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삶꾼 무애의 이야기

기사입력 2015-04-17 14:48 기사수정 2015-04-17 14:48

바둑 이야기, 그 첫 번째

고건 전 총리께서 명지대 총장을 맡고 계시던 1996년 5월 어느 날 총장실에서 당시 공과대학장을 맡고 있던 필자에게 다음 날 12시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홀로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나가보니 Y사범 등 바둑계 인사 몇 분과 처음 보는 정부 고위관료 몇 분 등이 모여 대학에 바둑학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나온 분들은 바둑계 인사 외에도 거의 다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이어서 이야기는 대개 긍정적으로 흘러갔지만 특별한 결론 없이 끝났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 대학에서 나온 사람은 총장과 필자뿐 아닌가? 그래서 총장께 “앞으로 어떻게 해야죠?”라고 여쭈었더니 “임 학장이 알아서 해”라는 한 말씀뿐이었다.

필자는 바둑을 무척 좋아했고 기력도 아마 5단 정도로서 학교 내에서는 최상위권이었지만 과연 바둑학과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날 모임 이후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물어 보았으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전 세계에 보급을 시작하여 명실상부한 종주국으로서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된 태권도 생각이 났다. 사실 바둑은 중국에서는 이미 두뇌스포츠로 체육부에서 관리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언젠가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해야겠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바둑은 일본을 완전히 제압했고 중국은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해 우리가 최강국이었으므로 앞으로 유능한 바둑지도자를 많이 양성하여 전 세계에 파견함으로써 바둑도 우리나라가 종주국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바둑학과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기획실장과 협의하여 대학 정원조정 신청 때 바둑학과 신설을 요청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막상 교육부에서 온 공문에는 무슨 과 몇 명이 아니라 정원 증원 야간 40명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이것을 논의하던 교무위원회에서는 바둑학과는 어차피 예체능대학이 있는 용인캠퍼스에 두어야 하는데 야간으로 하면 누가 지원이나 하겠느냐며 물 건너간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원조정 신청에는 경기지도학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과라면 야간도 관계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예체능대학장에게 바둑학과가 설립되면 어차피 예체능대학 소속일 수밖에 없으니 야간정원 40명을 전부 예체능대학에서 가져가고 주간정원 20명만 양보해서 바둑학과를 설립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교무위원들은 적극 찬동했으나 예체능대학장은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 교무위원회에서 예체능대학장이 동의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가 설립될 수 있었다.

그러자 총장께서 학사학위 이상의 프로기사 중에서 교수요원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필자는 바둑학과 설립 추진과정에서 당시 한국기원 사무국장을 맡고 계셨던 정동식 사범을 여러 번 만났다.

정 사범은 학사학위 소지자이고 수학교사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1975년부터 동아일보 관전기를 맡아 20여 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필해 왔으며 수년간을 한국기원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바둑계 전반에 걸쳐 폭 넓은 기반을 가지고 있어 필자는 정 사범이야말로 바둑학과 교수요원으로 적임자 중의 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정 사범에게 교수로 올 것을 제안했으나 정 사범은 교수자리가 탐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기원 사무국장도 매우 중요한 자리라면서 발령권자가 자기를 내보내지 않는데 먼저 떠날 수는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러면서 기전(棋戰) 성적도 비교적 양호하고 학사학위도 있으며 이론에도 매우 밝아 교수라는 별명을 가진 정수현 8단(당시)을 추천하였다.

한국기원에 교수요원을 추천해 주도록 공문을 보냈으나 막상 회신에는 정 8단은 빠진 채 다른 학사 프로기사인 S 사범과 H 사범을 추천해왔다. 그래서 정 국장에게 문의해 보니 정 8단에게 연락을 했지만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두 사람의 이력서를 총장께 보여 드렸으나 영 마음에 안 드셨는지 “임 학장, 더 나은 사람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정수현 8단이 적임자로 생각되나 본인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또다시 필자보고 알아서 해 보라셨다. 그래서 정 8단을 만나, 교수란 하고 싶다고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몇 년씩 고생해서 박사학위를 받고도 교수가 되지 못해 줄 서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하면서, 기전만 해도 그렇지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적을 좀 내고 있는 것은 알지만 아직도 이창호 9단이 굳건히 버티고 있고 이세돌 초단(당시) 같은 소년강자도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 벽을 얼마나 넘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가 생겼고 당신은 프로기사 중에서 교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니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당신은 기전에서 성적을 내기보다는 바둑학과를 잘 키우는 것이 당신을 위해서도 바둑계를 위해서도 더욱 큰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설득을 했다.

그리고 이 제안을 수락한다 해도 대학도 당신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해서 적어도 한두 학기는 겸임교수로 발령을 내고 조율해볼 시간을 가져야 할 터이니 그동안 충분히 겪어보고 생각을 해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 8단은 시간을 좀 달라고 하더니 해 보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이렇게 해서 교수라는 별명을 가졌던 정수현 9단(1997년 승단)이 진짜 교수가 되어 학과장을 맡게 됨으로써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가 순조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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