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 한때 품절 대란까지 일으키며 큰 인기를 끌었던 허니버터칩은 감자, 꿀, 버터만 있으면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버터의 고소함과 꿀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허니버터칩의 등장은 ‘감자칩은 짜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오늘 하루쯤 칼로리 걱정 내려놓고 달콤함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재료 감자 2개, 튀김기름, 버터 50g, 꿀 40g, 소금 약간, 파슬리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깨끗하게 씻은 감자를 채칼을 이용해 0.2cm 두께로 얇게 썰어준 뒤 찬물에 5분 정도 담가 전분기를 빼준다. 2 감자를 물에서 건져낸 뒤 키친
이소연을 탈북 방송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여성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방송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외모와 실력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탈북 여군 군악대 출신이라는 이력도 한몫했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에도 북한 이슈가 터질 때 여러 번 출연했기 때문에 필자와도 추억이 많다. 이소연과 방송할 때마다 느끼지만 상당히 차분하고 세련되어서 북한판 ‘차도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탈북한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면 다소 격앙되고 흥분한 목소리를 내곤 한다. 이봉규 개인의 분석이지만,
“박술녀 한복을 입지 않으면 한국에서 가장 핫한 셀럽이 아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수긍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현재 한복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대체하기 어려운 박술녀가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일궈온 박술녀 한복의 성공담은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불굴의 의지로 요약할 수 있다. 비에 젖은 사람은 비가 두렵지 않은 법,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사람. 한복 너머로 보이는 그녀만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술녀는 한복이다. 박술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리
지금은 모두 손을 놓았지만, 한때는 여러 모임을 운영했었다. 리더로서 활동하다 보니 그 모임의 전체를 위해 일부 물을 흐리는 사람들을 퇴출해야 했다. 동창회에 나와 너무 술에 취해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 동창생, 우울증 치료에 좋다며 댄스 모임에 찾아와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사사건건 일단 반대부터 해 놓고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 등 누가 봐도 그 모임에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리더인 필자가 직접 대 놓고 나오지 말라고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꺼리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이다. 미꾸라지
선생님,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그동안 강녕하신지요? 무엇 하나 순조로울 것 없는 세상에 날씨마저 이러하니 주위의 장삼이사의 삶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언젠가 읽은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 “부조리한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주시할 때 우상을 침묵케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어려울 때마다 이 말을 주문처럼 외며 저는 정치가 통계수치로 제시하는 장밋빛 희망 같은 건 결코 믿지 않고 스스로를 살아왔습니다. 이건 선생님께서 저에게 가르치신 삶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1985년인가 그때 서신에 선생님께선 “삶의 분한(憤恨)을 다 터뜨
꽃에서, 어떤 이는 생명의 환희를 본다. 어떤 이는 상처 어린 역정을 느낀다. 원주 백운산 자락 용수골로 귀농한 김용길(67) 씨의 눈은 다른 걸 본다. 꽃을 ‘자연의 문지방’이라 읽는다. 꽃을 애호하는 감수성이 자연과 어울리는 삶 또는 자연스러운 시골살이의 가장 믿을 만한 밑천이란다. 꽃을, 자연을, 마치 형제처럼 사랑하는 정서부터 기르시오! 귀촌·귀농 희망자들에게 전하는 김 씨의 메시지란 대략 그렇다. 김용길 씨는 산수경관 기차게 삼삼한 곳에 산다. 도시의 ‘난리 블루스’를 뒤로 하고 이곳에 들어온 건 10여 년 전. 비유컨대,
15년 전에 살던 서울 광진구에 있던 아파트를 올 3월에 팔았다. 6월 4일 잔금 수령 일 등도 관계인들 요청으로 5월 말로 당겨 처리하였다. 현직에 있을 때 계약관계 일들, 법률적인 일들을 오래 처리한 경험이 있어 임차인과의 관계, 새 매입자 또는 매입자가 물색한 새 임차인과의 관계 등 복잡한 4자 관계에서 금전 정산일 들도 모두 정리하고 열심히 처리했다. 직접 모든 것들을 확인하며 발로 뛰며 처리했지만 돌아보니 미진한 점들이 많다. 현직에서 주어진 일들에 성실히 임하며 부모 역할도 열심히 한 후, 집 한 채와 일정 금액의 노후
최근 시내 한복판에 있는 교회에 갈 일이 있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저녁 식사도 대접하고 상영 중인 영화도 무료로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무료 때문만은 아니고 여러 사람이 같이 가자니 가 본 것이다.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은 넓은 주차장에 놀라고 거기 주차장에 수많은 고급 차에 놀랐다. 둘러보니 이 교회는 교육관, 선교관 등 아예 도시처럼 그 동네를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교회에 들어가 보니 마침 식사를 하러 온 교인들로 꽉 차 있었다. 모두 필자 또래의 시니어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영화관에 가니 300명 선착순으로
‘2018 한국마임’이 오는 5일부터 9일까지 성북구 삼선교 (4호선 한성대입구역 2, 5, 6번 출구 근방 소극장과 야외 공간) 일대에서 열린다. ‘삼선三仙과 놀다!’ 라는 부제가 달린 이번 축제는 거리에서 열리는 공연이라면 누구나 무료 관람할 수 있다. 1989년부터 시작해 서른 번째를 맞이한 ‘한국마임’ 축제는 ‘춘천국제마임축제’의 효시이자 대한민국 마임계 오랜 주축으로 자리 잡아 왔다. 마임 예술의 대중화에 앞장선 사다리움직임 연구소의 인기작 ‘휴먼 코미디’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마임극이 삼선교 일대는 수놓는다. 무엇보다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 등반에 성공한 ‘암벽 여제’ 김자인 선수의 영향으로 몇 년 새 스포츠 클라이밍이 친근한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아찔한 높이의 인공 암벽을 맨손으로 정복하는 스포츠클라이밍 ‘볼더링’ 종목에 정원일(62) 동년기자와 동갑내기 친구 이상민(62) 씨가 함께 도전해봤다. 촬영 협조 V10클라이밍(서울 동대문구 장한로2길 63, 2층) 실내에서 즐기는 스포츠클라이밍 골프, 테니스, 야구 등 옛날에는 야외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스포츠를 이제는 날씨나 외부 조건 등에 영향받지 않고 실내에서도 배울 수 있는 시대가 되
퇴직 후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조촐한 사업단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최근 하반기 예산 부족으로 인원을 줄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원을 줄일 수 밖에 없으니 혹 사정이 나은 사람이 있으면 몇 개월 쉬었다 다시 만나자고 전체 회의에서 부탁했으나 자원자가 없었다. 넉넉한 연금을 받는 퇴직 교원도 있고 공무원 부인도 있으나 밥그릇을 양보하려 하지 않아 러시안룰렛, 제비뽑기로 선택을 했다. 재수 없게 선택된 사람은 40대 미혼남이었다. 그는 홀아버지를 부양하고 있고 어려운 가정 형편을 구구절절 눈물까지 보이며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워야 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우리 어머니들, 여성들의 출중한 운동 역사가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었던 ‘여권통문’이다. 늦었지만 이 순간 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시는 분들은 참 다행이다. 120년 전, 1898년 9월 1일,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이소사, 김소사의 이름으로 ‘여학교 설시 통문(女學校設始通文)’ 이른바 ‘여권통문(女權通文)’, 즉 여성권리를 명시한 문서를 발표했다. 당시 뜻을 같이한 여성들이 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황성신문, 독립신문, 제국신문은 전한다. 이는 우리나라
젊은 시절 외국에 가고 싶은 마음에 해외공사를 많이 하는 건설업체에 취직했다. 업무상 유럽으로 자주 출장을 가서 주말에는 출장지 부근 관광지를 다닐 기회가 많았다. 덕분에 현지의 많은 관광가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긍심과 열정이 넘쳤고, 내가 그들 나라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퇴직을 앞두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 중, 문득 유럽 관광지에서 만났던 관광가이드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관광가이드가 되기로 마음먹고, 소양을 갖추기 위해 우선 한국관광공사가 발급하는 영어 분야
시대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예술이다. 토양의 기운과 그 땅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의 기질이 조화를 이뤄내는 것은 전통예술이다. 역사의 질곡에 이은 현대사회 전환기에 살았던 한 소년. 그는 음악에 눈뜨면서 막중한 임무처럼 국악계의 문을 두드렸다. 전통음악의 한계를 허물고 한국 예술 전반에 주춧돌을 쌓다 보니 어느덧 30여 년 세월. 우리 음악이고 예술이고 하고 싶은 것이 여전히 많다고 말하는 KBS국악관현악단 이준호(李準鎬·59) 상임지휘자. 대금과 소금 연주자를 거쳐, 작곡가 그리고 대한민국 예술의 중심에서 명성 높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 작 추정)’를 처음 만난 것은 1960년 초였으니 필자가 의과 대학생 시절이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가 거장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북유럽의 모나리자’로서 미술 애호가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았다. 필자는 피부과학을 전공한 후 미술품에, 그중에서도 특히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증상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미(歐美)의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