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를 내고 경북 울진으로 향한 목적은 단 하나. 오로지 덕구온천 때문이었다. 덕구온천은 우리나라 유일의 자연 용출수 온천이라는 독보적인 타이틀을 갖고 있다. 농어촌 무료 버스를 타고 욕장을 찾은 어르신들이 정겨웠다. 주말에는 ‘목욕마켓’을 찾았다. 업계에서 떠오르는 업체와 셀럽, 전시가 모인 행사다. 사우나의 매력에 흠뻑 빠진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지금, 목욕 문화가 웰니스의 중심에 있다.
‘온천수저’가 겪어온 사우나 유행
우리나라 여러 온천 설화에는 상처 입은 동물이 뜨거운 샘물에 몸을 담근 뒤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온천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병을 다스리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 온천에 행차하거나 인근에 행궁을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온천욕은 오래전부터 몸을 씻는 일을 넘어 치료와 요양, 건강관리를 위한 생활의 지혜였던 셈이다.
굳이 따지자면 기자는 ‘온천수저’다. 온천수를 개발하던 아버지는 현장에서 ‘좋은’ 물을 만나면 말통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리고는 식기 전에 몸을 담그라고 성화였다. 수십·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온 물이 그 애정만큼 뜨거웠다. 유명한 온천이 있는 곳이면 “아빠가 물 퍼 올린 곳이다”라는 말도 제법 들었다.
동네에는 ‘장미탕’이 있었다. 큰집 언니들과 냉탕에서 놀다 불려 나오면 피부가 벌게질 때까지 때밀이 수건에 붙잡혀 있었다. 그걸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큰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목욕탕은 주민들의 위생을 지키는 방어선이자 주말의 루틴이었다.
그러다 찜질방 열풍이 불었다. 24시간 찜질방에서 가족끼리 밤을 새우거나 외국인 친구를 데려가기도 했다. 기차 여행 패스 ‘내일로’가 처음 나왔을 때는 숙박비를 아끼려고 타 지역 찜질방에서 잤다. 찜질방은 목욕탕을 넘어 먹고 쉬고 머무는 복합 휴식 공간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잡지 마감 때마다 며칠씩 집에 못 가고 사무실에서 살았다. 지금은 사라진 학동역 인근 사우나에서 씻고 나오면 그나마 사람 꼴이 됐다.
코로나19가 성행할 때는 동네에 핀란드식 1인 사우나가 생겼다. 시설은 근사했지만 2시간 안에 사우나와 탕욕, 세신까지 하려니 여유가 없었다. 결국 건식 반신욕기를 샀다. 그래도 아쉬울 땐 바이러스마저 타 죽을 듯 뜨거운 한증막을 찾았고, 함평에서 유명한 해수찜질이 인천에 생겼다는 소식에 친구들을 데려가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튀르키예에서는 ‘하맘’을, 미국 뉴저지에서는 한국식 찜질방을 경험하는 스파를 찾았다. 대만에서는 프라이빗 온천을, 일본 도쿄에서는 동네 목욕탕 ‘센토’를 여행 코스에 넣었다.
아파트 커뮤니티에 사우나가 들어오는 시대까지 살면서 쌓인 에피소드도 많아졌다. 목욕 문화에서 멀어지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낯선 단어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우나런, 토토노이, 외기욕, 소셜 사우나 같은 말이다.
웰니스(Wellness,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상태)의 중심에 사우나가 들어서며 우리의 목욕 문화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회복 과정이고, 누군가에게는 스마트 기기에서 벗어나는 디지털 디톡스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타인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

한국 목욕 문화에 이런 모습이?
최근 젊은 세대는 목욕과 사우나를 단순한 위생이나 건강관리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각을 회복하는 웰니스 활동으로 받아들인다. 러닝·차·음악·전시·커뮤니티와 결합하면서 목욕은 혼자 쉬는 시간을 넘어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는 힐링 문화로 형태를 바꾸고 있다.
5월 29일과 30일 로얄앤코・‘갤러리로얄’에서 열린 ‘목욕마켓’은 목욕과 사우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마켓이다. 이틀간 3000여 명을 모은 이 행사는 단순한 제품 판매장이 아니라 사우나 리뷰어, 목욕 콘텐츠 기획자, 보디 케어 브랜드, 식음료 브랜드가 모여 ‘요즘 목욕 문화’를 보여준 현장이었다. 이제 목욕은 취향과 회복, 감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시 ‘목욕탕 해부학 : BUSAN’은 부산의 목욕탕을 역사·구조·물·하드웨어·운영자·커뮤니티의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부산의 목욕 문화는 온천에서 출발해 도시의 성장과 함께 확장했다. 그 배경을 온천과 항구도시의 역사, 일본 목욕 문화 유입, 도시 주거 환경, 산업화와 노동의 피로에서 찾는다.
또 이태리타월, 자동 등밀이 기계, 목욕탕 굴뚝, 세신 문화처럼 한국인이 목욕탕을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요소들이 부산의 목욕 문화와 연결된다. 목욕탕은 단지 물을 데우는 시설이 아니라 생활을 둘러싼 도구와 동선, 기술과 습관이 모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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