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어디에서 죽고 싶은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이 질문에 진지하게 몰두한 젊은 의사가 있다. 올해 44세인 야스이 유(安井佑). 그가 운영하는 병원은 일본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조용한 주택가 한가운데 있다. 이름부터 파격적이다.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おうちにかえろう。病院).’

일본에서는 2030년 약 47만 명의 ‘임종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받아줄 병상이 없습니다. 다른 병원을 알아보세요’라는 말을 들으며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임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맞선 이가 바로 야스이 유씨다. 그는 2013년 ‘살던 집에서 나답게 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33세의 나이에 재택의료 전문 진료소 ‘야마토진료소(やまと診療所)’를 설립했다.
2021년 그는 다시 한번 도전해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을 개원했다. 병원 이름은 그 독창성과 철학을 인정받아 일본 네이밍 대상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 선도적인 의료 시스템으로 일본 언론의 지속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환자들의 소망을 현실로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접수 창구나 휠체어 줄이 아니라, 밝은 나무색으로 꾸민 따뜻한 카페 공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넓은 원목 테이블과 한쪽에 놓인 피아노, 노트북을 펴고 커피를 마시는 직원들, 그 옆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입원 환자의 모습은 병원이라기보다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 가깝다.
‘병원’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특유의 냄새, 차가운 분위기, 긴 복도의 풍경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은 단순히 치료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자택에서 임종을 맞이하길 원하는 환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자, 환자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함께 고민하는 공간이다. ‘집과 병원을 잇는 징검다리’ 같은 곳이다.
병원 설립자인 야스이 유 씨는 의사임에도 흰 가운을 입지 않는다. 짙은 남색 셔츠 차림으로 조용히 회의실에 들어선 그는 첫마디를 이렇게 꺼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60~70%의 일본인이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실제 자택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13%뿐입니다. 그중에서도 의료진이 함께한 경우는 약 7%에 불과하죠. 10명 중 단 한 명만이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현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닌, 이 수치를 바꾸고 싶다는 절실한 변화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야스이 씨는 왜 ‘살던 집에서 나답게 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념 아래 일본에서 단 하나뿐인 병원을 세우게 되었을까?

개인의 경험이 만들어낸 의료 철학
고등학생 시절 야스이 씨는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병원에서 떠나보냈다. 환자의 가족으로서 느꼈던 좌절과 무력감은 그를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의료진과 가족 사이에는 벽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아버지의 상태나 예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의료진의 판단대로 진행됐고, 가족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의 회한은 ‘다시는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는 다짐으로 남았고, 결국 의사의 길로 나아가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도쿄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그는 이후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NGO에 참여해 1년 반 동안 의료 봉사를 경험했다. 죽음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선을 접한 그는 환자의 ‘삶과 죽음’을 함께 고민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했다.
“미얀마에서는 죽음이 특별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태어남과 죽음을 자연의 순환으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 웃으며 감사를 전하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병원과 자택을 잇는 환승역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은 일반적인 병원과는 다르다. 내과, 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다양한 진료과를 갖춘 120병상 규모의 의료기관이지만, 모든 병상이 ‘지역포괄케어병동’으로 지정된 것은 일본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이 병동은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가 자택으로 복귀하기 전 회복과 준비를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상태가 악화된 환자가 일시적으로 머무는 ‘중간 지점’이다. 입원 기간은 최대 60일. 말 그대로 병원과 재택의료를 잇는 ‘환승역’ 역할을 한다.
“암 환자는 마지막 2개월에 일상생활 수행 능력(ADL)이 급격히 저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치매나 노쇠 같은 비암 환자는 수년간 증상을 반복하며 서서히 기능이 떨어집니다. 이들에게는 단순한 ‘재택 임종 가능’ 안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아갈지를 통합적으로 지원해야 하며, ‘생활을 지원하는 의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병원이 바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또한 환자들이 자율성과 의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돌아가면 뭘 해볼까?’, ‘그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병원의 목표다. 실제로 이곳에 입원한 환자의 약 90%가 자택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이는 일반 병원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수평 조직과 자율성, ‘병원’의 문화를 바꾸다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다.
5층에는 병원 직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이 마련돼 있으며, 베란다에서는 보육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채소를 기른다. 토마토와 오이 등을 재배해 점심 식사로 제공하고,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식습관 교육도 함께 받는다.
같은 층에 위치한 오피스 공간에는 병원장실이 따로 없다. 모든 직원이 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오픈 오피스 형태로 운영된다.
홍보 담당 미네무라(峯村)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입 사원도 병원장에게 직접 의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아이디어든 실행 가능한 구조죠. 유니폼도 의사와 간호사의 구분 없이 동일한 셔츠와 바지로 구성돼 있고, 출근 후 원하는 색의 셔츠를 자유롭게 선택해 입습니다. 흰 가운은 환자에게 긴장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합니다. 환자가 누구에게든 말을 걸 수 있고, 누구든 환자에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열린 의료 구조를 지향합니다.”
병동에서는 매일 전 직종이 함께하는 환자 중심 콘퍼런스가 열린다. 의사, 간호사, 약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직군이 한자리에 모여 각 환자의 상황을 공유하고, 퇴원 이후의 삶까지 함께 계획한다. 각 병동에서 하루 30분씩 진행하며, 이 회의는 병원의 핵심 운영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의료는 질병만을 다루지 않는다. 환자의 삶 전체를 함께 돌보는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기술과 철학, 두 바퀴로 굴러가는 병원
이 병원은 의료 기술과 조직 운영 모두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자체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통해 환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간호 호출은 스마트폰으로 진행된다. 병상 옆에 설치된 카메라는 원격 대응 시스템과 연동돼,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병원장 야스이 씨는 기술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한다.
“기술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 의료진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의료의 본질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환자와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죽음을 함께 고민하며, 기계보다 마음에 귀 기울이는 의료를 실천하고 있다.
병원의 운영 역시 이 철학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개원 첫해 약 2억 엔(약 19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병상 가동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개원 3년 차에 흑자전환에 결국 성공했다.
환자 10명 중 1명은 간호인력으로 배치해 탄탄한 돌봄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주 인력 없이 대부분의 직원을 직접 고용하고 세심하게 관리한다. 이에 따른 비용이 들지만, 병원 이념을 공유하는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야스이 씨는 말한다.
“직원이 병원의 철학을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면, 서비스 질도 높아지고 이직률도 낮아집니다.”
실제로 이 병원의 급여 수준은 업계 평균과 유사하지만, 이직률은 평균보다 훨씬 낮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가능할까
야스이 씨는 병원 5층 회의실의 탁 트인 유리창으로 도쿄 주택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병원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재택의료 전문의가 설립한 병원입니다. 월평균 100명 이상 입원하고 있으며, 연간 1000명 넘는 환자의 자택 복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입원은 전국 각지에서 받습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환자와 주민이 언제든 갈 수 있는, 당신 곁에 있는 병원이 되고 싶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환자의 손을 잡고 함께 있어 주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많은 환자들이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의사가 주도하는 의료에서, 환자와 가족이 주체가 되는 ‘공유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 시대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느낀 회한에서 출발해, 환자가 ‘살던 집에서 나답게 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병원을 세운 의사 야스이 유.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자율성을 바탕으로 500여 명의 직원과 함께 환자의 마지막 여정을 동행하고 있다. 또한 적자 없는 지속 가능한 운영을 통해, 철학과 경영의 균형을 증명한 의료인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요. 병원’은 환자의 자기다운 죽음을 존중하고, 가족 간에 마음 깊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환자의 마지막 여정을 따뜻하게 동행하며 삶의 존엄을 지켜내는 선구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AI가 진단 정보를 제공해주는 시대, 의사의 전문성은 기술뿐 아니라 ‘무엇이 행복한 죽음인지’ 함께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도 언젠가는, 아니 어쩌면 지금이 바로 이런 병원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