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계절의 정점, 그 열기 속에서 새로운 풍경과 이야기를 만난다. 8.15 즈음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눈으로 보면서 무더위를 식히고 시(詩)를 통해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빛의 도시 광명시다.

요즘 여가 활동이나 휴식의 트렌드가 세대별로 달라졌다. 그저 어딘가로 떠난다는 식의 여행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형 경험을 추구한다. 사회조직이나 자녀에게서 분리된 인생 후반기 세대가 원하는 건 주변의 챙김이나 느긋한 휴식이 아니다. 정서적 여유를 얻는 패턴을 지향한다. 자신에게 집중하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독립적인 나를 돌보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도심 속 문화적 공간이나 생활 주변의 호젓한 자연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는 얼핏 서울 생활권과 밀접하게 연결된 인구 고밀도 도시로만 떠올리기 쉽다. 알고 보면 광명시를 중심으로 하는 그 언저리에는 깊은 역사가 있고, 특별한 인물이 있었으며, 오래된 자연과 미래를 향한 힘찬 이야기들이 숨 쉰다. 도심 속에서 마실 떠나듯 삶의 하루를 천천히 돌보는 날이다.
역사의 숨결을 마주하는 빛의 동굴, 광명동굴
광명시는 수도권 서남부의 대표적인 교통·주거 중심 도시다. 광명동굴은 KTX 광명역 부근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고, 자동차로는 5분 거리다. 특히 여름철에 광명동굴을 많이 찾는 이유는 연중 일정하게 유지되는 서늘한 실내 온도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도 12℃ 안팎을 유지하는 동굴은 최고의 피서지다. 게다가 내부는 알찬 문화예술 공간이다. 무엇보다 8.15 무렵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픈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매표소에 이르는 길옆으로 광명시 자원회수시설과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공원과 휴식 시설이 조성돼 있어 심심치 않다. 2015년 광복절에 건립된 ‘광명 평화의 소녀상’도 의미를 더한다. 1903년 시흥광산으로 시작된 광명동굴의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겼다. 이제는 역사적 성찰과 우리 민족의 애환을 기억할 수 있도록 보존한 공간이다. 여기에 볼거리· 즐길 거리를 더해 ‘폐광의 기적’이라는 키워드로 알려질 만큼 소중한 산업 유산이자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동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함은 차원이 다르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을 가볍게 밀어내고 천연의 한기로 개운하다. 동굴 속을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도 체감온도가 확 떨어져 얇은 겉옷이 필요할 정도다. 종일 안내하는 분은 두툼한 패딩 차림이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화려한 조명이 빛난다. LED 조명과 뉴미디어 기법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빛을 주제로 동굴을 표현한 아트 프로젝트 공간이다. 웜홀 광장 구석에서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이 어둠 속 빛을 사냥하듯 연속으로 눌러대는 셔터 소리가 들린다. 예술의 전당 코스에서는 미디어파사드 쇼와 첨단 미디어를 접목한 VR이 10분 간격으로 약 4분간 웅장하게 펼쳐진다. 동굴 암벽에 투사되는 영상은 첨단 스크린에서도 볼 수 없는 실감 나는 화면을 제공한다. 풍부한 지하 암반수 덕분에 동굴 아쿠아월드엔 식물과 물고기들이 최상의 급수에서 자라고 있다.

근대역사관은 광석 채굴이 목적이었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수탈과 징용의 노동 현장을 보여준다. 폐광 이후에는 새우젓 저장고로, 한국전쟁 때는 피난처로 변해가는 과정이 디오라마로 펼쳐진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갱도 한편에서 출산한 여인의 모습도 보인다. 동굴에서 태어나 굴댕이라고 불렸다는 아기와 산모의 모습을 보니 새삼 가슴이 먹먹해진다. 동굴 벽에는 ‘무표정한 바위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고 표현했다. 더 깊은 동굴 지하 세계도 있다. 광석 채굴을 위해 광부들이 오르내렸던 163개의 계단이 가파르다. 연중 일정한 온도 덕분에 와인 저장과 숙성의 최적지인 와인 동굴까지 살피고 나면 역사적인 광명동굴 탐험이 마무리된다.
기형도 시인과 이원익 선생, 시(詩)로 통한 소하역사인문벨트
광명동굴에서 나와 기형도문학관으로 향한다. 그 길에서 조금 더 달리면 소하동 이원익 선생 종택인 충현박물관, 충현역사공원, 오리 이원익 묘역, 오리서원이 이어진다. 젊디젊었던 기형도 시인과 시경(詩經)에 능하고 여든여덟까지 장수하며 백성들의 모범이었던 조선시대 청백리 이원익 선생이 이웃 사이인 셈이다. 바로 이 길이 지역의 역사와 문학을 연결해서 만든 광명시 소하역사인문벨트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소하역사인문벨트는 광명동굴을 포함해서 더욱 효율적인 노선이다.
시인 기형도(1960~1989)는 인천시 옹진군에서 태어나 다섯 살 되던 해에 현재의 광명으로 이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남다른 문학 감수성을 지닌 총명한 학창 시절,아버지가 몸져눕고 불의의 사고로 누나를 잃으면서 안개가 많이 끼는 안양천 환경이 시인과 연결된다. 이런 어린 시절이 ‘엄마 걱정’이라는 시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중략… /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암울했던 1980년대 연세대학교 졸업 후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며 의욕적인 작품 활동을 하던 기형도 시인은 어느 날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졌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는 시인의 시구를 내건 문학관 전경이 먼저 눈길을 끈다. 시인의 삶과 시어로 가득 채워진 기형도문학관 1층은 그를 아는 이들이 시인을 추모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2층의 도서 공간과 북카페에 앉으면 창밖으로 푸르른 기형도문화공원이 내다보인다.
선생의 옛집과 충현박물관에도 여름이 한창이다. 이원익 선생은 기형도 시인과 함께 광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조선시대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무려 6번이나 역임한 전설적인 재상이다.

충현박물관 안의 종택은 비가 새는 두 칸 초가에 사는 이원익에게 인조 임금이 새로 지어 하사한 집이다. 그 집이 바로 신하와 백성 모두가 이원익의 청렴한 삶을 ‘보고 느끼게 한다’는 뜻의 관감당(觀感堂)이다. 권력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그분의 시대를 넘어선 가치는 오늘날 불러오고 싶은 대한민국 국무총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청빈한 삶의 이야기가 깃든 고택의 고요한 정취와 이를 둘러싼 자연, 전시실의 유적과 유물, 주거 형태와 살림살이를 산책하듯 살피다 보면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소담스러운 모란과 수국이 어우러진 관감당 뜰의 신록이 싱그럽다.

광명의 산과 공원, 도서관
광명은 도심을 둘러싼 산과 공원의 접근성이 좋다. 광명동굴을 품은 가학산, Y자 출렁다리로 유명한 도덕산, 그 산 아래 광명도서관 안에 자리한 아트갤러리의 소박한 전시와 창작 공간인 5층 메이커스페이스, 카페나 휴게 라운지의 환경도 좋다. 소하동의 구름산은 둘레길과 산림욕장이 시민들에게 힐링을 선물한다. 구름산 자락의 오래된 마을 설월리(雪月里) 부근의 절집 금강정사는 템플스테이로 유명하다. 설월리 마을은 관직에서 물러나 농사를 짓던 이원익 선생이 눈 오는 밤 마을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겼다 해서 설월리라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주변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마을이 사라지고 공사가 한창이다.
광명 8경 중 하나인 안터생태공원은 멸종위기 금개구리 서식처 보전을 위한 도심 속 내륙 습지다. 구름산을 배경으로 천연 습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탄소중립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 바로 인접한 시민체육관 옆의 인공암벽장도 특히 인기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꽃과 나무 사이를 걸으며 쉬어가고 싶은 날엔 광명역 5분 거리의 새빛공원이 산뜻하다. 자경 저류지엔 시원하게 분수가 솟고, 예쁜 정원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까지… 걷는 길마다 여유가 함께 머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