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올빼미족’이었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은 가족들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뜨는 습관을 들이고 나니, 이전에 잠자느라 놓쳐버린 시간들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올빼미족’이었을 때는 새벽까지 책도 읽고, 옷수선도 하고, 뜨개질이나 레이스뜨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시어머니, 시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일찍 했고, 남편과 시동생은 출근이 일렀다. ‘맏며느리’라는 막중한 위치에 서게 된 나는 오전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생활에 떠밀려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갔다. 시집살이 3년쯤은 오전 6시에 일어나도 9시까지 비몽사몽이었다. 눈이 ‘반짝’ 떠지지 않아 집중력도 떨어졌다. 올빼미족이 아침형 인간이 되려면 오랜 습관을 들여야 가능한 일임을 알았다.
나는 지금도 아침 식사 준비 때문에 오전 6시에 일어난다. 아들은 6시 30분에, 남편은 7시 30분에 아침을 먹는다. 출근시간이 달라서다. 식사가 모두 끝나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8시 30분이 된다. 내가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당뇨를 앓고 있어 식사 시작 한 시간이 되는 시점에 걷기 운동을 해서 혈당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노원구에는 중랑천, 당현천, 경춘선 숲길, 수락산 둘레길, 불암산 둘레길 등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요즘은 미세먼지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나무가 많은 산으로 간다. 수락산 자락에는 산책길이 많다. 아주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비 올 때, 눈 올 때를 제외하고 일정이 없을 때는 그 길을 걷는다.
운동을 마치면 오전 10시쯤 된다. 이 시간에는 아파트 단지 앞 카페 앞에 도착한다. 대로변 코너에 위치한 통유리가 시원한 카페는 바깥 구경하기에 너무 좋다. 지하철역 앞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다. 약속이 없는 날엔 거의 들른다. 이곳에서 파는 달달한 도너츠 한 개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피곤한 다리를 쉰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사람을 쬔다’. 사람을 쬔다는 말, 무슨 뜻일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시(詩) 중에 ‘사람을 쬐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 의미를 잘 드러내준다.
…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이다
…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재미있다. 얼굴 표정,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카페에서 ‘사람을 쬐며’ 누리는 이 시간이 나는 참으로 소중하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온전한 아침이기 때문이다.
오전 11시가 되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잔잔한 행복을 가슴 가득 품은 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집 안에 풀어놓는다. 이것으로 나의 아침은 끝을 맺는다. 나만의 시간을 향유하는 아침, 소박하지만 행복하다.
딸이 둘이다. 애지중지 키웠다. 큰딸이 시집을 갔다. 언젠가는 품 안에서 떠나야 함을 알면서도 시집가던 날 왜 그리도 가슴이 허전한지. 늦가을, 바람 부는 언덕에서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듯 마음 한구석이 알게 모르게 텅 비어갔다. 맏딸이라 더욱 그랬을 게다.
학교를 졸업하고 5년 정도 직장을 다녀 어디에 내놓아도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지만, 시집가던 날 기쁨에 앞서 왜 그리도 걱정이 많았는지. 부모의 마음이다. 엄마의 마음이다. 다른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자식은 늘 어리게만 보인다. 여든이 넘은 나의 친정어머니가 환갑이 지난 나를 지금도 걱정하는 것을 보아 그렇지 싶다. 밥이나 제대로 해 먹고 다닐지, 남편을 잘 챙길 수 있을지. 반찬은 잘 만들어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까?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나만 걱정하는 엄마일까?
나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 시집보낸 딸도 내 성격과 솜씨를 닮아서인지 요리를 하는 내 곁에서 눈썰미 있게 지켜보며 곧잘 하였는데 괜한 걱정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또 은근히 걱정한다.
오늘은 김치라도 담아 줄 요량으로 딸에게 전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단칼에 담아 주지 말라 한다. 담아다 줄 테니 먹으라고 다시 이야기하자 화를 낼 듯이 거절한다. 얄밉기도 하다. 여느 집의 딸도 그러겠지만, 제 아버지와 내게 늘 살갑게 해 주었다. 직장에서나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에는 기억해두었다 우리 내외를 그곳에 데리고 가곤 했다. 효성스런 딸이다. 출가한 딸이 더 생각나는 이유다.
엄마가 시간도 되고 하여 김치를 담가 주려는데 왜 싫어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딸이 얘기한 몇 가지 이유에 이해가 간다. 그 내용은 이렇다. 김치를 담그는 엄마의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가 그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능숙하지는 않지만, 스스로가 김치를 그런대로 담을 수 있어서란다. 마지막 이유는 이러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친정엄마 솜씨로 만든 맛 좋은 반찬에 남편이 입맛 들여지면 자기가 한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게 된다는 논리였다. 맞는 말이다. 엄마 음식이 그리워지면 친정에 와서 먹으면 된다고 덧붙인다. 친정엄마가 힘들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 깊은 마음에 얄밉기도 하고 서운했던 마음 한구석이 사라진다.
맛있는 것을 만들게 되면 딸이 늘 마음에 걸리는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해지기도 하나 나름으로 딸을 제대로 키웠다는 생각에 자위한다.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운 딸이 대견해진다. 딸과 사위가 시쳇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고 있다. 딸의 생각이 틀리지 않고 엄마를 위하여 그렇게 하더라도 맞벌이로 직장을 다니기에 반찬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 게 엄마다.
어느 날 딸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게 되었다. 딸이 마음에 또 걸린다. 딸이 퇴근해 집에 올 때쯤에 맞춰 검정 봉지에 넣어 딸의 아파트 현관문 바깥 손잡이에 걸어두고 얼른 돌아왔다. 엄마의 마음을 걸어 두었다. 오늘도 나는 평범한 친정엄마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들만 둘을 둔 남자다. 부부 동반하여 만난 친구의 부인들이 나누는 딸들에 대한 얘기에 나도 동화되어갔다)
분주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도착했다. 습관적으로 오른손으로 열쇠 뭉치를 찾았다.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 당연히 있어야 할 열쇠 뭉치가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술이 확 깼다. 주머니 내용물을 다 꺼내고 입고 있는 옷에 달린 주머니까지 다 뒤져봤는데도 열쇠 뭉치가 보이지 않았다. 낭패였다. 열쇠 뭉치에는 열쇠와 함께 교통카드, USB가 달려 있고 지인이 선물해준 헝겊 열쇠 케이스도 있다. 무게도 좀 있는 편이라 주머니에서 빠져 나갈 리는 없었다. 누군가 가져갈 만한 것은 최근 충전한 교통카드에 들어 있는 현금 6만 원 정도. 그 외에는 쓸모가 없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예비 열쇠를 만들어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가방 안쪽 주머니를 뒤져보니 다행히 예비 열쇠가 있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잠을 잘 수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아끼던 물건, 자주 사용하던 물건을 분실하면 겪는 현상이다.
아침에 깨서 어젯밤 일을 회상해봤다. 모임을 마치고 맨 처음 간 곳은 빈대떡집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벗어놓은 두툼한 겨울옷이 처치 곤란이라 둘둘 말아 이리저리 옮긴 기억이 난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열쇠 뭉치가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겨울옷들은 디자인을 중시해 주머니 깊이를 얕게 만들어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지퍼로 주머니를 잠글 수도 있지만, 추운 날 손을 넣고 다니기 때문에 지퍼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두 번째 간 집은 커피집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간 곳이 당구장, 네 번째 간 곳이 호프집이었다. 가는 곳마다 두툼한 롱패딩을 대충 접어뒀다. 당구장에서는 손님들이 마구 들이닥치는 바람에 손 씻고 계산하고 돌아오니 이미 옷이 옆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다음 날 역순으로 돌아보자며 열쇠를 찾으러 나섰다. 먼저 빈대떡집에 들렀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 건지 주말이라 문을 닫은 건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원망스럽게 밖을 돌아봤는데 그 흔한 전화번호 하나 없었다. 커피집, 당구장도 가봤지만, 보관하는 분실물이 없다고 했다. 네 번째로 간 호프집은 술김에 따라간 곳이라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돈을 지불하고 카드로 결제한 덕분에 영수증이 있었다. 영수증에 찍힌 상호와 주소를 확인하고 그 집을 찾을 수 있었지만 역시 보관하는 분실물이 없다고 했다. 오는 길에 충무로 전철역 분실물센터에도 들러봤다 전철 좌석에 열쇠 뭉치가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실물센터는 주간에만 열고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시내로 나가 저녁까지 일부러 시간을 보냈다. 아직 못 가본 빈대떡집에 가봐야 했기 때문이다. 왠지 그 집에 보관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도 열쇠 뭉치는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귀가하는데 동네에서 지인들을 만나 또 한잔했다. 열쇠는 분실하기 쉬우니 도어 록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도어 록은 지문이 찍혀 어지간한 전문가라면 바로 열 수 있으니 아날로그 자물쇠가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뒤 사무실을 오랜만에 나갔다. 그런데 책상 아래에 있는 컴퓨터 본체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열쇠 뭉치가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열쇠 뭉치가 없어진 날 USB를 사용하려고 컴퓨터에 꽂았는데 접속이 안 되어 몇 번 시도하다가 그대로 두고 간 것이다. 내 손을 벗어난 물건은 잃어버리기 쉽다. 우산도 그렇고 모자, 장갑도 그렇다. 주머니에 넣어두거나 가방 안에 넣어둬야 한다. 주머니도 바지 주머니가 상의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보다 안전하다. 교통카드를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분실한 적이 있으므로 앞으로 열쇠 뭉치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걸을 때마다 이물감이 느껴지고 꺼낼 때도 불편했다. 할 수 없이 다시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소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이유다.
전화, 문자, 카메라 정도로만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있다면, 10년 전 휴대폰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처음 휴대폰이 나왔을 때 우리가 경험했던 편리함보다 훨씬 더 많은 스마트 서비스가 넘쳐나는 시대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이런 것도 다 되는구나’ 하고 감탄할 만큼 다재다능한 앱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단순히 발견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사용해보며 익숙해져야 제대로 된 스마트 라이프를 누릴 수 있다. 상황별로 시니어가 활용해볼 만한 스마트 앱과 서비스를 소개한다.
◇ 낯선 나라도 문제없다, 해외여행 필수 앱 체크리스트
해외여행을 떠날 때 여권, 티켓, 옷, 상비약 등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마련하곤 한다. 이젠 이러한 기본 체크리스와 더불어 해외여행용 스마트폰 체크리스트도 꼭 필요하다.
첫 번째 체크리스트는 여행지 구석구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정보 앱이다. ‘트립어드바이저’는 여행지에서 가볼 만한 관광지와 맛집, 숙소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실패하지 않는 여행을 계획하는 데 도움을 준다. 누구나 여행지에서 지저분한 호텔, 맛없는 음식점, 불친절한 가게 등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이때 업소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장점만 늘어놓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트립어드바이저’는 한마디로 여행자의 방명록이다. 리뷰 메뉴를 통해 해당 여행지 곳곳을 다녀간 이들의 솔직한 리뷰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 수준의 리뷰가 아닌 여행지에서 겪은 경험과 유용한 팁, 꼭 가봐야 할 곳, 놓치지 말아야 할 즐길 거리, 현지에서의 애로사항 및 문제점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리뷰를 통해 여행지 리스트를 정리했다면, 항공권과 숙소 예매까지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원스톱으로 해결 가능하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장 든든한 가이드가 되어줄 앱이다.
두 번째 체크리스트는 낯선 도시를 돌아다닐 때 반드시 필요한 지도 앱 ‘구글지도’다. 특히 처음 가보는 해외에서는 모두 길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구글지도’가 구세주 역할을 한다. 지도 앱은 많지만 ‘구글지도’는 어느 나라를 가도 현지 언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표시되기 때문에 가장 권할 만하다. 가고 싶은 관광지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원어가 아닌 한글로 입력해도 지도에 목적지가 표시된다. 예를 들어 일본 삿포로에 여행 가서 근처 오도리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고 싶을 때, 앱 검색창에 ‘오도리공원’이라고 한글로 쳐서 검색하면 지도에 위치가 나타난다. 물론 현지어로도 표시가 된다. 목적지까지의 교통편과 소요시간을 알고 싶으면 ‘길찾기’ 메뉴를 이용하면 된다. 차로 이동할 경우,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경우, 걸어서 이동할 경우의 루트와 시간을 각각 확인할 수 있어 여행 스케줄을 짜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는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까지 친절하게 알려줘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도 내가 살던 동네처럼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세 번째 체크리스트는 번역 앱이다. 깊이 있는 대화는 어렵지만 길을 묻거나, 식당에서의 주문 등 간단한 대화는 번역 앱으로도 충분하다. 해외여행자들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뿐만 아니라 생소한 언어권에서도 활용도가 높은 ‘구글번역’을 가장 많이 애용한다. ‘구글번역’은 스마트폰 앱 화면에서 한국어와 원하는 언어를 선택하고 말을 하면 자동 번역을 해준다. 예전에는 내가 먼저 말하고 상대방이 말할 때 다시 번역 버튼을 눌러야 했지만 ‘대화’ 기능이 추가돼 스마트폰을 앞에 두고 각자의 언어로 말을 하면 자동 번역을 해준다. 번역 앱의 능력과 편리함을 경험하면 해외여행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몸소 느낄 것이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내고 거침없이 낯선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여행지에서의 기쁨은 배가된다.
>>단체여행 갈 때 여럿이 함께 쓰는 ‘포켓와이파이’
여행 떠나기 전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해도 현지에 가면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다시 찾아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한데, 아무 준비 없이 해외에서 데이터를 마구 쓰면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각 통신사의 데이터 로밍 서비스인데, 이 역시 혼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여행기간이 길어지면 비용 부담이 커진다. 여러 명이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면, 무선 와이파이 도구인 ‘포켓와이파이’를 활용해보자. 이름처럼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아 휴대도 간편하다. 무엇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데이터를 알뜰하게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현지 통신망을 잡아 무선 와이파이로 바꿔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여행지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지만, 아시아권에서는 하루 사용 요금이 5000원 정도밖에 안 된다.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기기 하나에 최대 10명까지 연결이 가능해, 단체여행 시에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대여 방법도 어렵지 않다. 포털 검색창에 포켓와이파이를 검색해 해당 업체에 여행지, 여행기간, 연락처를 입력하고 금액을 결제하면 여행 당일 공항에서 받아볼 수 있다.
◇ 부르면 달려오는 스마트 서비스
밖이 추울 때는 마냥 따뜻한 집 안에서만 머물고 싶다. 이런 날엔 뭐니 뭐니 해도 배달이 최고다. 익히 사용하고 있는 음식 배달 앱이나 장보기 앱도 유용하겠지만, 최근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서비스는 반찬배달 앱이다. 자녀들이 결혼해 출가하고 나면 요리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예전처럼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도 적어진다. 부부가 단출하게 사는 경우에는 반찬을 해도 식재료가 남아 골칫거리가 되곤 한다. 이럴 때는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먹을 만큼 반찬을 주문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반찬배달 서비스 앱 ‘배민찬’은 밑반찬부터 국, 찌개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잡채, 사골곰탕까지 배달해준다. 반찬의 특성상 배달이 늦어지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낮 1시까지 주문을 받고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현관문 앞으로 반찬을 배송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문을 열면 반찬이 도착해 있어 포장만 뜯어 그대로 놓기만 하면 손쉽게 밥상이 차려진다.
배달되는 자동차도 있다. 카 셰어링은 차를 소유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공유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은퇴 후 자가용의 필요성이 적어지면, 갖고 있던 차를 처분하기도 한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일은 줄어드는데도 보험료, 차량 수리비, 세금, 주차료 등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처분했는데, 조금 아쉽고 불편하기도 하다. 이럴 때는 이용한 시간만큼 비용을 내는 카 셰어링 서비스를 활용하면 된다. 카 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보면, 공유 자동차가 집 근처에 있을 때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직접 가서 차를 가지고 와야 한다. 편하려고 이용하는데 차를 직접 끌고 와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땐 카 셰어링 앱 ‘쏘카’의 ‘부름’ 호출 서비스를 활용해보자. ‘부름’은 내가 자동차를 이용하고자 할 때 내 집 앞까지 차를 가져다주는 서비스다. 2시간 전에만 예약하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집 앞 주차장에 차를 가져다주고, 사용 후 다시 집 앞에 주차하면 대신 가져간다.
달려오는 서비스 중 ‘세탁 앱’도 아주 유용하다. ‘세탁특공대’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방문해 세탁물을 수거해가고 다음 날 다시 배달해준다. 기존 세탁소를 이용하려면 왔다 갔다 해야 했지만 ‘세탁특공대’ 앱으로 주문하면 직원이 30분 이내로 출동해 세탁물을 수거해가 세탁을 한 뒤 다시 현관문 앞까지 가져다준다.
◇ 새해 계획의 성공을 도와주는, 목표달성 앱
새해 계획과 목표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실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획을 매일 실천하고 습관화할 수 있도록 체크해주는 앱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Loop습관제조기’는 좋은 습관을 갖게 해주고 관리해주는 앱이다. 사용법은 단순하다. 매일매일 실천하고 싶은 것들을 정한다. 예를 들면 아침운동, 글쓰기, 명상, 저녁 간식 안 먹기 등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은 목록을 정하고 실천을 한 뒤 완료 버튼만 누르면 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알람을 맞춰 정해진 행동을 반복하고 체크하면 목표를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 그래프와 통계로 보여준다. 날마다 쌓이는 활동 이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부진한 결과에 반성할 수도 있고, 꾸준한 실천에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다.
스마트폰 앱 활용도 편리하지만, 매일 체크하는 게 귀찮은 사람은 손목에 차는 ‘스마트밴드’를 이용해보자. 스마트밴드는 걸음 횟수, 이동거리, 심장 박동수 등을 표시해준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일어서라는 표시로 손목으로 진동이 전해지고 내가 목표로 정한 걸음 횟수가 달성되었을 때는 잘했다는 진동 알람이 울린다. 손목에서 알려주는 이 같은 알람에 따라 더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스마트밴드는 브랜드, 기능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처음부터 부담스러운 제품을 사지는 말자. ‘미밴드’라는 2만 원대의 저렴한 스마트밴드로도 좋은 습관 만들기 연습이 충분하다. 스마트밴드는 사용하는 친구들끼리도 연결이 되어 누가 더 많이 걸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친구의 운동량과 비교하다 보면 승부욕도 생기고, 서로 목표 성취를 위해 독려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진다.
우리 집은 딸과 아들이 애를 둘씩 낳아 손주가 넷이다. 식구가 늘다 보니 가족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톡방을 개설하기로 했다. 필요한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사소한 집안일이나 유익한 생활정보까지도 올려놓는다. 그런데 한 달 전 딸애가 사진으로 찍어 올린 톡 내용은 매우 황당하기도 했고, 애들이 어른들에게 한 방 펀치를 날리는 충격을 주었다.
사연은 이렇다. 올해 초등학교에 간 지 2개월밖에 안된 셋째 손녀가 학교숙제를 집에 와서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숙제의 교육내용은 ‘식구들이 같이 돈을 모았다면 가족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이 돈을 어려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면 더 좋다’는 취지였다. 이런 설명을 한 후에 애들에게 질문을 통해 선한 행동으로 유도하려는 학습 내용이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함께 모은 돈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집을 살 거예요!”
“그와 같이 생각한 까닭을 써보세요.“
“엄마가 자꾸 부동산에 가서….”
실은 딸애가 몇 달 전부터 학군이 좋은 강남 쪽으로 이사해볼까 해서 전셋집을 물어보러 복덕방에 다니고 인터넷에서 자주 부동산을 검색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어린 애들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본 대로 들은 대로 배우고 어른들을 따라서 행동을 한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어이가 없고 황당해하는 딸에게 무슨 답을 할까 하다가 나는 이렇게 카톡에 올렸다.
“애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란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자란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어린애들에 그치지 않으며 성장을 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누구든지 부모들은 자기의 애들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두었을까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엄마, 아빠라고 그대로 찍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해 송년회 모임에서 외교관 출신 정부 고위관료였던 국장이 실토한 실제 이야기다.
모처럼 일요일 집에 있는데 갑자기 고2에 다니는 딸애가 학원을 가려고 나서던 차 핸드폰이 안 보인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혹시 집 어디엔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때 그가 파자마 차림으로 앉자 있던 소파 밑에서 전화가 ‘삐르르’하고 울렸다. 평소 딸애한테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생각해왔던 그는 딸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놨을까 궁금하던 차에 이를 확인해볼 절호의 기회라 생각되어 흘깃 바탕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왕 짜증!’
순간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애지중지 키우며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고, 인생을 헛되이 살아온 박탈감까지 일 다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도저히 그 마음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어서 마음을 달래려고 집을 나와 평소 다니던 절로 달려가 스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스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만 던졌다.
“다 업보입니다. 그 답은 오직 거사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때 TV프로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본 기억이 났다. 아이가 문제라고 생각하던 부모들이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단지 부모를 따라 할 뿐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생각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한참 지난 뒤에야 모든 게 다 나의 잘못임을 깨달았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등교해서, 학교로 학원으로 하루 16시간을 공부에 지쳐 녹초가 돼 들어온다. 현관문에 들어서는 딸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냐' 위로는 고사하고 ‘빨리 씻고 공부 좀 더 하다 자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또 한 달 내내 죽도록 고생하고 시험 봐서 성적표 받아오면 수고했다는 격려는 못 할망정 ‘너는 아빠 닮아서 머리는 좋은 데 노력을 안 해서 이렇다’라는 둥 몰아붙이기만 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왕짜증 맞다!
그 뒤로 개과천선이라고나 할까. 예전과는 완전히 달리 딸애의 입장에 서서 친구 같은 눈높이에 맞게 화법 먼저 바꾸었다. 무조건 잘 해주고 베풀기보다 딸애가 원하는 쪽으로 하나씩 다가갔다. 처음에는 서로 너무 어색했지만, 서서히 딸애의 태도와 행동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2년 뒤 대학에 들어간 딸이 아버지의 생일이라면서 일찍 집에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따라 설레는 맘으로 딸이 무슨 말을 할까 너무도 궁금했다. 빨간 장미꽃 몇 송이와 함께 딸애가 준 최고의 선물은 스마트폰에 찍힌 왕짜증이 이렇게 바뀐 문구였다.
‘대한민국 최고 울 아빠!’
혼자 살다 보니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 우리 집은 늘 부재중이다. 우편배달부나 택배 기사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집이다. 현관문에 등기 우편이나 택배는 인근 세탁소에 맡겨두라는 쪽지를 써 붙여 놓기는 했지만, 일단 전화가 온다.
한 번은 등기 우편이 왔다며 택배기사가 전화를 했다. “301호 맞느냐?”는 것이었다. “!”맞다고 했더니 “어디다 두고 가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우편함에 놓아두고 가라”고 했더니 등기라서 규정 상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가져 갈 테니 사흘 이내로 우체국에 와서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사흘 이내에 안 오면 반송한다는 것이었다. 전철로 두 정거장을 가야 하는 우체국에 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현관 앞에 소화전 함이 있다. 거기 넣어두라고 하면 그나마 말을 듣는다. 저녁에 귀가해서 소화전 함을 열어 보니 전에 살던 사람 앞으로 온 등기우편이었다. 지금 어디 사는지 당연히 모른다. 그래서 갖고 다니다가 다른 동네에 갔는데 마침 우체국이 보여 반송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거주지 우체국에 가서 반송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편배달부가 집주소로만 맞느냐고 물어서 맞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 반드시 수신인 성명도 맞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또 한 번은 지방의 어느 농산물 협동조합에서 보낸 택배였다. 사과상자만한 크기였다. 필자가 요청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열어 보니 건강보조식품인데 샘플을 시식하면 상품을 인수할 의사가 있는 것이므로 현금 25만원을 보내라는 안내서가 들어 있었다. 전화번호를 찾아 항의했더니 반송하라고 했다. 다시 우체국까지 그 무거운 것을 들고 가서 반송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원래는 택배나 등기 우편이 오면 옆집 할머니가 대신 받아 주었다.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먹을 것이 생기면 서로 나눠먹던 사이이다. 그런데 그 노부부가 이사 가고 젊은 부부가 이사 왔다. 새로 이사 온 그 집 새댁이 우리 집 현관 앞에 붙여 놓은 ‘옆집에 놓고 가라’는 메모지를 뜯어 버렸다.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우리 집 일로 누르는 초인종 소리에 놀라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택배 기사가 “동네 세탁소에 맡겨두겠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별로 이용하지도 않는 세탁소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니 부재중인 집 동네 택배는 거기 두고 간다는 것이었다. 과연 세탁소에 가니 택배 등기 우편들을 입구에 모아두고 있었다. 다만 본인 여부 학인을 안 하니 불안하기는 했다. 그 뒤로 세탁소에 일부러 세탁물을 맡기게 되었다.
사실은 더 가까운 곳은 길 건너 부동산 중개소이다. 집 문제로 알게 된 사람이다. 그런데 택배 기사들은 길을 건너면 동네지명이 달라 규정상 그렇게는 못한다는 것이다.
명절 때마다 쌀 20kg을 택배로 보내오는 회사가 있다. 너무 무거워서 세탁소까지 갖다 두라면 화를 낸다. 세탁소에서 찾아오는 일도 힘든 일이다. 그냥 집 앞에 두고 가라고 하면 분실로 책임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다며 고집을 피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방화문이 있다. 평소 열어두기 때문에 그 뒤가 눈에 잘 안 띈다. 거기 두고 가는 것이 절충안이다.
어떤 사람은 택배가 오면 기대도 되고 기다려진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리 반갑지 않다. 연락도 없이 택배가 왔다고 연락 오면, 누가 보냈는지, 수신인 이름이 맞는지, 두고 갈 장소 등으로 또 한참 시비를 해야 한다. “누가 보냈느냐?”고 물으면 발신자 택이 취급 과정에서 닳아서 글자가 잘 안 보이는 경우도 있고 영어이름으로 되어 있으면 안 보인다며 짜증을 낸다. 이래저래 신경 쓰인다.
베트남 커피 진하게 한잔 내려서 거실 소파에 앉아 일간지를 펼쳐든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새벽녘 잠결에 ’받들어 버린‘ 마나님의 분부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명을 좇아 먼저 베란다 구석에 있던 큼지막한 빨래 통을 옮겨온다. 아내가 덮고 자는 흰 이불을 그 안에 담는다. 세재를 세 가지나 섞어 골고루 뿌려준다. 충분히 적실만큼 물을 쏟아 붓는다. 그리곤 자근자근 밟는데 철퍼덕 철퍼덕 거품과 더불어 주말 오전 한바탕 소동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결혼이후 처음이지 싶다.
온몸 여기저기 축축해진 땀방울에 이만하면 되었을까 하는 순간, 귀신같이 보내온 아내의 메시지엔 베란다 세탁기 돌리는 방법이 마저 적혀있다. 헹굼, 탈수 등 순서에 따라 꾹 꾹 버튼을 눌러 세팅을 따라하는데 제대로 된 건지 미심쩍다. 외출한 사람한테 전화를 하자니 그것도 뭣하다. 오래된 세탁기라 그런지 필자로선 참 복잡하기만하다. 씨름 끝에 이윽고 좔 좔 좔 쏟아지는 급수를 확인하곤 겨우 한숨을 돌려 본다. 그 사이 식어버린 잔속엔 아직도 반 넘게 남아 있는 커피.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래~ 이왕이면 묵혀둔 숙제도 해버리자, 새해특집으로 칭찬도 함 받고.” 그것은 바로 현관 센스 등 교체 미션! 가끔씩 깜빡거리던 센스등은 요즘 들어 부쩍 그 상태가 심각해졌다. 아예 잘 켜지지도 않아 제법 성가셨는데도 차일피일 해왔던 것이다. 새삼 올려다보니 제법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게 현관 센스 등. “어디 잘 함 해보셔” 하는 표정도 역력하니. 우선 스페어 전구를 찾고(실은 한 참 만에 겨우) 의자도 가져온다. 손 장갑도 껴보는데 드라이버도 기본으로 있어야지 싶다. 소매를 걷고 몸을 위로 올려 허공으로 두 팔을 뻗어본다. 손끝으로 대충 만지작거리니 원형커버는 어렵지 않게 분리할 수 있었다. “뭐 이정도면 어렵지 않네, 이젠 전구만 교체하면 되겠지.” 아뿔싸 그만 쑤셔오기 시작하는 양 어깨와 팔. 까치발을 딛고 커버 안쪽의 백열전구를 겨우 돌려서 빼내는데 급기야 부르르 떨리기까지 한다. 천장이 높은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정작 문제도 다른 데 있었다. 스페어 전구로 갈아 끼웠는데도 깜빡거림은 마찬가지다. 슬슬 열리기 시작한다. 이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한 자락. 동생은 바로 전기기술자! ‘득템’이라도 한 듯 바로 콜을 외쳐본다. 그런데 동생은 무릎을 다쳤다며 지금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여기까지 인가? 그만 스톱? 아니다 해도 밝았는데 마나님한테 새로운 면모도 보여 주어야지” 원격으로라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동생의 말을 믿고 한 걸음에 마트로 달려간다. 여러 제품들 중 고른 것은 15W용으로 가격은 17500원인데 아예 전구도 필요 없는 제품. “뭐라고” 잠시 놀라기까지 한다. ‘생활의 발견’이랄까? 포장지를 뜯고 매뉴얼을 훑어보는데 설명은 비교적 간단하다. 다시 걸상위로 올라가 천정에서 나온 한 가닥 전기선의 피복을 벗기는데 혹여나 감전 때문에 마음을 졸인 탓이리라. 손가락은 마구마구 떨려오고 높이 때문에 전선 연결부위 등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몸체를 천정에 고정 하려는데 드라이버 끝에 매달린 나사못이 끝내 구멍을 못 찾고 바닥으로 떨어져 자취를 감추고 만다. 오 마이 갓.
사단은 실은 지금부터다. 꼬인 전선 가닥을 풀려는데 갑자기 지지직거리며 불꽃 아닌 불꽃이 번쩍 거린다. 분명 스위치는 내렸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더욱 더 떨리는 손끝으로 전기선 가닥을 만져보는데 왠지 전류가 통하는 듯 느낌이 영 별로다. 그냥 동네 철물점 아저씨나 부를 걸 괜히 뭔 짓인지? 직접 했다며 시침 뚝 떼면 그만일 테고 출장비 몇 만 원이 대수인가? 이러다 괜히 불상사라도 생기면? 별 생각이 다 든다. 바로 그 순간이다. 현관문이 열리며 이윽고 계단을 오르는 소리! 지나치다 건네는 눈인사가 전부였던 아래층 아주머니다. 뒤이어 그 아래층 아저씨도 계단을 쿵쿵 거리며 올라온다. TV보는데 갑자기 맛이 갔다며 인터넷도 안 된다고. “전 특별히 따로 손댄 게 없는데요?” 일단 시치미부터 떼고 본다만 켕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까 그 ‘지지직’ 스파크가 필시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다.
이웃의 재발견이랄까! "저희 집도 마침 센스 등에 문제가 있어 전기아저씨 부를 참이었는데 이참에 한 번에 해결 하시죠", "전 테스트기 가져올 테니 잠시 기다려보시죠" 평소 주차 때문에 한 번씩 교대로 콜을 주고받던 2층 아저씨, 테스트기로 한 번 더 문제점을 체크해 주신다.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다. 방학한 아이들 잘 있냐며 오히려 안부까지 물어 오시는 3층 아주머니, 이제 보니 무지 말씀을 잘 건네신다. 잠시 후엔 장을 많이 봤다며 아이들 간식까지 내민다. 두 분 다 성도 안내고 참 신기한 일이로다.
2층 아저씨랑 합동 점검에 들어간 끝에 원인제공은 당연히 필자의 서투른 작업과정 에서 스파크가 생긴 탓이었다. 그 때문에 건물 1층 현관 입구에 있는 메인 차단기가 내려간 것이었다. 처음엔 생각이 거기까진 미치지 않아 각자 집안의 스위치만 온오프를 반복하고 있었던 거였다. 원인을 찾아내고 나니 그 뒤론 저절로 풀린다. 옆에서 보조를 해주니 없던 힘도 생기고 진척도 빠르다. 센스 등 몸체를 양쪽으로 두 개의 나사못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드디어 스위를 ON 해본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박. 너무 환하다. 마치 대낮같다. “진작 할 걸”
일을 하다 보니 새롭게 배운 꿀팁 하나. 센스 등 한 귀퉁이엔 옵션모드가 있더라는 사실. 낮에도 켜지게 하는 모드와 밤에만 켜지게 하는 모드가 그것이다. 벌건 대낮에 굳이 센스 등이 켜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두운 실내를 제외하곤 말이다. 의기양양해진 필자, 2층 3층의 센스 등도 들여다보곤 모드를 조정해주는 오지랖을 발휘한다. 흠흠.
우연찮게 시작된 두 이웃과의 대화는 센스 등에서 출발해 겨울철 실내 단열문제, 옥상 방수 및 누수문제로 이어지며 서로의 집도 왕래하면서 제법 시시콜콜한 대화까지 나누게 되었다. 십여 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있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처음에 소동은 일으켰지만 결국 필자의 손으로 현관 센스 등도 무사히 교체했고 덕분에 이웃과의 ‘소통’도 ‘연결’도 복원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말 큰일 했다는 생각이다. 지금 당장 여러분의 현관 센스 등을 확인해 볼 일이다. 정말이다.
시니어 코하우징(senior co-housing)은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 들어서도 잘 사는 데(aging-in-place) 초점을 두고 개발된 시니어 주택 대안 중 하나다.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현대 코하우징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돼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전파됐다.
시니어 코하우징은 널찍한 커먼하우스(common house, 공동생활시설)와 소규모 개인 주택(private dwelling)으로 구성돼 커뮤니티의 이념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해준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주민들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동년배에게 시니어 코하우징을 추천할 정도로 전반적인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① 다른 시니어 주택 대안보다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적정 가격의 주택 제공
② 주민의 프라이버시와 공동생활 이익추구를 혼합한 주거 유형
③ 은퇴 후 시니어가 가진 유휴 인적자원과 사회 경험 활용
④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면서 가능한 한 노인 부양시설의 입주를 늦출 수 있어 노인 부양에 드는 사회적 비용 지출 감소
⑤ 동년배끼리 생활하며 정서적 지원과 상호 부양을 통해 노후생활의 질 향상
시니어 코하우징에 입주하려면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하고, 함께 거주하는 자녀가 없는 부부 또는 독신 노인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들어가서 거주하게 될 주민이 주체가 되어 그룹을 형성한 뒤 지방정부, 건축가, 은행 등과 협조해 설립하는 형태를 띤다. 코하우징 주민은 연금 수입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이웃 간 상호 부양과 사회적 교류를 통해 인지기능을 활성화한다. 국내에서 눈여겨볼 만한 스칸디나비아 시니어 코하우징 두 곳을 소개한다.
◇ 크레아티브 시니어보(Det Kreative Seniorbo)
위치 덴마크 오덴세 입주 연도 1992 건물 유형 단층 연립주택 주택 수 12개 주민 수 18명
성공적인 시니어 코하우징 사례로 손꼽히는 덴마크 크레아티브 시니어보는 설립 이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방문객이 줄지어 발걸음하는 곳이다. 오덴세 중심지에서 멀지 않고 식품점, 학교, 우체국, 주택가, 버스정류장 등이 매우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다. 부지 전체 면적은 3000㎡, 건물면적은 980㎡으로 이 중 주택면적이 850㎡, 커먼하우스가 131㎡를 차지한다. 12채의 단층 연립주택이 커먼하우스를 둘러싼 환경이 특징이다. 이 중 5채의 개인 주택은 현관문을 열면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곧장 커먼하우스로 이어진다. 나머지 주택 7채는 중정을 둘러싸고 배치돼 커먼하우스가 아닌 중정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주택마다 거실과 연결된 개인 정원과 개인 창고에는 건물이 별도로 지어져 있다. 개인 주택은 부엌과 2~3개의 방이 있는 58~82㎡ 규모로 면적은 크지 않지만, 천장이 높아 거실에 로프트(loft, 다락)를 설치해 공부방, 침실 또는 손주가 방문했을 때 놀이방 등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부엌, 식당 겸 회의실, 취미작업실, 세탁실, 손님방 등이 마련된 크레아티브 시니어보의 커먼하우스는 주택에서 접근이 쉬워 주민들이 부담 없이 자주 모인다. 이곳 주민들은 공동 취미활동을 자주 하는데, 여자들은 공동거실 취미실에서 바느질이나 퀼팅을 하고 남자들은 중정 목공실에서 목공예를 하거나 기계를 수리하곤 한다.
◇ 패르드크내팬(Fardknappen)
위치 스웨덴 스톡홀름 입주 연도 1990 건물 유형 7층 아파트 주택 수 43개 주민 수 50명
패르드크내팬은 지방정부 공영임대아파트 형태로, 몇 명의 중년 여성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그들에겐 두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중·노년기 사람들이 편한 환경에서 가까이 살면서 서로 돕고,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하며, 정부의 도움을 적게 받으면서 자립적으로 살 방법은 무엇일까? 자녀들이 독립하고 ‘빈 둥지(empty nest)’가 되었을 때, 넓은 아파트를 아이가 있는 젊은 가족에게 물려준 뒤 이주할 주택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그들은 1987년 코하우징 조합을 결성하고 2년간 공동체 이념에 대한 오랜 논의를 거쳐 주민의 비전에 맞는 건물을 완성했다. 패르드크내팬은 37~75㎡의 개인 아파트 43개(부엌과 1~3개의 방)와 400㎡의 커먼하우스로 구성돼 있다. 개인 아파트는 일반 주택에 비해 좁지만 커먼하우스가 넓어 손님 접대와 파티를 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주 5일 이뤄지는 공동식사는 ‘코하우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핵심적인 공동활동이다. 순번대로 돌아가는 취사당번은 의무이지만 식사는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원할 때만 식사시간에 참여하면 된다. 이곳 주민이라면 누구나 6주에 한 번씩 취사와 청소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커먼하우스 청소, 정원관리 등을 수행한다. 주민들이 청소와 단순 유지관리 등을 하면 주택 회사가 이러한 활동에 대한 비용을 조합에 되돌려주는 형태다.
커먼하우스에는 TV가 있는 독서실, 컴퓨터실, 세탁실, 공동식당, 부엌, 목공실, 식당에서 곧장 나갈 수 있는 정원이 있다. 주민들은 아파트와 커먼하우스의 임대료를 아파트 면적 비율에 따라 산정해 지불한다. 임대료에는 건물유지비,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장고 등의 수선충당금이 포함된다. 평균적인 아파트 임대료로 넓고 다양한 공동시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한국형 코하우징은 어떻게?
우리나라도 은퇴 후 자녀로부터 독립해 부부 또는 독신으로 지낼 새로운 주택 대안을 강구하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주택 대안으로 시니어 코하우징 운동이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코하우징과 유사한 국내 동호인 주택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동산이 개인 소유이고 대지와 주택난이 극심한 한국의 특성상 개인 주택 공간을 최소화하고 커먼하우스 면적에 투자하는 것을 재산상의 불이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주민 간 의견 차를 심화시켜 공동체 생활의 와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따라서 개인 소유의 코하우징을 계획한다면 주민 스스로 생활의 질과 물질적 이익 중 어느 것을 우선으로 추구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이미 시행했던 것처럼 비교적 재산권 갈등이 적은 공공임대주택 분야에 주거복지 차원에서 시니어 코하우징을 도입해 시범 운영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국내에서 준비하는 공공임대주택 단지의 1~2개 동을 우선으로 시니어 코하우징으로 개발해 보급한다면 코하우징이라는 새로운 주거 대안을 홍보하고 지원해주는 방안이 될 것이다. 그 결과가 성공적일 때, 점차 민영주택 단지에서도 임대 또는 분양 방식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는 근래 지자체에서 노후한 다세대주택을 구입해 개조 후 저소득층 가구에 임대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 중 몇 개를 시니어 코하우징으로 개조하는 시도도 신축 건물을 설립하는 것보다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최근 서울시 주체로 시작된 공동체주택(코하우징, 셰어하우징) 보급사업을 통해 개인 토지를 가진 협동주택은 물론, 시에서 소유한 토지를 시중보다 싸게 40년간 임대해 주민 스스로 주택을 짓도록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을 보급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머지않아 다른 지자체에서도 공동체주택 개발을 수월하게 하는 다양한 지원책이 생겨 시니어 코하우징을 포함한 다양한 코하우징 개발이 시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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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소비자 주거학 전공, 명예교수. 스웨덴 샬머스 공과대학교 명예공학박사. 저서 ‘굿모론 예테보리’. ‘스칸디나비아의 시니어 코하우징’, ‘코하우징 공동체’ 외 다수.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을 다섯 군데나 갖고 있는 올해 환갑을 지낸 K 사장은 나와 테니스 동호회원이다. 이분은 30대 초반부터 이런 피복장사를 해왔으니 이 방면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한때는 본사에서 매출을 가장 많이 올려주는 가맹점이라고 특별대우와 표창장도 받았다고 한다. 본사에서 경쟁브랜드사와 맞장 뜰 지역에는 K 사장에게 적극 지원을 전제로 점포를 개설하도록 권유하다고 하니 본사에서도 인정하는 장사꾼이다.
여러 곳의 점포를 혼자 운영할 수는 없다. 각 점포마다 팀장이라는 직책의 책임자를 지정하고 그 밑에 알바들을 고용하여 장사를 한다. 알바생중에서 경력이 있고 장사수완은 물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을 선발하여 팀장이라는 책임자 직책으로 키워간다. 팀장은 급여대신 매출액의 몇 %를 갖고 가는 소 사장이다. 물건을 많이 팔아도 알바들은 시간당 임금을 받아 가는 것으로 끝이지만 K사장이나 팀장은 직접적인 이익이 많이 생긴다. 반면 장사가 안 되면 팀장은 급여를 못 받는 것으로 끝나지만 K사장은 가게임대료와 관리비등 직접적 손실이 생기는 구조다.
K사장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노하우를 직원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는데 직원들은 별로 귀담아 듣는 기색이 아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팀장이 말하길 ‘사장님이 가게에 있으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으니 앞으로 여기는 나오지 마세요.’ 라고 했단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인지는 몰라도 손님에게 물건을 팔아본 기억이 없다. 손님들이 젊은 종업원하고만 이야기 하려고하지 사장이지만 늙은 자신에게는 아무도 말 붙여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가게에 가도 동태만 살피고 나와야하고 자신의 신세가 물위에 기름 뜬것처럼 점포에서 겉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P는 과장급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하여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고객을 위해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통 손님이 없다. 누가 귀 뜀을 해줬다. 늙은이 그것도 남자 늙은이 혼자 있는 부동산점포에 아무도 가지 않으니 참한 아줌마를 실장급으로 한사람 체용 하라고 했다. 결국 여성실장을 체용하고 이익금을 절반씩 나누기로 하면서 손님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옛날 어른들이 자주 말씀하시길 호박은 늙으면 쓰임새가 많으나(호박죽, 호박범벅. 호박꼬지, 약초 넣고 호박다림 등) 사람은 늙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했다. 노인이 죽으면 동네 도서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처럼 노인은 지혜의 샘이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사장이면서도 종업원에게 까지 배척당하고 자격 있는 공인중개사임에도 무자격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것이 노인의 현실이다.
그렇다하여 세태를 원망만하고 뒷방 늙은이로 죽치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 100세 시대에 70대는 너무 젊다. 영원한 현역이 좋다. 걸음을 걸어도 몸을 꼿꼿이 치켜세우고 힘차게 빨리 걸어야 한다. 몸에서 노인 냄새가 아니라 향기가 나도록 청결을 유지한다. 오늘도 힘차게 구두끈을 졸라매며 ‘아빠 출근한다’라며 크게 외치고 현관문을 나선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무엇보다 음식 자체의 맛이 좋아야 하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오순도순 재미있는 담소를 나누는 기분 좋은 상태에서 먹어야 한다. 더 바란다면 주위 분위기가 아름답고 잔잔한 음악소리가 바닥에 깔린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 먹을 때마다 매번 그런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과 먹기는 황제가 아닌 이상 힘들다.
필자는 어떤 장소이건 아무음식이나 잘 먹지만 불결할 것 같은 음식점이나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 곳에서의 식사는 극도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이제 나이 들어 이것저것 가리는 것도 주책이고 어른스럽지 못해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싫어하는 곳 첫 번째가 초상집 음식이다. 초상집에서 통곡소리 들으며 흰 소복 입은 여자들이 날라다주는 음식에는 죽은 사람의 귀신이 붙어 있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들어오던 옛날이야기에 의하면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 기가 약한 사람에게 옮겨와 병들게 하거나 저승길에 동행하자고 속삭인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아내도 필자가 초상집에 다녀오는 날은 현관문을 들어서기 전에 뒤로 돌아서게 하고 소금을 한 주먹씩 뿌린다. 귀신을 쫓는 의식이란다. 귀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우리세대는 귀신과 죽은 사람을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다. 초상집음식을 제대로 먹으려면 귀신의 존재를 의식에서 없애야 한다.
요즘은 장례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흰 소복 입은 여인네를 보기도 어렵거니와 더더욱 통곡소리를 들어본지는 까마득하다. 심지어 예전에는 금기시되던 웃음소리도 초상집에서 들을 정도로 망자에 대한 애틋함이 사라졌다. 핵가족화 되어 어르신들과 떨어져있는 기간이 길어졌고 환경과 의료시설의 발달로 무의미한 삶을 너무 오래 살다보니 그나마 남아있던 애잔한 정도 요양원 생활을 거치면서 얕아져 버렸다.
음식서빙은 일가친척의 여인네들이 도와주던 시대에서 군복 같은 제복을 입은 전문 상조회사의 잘 훈련된 직원들이 도맡아하고 있다. 음식도 식당에서 위생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한결 좋아졌다. 예전의 초상집과는 다르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머리에 돼내며 초상집 음식 먹기에 점점 노력하고 있다. 살고 죽는 것이 다 한편의 인생사 드라마로 인식한다.
두 번째가 시장바닥에 좌판을 깔고 파는 음식들이다. 방송에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투어를 하면서 값싸고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먹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자만 아직은 시장통로의 좌판음식은 비위생적인 이유로 기피한다. 좁은 시장 통이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부딪치는 것도 짜증나지만 시장의 좌판에는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무엇을 제대로 씻기가 어렵다. 식기세척이 어려우니 접시에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뜨거운 음식을 담아내고 다 먹고 나서 비닐만 걷어서 버리고 새로 비닐을 씌우는 것으로 설거지가 필요 없다. 간편한 방법이지만 뜨거운 음식을 담아내는 비닐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이 걱정된다. 물이 귀하니 음식재료를 제대로 세척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음식원가를 낮추려고 저가의 재료에다가 맛을 내게 하는 조미료를 과다하게 살포하는 것도 못마땅해 했다. 주차시설이 부족한 것도 불편하다.
하지만 요즘 시장은 지자체의 재래시장 살리기의 정책에 힘입어 깨끗하게 변모되고 있다. 가벼운 주머니로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어보기 좋은 곳이 시장이다. 손님이 찾아와야 시장상인이 살고 상인이 살아야 시장도 발전하고 더욱 위생적이고 깨끗해 질 것이다. 잘못된 시장음식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자주 찾아가도록 노력한다면 분명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