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했다. 양양고속도로를 개통했다는데 같이 한번 떠나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대상이 조금 특이했다. 내 절친도 가족도 아닌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란다.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알게 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번개(갑작스럽게 만나자고 제안하는 것)를 외친 것! 중년 남녀 낯선 이들의 동반 여행! 과연 얼마나 모이고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페이스북 친구들과 난생 처음 마주하다
제보를 받았을 때 과연 이 도발적인 작전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메일을 통해 건네받은 파란하늘 바탕위에 ‘You′ve Arrived’라고 쓰인 포스터가 왠지 모르게 낭만적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었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친구는 아니다. 전 세계 사람이 모인 페이스북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류한다. 모이자고 해서 호응하고 따를 사람이 과연 있을까? 더군다나 페이스북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과 사이좋은 댓글을 주고받는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은 일단 제쳐놓고 이 일을 추진한 이명재씨에게 물어봤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한민국의 중년들이라면 페이스북을 통해서라도 이런 작당모의(?)가 가능할 법도 하다.
“우리 나이대에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은 학교 동문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요. 제 페이스북을 봐도 대학 동문을 시작으로 그들과 아는 지인의 지인들이 제 페이스북(이하 페친)친구거든요. 만나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성향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죠. 차 한 대 정도 올까 예상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왔어요. 일이 커진 거예요.”
교육업체를 운영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 이명재씨는 연세대학교 공대 출신. 대부분이 연대 동문과 그들의 친구로 구성됐다. 2012년에 페이스북을 시작했는데, 현재 600명 정도가 페친으로 등록돼 있다.
예상을 깨고 다양한 페친들 모이다
2주 정도 기획했다는 이 모임에 생각보다 다양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속속 찾아들었다. 이명재씨는 이 모임을 위해 사전 답사까지 하는 성의를 보이며 페친들의 구미를 끌어당겼다. 7월 20일 오전 10시 반경. 만남의 장소였던 가평휴게소에서 드디어 페친들이 얼굴을 마주했다. 그저 페이스북으로만 인사를 나눴던 이들과의 인사는 영락없는 맞선이다. 동문들의 등장으로 동창모임 같아 보였다. 다들 어디서 찾아왔는지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홍삼매장 사장님, 수학선생이 싫다는 수학선생님, 음대 나온 댄스스포츠 강사에 체대 출신 심마니, 알프스 스키장을 설계한 현직 농부 등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구성은 찾아보기 힘들 것만 같다. 최대한 성향을 보고 가리고 가렸다는데 인터넷 세상은 색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이날의 일정은 아주 간단했다. 새로 뚫린 양양고속도로를 달려 가진항에서 물회를 먹는다. 자기소개 뒤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한 뒤 상경. 끝. 놀라운 일은 이 모든 걸 고속도로 개통으로 하루 만에 끝냈다는 사실이다.
‘페뮤니티’로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
이명재씨는 이런 모임을 통해서 일종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재능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페이스북과 커뮤니티를 합쳐 ‘페뮤니티’라는 용어도 이미 만들어놓았다.
“일종의 인맥으로 소통을 하자는 것입니다. 페이스북으로 만난 공동체 내의 재능 품앗이 같은 것이죠. 가령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니까 그것에 대해 나눠주고, 누구는 여행작가니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주고요. 외부에서 누군가를 모실 것 없이 모임 안의 전문가와 함께 심포지엄도 할 수 있고 이렇게 여행도 했으면 합니다.”
중년의 나이.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세대이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니란다. 성향이 맞았으면 좋겠고 서로 검증된 사람끼리의 어울림을 원한다고 이명재씨는 말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온라인 중심으로 인맥을 이뤄가는 세상이니만큼 페이스북에 능하고 나름의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루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모임을 자극했던 말 ‘You′ve Arrived’는 ‘당신은 도착했다’라는 의미다. 이번에는 어딘가를 향해가서 도착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언제든지 그 목적과 행동은 또 다르게 바뀔 수 있다고 이명재씨는 말했다.
“뒤에 오는 동사를 바꿔가면서 유동적이고 다양한 모임을 계획하고 싶습니다. 회원의 개념은 아니지만 SNS 플랫폼을 이용해 뜻을 같이하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들과 함께할 생각입니다. 봉사는 안 할 겁니다. 즐길 거예요(웃음).”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인들은 기계처럼 일해왔다.
그게 한국을 2차 산업의 승자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계처럼 일하는 인간은 기계를 이기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인간으로의 회귀,
그것은 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천천히 가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멍청해져야 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보다 양심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회,
똑똑하지 않아도 재미있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사회,
그리고 도덕적인 사회,
그것이 바로 창조적 사회이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이, 한국인들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렇다고 믿고 싶다.
30대 중반인 아들이 오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야! 물무지개다!"
감탄하며 어린 아들의 고사리 손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아주 작은 물웅덩이에 차에서 떨어진 기름이 번져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였다. 아들은 필자를 깨우쳐줬다.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보라고.
"엄마 아까부터 올챙이들이 계속 내려오고 있어요."
"어디? 어! 정말이네?"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버스 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이 정말 고물고물 움직이는 올챙이 같았다. 비 오는 날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한 날이었다.
어린이는 모두 천재이고 시인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두 아름답고 신기하다.
어린이들과 같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는 축복의 시간이다.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엄마 나 내릴래."
"왜?"
"엄마 힘들까봐."
아들이 네 살 때였다. 퇴근해 힘없이 누워 있는 아들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펄펄 끓었다. 부랴부랴 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그런 말을 해서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평소에도 곰살맞은 아들은 필자가 안아주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필자를 더 꼬옥 안아주곤 했다. 아픈데도 엄마를 걱정해주던 아들. 아들의 고운 마음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가을 밤길
귀뚜라미 귀뚤귀뚤 우는 밤길을
나 혼자 걸어봅니다.
소리를 밟을까봐 조심조심
소리를 쫒아버릴까봐 조심조심
나 혼자 가을 밤길을 걸어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들이 쓴 시다.
'소리를 밟을까봐'라는 탁월한 표현에 감탄해 동료 국어선생님들께 보여드리니 타고난 시인이란다.
"엄마 저를 자유롭게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몇 년 전 아들이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고3때도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는 자율학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했다. 좋아하는 바로크 음악을 들으며. 어차피 공부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은 배움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피아노, 컴퓨터, 성악, 발레, 지점토, 홈패션, 영어, 수영, 일본어, 태권도, 미술 등 학원을 열 곳 이상 다녔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시켰더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학원 가는 게 싫다고 하면 언제라도 그만두게 했다.
"억지로 시키면 창의성이 나올 수가 없어요."
아들의 주장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욕심 많고 의욕이 넘쳤던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가 너무 하고 싶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하늘하늘 춤추고 싶었다. 피아노도 치고 싶었다. 정말로 미치도록 치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어느 것도 못해봤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즉시 배울 수 있게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필자의 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강렬한 의지 때문이었다.
"아들, 엄마는 한국에서 살아남을 테니 너는 일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열여덟 어린 나이의 아들을 홀로 일본에 보내며 비장한 심정으로 말했다.
"아드님은 분명 한국을 빛낼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될 거예요."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학생부장님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일본의 명문 게이오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IT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100세 시대엔 자산관리도 평생 동안 해야 한다. 평생학습처럼 평생 자산관리 시대다. 평생학습이 정신적·심리적 강장제라면 평생 자산관리는 재무적·경제적 예방주사이자 영양제다. 지금까지 일만 하면서 살아온 것이 억울해 앞으로 열심히 놀고 싶은데 자산관리를 평생 하라니…. 원통한가? 그러면 곤란하다. 평생 자산관리는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인생을 보다 의미있고 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의식주는 당연한 일이고 사회활동을 하는 데도 돈이 든다. 노후에 몸이 아파도 큰일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평소 건강관리를 하는 데도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아무리 초연해지려고 해도 돈이 없으면 건강도 챙기기 힘들고 하고 싶은 일 하기도 어렵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
특별한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돈 걱정 없는 노후의 삶을 바란다. 특별한 사람의 대표적 사례는 톨스토이다. 그는 돈을 매우 싫어했으며, 평생 가난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돈이 그를 너무 사랑해 한 번도 가난해진 일이 없었다. 결국 그는 가난한 삶을 찾아 길을 떠났고 객사하고 말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돈을 매우 좋아했으며 평생 부자를 꿈꾸었다. 글도 돈을 벌기 위해 썼으며, 선금을 주지 않으면 작품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는 물질적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인 두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을까? 톨스토이는 돈이 마를 수 없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그 재산을 물려받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원고료를 모두 도박으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 기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추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박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다.
톨스토이가 모든 재산을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가 건전한 삶을 살았다면 꿈을 실현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꿈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오! 저런!’과 ‘오! 이런!’
“자식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오! 저런!’을 모릅니다.” 로 잘 알려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본을 여행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이 그에게 해준 말이다. ‘오! 저런!’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런 극단적인 일 말고도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단말마처럼 ‘오! 이런!’을 내뱉는다. 리스크 관리는 바로 ‘오! 이런!’의 빈도를 줄이는 일이다.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노후자산 관리의 핵심은 돈과 죽음의 경주에 있다. 다시 말하면 돈의 고갈 시점이 더 빠르냐, 생명의 소진 시점이 더 빠르냐를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돈과 죽음의 랠리는 흔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비교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것은 토끼가 도중에 잠을 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과 죽음의 경주는 다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없다. 돈은 빠져나가는 속도는 너무 빠르다. 쉬어가는 법도 없다. 가끔은 키다리처럼 보폭이 커지거나 아예 도약대를 딛고 날아오르는 체조선수처럼 큰 점핑을 하기도 한다. 그 속도와 높이를 쉽게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 생명의 소진 속도는 너무 느리다. ‘오! 이런!’
돈과 죽음의 경주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추거나 돈 뭉치를 크게 만들면 된다. 많은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수익률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한다. 자산관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산관리는 소득과 지출 수준, 자산과 부채 규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2040세대에게도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고, 5070세대에게도 수익률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산관리의 무게 중심이 2040세대는 수익률에, 5070세대는 리스크 관리에 둬야 한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말하면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5070세대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 3가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5070세대는 현금 유입이 급감하거나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을 하면 월급이 끊어진다. 퇴직 후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돈 뭉치를 키우기 위해 수익률 높은 곳을 찾아 기웃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될 수도 있다. 별일 없으면 다행이지만 리스크가 터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키우려고 한 돈 뭉치는 더욱 쪼그라들고 생활은 불안해진다. 현금이 계속 유입되는 2040세대는 리스크가 터져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그 자산을 사들임으로써 가격상승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이른바 물타기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금 유입이 급속히 줄어드는 5070세대는 그럴 여유가 없다. 수익률보다는 리스크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둘째 급감하는 현금 유입에 비해 지출의 규모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금 유입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출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고정비에 가깝고, 나이가 들면 몸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한다. 게다가 장성한 자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더해지면 설상가상이다. 노후가 길어진 만큼 지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만약 연금이 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장기적으로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자산관리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변화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기술의 수용 속도를 보면 라디오 38년, TV 13년, 아이팟 4년, 인터넷 3년, 페이스북 1년, 트위터 9개월 등이다. 변화를 이끄는 신기술에 대한 수용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세대를 가르는 시간 기준 역시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세대를 구분할 때 30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20년에서 10년으로 짧아지더니 최근에는 5년까지 짧아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4~5년이면 세대 간의 차이와 거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변화는 곧 리스크다. 자산관리에서 리스크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이면, 계곡이나 바닷가 인근 지역 축제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먹거리 관련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이러한 축제 일정은 우연히 광고를 보거나 현수막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놓치기 십상이다. 흥미롭고 볼거리 가득한 전국 축제 일정을 모아 보기 쉽게 제공하는 앱 ‘헤이페스티벌’을 이용해보자.
SNS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1. 앱 다운로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헤이페스티벌(또는 heyfestival)’을 검색, 무료로 다운로드한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계정으로 회원가입 가능하다.
2. 실시간 베스트 10
홈 화면에 ‘실시간 베스트 10’ 축제 정보가 나온다. 관심 있는 일정을 누르면 축제 상세 정보 및 축제기간 날씨, 구글지도, 리뷰 등을 볼 수 있다.
3. 내 주변 축제
홈 화면 하단 오른쪽에 ‘내 주변 축제’ 버튼을 누르면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열리는 축제 정보 목록을 보여준다(전방 1·3·5·10km 이내로 선택).
4. 테마축제
메뉴에서 ‘테마축제’로 들어가면 지역별(도별), 카테고리별(음식·특산물·계절·자연·문화·스포츠·공연·전시 등) 축제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5. 추천코스
앱에서 제공하는 추천코스를 보여준다. 축제 일정을 토대로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이나 맛집정보, 즐길거리 등을 곁들여 소개한다.
6. 월별 축제
홈 화면 상단 왼쪽의 메뉴 목록에서 ‘월별축제 한눈에 보기’를 누르면 월별로 열리는 축제 정보를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다.
“엄마, 이 오빠 알아? 이 오빠 엄마가 엄마 안다던데?”
교회에 다녀온 딸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얘, 민철이 아니야?”
“맞지? 맞지? 오빠랑 얘기하다 우리가 옛날 살던 동네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네도 거기 살았다고….”
민철이 엄마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팝송을 함께 듣고, 디제이가 있는 빵집에 들락날락했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친구가 결혼해서 외국으로 떠났다가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 친구 소식을 딸을 통해 듣게 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당장 연락을 하고 단짝 시절로 돌아갔다.
여의도에 사는 친구네 집은 잘 꾸며져 있었다. 현대적인 가구와 중국풍의 믹스매치가 세련돼 보였다. 거기다가 유럽이나 미국에 갈 때마다 사온 소품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필자는 친구의 세련된 감성과 친구가 만나는 품격 있는 사람들에 매료됐다.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부터 바빠졌다. 함께 가는 곳도 많아지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친구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물건을 내보였다. 필자가 전에 살던 생활 방식과는 전혀 달랐지만 고맙고 즐거웠다.
어느 날 친구가 집 앞으로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 나갈 수 없다고 하니 얼굴만 보고 가겠다고 찾아왔다. 친구는 부스스한 필자의 모습을 보더니 “차 타고 드라이브 좀 하면 나아질 거야” 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날 친구를 거절하는 게 힘들었던 필자는 조금씩 친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필자가 홍콩 여행을 가게 됐다. 심천에서 수년을 살았고 홍콩을 밥 먹듯 드나들었던 친구는 최신 가이드북과 옥토퍼스카드(선불카드)를 챙겨주며 자기가 홍콩 맛집을 정리해서 주겠노라 했다. 필자는 친구의 말을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조용히 홍콩엘 다녀왔다. 문제는 홍콩 여행을 다녀온 후에 터졌다. 적극적인 성격의 친구는 이모저모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별일도 아닌데 뭐”라고 말한 필자의 대답이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장문의 문자로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전해왔다. 필자는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가까워지면서 생활에 활기도 생기고 재밌는 일도 많았지만 끌려다니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필자만의 여행을 하고 싶었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그 후 누가 잘못한 것도 없이 서로 상처를 받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오히려 친구를 안 만나니 홀가분했다. 그동안 손에서 놓았던 책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편안함을 되찾았다.
소노 이야코의 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집 주변을 둘러싼 나뭇잎과 가지를 손질했다. 통풍이 나쁘면 집이 썩고 그 집에 사는 사람도 병에 걸린다고 믿으셨다. 그 믿음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깊이 뒤엉킬수록 서로 성가스러워진다. 살다 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고 어려울 때 약간의 거리를 두고 관계를 통풍하는 일 그것이 삶을 행복으로 이끌고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현명하게 관계를 끊는 일은 아직도 고민거리다. 페이스북에서 ‘알 수도 있는 친구’에 그 친구 이름이 뜨면 아직도 깜짝 놀라니 말이다.
‘정해진 둥지도 없어 아무 데나 누우면 하늘이 곧 지붕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 흔들리는 풀잎 소리, 흐르는 도나우 강물이 그저 세월이리라. 우린 자전거 집시 연인이다.’ 최광철(崔光撤·62) 전 원주시 부시장이 유럽 자전거 횡단 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의 여정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아내 안춘희(安春姬·59)씨다.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언제 어디서나 나란히 함께하는 두 사람의 유유자적 여행기를 들어봤다.
최광철 전 부시장이 50세가 되던 해의 어느 날, 부부는 여느 때처럼 한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데, 한 청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흙으로 범벅된 청년의 자전거를 본 남편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전거가 흙투성이라 물어보니까 산악자전거라는 거예요. 어? 왜 위험하게 자전거를 산에서 타지? 이상하게 생각했죠. 조금 이따가 그 청년이 다시 자전거를 타고 터널로 달려가는데, 그 뒷모습이 참 터프하고 멋져 보였어요. 그러고 조금 지나니 뭔가 아쉽더라고요. 우리는 그런 것도 못 누렸는데 나이가 들어버렸잖아요. 근데 아내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길로 아내랑 같이 가서 자전거 두 대를 질러버렸죠.”
인생 2막의 ‘도전’, 인생 1막으로부터의 ‘도피’
우연한 기회로 취미를 찾은 부부는 전국 방방곡곡을 달리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10년 후, 남편은 은퇴를 앞두고 인생 2막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은퇴를 하고 나면 어떨까? 나름 부시장이라는 직책으로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환경이나 생활리듬이 바뀌면 적응할 수 있을까?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직장 동료라도 만나면 우울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이곳(원주)에서 그대로 지내는 게 영 가시방석처럼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고민 끝에 그가 찾은 돌파구는 ‘자전거 세계일주’였다. 영혼의 동반자이자 자전거 파트너인 아내도 함께 가기로 했다. 은퇴 후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일찍 떠나고 싶었다. 퇴직일은 2016년 6월 30일, 그로부터 보름 후인 7월 16일을 디데이(D-day)로 잡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해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 영국을 가로지르는 3500km 횡단 종주를 목표로 하고, 여행 기간은 3개월로 정했다. 부부가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도전에 감탄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도전’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다고 말하는 남편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인터뷰도 많이 했지만 아직도 그 계기에 대해 스스로 되묻곤 해요. 남들은 은퇴하고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도 가고, 더 편하고 고상하게 여행을 즐기는데 난 왜 그 험난한 여정을 택했을까? 그동안은 누가 물어보면 도전이나 열정처럼 그럴싸한 이유를 댔는데, 사실 그보다는 현실도피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공무원 생활을 하며 평탄하게 지내왔는데, 뭔가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보고 싶었어요. 그런 담금질의 기회를 얻고 나면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고, 막연하게나마 새로운 희망이 보이리라 생각했죠.”
남편에게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아내에겐 ‘남편’ 그 자체가 이유가 됐다. 오랜 시간 자전거를 취미로 삼았지만, 유럽 횡단은 꿈도 안 꿨다는 아내다. 낯선 환경에 장기간 해외여행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웠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내의 건강이었다. 떠나기 3개월 전, 허리에 통증이 와서 병원을 찾은 아내는 척추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자전거를 무리하게 타지 말라는 주의를 받은 터라 무작정 일정을 강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리려던 그때, 아내는 병원에서 두 달 치 진통제를 처방받아왔다. 체념 섞인 비장함으로 그렇게 무리수(?)를 던진 부부는 예정대로 여행을 떠났다.
부부가 함께 쓰는 명함
유럽 자전거 여행을 성공리에 마친 그들은 다음 해에 동북아 자전거 횡단 길에 올랐다. 첫 여행의 두려움과 낯선 자신감과 희망으로 채워졌다. 점점 탄력이 붙어 최근에는 ‘달려라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뉴질랜드를 누비고 왔다. 당시 기자와의 첫 통화에서 “뉴질랜드에서 아내와 자전거 타고 있어요!”라고 말하던 최 전 부시장의 건강한 음성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만난 부부의 건강한 미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똑같은 헬멧에 똑같은 점퍼, 똑같은 아웃도어를 입은 부부는 똑같은 명함을 내놓았다. ‘수상한 여행, Bike Bohemian 최광철·안춘희’라고 쓰여 있는 부부명함이다.
“영화 를 보면 칠순 할머니가 우연히 청춘사진관에 들어갔다가 20대로 변하거든요. 다시 젊음을 만끽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 여행이랑 콘셉트가 맞더라고요. 그래서 ‘수상한 여행’이라고 지었어요. 직장이나 직함 대신 자전거 집시 ‘바이크 보헤미안(Bike Bohemian)’, 그리고 나와 아내의 이름을 넣었죠.”
‘소박하고 쾌활하게 유랑생활을 하면서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아가는 자전거 여행 부부’라는 의미가 담긴 명함이라고. 새 명함으로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남편처럼, 아내 역시 명함이 생기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동감을 느끼며 산다.
“잠깐 직장생활을 하긴 했지만, 3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다 보니 명함이 익숙하지는 않았어요.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죠. 남편 덕분에 명함이 생겨서 요즘엔 어디 가면 나도 내 명함이라고 주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 뭔가 더 의미부여도 되는 것 같고, 남편이랑 함께 쓰는 명함이라 그런지 더 좋더라고요.”
그런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뿌듯해지는 남편이다. 최 전 부시장은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들처럼 부부명함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얼핏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한 건데, 막상 만들고 보니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이 들으면 주책없다 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동행할 사람인데 같은 명함 쓰면 좋잖아요. 직장생활 할 때도 상무든 대표든 그의 아내 누구 이렇게 써놓으면 어때요. 그게 뭐 나쁜가요? 부부는 일심동체인걸요.”
시간이 지배하던 일상을 벗어나다
명함에 적힌 ‘보헤미안’이라는 수식어처럼, 해외여행을 다니며 그야말로 집시의 삶을 살았다는 그들이다. 가고 싶은 곳으로 달리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미션은 단 하나, 90일 안에 최종 목적지인 영국 서쪽 대서양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유유자적하고 낭만적인 모습에 부러움을 사는 그들이지만,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고 한다. 특히 38년 공직생활에 몸담아온 남편에게 자유란 출퇴근보다도 낯선 존재였다.
“9시에 출근하고, 9시 반에 회의하고, 10시에 기관 협의하고…. 그렇게 30분, 1시간 단위로 하루를 살았어요. 내가 시간을 관리한 게 아니라 시간이 나를 관리했던 거죠. 특별한 게 없는데도 6시엔 호텔에 도착해야지, 8시엔 저녁을 먹어야지. 그런 시간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거예요. 6시에 호텔에 가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나? 누가 나를 기다리나? 아직 배가 안 고픈데 저녁 좀 늦게 먹으면 어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조금씩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바로 보헤미안의 삶’이라며 아직은 온전히 그 자유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 과정에 있으니, 점점 더 좋아지리라 희망한다. 일상에서의 탈피는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익숙했던 배우자의 새로운 면모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새벽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 아내 얼굴을 봤는데 ‘어? 이 사람이 누구지?’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롭고 낯설 때가 있어요. 여행을 하다 보면 ‘여기가 어디더라?’ 그런 생소함이 들기도 하고요. 내 환경이나 의식이 완전히 탈태됐다고 할까? 직장생활 할 때는 나는 나대로 일하느라 바쁘고, 아내는 아내대로 혼자 집에서 뭔가를 했잖아요. 우리는 텐트생활을 많이 했는데, 텐트는 혼자 개고 펴기가 쉽지 않아요. 서로 마주보고 양쪽 귀퉁이를 잡아야 접을 수 있고, 다시 펴는 것도 함께해야죠. 그렇게 함께하는 것들이 많아지니 전보다 더 가까워진 기분이에요.”
아내 역시 “때론 남편이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며 알콩달콩 장단을 맞췄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이국에서 남편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낯선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와인 한 잔은 연인들의 데이트처럼 로맨틱했다.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마오!
모든 순간이 그렇게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텐트에 비가 들어 눅눅한 채로 잠들어야 하는 날도 있었고, 밤늦게 길을 잃어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무더운 날씨에 오르막길을 오르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우격다짐해서 온 건데 아내가 후회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집에 가고 싶지 않냐, 힘들지 않냐’ 못 물어보겠더라고요. 나도 힘든데, 아내는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면 대번에 돌아가자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럼 내 마음도 약해지니까, 더 못 물어봤죠.”
애써 힘든 줄 알면서도 마음을 감춘 남편의 마음을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돌아갈까?’ 이렇게 묻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바랐어요. 그렇게 물어보면 정말 가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 그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지 잘 아는데, 나 때문에 포기하게 할 수 없었어요. 만약에 내가 집에 가자고 했으면 다 접고 왔을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힘들어도 절대 그런 나약한 소리는 하지 않았죠.”
부부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했던가. 함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꾹꾹 감춰뒀던 속마음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보헤미안 부부처럼 행복한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있을 터. 그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은퇴하고 배우자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40~50대부터 함께 취미생활도 하고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시간이 나면 배드민턴을 하든 탁구를 하든 작은 취미활동이라도 함께하길 권해요. 그리고 자유여행을 가게 된다면 너무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가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거기에 맞추느라 재미가 없거든요. 큰 흐름을 갖고 함께 겪어가면서 즐거운 흔적, 또 조금 힘든 흔적을 남겨가면서 추억을 만들다 보면 더 자유롭고 신선한 여행이 될 거예요.”
오랜만에 대학 동창을 만났다. 충무로에서 만난 친구는 예전에 비해 살이 조금 찌고,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난 것 외에는 걸음걸이도 말투도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치페이를 하던 대학 시절과는 달리 자기가 먼저 달려가서 계산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커피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뭐 마실래?”
“으~~음. 오늘은 달달한 카푸치노.”
“엉? 그런 커피도 마셔?”
카푸치노를 마시는 일이 무슨 큰일이라고 놀란 눈으로 필자를 바라보는 친구를 향해 “응 그때그때 달라”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 한 잔씩 시켜놓고 철없던 대학 시절 얘기를 했다. 궁금했던 옛날 일들을 들추며 “그땐 왜 그랬어?” 하고 묻기도 하고 당시에는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는 “아~ 그랬었구나” 하며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그 시절 누가 누구를 좋아했고, 어떤 남학생이 어느 여학생을 집까지 바래다줬는지, 그러다가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 요즘에는 어떻게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는지, 실타래 풀리듯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학과 일에 적극적이었던 친구 덕분에 몰랐던 관계들도 많이 알게 돼 놀랍고 신기했다.
“난 그때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필자의 말에 친구가 배시시 웃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젠 좀 자주 보고 살자는 말을 주고받은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았다.
오늘, 드디어 첫사랑을 만났다. 10여 년 만에 만났지만 워낙 친하게 지냈던 터라 어색함이 없었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며 학교 때 이야기와 친구들 근황으로 수다를 떨고 다음번에는 선배들과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대학 1학년 영어시간에, 옆자리에 앉아 대학노트에 장 콕토와 김춘수의 시를 적어주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밑에 적어준 한 귀절이 생각난다.‘까만 커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난 갓 스물의 나이에 커피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블랙만 마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르겠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사이에 필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그가 맛도 제대로 모르는 까만 커피를 마시며 가슴을 졸이는 동안에, 필자 또한 까만 커피를 좋아하던 첫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첫사랑앓이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청춘을 함께한, 찬란히 아름답게 남아 있는 그날들이 있다는 걸 그 친구에게 말해줄 날이 올까?
포털 서비스의 기사 아래에는 하루에도 수천,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다. 상당수의 댓글은 자극적 표현의 비난이 주를 이룬다. 살다 보면 내가 남기게 되는 디지털 흔적은 생각보다 방대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정치적 성향이 바뀌어 특정 정치인을 감쌌던 댓글을 다 지우고 싶다면 혹은 죽기 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자손에게 내가 쓴 댓글들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좋은 기억, 좋은 흔적만 남기고 싶거나 애써 남겨놓은 글과 사진 등의 콘텐츠를 유지하고 싶을 때 보존하는 방법이 있을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유산은 이제 새로운 유망직종에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가 됐다. 디지털 장의사란 쉽게 말하면 세상을 떠났거나 곧 떠날 사람들이 살아생전 인터넷에 남긴 다양한 내용을 청소해주는 직업이다. 사람들이 온라인에 남기는 흔적들은 생각보다 방대하고 다양하다. 네이버밴드나 다음카카오의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에 남겨놓은 것들에서부터 포털 서비스의 카페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써놓은 의견이나 글, 사진들까지 결코 적지 않은 흔적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친구와 주고받은 이메일은 가장 대표적인 ‘흔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흔적들을 사후에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다. 임종학(Thanatology) 전문가들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유산을 정리하고 죽기 전 해야 할 것들을 버킷리스트로 적어보는 것만큼이나 신상 정리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잊힐 권리의 행사
만약 ‘잊힐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기 전 내가 완벽하게 잊히길 원한다면 이메일 등은 스스로 정리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뉴스에 달린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작성한 글들은 하나하나 찾아 지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오래된 글들은 일일이 찾기도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쓴 글이 남에게 인용되거나 무단으로 발췌되어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는 경우다. 이럴 때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기 때문에 발견한다 해도 삭제가 쉽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디지털 장의사다.
온라인 상조회사로도 불리는 이런 기업들은 비용을 받고 의뢰인의 ‘인생’을 온라인에서 지워준다. 대표적인 온라인 상조회사로 알려진 미국의 라이프인슈어드닷컴(www.lifeensured.com)은 가입한 회원이 죽으면 인터넷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받아놓은 유언을 확인한 후 고인의 흔적들을 지워준다. 비용은 약 300달러(한화 약 34만원) 정도다.
국내에서는 약 20여 곳이 성업 중이다. 고객이 문의를 해오면 온라인상에서 얼마나 많은 흔적이 검색되는지, 그중 삭제가 가능한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의뢰인에게 알린다. 비용은 업체마다, 삭제 범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몇십만원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유출된 동영상 등은 비용이 수백만원까지 올라간다.
최근에는 삭제 범위를 뉴스 기사까지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곽상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28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이나 중재 또는 법원 판결로 피해구제가 된 기사에 대한 포털 링크, 원본 기사 삭제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어, 입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지털 데이터도 ‘유산’
이런 디지털 흔적들은 단지 삭제의 대상만은 아니다. 상속의 대상이기도 하다. IT업계에서 바라보는 디지털 유산은 크게 계정과 데이터 두 가지로 나뉜다. 구글은 2013년 IT업계 최초로 상속제도인 ‘휴면계정관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용자가 대리인을 최대 10명까지 정해 미리 정해둔 기간 이상 접속하지 않으면, 대리인에게 데이터를 이관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권한 상속자는 필요에 따라 계정을 지울 수도 있다. 이와는 별개로 사망자의 개인정보와 사망증명서,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 등으로 법적 검토 절차를 밟으면 계정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게 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사망하면 계정을 미리 정한 ‘상속자’에게 물려주는 상속기능을 2015년 도입했다. 계정 자체를 디지털 유산으로 본 것이다. 사용자가 사후에 자신의 계정을 관리할 사람을 미리 지정할 수도 있다. 사후 계정은 고인을 위한 디지털 추모관으로 사용할 수 있고, 지인들은 추모 글과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이때 고인의 글을 수정·삭제할 수 없고 고인이 나눈 일대일 메시지나 비공개 글 등은 열람 불가다. 상속자의 계정 관리 권한은 양도할 수 없다. 그러나 해외 IT업계의 이런 서비스는 국내에서는 해당사항이 없다.
현행 국내법은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선대의 디지털 자산은 상속인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사망이 확인되는 즉시 삭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사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규정해놓은 상태다. 이 때문에 유족이 고인의 계정을 상속할 법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는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계정을 양도하거나 상속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공개된 게시물을 백업해 유가족에게 제공하지만 비공개 글에는 접근할 수 없다. 계정 해제나 탈퇴는 가능하다.
만약 이런 흔적들이 사후에 방치된다면 어떻게 될까? 국내 인터넷 업체들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따라 1년 이상 접속하지 않은 사용자의 계정은 삭제하거나 분리 보관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1년 이상 접속하지 않으면 휴면계정으로 분리 보관하고, 그 기간이 3년이 넘으면 메일을 모두 삭제하고, 계정 정보는 초기화한다. 카카오톡은 휴면계정이 된 후 4년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카카오 계정과 개인정보를 모두 삭제 처리한다.
일부에선 계정 정보를 자손에게 전해주고 유지하도록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 활동하는 것과 같다”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디지털 유산 관리
1 가족이 본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될 만한 공개 글은 올리지 않는다.
2 카페나 커뮤니티 사이트 탈퇴 전 게시물을 삭제한다.
3 주민등록번호 클린센터(www.eprivacy. go.kr)를 이용해 불필요한 사이트 탈퇴.
4 사망 전에 상속 범위와 사후 활용 방안에 대한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5 상속자가 기본적인 계정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조치한다.
5070 시니어 매거진 는 최근 우리 사회의 중심축을 담당하며 주목받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고, 액티브 시니어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을 알아보기 위해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0대와 60대 32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이 중 본인 소득이 있고,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를 ‘액티브 시니어’로 정의했다.
여기에 액티브 시니어 중에서 연평균 가구소득이 1억원 이상, 즉 월 소득이 830만원 이상인 액티브 시니어들을 따로 구분했다. 이들을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라고 이름 붙이고 별도의 통계자료를 산출했다. 설문에 참여한 총 403명의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사고방식이나 구매패턴 그리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방법에서 50~60대 전체나 일반 액티브 시니어와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활자 매체 활용에 익숙
이번 전체 조사에서 고소득 시니어층인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가 대조군과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즉 정보를 어떤 태도로 대하며, 어떤 방식으로 접하고 또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한 조사였다. 만약 성공에 관한 교과서로 불리는 스티븐 코비의 이 국내에서 다시 쓰인다면 이 부분을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모든 미디어를 접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일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주간지, IPTV, 인터넷 등 모든 분야에서 이용률이 높았다. 심지어 라디오 청취도 적극적이었다. 다만 뒤처진 분야를 꼽자면 바로 TV와 케이블TV였다. 이러한 조사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보편적으로 ‘바보상자’라고 이야기하는 TV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거부감이 있지만, 활자 매체와는 익숙한 세대. 그러면서 첨단 미디어에도 반드시 적응하고 마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성공의 잣대를 돈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해도, 조사결과를 분석해 보면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거뜬히 소화
다른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영화 역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84.8%가 최근 1년간 극장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반면, 50~60대는 56.2%에 그쳤다. 라디오 청취에 대해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49.7%가 응답해 27.4%가 응답한 성인 평균과 차이를 보였다. 인터넷 활용도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가 높았다. 50~60대는 64.0%에 그쳤지만,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88.0%에 달했다. 이 부분은 다른 조사에서도 반영이 됐는데, ‘인터넷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답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43.9%로 역시 50~60대 평균(23.2%)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인터넷과 따로 떼어 말할 수 없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활용도 마찬가지. 이들의 SNS 활용은 48.7%로 절반 정도는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일반 50~60대는 23.2%만이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SNS의 활용도가 높을까? 조사결과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가 가장 좋아하는 SNS로 네이버 밴드(68.1%)가 꼽혔다. 카카오스토리(59.6%), 페이스북(36.9%), 블로그(13.5%), 인스타그램(7.6%)은 그 뒤를 이었다. 네이버 밴드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네이버 밴드의 기반인 폐쇄적 동호회 활동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내가 아는 지인들로 한정지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더 편안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젊은층이 선호하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활용도 눈에 띈다. 이는 해외 기반의 SNS에 거부감이 없고, 인적 관계를 국내에 한정짓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50~60대의 페이스북 이용률은 20.4%, 인스타그램의 이용률은 1.8%에 불과했다.
여가생활도 경제력 따라 차이 커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경제력과 직결되는 여가생활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소위 아직까지는 귀족 스포츠로 분류되는 골프가 대표적.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 중 10명 중 4명은(38.7%) 최근 1년 중 골프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이와 유사한 41.4%가 최근 1년간 골프웨어를 구입했다고 답했다. 연간 평균 라운딩 횟수는 16.49회였다. 또 해외 골프에 대한 경험 역시 15.6%로 적지 않았다. 뮤지컬이나 미술 전시회와 같은 문화생활에서의 차이는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최근 1년간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21.8%가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전체 50~60대 중에서는 2.9%만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숫자의 의미를 다시 계산하면 3299명 전체 50~60대 중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를 제외하면 뮤지컬을 경험한 시니어는 단 몇 명에 불과하다는 뜻이 된다. 엄청난 차이다. 시내 뮤지컬 극장에서 50~60대 시니어를 만난다면 그는 가구소득 1억 이상의 고소득자라고 단정지어도 거의 틀림이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
다른 문화 분야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비슷하게 나타난다. 독서량도 차이가 난다.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절반 이상(50.9%)이 최근 1년간 도서 구입 경험이 있다고 했지만, 50~60대는 18.2%만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1년 평균 구입 권수 역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8.9권이라고 했지만, 50~60대는 5.2권에 불과했다. 독서량 역시 차이가 나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최근 1년간 10.5권을 읽었다고 답했지만, 50~60대는 6.3권을 읽었다고 답했다. 1인당 평균 여행 경비를 묻는 질문에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평균 343만원을 사용한다고 말한 반면, 50~60대 전체는 평균 201만원이라 답해 상대적으로 빠듯한 경비로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선 ‘귀한 손님’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 성향 역시 남달랐다. 물건을 구입할 때 인터넷의 정보를 많이 참고했고(40.8%),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검색해본다고 했다(52.5%). 또 신문이나 TV에서 본 제품을 검색해본다는 의견(42.3%)도 모든 대조군에 비해 가장 많았다. 즉 물건 구매를 하기 전에 충분히 정보를 확인하고 꼼꼼하게 검토한다는 의미다. 제품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확인하지만 구매는 직접 한다. 장소는 바로 백화점. 최근 3개월 이내 백화점에서의 구매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76.2%가 그렇다고 답했다. 50~60대 전체(35.2%)는 물론, 액티브 시니어(37.6%)보다도 두 배 이상 높았다. 월 1회 이상 백화점을 이용한다는 응답 역시 확연하게 높았다(52.9%). 50~60대 전체는 15.7%에 불과했다. 이런 구매 패턴은 곧 실적으로 나타나서, 백화점 주요 고객을 지칭하는 VIP 혹은 MVG에 해당하는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20.2%에 달했다. 백화점별, 지점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갤러리아 백화점 VIP는 연간 2000만원 이상 구매실적이 있어야 하고, 롯데백화점 MVG의 경우는 1500만원 이상(본점·잠실점 2000만원)이 되어야 한다. 이런 대우는 은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은행 VIP 고객인가를 묻는 질문에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55.7%가 그렇다고 답했고, PB센터는 44.2%가 이용한다고 답했다.
연저육찜과 홍시죽순채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잘 조려진 삼겹살이 뺑 돌려진 연저육찜은 사진만 보아도 군침이 돌 만했다. 요즘 요리 배우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맛있겠다는 댓글은 물론 거기 어디냐고 묻는 전화도 받았다.
필자가 다녀온 곳은 국립고궁박물관 별관에 있는 수라간이다. 이곳 수라간은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를 지어 올리던 경복궁 내 수라간과는 별개로, 궁중음식을 가르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해 놓은 곳이다.
앞치마를 입고 앞자리에 앉아 임금님이 받던 수라상에 대한 간단한 강의를 들었다. 떡 벌어지게 차려진 12첩 반상에 전골상 까지, 저걸 임금님 혼자 어떻게 다 드시는지 궁금했다. 임금은 팔도에서 올라오는 진상품들로 차려진 밥상을 보고 나라 안의 형편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수라상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라 나라 안을 살피고 백성의 형편을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였던 셈이다. 임금님이 상을 물리고 나면 높은 상궁부터 차례로 그 상을 받아 먹고 물리면 또 그 상을 받아 먹기를 거듭하며 수라간 나인들은 밥만 지어 먹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궁중음식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난 후 직접 요리 실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글보글 끓는 조림장에 찐 돼지고기를 넣은 후 숟가락으로 조림장을 끼얹으며 간이 밸 때 까지 조린다. 졸이는 중간에 대추, 은행, 수삼과 향신재료를 넣고 지진 두부와 함께 조린다. 돼지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 접시에 담으면 연저육찜이 완성된다.
연저육찜을 하면서 홍시죽순채도 함께 요리했다. 고기와 채소를 채 썰고 데치고 볶는 복잡한 요리과정을 거쳐야 해 손이 많이 갔다. 만드는 과정을 통해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들어야 하는 귀한 음식임을 알 수 있었다. 완성된 연저육찜과 홍시죽순채를 나란히 놓고 자리에 앉아 시식하며 부드럽고 짭쪼롬한 연저육찜과 상큼한 홍시 죽순채의 고급스런 맛에 빠져들었다.
“수라간 최고 상궁이 되고 싶습니다”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궁에 있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상궁의 질문에 장금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수라간 최고상궁은 될 순 없지만 임금님은 어떤 음식을 드셨는지 알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교육안내로 가면 대상별 교육 프로그램이 안내되어 있다. 정통궁중음식을 배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수라간 최고상궁 과정 외에도 어린이, 성인, 가족이나 단체 등 생애주기별 여러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어 문화교육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