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잉여’가 아니다-갈 곳 없는 노인들]①청주시 중심에 고립된 노인들의 섬 '중앙공원'

기사입력 2014-03-25 17:02 기사수정 2014-03-26 15:50

노인 모인지 오래 돼 해당 관청에서 손도 못대

올 초 미국 뉴욕타임스는 뉴욕 한인타운의 한 맥도날드 매장이 자리싸움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가게주인은 한인 노인들이 1달러짜리 커피나 감자튀김을 시켜 놓고 하루 종일 자리를 차지한다며 볼멘소리를 했고 결국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는 것.

이에 한인노인들이 인종차별이자 노인차별이라며 강력반발하면서 문제가 확대됐다. 결국 맥도날드 측이 공식 사과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갈 곳 없는 한국의 노인’이라는 문제를 국제적으로 확인시켜 준 사례였다.

일자리가 없어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노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기력이 있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음에도 정처 없이 떠도는 그들. 이는 우리 사회가 노인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노인들은 자신의 공간에 유배된 신세로 전락했다.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는 잉여인간이 된 노인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퇴적공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퇴적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노인을 사회적 타인으로 만드는 것으로 배려가 아니라 배제라고 주장했다. 노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된 우리사회의 퇴적공간을 둘러보며 사회가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①청주 중앙공원

우리 사회의 퇴적공간을 찾기 위해 기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충북 지역에서 ‘노인공원’으로 유명한 청주의 중앙공원. 4일 충북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다시 시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니 좀 구석진 곳에 있을 것이라는 상상 뒤에 내린 곳은 시내한복판이었다.

“중앙공원이요? 영플라자 사이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돼요.”

▲서울 명동시내를 연상시키는 청주의 중심가.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 코앞에 숨어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김지호 기자 jh@

호떡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곳은 서울의 명동거리를 연상시키는 번화가였다. 하지만 조금 더 골목을 따라 직진하니 공원이라기에는 좀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가까이 가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원 내 음주소란·사행성 오락 등 불법 무질서 행위 강력단속’이라는 현수막이었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노인들은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면적이 크지 않아 이곳이 정말 청주 중앙공원이 맞는지 확인 차 입구 쪽으로 향했다. ‘청주시민이 선정한 청주의 자랑 10선 중앙공원’이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입구 안내판은 ‘노인들의 휴식처로 이름이 나 있다’는 말로 끝이 났다.

▲중앙공원 입구의 안내판. 중앙공원이 청주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jh@

지금이야 노인들의 휴식공간으로 이름이 높지만 중앙공원은 청주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나 공원 안에 1000년 된 은행나무인 압각수와 목조 2층 누각인 병마절도사영문, 척화비 등의 유적이 가득하다. 학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청주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것으로 추정한다. 청주의 1937년 충북도청이 문화동으로 이전하면서 공원으로 조성됐다. 1986년에는 8만2000㎡로 확장됐다.

“오늘은 날씨가 좀 쌀쌀해서 노인이 적어. 따뜻하면 400~500명은 모여. 청주뿐 아니라 청원군 등 주변 노인까지 죄다 모이지. 갈 곳이 없으니까.” 정말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지 지나가던 한 분에게 물어봤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여기 나와야 사람을 구경하지. 집 가까운 데는 공원이 없어. 노인회관에는 사람이 없어 가기가 싫어. 여기 나와서 조금씩 놀다가 오후 5시쯤 집에 돌아가지. 일찍 집에 들어가도 할 일이 없어. 나야 며느리가 있으니 밥이라도 얻어먹지. 며느리 없는 것들은 밥도 못 먹고 술만 먹고 살더라고” 청원군 강내면에 산다는 고모(85) 할아버지는 거리가 멀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버스타고 살살 나온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곳저곳에서 윷놀이와 장기판이 벌어졌다. 한 윷놀이 판으로 다가가니 중앙공원에서 어린 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대전에서 왔는데 일자리가 없어서요. 차비 좀 주세요.”

줄 돈이 없다고 사절하는 사이 다른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쫓아온다. “왜 이 사람한테까지 돈을 달래.” 그러자 돈을 달라던 할아버지는 꽁무니를 뺀다.

“윷놀이에 돈 걸었다 돈 잃은 놈이여. 5만~10만원씩 놓고 돈내기 한다니까.” 알고 보니 윷놀이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다시 도박에 뛰어들기 위해 돈을 구걸한 것이었다.

▲공원 내 불법행위를 경고하는 경찰의 현수막. 김지호 기자 jh@

그제야 처음에 보았던 ‘공원 내 음주소란·사행성 오락 등 불법 무질서 행위 강력단속’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적은 금액이라도 엄연한 도박행위가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범죄행위는 도박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는 중앙공원의 한 노숙자가 잠자는 자신을 깨웠다며 쇠파이프 등을 이용해 환경미화원을 마구 때려 두개골을 함몰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불과 며칠 전에는 도박을 벌인 혐의로 4명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지금 카메라로 몰래 뭐 찍는 겨?” 도박 단속 때문인지 일부 노인은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범죄가 발생하는 고립된 곳이지만 노인들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다른 곳에 모일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중절모에 코트를 빼입은 80살 이모 할아버지는 “집근처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아. 경로당에 가봐야 고스톱이나 치지. 돈내기 싫어서 여기에 왔는데 여기도 도박판이네. 갈 곳이 없어”라고 호소했다.

도로공사에서 일하다 퇴임했다는 이 할아버지는 허리디스크가 있어 노인들이 하는 일자리도 못나가고 있다며 “지저분한 사람들과는 어울리기 싫다”고 말했다. 중앙공원 노인 중에서도 빈부격차에 따라 층이 갈리고 있었다. 공원에 나오는 것치고는 옷차림이 세련됐다고 칭찬을 건네자 이 할아버지는 “저 사람도 매일 나오는데 뭐”라며 말끔한 정장을 입은 노인을 가리켰다.

“노인들이 갈 곳이 없어. 노인회관에는 담배냄새가 나. 술담배도 안하니까 더 갈 곳이 없네. 심심해.” 군 장교로 전역했다는 최모(70) 노인은 군인연금을 타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갈 곳이 없는 것은 여느 노인과 마찬가지였다.

▲중앙공원에 말없이 몇 시간을 쪼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 말을 걸어봤지만 답변은 없었다. 김지호 기자 jh@

노인들이 모여들면서 중앙공원은 청주시 도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립된 섬이 돼버렸다. 마치 말을 잊은 듯 중앙공원에 몇 시간째 쪼그려 앉아있는 한 할머니처럼. ‘노인들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깊어지면서 노인을 제외한 일반시민은 기피하는 지역이 된 것이다.

해당 관청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앙공원을 담당하고 있는 청주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노인이 모인지 오래된 곳이라 사람들이 즐겨 찾지도 않고 공원이 활성화 되지 않고 있다”며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분들이 지속적으로 계신 곳이라 강제적으로 내쫓을 수는 없다. 다만, 도박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행정력으로 모두 단속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과 주기적으로 합동단속 등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공원을 취재하는 동안 그 어떤 노인도 다른 이에게 ‘왜 나왔냐?’고 묻지 않았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무작정 모이는 그들만의 세상. 번화가와 골목길 하나를 사이를 두고 사회와 단절된 중앙공원은 이미 거대한 노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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