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29년 6개월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했다. 30대 교수는 아는 것 모르는 것 안 가린 채 가르치고, 40대 교수는 자기가 아는 것만 가르치고, 50대 교수는 학생들이 알아들을 것만 가르치고, 60대 교수는 횡설수설한다고 했으니, ‘퇴임하기 딱 좋은 나이’에 강단을 떠났다.
교수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상한 교수’요, 다른 하나는 ‘정말 이상한 교수’란 뼈 있는 농담을, 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전해 들은 적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꼼짝없이 정말 이상한 교수가 될까 봐 애매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속해 있던 사회대 교수들이 함께한 퇴임식에서 후배 교수들에게 물러나는 소회 세 가지를 밝혔다. 하나. 돌아보니 내게도 30대 신임 교원 시절이 있었다. 당시 원로 교수님들은 “요즘 젊은 교수들, 낭만이 없네. 무슨 재미로 살까 불쌍해” 하며 혀를 끌끌 차셨다. 지금 젊은 교수들을 보자니 똑같은 생각이 들어, 떠날 때가 된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둘. 대학은 19세기 환경에서 20세기 교수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단 말처럼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변화가 눈부신데, 그들 눈에 정년이 코앞인 교수가 어떻게 보일지 솔직히 두렵다고도 했다. 대학 강의를 향한 기대와 존중도, 대학교수에 대한 예의와 배려도 사라진 지금, 학교를 떠나는 것이 한편으론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셋. 퇴임 교수라면 누구나 가장 빈번하게 듣는 질문이 있다. “퇴임 후엔 뭐 하실 건가요?” 누군가는 이 질문이 가장 곤혹스러웠다고 했지만, 나는 준비된 답이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드디어 시간제 농부 생활을 접고 전일제 농부가 될 것이라 했더니 뜻밖에도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제 농부에서 전일제 농부로
겨우내 얼었던 땅이 포슬포슬해지면 농부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덩달아 발걸음도 빨라진다. 특히 지난해 겨울은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진 데다 습설과 비 소식이 잦아 봄맞이 작업이 많이 늦어졌다. 예년 같으면 2월에 끝냈어야 할 가지치기를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우연히 농부의 길로 들어선 해가 2010년이니 어느새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즈음 고령사회를 주제로 한 책을 읽다가 멋진 문장을 발견했다. “부부 나이를 합해 100살이 되면 라이프스타일 이주(移住)를 준비해라. 결코 빠르지 않다.”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느낌표까지 적어 넣었다. 50대에 노후를 준비하라니 너무 빠른 건 아닐까 내심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나이 들수록 세상사 호기심도 떨어지고 팔다리도 둔해지면서 실행력이 떨어질 테니, 50대야말로 찬찬히 인생 이모작을 구상하기에 꼭 맞는 시기라는 이야기였다.
글쓴이 주장에 깊이 공감하던 차에 주말을 이용해 초보 농사꾼으로 변신할 기회가 불현듯 찾아왔다. 오래전 세종시 연기면에 땅을 사두었던 이모가 갑자기 이모부와 사별하자, 여러 해 발품 팔고 귀동냥한 끝에 일종의 ‘가족 농장’을 시작한 덕분이다. “너도 농사지을래?”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네~” 하고 합류했으니, 따지자면 무임승차자였던 셈이다.
2010년 농사 첫해엔 둥근 소나무라 불리는 반송(盤松)을 심었다. 당시 은퇴자를 중심으로 ‘목(木)테크’가 유행하던 시기라, 너나없이 손바닥만 한 땅만 있으면 반송을 심는다는 이야기를 외삼촌에게서 전해 들었다. “나무는 재고가 없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이모가, “한 해 묵히면 나무가 자랄 테고 그렇게 되면 나무 가치가 올라갈 테니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는 묘목상의 유혹에 넘어간 거였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목테크는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눈물 없이 할 수 없는 목테크 실패담은 나중에 풀어볼까 한다.
농사 첫해는 현직에 있다는 핑계로 서울에 머물면서 주말마다 농장에 내려가는 뜨내기 생활을 했다. 아직 농사에 감이 전혀 없었기에 바쁘다고 한 주 건너뛰고, 비 온다고 땡땡이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게으름 부리다가 2년생 소나무 묘목 약 80%가 잡초에 파묻혀 죽어버리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그때 잡초가 얼마나 무서운지 눈으로 확인했고, ‘앉은 자리에 풀 한 포기 안 날 사람’이란 표현이 얼마나 지독한 욕인지도 알았다.
농사 두 번째 해에 2년생 블루베리 묘목 600주를 심으면서, 조치원읍에 거처를 정하고 본격적인 파트타임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 신기했던 건 서울에서 태어나 50년 동안 서울을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었던 내가 의외로 농사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농사 경험이라면 대학교 1, 2학년 시절 소양강에서 배 타고 들어가는 부귀리란 마을로 농촌 봉사활동을 갔다 온 것이 전부인데, 어쩌면 난 전생에 농부였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농사는 내 몸에 잘 맞는 옷이었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생명을 다루는 데서 오는 기쁨이 컸다. 첫해에 “나무는 사람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크는 것”이라며 자주 들여다보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알려준 마을 이장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말 못 하는 나무도 사람 손길을 이토록 기다리거늘, 하물며 사람 하나 키우는 데는 얼마나 깊은 사랑과 남다른 정성이 필요한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농장을 한동안 떠나 있으면 소나무는 잘 크는지, 블루베리는 별 탈 없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것이,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실한 열매 맺으려면 가지칠 줄 알아야
한동안 소나무 가지치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냈던 기억도 새롭다. 소나무는 매해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다. 한두 해 거르면 나무 버린다고, 땔감으로도 못 쓸 만큼 쓸모없어지는 것이 소나무라고 한다. 해마다 쳐내야 하는 잔가지와 키워야 하는 굵은 가지 정도는 초보자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인다. 밑으로 처진 가지, 안으로 뻗은 가지를 깔끔하게 쳐주고 묵은 솔잎도 털어준다.
한데 세상만사 다 그러하듯 만만한 일은 없다. 전문가라면 몇 년 지난 후의 나무 모양까지 정확히 머릿속에 그리면서 가지치기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초보자 눈엔 어느 가지를 쳐내야 멋진 수형이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아 망설일 때가 잦으니 말이다. 우리네 삶도 해마다 가지치기해야 크고 굵은 가지들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갈 수 있으련만. 과한 욕심에 필요 없는 가지를 늘어뜨리고 이것도 저것도 포기 못 한 채 부산하기만 한 삶을 지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상념도 잠시, 소나무밭에 앉아 가지치기를 하노라면 잡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신선놀음이 따로 없겠거니 싶다. TV 드라마 속 기업 회장님,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정원에 나가 전지하는 모습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블루베리야말로 가지치기가 필수인데, 이 작업 또한 쉽지 않다. 과수 가지치기는 주인의 마음 대신 종의 마음으로 하라는 말이 있다. 가지를 많이 남겨서 수확량을 늘리려 하지 말고, 통풍이 잘 되도록 과감히 쳐내고 튼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가지를 예리한 눈으로 선별해야 한다.
블루베리와 나는 다 자라도 키가 크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키 궁합이 맞는 편이라, 나 같은 꼬마 할머니도 가지치기를 할 수 있다.
블루베리를 심은 첫해는 수확 시기를 고려해서 조생종부터 만생종까지 다섯 종류의 묘목을 심었다. 묘목일 때는 생김새가 비슷비슷해서 품종을 구분하기 어려웠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조생종 패트리엇은 겨울 추위에 약하고 다닥다닥 붙은 채 열리는 열매의 신맛이 강한 대신, 가을 단풍은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다. 조중생종 블루레이는 노란색 가지에 열매 모양 또한 귀엽기 그지없고, 중생종 블루크롭은 가늘고 긴 가지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열매가 맺히는 특징이 있다. 중만생종 토로는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가는 가지와 열매 끝맛에 달달함이 오래도록 남는 것이 일품이다. 만생종 넬슨은 수형이 멋지고 꽃대가 튼실한 데다 달콤새콤 탱글탱글한 열매가 매력적이다.
한데 초보 농부의 어설픔 탓인지, 우리 토양에 익숙하지 않은 외래종 탓인지, 한 해 수확이 끝나고 나면 죽는 나무가 제법 많이 나온다. 그래서 매해 보식(補植)을 한 결과, 지금 블루베리 농장에는 모두 12종의 블루베리가 자라고 있다. 열매 크기가 500원짜리 동전만 한 챈들러, 블루베리 농사의 멘토인 깨비농장에서 추천한 드래퍼, 개나리처럼 아래로 늘어지면서 달콤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다는 에코타와 레거시, 블루크롭과 열매 맺기 경쟁하는 블루칩, 이름부터 아름다운 메가블루와 수지블루가 주인공이다.
블루베리도 새콤한 맛보다 달콤한 쪽으로 당도를 높이고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품종 개량이 진행 중이다. 어린 시절 즐겨 먹던 사과 홍옥과 국광 대신 부사와 홍로가 대세가 된 것과 비슷하다. 실은 새콤한 맛 속에 과일 고유의 영양분이 더 많음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자연에서 다시 배우는 절대평가의 삶
예전 대학 은사님께서 “인생은 혼자 뛰는 마라톤이다. 남과 비교하는 상대평가로 살지 말고, 나와 비교하는 절대평가로 살아라”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무든 꽃이든 열매든 자연 속에선 아무도 서로 비교하지 않으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 때문에 주눅 들고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몰아가는 우리네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듯이.
얼마 전 카톡방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미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가 학생들과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유리병을 채우는 실험인데, 먼저 조약돌로 유리병을 가득 채우고 작은 자갈을 가득 넣도록 했다. 다음엔 모래를 살살 뿌려 유리병을 채우도록 했다. 마지막엔 물을 가득 붓도록 했다. 실험을 끝내며 교수님이 하신 말씀. “여러분, 만일 순서를 바꾸어 물부터 부으면 유리병 속에 모래와 자갈과 조약돌을 넣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네 인생길에서 조약돌과 자갈, 모래와 물이 무엇일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조약돌이야말로 평소엔 잊고 사는 삶의 의미, 삶에서 이루고자 했던 꿈,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가치 등이 아닐까 싶다.
부부 나이 합산해 100살이 넘는다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가장 빠른 시기임이 분명하다. 시작이 반이다. 일단 인생 이모작을 상상해보는 일부터 출발하는 게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