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은 고령사회 대응의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다음 달에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법’이 전국적으로 전면 시행되는 시점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돌봄을 단순 노인 복지 개념이 아닌, 의료·연금·노동·주거 등 사회 시스템 전체를 고령친화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이를 위해 본지 자문위원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대한민국 초고령사회 대응의 ‘골든타임’을 점검하는 특별 대담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대담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
이윤환 (한국노년학회장,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
박영란 교수(이하 박): 2026년은 우리 사회에 매우 상징적인 해입니다. 정부가 인구구조 변화 대응의 ‘골든타임’으로 보고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진입하는 시기이자,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정책이 전국 시군구에서 전면 시행되는 제도적 전환점이기도 하죠. 저는 지금이 단순한 노인복지 정책의 수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의료, 돌봄, 연금, 노동, 주거 등 시스템 전체를 고령친화적으로 ‘재건축’해야 하는 마지막 시기라고 봅니다.
이윤환 회장(이하 이): 동의합니다. 만약 이 ‘골든타임’ 5년 동안의 대응에 실패한다면, 2030년대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2026년 보건복지부 예산만 해도 137조 원이 넘고, 그중 노인복지 관련 예산이 약 30조 원에 달하지만, 타 부처와의 정책 연계가 미흡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실종된 고령사회 정책과 ‘당사자’의 부재
박:현재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우려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최근 ‘의료 혁신 위원회’가 만들어져 지역 필수의료나 AI 보건의료 체계를 논의하고 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나치게 의료 중심적입니다. 제가 위원회 멤버들을 검색해 보니 대부분 병원이나 보건의료 쪽에 계신 분들이더군요. 사회복지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의료 혁신’은 있는데 ‘복지 혁신’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 위원장부터가 의료계 인사이다 보니 공공의료 중심으로 얘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겠죠. 사실 이번 정부의 아젠다를 보면 ‘보건 혁신’ 자체가 빠져 있습니다. 최근 의료 사태가 불거지면서 이슈가 그쪽으로 매몰된 측면도 있고요. 문제는 통합돌봄법 시행이 코앞인데, 의료 없이는 이 시스템이 완전체가 될 수 없음에도 이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결집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박: 복지 쪽은 이해관계자 집단이 너무 흩어져 있습니다. 사회보장기본법 아래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수십 가지 하위법으로 쪼개져 있고, 전달 체계도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 유형별로 분화되어 서로 교류와 협력이 별로 없는 구조거든요. 심지어 보건복지부 안에서도 보건 의료 쪽 부서가 복지 쪽보다 연구개발 예산등 자원이 더 많고, 권한도 더 커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엉켜 있는 법과 제도를 컨트롤하고 조정할 부처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셈이죠.
박:컨트롤 타워 문제도 심각합니다. 2004년에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처음 만든 것도 사실 고령화보다는 저출산 문제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난 20년간 대부분 에너지가 출산율을 높이는 데 쓰였고, 고령사회 정책은 상대적으로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5차 기본계획 작업이 시작은 됐지만, 인구 전략 체계로의 개편 논의 때문에 작업이 중단되거나 혼란을 겪으며 방향성을 잃은 상태입니다.
이: 최근에는 대통령실 안에 AI미래기획수석실이 생기면서 인구 이슈를 거기서 또 다루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박: 정책이 여기저기 파편화되어 어디서 주도할지 결정이 안 된 상태인 거죠.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당사자인 시니어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NGO의 역할이 커야 하는데, 대한노인회 외에는 뚜렷한 집단이 없어요.
이: 왜 유독 시니어 시민사회의 힘이 약하다고 보시나요?
박: 현재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과거 권위주의적인 문화 속에서 자라 ‘당사자주의’에 매우 약합니다. 퇴직 후 개인적인 커뮤니티 활동은 활발하지만, 이를 연금이나 돌봄 같은 사회적 아젠다로 연결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요. 하지만 최근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셨다가 낙상 사고 등을 겪으며 시스템의 허술함을 발견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치’가 쌓이면 결국 돌봄 문제가 본인들의 절박한 이슈로 터져 나오게 될 겁니다.

사회보장제도, 30년 간 고쳐 쓴 집… 이제는 재건축해야
박: 대한민국이 1995년 OECD 가입 이후 지난 30여년에 걸쳐 구축한 사회보장 시스템은 외형적으로는 부러움을 살 만큼 훌륭합니다. 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회서비스까지 모두 갖췄으니까요. 하지만 단기간에 모든 걸 만들다 보니 일종의 ‘부실공사’가 일어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집은 그럴듯하게 지어놨는데 정작 지속가능하지가 않고, 정작 집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국민들은 내가 어느 방에 들어갈 수 있는지조차 몰라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예방 중심 정책이 타이틀로는 걸려 있지만, 정작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콘텐츠가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군요.
박: 특히 노동 환경과 인구구조의 변화를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부분의 제도는 산업화 시대의 ‘정규직 안정적 직장’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 노동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는 지금의 연금이나 고용보험 시스템이 잘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세에서 2024년 83.7세로 증가했고, 이제는 100세 시대라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존 설계된 고령사회정책은 급증하는 고령인구의 사회적 안전망이 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 정합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초고령사회의 파고를 넘을 수 없습니다.
‘바이오마커’가 여는 정밀 의료와 조기 개입의 시대
이: 우리 의료계는 지금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두가 되는 정밀 의료 기술들이 곧 현실로 들어올 텐데, 핵심은 '바이오마커'입니다. 과거에는 환자가 오면 문진을 하고 검사를 해서 질병을 진단한 뒤에야 처방을 내렸지만, 이제는 질병으로 진단받기 전 단계의 건강 상태를 면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위 “정밀 의료”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박: 질병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예측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이: 그렇습니다. 바이오마커를 통해 상태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면 미래에 어떤 질환이 걸릴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얼리 인터벤션', 즉 조기 개입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검진이 질병을 빨리 찾는 '조기 검진'이었다면, 앞으로의 의료는 진단하기도 전에 노화의 신호를 포착해 치료적 관리를 시작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드라이빙하는 가장 큰 동력이 바로 고령화입니다.
박: 의료 현장에서 노화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고 있군요. 사실 일반인들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주변을 보면 70~80대에 요양원이나 병원으로 가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거든요.
이: 맞습니다. 주류 의료계에서는 과거에 항노화를 근거 없는 가짜 의학으로 치부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로사이언스(노화과학)'의 근거가 축적되면서 시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기폭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사인분류(ICD)에 '노령'을 질병 코드로 넣으려 했던 시도입니다. 사회적 반발로 인해 결국 '기능 저하'로 정의되긴 했지만, 노화 현상을 포착해 이를 관리하고 심지어 약을 개발하겠다는 제약사들의 움직임은 이미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습니다.
박: '기능 저하'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단순히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신체 시스템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의료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이군요.
이: 정확합니다. 사망 원인을 분류할 때 심장 질환이나 당뇨병 같은 개별 질환뿐 아니라 그 밑바탕에 있는 노화의 현상을 분류하고 개입하겠다는 것입니다. 美의학한림원에서는 이미 '헬시 에이징'을 넘어 '헬시 론제비티(건강 장수)' 로드맵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습니다.

‘초장수 사회’의 도래, 90세 이상 인구가 200만 명을 넘는다
박: 교수님 말씀대로 '건강 장수'가 가능해지려면 우리가 맞이할 인구 구조의 변화를 직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단순히 고령 사회를 넘어 90세 이상이 급증하는 '초장수 사회'로 가고 있거든요.
이: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90세 이상 인구가 약 27만 명인데, 30년 뒤인 2052년에는 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어느 연령대보다도 90세 이상의 증가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지금 치매 환자가 약 100만 명인데, 그 두 배 규모의 초고령자가 우리 사회에 공존하게 되는 것이죠. 이들을 어떻게 재구조화된 시스템 안에서 수용할지 지금부터 설계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박: 90세 이상이 200만 명이라니 놀랍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단순히 요양원에 누워만 계신다면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부담이 될 텐데요.
이: 그래서 '압축 유병률' 이론이 중요합니다. 수명이 연장되는 만큼 건강 수명도 따라잡아, 실제로 아픈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죠. 미국 메더 인스티튜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건강 수명을 단 1년만 연장해도 약 380억 달러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건강 장수는 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적 자산을 지키는 일입니다.
‘장수약’의 탄생과 사회 참여형 건강 전략
박: 최근에는 장수를 돕는 약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까?
이: 이미 후보 물질들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당뇨약으로 쓰이는 '메트포르민'이나 면역억제제인 '라파마이신' 등이 동물 실험에서 수명 연장 효과를 입증했고, 인체 실험 단계로 넘어가고 있죠. 앞으로 10년 내에 건강기능식품 수준이 아닌, 실제로 노화를 억제하는 '장수약'이 시장에 들어올 것으로 봅니다. 물론 과학의 발전 속도를 사회가 어느 정도의 윤리적 합의로 받아들일지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박: 약물도 중요하지만, 노인들이 사회적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 기능하게 하는 전략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 컬럼비아 대학의 린다 프리드 교수가 제창한 '에이징 인 플레이스'와 '경험 군단' 모델이 좋은 사례입니다. 단순히 "운동하세요, 술 끊으세요" 같은 지시형 건강 관리보다는, 어르신들에게 다음 세대와 교류할 수 있는 '미션'을 드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 물려주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즉 '제너레이티비티'를 자극하면 스스로 건강 관리를 더 잘하게 된다는 사실이 연구로 증명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료와 사회 시스템이 결합한 진정한 의미의 건강 장수 전략입니다.

“두더지 잡기식 질병 관리 그만, 이젠 땅굴을 없애야”
박: 우리가 지은 사회보장이라는 집이 수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앞서 나눴는데, 특히 의료 현장에서 노인들이 겪는 비효율도 심각합니다. 한 사람이 고혈압, 당뇨, 관절염 등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는 경우가 태반인데 정작 관리는 과별로 따로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이: 정확한 지적입니다. 현재 우리 시스템은 고혈압, 당뇨, 암 등 개별 질환별로 예산을 따로 받아 각각 관리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고령층으로 갈수록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는 ‘다중이환’이 일반적이죠. 만성질환이 발생하는 기전은 염증이나 에너지 대사 이상 등 공통적인 분모가 많습니다. 튀어나오는 두더지만 잡을 것이 아니라, 밑바탕에 있는 땅굴 자체를 없애는 통합 관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박: 그런 통합 모델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우리 의료 환경은 여전히 수가 체계나 전문의 분과 중심이라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다중이환 관리 전략을 구조화하여 인력과 시설, 거버넌스를 통합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환자의 전체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필요한 진료를 연결해 주는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케어 코디네이션 센터 같은 매개체가 병원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연구 사업으로 시도해 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확인되었습니다.
박: 병원 밖 지역사회 현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특히 보건소의 역할이 기존의 취약계층 방문 간호 수준을 넘어 확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작년부터 질병관리청 주도로 지역사회 중심의 노쇠 예방 관리 사업이 전개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강원도 평창군 보건의료원 모델이 주목받고 있는데, 노년내과 전문의들이 참여해 체계적인 코호트 연구와 효과성 평가를 기반으로 전국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는 전국 250개 시군구별로 노쇠 유병률 조사가 처음으로 시행될 계획입니다.
박: 노쇠가 단순히 나이 듦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기능 저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군요. 서울시의 ‘건강장수센터’ 같은 시도들도 결국 이런 흐름의 일환이겠네요. 치매안심센터가 자리를 잡은 것처럼, 이제는 그 기능을 확장해 통합적인 건강 장수 거점으로 진화시켜야 할 시점입니다.

골든타임, 올해 반드시 해야 할 일
박: 최근 건설사나 테크 기업들이 시니어 하우징이나 헬스케어 서비스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 시장의 열기도 뜨겁습니다. 하지만 고액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일부 부유층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 싱가포르의 경우 국립대학(NUS) 주도로 장수 의료를 국가 전략으로 밀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검증된 근거를 바탕으로 웰니스 클리닉이나 고압산소 치료 같은 혁신적인 시도들이 비급여 시장에서부터 활발해지고 있죠. 중요한 것은 이런 혁신적인 모델들이 근거를 쌓아 보건소 등 공공 영역을 통해 보편적인 서비스로 확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박: 우리가 대화 나눈 이 5년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부와 지자체, 산업계가 각자의 위치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 등 전체적인 법 구조를 ‘재건축’ 수준으로 조정하는 작업이 올해 안에 착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한국노년학회도 2026년을 초고령사회 돌봄 원년으로 삼고 학술적 뒷받침에 총력을 다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컨트롤 타워를 명확히 세워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어야 하고, 지자체는 보건소를 중심으로 지역 맞춤형 노쇠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의료계는 질병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진료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산업계는 노인들이 당당한 소비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박: 결국 우리가 설계하는 것은 노인들만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대한민국 시스템 전체의 재건축입니다. 오늘 나눈 이 주제들이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반드시 포함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길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