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무엇을 보고 선택할까? 교통, 환경, 편익시설 등 기본적인 사항을 판단하고 가격이 적절한가를 생각하는 것은 보통의 방법이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엔 주차장과 쓰레기 재활용 수거현장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주차장과 쓰레기 재활용 수거현장은 건축물 시설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들의 소득과 문화, 주민 상호간의 배려를 같이 엿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좋은 아파트를 고를 때 확실한 방법은 살아 보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 실수요자의 입장에서는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여러 요소들이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아파트는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아야 잘 팔린다. 아파트를 품질이 좋고 쾌적하게 잘 지으려면 사업성이 줄어든다.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중요한 사항들이 많다.
새 아파트를 구매할 때 수요자 입장에서는 대지 지분으로 표시되는 크기의 땅값과 함께 건물 값으로는 아파트 바닥 면적 크기를 기준으로 돈을 낸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실수요자들이 아파트를 선택할 때 신경을 덜 쓰는 항목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실내 천정 높이이다. 그 외에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으로는 건물 동(棟)간의 간격, 소음, 단지 내 동선의 편리성과 안전성 등이다.
천정 높이를 확인해 보셨나요?
높은 천정은 확 트이고 고급스러운 공간을 연출한다. 층간 소음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천정의 높이는 층고와 관련이 있다. 층고를 높이려면 그만큼 건축비가 많이 든다. 고도제한이 있는 경우 천정 높이가 평균치 보다 현저히 낮은 건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에어컨이나 강제 환기시설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천정이 높아지기도 한다. 또 층수별로 층고가 달라질 수 있다. 단열이 필요한 곳이나 평면이 바뀌는 곳, 초고층건물에서 중간기계실이 있는 경우는 기계실 높이가 반영된다.
주차장도 크고 넉넉하게 잘 만들면 결국 아파트 가격이 비싸진다. 지하 주차장을 위한 땅파기 공사는 훨씬 많은 돈이 든다.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예민한 부분인데 수요자는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잘 팔리는 아파트와 살기 좋은 아파트는 큰 차이가 있다. 즉 건설과 개발을 할 때는 실수요자가 아닌 중간에 있는 투자자를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최종 실수요자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데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겉으로 드러난 부동산 가격만으로 부동산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숨어 있는 부동산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앞으로의 부동산 트렌드를 예측하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숨어 있는 부동산 가치를 이해해야
건물은 얼마나 크고 높게 많이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물의 최종 사용자를 배려할 때 그 품격이 더해지고 결국 땅의 가치도 높아진다. 결국 예전과 달리 건물을 사고자하는 사람은 건물의 최종 판매가격 기준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것들을 더 꼼꼼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공급자도 당장의 눈앞의 이익보다는 수요자를 배려한 설계와 건축을 하여야 한다. 실용성과 예술성도 조화를 이뤄야한다.
부동산은 관련 법규, 건설, 금융, 조세 등이 복합적으로 관련돼 있어 단순한 판단만으로는 해결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수익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또 수익성만을 강조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수요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공공성과 환경친화성 등 다원적인 목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도 공급자의 철학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건물을 지을 때 남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면 성공하기 어렵다. 아이디어는 죽어 가는 땅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고 살기 좋은 내 집을 만든다.
다음 문제들을 풀어보세요
❶ 아파트를 분양 받을 때 공급 면적은 무슨 뜻일까?
❷아파트 전용면적, 공용 면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❸아파트 발코니 확장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❹아파트의 층고는 무슨 의미일까?
❺ 아파트의 천정 높이는 어떻게 판단할까?
해설과 답
❶공급 면적은 주거전용 면적과 주거공용 면적을 합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계약하는 면적은 주차장, 기계실, 관리사무소, 주민공동시설, 놀이터, 화단 등 기타 공용 면적까지 포함된 것이다. 다만 발코니, 베란다, 다락방 등은 서비스 면적에 해당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대부분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❷아파트 전용 면적은 거실, 주방, 화장실 등을 포함한 넓이이다. 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전용 생활공간을 말한다. 공용 면적은 다른 세대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계단, 복도, 엘리베이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전용률은 건물의 바닥 면적 중 각 세대 등의 사용자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부분을 말하고, 전용률이 높다는 것은 실제 사용 면적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❸발코니를 확장하게 되면 거실이나 방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냉난방 비용 증가와 수납공간 감소 등 단점도 있다.
❹아파트의 층고는 기준층 콘크리트 바닥에서 기준층 위층의 콘크리트 바닥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❺일반 아파트 천정 높이는 평균 2m30㎝이며 최근 높아지는 추세이다. 30층 이상은 초고층아파트로 분류하며, 초고층아파트 층고는 일반아파트 보다 훨씬 높다. 초고층아파트 천정 높이는 일반아파트 보다 10㎝ 정도 높다.
*일반아파트 평균 층고 : 2m60㎝ = 천정 높이(2m30㎝)+천정 속(5㎝)+바닥마감(10㎝)+콘크리트(15㎝)
>> 김정렬(金淨烈)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전임 교수
국내 최초로 부동산 전문가들로 네트워크를 구성, RE멤버스를 설립하고 부동산써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자산신탁, 기업체, 금융기관 등에 부동산 자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1983년 2월14일.밸런타인 데이라는 걸 나는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여자 아이들이 자꾸자꾸 늘어가고 수군덕거리는 소리들과 함께 우리 집 둘레를 맴도는 날이었다. 우리 두 녀석들은 올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집에 안 돌아오고 여자 아이들은 두 줄로 서 있고 몇 명은 자전거를 타고 수십 번을 왔다가 가길 반복했다. 오후 4시가 가까워 오자 밖이 더 더욱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지 도통 모르겠는 난 마트에도 가야겠고 학교에도 한 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별 수 없이 현관 문 밖으로 나갔다. 이상한 비명 소리와 함께 우리 집 층계를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도로 들어왔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뭔가가 우리 집 안으로 던져졌다. 하나 둘... 나는 문을 아예 열어 놓았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있는데 금세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완전 조용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는데 그 뒤로 헐레벌떡 두 녀석들이 후다닥 뛰어 들어오며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놀라서 바라보고 있는 내게 ‘엄마! 바렌타인 데이가 뭐야? 오늘이 그런 날이라는데? 배고파요~’ 아이들은 여기저기 날아 들어와 있는 것들을 주워들고 포장을 뜯어보며 카드를 읽어가며 킥킥거린다. 그런 날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들어 본 듯도 했지만 이렇게 난리를 치는 일인지는 생전 처음 알았다. 거의 모두가 본인이 직접 만든 초콜릿들이었고 그 중에는 손수건들, 사탕과 과자와 일용품... 들이었다. 반 아이들이 보낸 것이었다. 우리 셋은 이런 과자 같은 걸 한국의 초등생들은 만들 수가 없음을 잘 알기에 예쁘게 포장하고 직접 만든 초콜릿을 놀라운 눈으로 보면서 칭찬을 했다. 우리 애들에게는 별 반응이 없는 날이었지만 그 다음날 이웃 엄마들이 웃으며 내게 아주 친한 척 다가와 ‘와아~~ 김 군들은 정말 인기가 많네요!! 어제 얼마나 많은 초콜릿을 받았어요? 하루 종일 여자 아이들이 서성거리던데...’ 하는 인사를 했다. 대단한 인기에 연예인 뺨친다며 부러운 눈길을 보내는 그녀들에게 난 그저 웃었다. 어제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남편에게 아무 것도 안 줬냐며 남편들이나 회사 남자직원들에게는 ‘기리초콜릿’이라고 이름을 지어 못 받으면 가엽고 불쌍해서 의리로 준다고 덧붙였다. 해마다 그 날엔 일본열도 전체가 초콜릿으로 장식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대적으로 국민적인 행사가 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정말은 영국의 풍습이라고 하며 매년 2월14일에는 새들이 짝을 짓는 날이라고 믿어서 그런 날이 생겼다는 설도 있고, 해뜨기 전에 창밖을 지나는 남자를 보면 그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와 그녀는 그해에 결혼을 한다는 얘기가 전해졌다는 것이었단다. 그걸 일본의 어느 제과점에서 마케팅으로 초콜릿 팔기 행사로 이 날을 택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암튼 그런 날이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젊은이들 사이에 해마다의 행사로 치러지고 있는 것에 웃음이 난다. 처음 겪는 어색한 행사에 세련되지 못한 낯설음으로 첫 경험을 했던 기억이 불현 듯 떠오른다.
우리 이웃에는 일흔이 지난 할머니 한 분이 아들과 함께 산다. 주변에 밭을 가지고 있다. 김장배추며 무, 파, 고추, 들깨, 상추, 시금치 등을 가꾸어 먹고 이웃에 나눠준다. 요즘엔 들깨가 초등학생 키만치 자랐고 김장할 무씨를 파종하여 꽤 긴 이랑에 싹이 터서 귀엽기조차 하다. 이른 아침 산책길을 나서면 밭에서 아침 먹거리를 위해 파를 뽑거나 오이를 따기도 하고 밭을 둘러본다. 아침 인사에 기뻐하며 화답을 빼놓지 않는다. “늙은이에게 늘 인사를 건네주는 것만으로 고맙다.” 밝게 웃는다. 내 사진 속의 등장인물이 될 때도 있다. 간혹 밭에서 딴 가지며 오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일궈 놓은 상추밭에 상추를 따서 먹으라 성화다. 무가 익어갈 무렵이면 먹음직스러운 녀석을 뽑아 준다. 집을 비웠을 때는 나눠줄 채소를 담은 검정 봉지를 현관문에 매달아 두고 간다. 안사람도 맛있는 것을 사서 건네준다. 주고받는 세상인심이다. “이웃사촌”인 셈이다. 농촌으로 외지에서 농촌으로 귀촌이나 귀농을 하면 먼저 정착해 사는 마을 사람들과의 친화 문제가 뉴스거리로 자주 등장한다. 예전의 여유롭고 넉넉한 시골 인심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환경이 달라짐에 따른 시대의 변화이지 싶다. 그러나 자기 하기 나름이다.
남남이지만, 사촌과 같은 가까운 관계가 이웃이다. 떨어져 사는 자식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그렇게 가까운 이웃을 이르는 말이 “이웃사촌”이다. 다급한 일을 상의할 사람도 이웃이다. 이처럼 삶에 있어서 중요한 관계망의 하나가 이웃임엔 틀림없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미우나 고우나 이웃은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층간 소음 문제로 원수지간이 된 경우가 없지 않아도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인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의 소중함을 느낀다. 근대산업화가 진행하면서 할 일이 많아지고 대체로 시간에 쪼들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아내가 함께 직장을 다녀야 가정경제가 유지된다.
1983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해외보험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휴일을 이용하여 영국을 방문하여 교포 집에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그때 안주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 “영국에서는 일손이 있으면 누구든 일을 해야 먹고 산다. 남편 혼자 일해 먹고 살 수 있는 한국 부인들이 부럽다.” 20여 년이 지난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 됐다. 그렇기에 휴일은 그야말로 직장인의 황금 휴식시간이다. 맞벌이하여야 하는 시대이고 자기 일을 찾아 함으로써 보람을 갖는 시대를 산다. 그 시간을 쪼개어 부모를 방문하기는 마음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은 중요한 관계망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와 아파트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웃이 멀어지는 듯도 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기 예사였고 함께 쓰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그저 그랬다. 서양의 외국인처럼 낯선 사람을 만나도 어깨를 들썩이며 눈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동경하기도 했다. 근래에 이르러 이웃은 더 중요하게 주목받는다. 홀몸노인을 비롯하여 홀로 사는 사람과 세대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다. 특히 나이 들어 외로움을 더 타는 시니어에 꼭 필요한 인간관계다. “이웃사촌”으로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늙은이에게 정답게 인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점심 사시겠다.”고 나서는 우리 이웃 할머니처럼 말이다.
◇첫째 날
문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수입브랜드 의류매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아침에 남편 출근할 때, 부부싸움을 하였다. 다른 날은 다투고 나가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남편한테서 필자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전화가 온다. 그런데, 이날은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없는 것을 보니, 단단히 삐쳤나 보다. 밤 12시가 지나도 남편이 집에 귀가하지 않았다. 매장과 집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보니, 이날은 하루 종일 서로가 전화 한통 주고받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니까, 어린 아들을 재워놓고 매장에 가보았다. 새벽 1시쯤 이였는데, 여름이라 그때까지도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매장에 들어가지는 않고, 길 건너 골목 입구에서 건너다보았더니 불빛이 보였다. 남편이 매장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집에 왔다. 재워놓고 온, 어린 아들이 걱정되어서다. 집에 도착해서도 남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둘째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린 아들을 유치원에 보낼 준비를 했다. 남편은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들은 ‘아빠 어디 갔느냐’고 찾는다. 필자는 어린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응, 좋은 물건 알아보려고 일찍 회사에 가셨어.” “그랬구나. 난 또, 어디 갔나 했지!” 남편은 평소에 어느 상품이 새로 나왔는지, 또, 어떤 상품들이 잘 팔리는지 살펴보러, 자주 의류회사에 가곤 했기 때문에, 어린 아들 까지도 그렇게 말 하면 잘 알아듣는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난 후, 반찬거리를 사러 가락시장엘 갔다. 문정동 살 때는 가락시장이 가까워서 평소에도 잘 이용하는 곳이다. 필자가 반찬거리를 사러 간 것은 모두 다, 이유가 있다. 다음날 아침쯤엔, 남편이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 올 것이라는 계산을 해서다. 그것을 노리고, 필자는 아침상을 생일상처럼 아주 풍성하게 차리려는 것이다. 남편이 이틀 동안 매장에서 자느라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서가 아니다. 남편의 가출하는 버릇을 싸악 고쳐 주려는 것이다. ‘당신이 없어도 난, 아들하고 둘이서 더 잘 먹고, 더 잘 살 수 있어. 나가려면 나가! 난, 당신 같은 남편 필요 없으니까!’ 그런 마음을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장을 볼 때도 남편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일부러 골라서 샀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오기 전에 서둘러 집에 왔다. “엄마! 내일 누구 생일이야?” “아니!” “그럼, 할머니 오신댔어?” “그게 아니라, 우리 아들 맛있는 거 해주려고 그러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빨리빨리 키가 쑥쑥 크라구!” 아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러 나간다. 엄마가 돼가지고 어린 아들에게 거짓말만 하구! 참, 필자도 한심하고 불쌍하다. 둘째 날도 서로가 전화 한통 주고받지 않았다.
셋째 날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3일째 되는 날이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골고루 많이 차려놓고는 아들에게 밥을 먹인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식사 시간이 되니까 현관문을 열쇠로 여는 소리가 들린다. 필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모른 척하였다. “아빠! 회사에 갔다 왔어?” “으?응, 아들아, 밥 좀 주라, 아빠, 배고프다!” “아빠, 빨리 여기 앉어. 맛있는 거 아주 아주 많어.” “여기? 그래, 아, 알았어” “엄마! 아빠 숟가락 가져와야지. 빨리 빨리!” 필자는 못 이기는 척하고 남편의 수저와 밥, 그리고 국을 챙겨다 주었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낼 준비를 마치고, 유치원차를 기다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유치원 차가 떠나고 나서, 필자는 머언 하늘을 쳐다 보면서 한 호흡 크게 쉬고는 씨익 웃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폭풍 흡입을 했나보다. 평소에는 한 공기 이외에는 절대 안 먹는 사람인데, 한 공기 다 먹고, 더 갖다가 먹었다. 거기다가 과일에 커피까지 챙겨 먹은 것이 아닌가! 먹을 건 다 먹었네. 필자는 남편에게 꼭 한마디를 했다. “왜 들어왔어? 우리는 당신 없어도 잘 살 텐데. 아! 서류 때문에 들어 왔구나! 그럼 오늘 법원가자.” “아,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늦었어. 빨리 나가 봐야 돼.” 남편은 급히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꽁무니를 뺀다. 배가 고파서 더 버티지 못하고 ,남편의 반란은 이렇게 허망하게 ‘3일천하’로 끝을 맺었다.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남편이 외박을 하거나, 가출을 해 본적이 없다. 먼 훗날, 남편에게 들은 얘기인데, 그날 아침에 집에 들어와 아침 식탁을 보고는 완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한다. 집 나가면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그래서, 앞으로는 절대로 집을 나가지 않고, 싸우더라도 꼭 집에서 싸우겠다고 결심 했단다. 필자의 계획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지금은 집집마다 대부분 현관에 번호 키를 설치하니까, 열쇠로 열고 들어갈 일이 없지만, 필자네 집은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현관을 열쇠로 열고 드나들었다. 남편은 출근을 할 때나, 외출을 할 때면 꼭, 열쇠를 챙기면서 필자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그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열쇠 없으면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쫒겨 날까봐, 다른 건 몰라도, 열쇠는 꼭 챙겨야지.” 필자도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는다. 남편도, 필자도, 그 허망한 ‘남편의 3일천하’가 생각나서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항상 웃음부터 나온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거실 베란다 문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만큼이나 정신없이 분주하다. 집을 지키는 주부도 낮 시간에는 얼굴 볼일이 거의 없다. 아파트 승강기에서도 이웃을 만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찾아 하루 속에 있는 것인지. 그 시간들은 행복할까?
필자의 지난날에도 아파트의 젊은 여자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부터 모임은 시작된다. 주로 저층에 사는 집으로 모이게 된다. 가벼운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아줌마들의 수다가 점심으로, 어느 때는 저녁의 외출까지 단체로 이어지며 하루를 온통 차지한다. 그때는 그나마 답답하게 갇혀있던 젊은 여자들의 화려한 외출이었다.
요즈음은 아파트 앞 상가마다 커피숍이 있다. 젊은 주부들의 아침 모임이 밖으로 이동을 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기 위해, 돈을 지불하며 밖에서 만나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분위기도 그럴듯하고 커피 맛도 훨씬 더하기 때문이란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는데 그것은 당연지사다. 보다 나은 환경 속에 모든 것들이 변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세상 이치다.
어느 날, 택배아저씨가 현관문 벨을 울린다. 물론 도착함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현관문을 열어주니 아저씨가 말한다. 어떻게 낮 시간에 집에 있냐며 큰 눈을 뜨며 의아해서 물어온다. 필자가 마치 이상한 나라에 엘리스라도 되는 모양이다. 다른 집들은 거의 빈집이란다. 한국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찾아 대낮에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직장도 없는데 바쁘게만 돌아간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은 안타깝기도 하다.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어둠이 캄캄하게 깔려서 나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나이 먹은 시니어들도 바쁘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하루 일과가 꽉 차있어 물레 방아처럼 돌아간다. 한편으로, 할 일없어 낮 시간에 TV 시청만 하는 것보다는 밖으로의 생활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특별한 목적 없이 시간을 때우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이제 나이를 먹은 탓인지 쓸데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젊은 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한다. 아직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다 포용할만한 능력이 없다. 하루를 그들과 함께하고 돌아오면 심신이 지쳐 쓰러진다. 더구나 세월 속에 단단해진 노인들은 대체로 주장이 강하고 대우받기 원하며 욕심이 많다. 필자는 감당하기 힘들어 조용히 기피한다.
오늘처럼 창밖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필자는 반드시 글을 써 내려간다. 자판을 두들기며 생각을 모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수고한다며 가져다주는 남편의 커피 한 잔은 더 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빗소리와 함께 행복이 찾아오는 소리가 아침부터 귓가로 다가온다. 얼마나 평온하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 마음에 소리는 끝내 고요한 평화가 되고 성숙한 인간미가 되어 가슴을 울려준다.
행복의 소리는 별것 아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 욕심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들을 수 있으면 그 느낌이 행복이고, 그것은 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 다만 만들어 내고 느끼는 자의 몫이다. 시간을 찾아 분주하게 떠나는 모든 이웃사람들, 오늘도 빨리 빨 리를 외치는 그들에게 여유가 넘치는 하루가 되기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의 소유가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창밖 넘어 쏟아지는 빗방울 소리가 필자의 마음속으로 가득 차온다. 아~~ 오늘도 행복하다.
10여 년 전 필자가 개인회사를 차릴 때 지인의 소개로 세무사를 소개받고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무역 중개업이었다. 초기에는 사업이 꽤 잘 되어 거래가 많으니 세무사도 할 일이 많았다. 세무사는 국내 회사만 상대하다가 영어가 등장하는 서류는 필자의 업무가 처음이었다. 무역을 모르니 용어도 모르고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지 반복해서 가르쳐 줘도 이해를 잘 못했다. 그러면서 월 10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했다.
그러다가 사업이 점차 시들해지자 일 년에 거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줄었다. 분기별로 거래를 신고해야 하는데 분기에 거래가 한 건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수입은 점점 적어지는데 세무사 수수료는 고정비로 나가니 수수료를 좀 내려달라고 해봤다. 월 10만원이 최저라서 더 못 내려준다고 했다. 거래가 없어도 월 10만원은 내야 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거래도 일천한데 10년 동안 꼬박 월10만원의 수수료를 내야했다. 세무사가 도와주기는커녕 내 피를 빠는 기생충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는 한해에 거래가 한 두건으로 줄어들었다. 내가 낸 주문을 생산해주는 중국의 인건비가 너무 올라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사업을 접었다. 드디어 폐업신고를 하고 세무사에게 주는 수수료도 끊었다. 거래는 직접 생산 공장에 연결해주고 나는 손을 뗐다.
무역협회에서 마침 회원들 대상으로 무역 애로사항 공모전을 했었다. 거래는 뜸한데 고정비로 나가는 세무사 수수료에 대한 내 경험을 써서 보냈더니 1등상에 선정되었다. 개별적으로 세무사를 쓰지 말고 다른 업종처럼 대행사를 만들어 염가로 세무 대행을 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내 경우는 일 년에 한 두 건이니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실행이 안 되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국세청에서 세금 신고에 대한 공문 편지가 등기 우편으로 날아온다. 내가 통역 겸 고문으로 일해 주는 회사에서 내게 주는 약간의 고문료를 세무 신고하기 때문에 날아오는 것이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인데 굳이 세무 신고까지 해야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게 유일한 소속회사로서 그 가치가 있다. 사회 활동을 하다 보면 회사 이름을 적어야 할 때가 있는데 당당히 그 회사 이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적는 것과 소속 회사를 적는 것은 본인이나 상대방이 볼 때에도 큰 차이가 있다.
5월에 국세청에서 등기우편이 날아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세금 내라는 얘기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홈텍스’라고 집에서 컴퓨터로 세무처리를 하는 방법을 설명한 안내장도 들어 있지만, 그냥 봐서 하기는 어렵다. 처리할 때까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래서 옛날 세무사에게 한 두 해 신세를 졌다. 옛정을 생각해서 그냥 처리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더 이상은 그냥 처리해줄 수 없으며 처리를 원하면 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해는 직접 세무서에 찾아 갔다. 필자처럼 세무신고 문의를 하려는 사람들로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려니 이렇게 시간투자를 해야 하는 것도 수수료에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차례가 되었을 때 창구 직원이 줄을 잘 못 섰다며 다른 줄로 가라고 했다. 황당한 일이었다. 다른 줄로 옮기면 줄이 더 길어 그날 처리가 불가능해보였다. 필자가 난감해하자 창구 직원이 가만히 서류를 보더니 국세청 등기 서류내용이 틀림없으면 밑에 사인해서 접수 통에 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세무사는 대가를 지불하라고 했었다. 세무서에서는 긴 줄을 서라고 했었다. 인터넷으로 처리하지 못한 내게도 잘못이 있지만, 이의 없으면 사인해서 반송하라든지 세무서에 방문해서 접수 통에 넣으면 된다는 설명만 있었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서류를 접수해 놓으면 다음 달 국세 환급통지서가 날아온다. 종합소득세 공제초과라며 이미 낸 세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것이다.
올해는 등기 공문 편지에 반송 봉투까지 들어 있어 바로 사인해서 보냈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걸 세무사는 그렇게 생색을 냈었다.
부재중에 등기 우편물이 국세청에서 와 있다고 현관문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우체국에 와서 찾아가라는 것이다. 다른 등기우편물은 그냥 편지함에 넣으라고 할 수 있지만, 국세청 공문이라니 그럴 수도 없었다. 또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이제는 환급 통보서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체국에 가보니 과연 짐작대로 환급통보서였다. 우체국에 신분증과 함께 환급통보서를 제시하면 바로 현금 지급한다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장영희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요즘 ‘손주 얼굴을 보는 값’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남에 식사값을 내야 하고, 데리고 나온 자녀에게 차비를 쥐어주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손주의 교육에 참여한다는 것은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다.
외할머니가 손자를 아기 때부터 다섯 살 때까지 보살폈다. 왕자 기르듯 받들면서 길렀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뭐든지 가져다주었다. 여섯 살 아이를 밥도 먹여 줬다. 외동딸에 손자가 태어났으니 오죽한가. 거기에 아들 내외는 맞벌이를 하니 미안한 마음에 벌벌 떨었다. 나는 못마땅했지만 내가 맡아 키우지를 않으니 손자교육에 간섭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져 손자를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
손자에게 말했다. “성범아, 아파트에 동네친구들 있지? 이 사탕 좀 친구들에게 나눠 줄까?” 무슨 좋은 생각이 있을까. 길에서 만나거나 집으로 갖다 주든지 그렇게 해보자고 했더니 쟁반까지 가지고 온다. 냅다 밖으로 나갔다. 강아지도 따라 나선다.
그때 네댓 살 여자아이가 엄마와 걸어온다. 얼른 다가가서 망설이지 않고 반지사탕을 준다. 그런데 손자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내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일단 처음에 성공을 했다. 그러더니 옆 라인으로 간다. 현관문에서 ‘딩동’ 누르고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힘차게 내려왔다.
이제 두 번째도 성공했다. 이번에는 어린애를 안은 남자군인을 만났다. 이미 탄력이 붙은 손자는 다가가서 “이 사탕을 드리고 싶어요” 웃음까지 띠고 상냥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간 그 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왜 울지? 그 집에는 아이가 둘이니. 사탕이 하나밖에 없어서 우는 것은 아닐까. 손자는 금세 알아듣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사탕을 주고 보무당당하게 내려온다. 울음소리는 그쳤다. 마치 온 동네를 돌아다니라고 해도 다닐 기세다.
마지막으로 1층을 두드렸다. 손자 이름을 아는 걸로 봐서 아는 집인 듯했다. 그 집안으로 들어오라 하니 신발을 벗고 강아지와 함께 들어선다. 그 집 할머니와 딸과 주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너 혼자 왔니?” 이렇게 묻는 소리가 들리고, “바래다줄까?” 5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밖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손자는 나왔고, “이야, 우리 범이 최고다. 할머니도 못하는 일을 네가 해냈구나.”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왔다.
아들에게 전화로 이야기했더니 며느리에게 전해졌다. 아들은 “엄마 잘했어요” 며느리는 퇴근해서 하는 말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입이 쩍 벌어졌다.
손자가 밖에서 놀고 있는데 또래의 아이가 집으로 들어오고 싶어 해서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놀다가 그 집으로 손자는 다시 놀러갔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퇴근해서 하는 말이 “어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 이런다. 퇴근길에 돼지고기 한 근을 사서 그 집에 갖다 주고 왔단다. 약속을 해서 가야 하고 불쑥 아이만 보내는 것이 아니란다. ‘내 생각은 그럴 수도 있지’ 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문화가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 손주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기나 혀’ 이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의 집을 혼자 방문해서 1시간 정도 머물렀다. 내가 데리고 나올 때 그 집 주인은 “아이가 정리정돈을 잘 하네요” 기분 좋은 소리를 한다. 남의 집에 혼자서 오랫동안 머물다 오는 일도 손자가 처음 해본 일이다. 새가 둥지를 떠나 날기를 연습하는구나 !
상봉역에서 전철을 타고 춘천역에 내려 놀이방에 도착했다. “우리 집까지 걸어갈까?” 손자에게 의견을 물으니 좋다고 한다. 집까지는 1.5km정도 되는 거리다. “그런데 할머니가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데 너 혹시 아니?” 그랬더니 앞장을 선다. 고사리 손으로 내 손을 잡고, 혼자서 설명을 한다. 나무가 많은 집이 나오고, 그 다음에 닭을 기르는 집이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닭 구경하고 싶다” 했더니 조금 기다리라며 닭장 앞에서 수탉이 몇 마리, 모이를 쪼아 먹는다느니 싸움을 한다느니 하며 이야기한다.
빵집에서 손자가 좋아하는 오징어먹물 빵도 샀다. 길을 건너 방앗간에서는 한참 동안이나 기름을 짜는 풍경, 자루에 담긴 고추를 구경했다. 김을 구울 때 바른 들기름을 여기서 샀다고 했다. 통닭집을 지나 손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기웃거리며 왔다.
아침에 놀이방에 갈 때 배웅하는 이가 있어야 된다. 오는 시간에도 마중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버스가 그냥 아이를 태우고 놀이방으로 간다. 그래서 오후 4시 버스를 정확하게 기다려야 한다. 잠시 잠이 들거나 하면 일이 커진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손자가 올 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다. 분리수거한 몇 개의 백을 들고 손자에게 말한다. “너 쓰레기장 어디인 줄 아니?” 씽씽카 고리에다 그중 하나를 걸더니 앞장을 선다. 한참을 가야 했다. 며느리가 퇴근해서 왔다. “오늘 범이 일 좀 시켰다”했더니 “어머니 잘하셨어요” 속으로 별일이네 했다.
아이에게 천천히 이야기로 설명하면 된다. 할머니생각은 이런데 어때? PX매점에 갈 때도 할머니가 이것을 사고 싶어. 달팽이크림이 필요해. 너는 뭘 고르고 싶은데.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고 이것을 사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좀 시간이 걸릴지라도. 새로운 과자가 나왔는데 사볼까. 지금 콧물이 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아야 된다는 것도 스스로 결정하도록 기다렸다.
아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다른 아이들보다 1년이 늦는다고 조바심쳤다. 내가 3개월 동안 춘천을 다니며 내 교육방법대로 아이와 자연스럽게 지냈다. 며칠 전에 아들이 와서 하는 말. “엄마 이제 범이가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고, 정상이래요.”
결국은 아이가 ‘혼자서도 잘해요’가 되었다. 이런 행동은 내가 두 아들을 길러 봤고, 지금 현재 제 몫을 해내는 어른으로 성장시킨 체험이 있어서다. 문화가 변해도 아이들을 키우는 근본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충청북도 청원과 청주를 사이에 두고 길게 늘어져 있는 상당산성은 조선시대 대표적 석성이다. 백제시대 토성을 조선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지금은 사적 제21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상당산성 정상에 서면 청주시내가 한눈에 훤히 보인다. 상당산성 북쪽 자락에 위치하는 충북 청원의 상당산성 자연휴양림은 국립자연휴양림 중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고 2012년 개장돼 쾌적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상당산성 자연휴양림이 있는 충북 청원은 조선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조선시대 대표 석성인 상당산성을 비롯해 세종이 60일 동안 머물면서 눈병을 고쳤으며, 세조도 피부병을 치료했다고 전해지는 세계 3대 광천수 중 하나인 초정약수가 있는 곳이다. 또 동학, 천도교 그리고 독립운동가 중 대표적 인물인 손병희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매표소를 지나 산림문화휴양관으로 향하는 진입로에는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떨어뜨려 바닥 곳곳에는 낙엽으로 가득했다. 오른쪽에는 중부지방산림청 보은국유림관리소에서 잘 보존하고 가꾸고 있는 참나무숲이 손님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휴양림 입구에서 임도를 이용하면 휴양림 외곽을 산책(약 1시간 30분 소요)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상당산성(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약 1시간 소요)와 휴양림 시설지구로 연결되는 산책로도 잘 정비돼 있어 산행하기에도 좋다. 휴양림 왼쪽에는 비교적 큰 잔디구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축구와 발야구 등 야외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원반을 던져 바구니에 집어넣는 프라잉디스크 시설도 있어 간단한 레포츠 또한 가능하다.
휴양림 상단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숲속수련장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1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과 식당이 갖춰져 있다. 숲속수련장 옆 건물에는 2층 규모의 숙박시설인 산림문화휴양관이 있다. 산림문화휴양관은 6인실 4개와 7인실 6개로 구성된 숙박시설이다. 객실의 현관문을 열면 쾌적해 당장 눕고 싶은 생각이 든다. 창문을 열고 테라스에 팔을 괘고 서 있으면 깊은 산자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소리와 새소리로 잠시나마 힐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상당산성 자연휴양림은 규모가 아담하지만 접근성과 쾌적성, 다양성을 모두 갖춘 알찬 힐링 장소다.
2014년 말의 해에는 상당산성 자연휴양림이 말처럼 거침없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상당산성 자연휴양림에서 힐링으로 새해를 시작해 보자.
결혼을 준비할 무렵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곳곳을 헤맨 적이 있다.
서울 도심과 가까우면서 탁 트인 전망과 조용한 산책길도 있는 곳,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금 수중에 있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 등이 조건이었다.
한 달 정도 찾아다녔을까. 드디어 서울이라고 하기엔 거짓말같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는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종로구 부암동이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악산 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부암동은 언덕이 가파른 동네로 유명하다. 출퇴근 시 등산은 필수이며, 눈이라도 올라치면 종종걸음에 여기저기서 엉덩방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암동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
최근 부암동은 신문과 방송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주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높아진 인기와 함께 예전의 한적하고 외진 곳곳의 빈 집들이 아기자기한 카페와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있어 찾는 이들에게 더욱 큰 즐거움을 준다.
부암동 언덕길 중간쯤을 오르다보면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협동조합 사진공방 공간291’(이하 공간291)이 눈에 확 들어온다. 노란 곰인형이 흰 벽 위에 앉아 “안녕” 하며 인사하듯 환하게 웃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공간291은 2개의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좁은 정원을 지나 가정집에 들어가듯 1층 문을 열고 들어서면 큰 테이블과 정원이 훤히 보이는 큰 창문이 있어, 여느 갤러리와는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기존 건물의 벽을 잘 살려 아기자기한 전시장을 이루었고 벽면 또한 다양한 재질을 사용해 전시장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현관문 옆 계단을 내려가면 1층과는 다른, 뻥 뚫린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은 대안공간으로 신진작가 및 기획자들을 지원하는 제2전시공간으로 지금도 신인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공간291엔 웬만한 대형서점보다 많은 사진집을 보유한 도서관도 있다. 공간291의 대표인 작가 임수식씨가 작업실에 있던 개인 소장 사진집을 가져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공간291 큐레이터 박정은씨는 “협동조합 사진공방은 2013년 9월 설립돼 사진의 예술적·사회적 역할을 탐구하고 신진 작가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공간291은 사진 관련 교육, 스터디, 워크숍,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누구든 사진을 감상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볼 수 있도록 늘 문을 활짝 열어 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