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는 올해 85세이고, 2년 전 치매를 진단받으셨습니다. 지금은 친정어머니가 병원에 입원 중이셔서 맏딸인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비교적 온순한 편이고 데이케어센터도 잘 다니고 계십니다. 그런데 장마철만 되면 비가 오기 전부터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집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시고, 정신도 눈빛도 흐려지세요. 밖에서 비를 맞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치매로 아픈 분들은 원래 다 그런 건가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고 싶습니다.

친정어머니까지 편찮으신 상황에 따님 혼자 아버지를 돌보고 계시는군요. 장마철이 다가오면 많은 치매 가족이 긴장합니다. 평소보다 돌봄이 훨씬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치매로 아픈 분들의 잠이 늘거나 낮과 밤이 뒤바뀌고, 식욕이 떨어지거나 기억력이 흐려지기도 합니다. 피로감·관절통·두통·불안·초조·혼란·거부·반복 같은 증상이 갑자기 심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보호자들 사이에서는 “비가 오면 그분이 오신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학문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기상 민감성’이라고 부릅니다. 오래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어져 왔습니다. 저기압과 치매 증상의 인과관계는 아직 정확하게 입증되지 않았지만 몇 가지 가설은 있습니다. 첫째, 생체시계 교란입니다. 흐린 날씨가 계속되면 햇빛 노출이 줄고 실내 생활이 늘면서 멜라토닌 분비와 수면 리듬에 영향을 미칩니다. 둘째, 자율신경계와 뇌혈류 조절에 부담을 줍니다. 자율신경은 혈압, 호흡, 체온 같은 기능을 쉼 없이 조절합니다. 그런데 기압 변화로 환경 스트레스가 커지면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뇌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특히 장마철에는 습도가 급격히 올라 실내 적정 습도인 40~60%보다 더 습해져 불쾌감이 커지고 체온조절이 힘들고 세균 증식이 쉬워집니다. 건조해지면 피부와 점막이 마르면서 가려움증, 입 마름, 감기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상 환경은 보호자에게도 영향을 미쳐 평소보다 돌봄이 훨씬 더 버겁게 느껴집니다. 장마철을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다음의 3가지를 실천해보세요.
첫째, 미리 대비하세요.
저기압이 오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은 예측 가능합니다. 일기예보에서 장마나 저기압 소식이 들리면, 그 시기를 ‘집중 돌봄 기간’이라고 생각하세요. 일정을 줄이고, 상비약이나 필요한 물품도 준비해두면 덜 당황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보호자의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니 너무 지치면 아주 잠깐이라도 쉬세요. 커피 한잔의 여유라도 도움이 됩니다.
둘째, 실내 습도를 관리하세요.
기압은 바꿀 수 없지만 실내 환경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조명으로 집 안을 밝게 유지하고 꼭 온습도계를 사용하시길 권합니다. 같은 집 안에서도 방 위치나 환기 상태에 따라 습도가 다를 수 있어요. 요즘은 저렴한 온습도계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데 에어컨·제습기·보일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셋째, 불편함을 공감해주세요.
보호자 역시 예민해지는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왜 이러세요?”, “엄살 부리지 마세요” 같은 뾰족한 말을 하면 아버지에게 상처가 됩니다. 치매로 아픈 분들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은 엄살이 아닙니다. “두통으로 힘드시군요”, “오늘은 조금만 더 쉬세요” 하고 공감해주세요. 체온을 재보고, 찬 수건을 이마에 올려드리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작은 행동이 진심을 전달하는 수단이 됩니다.
저 또한 장마철을 힘겹게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70대 후반에 대추나무를 손보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어깨·손목·다리를 크게 다치셨습니다. 여러 차례 수술과 긴 재활 끝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됐지만 통증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아프다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어요. 몇 년 뒤 통증의학과에서 진료받을 때, 의사 선생님은 그때 다친 부위를 가리키며 “상당한 통증이 계속될 텐데 어떻게 약 없이 버티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최근에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했더니, 치매로 인해 통증 전달이나 뇌의 지각 기능이 둔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어쩌면 치매의 축복일 수도 있겠다”고 표현하시더군요.
그런데 저기압이 심하게 드리우는 날이면 그 ‘축복’이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묻어두었던 통증을 온몸으로 느끼시는 듯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집 안 환경을 최대한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에어컨과 제습기를 사용해 습도를 50% 정도로 유지하고, 아버지가 가장 편안해하는 24℃로 온도를 맞췄습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다 보니 저도 아버지도 조금씩 ‘장마철 돌봄 모드’에 적응하게 됐습니다.
날씨는 인간이 바꿀 수 없는 자연의 영역입니다. 보호자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사람이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곁에서 함께 기다려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온습도계·에어컨·제습기와 함께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보세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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