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죽기 전 온라인 기록 지우자, 디지털 장의사를 아시나요?

기사입력 2017-02-03 09:01 기사수정 2017-02-03 09:01

포털 서비스의 기사 아래에는 하루에도 수천,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다. 상당수의 댓글은 자극적 표현의 비난이 주를 이룬다. 살다 보면 내가 남기게 되는 디지털 흔적은 생각보다 방대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정치적 성향이 바뀌어 특정 정치인을 감쌌던 댓글을 다 지우고 싶다면 혹은 죽기 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자손에게 내가 쓴 댓글들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좋은 기억, 좋은 흔적만 남기고 싶거나 애써 남겨놓은 글과 사진 등의 콘텐츠를 유지하고 싶을 때 보존하는 방법이 있을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유산은 이제 새로운 유망직종에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가 됐다. 디지털 장의사란 쉽게 말하면 세상을 떠났거나 곧 떠날 사람들이 살아생전 인터넷에 남긴 다양한 내용을 청소해주는 직업이다. 사람들이 온라인에 남기는 흔적들은 생각보다 방대하고 다양하다. 네이버밴드나 다음카카오의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에 남겨놓은 것들에서부터 포털 서비스의 카페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써놓은 의견이나 글, 사진들까지 결코 적지 않은 흔적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친구와 주고받은 이메일은 가장 대표적인 ‘흔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흔적들을 사후에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다. 임종학(Thanatology) 전문가들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유산을 정리하고 죽기 전 해야 할 것들을 버킷리스트로 적어보는 것만큼이나 신상 정리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잊힐 권리의 행사

만약 ‘잊힐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기 전 내가 완벽하게 잊히길 원한다면 이메일 등은 스스로 정리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뉴스에 달린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작성한 글들은 하나하나 찾아 지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오래된 글들은 일일이 찾기도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쓴 글이 남에게 인용되거나 무단으로 발췌되어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는 경우다. 이럴 때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기 때문에 발견한다 해도 삭제가 쉽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디지털 장의사다.

온라인 상조회사로도 불리는 이런 기업들은 비용을 받고 의뢰인의 ‘인생’을 온라인에서 지워준다. 대표적인 온라인 상조회사로 알려진 미국의 라이프인슈어드닷컴(www.lifeensured.com)은 가입한 회원이 죽으면 인터넷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받아놓은 유언을 확인한 후 고인의 흔적들을 지워준다. 비용은 약 300달러(한화 약 34만원) 정도다.

국내에서는 약 20여 곳이 성업 중이다. 고객이 문의를 해오면 온라인상에서 얼마나 많은 흔적이 검색되는지, 그중 삭제가 가능한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의뢰인에게 알린다. 비용은 업체마다, 삭제 범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몇십만원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유출된 동영상 등은 비용이 수백만원까지 올라간다.

최근에는 삭제 범위를 뉴스 기사까지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곽상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28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이나 중재 또는 법원 판결로 피해구제가 된 기사에 대한 포털 링크, 원본 기사 삭제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언론계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어, 입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디지털 데이터도 ‘유산’

이런 디지털 흔적들은 단지 삭제의 대상만은 아니다. 상속의 대상이기도 하다. IT업계에서 바라보는 디지털 유산은 크게 계정과 데이터 두 가지로 나뉜다. 구글은 2013년 IT업계 최초로 상속제도인 ‘휴면계정관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용자가 대리인을 최대 10명까지 정해 미리 정해둔 기간 이상 접속하지 않으면, 대리인에게 데이터를 이관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권한 상속자는 필요에 따라 계정을 지울 수도 있다. 이와는 별개로 사망자의 개인정보와 사망증명서,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 등으로 법적 검토 절차를 밟으면 계정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게 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사망하면 계정을 미리 정한 ‘상속자’에게 물려주는 상속기능을 2015년 도입했다. 계정 자체를 디지털 유산으로 본 것이다. 사용자가 사후에 자신의 계정을 관리할 사람을 미리 지정할 수도 있다. 사후 계정은 고인을 위한 디지털 추모관으로 사용할 수 있고, 지인들은 추모 글과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이때 고인의 글을 수정·삭제할 수 없고 고인이 나눈 일대일 메시지나 비공개 글 등은 열람 불가다. 상속자의 계정 관리 권한은 양도할 수 없다. 그러나 해외 IT업계의 이런 서비스는 국내에서는 해당사항이 없다.

현행 국내법은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선대의 디지털 자산은 상속인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사망이 확인되는 즉시 삭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사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규정해놓은 상태다. 이 때문에 유족이 고인의 계정을 상속할 법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는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계정을 양도하거나 상속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공개된 게시물을 백업해 유가족에게 제공하지만 비공개 글에는 접근할 수 없다. 계정 해제나 탈퇴는 가능하다.

만약 이런 흔적들이 사후에 방치된다면 어떻게 될까? 국내 인터넷 업체들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따라 1년 이상 접속하지 않은 사용자의 계정은 삭제하거나 분리 보관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1년 이상 접속하지 않으면 휴면계정으로 분리 보관하고, 그 기간이 3년이 넘으면 메일을 모두 삭제하고, 계정 정보는 초기화한다. 카카오톡은 휴면계정이 된 후 4년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카카오 계정과 개인정보를 모두 삭제 처리한다.

일부에선 계정 정보를 자손에게 전해주고 유지하도록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 활동하는 것과 같다”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디지털 유산 관리

1 가족이 본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될 만한 공개 글은 올리지 않는다.

2 카페나 커뮤니티 사이트 탈퇴 전 게시물을 삭제한다.

3 주민등록번호 클린센터(www.eprivacy. go.kr)를 이용해 불필요한 사이트 탈퇴.

4 사망 전에 상속 범위와 사후 활용 방안에 대한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5 상속자가 기본적인 계정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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