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망가졌다! 그래도 만족스레 이어지는 시골살이 비결은?

입력 2026-02-18 07: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충남 공주시 반포면 시골에 사는 이애란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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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고, 시골 생활도 즐기고, 마음엔 자연을 담아 평안을 누려보자. 이보다 나은 삶이 있으랴!’

올해로 시골 생활 13년 차에 이른 이애란(66, ‘이애란갤러리 쪽빛풍경’ 대표)이 애초 품었던 생각이 그랬다. 이른바 전원생활에 관한 로망을 구현하고 싶어 시골로 들어갔다. 전에 살았던 곳은 부산. 이모저모 매력 요소가 많은 도시를 등지고 굳이 멀리 공주의 한갓진 농촌으로 귀농한 이유는, 이 마을이 남편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농사와 농촌에 관한 사전 공부 같은 건 아예 생략했다. 공부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지역 유지로 신망받았던 시부모님이 남긴 유형무형의 유산을 보루로 삼아 열심히 살면 신속하게 전원생활의 틀이 잡힐 거라 예상했다. 성실하게 농사지어 소득을 올리고자 한 의지와 자신감도 컸다. 행복한 시골 생활에 관한 낙관적인 전망을 했던 것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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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뜻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특히 농사에서 혼쭐이 쏙 빠지다시피 심한 고생을 했다. 지금은 어엿한 시골 생활자로 자리 잡아 만족스레 살고 있지만, 오랫동안 고난과 파행이 잇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 공히 농사에 대해선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던 게 아닌가.

이애란은 풀잎과 채초 잎도 구별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풀을 뽑다가도 ‘너무 예뻐 보여’ 그냥 놔두곤 하는 성향의 소유자다.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남편 역시 ‘순해 터진 사람’이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의 하나인 농사와 대차게 맞붙어 기세를 돋우기 위해선 독한 근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남편의 기질은 온유하며 낙천적이다. 이애란이 붙인 남편의 별명이 있다. 예부터 도 닦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근처 계룡산의 이름을 따 ‘계룡산 도인’이라 부른다. 성정과 경향을 알 만한 닉네임이다. 부부가 헛수고를 연발한 농사 얘기부터 들어보자.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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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물은 어떤 걸 선택했나?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토마토를 재배했다. 꽤 규모가 큰 하우스를 짓고 유기농 토마토를 생산하기 위해 나름 분발했다. 그러나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에겐 모든 과정이 어려웠다. 이를테면 독한 농약을 쓰지 않은 바람에 온갖 해충이 들끓어 애를 먹었다. 동네의 벌레란 벌레는 모조리 우리 농장으로 몰려오는 것 같았다.(웃음) 토마토 농사의 관건은 생장을 방해하는 곁순과 곁가지를 제대로 따주는 데 있다. 그러나 요령을 숙지하지 못해 엉뚱한 줄기를 잘라버리는 식의 실수를 반복했다. 수확 시기를 맞추지 못해 물러터진 열매를 따는 일도 흔했다. 판로도 막막했다. 농사다운 농사를 하지 못했던 거다. 결국 토마토에게 작별을 고하고 고추 농사에 도전했다.”


고추 농사의 양상은 달랐겠지? 토마토로 쌓은 경험을 참고했을 테니까.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고추 모종 3000개를 심는 일부터 힘겨웠다. 심어도 심어도 좀체 끝이 나지 않았다. 두더지처럼 일념으로 흙을 헤치며 여러 날에 걸쳐 작업을 했는데, ‘아이고,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름철 하우스 내부의 혹독한 열기에도 정신이 가물가물 혼미해지곤 했다. 집요하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모기들에게 헌혈도 엄청 많이 했다.(웃음) 간신히 얼마 안 되는 고추를 거두어 건조한 뒤에도 장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에겐 상품을 내다 팔 재주가 없었던 것이다.”


장날에 들고 나가 남들보다 착한 가격에 판다거나 하진 않았나?

“그냥 방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인근의 식당에 헐값으로 넘기는 게 고작이었다. 농사로 돈을 번다는 게 실로 어려웠다. 고추 농사를 접은 뒤, 이번엔 새로운 다짐을 하고 샐러드용 모둠 채소 재배에 나섰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비슷했다. 손에 들어오는 게 없긴 마찬가지였던 거다. 결국 서툰 농사로 막대한 투자비만 날리고 말았다. 농장에 남은 건 빈 농약병들뿐이었고.(웃음) 남편은 현재도 약간의 농사를 짓고 있지만 전에 비하면 거의 손을 뗀 상황이다.”


농사를 너무 만만히 본 건 아닐까? 필사적으로 지독하게 뛰어도 어긋날 수 있는 게 농업인데.

“우리 딴엔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허탈했다. 농사를 그저 단순노동이자 쉬운 일로 본 게 문제의 원인이었다. 귀농교육, 기술력, 체력, 끈기, 투지 등이 필요한 게 농업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보통 사람이 함부로 뛰어들 일이 아님을 알았다. 농부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쌀 한 톨 거두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 알게 됐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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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인심은 여전히 따뜻해

농사의 내용이 엉성했던 나머지 사필귀정처럼 실패를 불러들인 형국이다. 자금과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고 말았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악몽으로 새겨졌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애란의 언설엔 후회의 기미가 없다. 다 지나간 일에 불과해 의미 둘 게 없다는 완전한 체념이 그를 편하게 해준 것 같다. 손실이 컸지만 인생 공부 제대로 했으니 나쁜 경험만은 아니라는 투의 긍정심도 엿보인다.


이애란 부부의 이상한 영농 시절은 이미 저만치 먼 곳으로 흘러갔다. 귀농 전반기 내내 적성과 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농사와 씨름하며 허비한 게 많았지만, 이후의 일상은 사뭇 달랐다. 엉망이 된 농사로 나락의 입구까지 다녀온 사람다운 분발심을 발휘해 활로를 찾아낸 것이다. 부부에게 필요한 건 일단 소득원을 발굴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괜찮은 방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남편은 일용근로자로 뛰어 기대보다 나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애란은 천연 염색에 입문, 실력을 기른 뒤 체험 교육생을 받기에 이르면서 수익을 거둔다. 염색을 선택한 건 그게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애란은 서양화가다. 따라서 그림의 이웃사촌쯤 되는 천연 염색에 자연스레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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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염색을 배우기 시작해 강사로 활동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처음엔 지역의 귀촌 선배를 멘토로 삼아 6개월 동안 배웠다. 이후 천연 염색의 정석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염색 장인이 운영하는 타지의 공방을 1년 정도 드나들었다. 덕분에 1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일반 염색보다 까다로운 에코프린팅(식물을 천에 배열하고 압착한 뒤, 열탕에 담가 색소가 천에 스미게 하는 기법)까지 마스터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린 이력이 있어 숙달이 용이한 편이었다.”


이젠 전문가 반열에 올라선 건가?

“모든 일이 그렇듯,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천연 염색이다. 공예품대전에 나가 큰 상도 받았으나, 남을 지도하는 게 오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도다. 생활비를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선 효자 장르다. 더 기분 좋은 건 염색 작업이 매우 재미있다는 점이다. 멀리서 오는 이들, 또는 마을 어머니들과 작업실에 둘러앉아 교육을 하며 수다 떠는 것도 유쾌하다. 농사 실패로 주눅 들었던 가슴에 생기를 채워 넣을 수 있게 됐다.”


부군은 어떤 일을 해 수입을 올리나?

“시골에선 농사 아니곤 돈 벌 일거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찾아보면 일이 많다. 남편은 남의 농장에서 일을 거들거나 공공 방제 작업처럼 관이 주관하는 사업에 참여해 소득을 얻는다. 일당 수준은 생각보다 높다.”


경제문제로 압박감을 느끼고 살진 않는다는 얘기로 들린다.

“농사로 잃은 자금이 많아 여전히 답답한 구석이 있지만, 적은 수입이나마 지속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어 안도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토지가 좀 있다. 그래서 농사 실패 상황에서도 전전긍긍하진 않았다. 차후 여의치 않으면 땅을 팔아 쓸 작정이다. 어떻게든 부부가 행복할 수 있는 쪽으로 삶을 가져가야 하니까.”


귀농인들이 1순위로 꼽는 힘든 점이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거다. 어땠나?

“초기 한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다. 시골의 관습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가령 시도 때도 없이 대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어 당혹스러웠다.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선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한번은 외출했다 밤늦게 귀가했는데, 거실 소파에 동네 사람이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경악했다.(웃음) 이와 비슷한 일이 빈번해 불편했다. 그러나 시골의 관습을 이해하는 한편, 매사 긍정적으로 처신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사실 시골 인심은 여전히 따뜻하다. 살가운 정을 나누고 지내는 이웃이 많아 안심을 느끼며 산 지 오래됐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나?

“30대 때 취미로 배운 이후 몰입하면서 일상의 중심축을 이루게 됐다. 귀농 뒤 대전에 있는 한남대 회화과에 입학해 능력을 키우기도 했다. 그림을 몰랐다면 농사를 망치는 등 힘겨웠던 시골 생활을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농사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에 꿈, 사랑, 행복 같은 이상향을 그려 넣으며 일상의 고민을 다스렸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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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도 그림에 빠져 살고 있길 소망해

이애란은 단순히 취미로 그림을 즐기는 이가 아니다. 고독한 무명초가 아니다. 개인전을 비롯해 다수의 전시회를 열어 좋은 평을 받은 바 있는 프로급 작가다. 작업실엔 작품들이 빼곡하다. 열기와 생기가 느껴진다. 작풍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정갈하고 차분한 색조로 캔버스 중앙에 그린 달항아리, 그리고 달항아리에 담기거나 에워싼 파랑새·산·꽃·물·태양 등 자연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곱살하고 청명하다. 그는 자연과 한몸처럼 통하고 싶은 것이리라. 타산도 허세도 없는 자연을 닮고 싶어서.

“시골 생활의 즐거움엔 여러 가지가 있다. 최상의 것은 꽃빛과 물빛이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좋은 자연을 캔버스 안에 옮기는 작업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림 작업은 즐거운가?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화가들은 흔히 몸살을 앓는다. 영혼을 쥐어짜기도 하면서.

“더 나은 작품을 위해 늘 모색한다. 그러나 그리는 자체가 너무도 즐겁다. 자존감도 높아졌다. 편안한 마음을 얻은 것도 그림 덕분이다. 내면의 소망을 화폭에 자유롭게 풀어놓으면서 스트레스가 사라졌으니까.”


요즘의 소망엔 어떤 게 있나?

“자상한 남편이 건강하길, 장성한 딸이 결혼에 이르길, 또한 10년 지난 뒤에도 내 인생이 그림에 빠져 사는 삶이길 소망한다. 그런 염원들이 바로 그림의 주제다.”


그림과 가족 사랑. 이 두 가지가 이애란을 꿈꾸게 하고 존재하게 한다. 하나 더 보탤 건 자연이다. 그는 와인 잔을 높이 들어 외치고 싶을 테다. 그림과 가족과 자연과 함께 건배를!


이애란이 주는 귀농 Tip

•사전에 시골 경험을 충분히 한 뒤 귀농하자. 농촌과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귀농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도시와 다른 시골 풍토에 대한 이해, 농사에 관한 식견을 먼저 습득하는 게 정착의 지름길이다. 가장 좋은 건 1~2년쯤 귀촌 생활을 한 뒤 귀농으로 전향하는 방법이다. 농촌의 현실부터 경험한 뒤 농사의 성공 가능성 여부를 면밀히 숙고하라는 뜻이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체력, 인내력, 순발력, 근면성 등을 갖춰야 유지 가능하다. 충실한 사전 귀농교육 이수도 필수 조건이다. 교육을 통해 얻은 농업 지식이 많을수록 현장의 농사에 적응하기 쉽다. 남들의 훈수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거창한 투자를 하는 건 위험하다. 작은 농사부터 시작해 실력을 기른 뒤 자신감이 붙었을 때 서서히 규모를 확장하라.

•농촌에서 살다 보면 귀농 성공 사례가 생각보다 드물다는 걸 깨닫는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농외소득에 관심을 갖자. 의외로 일거리가 많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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