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여가 활동을 ‘짬을 내 논다’는 식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베이비부머들은 일에 매진하는 시간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여가 활동을 제대로 해본 경험이 드물다. 하지만 주 5일제 근무, 주 40시간 근무 등 근무시간이 짧아지고 워크 앤드 밸런스가 중요시되면서 여가 활동을 소구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가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여가 시간 대부분 미디어에 할애
고령층이 될수록 본인의 역할 상실에 따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가장 큰 물리적인 변화가 여가 시간 증가다. 이렇게 늘어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고령층의 여가는 노인 복지를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인기 키워드다. 노년기 여가 활동이 성공적 노화의 3요소 중 하나로 인식될 만큼 노년기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이자 정신적·신체적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가 활동은 노년기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한국 노인의 여가 실태를 살펴보면 TV 시청이나 라디오 청취 같은 소극적 여가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0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여가 시간은 약 7시간이며, 이 가운데 미디어 이용은 3시간 50분으로 50% 이상이 미디어 이용에 사용되고 있다. 이는 15~24세 세대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로, 여가 활동에 소극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가 문화시설의 필요성 대두
고령층의 여가 활동은 노인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고 사회적 소통에 크게 기여한다. 또 우울증 예방 및 삶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가 활동의 적극적인 참여는 가족 이외에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지지 집단을 형성해 고령층을 지역 사회 내로 통합시키는 역할도 겸한다.
‘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가구는 현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으로 ‘경제 활동’이 아닌 ‘취미·여가 활동’(34.9%)을 꼽으며 삶의 질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는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도움을 주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노년기 여가 활동 효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김세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많은 전문가들 역시 다양한 여가 활동을 하면 신체적 건강 유지는 물론 심리적 안정과 만족스런 생활로 이어져 노화를 어느 정도 막거나 늦출 수 있다고 한다”면서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인프라는 여가 활동의 거점기관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2023 국민여가활동 조사-국민여가생활 실태조사’(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다양한 여가시설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0% 이상을 차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인복지법상 ‘경로당과 같은 노인복지시설’ 외의 여가 문화시설은 현황조차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욕구에 따라 노인 여가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프라 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생애주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4차 산업혁명에 따라 급속도로 디지털화되고 있는 요즘, 고령층은 다양한 측면에서 소외계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화 이론에 따르면 노인의 지위는 현대화에 따른 역할 체계 변화 속에서 조건이 지어지며, 현대화 수준이 높을수록 노인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여가 생활에 접근해야 한다. 생애주기적 관점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계적 변화 과정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청소년기에는 학습, 중·장년기에는 노동, 노년기에는 여가가 중심이 돼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생애주기별 여가 활동 모형 개발’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노동과 학습, 여가를 동등하게 중시하고 경험해야만 고령층이 되어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여가를 즐기면서 높은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젊은 시절부터 여가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자신이 어떤 여가 활동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여가가 중심이 되는 노년기에 접어들어도 만족스러운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여행, 악기 연주, 그림 그리기, 스포츠 등을 즐기지 않았다면, 노인이 된 이후 갑자기 이런 활동을 새롭게 시작하기 어려워 TV 시청 같은 소극적 여가 생활만 이어가게 된다.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60세 이후 갑작스럽게 이전에 해오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여가 활동을 경험하면서 여가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생애주기 후반기에 들어섰을 때 여가 경력과 축적된 문화 자본이 발현된다. 중요한 건 여가 경험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필요해
고령층의 여가 활동은 개인의 성격, 연령, 교육 정도, 건강 상태, 경제적 수준, 생활 습관, 삶의 목적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가 활동은 개인의 내적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들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낮다. 고령층의 여가 활동이 노년기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침에도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가 활동 주체가 원하는 정책은 물론이고 활성화를 위한 노력조차 미비하다고 해석된다.
김세진 연구위원은 “고령자의 문화적 취향을 반영할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여가 활동은 개인의 나이·성향·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 여가 프로그램이나 지원 정책 등은 이들의 다양성을 세분화해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3 국민여가활동 조사-국민여가생활 실태조사’에서도 질 좋은 여가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25%로 나타났다. 이 또한 고령자들 역시 다양한 인프라를 요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여가 활동 참여에 대한 고령층의 욕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들의 여가 활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장년 시기인 베이비붐 세대의 여가 활동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그들의 여가 활성화 방안을 위한 정책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고령층에 여가 활동 참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적극적으로 여가를 즐기면서 여가 경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건강하게 오래 살길 원한다면, ‘여가 경력’ 쌓아라!"
“시쳇말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하잖아요. 여가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령층의 여가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65세 이상 고령층은 자율적으로 여가를 선택해 즐긴 경험, 여가 경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TV 시청 같은 소극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면서 “게다가 베이비부머는 경제적인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은 세대로, 은퇴 후 일정한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여가 활동은 곧 지출이 많은 활동이라 판단하고 아예 바깥 활동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경로당, 노인복지관 등 고령층이 주로 이용하는 여가 문화시설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각 시군구에서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고령층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경로당 및 공공 여가 생활 시설’은 초고령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전기 노인들이 즐기기엔 어려움이 있다.
“경로당에 가보면 대부분 80대 어르신들이에요. 70대도 찾기 힘들어요. 그러니 경로당은 초고령이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거죠. 다양한 연령대가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평균 수명은 늘어났는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병원 다니면서 오래 사는 구조가 됐다며, 의료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 역시 여가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건강한 삶을 오래 유지하려면 실내에서 하는 소극적인 여가보다 야외에서 즐기는 신체적 여가 활동이 더 중요하다. 여가 활동에 대한 경험치를 올리면 의료비 같은 사회적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 활동을 곁들인 여가 활동은 건강한 노년뿐만 아니라 소외감·고독감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혼자 하는 뜨개질·독서·영화 감상·바둑 등을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소외감이나 고독감을 해소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고령층의 큰 문제 중 하나가 소외감·고독감이잖아요.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활동을 통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여가 활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여가 생활이 꼭 필요한 거예요. 어울림이라는 관계적인 측면에서 함께 활동하는 것을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