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즈음에-①노발대발] 나를 슬프게 하는 순간

기사입력 2014-08-11 15:29 기사수정 2014-08-20 08:53

“또 하루 멀어져간다. 머물러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잊혀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중략)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보내 온 것도 아닌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다. 그러나 예순 즈음에 이 노래는 다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직장의 퇴직을 준비하며, 자식들이 결혼하며 하나 둘씩 떠나간다. 이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어떤 이는 씁쓸한 기분이 들 것이고, 어떤 이는 새로운 인연과의 조우에 설레기도 할 것이다. 예순을 즈음한 이들에게 물어봤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 <편집자주>

◇ 노발대발 – 나를 슬프게 할 때

△ 최동희 (56ㆍ경기 성남시) - 달력을 보는 일

달력을 보는 일은 이제 예순 즈음 느끼는 서글픔의 시작인 것 같다. 아직 마음은 청춘이고, 젊다고 생각하지만 늘어나는 숫자를 볼 때마다 서글픈 표정을 숨기지 못하겠다. 달력을 보는 일은 정말 고된 일 중 하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도 반대로 말하면 나이가 많으면 힘들긴 힘들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 소병성 (58ㆍ서울 광진구) - 하나 둘씩 떠나가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나의 부모님, 친구의 부모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저 세상을 떠나 갈 때, 그리고 그 빈도수가 점점 늘어갈 때. 그 때마다 세월이라는 것을 지각하면서 내 가슴을 짓누를 때가 있다. 직장에서 퇴직을 한 후, 새로운 것을 도전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다가도 저 때는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빠진다. 세월의 무상함 앞에서 정말 나약한 존재라는 것,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한번 씩 깨달을 때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 이순민 (59ㆍ경기 포천시) - “나이가 많아서 힘들 것 같은데요”

청춘을 바친 회사에서 퇴직한 후, 새롭게 뛰어든 취업시장. 10곳 가운데 5곳 이상에서 듣는 얘기다. 저 얘기를 들을 때마다 왜 이렇게 비겁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나이 안 먹는 줄 알아?’ 이런 생각이 든다. 막걸리 한잔 마시고 털어내면 될 일이지만, 어쩔 땐 정말 분한 느낌이 들어서 잠도 오지 않을 때가 있다.

△ 박덕재 (62ㆍ서울 도봉구) - 도전에 자신감을 상실한 나를 느낄 때

퇴직 후 한 동안 해방감에 자유를 즐겼다. 여행도 다녀오고,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했다. 그것도 한 순간.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무기력해졌다. 새로운 일이나 ‘퇴직 후 어떤 일을 해봐야지’ 생각했던 것들이 자꾸만 멀게만 느껴졌다. 무엇을 할 때 생각만 많아지고 소심해졌다.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다. 지금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퇴직 후 자신감이 없어질 때 내 모든 것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 박세우 (57ㆍ서울 영등포구) -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도 따라주지 않는 몸

지난 해 축구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축구를 쉰지 약 20년만이다. 젊은 시절 동네에서 볼을 조금 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나였지만, 5분만 뛰어도 숨이 헐떡거려 못 뛰겠더라. 물론 지금은 그것보다는 나아졌지만 말이다. 축구를 할 때 한발자국씩 더디고, 헛발질이 늘어만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정말 슬프다. 나도 한 때는 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스트라이커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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