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호 교수 “콩으로 빚는 무병장수”

입력 2025-10-15 07:00

태초메주 개발, K-푸드 가능성 높아

(오병돈 프리랜서)
(오병돈 프리랜서)

우리나라 식문화를 이야기할 때 이계호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분석화학 분야의 권위자로 건강한 식습관을 연구해온 그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한국인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아갈 길을 찾는 것. 병원 밖 가정의 식탁에서 질병 재발을 막고 면역력을 회복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80.6세, 여성 86.4세입니다. 그런데 국가암등록통계를 대입해보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남성은 5명 중 2명(37.7%), 여성은 3명 중 1명(34.8%)정도 암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시 말해 어르신이 있는 가정 두 곳 중 한 곳에는 암환자가 살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뿐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와 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0~49세 젊은 대장암 발병률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결핵 발생률 역시 OECD 38개국 중 1위다. 정신 건강 지표 역시 위기 수준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전체 자살률도 높은편에 속하며, 특히 노인 자살률은 1위로 지목된다.

“대한민국이 잘산다는 말은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의미입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6000달러(약 5000만 원)를 넘었으니 물질적으로는 분명 잘사는 나라지요. 그러나 건강과 행복의 지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교수는 최근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행복의 근원’을 장(腸)에서 찾았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90%가 뇌가 아니라 장에서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장이 먼저 행복해져야 합니다.”

(오병돈 프리랜서)
(오병돈 프리랜서)

빨리빨리 식탁에서 느림의 미학을

이계호 교수는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 분석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충남대학교에 부임했다. 초창기에는 반도체와 첨단 신소재를 주로 다뤘지만, 이후 연구 대상을 먹거리로 확장하면서 그의 관심은 새로운 방향으로 옮겨갔다. 2000년에 벤처기업 한국분석기술연구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먹거리 분석에 뛰어들었다.

“농약, 중금속, 발암물질 같은 유해 성분을 검출하기 위해 우리가 먹는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을 분석해왔습니다. 원래 먹거리의 목적은 사람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데 있는데, 지금은 돈이 되는 먹거리가 더 많습니다. 겉으로는 보기 좋고 맛있어 보이지만 정작 건강과는 거리가 있지요. 그래서 저는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올바른 먹거리를 전달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계호 교수는 평소 어떤 식습관을 실천하고 있을까. 그는 “특별한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이 균형 잡힌 식단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다만 붉은 고기, 밀가루, 튀김류는 거의 섭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원칙은 바로 ‘오래 씹기’다.

“현미밥은 대표적인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래 씹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현미는 탄수화물이기 때문에 소화과정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돼야 우리 몸에 이롭습니다. 그런데 이 분해 효소인 아밀라아제는 위가 아니라 침에 들어 있습니다. 결국 현미를 비롯한 곡류는 최소 30분 이상 꼭꼭 씹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워낙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어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습관화되기까지 최소 1년이 걸립니다. 샐러드를 먼저 먹고 식사를 시작하면 비교적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그는 많은 사람들이 건강식으로 믿어 소비가 증가하는 ‘오일 섭취’에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리브오일, 아보카도오일, 포도씨오일, 그리고 참기름, 들기름 등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혈관 건강에 이롭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조리 방식입니다. 기름은 70℃ 이상 열이 가해지는 순간부터 산패가 시작되고, 발암 가능성이 있는 과산화지질이 생성됩니다. 샐러드드레싱처럼 차갑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오병돈 프리랜서)
(오병돈 프리랜서)

흙에서 찾은 건강, 태초먹거리학교

이계호 교수는 현재 태초먹거리학교 교장으로도 활동한다. 사랑하는 딸을 유방암으로 잃은 뒤 그는 먹거리 연구에 더욱 몰두했고, 암환자와 가족들에게 ‘먹거리와 생활 습관의 변화가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이에 2010년 충북 옥천에 첫 학교를 세운 이후 대전에 분교를 마련해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열린 학교로 운영한다.

“태초에 인간은 흙으로 지어져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흙에서 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죠. 태초먹거리학교는 단순히 건강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먹거리, 생활 습관, 환경까지 함께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여기서 배운 내용을 가족과 친구, 다음 세대에게 전하며 건강한 삶이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교수가 꼽는 대표적인 ‘태초 먹거리’는 바로 콩이다. 그는 “콩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며 특히 발효과정을 거친 청국장과 된장 섭취를 추천한다. 핵심은 장내 유익균이다.

“콩에는 단백질이 40% 들어 있어요. 발효과정을 거치면 단백질이 잘게 분해돼 우리 몸에 흡수되는 비율이 95%에 달합니다. 반면 두부나 두유 형태로 섭취하면 흡수율이 65~80% 수준에 머물지요. 발효된 콩은 소화가 잘될 뿐 아니라 장내 유익균을 늘려줍니다. 장 건강이 회복되면 면역력이 강화되고, 이는 모든 질병에 맞설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됩니다.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식탁 위 간장·된장만 바뀌어도 건강해진다”는 이계호 교수는 누구나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개발한 것이 ‘태초메주’다. 준비 과정은 간단하다. 김치통에 소금과 태초메주를 넣기만 하면 된다. 불과 30분이면 담그기가 끝나고, 여름에는 2개월, 겨울에는 4개월 뒤 직접 만든 간장과 된장을 맛볼 수 있다.

“태초메주 담그기는 전국 110여 개 지역 체험교실에서 진행됩니다. 시중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체험교실에서 장의 가치와 제대로 만드는 법을 함께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통 방식대로라면 콩을 삶아 메주를 빚고, 짚으로 묶어 건조한 뒤 장독대에 담가야 하지요. 하지만 태초메주는 30분이면 충분합니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섯 살 아이도 교실에 와서 장을 담글 정도로 쉽습니다. 먹어본 이들 중 아토피가 호전됐다는 분도 있죠. 맛과 건강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몇 번씩 다시 찾는 이들도 많습니다.”

기능성 K-푸드의 등장

이계호 교수는 태초메주의 해외 진출 가능성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키트 형태로 제작돼 배송이 용이하고, 현지에서도 손쉽게 장을 담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K-푸드는 주로 ‘맛’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태초메주는 장 건강을 지켜주는 기능성 K-푸드가 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장 담그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고대부터 이어온 우리 음식 문화가 한국의 주거·세시풍속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지요. 저는 태초메주 교사들에게 ‘여러분은 유네스코 국제행사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K-푸드 아닐까요. 다들 더욱 뿌듯해하며 이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자 합니다.”

그는 유튜브 채널 ‘이계호 교수의 보통하루’도 운영 중이다. 구독자는 6만 명을 넘어섰다. 태초메주 담그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 개설한 채널로, 직접 제작·운영에 나서지 않아 수익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의 지식과 메시지가 국내외로 확산되기를 바랄 뿐이다. 발 없는 유튜브는 국경을 넘어 전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식주다. 그중 ‘식(食)’은 이계호 교수가 오랜 시간 붙들고 있는 화두다. 그가 강조하는 무병장수(無病長壽), 곧 진정한 행복을 향한 식 철학은 시니어 세대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 중장년 세대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픈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타민이나 보조제가 아닙니다. 자기 면역력을 원래대로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 그것이 답입니다. 면역세포의 80%가 장에 존재합니다. 결국 장 건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어떤 질병도 더 악화되지 않도록 막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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