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재능 없는 중년도… 좋은 글 쓸 수 있는 '고치기' 방법

기사입력 2024-08-29 08:19 기사수정 2024-08-29 08:19

[강원국의 글발 만들기] 시간과 정성이 부족한 솜씨 보완해 줘

“처음부터 잘 쓴 글은 없다. 잘 고쳐 쓴 글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은 글 쓰는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잘 고치기만 하면 잘 쓸 수 있다니. 잘 쓰기는 어렵지만, 고치는 것은 시간과 정성만 기울이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없는 걸 만드는 게 어렵지 있는 걸 고치는 것이야 쉬운 일 아닌가 말이다. 맞다. 고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 글에서 제안하는 작업만 충실히 하면 누구나 잘 고칠 수 있고, 결국 잘 쓸 수 있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글을 고치는 핵심은 세 가지다. 빼야 할 것은 빼야 하고, 빠진 것은 채워 넣어야 하며, 바꿀 것을 바꿔야 한다. 바꾸는 대상은 제목이나 어휘, 문장일 수도 있고, 문장이나 문단의 순서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글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만들면 된다.

우선 자신이 쓴 어휘와 문장을 고쳐보자. 글의 가장 기본 단위는 어휘, 즉 낱말이다. 한 편의 글이 건축물이라면, 기초 자재인 낱말의 품질이 좋아야 튼튼하고 근사한 집을 지을 수 있다. 낱말은 무수히 많다. 그 가운데 그 자리에 딱 맞는 낱말이 있다. 문맥에 부합하는, 다시 말해 질이 좋은 그 낱말을 찾아 써야 한다.

어떻게 찾아 쓸 것인가.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을 활용하면 된다. 네이버 국어사전도 좋고, 다음 국어사전도 좋다.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단어를 곧장 쓰지 말고,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쳐보자. 그러면 유의어들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비슷한 말들 말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치면 연구, 연마, 수업, 수학, 학문, 학습, 학업 등이 나온다. 그 가운데 문맥에 더 맞는 낱말을 골라, 그것을 쓰면 된다. 물론 모든 경우에 더 나은 낱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애초 내가 떠올렸던 낱말이 문맥에 가장 잘 어울린다. 그래도 헛고생은 아니다. 내가 떠올린 낱말이 맞았다는, 더 나은 선택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자신 있게 그 낱말을 쓸 수 있다. 아울러 유의어들을 보면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 횡재를 경험하기도 한다.

나는 두 가지 방식으로 포털사이트를 활용한다. 한 가지는 앞서 소개했듯이 글을 쓰면서 낱말 하나하나를 쳐보는 식이다. 통상 A4 용지 한 장 분량 글을 쓰면 10~20개 단어를 쳐본다. 그거 쳐보는 재미로 글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시로 국어사전을 들락거린다. 딱 맞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 ‘맞아, 이런 단어가 있었지. 안 쳐봤으면 어쩔 뻔했어. 역시 쳐보길 잘했어’ 하면서 스스로 힘을 내도록 북돋운다. 이 순간 내 어휘력이 일취월장하는 건 물론이다. 또 다른 방식은 생각나는 대로 다 쓴 후, 내가 쓴 어휘를 하나씩 국어사전에 쳐보는 방법이다. 처음엔 주로 이 방식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남의 글을 고쳐줄 때만 쓰고 있다. 내 글을 쓸 때는 더 나은 낱말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안달을 부려 첫 번째 방식으로 그때그때 찾아보면서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쓰고 있다.

다음은 문장을 고칠 차례다. 써놓은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표현하고 싶은 내용이 머릿속에 뭉글뭉글 맴돌 뿐 문장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문장을 잘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는 문장의 형식, 즉 문형에 대한 학습이 미진한 탓이다.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영어를 배울 때 문장의 5형식부터 익혔다. 국어 시간에도 제1유형:주어 + 서술어, 제2유형:주어 + 보어 + 서술어, 제3유형:주어 + 부사어 + 서술어, 제4유형:주어 + 목적어 + 서술어, 제5유형:주어 + 목적어 + 부사어 + 서술어에 관해 배웠다. 그런데 보어와 부사어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어의 문장 5형식은 지금도 줄줄 외우면서 말이다. 문형은 또한 주어 + 서술어의 개수에 따라 단문과 복문으로 나뉘고, 복문에는 중문(이어진 문장)과 포유문(안은 문장)이 있다.

나는 가급적 단문 쓰기를 권한다. 주어 + 서술어가 두 개 이상인 복문은 쓰기도 어렵고, 잘못 쓸 가능성도 높으며, 읽기도 편치 않기 때문이다. 문장을 잘 만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문법 공부의 부족이다. 문법을 잘 알지 못하면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 즉 비문(非文)을 남발하게 된다. 문장의 구성 요소인 주어, 목적어(보어), 서술어가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장을 잘 만들지 못하는 세 번째는 이유는 수사법 활용에 익숙하지 못해서다. 국어에는 무려 쉰 개가 넘는 수사법이 있고, 이를 잘 활용하면 문장이 쉽고 유려해진다.

문형, 문법, 수사법의 학습 부진에서 오는 세 가지 애로를 단박에 해결하는 길 또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키워드를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쳐보면 ‘예문’이 뜬다. 그 낱말을 넣어 쓸 수 있는 문장을 다양한 예시로 보여준다. 어떤 낱말을 쳐도 예외 없이 예문이 뜨고, 다양한 문형과 수사법이 적용된 문법에 맞는 예시들을 볼 수 있으니 문장을 못 만들 이유가 없다. 써놓은 문장도, 문장에 쓰인 핵심 낱말을 쳐보면 얼마든지 더 낫게 고칠 수 있다. 그 낱말을 어떤 단어로 수식했는지, 주어와 서술어는 무얼 썼는지, 문장의 구성 성분 순서를 달리할 수는 없는지, 평서문으로 쓰인 문장을 의문문이나 감탄문, 명령문, 청유문 등으로 바꿀 순 없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어휘력과 문장력이 부족해서 잘못 쓴 글을 고치는 방법에 관해 알아봤다. 이제는 어휘와 문장을 포함해 총체적으로 고쳐볼 차례다. 나는 글을 쓰고 나면 대략 25가지를 체크해본다. 다음은 그 체크리스트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1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드러나는가.

2 재밌는가.

3 빼도 되는 내용은 없는가.

4 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알맞은가.

5 오탈자는 없는가.

6 육하원칙에 충실한가.

7 문단 구분은 적절한가.

8 비슷한 내용의 중복은 없는가.

9 표절의 위험은 없는가.

10 근거를 대지 않고 주장한 부분은 없는가.

11 좀 더 구체적으로 써야 할 대목은 없는가.

12 빠트린 내용은 없는가.

13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없는가.

14 불필요한 부사나 형용사를 사용하진 않았는가.

15 전개 순서를 바꿀 필요는 없는가.

16 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대목은 없는가.

17 상호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가.

18 한 번만 읽고도 이해가 되는가.

19 비문은 없는가.

20 제목은 적합한가.

21 글이 독자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22 독자에게 지적을 당한다면 어떤 내용 때문일까.

23 통계 수치 등 사실의 오류는 없는가.

24 다른 단어로 대체해야 하는 부분은 없는가.

25 지금까지 체크한 것 말고 놓친 부분은 없는가.


글을 고치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기 글을 자신이 고칠 수도 있고, 남에게 고쳐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고, 여럿이 모여 서로서로 고쳐줄 수도 있다. 자기 글을 자신이 고칠 때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쓰고 난 뒤 잠시라도 묵혀뒀다가 고쳐야 한다. 쓰자마자 고치면 고칠 게 잘 보이지 않는다. 글을 쓴 필자에서 글을 읽는 독자로 변신할 시간이 필요하다. 독자의 눈으로 봐야 고칠 게 보인다. 나는 적어도 하루 정도 묵힌다. 시간이 허락하면 더 놔뒀다 고친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쓴 스티븐 킹은 6주 정도 묵혀놨다가 고친다고 한다.

둘째, 고칠 때는 오래 보는 것보다 여러 번 보는 게 중요하다. 잠깐씩 여러 번 봐야 한다. 여러 번 볼 때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보면 더 좋다. 화장실에서도 보고, 카페에서도 보고, 사무실에서도 보자. 점심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 볼 수도 있고, 새벽이나 늦은 밤에 볼 수도 있다. 컴퓨터 화면이나 휴대전화에서도 보고, 출력해서 종이로도 읽어보자. 눈으로만 보기도 하고, 소리 내 읽어도 보자. 술술 읽히면 잘 쓴 글이다.

셋째, 한 번에 하나씩 목적의식을 갖고 보자. 바꿔야 할 단어가 있는지 어휘에 주목하여 보고, 손 볼 문장은 없는지 문장을 눈여겨보고, 문단 단위로 떼어서 하나의 문단이 하나의 완결된 글인지 점검해보자. 나무가 아닌 숲의 모양을 보듯 전체 문맥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위의 체크리스트에 있는 내용을 하나씩 점검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남의 힘을 빌려 글을 고칠 수 있다. 나는 글을 쓰고 나면 아내에게 소리 내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내 글을 읽는 아내의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 부분이 어색한지,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할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무엇보다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곁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 쓰는 두려움이 덜하다. 직장 생활 하는 사람은 상사가 이 역할을 대신해준다. 어떤 이는 총평으로 피드백을 해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일일이 수정해주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아예 모범 답안을 써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고쳐주기도 한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글동무가 있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글동무의 지적을 고깝게 여기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힘든 글쓰기 여정을 견뎌낼 수 있고, 글의 수준을 높여갈 수 있다.

끝으로, 함께 모여 글을 고칠 수 있다. 문예창작과나 국문과에서 신춘문예를 준비하거나 습작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합평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로의 작품을 호되게, 가차 없이 비판한다. 어쉴러 K. 르 귄은 ‘글쓰기의 항해술’이란 책에서 망망대해를 떠도는 작가들에게 함께 쓰기를 권한다. 합평하면 상호적 격려, 우호적 경쟁, 고무적 토론, 비평을 통한 훈련, 시련을 이겨낼 버팀목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나도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 ‘독회’라는 제도를 운영했다. 모여서 읽는다는 뜻의 독회 제도는 각자 글을 쓴 후, 글 하나가 나오면 구성원이 모여 앉는다. 글 쓴 사람이 한 문단씩 읽으면 다른 사람이 고쳐준다. 그렇게 한 문단씩 고쳐서 글을 완성한다. 독회를 통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최상의 글을 써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배웠다. 일정 기간 이 작업을 하니 모두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됐다.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고쳐보는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의 도움까지 받아 고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잘 쓰고 싶은 마음과 고치는 열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다. 일필휘지할 필요 없다. 꿰맨 흔적이 없는 글을 쓸 필요도 없다.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면 어떤가. 나답게 쓰면 된다. 일단 쓰고 꼼꼼하게 고치면 된다.

그렇다면 글을 어느 수준까지 고쳐야 하는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다. “나는 아무리 퇴고를 많이 해도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썼는데 여전히 그렇다.” 내가 모신 분들도 적당히 이 정도면 됐다는 것은 없었다. 구역질이 나고 신물이 넘어올 때까지 고쳤다. 그렇게 고치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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