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등학교 전학] (7) 처음 겪은 밸런타인 데이

기사입력 2016-09-05 17:25 기사수정 2016-09-05 17:25

1983년 2월14일.밸런타인 데이라는 걸 나는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여자 아이들이 자꾸자꾸 늘어가고 수군덕거리는 소리들과 함께 우리 집 둘레를 맴도는 날이었다. 우리 두 녀석들은 올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집에 안 돌아오고 여자 아이들은 두 줄로 서 있고 몇 명은 자전거를 타고 수십 번을 왔다가 가길 반복했다. 오후 4시가 가까워 오자 밖이 더 더욱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지 도통 모르겠는 난 마트에도 가야겠고 학교에도 한 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별 수 없이 현관 문 밖으로 나갔다. 이상한 비명 소리와 함께 우리 집 층계를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도로 들어왔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뭔가가 우리 집 안으로 던져졌다. 하나 둘... 나는 문을 아예 열어 놓았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있는데 금세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완전 조용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는데 그 뒤로 헐레벌떡 두 녀석들이 후다닥 뛰어 들어오며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놀라서 바라보고 있는 내게 ‘엄마! 바렌타인 데이가 뭐야? 오늘이 그런 날이라는데? 배고파요~’ 아이들은 여기저기 날아 들어와 있는 것들을 주워들고 포장을 뜯어보며 카드를 읽어가며 킥킥거린다. 그런 날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들어 본 듯도 했지만 이렇게 난리를 치는 일인지는 생전 처음 알았다. 거의 모두가 본인이 직접 만든 초콜릿들이었고 그 중에는 손수건들, 사탕과 과자와 일용품... 들이었다. 반 아이들이 보낸 것이었다. 우리 셋은 이런 과자 같은 걸 한국의 초등생들은 만들 수가 없음을 잘 알기에 예쁘게 포장하고 직접 만든 초콜릿을 놀라운 눈으로 보면서 칭찬을 했다. 우리 애들에게는 별 반응이 없는 날이었지만 그 다음날 이웃 엄마들이 웃으며 내게 아주 친한 척 다가와 ‘와아~~ 김 군들은 정말 인기가 많네요!! 어제 얼마나 많은 초콜릿을 받았어요? 하루 종일 여자 아이들이 서성거리던데...’ 하는 인사를 했다. 대단한 인기에 연예인 뺨친다며 부러운 눈길을 보내는 그녀들에게 난 그저 웃었다. 어제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남편에게 아무 것도 안 줬냐며 남편들이나 회사 남자직원들에게는 ‘기리초콜릿’이라고 이름을 지어 못 받으면 가엽고 불쌍해서 의리로 준다고 덧붙였다. 해마다 그 날엔 일본열도 전체가 초콜릿으로 장식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대적으로 국민적인 행사가 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정말은 영국의 풍습이라고 하며 매년 2월14일에는 새들이 짝을 짓는 날이라고 믿어서 그런 날이 생겼다는 설도 있고, 해뜨기 전에 창밖을 지나는 남자를 보면 그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와 그녀는 그해에 결혼을 한다는 얘기가 전해졌다는 것이었단다. 그걸 일본의 어느 제과점에서 마케팅으로 초콜릿 팔기 행사로 이 날을 택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암튼 그런 날이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젊은이들 사이에 해마다의 행사로 치러지고 있는 것에 웃음이 난다. 처음 겪는 어색한 행사에 세련되지 못한 낯설음으로 첫 경험을 했던 기억이 불현 듯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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