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기사입력 2019-02-08 09:04 기사수정 2019-02-08 09:04

이 책은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내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다시 일어본 책이다. 여류 작가 정희재 씨가 쓴 책인데 내가 얼마 전 다녀온 안나푸르나 트레킹 얘기도 나온다. 책 제목에는 ‘피곤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갈 용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멈춰서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라는 부제도 있다.

▲책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갤리온 제공)
▲책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갤리온 제공)

평생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잠시 멈춤’이란 단어는 생소하기만 하다. 멈추지 말고 앞만 보고 부지런히 가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달랐다. 고산병을 예방하려면 절대 가이드보다 앞서지 말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가이드가 답답했는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가이드를 앞서려고 했다. 그래서 가이드보다 앞서가는 사람은 벌칙으로 1만 원씩 내기로 했다.

저자는 티베트에 가기 전에 유서를 써놓고 갔다고 했다. 심장도 약한 편인 데다 고산병으로 멀쩡한 사람도 목숨을 잃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곳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르는 방법을 일러두고 유품정리는 어떻게 하라는 둥 유서를 쓰고 나니 마음이 달라지더란다. 무사히 티베트를 갔다 온 뒤 써두었던 유서를 읽어봤을 때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저자처럼 유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주변 정리 및 마음의 준비를 했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린 사람들이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

저자는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할 때 여러 명이 같이 갔다고 했다. 인적도 드물고 지형도 험한 곳이라서 서로 의지하며 지냈는데 트래킹 마지막 날 저자는 혼자 자겠다고 했다. 대단한 선언이자 용기였다. 일행들을 의식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같이 간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날 밤 저자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혼자 여유를 즐긴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도 일행과 떨어져 혼자 잔 날이 있었다. 최연장자라는 이유로 독방을 배정받은 것이다. 전날 같이 자던 사람이 코를 너무 골아 잠을 설쳤다고 불평을 한 이유도 있었다. 그날 밤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면서 꿀 같은 잠을 잤다. 마치 태고의 자연 속에 혼자 누워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 그들이 만들어놓은 룰대로 살게 된다고 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행복하다는 조언이다. 한창 일해야 할 직장인이라면 남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러나 퇴직한 시니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행동에 옮겨도 된다. 그래야 자기 성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고 힐링도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태해지거나 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얻는 게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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