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을 찾는 과정은 새 직장을 고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어떤 관심을 다음 역할로 발전시킬 것인지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평생 해온 일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오래 품어온 관심사와 사람을 만나며 얻은 보람,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현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구상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런 사람을 ‘재미탐구형’으로 분류했다.
재미탐구형이 일에서 흥미와 의미를 중시한다고 해서 수익을 가볍게 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재미탐구형에게 일은 급여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일이란 사람을 만나 생활에 즐거움을 더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보람을 얻는 활동까지 포함한다. 이들에게 맞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창직’이다. 창직은 전에 없던 직업명을 억지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해온 일과 좋아하는 활동을 누군가에게 필요한 가치와 연결하는 과정이다.
모험상담가 방승호 씨의 사례는 개인의 흥미가 어떻게 전문 영역과 수익 구조를 갖춘 일거리로 발전하는지 보여준다. 그가 처음부터 새로운 직업을 만들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 출발은 단순했다. 교사로서 학교 수업을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다.

놀이처럼 보이지만, 관계를 여는 상담
모험상담가는 모험놀이를 활용해 사람들의 관계와 소통을 회복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모험놀이는 간단한 신체 활동과 과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끌어내는 활동적 집단 상담법이다.
참가자는 몸을 움직이고, 서로 반응하고 협력해 과제를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소통, 협동심, 상호작용, 인내심을 경험한다. 겉으로는 놀이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적은 관계 회복과 자기표현, 상담적 개입에 있다. 이를 통해 관계의 벽을 낮추고, 자기 생각을 꺼내고,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행동으로 바꾼다.
1961년생 방승호 씨는 중학교 기술교사였다. 반복되는 학교생활 속에서 답답함도 있었지만, 수업 시간은 즐거웠다. 자신이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웃었고, 교실 분위기가 풀렸다. 그는 이 즐거움을 우연한 재능으로 넘기지 않았다. ‘수업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없을까’라는 생각은 레크리에이션 자격 연수로 이어졌다.
그 자격증은 훗날 전혀 다른 문을 열었다. 1997년 해외 연수 지원서에 자격증을 적는 칸이 있었고, 그는 레크리에이션 자격을 기재했다. 그렇게 미국 포틀랜드 모험놀이 연수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모험놀이를 처음 접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손을 잡고 신호를 전달하며, 과제를 수행하는 활동이었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부담스러웠던 그도 짧은 시간 안에 웃고 있었다.
귀국 후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험놀이 상담을 시작했다. 연수에서 배운 활동을 적용하고, 학생들의 반응을 기록했다. 시간이 지나자 학생들이 먼저 다음 만남을 기다렸고, 지각과 결석이 줄었다. 문제 행동도 사라졌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좋아졌다고 했다. 재미있는 활동이 태도 변화와 관계 회복, 학교 적응으로 이어진 것이다. 모험놀이는 방승호 씨의 관심사이자, 학생들에게 필요한 상담적 접근법이 됐다. 창직의 첫 조건이 만들어졌다.
수업의 재미 요소가 새로운 일이 되기까지
방승호 씨는 활동을 일회성 실험으로 끝내지 않았다. 도구를 만들고, 반응을 기록하고, 학교 환경에 맞게 대상을 바꿔가며 적용했다. 기록한 내용을 교육청 인성교육 실천 사례로 제출해 상을 받았고, 이후 생활지도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 요청을 받았다. 학교 안에서 시작한 작은 시도는 교사 연수와 외부 강의로 무대가 넓어졌다. 그 과정에서 모험놀이 상담도 형태를 달리했다. 한 학급이 함께 하는 대집단 프로그램, 20명 안팎이 참여하는 소집단 활동, 1대1 맞춤형 상담도 개발했다.
그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웃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이런 게 무슨 상담이냐”는 반응도 나왔다. 조용한 교실, 앉아서 진행하는 상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모험놀이는 낯선 방식이었다. 자료도 부족했다. 국내에 참고할 만한 연구나 활동 도구가 많지 않았다. 방승호 씨는 학교 현장에서 적용한 내용을 계속 기록했고, 관련 연구를 이어갔다. 아이들과 나눈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냈고, 칼럼과 영상, 노래로도 확장했다.
학생들과의 상담 경험은 금연송 ‘노 타바코’, 게임송 ‘돈 워리’ 같은 노래로 이어졌다. 학교 현장을 3년이나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됐다. 모험상담이라는 한 가지 관심이 강의, 책, 음악, 영화, 교사 연수로 분화된 것이다. 좋아하는 활동이 일이 되려면 필요한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반복 가능한 방식이 있어야 하며, 효과를 설명할 언어가 있어야 한다. 방승호 씨는 그 세 가지를 현장에서 하나씩 만들어갔다.

분위기와 마음의 빗장 먼저 푸는 사람
7월 10일 대전교육정보원 강당에 모인 이들은 전문 상담교사들이었다. 한 학기를 지나온 상담교사들을 위해 마련된 연수였다. 방승호 씨는 무대로 올라오자마자 자신을 상담가보다 먼저 가수로 소개했다. “제가 여기 몇 집 가수라고 나왔어요? 7집? 지금은 11집 가수예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는 “8월에 12번째 음반이 나온다”고 덧붙이며 강의장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방승호 씨의 강의는 상담 이론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는 가수 이야기와 농담, 질문으로 참여자의 긴장을 풀었다. 그가 본론보다 먼저 챙기는 것은 분위기였다. “경계가 안 풀어진 상태에서 하는 건 무용지물”이라는 그의 말처럼, 모험상담에서 첫 단계는 활동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다.
낯선 사람 앞에서 체면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은 상담교사에게도 쉽지 않았다. 방승호 씨는 먼저 노래와 이야기로 웃음을 열고, 간단한 놀이를 통해 옆 사람과 반응하게 했다. 활동이 끝나자 굳은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던 참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처음으로 한 명도 졸지 않은 강연”이라는 평도 따라왔다. 그는 “모험놀이를 하니까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지죠. 애들은 더 밝아져요”라고 했다.
방승호 씨가 말하는 모험상담의 핵심은 거창한 놀이가 아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나는 못 해”, “그런 일은 힘들어” 같은 말 뒤에 숨은 마음을 먼저 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밖으로 꺼내 말하고, 써보게 한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글을 못 쓰는 사람도 쓸 수 있고, 그렇게 쓰면 실천율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웃음으로 긴장을 풀고, 움직임으로 관계를 열고, 기록으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일. 모험놀이가 상담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흥미와 전문성은 어떻게 수익 구조를 갖는가
방승호 씨는 2022년에 퇴직했다. 퇴직 후 하루 일과에는 명상·산책·운동·독서 활동이 꼭 들어간다. 나머지 시간에는 곡을 만들고, 방송에 출연하고, 또 어떤 새로운 일을 벌일까 궁리하고 실천하는 데 사용한다. 모험상담과 관련한 활동은 적을 때 한 달에 4건, 많을 때 10건 정도다. “버스킹이나 요양원 공연에도 상담 기법이 들어간다”는 그의 말처럼, 가수로서의 공연과 모험상담가의 상담·강의·놀이가 분리돼 있지 않다.
활동 대상도 넓어졌다. 처음에는 교사와 학생이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어린이집 원장, 유치원 학부모, 일반 가정, 시니어까지 확장됐다. 어르신을 대상으로 자서전 쓰기를 돕는 일도 한다. “계속 경험을 해야 돼요. 경험하면서 바뀌어야 돼요.” 그의 창직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반복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 현장마다 다시 조정하는 일에 가깝다.
수익 구조도 현실적이다. 학교 강의는 대체로 정해진 예산 안에서 움직인다. 보통 30만~50만 원 선이라고 했다. 개인이 임의로 더 주거나 덜 주는 구조가 아니라 기관 예산에 맞춰 지급된다. 1회 100만 원 안팎을 제안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금액만으로 수락 여부를 정하지 않는다. 강의 성격에 따라 자신의 방식이 의미 있게 쓰이는 자리인지까지 본다. “돈을 안 줘도 가고 싶은 강의가 있고, 100만 원, 200만 원을 줘도 안 가고 싶은 데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재미탐구형 창직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일의 방향과 맞지 않는 요청까지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은퇴 후 일거리가 지속되려면 수익 구조를 가져야 한다. 다만 방승호 씨의 경우 돈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에 가까웠다. 현직일 때는 재능 기부를 많이 했고, 그 경험이 강의 요청으로 이어졌다. 재직 중에는 방학 때 강의를 몰아서 하며 한 달에 40건 가까이 다닌 적도 있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 기록과 성과, 요청의 반복을 거치면서 비용을 지불할 만한 전문 활동이 된 셈이다.
관심을 지속 가능한 일거리로 만드는 조건
방승호 씨의 사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지 오래 관찰하고, 그 필요에 맞게 바꿔온 이야기다. ‘국내 1호 모험상담가’라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다.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한 번의 즐거운 경험을 반복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는가? 누군가 비용을 낼 만큼 분명한 변화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처음부터 자격증·장비·공간·홍보물에 돈을 쓰기보다 작은 실험으로 반응을 확인하는 편이 낫다. 무료 모임 한 번, 지인 5명을 대상으로 한 체험, 한 시간짜리 강의, 짧은 글이나 영상 몇 편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반응이다.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는지, 주변에 추천하는 사람이 있는지, 비용을 낼 의사가 있는지 봐야 한다. 방승호 씨도 처음부터 직업명을 정한 것이 아니다. 수업을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학생의 반응을 기록하고, 자료를 만들면서 자신의 일을 넓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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