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꿈을 품은 채 서울로 상경해 20여 년 동안 공직에서 일하고, 공직을 나와서는 한국신용평가 CEO로 활동했다. 은퇴 후 인생 2막으로 택한 것이 바로 ‘시조’였다. 2017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송태준(75) 시조 시인은 성실한 공무원처럼 시조도 성실하게 쓰는 노력파였다. 그를 만나 그간의 여정과 더불어 시조의 가치와 매력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201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한 노인의 삶을 그린 시조 ‘다산(茶山), 마임 무대에 선’이 당선되면서 시조 시인으로 등단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1세. 늦은 나이로 등단한 후, 4년 만에 첫 시조집 ‘바람의 노래’를 출간했다.
“등단 직후엔 때가 아니라고 봤어요. 책을 신중하게 내고 싶었어요. 성격상 대충 하는 건 못 견뎌요. 일종의 결벽이라고 할까요? 종잇값이 아깝지 않은 시조집을 내고 싶었어요. 공을 들여서 책을 만들자고 생각했는데 4년이란 세월이 훌쩍 가더군요. 습작한 지 10년 만에 나온 첫 책이라 원래는 작년 말쯤 출간하고 독자분들과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올해 4월에 드디어 출간하게 됐죠.”
늦깎이 시인이 10년의 세월을 압축해 만든 시조집 제목은 ‘바람의 노래’. 그는 어떤 바람을 담았던 걸까?
“중의적인 의미예요. 하나는 자연현상으로서 바람(wind)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바람(want)이에요.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하지만, 자연현상만큼 보편적 공감과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또 있을까요? 자연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이며, 그중에서 바람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바람은 기척도 없이 왔다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사라지는 것. 인간의 삶도 바람과 매우 닮았죠. 바람과 닮은 삶의 유한함과 공허, 그런 것을 시조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더 나아가 좋은 시조를 쓰고 싶은 결연한 의지와 소망이 담긴 책이에요.”'
시조와 첫사랑
70년은 반세기를 넘어 한 세기에 가까운 나이다. 그가 처음 시조에 눈을 뜨게 된 시기는 언제였을지 궁금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중학교 시절 문학에 막연한 관심이 있어서 특별활동으로 문예반을 골랐어요. 알고 보니 문예반 지도 선생님이 그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자였죠. 문예반 활동 자체에 대한 기대도 컸는데, 신춘문예 당선자인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게 돼 더 즐거웠어요. 선생님이 직접 쓴 시부터 시작해 다양한 시조를 배웠죠. 시조 시인으로서의 기초체력을 다진 시기라고 할까요?”
시조의 포문은 문예반 선생님과 함께 열었지만, 시심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첫사랑’ 덕분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연애를 하던 시절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윗동네 여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얼마나 좋아했는지 잠도 못 자고, 온종일 그녀 생각밖에 안 했어요. 그렇게 밤마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시조를 매일 한 편씩 적어나갔는데, 1년 6개월 정도 지나니 대학노트 3권 정도 분량이 나오더군요.(웃음) 이대론 안 될 것 같아 고민 끝에 그 동네에 사는 동급생을 통해 편지와 함께 가장 잘 쓴 시조 한 편을 그녀에게 보냈어요. 바로 답이 없어서 차였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 긍정의 답장이 오더군요. 시조는 첫사랑과의 연을 이어준 큐피드 화살이었죠.”
사귄 지 얼마 안 돼 그녀는 떠나갔고, 시조도 그와 멀어져갔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론 시조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대신 문학적 재능을 수필이나 소설로 옮기려고 부단히 노력했죠. 고등학교 때는 신춘문예에 2번이나 지원했는데 매번 떨어지더군요. 더불어 문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문학적 재능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한편으론 글쟁이의 삶이 너무 고단해 보였어요. 가난한 예술가보다는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고 싶었어요.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출세와 사회적인 성공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대학도 서울로 오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죠.”
공직은 실패작
순수한 시골 청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당당하게 서울대학교에 합격했고, 남들처럼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대학 졸업반 시절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해 2번 만에 합격했다. 그는 “당시 공직에 진출해서 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공직에 나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공직은 제 인생의 실패작이에요. 국무총리실로 첫 발령을 받고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할 때는 몰랐어요. 동기 중에서 진급이 빠른 편이라서, ‘이대로만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죠. 이후 대대적인 부서 통폐합으로 인해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았어요. 근데 다른 부서에서 와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텃세가 심했어요. 그래도 견뎌냈는데, 상사와의 갈등이 심했어요. 원리 원칙대로 일을 진행하고 보고드렸는데, 그 상사분이 일을 이따위로 하냐며 면전에 서류를 집어던졌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이외에도 이유 없이 불합리한 대우를 많이 받았어요. 승진에서도 밀려났는데, 나중엔 그 상사가 저를 좌천시키려고 하더군요.”
이런 갖은 수모를 견뎌냈지만, 그는 끝내 22년 만에 공직 생활을 접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다만 이 선택도 그에게 불가피한 일이었다.
“상사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시련도 있었어요. 빚보증을 서달라는 친한 친구의 부탁을 받았어요. 정말로 친한 친구라 거절하기 힘들었죠. 보증인 중에 공무원이 꼭 필요하다고 신신당부를 하길래 무심코 해줬는데, 이로 인해 끝내 친구 하나를 잃게 됐어요. 그 친구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빚을 못 갚게 된 거죠. 공무원 월급의 반을 압류당해 경제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때 마침 좋은 제의가 와서 한국신용평가 CEO로 활동했는데, 그 월급마저도 빚 갚느라 전부 썼어요. 제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마음의 숨구멍
22년의 공직 생활. 한국신용평가, 한국농어촌공사 등에서 대표와 비상임이사로 활동. 숨 가쁘게 달려오다 10년 전에 은퇴했다. 그간의 경력으로 볼 때 다른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터. 어쩌다 시조 시인의 길로 가게 된 것일까?
“뜻밖의 우연이 겹쳤어요. 은퇴 이후 시간이 많이 생겨 취미를 찾다가 우연히 도보동호회를 알게 됐죠. 전국에 도보동호회가 참 많더군요.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뒤도 보지 않고 달리는 성격인데, 걷는 재미에 빠져서 동호회에 가입하게 됐어요. 전국 각지의 도보 대회를 다녔는데 우연히 강원도 고성에 갔다가 축제에서 하는 백일장을 발견했어요. 이런 백일장은 보통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다반사죠. 그런데 이 대회는 보름 정도 제출기한이 있더군요. 학창 시절에 썼던 시조 생각이 나서 응모했는데 덜컥 대상을 받았어요. 예전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했죠.”
아무리 좋은 연장이라도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녹이 슬기 마련이다. 그도 창작의 고통을 수없이 맛봐야 했다.
“은퇴 후 남는 게 시간인데, 삶이 무료하더라고요. 이왕 하는 거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로 삼아 시조 시인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해보고 싶었어요. 육십 넘어 시작한 일인데, 몇 년 더 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어요. 다만 시조 부문이 있는 신문사도 적고, 인원도 한 명밖에 안 뽑아서 고시보다 더 치열했어요. 앉으나 서나 시조 생각만 했죠. 길 가다가도 메모를 하고, 한밤중에 시상이 떠오르면 불을 켜고 시조를 쓰기도 했고요. 들인 노력에 비해 매번 떨어지다 보니 이 무모한 객기를 그만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2017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됐어요. 운이 정말 좋았어요.”
삶을 이기는 글은 없다고 하는데, 그간의 경험이 시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공직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순탄치 못했죠. 억울한 일이 많다 보니 반항심이 커졌어요. 상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대드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요. 젊은 날의 치기 어린 객기였죠. 다만 실패가 자꾸 쌓이면 성찰이 발달하는 것 같아요. 항상 마음을 돌아보고, 삶의 상태를 점검하는 게 습관이 된 탓에 글을 안 쓸 수가 없더군요. 창작의 고통은 괴로운데, 어느샌가 본능처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어요. 제게 시조는 마음의 숨구멍과도 같아요. 제 안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편히 눕힐 수 있는 쉼터예요.”
롤모델은 두보
사실 시조는 자유시와 비교해 인기 있는 분야는 아닌데, 그가 생각하는 시조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조는 간결한 언어의 리듬이에요. 글자 수의 제약 안에서 절제된 언어, 규칙적인 반복과 특유의 배열을 통해 리듬을 만들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르죠. 몇 자 되지 않는 단어의 배열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죠. 규칙이 없는 스포츠는 의미가 없죠. 규칙이란 제약 안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선수의 덕목이 아닐까요? 시조도 마찬가지예요. 자수의 제한 안에서 함축된 언어를 통해 독자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문장을 남기는 일. 그게 시조의 미학이죠.”
시조 시인으로서의 지향점과 시조를 쓰는 자신만의 철학에 관해 물었다.
“타성을 경계하고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해요. 타성을 거꾸로 되짚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에요. 시조를 쓸 때는 관념적인 언어가 아닌 감각적인 언어를 쓰려고 노력해요. ‘꽃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보다 ‘꽃은 너의 입술이다’처럼 감각적으로 명확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죠. 그 이미지가 오랫동안 맴도는 것. 그게 정말 좋은 시조예요. 이태백처럼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퇴고의 달인 두보처럼 한 편 쓸 때마다 수백 번을 고쳐요. 두보처럼 사회적 문제를 시조에 녹이려고 하고요. 일종의 롤모델이죠.”
끝으로 시조 시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시조 시인을 꿈꾸고 있다면 일기 쓰듯 가볍게 써보는 게 좋아요. 스타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도 흐름이 있어서 시대성을 잃어버리면 안 되죠. 이론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시조를 읽어보는 게 좋고, 일본의 하이쿠도 좋아요. 시조는 민족 문화의 자산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가 깊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장르예요. 시조의 매력과 가치를 알리는 데 시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현재는 단시조집 출간을 위해 매일 시조를 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단 한 편이라도 좋으니 독자에게 여운을 깊게 남기는 시조를 쓰고 싶어요.”
그는 자신의 삶을 “무모한 객기가 부른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객기가 객기로만 남았다면 그의 삶은 정말로 재앙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잠시나마 엿본 그는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은퇴 후 그가 시조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성실함 덕분이었고, 성실함의 바탕은 성찰에 있었다. 시련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부단히 반성하고 노력했다. 그의 객기는 용기였고, 시조는 시련 속에서 피워낸 하나의 꽃이었다. 활짝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운 시조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마친다.
허니문 트렌드가 레트로를 맞이했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국내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혼주인 시니어들은 젊은 시절 울릉도와 제주도, 지리산 등 내륙과 섬을 가리지 않고 국내로 신혼여행을 많이 떠났다.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국내 허니문의 변천사를 돌아보고, 자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이색 허니문과 여행지를 소개한다.
20세기 초반까지 혼인은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공동의 행사였다. 당시 신혼부부를 ‘가문’이란 공동체로부터 일시적으로 분리하는 신혼여행은 상당히 낯선 개념이었다. 일부 상류층이나 개화한 지식인들이 하는 낯선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기록에 따르면 1920년에 결혼식을 올린 신여성 화가 나혜석이 신혼여행 도중 자신의 첫사랑 무덤 앞에 가서 비석을 함께 세워주었다고 전해진다.
본격적인 신혼여행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1960~70년대에는 결혼식을 마친 후 승용차를 타고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거나 호텔에서 1박을 하는 신혼여행 형태가 등장했다. 이 무렵부터 서울의 남산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 사진을 찍는 대표적 명소였다. 당시 인기 있던 신혼여행은 아산 온양, 대전 유성 등의 온천에서 휴양을 즐기거나 지리산 같은 산에 머물다 오는 것이었다. 1970년대까지 제주도 신혼여행의 항공료와 호텔 숙박비는 일반적인 신혼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가였다.
1980~90년대는 신혼여행의 르네상스였다. 1983년 제주공항이 지금의 모습을 갖췄고, 당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제주도 왕복 항공료 및 호텔 가격 인하 등 혜택이 많아서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많이 갔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시작되면서 1990년대부터 해외로 신혼여행을 많이 갔다. 초기에는 우리나라와 근접한 대표적 휴양지인 태국, 필리핀, 괌, 사이판 등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이 인기 지역이었다. IMF 이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한동안은 국내로 신혼여행을 많이 갔다. 이후 경기가 좋아지면서 다시 해외로 많이 나갔다. 박부진 명지대학교 아동학과 명예교수는 “신혼여행 문화는 각 시대의 결혼관과 남녀에 대한 인식 등 관념적 차원의 조건과 삶의 물리적 환경을 형성하는 사회경제적 조건 등이 반영된다”라고 말했다.
국내 관광지로 회귀…이색 허니문 등장
코로나19 이후 국내 여행지가 허니문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울릉도와 제주도 등 전국의 관광 명소가 신혼여행지 후보로 부상했다. 특히 제주도 신혼여행이 많았다. 호텔신라에 따르면 제주신라호텔의 경우 지난해 6월 스위트 허니문 패키지 예약 건은 같은 해 3월 판매량의 5배에 달했다. 이 중 3박 이상의 투숙객이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해외여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예비 신혼부부들이 제주도로 본격적인 허니문을 떠나며 3박 이상의 장기 숙박 고객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허니문과 웨딩을 함께 하는 곳도 생겨났다. 올해 3월 파라다이스시티는 ‘트립 투 웨딩’(Trip to Wedding)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파라다이스시티는 웨딩 스냅 장소와 예식 당일 숙박이 가능한 객실을 함께 제공했다. 지난 3월 예약 고객 선착순 일곱 커플을 대상으로 2박 3일간 이용 가능한 130만 원 상당의 ‘마이 스위트 허니문’ 패키지를 선보였다. 결혼식을 마친 커플은 디럭스 스위트 객실에서 최상의 휴식을 누리며 호텔 셰프가 준비한 스페셜 메뉴와 필리조 앤 필스(Philizot&Fils) 샴페인 파라다이스 에디션을 ‘인 룸 다이닝’ 서비스로 즐기는 패키지였다.
이색 허니문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캠핑카 허니문이다. 야놀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 2월 기준 야놀자의 글램핑 및 카라반 거래액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300% 신장세를 보였다. 캠핑카가 워낙 고가라서 구매보다는 대여가 낫다. 실제로 캠핑카 공유업체 ‘캠핑쉐어’는 허니문 캠핑카를 선보였다. 대여료는 4박 5일간 120만 원이며, 집 앞으로 차를 보내준다. 추가 요금을 내면 웨딩카 장식을 해준다. 다른 도시에서 반납해도 된다.
코로나 시대의 이색 허니문으로 무착륙 관광 비행도 괜찮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새로운 형태의 ‘A380 무착륙 관광 비행’을 선보였다. 해외로 떠난다는 여행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각국 관광청과 협력해 스페인, 호주 등 국제 여행 콘셉트를 살린 관광 비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제선 운항인 만큼 탑승객은 여권을 지참해야 하며, 아시아나항공 기내 면세점을 비롯해 인천공항 면세점과 시내 면세점 이용이 가능하다. 아시나아항공 관계자는 “땅을 밟을 수는 없지만 잠깐의 비행을 통해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기를 바라며 만든 프로젝트다”라고 설명했다.
허니문 추천 국내 여행지
거제도 ▶ 드넓은 남해를 끼고 잘 정비된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리스 산토리니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학동에서 와현 해안도로까지 이어지는 17.3km 구간은 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외도 보타니아는 이국적인 모습을 한 해상식물공원으로 둘만의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삼척 ▶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나릿골’ 마을은 낡고 허름한 옛날 건물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히고, 전망대, 미술관 등을 마련해 작은 테마파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서핑을 좋아하는 신혼부부라면 서프키키해변을 추천한다. 맑은 바닷물은 물론이고 샤워장, 강습 프로그램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서핑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수 ▶ 가볍게 산책하며 야경을 감상하는 것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이다. 이순신광장부터 종포해양공원, 하멜등대까지 이어진 코스는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와 바다가 연출하는 낭만적인 야경을 선사한다. 낮에는 돌산공원과 돌산대교에서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여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사랑은 언제 멈출 거나?”
“볶은 콩에 싹이 나면.”
어느 드라마 속 두 여인의 대사다. 40년 전 풋사랑을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된 가슴앓이, 어쩌다 보니 그도 혼자, 나도 혼자, 그렇다고 선뜻 그를 따라나설 수도 없는 현실의 굴레에서 걷잡을 수 없는 추억의 급물살을 맞는 주인공. 가까운 친구에게 자신의 속앓이를 털어놓는 그 소용돌이에 내가 똑같이 말려들 줄이야.
사는 동안 맞닥뜨리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 옛사랑의 현재 모습이 그 하나란다. 나머지는 작가의 맨얼굴, 요리사의 손톱 밑이라나. 그런데 어쩌랴. 봐선 안 될 40년 전 옛사랑이 내 앞에 나타났으니.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건 드라마에서처럼 우연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년째 되던 해. 우울과 무기력으로 잿빛 세상을 버티고 견뎌내던 어느 봄날, 고향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의례적인 안부에도 지쳐 있을 나에 대한 친구의 배려였을까? 거두절미하고 전화기 너머에서 대뜸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ㅁㅁ 씨 기억나? 한번 만나볼래? 큰 의미는 둘 거 없고 잠깐 활기나 얻으라고. 너 혼자 됐다고 하니까 한번 보고 싶은가 봐. 네 남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사람으로선 네가 첫사랑 아니니.”
그의 이름을 되뇌는 순간, 나와 세상 사이의 가림막이 거둬지고 무채색 캔버스에 채색 물감이 번져갔다. 멈췄던 삶의 시간이 다시 흐를 수만 있다면….
그는 남편의 대학 선배이자 나를 사이에 둔 사랑의 라이벌이었다. 그와 남편의 성향은 동과 서, 남과 북만큼 달랐다. 남편이 내향적이라면 그는 외향적이었고, 남편은 선비 기질인 반면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남자다웠다. 학자 타입의 남편은 섬세함에 더해 자상한 면이 있었지만, 그는 대범하고 호방했으나 예민한 감수성이나 예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40년 만의 해후임에도 남편과 세밀히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전부터 그의 기질과 성격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남편과 살면서 가슴속에 아련히 그를 품고 있었던 것도 물론 아니다. 단지 그와 만난 3개월 동안에 파악한 것이니 걷잡을 수 없이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내 마음의 반영이리라.
“ㅇㅇ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스무 살 고운 모습 그대로네. 그때 내가 너에게 청혼도 못 해보고 네가 내 후배와 결혼한 후 한 5년을 방황했지. 이러다 폐인 되겠다 싶어서 적당한 여자를 만나 뒤늦게 결혼을 했고. 물론 좋은 여자야, 무척 헌신적이고.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네 자리를 단 하루도 더듬지 않은 날이 없었어. 꿈에서라도 한번 같이 살아보고 싶었지.”
“호호. 오빠, 농담 말아요. 지금 내 나이가 60이 가까워오는데 스무 살 때 모습이 그대로 있다니. 그때 청혼하지 왜 안 했어요? 그랬다면 다시 생각해봤을 텐데.”
“장난스레 말하지 마. 그때 네 남편이 군에 있었잖아. 그 사이 너와 가까워질 수도 있었지만 그건 공정한 행동이 아니지. 더구나 내가 3년이나 선배인데 요즘 젊은애들 말로 후배와 썸을 타고 있는 여자에게 대놓고 구애하는 건 안 될 일이지. 그 친구가 제대한 후 너에게 결정하도록 하려고 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너와 그 친구가 많이 가까워져 있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활짝 열렸다. 남편과 나에 대한 배려심, 속 깊은 정의감 등이 그를 믿음직하고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고 원하면 만질 수도 있다. 남편이 떠난 이후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리 그 사랑이 컸다 해도 오감에 잡히는 한 조각의 그 무엇이 더는 없다는 것이었기에.
늦은 봄, 고즈넉한 교외의 일식 레스토랑에서 그는 머뭇대며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세 번째 만남이었다.
“ㅇㅇ아, 손 한번 잡아봐도 될까?”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의 두툼한 손이 내 손등 위에 살포시 놓였다. 따스하고 든든했다. 잠시 후 그의 손이 내 얼굴 언저리로 다가왔다. 그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주춤대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 다시 나의 손등 위에 얹어놓았다. 그에게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시선을 내리깔았지만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계절의 봄은 저물고 있는데 내 인생의 봄은 이렇게 다시금 찾아드는 걸까.
“꿈에서라도, 그도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부부로 만나 한번 살아보고 싶었어. 그런 너의 손을 잡아보는 데만 40년이 걸렸구나. 지금이라도 부부처럼 여행도 가고, 애들처럼 놀이공원도 가고, 손 붙잡고 맛있는 집 찾아 전국을 돌면서 걱정 없이 웃고 즐기며 젊은 한때로 돌아가고 싶다.”
남자는 시각에 약하고 여자는 청각에 약하다고 했던가. ‘꿈에서라도 살아보고 싶었다’란 그의 말이 귓바퀴를 로맨틱하게 간지럽혔다. 황홀했다. 남편과 사별 후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죽고 초라해진 내면에 자존감의 바람이 차올랐다. 허방을 딛고 있던 공허함이 메워지며, 구겨진 자존심이 펴지고, 우울증의 얼룩이 씻겨나갔다.
나는 그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며, 단 하나의 옛사랑이 아닌가! 허름한 중년 남녀가 남루한 외로움 때문에 그렇고 그렇게 만난 게 아니다. 환상이어도 좋았다. 설혹 착각이었다 해도, 허영이면 또 어떠랴.
하나로 흐르고 있는 그와 나의 시간도 물이 수소와 산소로 나뉘듯이 언젠가는 다시 분리될 것이다. 그가 나에게 가진 감정이 사랑이라 해도 결국 그는 가정으로 돌아갈 거라는 통속적인 결말을 나 또한 예상해야 할 테지. 복잡한 심사는 그뿐만이 아니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이 깊어갈수록 내 사랑의 방에는 아직 남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언뜻언뜻 확인한다. 내게 사랑의 방은 하나뿐일까. 그 방에 남편이 기거하고 있는 한 그를 온전히 들여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MZ세대와 뉴노멀의 등장, 코로나 팬데믹으로 결혼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다. 애지중지 키운 딸과 아들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시니어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결혼 준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자녀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까지….
요즘 젊은이들은 자립심이 강해 스스로 준비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부모가 자녀의 결혼을 모른 척하고 싶어도 모른 척할 수 없는 셈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7월호는 커버스토리에서 코로나19로 소규모‧고급화하고 있는 ‘2021 웨딩 트렌드’와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어 알아두면 좋을 ‘혼주 에티켓’을 소개한다. 또 자녀 결혼에 필요한 예물과 혼수, 신혼집 마련에 필요한 꿀팁에 허니문 변천사도 알려 준다.
평생 화두 ‘동반성장’ 의지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생 염원을 담은 오톨도톨한 점자혼용 명함을 제시하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표지와 기사로 만날 수 있다. 정 이사장이 들려주는 참 좋은 시절, 그때는 그랬지 추억 속 이야기에 빠져보면 어떨까.
한줌의 늦깎이 역사 소설가 오세영 씨는 데뷔작 '베니스의 개성상인'에서 '자산어보'로 돌아왔다. 역사란 퍼즐의 이음새를 자신만의 결로 다듬어 모나지 않은 그림으로 완성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를 만나 북인북 코너를 구성했다.
‘경북 최대의 농지 면적과 적극적인 귀농귀촌 정책을 완비한 상주시’를 가보고 싶은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로 소개한다. 오래전부터 쌀, 누에, 곶감의 도시로 유명한 상주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농업 도시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농업 혁신 도시로 전환을 꾀하고 있는 상주시의 귀농귀촌 여건과 정책 지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구해줘 부동산에서는 ‘아파트 말고 꼬마빌딩으로 노후준비’를 이야기한다. 대출 규제와 고강도 중과세, 집값 상승으로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아파트 말고 빌딩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빌딩 선호 추세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빌딩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꼬마빌딩이 궁금한 독자를 위한 알찬 내용이 담겨 있다.
슬기로운 보험생활에서는 기존 가입 보험의 숨은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보험 리모델링’을 소개한다. 보험 리모델링은 보험 가입 구조나 기능 개선을 통해 위험관리의 가치를 올리는 행위다. 시니어들을 보험 리모델링에 따라 노후 의료비를 대비가 달라질 수 있다.
1985년 강변가요제에 발표돼 선풍적 인기를 끈 노래가 있다. 임석범과 김복희가 마음과 마음이라는 듀엣으로 부른 ‘그대 먼 곳에’가 주인공이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와 함께 마음과 마음을 이끌며, 음악과 라이브 카페, 유튜브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임석범을 만났다.
이 외에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 7월호는 꿈에서라도 함께 살아보고 싶었던 첫사랑 이야기를 담은 브라보 마이 러브, 명나라 고관 대작의 집에서 벌어지는 운우지락이 그려진 중국 춘화 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性인문학, 고급 취미에서 재태크로 변신하고 있는 아트테크를 소개한 생활 속 법률 상식, 차려 먹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장수 밥상을 알려주는 이달의 구독, 먼 길 가다 만난 나무처럼 맑은 청주(淸州)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느린 여행, 닭과 전복을 활용한 이색 보양 레시피를 담은 엄마가 엄마에게 같이 시니어들이 재밌고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내용을 가득 실었다.
시니어 전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 7월호는 전국 서점과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다.
TV, 라디오, 영화 등 어디선가 우연히 흘러나오는 옛 노래에 누구나 한 번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진한 향수를 경험한다. 한때 지겹도록 들었던 음악이 어느 순간 들리지 않고, 익숙한 멜로디가 가물가물해지는 나이가 되면 반가움은 더욱 크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추억 여행이 고픈 시니어를 위해 그때 그 시절의 팝송을 실컷 들을 수 있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맘마미아! (Mamma Mia!, 2008)
지중해 코발트빛 바다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세 명의 소녀들. 이내 주인공 소피가 폭탄 발언을 한다. “아빠를 결혼식에 초대했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소피에게는 놀랄 일이다. 엄마 도나의 옛 일기장에 적힌 세 남자 중 누가 진짜 아빠인지 알 수 없기 때문. 소피의 충격 고백으로 소녀들의 수다는 뜨거워지고, 찬란한 풍광을 배경으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허니 허니, 하우 유 스릴 미~” 곧이어 장면이 전환되고, 도나의 ‘허니’일지 모를 세 남자가 섬으로 도착한다. 결혼식을 앞둔 소피가 엄마의 옛 연인을 섬으로 초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맘마미아’는 시니어의 추억을 똘똘 뭉쳐놓은 작품이다. 잊고 지낸 첫사랑이 생각나는 서사는 물론, ‘아이 해브 어 드림’ ‘댄싱퀸’ 등 러닝타임 내내 울려 퍼지는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가 젊은 시절의 추억을 선물한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세월이 흘러도 낡지 않는 아바의 명곡,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등 할리우드 원로 배우의 퍼포먼스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지는 작품.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맘마미아!”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2. 예스터데이 (Yesterday, 2019)
나이‧국적 불문 전 세계가 사랑한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 어느 날 세상에서 비틀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비틀스를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비틀스의 명곡을 기억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나 하나밖에 없다면? 영화 ‘예스터데이’는 이 같은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무명의 뮤지션 잭이 비틀스 없는 세상에서 스타가 될 기회를 맞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무명생활을 이어오던 잭이 작은 공연을 끝으로 꿈을 포기하려는 순간, 전 세계에 정전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잭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퇴원한 뒤 친구들 앞에서 퇴원 기념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어리둥절한 표정.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잭이 비틀스를 언급하자 친구는 말한다. “무슨 비틀즈를 말하는 거야. 곤충, 자동차?”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한 잭은 이날로 제2의 비틀스가 되어 성공가도를 달린다. 영화는 ‘헤이 주드’ ‘렛 잇 비’ 등 20여 곡의 비틀스의 노래를 잭의 목소리로 재구성한다. 원곡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여전히 반가운 멜로디가 두 귀를 즐겁게 한다. 그야말로 비틀스의, 비틀스를 위한, 비틀스에 의한 영화다.
3. 로켓맨 (Rocketman, 2019)
‘로켓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이름처럼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갈 듯한 4차원적인 의상에 알록달록한 안경을 쓰고, 피아노로 록을 하는 천재 뮤지션 엘튼 존이다. 영화 ‘로켓맨’은 그의 지나온 인생과 음악, 숨겨진 고뇌를 오롯이 담아낸다. 영화는 알코올 중독 상담에 참여한 존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시작된다. 대중이 기억하는 무대 위 화려한 모습보다는 부모의 무관심과 친구의 배신, 약물 중독 등 알려지지 않은 그의 어두운 개인사를 내밀하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형식을 취해 외로운 유년을 보낸 천재 소년이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전개해나간다. 같은 감독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는 달리 음악보다 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지만, ‘유어 송’ ‘크로커다일 록’ 등 적재적소에 흐르는 명곡들이 감정을 극대화하며 제 몫을 다한다. 감각적인 연출과 엘튼 존을 완벽 재현한 태런 에저튼의 열연도 재미를 더하는 포인트. 러닝타임 120분간 엘튼 존의 인생을 간접 체험하는 듯한 생경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Exhibition
◇라이프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일정 5월 11일~8월 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상징인 ‘라이프’ 사진전이 4년 만에 돌아온다. 1936년 창간된 ‘라이프’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 곳곳에 뛰어들었고, 찰나의 순간을 역사로 만들어내며 세상을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바꾼 전설적인 사진 잡지다. 전성기 시절 총 1350만 부가량 발행하고 정기 구독자 수가 800만 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전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피, 땀, 눈물을 담은 이번 전시는 2013년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과 2017년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기 위하여’에 이은 마지막 시리즈로 3부작의 서사를 마침내 완성한다. 지난 두 번의 전시가 격동의 시대와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면, 이번 전시는 우리 삶에 보다 가까운 일상을 포착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선동하거나 미래를 자극하기보다, 혼란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맞설 여유와 원동력을 선사한다. 1000만 장의 방대한 사진 자료 가운데 엄선한 100장의 작품과 더불어 ‘라이프’와 함께한 사진가 8명을 조명해, 프레임 저 너머 그들이 추구한 가치를 이야기한다.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일정 5월 1일~8월 29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파리국립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 11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70년에 걸친 피카소의 예술 인생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미술사에 혁명을 일으킨 입체주의 작품부터 신고전주의 화풍의 회화, 조각, 도자기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광범위하게 조명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을 국내 최초로 감상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전쟁의 잔혹성을 예술로써 고발한 이 작품은 ‘게르니카’, ‘시체구덩이’와 함께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이라 불린다. 입체주의 시대를 함께한 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가 가장 사랑한 여인 마리 테레즈,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자클린 로크 등 그의 뮤즈를 그린 그림도 전시의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총 7섹션으로 나눈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피카소의 전 생애를 탐험하는 듯한 신비롭고 생생한 시간을 선사한다.
● Book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저·북로그컴퍼니)
미국에 ‘모지스 할머니’, 영국에 ‘로즈 와일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 할머니가 있다. 83세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어느덧 12년 차 화가로 활동 중인 94세 김두엽 할머니다. 그녀의 소소하고 따뜻한 인생 이야기가 최근 110여 점의 작품과 함께 한 권의 그림 에세이로 탄생했다. 늦깎이 화가를 결심한 사연부터 아들, 며느리, 강아지와 함께하는 일상, 그리고 지난 90년 인생에 대한 반추가 알차게 담겨 있다.
김두엽 할머니의 인생은 그야말로 굴곡진 언덕길 같다.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에 가족과 귀국하고, 우리말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해 혹독한 시집살이를 한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으며, 80세가 넘도록 나물 장사, 세탁소 운영 등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며 고된 나날을 보냈다.
힘들었던 삶이 원망스러울 법도 하건만,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지난한 인생과 달리 화사하고 포근하다. 로즈 와일리의 화풍처럼 때로는 유쾌하고 발랄하면서도, 모지스 할머니처럼 일상 속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아픈 날마저 고운 색으로 추억하고 아름다운 것만 눈에 담고자 했던 그녀만의 강인한 의지와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책은 83세에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딘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8세 일본에서 만난 첫사랑과 눈물겨운 시집살이, 택배 일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리는 오늘날의 일상까지 그녀의 삶 면면을 모두 담아낸다. 그 한 편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훑고 나면, 영화 같은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힘들어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할머니의 염원이 아주 오래, 가능하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고독사를 피하는 법 (리처드 로퍼 저·민음사)
장례업에 종사하는 앤드루가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를 고독사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 특유의 유쾌한 문체로 ‘관계 맺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살집팔집 (고종완 저·다산북스)
시니어가 만나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른 저자가 아파트 매매의 ‘A to Z’를 말한다. 핵심 이론부터 전국 아파트 단지의 가치 분석, 슈퍼 아파트 목록까지, 뜨는 부동산 이슈를 총망라한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저·페이퍼로드)
건축 평론가이자 시인인 저자의 서울 예찬기. 문학과 시, 역사 속에 그려진 서울로 그때 그 시절을 반추하는가 하면, 저자만의 시선으로 동네 곳곳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한다.
● Stage
◇레드북
일정 6월 4일~8월 22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박소영 출연 차지연, 아이비, 김세정, 송원근, 서경수, 김인성 등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하는 독특한 여인이 있다. 상상은 자유라지만, 문제는 이 여인이 신사의 나라 영국, 가장 보수적인 시기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도 개의치 않고 뛰어난 상상력과 글재주로 외설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긴 ‘레드북’을 출간한 그녀는 당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신성 모독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뮤지컬 ‘레드북’의 내용이다. ‘레드북’은 미래를 꿈꾸는 여성 안나와 고지식한 변호사 브라운이 잡지 ‘레드북’ 출간 후 벌어지는 사회적 파장과 그로 인한 편견에 맞서나가는 이야기다.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시대, 갖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껏 욕망하고 표현하는 안나의 진취적인 모습이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주인공 안나 역으로 차지연, 아이비, 뉴 페이스 김세정까지 합류해 3인 3색의 매력으로 무대를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완벽한 타인
일정 5월 18일~8월 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대극장
연출 민준호 출연 유연, 양경원, 유지연, 김재범, 박소진, 이시언 등
2018년 국내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7명의 주인공이 저녁 식사 도중 서로의 휴대전화 알림을 모두 공개하는 게임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의 치밀한 심리전과 게임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비밀,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무대 위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극대화되며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1976 할란카운티
일정 5월 28일~7월 4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유병은 출연 오종혁, 이홍기, 산들, 김륜호, 안세하 등
1976년 미국 켄터키주 광산회사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함성과 투쟁을 그린다. 흑인 라일리의 자유를 위해 함께 뉴욕으로 떠나는 다니엘의 여정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광부들의 희망의 노래가 감동을 전한다. 배우와 무술감독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유병은 연출가와 젊은 창작진의 열정적인 협업으로 창작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인 스케일을 선보인다.
※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앞길이 구만리인 청년 세대의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인생의 종착점이 다가온 시니어의 화두는 ‘어떻게 남길 것인가?’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무형 자산에 해당하는 증여와 자서전에 대해 살펴본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난 김증여 씨. 최근에는 손주 돌보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다. 귀여운 손주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재산을 증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른바 세대 생략 증여를 결심했다. 세대 생략 증여는 절세 효과도 뛰어나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국내 자산가들은 자산 이전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산의 증여와 상속으로 자산을 이전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63.6%였다. 과반수가 동의하고 있었다. 이러한 원인은 그들도 윗세대로부터 받은 재산으로 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증여와 상속은 부의 원천 중 하나였다. 실제로 50억 원 이상 부자의 23.7%는 상속과 증여를 부의 원천으로 꼽기도 했다.
다만 상속의 대상이 점차 변하고 있다. KB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상속 및 증여 1순위 대상은 자녀였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10년 전과 비교해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 2011년까지만 해도 손주는 상속과 증여 비중에서 9.2%에 불과했는데, 2020년 기준 약 3배 이상 증가하며 31.8%를 기록했다. 특히 50억 원 이상 부자의 경우 10년 전과 비교하여 상속과 증여 대상에서 자녀 비중이 6.3% 감소했으나, 손주의 비중은 23.8% 증가했다.
KB경영연구소 관계자는 “여전히 자녀의 비중이 높지만, 손주의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세대 생략 증여의 절세 효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자녀 세대를 건너뛰고 미성년 손주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세대 생략 증여도 늘고 있다. 지난해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조부모에서 미성년자 손주에게 증여된 재산 총액은 2015년 3054억 원에서 2018년 7117억 원으로 3년 만에 133% 급증했다. 1건당 평균 증여액도 1억5693만 원에서 1억7886만 원으로 늘었다. 특히 부동산을 통한 손주 증여액은 2015년 1296억 원에서 2018년 3653억 원으로 182%나 뛰었다. 실제로 지난해 국세청에서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직계존비속 증여 재산 가액이 30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세대 생략 증여로 절세
증여세의 세율은 금액에 따라 5단계 구조로 나뉜다. 해당 구간의 초과 금액만큼 최소 10%에서 최대 50%까지 세율이 매겨진다. 예를 들어 1억 원의 경우에는 10%에 해당하는 1000만 원을 증여세로 내면 된다. 하지만 3억 원이라면 계산이 달라진다. 1억 원일 경우 내야 하는 1000만 원과 더불어 1억 원을 초과하는 금액인 2억 원의 20%에 해당하는 4000만 원을 합해 총 5000만 원을 증여세로 낸다.
세대 생략 증여는 최소 30%에서 최대 40%까지 가산된다. 법규상 손주에게 증여할 경우 기본적으로 30%가 가산된다. 미성년 손주에게 20억 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증여할 경우 40%를 가산한다. 다만 아들이 사망한 후 손주에게 증여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대 생략 증여의 절세 효과는 아예 없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순차적으로 증여를 한다고 가정하면 조부모는 자녀에게 한 번, 자녀는 손주에게 한 번 해서 총 두 번의 세금을 낸다. 반면 세대 생략 증여는 손주에게 증여하면서 세금을 한 번만 내면 된다. 예를 들어 조부모가 1억 원의 재산을 자녀에게 증여하면 10%의 증여세를 내고, 자녀가 그 재산을 손주에게 물려주면 다시 10% 증여세를 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총 20%에 해당하는 2000만 원의 증여세를 내는 것이다. 반면 조부모가 손주에게 1억 원을 증여하면 할증 과세로 30%가 붙더라도 총 1300만 원의 증여세만 내면 되기 때문에 확실히 절세 효과가 있다.
또한 세대 생략 증여는 상속세를 줄인다. 상속세는 사망 당시 남긴 재산의 가액에 따라 세금이 결정된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서는 미리 증여를 통해 사망 후 남길 재산을 줄이는 것이 낫다. 다만 법에서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 가액이 있거나 5년 이내에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 증여한 재산 가액이 있는 경우에는 과세 가액에 가산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결국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살아야 가산을 피할 수 있고, 손주에게 증여하는 경우는 5년 이상 살아야 과세 가액에서 배제된다. 황혜린 NH투자증권 세무사는 “세대 생략 증여는 할증 과세를 내야 하지만, 상속세를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시니어는 자서전을 남긴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주인공은 천국의 중간역 ‘림보’에서 일하는 PD다. 그의 역할은 천국으로 가기 전 각자가 가진 소중한 기억을 선택하게 도와주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첫사랑과의 만남, 디즈니랜드에 처음 간 일, 어린 시절 오빠 앞에서 춤을 멋지게 춘 일 등 각자가 추억하는 삶의 명장면이 달랐다. 물론 택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영상으로 표현했지만, 이를 글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바로 자서전이다. 자서전은 살아온 시간 중 삶의 순간을 선택하고 조립하여 만든 결과물이다.
일상 속 순간을 매일 기록하는 것이 일기라면, 자서전은 한 인간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삶의 기록이다. 현시대에 유행처럼 일어난 현상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자서전에 대한 갈망은 과거에도 꾸준히 있었다. 서양에서 이러한 일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예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몽테뉴 백작의 ‘수상록’ 등이 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명예로운 일을 한 위인들만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걸까? 그것은 아니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지나간 시절의 행복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글쓰기는 다른 것에 비해 준비물이 간소하다. 펜과 그 펜을 쥘 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지난 시절의 추억과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알맞은 단어와 문장으로 편집해서 그럴듯한 글로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기에 큰 각오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시니어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서전을 쓰고 있을까? 지난해 코로나19가 불어닥친 악조건 속에서도 서대문구청이 진행한 ‘행복 타임머신’ 사업에 참여하여 자서전을 쓴 시니어들이 있었다. 올해 4년 차에 접어든 해당 과정은 대학생과 함께 자서전을 써나가는 수업인 동시에 시니어에게는 학교나 다름없었다.
아름다운 종착을 위한 선택
코로나19 이전에는 함께 교외로 나들이를 나가고, 대학교 내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등 대학생과 비슷한 생활을 했다. 실제로 참여했던 분 중에 주위 지인에게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는 분도 있었다고 한다. 수업을 통해 글쓰기 이론을 배우며 실제로 써보기도 하고, 자신의 글을 남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저마다의 고달픈 사연으로 인해 발표 시간은 늘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생과 함께 적어나간 삶의 얘기들은 ‘안산자락에 살으리랏다’라는 제목을 달고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수업에 참여했고, 수업은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참여 동기는 대부분 비슷했다. 삶의 순간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던 차에 주위의 권유와 안내 책자를 보고 호기심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자서전 쓰기는 그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업 이후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이정표가 생겼다. 수업에 참여한 이상각(75) 씨는 “가끔 수업에서 시 낭송을 했는데, 그 시간이 되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하며 “자서전 쓰기는 마음가짐을 정돈하는 동시에 나의 소중함을 알려줬다”라고 밝혔다. 엄신자(78) 씨는 “자서전 수업을 통해서 낭비와 후회가 없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라고 밝히며 “글쓰기에 관심이 생겨서 틈틈이 글을 적고 있는데, 나중에 이를 바탕으로 산문집을 한 권 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자서전 쓰기 수업을 진행한 이성림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는 “자서전은 이제껏 살아온 나날을 정리하는 동시에 내 삶의 정체성을 기록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자서전 쓰기는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인 동시에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는 일이다. 실제로 수업에 참여하신 분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만큼 각자의 얘기에 공감하고, 서로를 다독였다”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자서전은 후손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 수업에 참여한 김옥원(85) 씨는 “내 삶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자서전이 훗날 손주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밀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쓴 자서전에 내용을 덧붙여 USB 형태로 손주에게 물려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순철 한국기록연구소 대표는 “자서전은 책이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다”라고 말하며 “노인들은 자서전을 통해 이야기를 건네면서 자기위로를 할 수 있고, 새로운 세대에게는 그들을 이해하는 미디어다”라고 설명했다.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동시에 다음 세대와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진 마무리가 있을까? 자서전은 아름다운 종착을 위한 멋진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 같다가도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장소에 방문하거나, 음악을 들으면 학창 시절이 어제처럼 생생해진다. 오늘날 ‘라떼(나 때)는 말이야’가 과거의 무용담을 밥 먹듯이 늘어놓는 이들을 비아냥대는 유행어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한창때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라떼’가 그리운 이들을 위해 옛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쎄시봉 (C'est Si Bon, 2015)
오늘날 가요계를 주름잡는 대표 가수로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꼽힌다면 1960~70년대에는 트윈폴리오가 있었다. 한국 포크 음악계의 전설 송창식과 윤형주가 1967년 결성한 듀오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쎄시봉’은 트윈폴리오에 숨겨진 제3의 멤버 오근태가 있었다는 설정으로 출발해 ‘트리오 쎄시봉’의 탄생 비화와 이들의 얽히고설킨 첫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종로구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과 주인공들이 만들어나가는 음악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시니어라면 반가울 만한 에피소드를 군데군데 갖춰 놓는다. 특히 근태(정우)와 자영(한효주)이 늦은 시간까지 데이트를 하다 ‘통금’시간에 맞춰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 자영을 미니스커트 단속에서 지켜주기 위해 자영의 짧은 치마를 대신 입은 근태의 모습 등은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여기에 ‘하얀 손수건’, ‘담배가게 아가씨’, ‘딜라일라’, ‘웨딩케이크’ 등 세월을 관통하는 명곡들은 덤. 신파적인 감성이 과하다는 평이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기엔 충분하다.
2. 써니 (Sunny, 2011)
파란만장한 학창 시절을 추억할 때면, 세월이 흘러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바로 질풍노도의 시기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들이다. 1980년대 여고를 배경으로 한 영화 ‘써니’는 그 시절 시끌벅적한 학창 시절과 학급 분위기를 상기시킨다. 영화는 평범한 주부 나미(유호정)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교 동창 춘화(진희경)를 위해 옛 친구들을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는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전개 방식을 따르며, 수줍은 전학생 나미가 써니 멤버를 만나 추억을 쌓아가는 모습을 통해 때 묻지 않은 10대의 우정을 풋풋하게 그린다. 한편 중년이 된 써니 멤버들은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을 통해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되찾고, 다 함께 모여 춤 연습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여고 시절로 되돌아간다. 영화는 그 자체로 타임머신 역할을 하면서, 나미의 ‘빙글빙글’, 영화 ‘라붐’의 주제곡 ‘리얼리티’ 등 타이밍 좋게 흘러나오는 추억의 음악으로 향수를 더욱 자극한다. 보니 엠의 ‘써니’를 흥얼거리며, 먼지 쌓인 졸업앨범을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3. 그대 이름은 장미 (Rosebud, 2018)
‘써니’가 여고 동창들의 우정을 이야기한다면,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는 한 여성의 찬란했던 옛꿈과 사랑을 그린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딸을 키우며 하루하루 전쟁처럼 살아가는 싱글맘 장미(유호정)다. 지금은 영락없는 주부의 모습이지만, 그녀에게도 가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로 꿈을 포기하고, 딸 현아(채수빈)를 낳은 이후부터는 흐르는 세월을 잊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옛 연인 명환(박성웅)을 마주치게 되면서 마음속에 묻어둔 추억을 하나둘 꺼내보기 시작한다. 전반적인 코드가 ‘써니’와 비슷한 듯하지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또 과거보다는 현재 시점을 위주로 보여주며, 엄마로서의 고단함, 딸과의 갈등 등 현실적인 내용에 집중해 밝고 활기찬 과거 장면과 톤을 달리한다. 서로 다른 두 영화를 합친 듯한 구성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극적인 대비를 통해 누군가의 부모로 살아가는 이들도 한때 장미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쟁쟁한 수천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오디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시니어 모델이 있다. 바로 시니어 모델 ‘윤영주’다. 우승한 것도 대단한데, 그녀의 나이는 올해 73세. 최연장자임에도 다른 시니어 모델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당당하게 우승을 거머쥐었다. 더욱이 놀라운 건 종갓집 며느리라는 사실. 종갓집과 모델, 한식과 양식만큼이나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합인데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직접 만나서 그간의 여정을 들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의 매력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MBN 시니어 모델 오디션 예능 ‘오래 살고 볼일’은 방영 후 화제가 됐다. 오디션에 등장한 시니어 모델들이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았다. 탄탄한 몸매, 동안을 자랑하는 외모, 젊은이에 뒤지지 않는 패션 감각,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대단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시니어 멋쟁이들이 총집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쟁쟁한 선남선녀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시니어 모델 윤영주는 어떤 사람일까? 일단 그녀가 이 오디션에 참가한 계기를 물어봤다.
“사실 접수를 안 하려고 했어요. 이 프로그램 전에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면서 회의감이 많이 생겼죠. 생각했던 것과 달랐어요. 불러주는 곳도 많지 않았고, 어느 때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기도 했어요. 모델 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해서 그만두려고 했어요. 마침 그때 이 오디션 공고가 올라왔는데, 접수하지 않으니까 주위에서 많이 권했어요. 다들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까짓것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접수했어요. 그때 안 했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아요.(웃음)”
상금은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그녀는 오디션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아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동안 외모와 남다른 패션 감각은 확실히 돋보였다. 특히 긴장하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표정이 한결 부드럽고 여유 있어 보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어땠을까?
“연장자라서 그런지 편했어요. 다들 열 살 이상 차이 나다 보니 동생들 같았어요. 대기 시간이 길어 얘기할 시간도 많았고요. 그래서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동생들과 수다 떨면서 재밌게 노는 기분으로 임했죠. 예전에 방송국에서 리포터 활동을 해서 카메라 앞에서의 촬영이 익숙했어요. 그 경험 덕분에 확실히 조금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도 있었다. 늘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와이어 액션을 소화하는 화보 미션에서 탈락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없는 결말이 없는 것처럼 마지막 런웨이 미션을 멋지게 소화하면서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냈다.
“우승자를 호명할 때 순간 머리가 하얘졌는데, 기분은 정말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박윤섭 씨한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눈을 못 마주쳤어요. 속으로 그분이 1등이라고 늘 생각했거든요. 전에도 현장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모델로서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분이에요. 그러고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많지만 어떻게든 쫓아가려고 했던 걸 많은 분이 좋게 봐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어렵게 차지한 우승으로 받은 상금은 어디에 쓸 거냐고 묻자 “상금은 나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일에 쓰고 싶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단 오디션 동안 제일 고생한 며느리랑 상금을 나누고, 나머지 내 몫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곡을 만들고 있는 음악 제작자 친구들을 지원하는 일에 쓰고 싶어요. 아들이 음악을 해서 그런지, 그 친구들이 자꾸 마음에 걸려요. 가난한 예술가의 아픔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장점은 자연스러움
화려한 시니어 모델 삶의 이면에는 종갓집 며느리의 삶도 있었다. 그녀는 시니어 모델이 되기 전 종갓집 며느리로서 성실히 살았다. 일 년에 명절을 포함한 13번의 제사를 군말 없이 준비해야만 했다. 다른 요리는 못 해도 제사 음식은 눈 감고도 할 정도란다. 특히 생선 손질은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렇다면 종갓집 며느리가 어떻게 모델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제사 규모가 줄어들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특히 50대에 접어들면서 남들이 은퇴를 준비하듯이 노후를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문득 미학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한 15년 동안 미학 공부를 하고 박사 논문까지 썼어요. 음악이나 미술, 철학과 관련된 칼럼도 틈틈이 썼고요. 그런데 어느 날 눈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시력 보호 차원에서 책을 보지 말라는 거예요. 청천벽력이었죠. 좋아하던 책을 못 보니 참 무료했어요. 무엇보다 할머니가 아니라 여자 ‘윤영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시니어 모델을 알게 됐어요. 마침 며느리가 모델 출신이었고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모델 하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어요. 그때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하지만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이 자리까지 이끌게 한 모델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미학이나 철학이 깊은 희열을 맛보게 한다면 모델은 짜릿한 희열이에요. 쇼를 한 번 하는 데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쳐요. 메이크업하고 머리 만지는 데 최소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씩 걸리고, 리허설도 몇 번씩 하고, 전날 와서 옷도 미리 입어보죠. 근데 쇼는 15~30초면 딱 끝나요. 그 순간만큼은 무대가 다 내 것이에요. 그 찰나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좋아요.”
무대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모델로서 각자 내세울 수 있는 매력이나 장점도 필요하다. 그녀는 어떠한 장점이 있고,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주위에서 말하기를 자연스러움이 제 장점이라고 해요. 설명하기 어려운데 남들이 보기에 인위적이지 않은 나만의 멋이 있다고 해요. 예전에 방송국 리포터 할 때도 PD들이 연신 애 엄마 맞냐고 물어봤어요. 쇼나 무대 같은 생방송에 최적화된 체질인 것 같아요. 덧붙여서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어디서나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해요. 미술, 영화, 음악, 전시 등 가리지 않고 좋은 걸 자주 보고 듣는 것이 모델로서 표현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바탕
티 없이 밝아 보이는 그녀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남편은 선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친오빠랑 친한 친구였어요. 워낙 가족 같은 사이라서 남편이 좋다고 했을 때 친오빠가 사귀자고 하는 것처럼 너무 어색하고 이상해서 피해 다녔어요. 근데 못된 우리 오빠와는 다르게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결혼해서도 날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던 참 좋은 사람이에요. 돌이켜보면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참 고마운 사람이에요. 만약 지금 같이 있었다면 제일 좋아했을 거예요.”
그녀의 남편은 꽉 막힌 구석도 있는 남자였지만, 아내를 위해서 때로는 화려하고 예쁜 옷을 사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늘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아내밖에 모르는 바보로 주위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 있었다고. 요즘 말로 하면 사랑꾼이라고 할까?
그의 빈자리가 그립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소중하고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메이크업부터 의상, 촬영 스케줄 등을 관리하는 매니저이자 모델 스승인 며느리부터, 화양연화 미션 때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슬픈 노래를 정리해서 보내준 아들까지. 화려한 그녀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녀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은 바탕이죠. 누구나 그렇지만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바탕과 같아요. 바탕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특히 며느리와는 절친이에요. 저런 며느리가 없어요. 좋은 며느리를 얻은 건 내게 큰 행운이에요. 며느리와는 별의별 얘기를 다 해요. 가끔 아들 흉도 같이 봐요.(웃음)”
책임감 있는 모델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날개 중 하나가 가족이라면, 다른 날개는 바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다. 그녀는 늘 어제의 나와 다르게 살기를 원했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나로 살지 않기를 원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나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책을 읽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보고,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했던 마음은 지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다른 새로운 나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델도 마찬가지고요.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감회가 달라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노력해요.”
인상적이었던 댓글을 들려주며 앞으로 시니어 모델로서의 포부나 계획을 밝혔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댓글이 하나 있어요. ‘나이 든다는 게 두렵지 않다는 걸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댓글을 읽으면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70대도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서 많은 분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싶어요.”
방송국 리포터부터 시작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하고, 정말 남들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 외려 과감하게 모델에 도전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첫사랑과의 추억을 꼽을 때는 영락없는 소녀였고, 할머니가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 인정받는 모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말할 때는 당당한 여인이었다.
첫사랑의 어머니가 딸처럼 귀하게 여기고, 며느리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남편이 그녀를 아껴주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인터뷰를 하면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화려함에 숨겨진 내면의 미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남에게 양보할 줄 알고, 욕심 부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묵묵히 정진했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의 자세를 몸소 실천하고, 모델로서 가진 아름다움과 더불어 인간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이 일에 임하고 있었다.
흔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일컫는다. 그녀는 첫사랑과의 추억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꼽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정한 화양연화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아닌 여자 윤영주로서 앞으로도 아름답고 당당하게 꽃길을 걷기를 바라며 마친다.
연기 인생 66년 차, 출연 작품 300편 이상, 코믹‧멜로‧드라마‧다큐멘터리‧사극 등 장르 불문 어떤 캐릭터든 소화 가능. 배우 이순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십 년간 다양한 캐릭터로 안방과 스크린에 웃음과 감동을 선물한 그는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인생 멘토이자 시니어 시청자들 마음 속의 오랜 벗이다. 이번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국민배우 이순재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덕구 (Stand by me, 2017)
영화 ‘덕구’는 이순재가 노 개런티로 찍은 작품이다.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시나리오가 마음을 사로잡아서다. 영화는 일흔 살 할아버지와 일곱 살 손자 덕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덕구 할아버지는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며느리도 없이 두 손자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 턱이 없는 덕구는 그 나잇대 애들답게 돈가스가 먹고 싶다며 투덜대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 영화는 이런 평범한 서사를 반복하며 러닝타임 내내 단조로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나 지루하기는커녕 갈수록 눈은 벌게지고 코끝은 찡해진다. 특히 덕구 할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덕구와 함께하는 평범한 순간들이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다. 눈빛만으로 먹먹함을 자아내는 이순재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시청 전 손수건 준비는 필수다.
2. 로망 (Romang, 2019)
수십 년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황혼에 접어들 무렵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부부를 보면, 어떤 역경 일이 닥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치매는 고난에 면역력이 있는 이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시련이다. 특히나 부부가 함께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면 절망의 깊이는 배가 된다. 영화 ‘로망’은 몸도 마음도 닮아가는 45년 차 부부가 치매 판정을 받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존 치매 영화와 달리 ‘부부동반 치매’라는 새로운 소재로 고령화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이순재는 자신보다 더 빨리 치매가 악화되는 아내의 곁을 지키는 택시운전사 ‘조남봉’ 역을 맡아 노년기 애틋한 사랑을 절절하게 녹여냈다. 연기 경력 도합 110년이 넘는 이순재와 정영숙의 관록이 빛나는 부부 연기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3. 굿모닝 프레지던트 (Good Morning President, 2009)
“야동 나와라, 야동!”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를 기억한다면 이순재가 정극 뿐 아니라 코믹 연기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재치와 능청은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도 빛을 발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서로 다른 세 대통령의 사적인 고민과 삶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퇴임을 앞둔 노년의 대통령 ‘김정호’(이순재)는 244억 복권에 당첨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당첨금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남 대통령 ‘차지욱’(장동건)은 첫사랑 앞에서 마냥 수줍은 청년이 된다. 여자 대통령 ‘한경자’(고두심)는 철없는 남편의 대책 없는 내조로 이혼을 고민한다. 영화는 대통령을 진중하고 거리감 있는 이미지로 묘사하던 기존 영화와는 달리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로 캐릭터들의 인간미를 극대화한다. 울다가 웃으면 곤란하니 앞서 소개한 영화와는 다른 날에 시청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