'이 꼽힌다.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퇴직금)를 회사가 아닌 금융회사(퇴직연금사업자)에 맡기고 기업 또는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운용하여 근로자 퇴직 시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지난 2005년 근로자들의 노후 소득보장과 생활 완정을 위해 도입됐다.
일시금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퇴직금제도를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해 노후 소득재원 확충을 통한 노후생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초저금리 시대이기 때문에 퇴직연금을 단순히 계좌에 쌓아두기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퇴직연금은 무엇이고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지 좀 더 알아봤다.
퇴직연금, 다양한 노후설계 가능하게 해
퇴직연금이 최초 마련된 배경은 퇴직금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어려워지면, 회사 측에서는 퇴직금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고, 퇴직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생기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퇴직연금이라는 제도가 마련됐다.
퇴직연금은 퇴직급여가 꼬박꼬박 금융회사에 적립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적립금으로 체불 걱정 없이 퇴직급여를 수령하고, 사용자는 부담금 납입금에 대해 법인세(사업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적립금 운용수익으로 사용자 부담은 줄이고, 퇴직급여는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의 운용수익으로 퇴직급여 지급 부담을 낮추고, 근로자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운용수익으로 퇴직급여를 증액시킬 수 있다.
세 번째 장점은 퇴직연금의 가장 큰 장점이다.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회사를 옮기더라도 개인형 퇴직연금제도(IRP)를 통해 퇴직급여를 계속 적립하고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하여 다양한 노후설계가 가능하다.
퇴직연금은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 가능하다. 금융 전문가들은 연금으로 수령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말한다.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으면 연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이 30% 많아진다.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 퇴직소득세를 30% 경감해주며, 발생한 세금은 연금을 수령하는 동안 분할 납부할 수 있다.
여기에 세금을 줄이는 연금 수령 팁이 있다. 퇴직연금은 수령 연령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연금소득세 적용 세율이 69세 이하 5.5%, 70~79세 4.4%, 80세 이상 3.3%로 적용된다. 또한 연금소득이 12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연 1200만원을 초과하면 다음 연도에 다른 소득과 합산해 전액 종합소득세 대상이 된다. 종합소득세 세율은 과세표준에 따라 최대 42%에 달한다.
현재 1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퇴직연금계좌로 퇴직 급여를 받게 돼 있다. 그렇다면 나의 퇴직연금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금융감독원의 '통합연금포털' 사이트는 연금 관련 정보를 모아놓은 곳이다. 공동인증서 등으로 본인 인증을 하면 나의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적립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퇴직연금
퇴직연금의 유형으로는 DB(확정급여형), DC(확정기여형), IRP(개인형 퇴직연금제도)가 있다. 유형별로 차이가 있으니 자신한테 유리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먼저 DB형은 '확정급여형'이라는 말처럼 퇴직금이 고정되어 있다. 회사가 퇴직금을 적립하고 운용도 회사가 직접 운용한다. 운용 손익은 모두 회사에 귀속된다. 퇴직금은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 X 근속연수'로 계산한다.
DC형은 회사가 퇴직금을 적립하고 근로자가 운용한다. 운용 손익은 근로자에게 귀속된다. 이에 퇴직금이 증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감소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임금상승율이 높다면 DB형이, 임금상승율이 낮고 재테크에 자신이 있다면 DC형이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IRP은 소득이 있다면 누구나 자율로 가입할 수 있는 퇴직연금 유형이다. DB·DC형의 퇴직금도 IRP계좌로 받게 된다. 또한 투자형으로 관심이 높은 DC형과 IRP은 투자 수익 이외에도 연말정산 세액공제의 혜택이 있다.
연금 사각지대 해소될까?
2018년 기준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91.4%였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24.0%에 그쳤다. 중소기업 근로자는 대기업 근로자에 비해 노후대비가 취약할 수 있다. 퇴직금 수급권 보호 측면 뿐 아니라 적은 적립금 규모에서 발생하는 퇴직연금 운용의 난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오는 4월 14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가 도입된다. 30인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납입한 퇴직급여 부담금을 모아 공동의 기금을 조성해 운용하는 제도다. 기금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용하는데, 설립 초기에는 외부전문가위탁 운용방식(OCIO) 등이 활용될 방침이다.
더불어 오는 7월 12일부터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된다. 지난해 12월 9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디폴트옵션은 이른바 '퇴직연금 방치 방지 제도'이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일정 기간 적립금을 방치해두면 자동으로 미리 지정해놓은 포트폴리오에 따라 적립금을 굴려주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대부분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의 원리금보장상품 편입 비중은 2018년 90.3%, 2020년 89.3%, 2021년 9월 86.4% 등이다. 이는 운용 책임을 기업이 지는 DB형의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2021년 9월 말 국내 퇴직연금 총 적립금 규모는 266조원이고 이 중에서 DB형은56.9%(151조2000억원)를 차지했다.
때문에 저금리 환경에서 퇴직연금이 사실상 방치됐다는 지적이 나왔고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된 것. 디폴트옵션이 작동하려면 우선 가입자와 사업자가 원리금보장상품이나 TDF(타깃데이트펀드)·혼합형펀드, 스테이블 밸류 펀드, 부동산 인프라 펀드 중에서 하나 이상을 사전에 정하는 계약을 맺어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TDF 투자가 좋다고 추천한다. TDF는 은퇴 목표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주식)과 안전자산(채권) 비중을 운용사가 알아서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다. 주식 비중이 일시적으로 80%까지 올라가도 추후에 위험 비중을 조절하는 만큼 퇴직연금 적립금 전액을 담는 것도 가능하다. TDF와 닮은꼴인 TIF(타깃인컴펀드)도 인기가 많다. TIF는 은퇴 후 쓸 돈을 정기적으로 인출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1억 원의 노후 자산으로 평생 생활비를 받을 수는 없을까? 은퇴 이후의 삶을 안정적으로 설계하는데 있어서 매 월 일정 금액을 받는 연금은 무척 매력적이다. 젊은 시절 노후를 위해 매 월 급여의 일부를 떼어 가입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61~65세가 되어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아니라면 50대에 은퇴를 하는 게 보편적이다. 연금을 받을 때까지 몇 년의 공백기가 생기는 셈이다. 또는 가입 기간이 모자라 60세가 넘어서도 연금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필요한 시점부터 연금을 받을 수는 없는 걸까.
연금 상품은 무척 다양하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상품도 있고 IRP 같은 연금저축이나 연금저축보험 등 사적 연금의 종류도 다양하다. 각 상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연금 지급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이에 최근에는 일시금을 내고 즉시 연금을 수령하는 즉시연금보험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즉시연금보험은 한 번에 보험료를 납입하고 기준 이자를 적용해 그 다음 달부터 매 월 일정액을 연금처럼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미처 연금을 준비하지 못한 5060 자산가들이 주로 가입하는 상품이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노후자산이 있는 시니어도 관심 가져볼만한 상품이다.
즉시연금, 언제 어떻게 받을까?
즉시연금보험 상품은 금리형과 변액형으로 나눌 수 있다. 금리형은 시중금리와 연동하는 공시이율을 적용하는 상품으로 5000만 원까지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안정성 상품이다. 저금리 시대에는 금리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금리형의 경우 매 월 일정 금액을 받는다는 ‘연금’이라는 특징이 가장 잘 반영된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변액형은 채권형 펀드, 주식형 펀드 등에 투자하는 연금이다. 이 경우 이자 기준이 투자 수익률이기 때문에 매 월 받는 연금 금액이 달라질 수 있으며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이다. 연금 상품은 보통 노후 자산으로서 준비하기 때문에 수익률보다 원금보전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어 최근에는 원금 보증형 변액연금 상품도 나오고 있다.
연금을 받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입자가 살아있는 동안 원금과 이자를 매 월로 나눠 받는 종신형, 약정 기간을 정해 그 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매 월 나눠 받는 확정기간형, 매 월 이자만 받고 만기에 원금을 받는 만기환급형이 있다.
종신형은 내가 낸 금액이나 가입 기간과 상관없이 내가 연금을 수령하는 시점에서 사망할 때까지 받는 연금이다. 예를 들어 65세부터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데 65세 1월에 첫 연금을 받고 2월에 사망한다면 그 이후 연금은 나오지 않는다. 만약 1억 원을 납입하고 연금을 받기도 전에 사망하면 원금조차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종신 연금은 오래 살수록 좋은 상품이며 말 그대로 노후 보장형 상품이다.
확정기간형의 경우 가입 기간을 정해서 받을 수 있으며 만약 그 기간 중 사망할 경우 자녀가 남은 금액을 이어서 받을 수 있다. 만기환급형은 대체로 상속연금이라 불리며 상속을 목적으로 가입하는 사례가 많다. 즉시연금보험의 경우 1억 원까지 비과세가 적용된다.
1억 원으로 월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연금 상품을 활용할 때에는 나의 목적과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평생 매 월 안정자금을 받고 싶은 건지, 일정 기간에 더 많은 연금을 받고자 하는 것인지, 비과세 혜택을 보면서 자녀에게 상속을 하려는 것인지 등을 생각해 상품 종류와 수령 방법 및 기간 등을 설정해야 한다.
특히 보험 상품은 어느 보험사나 운영 수수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도중에 상품을 해지하게 되면 원금에서 수수료를 내고 돈을 돌려받게 되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물론 보험 상품의 경우 노후를 보장한다는 개념이지만, 내가 1억 원의 보험금을 납입했다면 1억 원에 상응하는 보장을 받고 싶은 것이 가입자의 심리다. 게다가 노후 자산이라면 더더욱 원금을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각 연금보험 상품별로 기간이나 조건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금 이하의 금액을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목적에 맞춰 상품 설계를 잘 해야 한다.
1억 원의 자산으로 즉시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안정적으로 상품을 운용하기 위해 금리형에 가입했고 공시이율은 2%, 수수료는 3%라면 월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종신형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지급되는 대신 가입자의 사망 시기에 따라 원금만큼을 보장받지 못할 위험이 있는 상품이다. 이에 보험사에서는 ‘보증기간’을 설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10년을 보증기간으로 설정하면 상품 가입 후 즉시 연금 수령을 시작한 뒤 1년 뒤에 사망하더라도 남은 9년에 해당하는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것이다. 100세 시대가 도래한 만큼 100세 보증 상품 등도 있으며 그 외에 자신이 원하는 보증 기간을 설정해 가입할 수도 있다. 앞서 가정한 조건으로 종신형 상품을 가입할 경우에는 30년 보증 기간을 설정해야 납입한 1억 원에 상응하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가입 연령이 빠를수록 연금 수령 기간이 길어져 연금 혜택을 더 많이 받아볼 수 있다.
확정기간형의 경우 설정 기간이 짧을 경우 원금에 상응하거나 모자라는 수준의 금액을 받을 수 있으므로 공시이율이 2% 수준이라면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을 설정해서 받아야 총 수령하는 연금액이 납입액 1억 원을 넘길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설정 기간이 길수록 월 수령액은 낮아지고 총 수령액은 높아지는 구조다. 위에 가정한 조건으로 10년 확정기간을 설정하면 매 월 약 89만 원을 수령할 수 있으며 10년 간 총 수령액은 약 1억 680만 원이 된다. 또한 상속연금과 종신연금의 경우 비과세 상품이지만 확정기간연금은 과세되는 상품이므로 세금 비율도 고려해 기간을 설정하면 좋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는 금리형으로 들었지만 즉시연금보험을 변액으로 가입할 경우에는 공시이율이 아닌 투자 상품 수익률을 기준으로 계산하게 된다. 만약 연금도 받고 자산 수익률도 높이고 싶다면 변액형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다만 연금 상품이 대체적으로 장기간 보유하는 상품인 만큼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수익률을 내려면 어떤 투자 상품으로 운용되는지에 대해 가입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에 최근에는 원금을 보장하는 변액연금 상품도 나오는 추세다. 하지만 아무리 원금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보험사 운영 수수료나 과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여러가지 가입 기간과 조건 등을 잘 살펴보고 가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시연금보험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NH농협생명,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교보생명,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에서 잇달아 연금 미지급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가입자가 상품 가입 시 들었던 설명보다 적은 연금을 받았다며 제기한 소송인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입 기간 설정에 따라 총 연금 수령액이 연금에 못 미칠 수 있고, 운영비나 세금처럼 각종 공제 내역들이 있기 때문에 즉시연금보험 상품에 가입할 때에는 연금이 어떻게 산출되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평생 모은 노후자금으로 마련하는 연금인 만큼 현명한 설계로 안정적인 노후를 설계해 보자.
류 모 씨(57세)는 65세가 되는 8년 후 은퇴할 생각이다. 필요 노후자금을 계산해보니 지금까지 준비한 연금으로 노후에 큰 경제적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좀 더 넉넉한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은행 예적금보다 수익성 높은 투자가 필요하다. 적합한 투자처를 물색하던 류 씨는 TDF(Target Date Fund)라는 용어를 접하고 관련 상담을 요청해왔다.
TDF란?
TDF는 Target Date Fund의 머리글자인데, 타깃 데이트(Target Date)는 ‘목표 시점’이다. 즉 TDF는 ‘목표 시점’을 정해놓은 펀드다. TDF에서 목표 시점은 보통 ‘은퇴 예상 시점’을 말한다. 은퇴 시점을 목표 시점으로 하는 만큼 TDF는 장기 투자를 전제로 한다. 현재 시점부터 목표 시점까지 투자자의 생애에 걸쳐 자산 배분이 이루어지는 펀드라는 의미에서 TDF를 ‘생애 주기 펀드’ 또는 ‘라이프사이클 펀드’라고 하기도 한다. TDF는 생애 주기에 맞춰 미리 정한 자산 배분 기준에 따라 펀드 내 자산 비중을 조절한다. TDF는 장기 투자 외에 분산투자가 또 하나의 특징이다. TDF에는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자산을 편입하고 투자 지역도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까지 영역을 넓게 가져간다. TDF는 장기 투자를 전제로 하는 만큼 초기에는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기대수익이 높은 자산의 비중을 높게 가져간다. 그러다가 목표 시점이 가까울수록 주식 같은 위험자산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채권 같은 안전자산의 비중을 높인다.
TDF의 목표 시점, 빈티지
와인 애호가 중에는 와인을 고를 때 해당 와인의 빈티지(Vintaget)를 따지는 사람이 있다.
와인의 빈티지는 그 와인을 만든 포도를 수확한 해를 말한다. 와인업계에서 처음 빈티지를 활용한 목적은 특정 해에 악천후로 인해 포도의 질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와인의 맛이 실망스러울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여하튼 빈티지는 와인이 만들어진 연도, 즉 출생연도라고 할 수 있으며 와인을 고를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TDF에도 빈티지가 있는데, 자신에게 맞는 TDF를 고르기 위해서는 빈티지를 확인해야 한다.
TDF 상품명에는 2015, 2020, 2055와 같은 숫자가 포함되어 있다. 이 숫자가 TDF의 빈티지다. 그럼 TDF의 빈티지도 와인의 빈티지처럼 TDF가 만들어진 해일까? 그렇지 않다. TDF의 빈티지는 타깃 데이트, ‘목표 시점’을 말한다. TDF에 2045라는 숫자가 있다면 이 TDF는 2045년을 ‘목표 시점’(은퇴 예상 시점)으로 생각하는 투자자를 위한 펀드라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은 보통 5년 단위로 새로운 빈티지의 TDF를 출시하고 있는데, 현재 2015년부터 2055년까지의 빈티지를 가진 TDF들이 판매되고 있다. 현재 57세인 류 씨가 8년 후인 65세를 목표 시점으로 한 TDF에 투자하고 싶다면 빈티지가 2030인 TDF를 선택하면 된다. TDF의 빈티지를 쉽게 계산하려면 출생연도(1965년)에 은퇴 예상 연령(65세)를 더하면(2030) 된다.
TDF의 엔진, ‘글라이드 패스’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는 미리 설정되어 있는 비행기의 하강 경로를 말하는데, 일종의 미끄럼대와 같다. TDF는 투자 초기에 위험자산의 비중이 높고 목표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위험자산의 비중이 줄어든다. TDF의 이런 자산 배분 형태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 궤도와 모양이 비슷해서 글라이드 패스라는 명칭을 차용하고 있다.
모든 TDF는 저마다 고유의 글라이드 패스를 갖고 있다. TDF의 펀드매니저들은 글라이드 패스에 따라 전략적 자산 운용을 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전술적으로 편입 자산을 조정한다. 글라이드 패스는 해당 TDF 자산운용사의 운용 철학과 노하우가 담겨 있는 TDF의 핵심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TDF 투자자는 해당 TDF의 글라이드 패스를 보고 향후 자산 배분 전략을 예상한다. TDF 출시 초창기 우리나라 자산운용사들은 글라이드 패스를 해외 자산운용사에 위탁하거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자문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에도 고유의 글라이드 패스를 갖고 있는 자산운용사들이 나오고 있다.
퇴직연금을 활용한 TDF 투자
류 씨처럼 직장생활에 바빠서 본인의 투자를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사람은 간접투자가 적합하다. 특히 목표 시점이 정해진 재무 목표가 있는 경우에는 TDF를 고려해볼 만하다. TDF는 별도의 상품으로 가입할 수도 있지만, 퇴직연금(DC, IRP) 등 연금계좌를 통해 투자할 수도 있다. 대신 퇴직연금 계좌를 통해 TDF에 투자하려면 주식 비중을 고려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전체 적립금의 70%까지만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주식 비중이 40%가 넘는 혼합형 펀드와 주식형 펀드는 위험자산에 해당한다. TDF는 목표 시점이 먼 경우 대부분 주식 비중이 40%가 넘어 위험자산에 해당한다. 하지만 2018년 9월 ‘적격 TDF’라는 개념이 생겨 퇴직연금 적립금 전액을 TDF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적격 TDF’가 되기 위해서는 펀드 자산 중 주식 비중이 80% 이내여야 하고 목표 시점 이후 주식 비중은 40% 이내여야 한다. ‘적격 TDF’의 요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적격 TDF 요건
•투자 목표 시점이 다가올수록 위험자산 투자 비중 낮춤
•투자 목표 시점은 펀드 설정일로부터 5년 이후(펀드명에 표시)
•주식투자 한도는 80% 이내, 투자 목표 시점 이후에는 40% 이내
•투자적격등급 외 채권투자 한도는 펀드 총액의 20% 이내, 채권 투자액의 50% 이내
2020년 10월 미국 프로농구 NBA가 기존에 판매하던 트레이드 카드에 NFT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15초가량의 하이라이트 영상에 NFT를 적용해 판매하는 것인데 현재까지 누적 판매액은 1조 원을 넘겼으며, 인기 카드의 경우 수억 원에 거래되고 있다. 2020년 전 세계 NFT 시장 규모는 2876억 원으로 전망됐으나 2021년에는 약 11조 8700억 원에 달하며 몇 십 배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복제할 수 없는 토큰
NFT는 해킹이나 복제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 중 하나로 Non Fungible Token의 약자다. 우리말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고 해석한다.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코드값을 부여하고 블록체인에 기록한 토큰이다. 그리고 각 토큰은 고유하기 때문에 상호 교환이 불가능해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고 불린다.
대체 가능한 토큰(Fungible Token)으로는 많이 알려진 비트코인, 이더리움, 클레이튼 등의 가상화폐가 있다. 1비트코인은 1비트코인과 교환이 가능해 대체 가능하다.
조금 더 쉽게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에는 아주 많은 만 원권이 있고 각 만 원을 구분하기 위한 일련번호가 적혀 있지만, 우리는 한 장의 만 원과 다른 한 장의 만원을 같은 가치로 인식하고 교환한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만 원에 NFT를 적용한다면 시중에 있는 그 어떤 만 원과도 교환할 수 없다. 일련번호와는 또 다른 복제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입히는 행위다.
NFT는 글, 사진, 음악, 그림과 같은 디지털 자산이라면 무엇이든 적용 가능하다. 심지어는 자신의 방귀 소리를 녹음한 ‘소리’에 NFT를 적용해 판매한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NFT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은 ‘크립토펑크’다. 캐나다 개발자 두 명이 1만 개의 토큰을 만들어 각 토큰에 특이한 디지털 아이콘을 부여했다. 이 토큰을 셀럽들이 구매하면서 NFT 아트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한편 ‘비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작가가 13년 동안 매일 만든 5000개의 디지털 작품을 타일처럼 작게 이어 하나로 만든 뒤 NFT를 적용해 ‘Everdays : The First 5000 Days’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작품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021년 3월 800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됐다.
디지털 콘텐츠에 날개를 달다
무명 예술가의 디지털 이미지 파일이 고가에 거래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트위터 창시자 잭 도시는 자신이 가장 먼저 트위터에 작성했던 ‘방금 내 트위터 설정을 마쳤다’(Just setting up my twttr)라는 문장에 NFT를 적용해 판매했다. 이 글은 약 35억 원에 판매됐다.
실물 자산도 아닌 디지털 자산이 이렇게 고가에 거래된다는 사실이 시니어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다. 처음 NFT에 대한 관심은 ‘셀럽들이 투자하는 디지털 자산을 나도 보유하고 있다’는 심리에서 시작되었으며, NFT를 통해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인기를 끌게 됐다. 그동안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해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던 많은 디지털 창작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만드는 NFT
NFT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종이에 사인을 하고 스캔해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 코드값을 부여한 뒤 블록체인에 등록하고 NFT 거래 사이트에 등록하면 내 사인 이미지를 판매할 수 있다. 내가 판매하고자 하는 가격과 로열티를 설정할 수 있으며 저작권 판매 여부도 정할 수 있다. 로열티는 내 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내가 받는 일종의 수수료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NFT는 디지털 작품의 소유권을 사고파는 것을 의미하지만, 만약 원작자가 저작권을 판매한다고 명시하거나 2차 창작 및 이윤 추구가 가능하다고 했다면 NFT 재가공도 가능하다. 또한 실물 작품도 함께 판매할지 여부를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책을 쓰면 나는 원작자가 된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판매되지만 책을 산 사람이 임의로 표지를 바꿔 재판매할 수 없고 내 허락 없이 내용을 각색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샀던 책을 중고로 판매하는 건 가능하다. 책의 소유권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NFT는 코드값으로 원작자를 명시한 작품을 사고파는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작품의 진의를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자산에 고유성을 부여하며, 원작자가 저작권 판매를 명시하지 않은 이상 해당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만 거래할 수 있다.
가상화폐인 OO코인에 투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NFT 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NFT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누군가의 NFT를 사서 높은 가격으로 재판매하거나, NFT 기반 가상화폐에 투자하거나, NFT 관련 주식에 투자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NFT 투자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가상화폐처럼 NFT 시장도 과열되어 거품이 있다고 말하지만, 차기 투자 시장으로 떠오른 것만은 분명하다. 실물 지폐가 플라스틱 카드 속으로, 실물 카드가 모바일 속으로 들어가는 세상에서 NFT가 우리의 일상 어디까지 영향력을 가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기본만 하자. 수없이 하는 말이지만 정작 지켜지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만큼 기본을 지키기도 어려운 세상일지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 기본을 지키는 이는 도리어 빛이 난다. 김진숙(71) 이사가 그렇다. 모래에 덮인 금이 시간 지나 점차 드러나듯, 나서서 설명하지 않아도 가치를 알아주는 이 말이다.
방송인 홍진경의 어머니 김진숙이 품질관리이사를 맡고 있는 주식회사 홍진경은 ‘더김치’를 비롯해 만두, 다시팩, 된장 등 양념류를 판매하는 식품 회사다. 대물림한 방식으로 담가 먹던 김치 판매를 시작으로 다른 상품들을 내놓으며 18년째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느님, 김치가 맛있어지게 도와주세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 김 이사는 1년 정도 김치를 판매한 적이 있다.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을 지인들에게만 조금씩 팔았던 건데, 이를 눈여겨본 딸 홍진경이 사업 제안을 해왔다. 아예 회사를 차리지 않겠냐는 본격적인 사업 제안이었다.
그는 강하게 반대했다. 망신당할까봐, 딸 이름에 먹칠하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선 나머지 한 달 정도 도망까지 다녔다. “우리 식구 먹는 거야 내가 한다지만 이걸 어떻게 대중 상대로 판매한다고 이러나 싶었어요. 대량으로 만든 김치가 우리 해 먹는 김치랑 같은 맛이 나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죠. 만약 맛이 제대로 나지 않으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나한테 그 어려운 걸 시키느냐고 거절했어요.”
딸은 포기하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쇼케이스라는 걸 해보자. 신사동에 있는 식당 하나를 빌려서 지인과 기자들을 초청하는 거야. 엄마가 찾아오는 사람들 대접할 배추김치랑 총각김치를 맛있게 만들어줘.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 사업을 하고, 맛이 없다고 하면 내가 포기할게.” 김 이사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쇼케이스를 앞두고 김치를 담글 때 매일 기도드렸다. “하느님, 이 김치가 맛있게 익도록 도와주세요. 이거 정말 중요한 겁니다. 이게 잘돼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김치 담그느라 고생하는 주부들 수고도 덜어줄 수 있어요.”
신선한 재료, 굽히지 않는 원칙
행사 당일, 식당에는 돼지고기 수육과 조밥,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김치 본연의 맛을 느끼라고 새우젓은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목 축이는 데 필요한 직접 담근 식혜는 덤. 당시 쇼케이스를 위해 빌린 식당은 홍진경의 지인들로 북적거렸다. 엄정화, 최화정, 이영자 등 홍진경의 연예인 지인들부터 코미디언, 모델, 가수, 작곡가, 당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 잡지사 기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화정은 ‘어머니, 김치 맛이 살아 있어요’라고 했고, 이영자는 ‘엄마, 김치 진짜 맛있어’ 그랬죠.” 모인 사람들 전부 김치가 맛있다며 싸달라고 난리일 정도였다. 미리 소분해 포장해둔 김치를 한 봉지씩 챙겨 보냈고, 그 다음 날부터 신문이며 잡지에 ‘홍진경네 김치 맛있더라’는 기사가 잔뜩 실렸다.
2003년, 그는 결국 딸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서는 주문량을 채울 수 없으니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해내는 주문자위탁생산)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김치 10kg 기준으로 필요한 재료와 김치를 담그는 순서를 세세하게 설명한 레시피를 정리했다. 공장 측에 레시피를 전달하기로 한 미팅 전날 밤, 그는 딸을 불러 앉혀놓고 약속을 받아냈다.
“재료에 돈 쓰는 거 아까워하면 나는 이 일 못 한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집에서 하던 것처럼 좋은 재료로 만들 거고, 어느 공장 어느 사장님이 만들더라도 내가 써둔 이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야 해. 그거 약속해야 엄마는 이 일 할 수 있어. 그랬더니 진경이가 눈을 딱 쳐다보면서 ‘엄마,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그러더라고요.”
처음 계약을 맺은 건 평택의 한 김치 공장이었다. 당시 레시피를 받아든 공장장은 “이거 대박날 수밖에 없겠다”고 했다. 만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조미료랑 설탕이 하나도 안 들어가. 그러니까 성공할 수밖에 없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역할 분담은 확실했다. 마케팅이나 회사를 경영하는 부분은 딸이 맡고, 재료부터 제품 품질 관리, 레시피 관련된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공장과 배추밭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곤 했다. 비 내린 뒤 질척한 배추밭을 얼마나 걸었는지 엄지발톱이 빠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겐 영광의 상처일 뿐이었다. 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인 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직원 수도 몇 명 안 되고 주문받은 물량도 적어 공장 한켠으로 물러나 직원들과 함께 조용히 김치를 버무렸다. 그러나 김 이사의 고집과 원칙이 통했는지, 하루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배가 넘는 양의 주문이 쏟아졌다. “지난주는 200kg, 이번 주는 300kg, 500kg 주문이 들어오더니 그 다음 주는 1000kg을 막 넘어갔어요. 1년 지난 뒤에는 우리 회사 김치부터 먼저 담그고, 그 공장에서 원래 담그던 김치를 자투리 시간으로 넘겨야 했죠.”
주문량이 많아졌어도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다. 김 이사는 품질 관리를 위해 언제든 공장에 찾아와 김치에 쓰일 재료를 살펴볼 수 있고, 양념 맛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잎이 꺾이거나 푸른 이파리 많은 배추는 아예 쓰지 않고, 풀을 쑬 때도 무조건 국산 찹쌀만 고집했다. 배추 한 포기를 그냥 넘기지 않고 모든 배추에 양념이 고루 발리도록 했다. 다른 사업체 김치랑 섞이지 않게 철저히 관리해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김치의 질이 좋으니 주문이 폭주하는 건 당연한 일. 홈쇼핑에서 매진시킨 물량을 감당 못 하니 직접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직원들과 함께 김치를 담갔다. 방송에서 약속한 날짜까지 배송이 완료되지 않으면 소비자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래하는 공장을 자주 바꾸지 않고 최대한 조율해 계약을 유지하는 이유도 김치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음식의 맛 역시 소비자와 기업 간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신뢰와 신용을 중요시한다. 소비자와의 약속, 직원과의 신뢰, 혹은 공장과의 신용.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려워도 “하던 대로 해요, 순리대로”
좋은 식재료를 판단하는 높은 기준, 재료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웰빙’ 조리법, 회사 직원들의 끈끈한 단합력. 더김치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서 매출은 계속 우상향 곡선만 그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치를 판매하는 회사가 몇 없었어요. 외국에 수출할 만큼 큰 회사랑 전체 판매량으로는 못 견줘도 그때 온라인 판매는 더김치가 1위였어요. 180억, 200억, 220억, 270억, 매출도 쭉쭉 올라갔어요. 주춤할 새가 없었죠.”
인기가 한풀 꺾인 건 3년 전쯤부터다. 연예인들이 직접 브랜드를 세워 판매하는 김치가 시중에 다양해지자 자연스레 매출 곡선이 꺾인 것이다. 다양한 회사,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제품들이 많아지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전에는 김 이사 혼자 혹은 딸 홍진경과 함께 홈쇼핑에 출연하는 일이 잦았지만, 최근 몇 년은 홈쇼핑에 베테랑 방송인 홍진경만 출연하고 있다. 타사 김치 매출을 따라잡기 위한 맞수다.
김 이사는 요즘 ‘혼자 홈쇼핑에 출연해도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방송 출연에 유튜브 콘텐츠 기획 및 촬영, 홈쇼핑 출연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을 걱정하는, 영락없는 엄마 마음이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기보단 하고 있는 식품에 집중하려고 해요. 하고 있는 걸 잘 지켜내자는 마음이 커요. 제품 하나 출시하기까지 레시피 정리하고 필요한 재료 하나하나 찾느라 몇 년은 걸리거든요.”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새로운 제품을 함께 내보자는 제안이 수없이 들어온다. 육수를 간편하게 우려낼 수 있는 ‘더다시팩’을 출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리 정해둔 출시일 이전에 경쟁사에서 비슷한 제품을 먼저 내버리는 허망한 일도 겪었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당황하고 힘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공정을 마무리했다. 예정대로 출시된 더다시팩은 좋은 재료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아 지금도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처음 매출 부진을 겪을 때 걱정한 건 사실이에요. 그때 아들이 ‘우리 순리대로 해요.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니까, 너무 남을 쫓아가려고 하지 말고 하던 대로.’ 말해줬는데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자식들에게 배운 기분이었죠.”
조용한 응원이 만든 빛나는 것들
유명 방송인의 엄마라고 다른 어머니와 뭐가 다를까. 그는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워낙 통통 튀는 성격인 딸이 어릴 때는 마음 놓을 새가 없었다. 하지만 딸을 지켜봐 온 엄마의 마음에는 언제나 신뢰가 굳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진경이 유튜브에서도 그랬어요. 누나가 갖고 있는 내공은 우리 가족들만 알고 있다고. 그게 정말 맞는 말이에요. 학교 공부는 안 했어도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하고 명석하거든요.”
TV 방송부터 넷플릭스 예능, 유튜브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딸을 보는 요즘은 감사하기만 하다. ‘우리 딸의 진가를 세상이 알아주는구나’ 싶어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든다.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유튜브 채널에 달리는 댓글도 전부 읽는다. 구독자 수만 100만 명을 넘길 만큼 인기 있는 데다 댓글엔 적재적소에 터지는 멘트, 짜임새 있는 영상 기획력 등 칭찬 일색이라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느님께 매일 기도했어요. 우리 아이에게 지혜를 주세요. 방송에서 빛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맡은 방송들 전부 다 빛나게 해주세요. 요즘은 딸이 그래요. ‘엄마가 맨날 기도했잖아. 그 기도대로 되고 있는 것 같아.’”
일이 바빠도 모녀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다. 딸이 출연한 방송 모니터링 후 칭찬은 필수다. 어느 부분이 좋았다고 콕 짚어주기도 하고, 재능은 항상 네 안에 있다며 북돋아주는 말도 한다. 아낌없는 응원이 홍진경과 라엘 모녀 특유의 솔직 당당한 매력을 자아냈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열었던 가족회의도 구김살 없는 성격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로 해결하는 시간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큰 소리를 내거나 험한 말 오가지 않고도 두 아이를 바르게 키워낼 수 있었다.
그는 엄마와 사업인으로서의 삶 중 무엇 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힘든 때도 많았지만 매사에 즐겁게 임했다. 일하면서 항상 나 아닌 가족, 지인,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간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염원한다.
“배추나 무 농장에 가보면 일해주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그래요. 용돈벌이 하면서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저희는 좋은 재료 받아 좋은 음식 만들 수 있어 좋고, 어르신들은 일거리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어 좋고. 아무리 돈 버는 기업이라도 저희만 잘 돼서는 안 되잖아요.”
그는 앞으로도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상과 직업, 신앙을 굳이 구분하진 않는다.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해서, 지금 당장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시간 지나면 진가가 드러나는 사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부연하여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고개 끄덕이는 사람 말이다. 그가 키워낸 아이들이 그랬고, 담그는 김치가 그렇듯. 그가 소망하는 일을 이룰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증여는 가족 간 경제적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러나 잘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증여한다면 추후 증여세 면제 한도를 넘어 ‘세금 폭탄’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생활과 관련해 증여가 이루어지는 경우, 과세 대상과 비과세 대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증여는 한쪽 당사자(증여자)가 대가 없이 자신의 재산을 상대방(수증자)에게 수여하는 계약이다. 한편 수증자는 증여받은 금액에 대하여 증여세를 낼 의무가 있다. 부모 자식 간 증여는 어떨까? 세법은 자녀가 성인일 경우 5000만 원, 미성년자일 경우 2000만 원의 공제(10년간 합산)가 적용된다. 따라서 10년마다 자녀에게 위 증여재산공제액의 한도 내에서 증여할 경우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증여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가 쌓여 10년간 누적 금액 5000만 원이 넘어가면 넘은 금액부터 과세표준에 따라 세율을 적용한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의 학자금이나 생활비를 대주거나, 결혼 비용을 지원하는 등 생활과 관련된 경우도 과세 대상일까? 우선, 민법상 부양의무가 있는 자녀에게 교육비 또는 생활비로 이체하는 금액은 비과세 대상이다. 직계혈족 사이에는 함께 살고 있지 않더라도 부양의무가 인정된다. 해외에서 공부하며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아들 가족에게 부모가 보내준 돈이 생활비로 인정돼 증여세가 비과세된 경우도 있다.
대신 세무조사에서 비과세로 인정받으려면 이 금액이 실제로 생활이나 교육 목적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 생활비나 교육비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도록 각종 영수증 등 증비서류를 챙겨놓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생활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받은 돈을 모아 예금·주식·부동산 등 재산 취득에 사용하면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생활비로 받은 돈 중 사용하고 남은 금액으로 투자해도 마찬가지다.
또한 자녀의 직업, 재산 등을 보아 본인이 직접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증여세 과세 대상에 해당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경제력이 없는 스무 살 자녀는 학자금을 지원해도 세 부담이 없지만, 이미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경제력이 있는 서른 살 자녀는 학자금을 받을 경우 증여세 납부 대상이 된다. 조부모가 손자에게 대학 입학 축하금을 지급하거나 생활비를 보내주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 증여에서 제외되는지 여부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달렸는데, 아버지가 소득 수준이 낮아 부양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보낸 생활비에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는다. 반대로 아버지가 소득 수준이 높은 상황임에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돈을 보냈다면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결혼하는 성인 자녀의 혼수나 결혼 비용을 지원할 때는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으나, 고가의 차량이나 귀금속 등을 제공하면 증여세가 과세될 수 있다. 신혼집 마련을 이유로 전세자금을 지원하거나 주택을 사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과세 대상이다. 결혼식에서 받은 축의금의 경우 누구의 명의로 들어온 돈인지가 중요하다. 부모 앞으로 들어온 축의금을 자녀가 사용한다면 증여가 되므로 증여세를 내야 한다. 결혼 당사자인 자녀의 손님이 낸 금액으로 명확히 판단되지 않는 축의금은 혼주인 부모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본인 앞으로 들어온 돈은 본인이 직접 쓰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상속증여 전문가 박병곤 회계사는 SBS Biz ‘경제현장 오늘ʼ에서 “가족 간 금융 거래를 할 경우 그 성격을 분명하게 정의 내려서, 증여받은 것이면 증여세 신고 납부 및 상속세 신고 시 반영해야 한다”며 “생활비나 경조사비 등의 자금 거래에서 사회 통념을 벗어나는 과도한 수준의 경우는 증여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평상시 이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미 연준의 테이퍼링 임박,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중국발 규제 쇼크가 겹치며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팔리지 않는 부동산을 제값보다 많이 받고 빨리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인 홈스테이징에 대해 알아본다.
홈스테이징은 적은 돈을 투자해 집을 최대한 빨리, 더 비싼 돈을 받고 파는 연출 수단이다. 벽을 허물고 구조를 바꾸는 리모델링보다 가벼운 개념이다. 인테리어와도 비슷하지만 홈스테이징은 집을 상품으로서 판매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이 다르다. 기존 가구와 소품을 재배치하고 페인트 색이나 실내 톤을 조정해 실내 공간을 재단장한다. 모든 과정의 핵심은 ‘가성비’다.
홈스테이징은 닷컴 버블이 붕괴한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캐나다에서 틈새 산업으로 등장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낮춘 금리에 부동산 투자 붐이 일었고, 이후 거품이 꺼지며 집을 팔고 싶지만 팔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작은 변화만 줘도 주택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홈스테이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미국에서는 홈스테이징 전문가가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2017년 말 기준 663명이 홈스테이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미주한국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소속 회원 에이전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홈스테이징을 거친 매물이 구매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약 83%의 구매자가 홈스테이징 매물로 미래에 거주할 보금자리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존 스머비 NAR 회장은 “주택 구입 결정에 재정적인 조건은 물론 감정적 영역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스테이징 후 22%의 판매자가 1~5%의 가격 상승을, 7%의 판매자가 11~22%의 가격 상승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홈스테이징은 집을 상품으로서 돋보이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 집을 선택했을 때 미래에 어떻게 살지 상상할 수 있도록 내부를 정리하고 단장한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포컬 포인트(Focal Point)와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고객의 시선을 고려해 이동하는 통로에는 가구나 집기들을 낮게 배치하고, 벽면으로 갈수록 높은 책장이나 수납장, 장식장을 두어 매물이 상품으로서 잘 보일 수 있도록 한다.
인테리어 액세서리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요소다. 쿠션, 화병, 액자, 장식 소품, 캔들, 인테리어 부자재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감각과 센스가 필요한 영역이지만, 집을 처음 방문한 고객의 시선에서 어디에 눈길이 갈지 생각해보자. 액세서리 하나로도 깔끔하거나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 직접 시도하기 부담스럽다면 홈스테이징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TIP] 공간별 레이아웃하는 방법
공간 레이아웃은 가구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배치하는 작업이다. 각 공간별로 어떤 가구를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
1 침실 침대의 배치가 가장 중요하다. 정확히는 침대 매트리스나 이불의 크기를 신경 써야 한다. 침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공간이 넓거나 좁아 보이기도 하고, 적당한 소품을 사용하기 어려운 구도가 나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침대를 한쪽 벽으로 몰아두고 생활하지만, 홈스테이징을 할 때는 방 중앙에 배치한다. 침대를 기준으로 좌우대칭 구조로 배치하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2 거실 거실은 청소, 정리, 공간 연출 상태에 따라 고객의 구매 여부가 확연히 갈리는 공간이다. 좁은 거실이라도 어떤 가구를 어느 위치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더 넓어 보이기도 하고, 이색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거실 레이아웃에는 소파를 주로 활용한다. 소파 배치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홈스테이징에서는 ㄷ자형, L자형, 분산형을 활용한다. 심플하고 현대적인 거실을 원한다면 L자형과 직렬형, 벽난로나 TV가 있는 단란한 거실에는 분산형이 어울린다.
3 부엌 부엌은 트렌드에 따라 레이아웃이 비교적 많이 변화하는 공간이다. 오래된 주택의 부엌은 공간이 작거나 거실과 아예 분리돼 있는 등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레이아웃은 매물에 따라 달라지지만 식사하는 공간 보다 조리하는 공간이 부각될 수 있게끔 연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흔쾌히 하고 싶은 인터뷰는 아니었다 고백하고 시작해야겠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신분 확인이나 팩트 체크가 어려울 수 있고, 독자의 신뢰를 얻기도 힘들다. 게다가 상대는 작가.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상대는 실력을 겨루는 느낌까지 들어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그를 모시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연구해온 부자가 되는 방법이 궁금해서다. 카메라 앞이 아닌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부자들이 고백한 돈 버는 비밀 말이다.
명칭에서 느껴지듯 유령작가, 즉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는 흔한 직업이 아니다. 정치적 영향력이나 정치후원금 등의 이유로 출판기념회가 필요한 정치인의 회고록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성공담, 기업공개를 앞둔 기업가의 자서전 등의 출판물을 집필하는 이름 없는 작가를 말한다. 출판사의 기획의도나 의뢰인의 목적에 맞게 대신 글을 써주고, 본인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 대필 작가이기 때문에 고스트라이터라 불린다.
출판업계의 이름난 구원투수
이 유령작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터뷰 후 그가 어떤 인물인지 확인해야 했다. 사진 속 가면을 쓴 그의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겠지만, 사실 그는 꽤 번듯한, 막 중년이 된 사내다.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의 팀장으로 활동 중이며, 출판계에서는 꽤 이름난 작가로 본인 이름으로 낸 자기계발서도 10권이 넘는다.
그가 고스트라이터가 된 것도 출판사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괴팍한 부자 의뢰인의 등쌀에 못 이겨 다른 작가들이 연이어 쓰러졌을 때 편집자가 그를 찾았고, 단시간 내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글솜씨와 친화력, 빠른 일처리 등의 장점이 그를 곤란할 때마다 찾는 업계의 대표적인 ‘구원투수’로 만들었다. 의뢰인의 성향이나 과거의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습관을 따라 하거나 등장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고집스러움은 그를 롱런하게 했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최근 출간한 한 권의 책이다. ‘히든 리치’란 제목 그대로 숨겨진 부자들을 만나 부를 형성한 과정과 현재 자산의 정도에 대해 노골적으로 물어본 책이다. 그는 과거 유령작가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집필 노트를 오랜만에 들여다보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직장인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저 역시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은 이 세계에서 가정을 지키고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인데, 직장에서의 소득은 충분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니까요.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손에 쥔 것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방법이 있을지, 어떻게 시드머니를 준비할지 고민하던 중 본가에서 대필 작업할 때의 노트를 발견했고,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있게 내용을 엮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단지 과거의 노트를 요약해 끄적인 책은 아니다. 과거 대필해주었던 책 속 주인공이나 그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을 다시 찾아 노크했다. 그러고는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현재 자산은 얼마입니까”, “처음 시작할 때 수중에 얼마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자산가가 될 수 있었습니까”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정성껏 대답해주진 않았다.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성심껏 취재에 응해준 24명의 이야기를 자산 형성의 유형별로 구분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는 책에서 부자의 유형을 일단 아끼고 보는 ‘고전형’, 위험을 무릅쓴 ‘전투형’, 자신의 전문 분야를 기반으로 한 ‘안전형’, 천재에 가까운 ‘변칙형’, 물려받은 자산을 늘린 ‘보수형’, 감을 갈고 닦아 수단으로 삼은 ‘천리안형’으로 분류해 설명했다.
뻔하지만 따라 하기 힘든 비결
그는 이 책을 부자가 되고 싶은 대중을 위한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이야기했는데, 읽어본 소감을 더하자면 부자가 된 사람들의 세밀한 사례집에 가깝다. 그들의 자산 형성 과정이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나온다. 더 매력적인 것은 다양한 부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자산의 규모로 보면 상대적으로 수수한(?) 백억대 부자에서부터 수천억대 자산가의 이야기도 다룬다. 직업이나 자산 형성 과정도 다양하다. 그 과정에서 느낀 공통점은 바로 ‘돈에 대한 욕망’이었다. 모두 남에게 쉽게 지지 않을 만한 욕망의 소유자로 느껴졌다. 작가도 동의했다.
“책 속에 등장한 한 분이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얼마면 무릎을 꿇을 수 있냐? 1만 원? 10만 원? 쉽게 대답하지 못했죠.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라면 1원에도 꿇는다. 돈이 생기는 일인데 무릎 꿇는 것이 무슨 대수냐며 말이죠. 그럼 절을 한다면 얼마를 주겠냐고 되묻기도 했어요. 저울질 따위는 필요 없죠. 다만 작은 돈과 큰돈이 있을 뿐이죠. 돈에 대한 욕망을 바탕에 둔 실용적 사고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기기 힘들어요. 아마 그 과정에서 비리나 부정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겠죠.”
아끼고, 발품 팔고, 돈을 놀게 놔두지 않고,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돈 버는 기본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덕목은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부자가 되는 비결은 이 기본기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아니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사실 책 속 부자들의 자산 모으는 방법은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이에요. 하지만 부자들은 그 뻔한 방법 중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실천했다는 점이 다르죠. 실제로 만나보면 같은 정보를 접하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민감성이나 실천력의 차이가 매우 커요. 저는 이 책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도 ‘나도 도전해야겠다, 나도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길 바랐어요.”
빚투 그리고 재테크
작가는 복권이나 코인에 매달리는 청춘들에게도 조언을 전했다. 최근 경제지를 중심으로 MZ세대라 불리는 20~30대들이 직장을 통한 자산 형성을 기대하지 않고, 코인이나 주식에 매달리는 ‘빚투 열풍’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20대의 복권 구입 비용은 코로나 이전보다 300% 넘게 증가했단다. 그러나 실제 부자들을 만나보면 월급쟁이 부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회가 계층화되고 고착화되었다는 분석이 많죠. 사다리가 치워져 젊은 세대가 계급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를 길이 잘 안 알려져 있을 뿐이에요. 블록체인, 메타버스 같은 첨단 기술의 발전은 젊은 직장인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어요. 사실 이런 첨단 분야는 전통적인 부자들이 접근하기 힘들죠. 정보를 가지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일반인은 호재가 있을 때 삼성전자에 투자하지만 기술과 공정, 소재를 이해하는 사람은 관련주에 투자해 더 큰 이익을 얻기 마련이죠. 마치 용의 머리는 작게 움직이지만 꼬리는 크게 휘청이는 것과 같아요. 기술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능력은 회사 생활에 전념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죠. 또 그들이 근무하는 판교나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어떤 회사가 망해 나가고, 빈자리에 어떤 회사가 들어오는지, 주변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투자의 소재가 될 수 있어요. 옛날처럼 큰 시드머니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최근의 투자 트렌드이기도 하고요. 갈수록 기회도 많아지리라 생각해요.”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마음만은 청년’인 시니어들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의 책을 자세히 보면 직업상담사나 창업 컨설턴트들이 하는 이야기와 맥락이 닿는다.
“은퇴 후 평생 직업이었던 분야를 접고 새로운 분야를 찾아 도전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하지만 성공 확률은 대단히 낮죠. 부자가 되는 방법도 비슷해요. 본인이 직장 다닐 때 잘 알던 해박한 분야에서 더 공부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노력이 더 유리해요.”
흔히 몇 차례 소심한 시도가 실패하는 경험을 하면 재테크 무용론자가 되기 십상인데, 이 책에는 재테크를 통해 부자가 된 여러 사례가 등장한다. 각종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재테크의 전형 같은 부자도 등장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부자가 목표는 아니더라도 재테크는 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큰돈을 벌지 않더라도 재테크는 누구나 해야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부는 팽창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조금씩 부자가 되고 있어요. 모두 다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만 멈춰진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조금씩 가난해지고 있다는 뜻이 돼요. 사회가 부유해지는 것에 맞춰 재테크를 통해 나의 재산을 조금씩 늘려야 소득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요. 재테크는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일이 된 셈이죠. 과거에는 가만히 있어도 시간의 흐름만으로 연공서열에 따라 월급이 오르고 집값이 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관심을 갖고 흐름에 맞춰 함께 달려줘야 해요.”
뒷조사까지… 부자들의 ‘면접’
각 분야의 성공한 명사들을 취재하다 보면 첫 만남은 ‘테스트’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본인을 상대하는 기자의 능력이나 이해도가 어느 수준인지 궁금해한다. 일종의 면접이다. 작가는 “부자들 중 대부분이 그런 테스트를 즐기고, 상대가 대필 작가라면 그 강도는 훨씬 세진다”고 말했다.
“간단히 훑어보거나 몇 마디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테스트’가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도 흔해요. 감당 못 할 만한 행동을 던지고 반응을 보는 경우도 있어요. 약속 시간에 늦는다거나,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하는 식이죠. ‘이거 하면 얼마 버냐’며 묻기도 하고. 또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단답형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부자도 있었죠. 제 뒷조사를 몰래 한 분도 있었어요.”
그 까다로운 면접들을 어떻게 통과했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뿐 다른 비결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저 비굴해 보이지 않게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난 부자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작가는 간단히 유형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부자와 같은 스테레오 타입은 오히려 만나기 힘들다고 그는 설명한다.
“최근에는 젊은 부자들이 많아져서, TV 속 회장님 같은 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자린고비 같은 타입이 있는 반면, 설렁설렁 있는 대로 벌고 쓰고 하는 사람도 있죠. 애써 공통점을 찾자면 본인들이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에요.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은 가족을 위해 애쓰셨던 분이에요. 흔히 부자가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과 등을 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가난한 부모에 가정사가 행복하지 않은 분이었는데, 부자가 된 뒤 가족에게 베풀면서 사시더라고요. 흔히 알고 있는 부자의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분이셨죠.”
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작가는 부자가 되었을까?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 어떤 길을 가고자 할까?
“아직 부자가 되진 않았죠. 많은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배우려 노력하고 있어요. 자신의 비법이나 투자 방법 등을 서슴없이 알려주는 분도 많아요. 부자들은 자기 비법을 숨긴다는 것도 옛말이죠. 그렇다고 당장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회사원 신분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책의 구분법으로 설명하자면, 지금은 ‘고전형’과 ‘안전형’의 방식을 따르는 정도입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를 바탕으로 기회를 엿보는 중입니다. 다만 부자들과 함께하면서 저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변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곁에 있다 보면 그들에 대한 대접을 저에 대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거든요. 그저 삶의 좋은 자극이 될 수 있게 유지해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