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생 와카미야 마사코(若宮正子) 씨는 올해 90세다. ‘세계 최고령 프로그래머’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의 삶은 어떤 젊은이보다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은행원으로 은퇴한 뒤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고, 80세에 프로그래밍을 독학해 81세에는 고령자를 위한 게임 앱까지 개발했다.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애플 CEO 팀 쿡과의 만남, 유엔 행사 강연, 일본 정부 디지털청 자문위원 활동, 9권의 저서 출간까지. 인생 후반부에도 그는 왕성한 행보를 이어가며,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세대에게 살아 있는 용기이자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짐짝 같은 직원’에서 시대를 이끄는 창조자로
고등학교 졸업 후 미쓰비시은행(三菱銀行)에 입사했던 와카미야 씨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땐 여자가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했어요. 여자가 공부하면 건방지다고도 했죠.”
지폐를 손으로 세고 펜촉을 잉크에 찍어 쓰던 시절, 일이 느린 그는 늘 야근을 해야 했다. 동료들로부터 “아직도 안 끝났어?”라는 말을 들으며 스스로를 ‘짐짝’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에 기계화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업무가 생겨나자, 그는 개선할 점과 상품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점차 능력을 인정받았고 결국 관리직에까지 올랐다.
“그때 느꼈어요. 인간의 능력 평가는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걸요. 변화가 많은 시대일수록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 아닐까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하나다.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은 반드시 빛을 발한다는 것. 와카미야 씨 가 몸소 증명해냈다.

충동구매가 가져다준 기적
은행원 은퇴 후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58세에 생애 첫 컴퓨터를 구입했다. 당시 주변에서는 “그 돈으로 기모노나 사지”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 ‘쓸데없는 충동구매’는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금 그의 집은 데스크톱 PC, 노트북, 맥, 아이폰, 애플워치 등 디지털 기기로 가득하다. 항공권과 숙소를 직접 예약해 해외 출장을 다니고, 연간 100회가 넘는 강연을 소화한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직접 만들고, 노트북을 챙겨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종횡무진한다.
“3일에 한 번꼴이에요. 전혀 힘들지 않아요.”
와카미야 씨는 소녀 같은 웃음으로 말한다.
대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과의 회담, 일본 정부 디지털청 자문위원 활동, 고령자 온라인 커뮤니티 ‘멜로클럽’ 부회장, 브로드밴드스쿨협회 이사, ‘열중초등학교’ 강사까지. 그의 인생은 80대를 지나 더욱 바쁘고 다채로워졌다.
많은 이들이 은퇴 후 조용한 삶을 꿈꾸지만, 와카미야 씨에게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노후’나 ‘여생’이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 없다.
고령자 위한 게임 앱 ‘Hinadan’ 탄생
100세까지 장수한 어머니를 10년간 홀로 간병한 뒤, 80세 되던 해 와카미야 씨는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 앱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Hinadan(히나단)’은 일본 전통 히나 인형(ひな人形) 12종을 단상 위에 올바르게 배치하는 퍼즐 게임이다. 정답을 맞히면 북소리와 함께 “정답입니다”, 틀리면 “틀렸습니다”라는 음성이 나온다.
이 앱은 고령자를 배려한 설계가 특징이다. 스와이프 대신 터치만으로 조작할 수 있고, 글씨도 크게 설정해 확대 없이 볼 수 있다. 아이콘은 지인의 도움으로 제작했다. 내레이션도 친구가 맡았다.
“앱 개발은 결국 친구들의 힘이었죠.” 와카미야 씨의 말처럼 기술은 관계와 협력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2017년 그는 애플의 연례 개발자 회의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 초청받아 팀 쿡 CEO와 만났다. 와카미야 씨는 고령자의 시각에서 아이폰의 불편한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고, 팀 쿡은 이를 경청했다.
“스마트폰 조작은 고령자에겐 쉽지 않아요. 손끝이 건조해 스와이프나 슬라이드가 잘 안 되거든요.”
이 만남을 계기로 그는 ‘세계 최고령 개발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와카미야 씨는 기술의 미래가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알리고 있다.

고령자에게 디지털이 꼭 필요한 이유
“저의 미션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디지털 혁신을 돕는 것입니다.”
편의점 셀프 계산대, 식당 태블릿 주문 등 일상이 디지털화된 시대. 와카미야 씨는 고령자 자립을 위해선 디지털 기술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은 반드시 고령자에게 맞게 설계돼야 합니다. 기계가 사람에 맞춰야지, 사람이 기계에 맞추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시니어 친화적 기술이 단순한 편의를 넘어 고령화사회에서 새로운 글로벌 수요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나이, 성별, 국적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가 참여하는 ‘멜로클럽(Mellow倶楽部)’에는 97세에도 윈도와 맥을 능숙하게 다루며 강의하는 회원이 있고, AI로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시니어도 있다. 와카미야 씨는 “디지털을 공유하고 즐길 때 비로소 시니어의 창의력이 발휘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는 정부 회의에서 꾸준히 요구한다. 고령자들이 실제로 디지털을 활용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스마트폰 강좌를 열긴 하지만, 일상에서 활용할 기회가 부족해 배운 기능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시니어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누군가 된장절임 레시피를 올리면, 다른 이가 ‘이렇게 하면 더 좋아요’라고 댓글을 다는 식으로요.”

AI 시대, 창조가 중요하다
“AI가 인간의 일을 빼앗을 거라 걱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창조력’과 ‘상상력’이 있다면요. AI는 1000을 1억으로 늘리는 건 잘하지만, 0에서 1을 만드는 건 못하거든요.”
애플 초청 계기가 되었던 게임 앱도, ‘시니어를 위한 게임이 없으니 내가 만들어보자’는 작은 발상에서 출발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영역, 바로 그것이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세계다.
상상하고, 공감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그는 “AI 시대를 두려워하기보다 ‘나는 무엇을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와카미야 씨는 ‘엑셀 아트(Excel Art)’라는 새로운 영역도 개척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그가 선물한 엑셀 아트 부채에 감탄하며 이를 공식 디지털 아트로 인정했다.
“엑셀은 원래 표 계산용 소프트웨어지만, 셀 하나하나에 색을 넣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단순한 색칠을 넘어 그러데이션, 패턴, 테두리까지 표현할 수 있죠. ‘이걸로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무궁무진하더라고요.”
인터뷰 당일 그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 역시 직접 디자인한 엑셀 아트 작품이었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무늬는 그의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
“저는 정말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젊은 시절 영어 회화를 배울 때도 그랬죠. 연말 파티에서 선생님이 뜻밖의 표창장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실수 덕분에 다른 학생들이 많이 배웠다’는 이유였죠. 그때 알았습니다. 실패는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성장시킨다는 것을요.”
강연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용기와 결단은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 그의 답은 단순하다.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해서 누가 다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되는 거잖아요. 생선을 굽다 보면 냄새가 나 이웃에 민폐가 될 수도 있지만, 프로그래밍은 그럴 일도 없죠. 그렇다면 왜 특별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인지 저는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와카미야 씨에게 나이는 도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무기였다. 그는 100세 시대의 선구자처럼 강연하고, 책을 쓰고, 엑셀로 창작하며, 지금도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령자들이 디지털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사회, ‘늙음’이 새로운 기회로 바뀌는 사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와카미야 마사코가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아직도 늦었다고 생각하나요?”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빠른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의 ‘0에서 1’은 어디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