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35만 명의 사망자와 200만 유족의
웰다잉 이야기
지금 인류는 처음으로 ‘느린 죽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노화, 잘 사는 삶에 가려져 남의 일처럼 지나갔던 죽음이 길어지면서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는 웰다잉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세계보건기구의 ‘건강 추정치 보고서(Global Health Estimates)’에 의하면 매일 평균 16만 명이 사망한다고 합니다. 사망자 수도 계속 증가해 2085년에는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넘어서며, 사망의 주원인도 비전염성 만성질환으로 변하면서 죽음도 느려졌다고 합니다(World Health Organization, 2023).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약 35만 명이 사망했으며, 80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사망자의 54%를 넘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노인성 말기 만성질환으로 느린 죽음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노인에게 죽음은 가까이 예상된 일이지만, 마지막까지 준비하지 못하고 맞이하는 생의 이벤트입니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에서 주인공 해리엇은 죽음을 앞두고 번듯한 부고 글을 남기기 위해 웰다잉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해리엇의 프로젝트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 노인도 죽기 전에 물건을 정리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 없이 죽기 위해 연명의료를 결정하며, 가족이나 지인 곁에서 때로는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웰다잉 이야기’가 가능한
다잉 인 플레이스 사회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다잉 인 플레이스(Dying-in-Place)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실제로 병원이나 의료기관이 아닌 거주하던 집에서 편안하게 임종하기를 원하는 노인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노인이 응급실이 아닌 집에서 임종하려면 에이징 인 플레이스(Ageing-in-Place)가 가능한 사회여야 합니다. 노인에게 살던 지역에 남아 여생을 보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여야 죽음도 온전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다잉 인 플레이스 사회는 노인 스스로 ‘웰다잉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문화 안에서 다양한 웰다잉 서비스와 프로그램 이용이 가능하며, 제도와 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웰다잉 사회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다잉 인 플레이스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 지표는 없지만, 준비 단계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년학 전공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웰다잉 서비스
대부분의 노년학 전공자들은 웰에이징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입니다. 과학과 의료기술을 활용해 노화를 늦추는 연구나 알츠하이머 질환 등 노인성 질환을 치료하는 약물 개발에서는 이미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최근에는 유전체 분석, 줄기세포 치료, AI 등 첨단기술에 기반해 생물학적 노화 시계를 바꾸려는 연구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생명 연장이나 저속 노화에 대한 주제와 비교하면 아직 노년학 전공자의 웰다잉에 관한 관심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이미 느린 죽음과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사망자를 보면서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웰다잉을 실천하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웰다잉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죽음은 웰에이징의 마지막도, 웰에이징의 실패도 아닙니다. 생애 말기라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노인이 품위와 존엄을 유지하려면 전문 기술과 특화된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웰다잉 테크는 에이징 테크에 비해 노인의 죽음을 이해하는 데 좀 더 높은 수준의 섬세함과 윤리 기준이 요구됩니다. 관심과 참여가 절실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