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3

그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 구경을 아내와 함께하지 않는 까닭은?

입력 2026-05-23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전북 순창군 산골에 사는 양영옥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햐! 농장의 전경이 미끈해 첫눈에 쏙 들어온다. 모던하고 큼직한 살림집. 집 앞으로 펼쳐지는 널따란 정원. 기능성을 고려해 활달하게 조성한 작업 공간들. 하나같이 짱짱하다. 주변의 자연경관은 또 어떻고. 저만치에선 방금 바다에서 건져 올린 고등어처럼 싱싱한 야산들이 초록을 토하며 생동한다. 농장과 맞닿은 뒤편의 솔숲 역시 수려하고 그윽해 인상적이다. 자리 한번 잘 잡았다. 겉모습만으로도 호감을 사기에 충분한 농장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겉보기와 다르다. 농장주 양영옥(60)은 오랫동안 고전했다. 올해로 귀농 6년 차에 이르렀지만 그간 실속을 챙긴 게 없다. 다행히 이즈음에 이르러선 자리가 잡히고 있다. 수련기가 길었다.

양영옥의 농장엔 ‘도깨비 농수산’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깨비처럼 종횡무진 내달리며 농사의 기초를 닦는, 또는 좌충우돌하면서도 불굴의 의지에 도무지 금이 가는 기색이 없는 그의 양상을 지켜본 주민들이 ‘낮도깨비’에 견준 데에서 딴 이름이다. 다시 말해 양영옥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농사에 올인한 거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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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옥의 전직은 건설업자. 광주광역시에서 줄곧 건설 현장을 누비며 가장의 책무를 다했다. 유능하고 건실한 사람이다. 아내 조기숙(56)의 돈독한 신뢰를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시골에 들어와 뛰어든 농사에 난항을 겪으면서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자꾸 꼬이는 농사. 그에 따른 경제적 부진. 이로 말미암아 불안이 커진 아내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번번이 흘러나오더라는 게 아닌가. 인생이 허무해지는 건 바로 이런 대목에서다. 하품 한 번 할 겨를 없이 농사에 전념한 양영옥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그는 억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아내가 불만을 터뜨리는 데에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아무려나 양영옥이 아내의 ‘저항’에 기죽어 시들해진 기미는 어디에도 없다. 아내의 원성을 오히려 이색적인 격려의 속삭임으로 여기는 양, 그는 뒷산 소나무처럼 꿋꿋하다. 양영옥이 귀농한 이유는 뭘까?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한갓진 시골에 사는 게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 봤다. 무엇보다 사업을 하면서 누적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어 시골에 들어왔다. 한가하고 편안한 노후 대비책으로 시골 생활보다 나은 게 없다는 생각도 했고.”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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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아내들은 흔히 시골 생활에 겁부터 먹는다. 부인은 어땠나?

“흔쾌히 찬성했다. 아내의 로망이 전원생활에 있었기 때문이다. 쾌적한 집을 짓고, 텃밭에서 나오는 신선한 식재료로 요리하고, 전망 좋은 거실 창가에 앉아 독서나 글쓰기를 즐기는 식의 이상적인 시골 생활을 드디어 실현할 수 있다는 데에 고무됐던 거다. 나 역시 아내가 그리는 밑그림을 지지했다. 당시 내가 한 말이 있다. ‘그래, 당신이 맘껏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게 내가 밀어줄게!’ 그런데 상황이 처음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농사에 뛰어들면서 아내의 분위기에 그늘이 내리기 시작한 거다.(웃음)”


애초 농사에 관심 없이 귀촌했다가 왜 별안간 귀농으로 스타일을 바꿨나?

“처음 한동안 아내의 뜻에 맞추어 한가하고 재미있게 살았다. 그러나 도시에서 길러진 습관, 즉 뭔가 일에 푹 빠져야 안심이 되는 관성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아직 젊은 나이이지 않은가. 궁리 끝에 농사를 대안으로 삼았다. 농토를 사들여 농사를 개시했다. 아내는 반대했지만, 농사를 잘 지어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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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에 사과대추밭이 무너지기도

양영옥은 농사에 까막눈이다. 귀농교육 100시간 과정을 이수했지만, 그건 농업인 자격증을 따는 데 필수적인 소소한 것에 불과했다. 믿는 구석은 있었다. ‘농사가 어렵다지만 건설업보다 심하랴!’ 내심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에 자신을 쏟아붓게 하는 도전 욕구도 팽배했다. 마침내 그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다운 희열과 의욕을 가지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손 댄 작물마다 신통치 않은 결산표를 가져다줬다.

“첫 농사 작물은 고추였다. 초심자에게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봐 선택했지만 오산이었다. 딴엔 심혈을 기울였다. 고추밭에서 일하다 보면 장화로 흘러내린 땀이 고여 물주머니가 되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재배 기술력부터 엉성한 데다, 배수가 잘 안 되는 논에 조성한 고추밭이라는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했다.”


다음 작물은 어떤 것이었나?

“누님의 권유를 받아들여 토란을 길렀다. 토란은 습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얘기를 듣고 따랐던 거다. 덕분에 작황이 좋았다. 이웃들의 칭찬을 들을 정도로. 그러나 그해에 토란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해 손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이후 사과대추를 길렀지만 더 이상하고 허탈한 결과를 보게 됐다. 엄청난 폭우에 떠밀려온 토사가 사과대추밭을 덮친 바람에.”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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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쯤에서 농사를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나? 농사를 반대한 부인의 관점이 탁월한 것이었다는 성찰을 하면서.(웃음)

“실망은 컸지만 낙심하진 않았다. 비록 금전적 손실이 있고, 과도한 노동으로 허리디스크가 고장 나기도 했지만, 농사 자체에 대해선 유감이 없었다. 작물을 키우는 각별한 재미와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잘하면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게 농업이라는 감을 잡기도 했다. 그래 네 번째 작물 플럼코트(자두와 살구를 교배해 만든 과일) 농사에 나섰다. 그러나 생육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아직까지 끙끙대고 있다. 아내의 불평이 더 강화되는 효과를 불러온 작물이기도 하다. ‘대체 언제까지 괜한 일만 저지르고 살 거야?’ 아이고, 그토록 야박한 핀잔을 주다니. 최선을 다한 남편을 오히려 위로하는 게 경우에 맞지 않을까?(웃음)”


현재 당신이 주력하는 건 메기 양식이다. 규모도 크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폭우로 심각하게 망가진 농장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물고기 양식을 착상했다. 파이고 휩쓸려나간 농토에 물웅덩이를 조성해 메기를 기르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봤던 거다. 양식한 성어는 주로 중간 유통업자를 통해 식당에 팔려나간다. 소득은 예상에 못 미치지만 농작물보단 낫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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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 양식에선 어려운 점이 없나?

“그럴 리 있겠나.(웃음) 무엇보다 이웃 주민 한두 명의 지나친 간섭에 홍역을 앓았다. 그들은 양식장에서 배출되는 물이 동네 농가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 표명을 넘어 법적 문제까지 들고 나왔다. 위법 사항이 전혀 없어 떳떳하게 대응했지만 그들의 집요한 ‘폭격’에 살이 쑥 빠졌다. 유통업자에게 거액의 판매 대금을 떼이기도 했다. ‘야, 넌 광주에서도 돈을 떼이더니 시골에 가서도 또 당해? 이거야 원, 순해 터져서는!’ 친구들의 말이 그랬다.”

양영옥은 꿀벌처럼 부지런하다. 실밥 한 오라기 삐져나온 것 없이 잘 누빈 저고리 바느질처럼 정교하게 다듬은 농장의 경관이 그 증표다. 시간과 체력의 전부를 농장에 투입했을 테지. 그는 마을 초유의 가장 부지런한 농부, 훗날에도 출현하기 어려운 마지막 근면가(勤勉家)일지도. 그러나 인생이라는 미스터리 레이스가 어디 술술 풀리기만 하던가. ‘이제 한번 살맛 나게 잘 살아봐야지’ 각오를 다지고 시골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웬걸, 농사의 허당을 짚은 대목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서광이 비친다. 메기 양식장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메기를 물어가는 새떼들의 사냥 기술에 놀랐다!

양식장만 양영옥이 트랙에 내세운 경주마는 아니다. 한층 야심적인 스케줄도 있다. 체험학습 농장으로 전환, 이른 시간 내에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이미 반쯤 문을 열었다.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체험 재료는 넘친다. 농장의 거의 모든 게 체험거리니까. 메기 생태, 메기 낚시, 메기 요리, 붕어 낚시, 과수를 비롯한 온갖 정원수와 뒷동산, 다육이들, 가축들, 산책로 등 힐링할 만한 체험 소재가 풍성하다. 그는 현재 일부 부족한 프로그램을 보완하며 체계화를 서두르고 있다.


귀농 6년째다. 시골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나? 마지못해 견디는 건 아닌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끝까지 가볼 참이다. 실패 경험을 살려 농장을 궤도에 올려놓고자 한다. 난 농사로 자금과 시간을 잃었다. 얻은 것도 있다. ‘부부 트러블’이라는 보너스 말이다.(웃음) 그러나 시골살이 자체엔 만족한다. 마음만은 도시에서보다 훨씬 편하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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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외톨이가 될 수 있는 게 시골이다. 대인관계는 무난한가?

“시골 어른들은 대부분 순박하다. 난 그들을 부모님처럼 존중하며 교류한다. 한번은 이런 얘기를 들었다. ‘당신같이 좋은 사람이 요즘 세상엔 드물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을 칭찬하다니. 민망하고, 고맙고, 나를 돌아보고 그랬다. 아무튼 난 이 시골이 좋다. 지역 공직자들이 농민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군수님과 면장님에게 받은 조언과 격려를 잊을 수 없다. 이래저래 순창을 좋아한다.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산다.”


시골의 자연환경에서 흥미롭게 느낀 게 있다면?

“양식장에 날아와 메기를 물어가는 새들의 억척스런 생존 본능에 놀랐다. 수달, 왜가리, 가마우지 등이 구사하는 사냥 방법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과수원으로 침투하는 고라니들도 마찬가지. 폭죽을 쏴 방어했지만 소용없었다. 나중엔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래. 나눠 먹자!’ 그런 넋두리를 하며.(웃음)”


마음이 가장 고요해지는 순간은 어떤 때인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바라볼 때다. 그 순간엔 가슴이 좀 뜨거워진다. 나의 농사와 인생도 저 별처럼 빛나는 때가 있을 거란 생각도 하고.”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부인과 함께 별을 구경하는 밤도 있고?

“예전엔 그랬지만 트러블이 잦아지면서부터는 생각조차 못 했다.(웃음) 이렇게 메마른 상황이 사실 괴롭다. 최대 고민거리다.”


부인의 얘기에 따르면, 당신은 아내를 존중할 줄 모르는 남편이다. 시중엔 나이 들수록 아내를 섬기는 게 신상에 이롭단 말이 넘친다.(웃음)

“상대를 무시하는 건 오히려 아내다. 매사 무조건 반대한다. 물론 안다. 농사가 싫다는 아내의 의견을 묵살한 무례를. 고생시킨 죄를. 그러나 너무 세게 나온다. 보통이 아니다. 어디에 숨어 있다 튀어나온 성격인지 참 알 수 없다.(웃음) 그래도 요즘은 마찰이 줄어들고 있다. 풀어나갈 참이다.”

아웅다웅하면서 정 드는 게 부부다. 그러나 선을 넘으면 거기엔 지뢰가 있다. 양영옥은 이제 한발 물러설 태세! 옳다구나. 노루 꼬리처럼 짧은 인생, 공연한 데 힘 뺄 게 뭐람.


양영옥이 주는 귀촌 Tip

•귀농을 했다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농사로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게 주요인이다. 시골 자체는 살 만한 곳이지만 귀농은 심사숙고해서 판단하자. 거듭 고찰하자. 남다른 체력과 근면성이 필요한 게 농사라는 점도 유념하라.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목 선택이다. 가급적 지역의 특화 작물을 재배하라. 생산부터 유통까지 유리한 점이 많다. 농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귀농인들을 보면 대체로 특화 작물을 기른다.

•농사 짓기 전 최소 1년 정도는 지역의 풍토, 농사의 물정과 기술을 익히는 데 쓰자. 집과 땅을 서둘러 장만하는 방식은 삼가자. 의욕을 앞세워 무작정 투자했다간 ‘빼박’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천천히, 신중하게, 그러나 미친 듯이 부지런히 뛰며 일을 점점 키워나가는 게 정착의 지름길이다. 개척자 정신을 가지라는 얘기다.

•토지의 지목에 따른 용도와 제반 법규를 소상히 파악하고 농지를 구입하자. 토지 가격과 외양만 보고 덜컥 사들일 경우, 쓸모없는 땅인 것을 나중에 깨닫고 후회할 수 있다. 이는 놓치기 쉬운 대목이다.

•은퇴자에겐 귀농보다 귀촌이 낫다. 안정적인 정착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좋은 귀촌 생활의 포인트는 지역 주민과 따뜻한 관계를 맺는 데 있다. 먼저 다가가는 자세 하나만으로도 훈훈한 정을 누릴 수 있는 게 시골이다. 단, 매사 너무 앞에 나서진 말자. 오해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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