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는 전 지방자치단체장이자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런 그가 2016년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한 후 ‘죽음’을 삶의 화두로 두고 살고 있다. 그에게 죽음은 막연한 공포가 아닌 품위 있는 마무리로서의 죽음, 남겨진 사람을 위한 배려다. 그가 지난 8년간 ‘웰다잉’이라는 단어를 세상에 알리며 해온 일은 단순한 죽음 준비 교육이 아니다. 지금을 돌아보고, 나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삶 전체를 묻는 일이었다.

원혜영 대표는 요즘도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한다. 최근에는 50대 중반에서 70대의 중장년 청중이 특히 많아졌다. 그는 늘 강연 첫머리에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죽음을 생각해봤냐?”고 묻는다고 했다.
죽음을 생각할 용기
이 질문은 단순히 죽음을 상기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묻는 건 결국 어떻게 살고 싶은지 되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숙제를 푸는 일이기도 해요. 내가 지금껏 해온 삶을 돌아보고,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이나 정리하지 못한 감정을 바라보는 거죠.”
그는 강연 중 만난 60대 후반 여성을 떠올린다.
“남편 없이 혼자 살았는데, 건강에 이상이 있었어요. ‘죽음을 준비하러 왔다’며 제 강연을 들으셨는데,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엔 ‘살아야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삶을 정리하려다 오히려 삶을 붙드는 사람들. 이것이 원 대표가 말하는 웰다잉의 철학이자 삶의 태도다.
“유서 쓰기, 버킷 리스트 만들기, 나의 가치 정리하기 등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결국 ‘나는 누구였나’,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를 고민하게 되죠.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의 삶이 분명해지고 충만해져요.”
‘죽음 교육’이 아니라 ‘생애 마무리 교육’입니다
많은 이들이 ‘웰다잉’을 들으면 유언장, 장례 준비, 연명의료 중단 같은 제도적 영역만 떠올린다. 그러나 원 대표는 그건 시작일 뿐이라며 “중요한 건 ‘내 삶이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중장년층에게 필요한 준비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삶의 정리다. 가족과의 갈등 해소, 미루어둔 화해, 버리지 못한 물건 정리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마음도 같이 정돈된다. 이는 방 한구석에 먼지만 쌓이던 상자를 열어보며,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짐을 꺼내면서 정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관계의 정돈이다. 원 대표는 “웰다잉을 이야기할 때 ‘고독사’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면서 “죽음을 혼자 맞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외롭고 단절된 것이 더 문제다. 살아 있는 지금, 나의 관계망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은 자기표현의 회복이다.
“우린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걸 말하지 않고 지나쳐요. 그런데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시간은 나 자신을 존중하는 행위예요. ‘나는 이런 사람이었고,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것을 남기고 싶다’는 그 선언이, 결국 나를 나답게 떠나게 합니다.”
원혜영 대표는 60~70대를 ‘생애 전환기’라고 부른다면서 “요즘은 인생이 길어졌지만, 그에 맞는 준비는 전혀 없다. 은퇴 후의 삶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계획하고 살아갈 시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웰다잉은 그런 계획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각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웰다잉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일상 속 죽음 인문학을 강조한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쓰고 나누는 시간이다.
“강연 끝난 후 누군가 내 손을 꼭 잡고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고 말하면, 그날 하루가 보람 있어요.”

죽음을 알면 남은 시간이 더 귀해진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문제는 어떻게 맞이하느냐다”라는 원혜영 대표. 최근 주변 사례를 들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머니가 쓰러지셨는데, 자식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라 병원에 다 맡겨버린 거예요. 2년 넘게 병상에 계셨는데, 의식은 없고 고통만 남았죠.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너무 흔해요. 가족들이 서로 너무 미안해하고, 또 책임이 무거워서 아예 결정을 미루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결국 환자도 가족도 모두 괴롭죠.”
그는 연명의료결정법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존엄사에 대해 현실적인 필요를 강조했다. 그보다 더 강조하는 건 ‘내 선택’을 미리 준비해두는 태도다.
“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보장하지만, 실제로는 병원 판단에 좌우됩니다. 의료진이 ‘임종 단계’라 판단하지 않으면, 가족이 아무리 거부 의사를 밝혀도 치료는 계속돼요. 나의 마지막을 누가 대신 결정하게 두지 마세요. 내가 말하고, 내가 정리해두는 게 서로에게 가장 큰 배려예요.”
그는 웰다잉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불안이 줄었다”, “오히려 지금을 더 열심히 살게 됐다”는 반응을 많이 들었다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게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소중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준비는 할 수 있다. 그 준비가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고, 내 삶의 마침표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도록 돕는 것이 웰다잉이라는 얘기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을 때의 대가는 정서적인 불안만이 아니다. 남은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몇 년 새 가족 간의 상속 분쟁이 눈에 띄게 늘고 있어요. 특히 유언장이 없거나 본인의 뜻이 문서화되지 않은 경우, 재산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장기화되곤 합니다.”
원혜영 대표는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현실적인 갈등의 출발점이 ‘죽음 준비 부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상속 관련 소송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전국 법원에 접수된 상속재산분할청구 소송이 1만 5000건을 넘어섰다.
“웰다잉은 나의 평안한 죽음을 위한 준비만이 아닙니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해요. ‘남기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중요하죠.”
이뿐만 아니라 웰다잉을 준비하면 의료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윤영호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군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생애 말기 의료비 지출이 평균 25% 이상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최소화하면, 고통도 줄이고 의료비도 절감할 수 있어요. 그 돈은 가족에게 남겨지거나, 환자의 마지막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죠.”
원 대표는 이를 두고 ‘경제적 웰다잉’이라는 표현도 쓴다.
“지금은 고령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국가의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잖아요.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 보면 웰다잉은 필수예요. 죽음은 사적인 일이지만, 그 영향은 공공 영역까지 확장됩니다.”
정치인에서 웰다잉 운동가, 그리고 시민으로
정치인의 삶을 오래 살아온 그가 왜 이런 길을 택했는지 궁금해하는 이도 많다.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한다.
“정치인 그만두고 웰다잉 전도사가 된 것은 결국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예요. 사람과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정치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잖아요. 웰다잉도 마찬가지예요.”
실제로 그는 의원 시절 ‘존엄사법’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했고, 국회를 떠난 후에도 관련 제도 정비를 위해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공적 삶을 떠났지만, 공공의 가치를 위한 일은 계속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적 언어’보다 ‘시민의 언어’로 죽음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적 수사나 신념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 안에서 죽음을 다루는 것,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원 대표의 현재 목표다.
“죽음을 준비한다고 하면 ‘벌써 그런 걸 왜 해’라는 반응이 많아요.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맞이할 일이잖아요. 그런데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우리는 준비하지 않았죠. 그래서 웰다잉은 죽음 준비가 아니라 삶의 완성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준비는 죽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더 잘 살기 위한 것이에요. 결국 웰다잉은 웰빙(Well-being)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잘 떠날 수 있어요.”

나에게 던진 질문 하나, “나는 잘 떠날 수 있을까?”
그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삶을 이야기하며 스스로에게 ‘나는 잘 떠날 수 있을까?’를 물어보길 권했다. 아직 전하지 못한 말, 정리하지 못한 관계, 꺼내보지 못한 꿈들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너무 무게를 두지 마시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는 잘 떠날 수 있을지 질문을 해보세요. 남은 시간이 더 또렷해지고, 삶이 더 내 것 같아지는 감각이 살아날 거예요. 그 순간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웰다잉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얘기니까요. 웰다잉의 시작은 지금, 살아 있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