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어려운 유언… “구체적 계획과 철학 담아야”

기사입력 2025-03-26 08:53 기사수정 2025-03-26 08:53

[법률 가이드] 정해진 방법 따라야 인정돼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얼마 전 법률 고문을 맡고 있는 모 대학의 법률 질의를 받았다. 그 대학 동문 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재산을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간단한 질의였는데도 유언장 검인, 유언 집행자 지정,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 검토해야 할 법률 문제가 많았다. 혼자 살던 분이어서 살던 집의 짐을 치우고 이사하는 일도 법정상속인이 된 먼 친척과 협의해서 진행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일은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고, 죽음 이후에도 사회적인 관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언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을 둘러싸고 발생할 수 있는 법률 관계를 미리 준비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막막함에 작성자 적어

그러나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유언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언을 하는 비율이 고작 3~4%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 내가 근무하는 로펌에서 변호사들 대상으로 ‘유언장 쓰기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들도 막상 유언장을 써보니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고 의뢰인들이 왜 유언장 작성을 어려워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유언장을 써보면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상속인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상속인 간 분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소중히 아끼던 물건의 처분, 내가 하던 사업의 정리 방안, 반려동물 처우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지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를 담는 일도 유언장의 중요한 부분이다.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언장 쓰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미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해진 방법 따라야 인정

민법은 유언의 방식을 다섯 가지로 엄격히 정하고 있다.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가 그것이다. 이 방식에 따르지 않으면 유언은 효력이 없다. 유언의 요건을 엄격하게 법으로 정한 이유는 위조나 변조의 위험성을 줄이고, 유언자의 의사를 명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 내용을 자필로 작성하고 작성한 날짜, 작성자 이름, 주소를 기재하고 서명, 날인하면 되므로 비교적 간단하다. 유언자 사망 후 법원에 제출하여 검인 절차를 밟으면 된다. 문제는 유언의 존재가 사후에 공개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유언장이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르거나, 상속인 중 누군가가 유언장을 발견하고 이를 감춰버렸다면 사실상 유언을 집행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2018년 법무국의 유언서 보관소라는 공적 시설에 자필 유언장을 보관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 내용과 유언자의 성명, 연원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증인의 이름을 구술하는 내용을 녹음하는 방식이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과 동일하게 유언자 사망 후 법원에 제출해서 검인 절차를 밟으면 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녹음해서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는 앱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장을 작성하고 작성자의 이름을 기재한 후, 이를 봉투에 넣어 두 명 이상의 증인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의 유언장임을 표시하고, 봉투 표면에 유언자와 증인 두 명이 각자 서명, 날인하고 날짜를 기재한다. 그 후 5일 이내에 공증인이나 법원에 제출해서 봉투에 확정일자인을 받으면 된다. 이 방법은 유언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며, 유언장 작성일자를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공증인 앞에서 증인 두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므로 유언의 효력을 다투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비용이 들고 증인 두 명과 함께 공증사무실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공증사무실을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공증인이 방문할 수도 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언이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정해진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전문가의 도움 없이 작성하다 보면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와 함께 유언장을 준비하면 법적 효력을 갖춘 유언장 작성이 용이하고, 상속세 절감 방안과 함께 상속 분쟁을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법적인 방법도 마련할 수 있다.

유언 내용을 알고 있는 법률 전문가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유언 집행자로 지정하는 것도 필수다. 가끔 드라마를 보면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노인이 사망한 후 검은색 양복을 입은 변호사가 서류가방에서 유언장을 꺼내 상속인들에게 공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유언 집행자는 필요하다. 특히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교류가 드문 경우에는 유언 집행자를 지정해두고 유언 내용을 미리 알려두는 것을 추천한다.

유언장을 작성 후에도 내용을 수정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유언장이 여러 개 있으면 가장 마지막에 한 유언이 효력이 있고, 그 이전 유언은 철회된 것으로 본다. 유언장을 작성한 이후 재산 상황이나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유언 내용을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할 수 있다. 내 지인은 매년 연말 본인이 작성한 유언장을 읽어보고 수정하면서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활용계획 구체적일수록 좋아

유언장을 작성할 때는 단순히 재산의 처분이나 법적인 내용 외에도 유언자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을 돕고 싶은 선한 마음이 있고, 사후에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최근 많은 사람이 유언을 통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산 일부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회복지 사업이나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경우에는 상속세를 절감할 수 있고, 생전에 이룬 재산이 유언을 통해 단순한 물질적 자산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사후에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과정은 개인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재산, 관계,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정리하며, 자신이 떠난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고민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법적 절차를 넘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유언장은 단순히 법률 문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철학, 남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전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한 사람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며,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유언장을 작성해본 적이 없다면, 올해 계획을 세우면서 유언장 쓰기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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