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변희봉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변희봉은 췌장암이 재발해 투병한 끝에 18일 사망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변희봉은 앞서 지난 2018년 방송된 tvN ‘나 이거 참’에서 “지난해 ‘미스터 션샤인’ 캐스팅 요청을 받으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때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며, 이후 관리를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밝힌 바 있다.
변희봉은 1963년 DBS 동아방송 성우 1기로 데뷔했으며, 이후 1966년 MBC 2기 공채 성우로 이적했다. 1970년 MBC 드라마 '홍콩 101번지'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드라마 ‘욕망’ ‘질주’ ‘1%의 어떤 것’ ‘늑대’ ‘위대한 유산’ ‘하얀거탑’ ‘공부의 신’ ‘울랄라 부부’ ‘오로라 공주’ ‘불어라 미풍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또한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에 그는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렸다.
변희봉은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로 제21회 백상예술대회 TV부문 인기상을 받았으며, 영화 ‘괴물’로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대중문화 각계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발인은 오는 20일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저는 주인공이었던 적도, 멜로 연기를 한 적도 없어요.” 켜켜이 쌓은 필모그래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베테랑 배우 윤유선(54)의 고백이다. 주연을 맡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아쉬움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일터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윤유선은 사실 그만의 ‘행복한 인생’ 속 주인공이다.
일곱 살 때 영화 ‘만나야 할 사람’으로 데뷔한 윤유선은 48년간 ‘배우’라는 명함을 달고 있다. 배우로서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는 아역에서 성인 배우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보통의 배우들처럼 당시 윤유선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은 무엇인지, 어떤 연기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20대 때 이런 일도 겪었다. 윤유선은 미니시리즈 주인공으로 발탁됐는데, 맡은 역할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런데 대본 리딩을 마친 후 다른 배우로 캐스팅이 교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작진은 윤유선이 역할을 소화하기에 통통하다고 생각했고, 교체를 강행했다.
윤유선은 한동안 힘들었지만, 금세 긍정적인 사고회로를 돌렸다. “그 배우가 그 역할을 정말 잘 소화했고, 나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그리고 저도 혹독한 관리를 못 한 부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후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더불어 48년의 롱런 비결에 대해 “욕심이 많지 않았던 게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다”고 겸손한 발언을 했다.
“물론 욕심을 내서 일을 더 열심히 했으면 지금보다 더 잘 됐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온 힘을 쏟지 않아서 지치지 않았고, 즐기면서 일한 덕분에 지금까지 배우로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하는 게 재밌어요. 일을 오래 하는데 재미를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지금 이렇게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감사함을 많이 느껴요. 그리고 저는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완벽을 기대하면서 살면 너무 힘들죠. 여러분도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웃으며 살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침에 날씨가 맑고 상쾌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하하.”
흑백 영화에서 OTT까지
“제가 아역 배우였을 때는 영화 촬영을 지금처럼 필름이 아닌 테이프로 하던 시절이었어요. 당연히 흑백 영화였고, 후시녹음(촬영이 끝나고 주로 성우가 대사를 녹음)을 했죠.” 예쁜 아이였던 윤유선은 이모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다. 아역 배우 시절의 촬영 환경을 묻자 과거의 추억을 신나서 쏟아놓는다. 거의 50년, 변화무쌍한 일터를 변함없이 지킨 베테랑 배우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윤유선은 특히 2000년대, 2010년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였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MBC ‘궁’,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꼽았다. 그는 자신만의 작품 선택 기준이 있었는데, 출연작을 돌아보니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일단 개연성 없는 막장은 싫어해요. 그리고 어두운 범죄 스릴러 작품도 피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인 성향상 잘 만든 작품이라 하더라도 너무 어둡고 잔인하면 시청 후 며칠은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저처럼 대중예술 작품에 영향을 받는 분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죠. 그래서 가능하면 밝고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은 그동안의 작품과 결이 조금 달라 보인다. ‘사냥개들’은 사채업의 세계에 휘말린 두 청년이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윤유선은 “범죄물이라기보다는 액션물에 가깝고, 주인공들의 서사가 순수한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배우 우도환과의 인연으로 ‘사냥개들’ 출연이 성사됐다. OCN ‘구해줘’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우도환은 ‘사냥개들’에서 엄마 역할을 꼭 윤유선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작진에게 요청했단다. 이렇게 해서 윤유선은 ‘사냥개들’로 OTT 드라마에 진출하게 됐다. 극 중 그가 연기한 김건우(우도환 역)의 어머니는 가난한 삶 속에 아들을 키운 인물로, 아들이 악의 무리와 싸우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사전 제작 드라마이고, 또 감독님께서 영화감독이셨기 때문에 촬영 당시 영화를 찍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특히 내추럴한 모습을 원하셔서 화장을 전혀 안 하기도 했어요. 가난한 역할을 이전에도 연기했지만, 이렇게까지 화장을 안 한 적은 처음이에요. 어쨌거나 저한테도 새로운 모습에 도전한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보다 도환이가 그 추운 겨울에 액션 신을 찍느라 고생을 정말 많이 했죠. 나이는 어리지만 친구 같기도 하고, 저보다 큰 어른 같기도 하고,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
국민 엄마 그리고 진짜 남매 엄마
윤유선에게는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주연 제안이 안 들어오자 그는 하나의 돌파구로 엄마 연기를 맡기 시작했다. 20대 중반의 이른 나이부터였으니 엄마 연기 경력만 30년이 넘었다. 주지훈, 최우식, 이종석, 김고은 등이 아들과 딸로 그를 거쳐갔다. 열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이진욱과 모자(母子) 호흡을 펼친 적도 있다. 윤유선은 “결혼을 하고 진짜 엄마가 된 후 연기를 하면서 공감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JTBC ‘맏이’에서 엄마 연기를 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헌신하고 희생하는 어머니였는데,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죠. MBC ‘짝패’에서는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였는데, 공감되는 포인트가 있더라고요. 사실 엄마도 사람인데 좋을 때도 있지만 실수할 때도 있고, 화를 낼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 역할을 연기하면서 공감되는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윤유선은 실제로 어떤 엄마일까. 그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윤유선은 “애들이 벌써 성인이다. 육아를 거의 끝내놓고 보니 아이들한테 더 잘 해줄걸, 좀 더 시간을 보낼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많이 못 봐줬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상한 성격의 남편이 아이들과 더 잘 놀아주고 육아를 열심히 해줬다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윤유선의 남편은 이성호 판사로, 두 사람은 2001년 결혼했다. 윤유선과 이성호 판사는 만난 지 100일이 안 돼 결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윤유선은 “남편이 계속 자기가 나와 결혼해준 거라고 말한다”면서 “까다로울 때도, 허당스러울 때도 있는 저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더라”라고 말했다.
“제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은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거예요. 인내심이 많고 배려를 엄청 많이 해줘요. 직업을 생각하면 딱딱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굉장히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에요. 아이들한테도 엄청 좋은 아빠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남편과 아이들과 화목한 일상을 보낼 수 있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나이 듦 두려움 없어
윤유선은 2017년 11년 만에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출연했고, 그때부터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는 연극의 매력에 대해 “아이들도 다 컸고, 무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무대의 장점은 한 작품을 오래 연습하고 고민한다는 점인 것 같다. 매체 연기만 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으니까 다양한 연기를 해보는 거다. 한 장르만 고집하는 것은 편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윤유선은 2020년부터 연극 ‘친정 엄마와 2박 3일’로 무대를 해왔다. 엄마 역의 강부자가 직접 출연을 요청해 함께하고 있다. 1977년 TBC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을 이어온 케미스트리를 무대에서 자랑하고 있다. 사실 윤유선은 강부자 외에도 선배 배우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김영옥과도 각별한 사이다.
“강부자 선생님은 진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에요. 똑같은 대사인데 무대에 설 때마다 다 다른 느낌이 들어요. 선배님과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제게는 감동이에요. 김영옥 선생님은 정말 지혜로우신 분이에요. 일과 가정, 삶의 밸런스가 좋아서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또 매번 진심으로 애정을 담아 조언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느껴요.”
윤유선은 앞으로도 연기 생활을 이어가며 선배 배우들을 닮아가고 싶다. 그는 “예전에 ‘바람은 불어도’(1995년)라는 드라마를 할 때도 ‘지팡이 짚을 때까지 연기할 거야’라고 말했었다. 이제는 농담이 아니고 진심이다. 연기가 더 재밌어졌으니까”라고 말했다. 아역에서 성인 배우, 중년 배우로 성장의 시간을 보낸 윤유선은 새롭게 시작될 미래도 기대하고 있다.
“가끔 동안이라고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저는 열심히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로서 늙는 게 두렵지 않아요. 나이에 맞는 역할과 연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50대 중반은 엄마로서, 여자로서, 성숙한 어른으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 같아요. 그 나이의 고민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할 기회가 오면 좋겠죠. 그리고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선생님들한테 사랑받은 만큼 후배들한테 돌려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 혹은 배우가 한국 땅을 밟기 위해서는 성우 배한성(78)의 목소리를 거쳐야 했다. 가제트나 맥가이버, 콜롬보 외에도 영화 ‘아마데우스’(1985)의 모차르트, ‘대부’ 3부작의 주연 배우 알 파치노, 배우 더스틴 호프먼, 로버트 레드포드, 성룡 등. 1966년 동양방송(TBC) 2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그는 목소리로 시대를 제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에서 듣던 것과 똑같다고요? 그러면 출연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름 석 자만으로 생김새를 떠올리고, 대표적인 대사까지 읊을 수 있는 성우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목소리가 곧 명함인 성우 중 배한성은 독보적이다. 가제트, 맥가이버, 형사 콜롬보. 세대에 따라 기억하는 목소리는 다르지만 모두 배한성 성우가 소화해 새롭게 탄생시킨 배역들이다. 성우로 활약한 시간만 어언 56년이지만, 그는 추억 속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여전히 재치 있고 엉뚱했다.
‘타고난 배우’의 철학
그가 애니메이션과 외화 판을 호령하던 시절에는 제작사 측에서 직접 성우들을 만나곤 했다. 성우의 연기와 원작의 결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과정을 통과해야 성공적으로 더빙 작업을 거쳐 방영할 수 있었다. 제작사가 특히 신경 쓰는 작품은 감독이 직접 찾아와 성우의 연기를 듣고 판단하기도 했다. 외국인 감독이 까탈스럽게 구는 경우가 많아 더빙 자체를 포기하는 성우도 더러 있었다. 애니메이션 ‘컴퓨터 형사 가제트’(1987)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그는 나름대로 연구한 코맹맹이 목소리의 가제트를 감독 앞에서 선보였다. 결과는 불합격. ‘가제트 형사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당신과 가제트 형사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통역사한테 잘 전해달라고 부탁하고서 감독에게 말했어요. ‘프랑스 말은 한국어와 어감이 다르다. 프랑스어의 뭉실뭉실한 어감만을 살리기 위해 부드러운 말씨로 연기한다면 가제트라는 인물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요. 감독이 잠자코 듣더니 연기를 다시 해보라고 하더군요. 준비해온 연기를 다시 하니까 그제야 ‘당신의 연기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라면서 OK 사인을 줬어요. 그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감독이 한마디 하더군요. ‘You are born to be an actor.’(당신은 타고난 배우군요.)”
감독의 지시, 원작에 구현된 인물만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연기할 줄도 알아야 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영화광이었으며 영화배우를 꿈꿨던 그로서는 칭찬이 남다르게 느껴졌을 터. 더불어 애니메이션이 국민적 인기를 얻으면서 세대를 불문하고 만능 로봇팔을 꺼내던 가제트의 목소리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최애’(가장 애정하는) 인물은 동양방송(TBC)에서 방영한 ‘야망의 계절’(1978)과 ‘태양의 계절’(1979)의 주인공 루디 조다쉬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떠올리는 작품이나 인물은 아니다.
고개를 갸웃할 수 있으나 그로서는 명분이 충분하다. 데뷔 후 장편 영화 시리즈의 주연을 처음 맡은 작품으로,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기 때문. 게다가 소설가 강유일의 한줄평은 신인 성우의 심금을 울렸다. ‘보통의 외국 영화들은 더빙 성우가 외국 배우의 덕을 보는데, ‘야망의 계절’과 ‘태양의 계절’은 피터 스트라우스(루디 조다쉬 역)가 배한성의 더빙 덕을 봤다.’ 그 뒤로도 몇십 년째 성우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이상 가슴 뛰고 뿌듯한 평가를 받아본 적은 없단다. 수많은 배역 중 루디 조다쉬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음성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어수룩한 코맹맹이 형사(드라마 ‘형사 콜롬보’)부터 기괴한 웃음소리의 천재 음악가(영화 ‘아마데우스’), 가업을 멀리하려다 결국 비정한 대부가 되어버리는 남자(영화 ‘대부’), 무저항 독립운동으로 인도의 국부로 추앙받는 간디(영화 ‘간디’)까지. 이외에도 특별히 애정하는 배역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작품을 소화해냈다. 그는 이 모든 역할을 다 다르게 연기해냈다고 자부한다. 당연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임하는 성우는 흔치 않다. 그런 그를 보며 친구들은 ‘배한성은 예나 지금이나 배극성이다. 아직도 극성을 떤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란다.
“가제트는 가제트대로, 모차르트는 모차르트대로, 베토벤은 또 베토벤대로 다르게 연기를 해야 해요. 배우는 같아도 다른 영화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면 그에 맞게 새로운 목소리를 내야 하고요. 모니터링을 하고 계속 연구해야 하니 사실 나 스스로는 좀 고단했지요. 하지만 이만큼 다양한 인물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잖아요. 더빙이 단순한 녹음이 아니라 대중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책임감을 갖고 임할 수밖에 없지요.”
‘배극성’의 더러운 대본과 골동품
흥미와 목표를 향한 ‘극성’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는 돈이 없어도 담치기를 해서 초등학생 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57)를 세 번이나 봤을 정도다. 장래 희망을 영화배우에서 성우로 수정한 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성우 시험을 봤다. 고졸자 이상만 응시할 수 있어 육촌 형 졸업장까지 빌렸다고. 지금 생각하면 엉뚱하기 그지없는 행동인데, 당시의 그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채 시험장에 들어섰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바람에 크게 실망했지만, 성우를 향한 열정을 해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정도가 더욱 심해졌어요. 당시엔 데모도 많고 거리에 대자보나 성명서가 많이 붙어 있었는데, 지나가다 벽보에서 ‘목소리 성’(聲) 자만 봐도 성우 생각이 나서 미친놈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아직도 후배들에게 ‘성우 일을 하려면 이 정도로 미쳐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 말고는 글자만 봐도 가슴이 뛸 정도로 미쳐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그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인데, 성우라는 일 자체에 미쳐서 살았던 성우 배한성을 대변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영화 더빙을 앞두면 영화 원본 테이프와 대본을 미리 받아와 눈이 빠지도록 봤다. 인물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내 대본에 적어두기 위함이다. 어찌나 메모를 많이 했던지 방송가에선 배한성의 대본이 더럽기로 유명할 정도였다.
당시 번역 작가가 적은 외화 대본에는 대사만 적혀 있을 뿐, 주인공이 어떤 표정으로 무슨 행동을 하며 대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반면 그의 연기에는 주인공이 애인을 기다리며 동동거리는 발끝, 고민할 때마다 입맛 다시는 습관 같은 작은 요소들이 녹아 있다. 지저분한 대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국인 배우 속에 한국인이 들어앉은 것 같다’는 호평을 듣는 비결이다.
그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데에는 취미도 한몫 거든다. 고미술품, 고가구나 올드카를 수집하면서 빚어진 미적 감각이 연기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노년에 친구로 두면 좋은 직업인 중 하나로 골동품 수집가를 꼽습니다. 미적 감각이 살아나니 삶이 풍부해져서 지루하지 않고 좋다는 거죠. 저 역시 오래전부터 골동품에 관심을 갖고 수집한 덕에 연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급스러운 배역, 고급 배우의 연기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심미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둘 다 중년 남성이라도 동네 아저씨나 한 나라의 수상 혹은 왕족을 연기할 때는 분명 다르게 표현해야 하지 않겠어요?”
즐거운 빚을 갚기 위하여
요즘 그는 일주일에 두어 번 녹음을 한다. 그 외에 들어오는 제안은 최대한 후배들에게 넘기는 편이다. 이제는 나이가 있고, 한창 활동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스케줄이 적으니 한가하게 사는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외부 강연도 쉬지 않고 나가고, 건강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틈틈이 책을 읽는다.
기존에 하던 경영 공부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시 정지된 상태다.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이제 그는 새로운 걸 벌이는 대신 벌여놓은 것을 잘 정리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그중 하나는 ‘우리말 더빙 법제화’다. 한국성우협회의 이연희 이사장이 물꼬를 튼 것인데, 인터뷰한 당일 저녁에도 송도영, 송도순 등 유명 원로 성우와 관련 미팅 일정이 잡혀 있을 만큼 활발히 논의 중이다. 성우들 주머니만 채우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요즘은 영화를 수입해도 제작비를 줄이려고 번역 자막만 달아요. 자막 작업이 성우를 고용해서 더빙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드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눈으로 보는 대신 귀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시각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노화로 인해 시력이 나빠졌을 수도 있지요. 시각장애인에 노인 인구까지 합치면 그 수가 천만 명은 된다고 해요. 그래서 영상 콘텐츠를 만들 때는 더빙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기 위해 대한노인협회나 시각장애인연합회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성우로서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방법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언해피’한 시대를 살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선배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 성우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혜택을 누린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의 전성기는 라디오 드라마와 TV 외화 시리즈가 일반인이 누릴 수 있는 오락거리의 전부였던 시절과 겹친다. 남다른 노력과 재능이 없었다면 지금의 스타 성우 배한성도 없었겠지만, 오디오 콘텐츠가 수많은 오락거리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 오늘날에 비하면 좋은 시절을 누린 것도 맞다. 후배들의 앞날과 성우라는 직업의 미래를 위해, 그는 마음에 진 ‘즐거운 빚’을 갚고 있다.
배한성 성우는 예나 지금이나 지루하게 멍때리는 시간이 아깝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 외부 강연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은 바를 알려주기도 한다. 역시나 메모해뒀던 글귀를 자주 활용하는데, 노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老인도, no인도 아닌 know인이 되겠다’는 문구를 꼭 인용한다. 그러면서 나이가 든다고 해서 머리나 몸을 편하게 두지 말고 계속 공부하며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의 생애 내내 그러했듯, 솔선수범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다짐이자 조언이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한 제자가 ‘이제는 나이를 먹었으니 쉬엄쉬엄 사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자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는데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천천히 가거나 멈추면 되겠냐’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젊을 때처럼 신기록을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생산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매사 고민하고 공부하며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 아닐까요?”
이야기를 좋아해 그 속에 푹 묻혀 살았다. 동네 사랑방, 길쌈하는 여인들 틈바구니 비집으며 이야기 구슬들을 집어 담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다듬고 정리해 하나씩 쓸모 있게 만들기 시작했다. 구슬은 서 말이라도 꿰어야 장신구가 되듯이, 최상식(77) PD의 손에서 잘 꿰어진 고향의 전설들은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되었다.
최상식 PD는 1971년 서울중앙방송(현 KBS)에 PD로 입사했다. 1976년부터 1994년까지는 TV드라마 PD로서 ‘전설의 고향’(1977~1989), ‘보통사람들’(1982~1984), ‘춘향전’(1994) 등을 연출했다. 이후 KBS 드라마 제작주간으로 ‘젊은이의 양지’(1995), ‘첫사랑’(1996~1997), ‘태조왕건’(2000~2002), ‘겨울연가’(2002) 등을 기획 및 제작했다. 2002년 퇴사한 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원장, 미디어공연영상대학 학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유튜브 채널 ‘최상식 PD와 송도영 성우의 전설의 고향’을 운영하며 전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있다.
‘촌스러운’ 캐릭터의 창시자
최상식 PD의 이름 밑으로는 제목만 봐도 OST가 귀에 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들이 빼곡하다. 그는 시청률 공식 집계 이래 대한민국 모든 프로그램을 통틀어 역대 최고 시청률인 65.8%를 기록한 KBS 2TV 주말 연속극 ‘첫사랑’의 책임 프로듀서다. 491회로 최장수 일일 연속극 기록을 보유한 ‘보통사람들’의 책임 프로듀서이며, 김희선, 배종옥, 배용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발굴해냈다. 그러나 그를 만난 사람들은 ‘전설의 고향’부터 떠올린다.
“1976년부터 드라마 PD로 일했어요. 1977년 10월에 시작한 ‘전설의 고향’은 PD로서 영글기 전에 만들었던 프로그램이죠. 저 스스로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잖아 있어요. 그래서 저는 대표작으로 ‘전설의 고향’보다는 ‘보통사람들’을 꼽곤 하는데, 워낙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최 아무개 하면 ‘전설의 고향’부터 떠오르는 모양이에요.”
지금도 ‘납량 특집 드라마’의 대명사로 여겨지지만, 당시 파급력은 더욱 대단했다. TV 있는 집이라면 안 본 집이 없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전설의 고향’이 전파를 탄 다음 날이면 온통 전설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12년 동안 프로그램을 제작한 불세출의 연출가임에도,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좋아할 만한 ‘전설’이란 소재 덕분에 인기 있었던 것이라며 겸손을 보인다.
마산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전설의 고향’ 역시 그가 유년 시절 접한 수많은 이야기들로부터 탄생했다. PD가 된 그는 연출자로서 어떤 점을 내세워야 성공할지 고심했고, 그동안 모아둔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야기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KBS에서 TV 드라마 방영을 시작한 지 10년이 막 지나던 즈음이었다. CG는커녕 촬영한 영상에 효과음을 넣는 편집 작업조차 다른 세상 이야기이던 시절, ‘전설 속 요괴와 귀신을 어떻게 구현하려고 하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우려였다.
하지만 그는 제작을 밀어붙였다. 쑥을 태워 스튜디오에 연기를 자욱하게 내고, 시골 초가집을 표현하기 위해 스튜디오 바닥에 지푸라기를 잔뜩 가져다 깔았다. 물뿌리개로 카메라 렌즈 앞에서 물을 뿌려 비 오는 날씨를 연출했고,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뱀이나 구렁이를 직접 섭외(?)해 스튜디오에 풀기도 했다. 게다가 리얼함을 추구하는 연출자였던 그는 출연 배우에게 어떤 장치가 설치돼 있는지 미리 안내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덕분에 촬영 중 실제로 울음을 터뜨리는 배우도 있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인 촬영 현장에서 생고생을 해야 하니, 배우고 제작진이고 ‘전설의 고향’ 참여를 원치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행히 고생한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프로그램을 크게 흥행시킨 것 말고도 구미호나 저승사자를 한국 납량물의 대표 캐릭터로 정립한 까닭이다. 하얀 소복과 하얗게 센 머리, 희고 큰 꼬리 아홉 개를 가진 구미호, 검은 갓과 검은 도포, 하얀 얼굴에 까만 입술의 저승사자. 이제는 당연하다 못해 자칫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최상식 PD가 고민 끝에 구현해낸 엄연한 창작물이다.
“저는 어릴 적에 여우 이야기를 많이 접했어요. 농한기인 겨울에는 사람들이 큰방에 모여서 새끼를 꼬면서 옛날이야기를 하곤 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한국에 여우가 굉장히 많았고, 주로 농사를 짓다 보니 소만큼 중요한 가축이 없었기 때문에 여우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았죠. 하지만 1979년 처음 에피소드를 제작할 때만 해도 구미호는 ‘남자 간 빼먹는 여우 같은 여자’ 같은 욕으로나 쓰였어요. 관련한 설화를 아는 사람도 얼마 없었죠. 그래서인지 반응이 좋을 줄 전혀 몰랐습니다. 저를 포함한 제작진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했어요.”
1대 구미호를 연기한 배우 한혜숙은 길에 나서면 아이들이 ‘구미호 나타났다’며 돌을 던졌다. 방송 잘 보고 있다는 전화가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걸려오기도 했다. ‘전설의 고향’ 출연 섭외와 프로그램의 인기는 반비례했지만, 구미호만큼은 예외였다. 구미호로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이름 날리는 데 성공하면서 방송가에는 ‘여우 귀신이 도와줘 스타가 된다’는 소문까지 생겼다.
미래 콘텐츠 찾아 헤매는 이야기꾼
그의 취재 과정은 학자의 연구를 방불케 한다. 서재와 작업실, 거실을 가득 채운 책들과 고서, 그림 등 고문헌을 뒤지고, 취재하다 만난 동네 주민들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 기도 한다. 전설을 발견하면 현장에 직접 가서 증거물이 실제로 있는지, 전설에 등장하는 지역과 그 근방을 샅샅이 뒤진다. 이제는 동네의 오랜 전설을 아는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신 탓에 지역 주민이라도 전설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네 여인 전설이 있는 서울 남산 부엉바위 약수터도 찾기 힘들었어요. 조사해보면 해방 전까지 한양, 경기 일대 최고의 약수터로 꼽혀서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해요. 그런데 남산을 아무리 오르내려도 전설에 등장하는 부엉바위 약수터는 없는 거예요. 2주일이 넘도록 찾다가 계단 난간을 넘고 가시덤불 밑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약수터가 있었어요. 하도 무당들이 찾아오니까 도시 정비를 하면서 그곳을 폐쇄해버렸던 거예요. 그러니 경비원도 주변 주민들도 전혀 몰랐던 거죠.”
그를 움직이는 건 사명감이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전국을 헤매며 현장의 영상을 담는 고생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1박 2일에 유튜브 방송 8~9회 분량을 취재하는 답사 일정이 점차 힘에 부친다. 그러나 그는 전설이 갖는 콘텐츠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만둘 수 없다. 한 가지 소재로 웹툰, TV 드라마, 뮤지컬, 영화까지 만드는 요즘이다. 전설이 빠지면 섭섭하다.
“전설은 이야기의 보물창고예요. 한국 사람들의 상상에서 나온,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구조의 이야기들이죠. 게다가 전설을 뜯어보면 당시 서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거나 서러워했는지, 무엇을 꿈꿨는지 알 수 있어요. 인간의 삶과 죽음, 한(恨)이나 정(情)이 한데 들어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소스가 또 있을까요.”
그는 올해 초 국제영화제에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으면서 이를 증명해냈다.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측으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은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 11부 ‘짐승’ 편의 정재은 영화감독이 ‘전설의 고향-이어도’(1979)를 동반 초청작으로 직접 추천했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과거 선배들의 업적이 재조명된다는 점이 의미 있다’, ‘함께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며 기뻐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소식을 접하곤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처음 후배들한테 연락을 받고서는 ‘그걸 창피해서 어떻게 내느냐’면서 손사래를 쳤어요. 장비도 마땅치 않았고 편집은 거의 불가능한데다 막 컬러 영상이 도입되던 시절에 만든 영상이니 요즘 나온 작품들에 비하면 얼마나 어설프겠어요. 하지만 영화제 측에서 유튜브에 올라온 리마스터링 영상을 확인했고, 충분히 좋다며 재차 요청해서 결국 출품하게 됐죠. 그때 제주도에 태풍이 와서 비바람 부는 밖에서 힘들게 촬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유튜브로 옮겨붙은 열정
열흘에 한 번, 10분 내외의 분량. 얼마든지 재탄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지난해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10대가 보지 않으면 유튜브로 성공할 수 없다’, ‘이미 야사나 민담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너무 많아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등 대부분이 만류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제작을 밀어붙였다. 배우를 쓰는 대신 연필을 들었다. 직접 그린 삽화와 촬영해온 현장 영상,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메텔 역 등을 맡았던 유명 성우이자 아내 송도영의 더빙 음성을 합하면 ‘가내수공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퀄리티의 영상이 탄생한다.
유튜브 채널 운영은 순탄한 편이다. 구독자도 7만 명을 훌쩍 넘겼고, 영상의 조회수 추이도 좋다. 올린 지 한 달 만에 조회수 110만 회를 넘긴 영상도 있다. 야심차게 기획한 어버이날 특집 ‘고비사막을 넘은 효자’ 영상 조회수가 정작 낮다는 점이 아쉽지만 아무렴 괜찮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밑그림 작업이다.
지난해 4월부터 여태 그린 그림만 1000장이 넘는다. 이쯤 하면 실력이 늘 법도 하건만, 현장에서 연출할 때도 배우의 표정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그는 직접 그린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이 마뜩찮아 애를 먹고 있다. ‘내가 남의 속에 들어앉는 게 아니고서야’ 맡길 수도 없는 일이라, 그는 오늘도 눈초리며 입 매무새를 그렸다 지우길 반복한다.
유튜브에는 과거 ‘전설의 고향’에서 다뤘던 전설과 새로운 전설에 대한 영상이 골고루 올라간다. 전설만 12년 넘도록 소개했지만 아직도 다루고 싶은 내용이 차고 넘친다. 일본에서 살았던, 살아야 했던 한국인들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지리적·역사적으로 우리와 연관이 깊은 나라예요. 이미 잘 알려진 귀무덤이나 코무덤 말고도 가야, 백제 때부터 임진왜란, 일제강점기까지 합치면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엄청날 거예요. 국내에서 다룰 전설도 많고 시간과 체력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다뤄보려 합니다. 실제로 일본에 갔을 때 작은 돌다리 간판석에 백제 관직과 이름이 새겨져 있거나, 얼굴 반절이 탄 채로 절 구석에 처박혀 있는 우리나라 불상을 많이 봤어요. 그런 유물, 지명에 담긴 정서와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은퇴 후 학생들 앞에 설 때도 좋았지만 무언가 부족했나 보다.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꿈을 종종 꿨다. 무언가 잘못돼서 촬영 전체가 어그러지는 꿈은 귀신 꿈보다 끔찍했다. 20년 가까이 그를 쫓아다니던 꿈은 지난해 유튜브 시작과 함께 멎었다. 천직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그가 소망하듯, 이야기꾼이 꿰어낸 보배는 길이길이 K-콘텐츠의 든든한 원형이 되어줄 것이다.
눈을 뜬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선 푹 자고 일어나 아침을 맞을 때 쓴다. 눈을 떠야만 하루치 인생이 시작되고, 눈을 감으면 막이 내리기 때문에. 이제껏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깨우쳤을 때도 눈을 떴다고 한다. 성우 서혜정(61)은 새롭게 눈뜨기를 즐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롭게 시작한 하루치 인생이 기대돼 좋고, 일상 속 소소하지만 빛나는 깨달음이 반가워 좋다. 화수분 같은 목소리 나누며 살겠다는 다짐에 성우라는 한 우물을 40년 파온 경력까지 합쳐지니 금상첨화다.
서혜정 성우는 1982년 KBS 공채 17기 성우로 일찍이 데뷔했다. 이후 1988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외화 시리즈 ‘엑스파일’(X-Files)의 데이나 스컬리 역, KBS ‘생로병사의 비밀’, tvN 예능 프로그램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의 내레이션 등을 맡으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원 성우과 겸임교수이자 서혜정낭독연구소 소장으로서 성우 지망생들을 만나고 있다.
양반 교육이 터준 성우의 길
‘국민 성우’의 될성부른 떡잎이 일찍이 보였던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는 양반가 핏줄인 어머니로부터 ‘양반 교육’을 받았다. “양반은 말을 빨리 하면 안 된다. 밥 먹을 때 소리 내서 말하면 안 되며, 식기 부딪히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서도 안 된다. 양반이란 걸을 때도 방정맞지 않게 걸어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셨어요. 일부러 하신 건 아니었지만 성우 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언어 훈련을 받았던 셈이죠.”
게다가 어릴 적 집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드라마는 그가 목소리에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라디오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던 아이는 자라서 방송반 활동을 하고, 서울예대 방송 경연대회에서 대상과 개인상을 따내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경연대회 입상은 수시 특별전형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는 무리 없이 서울예대에 입학했다.
그도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여느 새내기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5월에 성우 선배의 추천으로 시험 삼아 본 KBS 공채에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대학가요제도 나가고,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었던 꿈 많은 새내기는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휴학계를 내야 했다. 당시 KBS에 막 입사했을 때의 나이 스무 살. 동기 내에서도 여덟 살까지 차이가 났다. 막내 중의 막내였던 그는 어린 나이에도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한마디로 천방지축이었죠.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울기도 많이 울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이 차이도 상당했거니와 나는 이 일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하다, 고로 꾸지람 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선배들이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성우실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훈훈하고 따뜻했기 때문이기도 했죠. 혼낼 때도 끝에 가서는 꼭 안아주거나 밥을 사주셨어요.”
칭찬은 천재를 노력하게 만든다
고래를 춤추게 하는 칭찬은 막내 성우를 대성우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잘한다, 목소리 좋다’는 칭찬이 더 듣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무슨 배역을 맡아왔는지 기억도 못 할 만큼 가리지 않고 대본을 받아 들었다.
가장 애정 가는 배역은 뭐니 뭐니 해도 ‘엑스파일’의 스컬리다. ‘엑스파일’은 1994년 10월 31일부터 2002년 10월 26일까지 방영된 미국 드라마다. 한 인물을 10년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는 기회는 그때도 지금도 흔치 않기 때문에 애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컬리는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여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이성적이며 똑 부러지고 빈틈없는 과학자. 타고난 성격이 정반대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단다.
반면 덮어두고 싶은 ‘흑역사’도 있다. 1992년에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의 휘트니 휴스턴 역이 그렇다. 녹음을 앞두고 목을 쓰는 성우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감기에 걸리고 만 것. 수많은 스태프들이 더빙 작업을 위해 어렵게 맞춘 일정을 미룰 수 없어 녹음 부스로 향했지만, 결국 기대한 만큼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돌이켜봐도 여전히 아쉽다.
1982년부터 성우 일을 했으니 경력만 40년이다.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녹음 부스를 들락거렸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베르사유 궁전부터 추억의 외화 시리즈, 유명 애니메이션, TV 프로그램 내레이션까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정도다. 장을 보다가 직원에게 찾는 제품이 없는데 갖다달라고 요구하면 부탁한 물건 말고 ‘혹시 성우가 아니냐’는 질문부터 날아들곤 했다. 녹음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옛날 방송 속 자신의 목소리에 지레 놀랐던 적도 있다.
“저는 성우로서 할 건 다 해봤어요. 그래서 이젠 젊을 때처럼 일에 미쳐서 살지도 않고, 하나라도 더 하려고 욕심부리지는 않아요. 대신 그날그날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 하죠. 집에서 요리할 때나 청소할 때, 오디오 녹음이 필요한데 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도요.”
일에 미쳐 살던 40년 세월이 만들어낸 변화는 아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거창한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저 매일을 열심히 살다 보니 이 위치에 와 있더라고 회고할 수 있는 사람.
‘재능 재벌’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늙지 않고 아무리 써도 축나지 않는 목소리를 나누는 일도 그렇다. 자칭 ‘재능 재벌’인 그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활동에 나선 지도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배리어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어르신도, 장애인도 누구나 장벽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화면 해설과 자막을 동시에 제공한다. 화면 속 진희라는 인물이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장면이라면, ‘진희가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라고 해설해주는 식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는 2000년대부터 배리어프리 버전 영화를 제작해 제공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그는 배리어프리 내레이션 녹음만 벌써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는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시청자미디어센터의 협약으로 시니어 배리어프리 활동가 양성과정 중 하나로 창설된 수업을 새롭게 진행했다. 그는 교육과정 중 더빙과 내레이션 녹음하는 법에 대해 8주가량 강의했다. 녹음의 기초부터 영화 각 장면에 대해 내레이션을 녹음하고,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본어 대사를 한국어로 더빙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어르신들이 직접 대본을 써서 제작한 영화에 시니어들이 더빙한 배리어프리 영화는 지난해 ‘2021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기대 이상이었어요. 이미 목소리와 발성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모여서 그런지 무언가 가르쳐드리면 곧잘 흡수하시더라고요. 지난해 처음 시행한 게 워낙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올해도 같은 과정이 개설될 것 같아요. 다만 참여를 원하는 분들이 많아 수강신청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겠어요.”
그는 서혜경낭독연구소에서도 시니어 성우 지망생을 만난다. 기초부터 심화, 전문가반 등 다양한 낭독 강의를 제공하는 연구소를 지난해에만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거쳐갔다. 처음에는 목소리에 자신 있어 찾아왔다가 낭독의 매력에 빠져 오디오북 내레이터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성우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낭독이다. 사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추천하고는 있지만, 시니어를 대상으로 가르칠 때는 특히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목소리는 늙지 않아요. 그런데 분명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이건 말소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신체 기관, 즉 조음 기관들이 둔해져서 그래요. 나이가 들수록 말할 일이 줄어들거든요. 그러면 혀, 입술, 턱, 치아 같은 조음 기관이 점차 굳으면서 둔해져요. 목소리가 변한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이미 줄어버린 ‘말할 기회’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좋아하는 글을 혼자 소리 내 읽는 일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직접 말하고 본인 목소리를 직접 듣는 낭독은 눈으로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묵독보다 뇌를 더 자극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꾸준히 낭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젊어지려면 조음 기관을 깨워내고 훈련해야 된다는 것. 오죽하면 그가 써낸 책 제목이 ‘나에게, 낭독’일까.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는 강의 수강생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그는 최근 낭독연구소 덕분에 의외의 효과를 봤다. 낭독 수업이 세대 화합의 장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 청년들은 중장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중장년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세상에 대해 배우는 식이다. 낭독을 위해 모인 사람들과 ‘눈을 뜨는’ 기쁨을 함께할 수 있어 요즘 그는 기쁘기만 하다.
만 60세, 새로운 서혜정의 ‘지금 이 순간’
그는 사람 나이 60세 때 진정한 ‘인간’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까지는 몸이 성장하는 시기이고, 스물부터 예순까지의 40년은 인간이 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시기라는 것. 벼는 익어야 고개를 숙이듯, 60년이 지나야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의 그의 지론이다. 그는 새로 태어난 지금이 만족스럽다. 60세인 지금 이 순간이 좋아서 그립다거나 돌아가고 싶은 나이도 없다.
“올해로 103세이신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딱 100세 됐을 때 했던 인터뷰 기사가 기억에 남아요. 기자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분 대답이 60세였어요. 기자가 더 젊은 시절을 놔두고 왜 60세를 골랐느냐 되물으니 ‘60세는 돼야 철이 들어 그렇다’고 답하셨거든요. 60세가 된 지금 100% 공감해요.”
최근에는 ‘사랑’에 대해서도 눈떴다.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데, 그런 건 불가능하다 여겼던 생각을 고쳐먹은 지 얼마 안 됐다. 그렇다고 거창하거나 숭고한 희생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약속을 잡을 때 나보다 남에게 더 편한 곳으로 장소를 정하고, 나보다 남을 위해 먼저 기도할 줄 알게 됐다고나 할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삽입곡 ‘지금 이 순간’이 그의 테마곡이다. 그의 목표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이다. 오늘 만나는 사람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출근을 마실 나가듯 하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즐길 뿐이다. 다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강렬한 느낌은 곧 경험이 뒷받침해주는 근거 ‘있는’ 직감이다. 매일에 충실했던 40년 세월이 국민 성우 서혜정을 만들었다. 그가 오늘보다 내일 더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리란 직감이 들었다.
2030세대는 모든 게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한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대 자녀, 혹은 회사의 막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영국의 팝 그룹 버글스는 1979년 자신의 노래로 라디오의 종말을 예고했다. 그 노랫말처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니어의 일상에 스며 있던 라디오는 설 자리를 잃어갔고, TV와 컴퓨터,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래가 나온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영상이 음성을 장악하고 있지만, 최근 각종 오디오 서비스가 떠오르며 생태계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화제의 ‘클하’…듣는 SNS 열풍
올해 초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음성 기반 SNS ‘클럽하우스’는 오디오 콘텐츠의 부활 가능성을 시사한 대표적인 사례다. 회원가입만 하면 이용 가능한 기존 SNS와 달리 지인의 초대장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폐쇄성이 비판적 여론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희소성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오히려 눈길을 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클럽하우스의 강점은 실시간, 쌍방향 음성 교류다. 이용자들이 올린 사진과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방식이 아니라 목소리로만 소통이 이뤄진다. 앱에 접속해 방에 입장하면 라디오를 켠 듯 낯선 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라디오와 다른 점은 진행자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방의 성격도 다양하다. 잡담이나 성대모사를 하는 재미 위주의 방부터 비슷한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커리어 이야기를 나누는 곳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 거물급 인사들의 연이은 가입으로 유명인과도 전화를 하듯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 앱의 근본적인 열풍 원인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이 연사로 등장했으며, 국내에서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 이용자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례없는 소통 방식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클럽하우스는 이후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관심이 크게 줄었지만,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유사한 음성 서비스 출시 계획을 발표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TIP] 알아두면 쏠쏠한 클럽하우스 용어
① 초대장 클럽하우스의 가입 경로. 사전에 앱을 설치한 뒤 문자로 받은 초대 링크를 누르면 가입된다. 최초 가입 시 3장의 초대장이 제공되고, 활동량에 따라 개수가 늘어난다.
② 모더레이터 방을 만든 진행자로, 발언자를 정할 수 있다. 발언하고자 하는 이는 화면 우측 하단 손바닥 아이콘을 눌러 모더레이터에게 의사 표시를 하면 된다.
③ 박수 음소거 기능을 껐다 켰다 반복하는 것. 발언자의 말에 공감할 때 주로 쓰인다. 공식 기능은 아니지만, 유저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일종의 리액션 문화다.
책·전시·드라마까지 목소리로
목소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또 다른 분야는 오디오북 시장이다. 오디오북은 인공지능(AI), 성우 등의 음성으로 책을 낭독하는 서비스로, 이미 미국에서는 전체 출판 시장의 10%를 차지할 만큼 대중화돼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최근 관련 플랫폼이 눈에 띄게 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는 지난해 동기 대비 180%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밀리의 서재’는 올해 2월 누적 회원 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쏟아지는 영상의 홍수 속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강점은 ‘멀티태스킹’이다. 영상은 그 특성상 화면에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반면, 오디오 콘텐츠는 운전·운동 등 다른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다. 또 시니어의 경우 노안으로 인한 불편도 해소할 수 있다. 실제로 윌라는 회원 중 28%가 50대 이상으로, 중장년층의 이용이 활발하다. 윌라 관계자는 “나빠지는 시력으로 독서와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중장년층 분들이 많은데, 오디오북은 이런 문제를 보완해 다른 디지털 콘텐츠보다 호응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시 도슨트, 드라마 등도 오디오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또 자신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녹음하거나 라디오 채널을 개설하는 등 참여형 콘텐츠도 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19년 기준 220억 달러에 달했던 오디오 시장이 2030년 753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상의 시대에 오디오 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한 시점이다.
[TIP] 떠오르는 오디오북 플랫폼
① 윌라 오디오북 전권을 전문 성우의 목소리로 실감 나게 들려준다. 다만 텍스트를 볼 수 없어 오직 두 귀로만 즐겨야 한다. 비즈니스·패션·과학 등 분야별 매거진과 제휴를 맺어 오디오 매거진도 제작하고 있다.
② 밀리의 서재 10만 권의 전자책을 보유해 텍스트와 오디오를 함께 제공한다. 일부 콘텐츠는 배우 이병헌, 조정석, 한지민 등 유명인의 목소리로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책을 만들고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③ 오디오클립 2만여 권의 오디오북과 4600여 개의 다양한 팟캐스트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재혼황후’, ‘구르미 그린 달빛’ 등 자사의 유명 웹소설·웹툰을 음성으로 구현한 오디오 드라마로 차별을 꾀하고 있다. 대형 미술 전시의 오디오 도슨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호박 고구마’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이름, 나문희.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은 배우 나문희는 모두가 인정하는 자타공인 국민배우다. 1961년 MBC 라디오 공채 성우 1기로 이름을 알린 나문희는 60년간 영화 22편, 드라마 91편에 참여하며 살아온 세월의 절반 이상을 연기 활동으로 보냈다. 최근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 ‘오!문희’에 출연해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펼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시트콤에서의 유쾌한 모습부터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오랜 세월 관객을 웃고 울린 나문희.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시니어를 대표하는 배우 나문희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하모니 (Harmony, 2009)
임신 중 교도소에 수감된 '정혜'(김윤진)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교정 시설에서 출산한 경우 생후 18개월이 지나면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법에 따라 품에 안은 아이와 이별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정혜는 합창단 결성을 떠올리고, 정혜의 제안으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수용자가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개봉 당시 극장가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영화 ‘하모니’는 여성 수용자들이 합창을 통해 하나가 돼 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영화에서 나문희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 ‘문옥’역을 완벽하게 연기해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특히 전직 음대 교수였던 문옥의 지휘 아래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오합지졸 합창단이 화음을 맞춰가는 순간은 작품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2. 수상한 그녀 (Miss Granny, 2014)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오말순’(나문희)은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듣고 상념에 빠진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밤길을 거닐던 말순은 우연히 발견한 ‘청춘사진관’에 들어가 영정사진을 찍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말순은 창밖에 비친 낯선 얼굴에 경악한다. ‘할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앳된 얼굴로 변해버린 것. 스무 살의 모습으로 돌아간 말순은 당황하기도 잠시, 돌아온 청춘을 제대로 누려보기로 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나문희와 심은경의 2인 1역 캐스팅으로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나문희는 70대 말순을, 심은경은 20대로 돌아간 말순을 연기하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특히 심은경은 ‘욕쟁이 할매’를 연상케 하는 구수하고 찰진 사투리를 구사해 나문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인다.
3. 아이 캔 스피크 (I Can Speak, 2017)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옥분'(나문희)은 온 동네를 휘저으며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은 '프로민원러'이자 뒤늦게 영어 공부에 푹 빠진 늦깎이 학생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청에 간 옥분은 새로 전근 온 '민재'(이제훈)를 만나는데, 다른 직원과 달리 까다롭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민재는 옥분의 민원을 연신 거절한다. 하지만 이에 질 리 없는 옥분은 민재를 따라다니기 시작하고, 어느 날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의 모습을 본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색다른 민원(?)을 제기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공무원에게 영어를 배운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다룬 내용으로, 실화를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2007년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고 김군자 할머니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올라 증언한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문희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등 3대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국민배우로서의 저력을 입증했다.
'프랑스여자'가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영화의 흥행 기준으로 불리는 1만 명 관객을 개봉 일주일 만에 돌파했다. 6월 20일 기준 관객 수가 1만7270명이다. 지난 6월 4일 개봉했으니 하루에 1015명 정도가 이 영화를 관람한 셈이다. 코로나 정국에서 독립영화가 건져 올린 결과라는 점에서 이 숫자의 의미가 눈물겹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귀때기로 활약한 데 이어 '부부의 관계'에서 쉴 새 없이 바람을 피던 회계사로 나와 눈도장을 강하게 찍었던 김영민, 전원일기의 영원한 복실이 김지영의 출연으로 개봉 전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영향도 있을 듯하다.
김희정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영상미는 잔잔하지만 어딘지 미숙한 느낌도 주는데 이 또한 의도된 듯하다. 미숙하지만 순진하고 열정적이고 마치 어린 싹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영상들이 장점이다. 아마 이 주제를 세련되게 연출하고 영상을 뽑았다면 아련한 느낌이 없어져 가슴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훨씬 작았을 것이다.
'프랑스여자'는 한때 배우를 꿈꿨지만 파리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프랑스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미라의 한국 나들이 이야기다. 20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옛 동료들을 만나는 간단한 플롯으로 구성돼 있다.
미라는 파리로 연기공부를 하러 떠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연기 대신 동시통역대학원을 다니며 프랑스에서 한국 관련 일을 하며 정착한다. 꿈을 위해 떠난 유학이지만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연기를 갈망하며 아카데미를 다녔던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고백한다.
미라는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지 않지만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지낸다. 이들 동기들은 영화제 참석을 위해 혹은 연출을 위해 파리에 방문하면 꼭 미라에게 연락해 만나면서 관계를 이어나간다.
미라는 동시통역대학원 후배와 바람이 난 남편과 이혼을 하고 한국을 찾는다. 도착하자마자 잘나가는 여성감독으로 카리스마 작렬 중인 영은과 연극 연출자인 성우를 만난다. 이들은 아카데미를 함께 다녔던 동료 중 가장 친했던 사이이기도 하다.
영화는 미라와 영은, 성우, 그리고 2년 전 자살한 해란 등 4명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서로 다르게 기억되고 잊힌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 삭제한 기억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물어보는 미라는 과거에 갇혀 사는 유형의 인간이다. 꿈을 안고 외국행을 선택했지만 꿈도 생활도 뜻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은 과거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함께했던 이들과 해후하면서 위안받는다. 미라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과거의 어느 순간 속으로 홀로 들어가 시간여행을 한다. 이 기억들은 꿈일까? 아니면 망상일까? 혹은 사실일까? 미라에게서만 조각난 기억의 편린들일까?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미라의 불안정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타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다가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을 하고 나서야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녀. 꿈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에 함께 공부한 동료들에 대한 선망을 감추지 않는다. 경계인, 주변인으로 살고 있으나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뜨겁다. 하지만 차분히 스스로를 다스린다.
프랑스 국적의 한국 여자 미라는 스스로 빗장을 걸고 주변인으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옥죈다. 해란에 대한 집착은 그녀의 자살이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죄의식이 남아 있어서다. 해란과 성우는 서로 사귀는 사이였지만 성우는 원숙한 누나인 미라에게 계속 구애 중이다.
파리로 떠나기 전 바다를 보기 위해 함께 떠난 여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라와 이를 일깨워주는 성우. 연인도 친구도 아닌 두 사람의 애매한 관계 속에서 홀로 전전긍긍하던 해란은 자해소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해란의 자해 이유는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감정 기복과 변덕이 심한 여배우의 기질로 치부되고 만다. 미라만이 자신과 성우가 키스하는 걸 본 해란이 자해한 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물론 이런 추측도 미라만의 생각이다. 미라는 확인하고 싶어 하지도,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그래서 더 프랑스 영화 같은 작품 '프랑스여자'다. 우리의 기억들은 어떤가. 서로 다르게 기억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떠오르는 옛 기억들이 나를 어지럽혔다.
‘동년(同年)기자단’이란?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만 50세 이상 시니어 기자단이다. 주요 활동으로 온·오프라인 기사 기획, 취재 및 작성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도 제작한다. 더불어 SNS 활동 등을 통해 전반적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서포터즈 역할을 수행한다.
4월 10일, 이투데이 본사 5층 강당에서 제4기 동년기자단 발대식이 열렸다.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4기로 선발된 24명의 동년기자 중 21명이 참석했다.
이투데이 미디어 김상철 대표, '브라보 마이 라이프' 김영순 편집장, 김형석 동년기자단 편집주간 등이 함께 참석한 가운데 김상철 대표의 축사로 발대식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콘텐츠로 매우 의미 있는 매체"라 말하며 "동년기자들이 열심히 활동해주면 나날이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멋진 활동을 해주시길 바라며, 동년기자단 운영에 건의사항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 달라"며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축사에 이어 동년기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사항들이 적힌 기자윤리강령을 낭독했다. 동년기자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윤리강령을 꼼꼼히 읽고 서명했다. 이어서 김상철 대표가 4기 동년기자단에게 위촉장과 명함을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으로 김형석 편집주간이 4기 동년기자 모집 및 선발 진행 과정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다. 4기 동년기자는 71명의 지원자 중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올해는 무엇보다 소속감, 참여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인원을 정예화했다. 언론사에서 40년간 종사해온 김형석 주간은 경력을 살려 기획, 취재, 기사 작성 등 동년기자단의 전반적인 활동을 전담할 예정이다.
이어서 김영순 편집장이 동년기자 운영 방안에 관해 설명한 뒤 단체 기념사진 촬영을 끝으로 발대식은 마무리되었다. 장내 정리 후 동년기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기자, IT 업계, 교사, 사진·여행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온 경력들이 주목받았다. 연금제도 전문가로 활동하는 이재섭 동년기자는 "동년기자단 활동을 통해 기자의 자세를 배우겠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 있는 분들이 모였으니 서로 협력하는 시니어 공론의 장이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동년기자 1~3기를 거쳐 4기로도 활동하게 된 박혜경 동년기자는 "그동안 기사 위주로 글을 써왔는데, 최근 동영상 편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내레이션에도 흥미를 느꼈다"며 "이번 4기 동년기자 활동 분야가 다양하게 확대돼 기회가 된다면 성우 활동에 도전해 활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4기 동년기자들은 유튜브 영상 제작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능력이 돋보인 김주만 동년기자는 이날 영상 소팀장으로 임명됐다.
김영순 편집장은 "개별 취재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팀을 꾸려 시니어의 시각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만이 만들 수 있는 킬링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며 동년기자단의 사기를 북돋웠다.
4기 동년기자단은 2020년 3월까지 활동하며, 앞으로의 활약상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지면, 홈페이지, 공식 유튜브 계정 '브라보 잼잼 TV'에서 만나볼 수 있다.
40~50대 중장년이 은퇴 후 미래를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11월 9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신중년 신바람 전직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4차산업 혁명과 직업변화’를 주제로 강의한 한국고용정보원 김중진 연구위원은 “50대에 조기 퇴직하더라도 평균적으로 72세까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사회적 현실 때문에 은퇴설계는 장기적 관점에서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하고, “노동시장에서 꺼려지는 중장년이 4차산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창직을 눈여겨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40+ 이후, 일하고 있지만 전직하고 싶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전직 성공 사례를 공유해 전직 준비 필요성을 알리고, 노사발전재단에서 진행 중인 전직지원 서비스 참여를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는 약 150여 명의 퇴직(예정)자가 참석해 중장년에 맞는 구직 전략에 귀를 기울였다.
행사에선 노사발전재단의 내공(내 경험을 공유하는) 강사 장필규 씨가 다양한 현장에서 만난 전직성공사례들을 소개했다. 또 45세 나이에 성우로 전직했다, 최근에는 ‘아빠 ASMR’ 유투버로 알려진 문정호 씨도 출연해 본인의 경험담을 밝혀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김대중 센터장은 “과거에는 돈이나 건강, 가족에 인생의 가치를 두었다면 100세 시대에는 평생 지속할 수 있는 내게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분이 일자리를 통해 삶의 변화를 이끄는 기점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