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 동안 꽃샘추위 최강한파가 몰려온다는 뉴스가 약간의 공포감을 가져다주었다.
굳이 ‘최강’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련만......
여기서 ‘최강’은 추위를 대비하라는 경고성 예보라기보다는 이제 웬만한 자극적인 사건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 완전 무장을 했다.
아파트 현관문과 지하 주차장 입구까지는 불과 삼분 거리밖에 안되고 사무실 내 자리까지는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외부를 거치지 않고 올 수 있다.
그런데도 종일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목도리를 두르고 두툼한 코트까지 걸치고 나섰다.
내 또래 사람들 중에 어릴 때 따뜻하게 살았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마는
어린 시절의 겨울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온 몸이 오그라든다.
방안에서도 하얀 입김이 나오고 윗목에 놓아 둔 물그릇이 밤새 꽝꽝 얼어버리던 추위였다.
그래도 방학 때는 이불 뒤집어쓰고 방안에서 지내면 되었지만 개학 즈음의 초봄이 괴로웠다.
집에서 먼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니던 중학교 때 그 초봄 추위.
박박 깎은 머리에 교모 쓰고 면으로 만든 검은색 교복 하나 달랑 입고
새벽에 나서면 위아래 이빨이 다다닥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어릴 때 나는 몸도 약했고 혈액 순환도 잘 안 되는 체질이었다.
매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봄이 올 때까지 심한 동상에 시달렸다.
귀는 벌겋게 얼어서 주먹만 하게 커졌고 손가락, 발가락도 진물이 나고 퉁퉁 부었다.
발가락이 엄청 굵어져서 신발을 신기도 힘들었다.
동상은 아프기도 하지만 가려운 것이 더 괴롭다.
마땅한 동상약도 없던 시절 어머니께서는 밤마다 콩 자루를 내 손과 발에 채워주셨다.
동그랗고 노란 콩을 반 쯤 채운 신발주머니 같은 자루에 손을 넣으면 팔목을 묶어 주셨다.
양쪽 발도 양말처럼 콩 자루를 신고 잤다.
내가 뒤척일 때 마다 그 동글동글한 콩알들이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면서 내 발과 손가락 사이로 굴러다녔다.
간질간질 거리던 콩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다.
어머니께서 자루에 담아주시던 콩알 숫자만큼이나 많은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의 손등은 주름이 많고 윤기도 없다.
요즘 어머니 손을 보면 오십여 년 전 내가 만지작거리며 놀았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뼈만 앙상하던 손.
검버섯이 핀 손등 피부를 들어 올려 꼭 접어놓으면 다시 내려앉아 펴지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던 할머니의 손...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자꾸 더 높이 들어 올리곤 했었다.
이제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되었다.
육십을 앞에 둔 내 손은 겨울마다 채워 주셨던 어머니의 콩 자루 덕분에 참 곱다.
겨울 떠나보내고 봄을 재촉하며 창가를 소곤소곤 두드리는 비가 밤새도록 귓전에서 맴돈다. 어느덧 절기상으로 ‘우수’가 성큼 다가와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사위어가는 한 줄기 희망의 모닥불을 살려냈으면 좋겠다.
24절기중 두 번째 절기인 우수(雨水)는 봄으로 들어서는 입춘(立春)과 겨울 잠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驚蟄)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로 이때가 되면 추운 겨울이 가고 대지에는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겨우내 서해바다에서 모질게 불어대던 서풍한설(西風寒雪)도 주춤하고 훈훈함이 설핏 묻어있으니 조금은 살만하다.
이제야 봄은 오려나? 겨우내 나라 안팎은 시끌벅적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 모진 한파속에 수많은 촛불이 바람에 나부끼고 태극기가 맞불작전으로 세과시(勢誇示)를 하면서 서로에게 쏟아낸 혐언(嫌言)들은 공허하게 부딪치는 파열음이 되어 서민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만들었으며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흑백의 논리가 판을 치고 외눈박이사랑처럼 자신의 진영만이 옳다는 짝사랑식 막말을 쏟아부은채 표류하는 허송세월이 길어지고 있다. ‘배려’라는 단어는 이미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에게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 자신의 논리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반대편 사람으로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며 반쪽짜리 사회를 심화(深化)시켜 가고 있다.
인간은 어차피 사회성(社會性, social qualities)을 가지고 있기에 혼자서는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내기는 어렵다. 어차피 둘이상이 모여 살아가는한 사유(思惟)의 상이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상식과 보편, 관습과 배려를 모두 동원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의 핵심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각자의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해결되지 않는 시시비비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이지만 요즘은 초법적 발상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흔히 말하는 ‘떼법’이 ‘헌법’의 상위에 있는지 궁금하다. 뭐니뭐니 해도 편가르기식 정치를 등에 업고 무엇인가 변화를 설레발치는 수준 미달(?)의 정치인들의 영향으로 사회는 더욱 양분화 되어 갈등을 조장해 낸다.
이래저래 이번 겨울은 차가운 한파와 더불어 서민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봄은 언제쯤 오려나? 봄이 오기는 할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지만 이러 저리 표류하는 이 사회는 좀처럼 오는 봄을 두 팔벌려 맞이하려는 기세가 보이지를 않는다.
세상만물의 조화는 오묘한 것. 아무리 추운 엄동설한도 때가 되면 해동이 되고 나뭇가지에는 물이 올라 만물이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겠지. 혹독했던 지난겨울은 그 겨울에 묻어버리고 이제는 따뜻한 봄기운으로 삼천리 방방곡곡 대지를 물들였으면 좋겠다. 이 겨울의 갈등과 반목은 잠시 접어두고 꽃피는 봄이면 우리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마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금수강산은 우리나라만의 축복이요 선물이지 않겠는가? 자손만대에 물려줄 이 멋진 나라를 더욱 잘 가꾸고 꽃을 피워내 오늘을 살아내는 필자가 훗날 멋지고 아름다운 선조였다는 말을 후손들에게 들었으면 좋겠다.
매서운 한파가 며칠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차가운 날에 뜨거운 사랑 이야기 뮤지컬 한 편을 관람했다.
제목 ‘아이다‘는 이집트의 이웃 나라인 누비아 왕국의 공주 이름이다.
‘아이다’를 알긴 했지만, 그놈의 사랑이 뭐라고 가슴 아프게 이렇게 목숨까지 거는 사랑 이야기인 줄은 몰랐다.
‘아이다’는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 초연되었고 2012년까지 총 574회의 공연을 한 대표적 뮤지컬 작품으로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팝의 거장 앨튼 존과 음악의 전설 팀 라이스가 함께 완벽한 음악을 만들었고 고대 이집트가 무대이므로 의상이나 장신구가 매우 화려해서 듣고 보는 즐거움이 컸다.
이번 공연의 무대는 샤롯데 씨어터로 지난해 보았던 여러 대작 무대보다는 좀 작은 규모여서 뮤지컬이 어떻게 표현될지 관심이 갔는데 900개의 고정 조명과 90대가 넘는 무빙라이트가 섬세하고 아름다운 빛을 나타내었고 무대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800여 벌의 의상과 머리 장식 등이 어우러져 매우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벽화에서나 봄 직한 고대 이집트를 표현한 안무도 강인함과 섹시함, 처절함과 비장함을 역동적으로 표현해 춤의 마력에 빠져들게 했고 웅장한 음악은 가슴 속에 한동안 남았다.
이 작품은 무대, 의상, 조명, 안무 등 모든 면에서 현대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던 해 최고의 뮤지컬에 주어진다는 토니상 음악상과 그래미상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아서 작품의 훌륭함이 증명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운명 같은 애절한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다. 뮤지컬 ‘아이다’는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나일 강 변에서 시작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사랑 이야기다.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는 승전보를 울리며 귀국 항해하던 중 부하들이 잡아 온 누비아 포로들 가운데 끊임없이 반항하는 여인 ‘아이다’에게 관심을 두게 된다.
노예가 될 운명의 포로 사이에서 고귀하고 용감한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라다메스’는 이집트에 돌아와 누비아 사람인 부하 ‘메렙’에게 ‘아이다’를 자신의 약혼녀인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의 하녀로 보낼 것을 명령한다.
‘메렙’은 ‘아이다’가 누비아의 공주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지만, ‘아이다’는 자신의 신분을 감춰 달라고 부탁한다.
‘라다메스’ 장군은 9년째 약혼상태인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가 있음에도 자꾸만 노예 ‘아이다’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다’ 또한 끌려온 백성을 구해야 하는 신분임에도 포로가 되어 적국의 장군을 사랑하게 된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괴롭기만 하다.
한편 상큼 발랄한 이집트 공주 ‘엠네리스’는 ‘라다메스’의 사랑을 갈구하며 ‘아이다’에게 속을 털어놓는 사이가 된다.
어느 날 누비아의 왕이 잡혀 왔다. 감옥에서 만난 아버지와 ‘아이다’는 누비아 백성을 이끌고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누비아 왕과 누비아 포로들이 배를 타고 출발하려는 때 ‘아이다’는 ‘라다메스’를 보기 위해 동행하지 못하게 된다. 배만 타면 고향으로 갈 수 있는데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아이다’는 이집트에 남아 ‘라다메스’와 만난다.
‘라다메스’를 사랑한 ‘엠네리스’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그들을 잡아들인다.
병중인 이집트 왕 파라오는 그 둘을 죽이라고 하지만 ‘엠네리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이 여왕이 될 것을 선포하고 ‘라다메스’와 ‘아이다’를 한 공간에 넣어 매장하는 벌을 내린다.
큰 죄를 지었으니 살아날 길이 없는 그들에게 함께 죽을 수 있는 은혜를 베푼 것이다.
그 후 ‘엠네리스’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롭게 나라를 잘 이끄는 현명한 여왕이 되었다고 한다.
뮤지컬의 처음과 끝나는 부분에서 현대의 이집트 박물관이 나온다.
고대의 이집트 문화와 유물이 전시되는데 한 전시물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이 환생한 ‘아이다’와 ‘라다메스’라는 설정이 가슴 찡하고 전생에서의 인연을 잊어 서로 알아보지 못하니 애틋하기만 하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뮤지컬은 ‘아이다’ 보다는 ‘엠네리스’가 더 큰 비중을 가진 것 같다. 그만큼 사랑스러운 공주의 역할을 잘해 낸 가수 아이비에게 환호를 보낸다.
‘엠네리스’는 ‘라다메스’와 결혼해 그를 이집트 왕으로 만들려 했다.
사랑에 배신당했지만, 그 둘을 같이 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장면에서 한 왕국을 이끌 수 있는 여왕으로 큰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건 한 남자와 적국의 남자를 사랑한 죄를 진 공주와의 애절한 이야기 ‘아이다’가 가슴에 다가왔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가슴 저미는 사랑에 애틋함을 느낄 수 있는 시니어가 되어보면 어떨까? 한 번 권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2016년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앞두고 경제가 역주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장기 불경기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정이 마비되어 세상 밖을 내다보기 보다는 우리는 자꾸 안으로, 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시야가 좁아진 탓에 몇 달째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상황은 고용시장 한파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자리 씨가 말라가고 있어 금년 겨울은 더 추울 분위기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도 시원치 않은 판에 끝없이 이어지는 내수경기 침체로 인해 일자리는 한없이 줄어들고 있고, 자영업자는 매출이 줄어 아우성이다. 이 여파는 바로 서민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지난 12월 19일 자료에 의하면 273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하반기 현장 동향’을 점검한 결과 상반기에 비해 전반적인 경영 상황이‘악화됐다’는 중소기업이 44.6%로 조사됐고, 그 원인으로‘내수불황 장기화’를 가장 많이 꼽았다. 80% 이상이 이런 경영위기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근로자의 87.7%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어 이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인데 어떻게 2년을 참아야 할지 답답하다.
고용의 중심인 중소기업의 일자리 불꽃을 어떻게 다시 지필 수 있을까? 일자리를 이어줄 주체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쯤 일자리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을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가에 질문을 하고 싶다.
먼저 일자리에 있어 가장 심각한 부분이 청년 일자리이다. 왜냐하면 청년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니까... 청년실업률(15세~29세)은 11월 기준으로 8.2%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실업률이다.
지난 12월 21일 열린 '2017 경제위기 극복 대토론회'에서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어느 정도 격차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방 원장은 "그나마 상호 간에 이동이 활발하다면 괜찮은데 한국은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차이가 크다 보니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에 취업하기 위한 대기 행렬만 길어져 청년 실업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라는것이다.
한편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일자리 문제도 전반적인 제고가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 지표로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복지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국가 세금으로 메우는 것은 한계가 있고, 어느 시점에는 국가 운영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17 정유년은 대기업 보다는 고용, 일자리 문제를 중소기업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중소기업으로 크며, 일자리(취업, 창업)의 불씨가 되는‘벤처, 스타트업, 1인창업, 여성창업’성공률도 획기적으로 올라가야 한다.
기온이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갑작스러운 추위에 움츠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질환 중 하나는 근육통. 영하권에 날씨에는 근육과 혈관이 수축해 근육의 유연성은 떨어지고 혈액순환은 저하된다.
만약 그 통증이 등에 나타난다면 쉽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통증이 심한 ‘등 통증’의 원인을 살펴보면, 목이나 어깨 등 다른 부위에서 통증이 전이된 경우가 많다. 또한, 목과 어깨 등 인접 부위의 질환 증상이 등을 통해 통증으로 나타나면서, ‘등 통증’의 근본 원인을 찾기도 쉽지 않다. 등의 근육과 뼈, 관절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으며, 심한 어깨 질환이나 목 디스크가 등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등 통증은 비교적 후유증 없이 치료되는 질환. 하지만 치료를 소홀히 하거나 내버려 두면 만성 통증이 될 수 있고 지속적인 관절운동장애를 유발한다. 추간판탈출증 등으로 발전하거나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 수면장애, 피로, 짜증, 전신쇠약, 의욕감퇴, 우울증까지 나타날 수 있다.
등 통증이 근막동통증후군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막동통증후군은 신경학적 이상이 없음에도 어깨나 뒷목, 등의 근육이 뭉쳐 뻐근하고 쑤시는 증상을 겪는 것으로, 흔히 ‘담이 들었다’고 표현되는 질환이다. 처음에는 목 뒷부분이나 어깨 부위가 결리는 정도지만 점점 바늘로 찌르거나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통증 부위의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지며, 부위를 누르면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약간 불편한 정도이지만, 통증이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지속되면서 만성적인 통증을 유발하게 되는데, 어깨와 뒷목 통증을 호소해 어깨관절 질환이나 목 디스크로도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근막동통증후군을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잦은 스트레칭과 바른 자세 유지, 온열요법 등 적당한 운동을 들 수 있다. 가벼운 산책도 척추와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데 효과적이다. 걷기는 발바닥을 자극해 온몸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굳어져 있던 척추의 정렬을 바로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걷기를 하면서 햇볕을 쬐면 세로토닌의 혈중 농도도 높아지기 때문에 우울하고 무기력한 기분을 전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약 30분 정도 학교 주변을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 좋다.
세연통증클리닉 최봉춘 원장은 “근막동통증후군을 질환이라는 인식 없이 단순 근육통으로 여겨 치료받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내버려 두면 만성 통증이 될 수 있다”며, “짧은 휴식은 근육이 이완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오랜 시간 잠을 자거나 누워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다시 통증이 있는 주변의 근육을 경직시켜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통증에 민감해져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문 회장은 자신의 회사와 함께 문주장학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재단은 어느새 회사 자본금보다 더 큰 규모가 됐다. 이제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성취를 이루게 된 그가 어째서 그토록 사회 환원을 추구하는 걸까? 문 회장이 갖고 있는 돈과 사회, 그리고 시니어로서의 삶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준호 기자 jhlee@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 ‘노예’처럼 살았던 그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하게 가난했다. 후배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를 벌어 겨우겨우 필요한 돈만 메꿨던 생활. 2015년 매출액 4193억원을 기록한 MDM의 회장이자 한국자산신탁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국내 디벨로퍼 1세대 성공 신화의 주인공 문주현 회장의 20대 시절 얘기다.
가난한 사람이 돈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던 시절, 대학교 3학년 때 모 독지가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현재 200억 원가량의 기금으로 운용되는 문주장학재단을 갖고 있다. 2014년 기금 100억 원을 달성한 후 불과 2년 만에 그 두 배를 달성한 것이다. 재단은 2002년부터 초·중·고·대학생 175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1년에 장학재단을 세우니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 일을 안 하려나 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그러나 사람은 자기만족이잖아요? 내가 약속한 거고 신세를 졌는데, 해야지.”
문주장학재단의 수혜 대상자는 무조건 형편이 어려운 사람으로 선정된다. 그 외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다. 요즘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부도 더 잘하는 세상이다. 문 회장은 가난한 이들은 돈을 소중하게 쓴다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세상에 증명한 사실이다.
“장학 대상자는 웬만하면 바꾸지 말라고 해요. 다만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면 바꾸라고 하죠. 돈까지 대주는데 공부를 안 하는 건 기본이 안 된 거니까.”
돈이란 내 것이 아니다
문 회장은 장학재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장학재단을 하다 보니 나를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개를 안 해주고 좋은 일을 한다고 소개해줘요(웃음). 아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죠. 물론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회사보다 자본금이 더 큰 장학재단을 갖고 있어서 그렇겠죠.”
문 회장의 사회를 향한 지원에는 장학재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의 모교에 씨름부를 만들고 공공버스도 운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전국 우승도 다수 경험하는 강한 씨름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에 마련된 서울책방이 다시 문을 여는 데는 문 회장이 쾌척한 1억원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자바둑대회에는 2억원을 내놨다. 모교인 경희대학교에도 매년 1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가 갖고 있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인가? 내 것인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회로부터 얻은 거고,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리하라고 맡긴 겁니다. 이걸 갖고 자기 거라고 유세를 떠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이 돈이 내게 관리하라고 온 것은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놔야 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 사회의 양극화가 해소될 방법이 없고 시장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 문 회장의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그러한 진실을 우회해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가 유독 젊은이들에게 기부의 타깃을 맞춘 것도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자기 탓이 아닙니다. 대신 정신이 올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주장학재단은 예술계 쪽 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검토하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니 문화예술계 쪽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 있고 자질 있는 사람을 골라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상문학상’처럼 공모를 통해 권위가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아직 밑그림을 정확하게는 안 그렸지만 오페라, 소설, 악기 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재생,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인생 목적
최근 문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도심재생 사업이다. 그에게 시기가 괜찮은지를 물어보자 확신처럼 ‘해야 할 시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재생을 지금까지는 자기 지역, 구역 별로 민간에서 했는데 민간이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의 세계는 도시가 국가 브랜드입니다. 싱가포르, 홍콩, 도쿄, 뉴욕 등등을 봐요. 관광할 때 그 나라를 왜 가느냐는 겁니다. 관광은 자연관광과 도시관광으로 나눌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자연관광이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도시관광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도시 관광 국가로 만들려면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살 거주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신도시를 마구, 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 저성장기가 도래했다. 더 이상 신도시는 안 만들어질 것이라고 문 회장은 진단했다. 그렇다면 오래된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도시재생이 중요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문 회장은 발 벗고 뛰는 적극적인 ‘전도사’였다.
“공청회나 세미나를 하자, 우리나라의 발전 방향을 토론해보자. 하다못해 광화문, 테헤란로 등등으로 나눠 섹터 별로라도 하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민간과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도시 부동산은 대개 개인 소유라.”
문 회장은 우리가 아이디어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관광을 대개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로 가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가서 보는 게, 결국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지어 놓은 걸 보는 거예요.”
실로 예리한 한마디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개발과 보존은 공존해야 합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은 보존해야죠. 다만 재개발해야 하는 곳은 과감하게, 제대로 개발해야 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성공하면서 흔히 강남스타일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막상 강남을 가면 갈 데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밤이 되면 거리는 죽고 뒷골목만 살아난다. 문 회장의 주장대로 도로 옆에 문화공간을 배치하여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함으로써 진짜 ‘강남스타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설회사는 도면대로 짓고, 도면이 없으면 한 삽을 못 떠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디벨로퍼는 지휘자고 소프트웨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상상력을 실현하는 이들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종합부동산 금융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버타운, 도시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
“나이 들어 은퇴하면 인생에 낙이 없어요. 즐거움, 기쁨, 재미가 없어지죠. 젊었을 때는 뭐든 재미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손주에게 끌리는 거겠죠. 나도 늦둥이가 있어요. 지금 제주도에 있는데 ‘네가 아빠 희망이지’라고 말하곤 해요. 손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시니어이자 부동산 전문가로서 문 회장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실버일수록 도심으로 들어오고자 합니다. 전철, 공원, 병원 옆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손주들을 못 보기 때문이에요. 실버가 되면 외롭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전철역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어느 성공한 시니어가 하는 말이, 자식들이 손주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간다든지 하면 손주와 함께 있는 게 그렇게 즐겁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지방에 있으니 전화만 하고 안 와서 섭섭하다는 겁니다.”
문 회장은 실버타운을 짓는다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기능적인 구분을 꼽았다. 몸이 불편하여 간병인 등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들과 취미 생활 등을 할 수 있는 시니어 타운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두 영역을 합친다 해도 중간에 병원을 두어 병원을 중심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건 공통된 조건이다.
“실버타운은 구성원의 특성상 죽음과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젊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도시와 섞여 살아야 해요. 구분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장은 굉장히 성장할 것이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산다
문 회장은 올해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그에게도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있을까?
“사실 후회를 좀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내 청춘이 가버렸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연애를 잘 해봤겠어요? 당구도 못 치지.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삶 자체가 옆을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죠. 아내가 저에게 ‘음악을 알아?’, ‘그림을 알아?’ 하고 물어요. 그럼 저는 ‘몰라’라고 대답할 수밖에요. 저는 솔직한 얘기로 너무 안 해본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아요. 내 업무와 내가 하는 부분만 알지. 그래서 요즘은 정말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될 수 있으면 비행기로 6시간 이내로 끊어서 가려고 해요. 좀 더 많은 여행을 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을 위한 중요한 일이겠네요.”
문 회장은 아내가 자신을 보며 종종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일밖에 모르니까. 그런데 그는 일이 없으면 공허해지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문 회장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 부분을 일로 채우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그게 쉽게 안 돼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비빔밥이에요. 비벼서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리고 비생산적인 데에는 투자를 안 하려고 해요. 와이프는 왜 남은 도와주면서 자기는 그렇게 안 하냐고 타박합니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는 일이죠.”
힘들었던 어린 시절, 서른 살이 넘어 입사한 나산에서의 승승장구, IMF 한파로 인한 퇴직, 퇴직 후 MDM 설립과 한국자산신탁 회장이 되기까지. 고난과 성공을 오가며 쉼 없이 살았던 그가 살면서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뭘 하든지간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 참여자들이 만족하느냐, 소비자가 만족하느냐, 사회가 만족하느냐가 기준이었죠. 그래서 저는 디벨로퍼의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이걸 짓다가 멈춰 서버리면 사회적 악이 돼요. 금융사, 시공사, 협력업체, 분양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흉물이 되잖아요. 그만큼 디벨로퍼란 정> 문주현 MDM 회장
1958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1983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입학·졸업했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 부동산개발 사업에 발을 들였고, 7번의 특진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하지만 나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는 재취업을 고민하다가 1998년 분양대행 업체인 MDM을 만들었다. 2007년 첫 시행사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등 굵직한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출연금을 200억원까지 늘렸다.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2013년부터 서울시탁구협회 회장, 2014년부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2015년부터는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여행 방법이다. 친구, 가족이 아닌 현지 주민과 하루 정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외국을 가보고 싶었으나, 강원도 영월의 한 에어비앤비를 찾아가 숙박했다. 혼자 떠난 여행. 역시 그곳에는 기분 좋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 웃음 가득했던 시간이 벌써 그리울 따름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달려 영월 시외버스터미널에 오후 2시쯤 도착했다. 때마침 빨간색 ‘붕붕이’를 타고 마중 나온 이번 달 에어비앤비 호스트 장미자(張美子·51)씨.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다짜고짜 “약속이 있으니 같이 좀 가자”하기에 무작정 따라갔다.
친절한 미자씨와 술 빚기
장미자씨를 따라간 곳은 영월청정소재산업진흥원(이하 청정원). 작년부터 이곳에서 술 빚는 동호회 ‘자주동샘’을 조직해 영월을 대표하는 술을 빚고 있다고. 현재는 시음 행사를 열어 선을 보이거나 영월의 벼룩시장에서 소소하게 판매하는 정도지만 정식 법인을 세워 술을 판매할 계획이다. 청정원에 도착해서 할 일은 아침에 빚어놓은 맵쌀죽과 누룩을 버무려 밑술을 만드는 것. 다른 회원들이 시간보다 조금 늦은 탓에 일손을 도울 겸 두 팔을 걷어붙였다. 처음에는 죽 반죽이 뻑뻑하지만 계속 손바닥으로 누르고 치대다 보면 걸쭉한 막걸리처럼 변한다. 치댈수록 달고 맛있는 술이 나온다고 해 열심히 거들었다.
영월 귀농 라이프, 1박2일로는 부족해요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숙소인 2층에 휙 던져놓고 장미자씨 일을 도왔다. 물론 쉬어도 상관은 없다. 에어비앤비의 정신대로 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허락만 된다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침 호주와 제주에서 농장생활 했던 경험을 살려 장미자씨와 함께 마당에 난 잡초들을 뽑기로 했다. 힘들면 뽕나무 밭에 가서 오디를 따먹기도 했다. 사실 올해 오디 농사는 접었다는 정미자씨. 지난 3월 뜻밖의 한파로 전라도에서 가지고 온 뽕나무가 냉해를 참지 못하고 얼어 버렸다. 그래도 따 먹을 정도는 되기에 이웃 친한 분들이 와서 따가기도 한다.
머루랑 다래랑 따 먹고 살아요
장미자·안종호(安鍾浩·53) 부부는 인천에 살다 강원 영월읍 흥월리로 8년 전 귀농 했다. 작년 4월부터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됐다. 손님 숙소로 이용하는 곳은 2층 공간 전체. 집을 지을 때 2층에 작은 부엌이 있으면 편할 거 같아 장만해 넣었고, 훗날 장성한 아이들이 살게 되면 편할까 싶어 밖으로 나가는 구름다리를 놓았다. 이 모든 것을 손재주 좋은 남편 안종호씨가 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아들, 대학에 입학한 딸이 외지에 나가는 바람에 공간이 텅 비어 버렸다.
“에어비앤비를 열어 놓고 난 뒤 설마 이렇게 먼 곳까지 사람이 들어오겠어? 했는데 문을 연 지 한 달 됐을 때 첫손님을 맞았어요.”
주말이면 매번 꽉 차는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로 어제 왔던 손님은 어디 온천을 예약해 놓고도 저희 집이 좋다고 퇴실 시간이 훨씬 지나 오후 1시가 돼서야 떠나셨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꿀맛 나는 식사시간
저녁에는 낮에 열심히 일한 농사꾼을 위해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넣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다. 다음 날 아침에는 직접 잡은 다슬기로 된장국을 끓여 주신 장미자씨. 안 먹어 봤으면 후회했을 맛에 눈이 트일 정도였다. 아침을 먹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각종 과일과 채소,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손님들도 적당히 먹을 정도만 담아가고 과일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아들 한다고. 삼시세끼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다더니 절대 굶을 일 없는 곳이 바로 장미자·안종호 부부의 집이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안녕 친절한 미자씨!
요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힐튼 헤드 섬(Hilton Head Island)이 은퇴자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애호가라면 PGA투어 RBC 헤리티지대회가 매년 열리는 아름다운 하버타운 링크스코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힐튼 헤드 섬은 미국의 은퇴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거의 다 갖추고 있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온화한 기후는 한파에 시달리는 뉴욕, 보스턴 등 도회지의 은퇴자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3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기는 하지만 수온은 수상 스포츠에 최적이다. 저녁이면 선선해지니 휴식과 숙면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즈넉한 대서양 해변과 하얀 요트가 즐비하게 정박된 마리나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항구의 전경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넓게 펼쳐진 바다, 하얀 모래와 맑고 깨끗한 습지 그리고 이끼로 뒤덮인 울창한 떡갈나무 숲은 대자연이 주는 은퇴기념 선물이며, 넉넉한 남부 인심은 은퇴자들에게 기를 불러 넣어주는 활력소다. 눈부신 햇살 아래 짭짤한 갯바람을 맞으며 160㎞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30여 개 골프 코스에서 라운딩을 하다보면 인생 후반기의 허무감은 어느새 충만감으로 바뀐다.
카약, 승마, 테니스, 낚시 등 갖가지 스포츠와 취미활동은 힐튼 헤드 섬의 주요 일과다. 19㎞에 걸쳐 펼쳐진 해안을 따라 무리지어 유영하는 돌고래를 유람선을 타고 관찰하며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을 위해 해변의 조명을 모두 끌 때면 자연과의 일체감을 맛보게 된다. 저지대 늪지에서는 새우와 게를 쫓아다니는 푸른 왜가리와 큰 입을 딱 벌리고 햇볕을 쬐는 악어를 만나는 놀라움도 있다.
맨해튼(여의도의 30배)만한 넓이의 힐튼 헤드 섬에서는 4만여 주민이 오순도순 지내지만 해마다 250만 명의 외지인이 찾아와 한가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쇼핑 환경도 맨해튼 수준이다.
특가 상품에서부터 디자이너 브랜드와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할 독특한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200여 개의 아웃렛과 상점, 그리고 6곳의 마리나 빌리지 상가는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의 눈길과 발길을 끌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5시간, 사바나에서 45분(57㎞) 거리에 있는 힐튼 헤드 섬은 큰 다리로 내륙과 연결되어 있어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섬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이나 사바나국제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면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미국 동부 연안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힐튼 헤드 섬은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따뜻한 기후와 야자열매, 풍부한 해산물을 즐기던 곳으로 1663년 영국의 윌리엄 힐튼 선장이 처음 이 섬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힐튼 헤드’라고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섬의 73%가 은퇴자를 위한 주택단지
힐튼 헤드 섬의 73%는 10개의 대단위 리조트형 주택단지가 차지하고 있다. 이 주택단지 가운데 상당수는 매입 자격을 55세 이상의 신중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 단지에는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실내외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테니스장, 연회장, 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고 호수와 숲, 골프 코스와 마리나가 인접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섬에 정착한 은퇴자들은 평균 6차례 이상 방문하여 생활환경을 체험한 후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과 격이 없이 지내는 이 섬의 분위기를 느끼고 썰물 때면 90m나 밀려나 숨겼던 민낯을 드러내는 갯벌을 산책하면서 돌고래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
이 섬의 지난해 주택매매 가격은 단독주택의 경우 52만달러, 타운하우스와 아파트는 20만달러 수준. 침실과 화장실이 각 2개인 아파트는 20만~40만달러, 단독주택은 25만~45만달러, 그리고 침실과 화장실이 각 3개인 주택은 40만~70만달러를 호가한다. 바다 경치가 아주 좋은 주택은 150만달러를 훌쩍 넘고 700만달러를 호가하는 그림 같은 주택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6개월 정도만 빌려 살아볼 수 있는 아파트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스튜디오형은 월 평균 600달러, 침실 1개짜리는 800달러, 침실 2개짜리는 900달러 수준이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며칠만 빌릴 경우에도 임대료가 치솟는다. 침실 1개인 주택이나 아파트도 전망이 좋으면 1주에 1200~1800달러, 해변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면 1000~1200달러 정도다. 봄과 가을에는 20% 정도 할인되고 겨울에는 50%나 싸진다. 2억달러 넘게 투입해 새 단장을 한 리조트의 하루 방 값은 일반형 기준으로 130~340달러 수준이다.
주거비가 웬만한 휴양지나 은퇴자 생활지보다 비싸지만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총지출은 맨해튼의 50%, 워싱턴이나 보스턴의 75% 수준을 넘지 않는다. 재산세가 다른 지역의 25% 수준인 데다 소득세, 소비세 등 각종 세율이 낮고 85세 이상의 주민에게는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과 휘발유 값이 저렴한 것도 수월찮게 도움이 된다. 이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현역 시절 주택을 구입해 별장처럼 이용하다가 은퇴 후 눌러앉은 사람도 적지 않다. 세컨드 주택을 구입하면 세제 및 금융 혜택이 있는 데다 에어앤비를 비롯한 휴가용 주택 알선 사이트가 붐을 이루면서 목 좋은 곳의 별장은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이 테러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허리케인이다. 힐튼 헤드 섬 주민들은 1850년 이후 섬 주변 반경 80㎞ 이내로 81차례의 허리케인이 지나갔지만 큰 피해를 입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천혜의 지형 덕분인지 주민들의 후덕한 인심과 간절한 소망 덕분인지 알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취미활동 그리고 평생교육도
힐튼 헤드 섬에서는 축제와 이벤트가 풍성하다. 해마다 열리는 다양한 뮤직 페스티벌, 해산물 축제, 고기잡이 경진대회, 카약과 보트 경주 등은 주민과 관광객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자리다.
멋을 살린 음악 카페, 길거리 밴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 늘어선 메이 강변에 각종 포장마차와 공예품 전시판매점까지 어우러지면서 남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16㎞ 떨어진 블러프턴의 소도심에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남북전쟁 때의 화재와 파괴를 견뎌낸 대농장주의 저택과 교회는 박물관과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있다. 수백 년 된 거대한 나무와 옛 건물은 그림엽서로도 간직되고 있다.
은퇴자들의 취향은 제각각이다. 요트, 카약, 낚시 등에 빠져 있는 ‘해양스포츠파’, 생태관찰 보존과 식물 재배에 몰입한 ‘에코파’, 골프, 사이클, 테니스와 달리기 등을 주로 하는 ‘육상스포츠파’, 공예품 만들기, 독서, 해변 일광욕, 흔들의자 등을 즐기는 ‘정중동파’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봉사활동과 평생교육은 이곳 은퇴 생활자들의 공통된 일과다. 해안사구와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에서부터 노약자 서비스, 도서관 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과 협력관계를 맺은 오셔평생교육원은 1600명의 은퇴 생활자들을 대상으로 400여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1년 회비 40달러에, 수업료는 과목당 15달러. 모두 다 합쳐 연간 95달러를 넘지 않게 책정되어 있다.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가르치고 관심 분야를 배운다. 학습을 하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밖으로 나가 현장학습에 들어간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관련 전문매체의 힐튼 헤드 섬 예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최고의 은퇴 생활지’, ‘인생을 바꿀 건강한 봄철 휴가지’, ‘하계 모임을 위한 남부 최고의 장소’, ‘2016년 북미지역 최고의 골프 휴가지’, ‘캐롤라이나 남부 최고의 사이클 친화지역’, ‘미국 남부 5대 하계 가족휴가지’, ‘세계 50대 테니스 휴양지’, ‘미국 최고의 섬’, ‘인터넷 검색이 가장 많은 섬’, ‘사우스캐롤라이나 최고의 해변’, ‘2015년 세계 최고의 여행목적지’ 등등. 이런 찬사 덕분에 이 지역 은퇴 생활자들의 만족감은 더 커지고 있다.
소한(小寒)인 1월 6일 한국투자증권 광명 지점 객장에서 만난 임용목(林容睦) 할아버지는 이미 객장 유명인사였다.
광명 지점장은 “처음 봤을 때 70세쯤 되신 줄 알았다. 늘 욕심이 없으신 편이고 잘 웃고 즐기신다”라고 말했다. 잠깐,70세쯤으로 보였다는 말이 이상하다. 임용목 할아버지에게 태어난 해를 물어보니 1909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굴곡진 현대사를 몸소 겪으며 한 세기를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2015년인 올해로 106세!직접 객장까지 와서 주식 투자를 즐기는 106세 할아버지라니, 믿기는가? 그러나 그저 100세가 넘은 나이를 지탱하느라 애쓰는 수준이 아닌, 누구보다 즐겁게 사는 모습을 실제로 확인하니 의심은 경탄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가 배워야 할 임용목 할아버지의 특별한 장생(長生) 라이프 .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임용목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일기예보가 빗나가서 따뜻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유난히 매서운 한파가 계속되는 올해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뚜벅뚜벅 계단으로 걸어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믿기 힘들었다. 이분이 한 세기를 자신의 나이로 채우고 올해로 106세를 맞이했다니. 굳이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태어나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다시 태어나서 또 한 번 은퇴를 맞이하는 걸 준비하고 있어야 맞먹을 수 있는 나이다.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이가 올해 112세. 임 할아버지와는 불과 6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세기를 넘기고도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된다는 임 할아버지는 85세의 친구와 얘기하느라 객장에서도 활기가 넘친다.
“26년 전 45만 원으로 시작한 주식 놀이야. 아직도 꾸준히 즐기면서 하고 있는 중이지. 욕심을 부렸으면 예전에 사단 났을 거여, 내가 죽든가 돈이 떨어져 우울하게 살고 있겄지.”
임 할아버지가 놀라운 점은 나이뿐만이 아니라 그 나이에도 여전히 펄펄하게 일상을 즐기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귀가 다소 안 들리는 듯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더 목소리에 깃든 힘이 뜨거웠고, 그런 기질은 30년은 어린 70대로 보이는 외모로 이어지는 듯했다.
“한 세기를 넘겼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돼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배움의 욕구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 자리한 유난히 가난했던 집에서 태어난 임 할아버지는 돈이 없어서 초등학교 6년을 교장 선생님을 도와 학교 정비를 하는 대신 학비를 면제 받으며 다녀야 했다. 첫 직장은 일제가 운영하던 한국산업은행이었다. 그곳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15년 근속했지만 결국 해고된다. 일하던 15년 동안 월급으로 사서 읽은 6000권의 책으로 인해 민족의식이 강해진 그가 조선의 열등함을 비난하던 은행장과 부딪친 결과였다. 일자리는 잃었지만 배우고 싶다는 욕구는 더 커져 있었다. 그는 일본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직장에서 안 좋게 끝나는 바람에 일본 입국이 가능할지가 불확실했다. 그러나 천운이 따른 덕분에 그는 일본에서 당시 유일한 종합대학교였던 일본대학교의 상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임 할아버지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학도병 모집에 붙들려서 결국 중국으로 끌려가게 된다. 중국에서 갖은 고생을 겪다가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게 됐고 1946년 6월에 귀국하게 됐을 때 그의 나이는 37세, 어느새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평생 베필을 만나게 됐다. 아내와는 결혼 이후 63년을 함께 했다. 결혼할 때 임 할아버지보다 17살 연하였던 20살의 아내는 어느새 그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나이가 됐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7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임 할아버지가 다니는 밀알교회는 아내가 생전에 권사로서 설립한 교회다.
불혹의 나이에 고려대 1회 졸업생
“귀국하여 보성전문학교가 민족학교의 기치를 걸고 고려대학교가 되어 2학년 학생을 모집한다는 걸 보게 됐어요. 그래서 시험을 치르고 입학하게 됐죠. 1949년에 졸업하게 됐지. 1회 졸업생이었어요.”
청량리에서 영등포까지 걸어서 왕복 두 번 씩 의류배달을 해야 하기에 학교도 갈 수 없었다. 졸업하기까지 동기들이 출석을 해주고 해서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했을 때가 이미 불혹의 나이인 40세였다. 결혼도 하고 학업도 이루고 나이도 찼으니 안정적인 중년을 맞이할 때였다. 그러나 시대 자체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졸업 후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져, 그는 피란을 떠나야 했다.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있는 자리는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던 자리였고, 동대문운동장은 임 할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할 때는 서울운동장이라고 불렸었다. 임 할아버지는 피난에서 돌아와 서울운동장 밑에 제일체육사라는 가게를 차려 이후 30년을 운영했다. 그러나 70세가 되던 해에 건물에 불이 나서 물건이 모두 불탔고 그걸 갚기 위해 가게를 정리해야 했다. 그는 서울에서 밀려나서 광명시에 정착해야 했다.
“광명시에 와서는 약간의 돈으로 장사를 좀 하다가, 지금은 5남매인 자식들이 생활비랑 이것, 저것하면 한 달에 한 90만 원 정도 받네. 생활하고 남는 돈은 객장 손님들에게 커피를 주거나 공원에 가서 노인들이나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고 있어요. 내가 광명의 사탕할아버지로도 유명해요(웃음).”
욕심이 없기에 건강하다
임 할아버지의 집안은 장수 집안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비록 아편을 하고 자다가 요절했지만 아버지는 그 시절에 85세까지 살았다. 하지만 장수와는 별개로 임 할아버지의 건강은 나이에 비해 이상적이다. 그는 아침에 혈압약, 저녁에 전립선약을 먹고 감기약을 타기 위해 병원을 가는 정도로 자신을 관리하고 있었다. 임플란트, 틀니 치료 안 하고도 치아가 여전히 튼튼했다.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드셨으며 함께 식사를 하면서 밥알 한 톨도 남김없이 한 그릇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의 건강함을 증명하는 지표는 인터뷰 내내 볼 수 있었다. 그런 활기는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바탕하고 있어서 가능한 부분처럼 보였다.
“욕심이 없다.” 임 할아버지는 자신이 겪은 여러 가지 고난 속에서도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이유를 욕심이 없다는 것에서 찾았다. 살펴보면 그의 삶에는 욕심보다는 배움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독학으로 배우고 익혀 일본으로 갔던 일, 불혹의 나이에 대학교를 졸업한 일, 새벽 3시에 일어나 10시에 객장에 나와 주식 투자를 하는 모습 등등은 배움에 대한 본능적인 욕심이 없으면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젊은 시절의 그는 시를 쓴 적도 있었다. 당시 임성산이라는 필명을 썼던 그는 아직 무명이던 박목월, 서정주 시인들과 함께 문예지에 글이 실린 적도 있다고 했다. 대표로 뽑혀 학도병 수기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교우회가 교우들에게 제공하는 월례강좌에서도 꾸준히 30년동안 개근했다. 물론 지하철에서도 다른 노인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임 할아버지는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70대가 아니냐고 물었었다고.
100여 년의 인생, 잃지 않고 살았다
“살아오면서 못 해서 아쉬운 건 하나도 없어요. 난 그리 가진 게 많지 않은데도 내가 부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주식 투자를 시작한 이후로 돈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처음 투자한 45만 원이라는 돈이 확 불어나지도 않았지만, 잃지도 않고 투자를 즐길 수 있는 수준. 임 할아버지는 그걸 하나님 덕분으로 돌렸다. 자신의 마음이 평화롭다 보니 하나님이 그 돈을 그대로 쓰라고 놔두고 있다는 것이다. 106세가 되었음에도 꾸준하게 가지고 있는 긍정의 정신은 천성이기도, 그동안의 삶을 통해 단련된 것이기도 했다.
“희망을 갖고 인생은 영원히 빛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이렇게 살 수 있었다고 봐요. 그래서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올바르게 사는 것, 그리고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게 중요해요.”
임 할아버지는 “진실로 열정을 다해 미련없이 살아왔다”며 “미련없이 살아야만 버리는 것도, 내려 놓는 것도 순수해질 수 있다”고 마무리 지었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위태로운 기운이나 하늘이 외면하지 않는 운세이니 위기를 면하리라. 다소 어려움에 국면하였다 해도 노력하는 가운데 길함이 유하니 지혜를 발휘하여 난제를 해처나감이 좋은 괘다.
84년생 : 친구가 위기를 넘겨주는 지혜를 만드니 친구를 곁에 두라.
72년생 : 조용한 달밤에 잔에 가득한 술을 희롱하는 격이라 얻음이 크리라.
60년생 : 가슴을 졸이고 힘들게 하든 일이 서방 귀인의 출현으로 위기를 넘긴다.
48년생 : 구설 시비만 잘 피하면 늦게라도 힘든 일이 풀리는 기운이로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다는 교훈을 거울 삼아 오늘의 일진은 맑은 정신만 가지면 어떠한 어려운 일도 열어나가는 힘이 될 것이다. 다소 불리하더라도 재갈공명의 지혜를 발휘함이 길한 일진이다.
85년생 : 상 받을 일이나 칭찬 듣는 일이 있어 즐겁고 재수도 길하리라.
73년생 : 이동 변동 수라 이사는 좋으나 직장 건은 불길하니 변동하지 마라.
61년생 : 일신에 영화가 없으면 큰 재물이 생기는 기운이니 준비하라.
49년생 : 새로운 일로 힘든 운세를 밟아가나 오후부터는 좋아지리라.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어둠에서 불을 만난 격이라 어려움에서 풀려 나오고 재운도 열린다. 그동안 쌓아 놓았던 실력과 공덕이 이제야 빛을 발할 것이니 운기가 좋을 수록 경거망동하지 말고 운맞이를 잘하라.
86년생 : 낙마수가 엿보이니 넘어져 다침을 조심하면 재수는 대길하리라.
74년생 : 새로운 계획이 초장부터 막힘이오나 기운은 상승하니 더 노력하라.
62년생 : 금전 문제는 돌다리도 두들기는 지혜가 필요한 날이로다.
50년생 : 토지 문제로 고통받든 일이 해결 기미를 보이니 잘 열어보면 좋으리라.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말라. 노력 없이는 되는 게 없는 것이라 크고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라.오늘의 일진은 노력하는 가운데 얻음도 클 것이니 안일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지어다.
87년생 : 매일 하든 것 외에 외출을 삼가라 얻는 것이 하나도 없으리라.
75년생 : 중요한 물건을 잃은 기운이라 정신을 다른 곳에 팔지 말 것이로다.
63년생 : 마음만 잘 먹으면 재운이 상승하니 들어오는 것이 많으리라.
51년생 : 밝은 기운이 내려오니 미루어오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좋으리라.
◇ 용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과묵하는 가운데 길함이 있을 것이니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소리 없는 조용한 시작이 많은 것을 열어 가는 길이 되리라. 운기가 좋을 수록 은인자중함이 길할 괘다.
76년생 : 어두운 곳에 밝음을 주는 마음을 가지면 즐거운 하루가 되리라.
64년생 : 서쪽에서 나타나는 사람을 조심하라 구설 시비를 가져온다.
52년생 : 재운이 상승하니 좋으나 투자는 안정 후에 생각함이 좋으리라.
40년생 : 오래된 문서에 매매 기운이 오나 그대로 지킴이 좋으리라.
◇ 뱀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자금유통이 잘되어 도모하는 일에 걸림이 없을 것이나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재운은 열려오나 금전 문제가 불씨가 되어 사람을 힘들게 하리라. 타인을 둘러보는 자비를 가짐이 길한 일진이다.
77년생 : 금전 면에 욕심이 발동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 조심하라.
65년생 : 자금 융통은 잘되나 하려든 일에 막힘이 있어 마음 고생이 심하리라.
53년생 : 서쪽에서 귀인이 나타나니 계약 건은 해결기미를 보이리라.
41년생 : 체통이 무너지는 수라 모든 자리에서 말조심을 하여야 하리라.
◇ 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라. 세상을 삐뚤게만보면 모든것이 삐뚤어지니 맑은해안을 가지고 세상을 살핌이 길한 일진이다. 모든 것이 내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 어찌, 모든것이 먼저 그르다 하겠는가.
78년생 : 잘 받아들이면 많은 것을 얻을 것이나 불평하면 모든 것이 어려우리라.
66년생 :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는 기운이나 과신하면 좋은 기운을 망치리라.
54년생 : 손재수가 문을 두드리니 돈주머니를 잘 간수함이 좋을 것이리라.
42년생 : 지출 문제에 조금만 신경 쓰면 금전 운은 아주 좋은 날이 되리라.
◇ 양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처음에는 서글프고 힘들 것 같으나 해보면 할만하고 도움도 받으리라.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역시 싫어하니 남에게 미루지 말것이니 스스로 행하는 가운데 길함이 있을 것이다.
79년생 : 자세히 관찰해보면 안 되는 일없을 것이니 미리 겁먹지 말도록 하라.
67년생 : 아래위를 잘 조율하면 어려운 일이 없고 재수도 열릴 것이로다.
55년생 : 사면초가로 막히든 일이 풀릴 기미가 보이니 힘을 가중해 보라.
43년생 : 기초가 흔들리는 격이라 모든 일을 면밀히 조사함이 좋으리라.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인간구설로 인해 일신이 곤고해지니 미리알고 대처함이 길하게 작용할 것이다.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질투 경쟁으로 모든 일이 막힘을 보이니 대인관계에 전력을 다하라. 미운이 떡하나 더 준다는 속담을 거울 삼으라.
80년생 : 과대망상을 삼감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니 안정하라.
68년생 : 큰 일이 눈앞에 다가오니 잘 처리하면 큰 소득이 있으리라.
56년생 : 신경성은 모든 기관을 나쁘게 하는 것이니 과한 과민성을 피함이 좋다.
44년생 : 힘 안 들이고 되는 게 없는 법이라 작은 것도 공을 드리면 좋으리라.
◇ 닭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순풍에 돛단 듯 모든 일들이 잘 풀려 나가나 아는 길도 물어가고, 돌다리도 두드리라는 속담을 거울 삼으라.모든일에는 경쟁과 질투의 눈이있으니 어찌 길함만을 얻으리요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가나 걸림돌은 항상 도사리니 조심해야 한다.
81년생 : 막히든 금전 문제도 해결되고 애정 문제도 맺어지는 기운이다.
69년생 : 힘든 일로 동분서주하나 남쪽에서 귀인이 나타날 수라 잘 찾아 보라.
57년생 : 기발한 발상이 오늘의 어려움에서 탈피하는 원동력이 되리라.
45년생 : 역 마에 발동이 걸리니 움직일 일은 생기나 원 행은 곤란을 초래한다.
◇ 개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눈 속에서 자라는 생물이 있는 것이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이 보인다.추운한파가 지나가면 새봄이 돌아 오듯 웅크렸던 새싹들이 새봄을 알리리라. 고통속에 피는 꽃이 더욱 아름답듯 인내하는 가운데 길함이 더욱 빛날 것이다.
82년생 : 무슨 일이든지 오늘은 양보하는 것이 재수를 열어 가는 길이 되리라.
70년생 : 투자에 길운이 비치나 여유가 없는 것이라면 어려움에 처하리라.
58년생 : 밖으로 내보일 때가 아니니 잘 덮어두고 키워야 성공하리라.
46년생 : 새로운 일에 사기성이 깃 들었음이라 전후 사정을 잘 살펴야 한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동분서주할 괘이니 피어오르는 기운이 무엇인지 갈피를 못 잡으니 길흉을 어찌하랴.들어오는 운이 길함인지 흉함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니 이럴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역학인에게 상담해 보면 어떨런지.
83년생 : 참신한 아이디어로 많은 것을 얻을 상이라 머리를 잘 쓰면 좋으리라.
71년생 : 친구 동료가 힘이 되어 일을 풀어나가는 상이라 좋은 운세가 열리리라.
59년생 : 지나간 일을 가지고 상심만 한다면 뒷일이 걱정이로다.
47년생 : 허망함을 털지 못하면 다시 어려움을 만날 것이니 버릴 것은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