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3

치매, 휴지에 집착하는 이유

입력 2026-03-23 06:00

[홍명신의 치매 상담소]

치매로 인한 변화를 느껴도 대부분은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호소합니다. 시니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센터 대표가 그런 이들을 위해 ‘치매 케어’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그래픽 이은숙 기자ㆍAI 생성)
(그래픽 이은숙 기자ㆍAI 생성)


치매로 아픈 언니를 걱정하며 돌보는 마음이 참 예쁘네요. 사실 휴지를 모으는 행동은 치매로 아픈 분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이런저런 목적으로 휴지를 모으고 있다”고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설명을 듣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그렇지만 분명한 건 치매로 아픈 분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모으는 행동은 불안감과 상실감을 완화해줍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도 머리핀, 공깃돌, 딱지, 편지지, 스티커, 우표 같은 것들을 열심히 모으고, 그것을 들여다보며 그저 기쁘고 행복했지요. 치매로 아픈 사람은 기억장애로 인해 불안과 상실감을 느끼는데, 물건을 모으는 행동은 그러한 감정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검소한 습관과 절약 정신의 발현입니다. 지금은 모든 물자가 풍부하지만, 과거에는 화장실 휴지도 너무 귀해서 신문지를 모아 휴지 대용으로 썼습니다. 그러한 기억과 습관이 물건을 모으는 행동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 드신 분들은 작은 자극에도 눈물·콧물이 잘 흐르고 만성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휴지를 부족하지 않게 챙겨둬야 안심이 된다고 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강박적으로 물건을 모으고 온 집 안을 쓸모없는 물건들로 가득 채운다면 지체 없이 주치의를 만나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언니가 휴지를 모으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언니의 소소한 수집벽을 다루는 데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해주세요.


첫째, 강제로 빼앗거나 비난하지 마세요.

언니가 휴지 모으는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혼내거나 억지로 빼앗으면 심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 상실감은 자매간의 단단한 신뢰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모으는 양이 좀 많아지면 본인이 없을 때 조금씩 처분하세요.


둘째, 자율성을 허용해주세요.

내가 언니를 돌본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나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마세요. ‘혹시 위험하지 않은가?’, ‘아프지 않은가?’, ‘남의 물건을 가져왔는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가?’ 등 이런 기준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다면 언니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세요.


셋째, 몰두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주세요.

외로움이나 불안을 느껴서 그런 거라면 생활 속에서 즐거운 일, 좋아하는 일, 새로운 역할 등을 통해 수집보다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세요. 오히려 보물 상자를 만들어줘서 자신이 모으고 싶은 것을 마음껏 모으게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사연을 보면서 저도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볼록하게 채웠던 휴지가 기억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별명이 ‘젠틀맨’이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하고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을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믿으셨죠. 언제나 빳빳하게 바지를 다려 입고 손수건을 넣어 다니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고 난 다음부터 바지 호주머니가 휴지로 점점 두툼해졌어요. 저도 왜 저렇게까지 휴지가 많이 필요할까 생각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위 내시경 검사를 하느라 입에 마취액을 넣었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한동안 발음도 어눌해지고 입을 꼭 다무는 것도 힘들었어요. ‘침이 흐르는데 휴지가 부족하면 어떡하나’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 아버지는 늘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그날의 위 내시경 검사는 어쩌면 제 위장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검사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아버지 호주머니에 휴지를 꽉꽉 담아주었습니다. “이제 안심되시죠. 뭔가 흘러도 다 닦을 수 있으니 아무 걱정 마세요”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벙긋 웃으시더군요.

사실 휴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우리 마음속의 상심이 문제지요. 그러니 마음의 문을 열어보세요. ‘휴지 정도는 괜찮아’라고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누군가를 돌보는 우리는, 그분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힘내세요!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최신 뉴스

  • 건강한 삶의 방식이 건강한 노년의 뇌를 만든다
    건강한 삶의 방식이 건강한 노년의 뇌를 만든다
  • [현장에서] “돌봄 느는데 돈이 없다” 지역별 돌봄 격차 우려
    [현장에서] “돌봄 느는데 돈이 없다” 지역별 돌봄 격차 우려
  • 환절기 인후통, 감기 아닌 ‘편도염’일 수 있다
    환절기 인후통, 감기 아닌 ‘편도염’일 수 있다
  • “단순 복지인 줄 알았는데” 100만 일자리 만든 ‘돌봄경제’
    “단순 복지인 줄 알았는데” 100만 일자리 만든 ‘돌봄경제’
  • '사과 하나만 먹기?' 급격한 다이어트, 중장년 뼈 ‘경고등’
    '사과 하나만 먹기?' 급격한 다이어트, 중장년 뼈 ‘경고등’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